장정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장담했다."그럼요, 우리도 규칙을 잘 알고 있습니다."비밀 조직에는 무력이 높은 사람들을 제외하고 나머지들은 잘난 얼굴과 비상한 머리에 의지했다.눈앞에 있는 이 계집애는 생각하지 않아도 얼굴로 밥을 먹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임무를 완성했다면 그들에게 이런 호강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거다.임시연은 공포에 질려 눈을 크게 뜨고 무릎을 꿇고 벌벌 기며 송석훈의 허벅지를 붙잡았다."저는 곧 왕실에 시집가야 할 몸이에요. 제발 저한테 이러지 마세요.""저 사람들은 시연 씨를 도와 심지안을 죽일 거예요. 그러니 시연 씨가 저분들에게 잘해드리는 것은 당연한 거예요."송석훈은 몸을 숙이고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마치 얼굴에 가면을 쓴 것 같았다. 한참 눈을 마주치고 있으니 모골이 송연해졌다."송석훈 씨, 전 아직 쓸모가 있어요. 제발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일을 해왔는데 공로가 없다고 해도 고생은 했잖아요.""시연 씨가 쓸모가 있었다면 성연신을 빼앗았겠죠. 지금처럼 심지안에게 된통 당하지 않았겠죠."송석훈은 높은 곳에서 그녀를 바라봤다. 부드러우면서도 엄격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는 마치 교원 같아 보였다."폐기물들도 모두 자신이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죠. 말 들으세요. 마지막 기회를 소중히 여겨요."송석훈은 손가락으로 임시연의 머리를 밀어 자신의 다리에서 떼어냈다. 그리고는 찻잔을 들고 유유히 떠나갔다.임시연은 절망적으로 땅바닥에 앉아 군침을 흘리고 있는 장정들을 바라봤다. 마음속에서 끝없는 오한이 밀려왔다."울지 마. 뭐 큰일이라고. 우리에게 잘해준다면 우리도 너에게 부드럽게 대할 거야.""그래. 그나저나 나는 아직 많은 사람과 함께 이걸 해 본 적이 없어.""모두 송석훈 씨를 위해 일하는 거잖아. 책임지고 있는 내용이 다를 뿐이지. 죽네 사네 할 필요 없어. 노래방에 있는 아가씨들도 다들 잘살고 있잖아.""난 아가씨가 아니야!"임시연이 악에 받쳐 소리치며 역겨워하는 눈빛으로 쳐다
"아니요, 고청민 씨가 파혼하세요."어차피 그녀는 이미 한 번 이혼한 적이 있었기에 깨끗한 명성을 가진 고청민을 생각하면 그녀가 파혼당하는 게 맞았다."난 지안 씨와 파혼하지 않을 거예요."고청민이 '쾅'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어두운 눈빛으로 물었다."성연신 때문이에요?""아니에요. 그럴 리가요."심지안은 흥분하며 부정했다.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난 단지 청민 씨를 지체시키고 싶지 않았어요."그녀는 한 번 헤어진 사람을 다시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 깨끗하지 않은 남자에게 다시 기회를 줄 가치가 없었다."그만 해요. 내 사전에 파혼이란 단어는 없어요. 내가 죽는다면 몰라도."심지안은 멍하니 그의 음산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그가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그의 입에서 처음으로 이렇게 격한 말을 들은 심지안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그날 밤의 일을 그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에 대해 감히 생각할 수 없었다...고청민은 마음이 심란했다. 그는 눈을 내리깔고 눈 속에 있는 차가움을 감췄다.급해 해서도 안 되고 흥분해서도 안 되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녀에게서 파혼이라는 말을 듣고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그는 그녀에게 잘해주며 5년 동안 그녀의 옆을 지켰다. 진심으로 사랑하면 그녀를 감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또 구름 위에서 떨어져 만신창이가 되었다.'왜 성연신의 진짜 모습을 보고도 계속 그와 만나려 하지?'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더 직면할 수도 없었다.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하는 것도 이번 한 번뿐이었다. 이게 그의 최대 한계였다.그렇지 않으면 그는 정말 그녀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자신의 성질을 억제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고청민은 숨을 내뱉고 이내 침착해졌다.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심지안의 손을 가볍게 잡으며 말했다."내 말은, 지안 씨가 성연신와 인연을 끊으려 하고 우리고 약혼했으니 내가 죽지 않는다면 할아버지께서는 지
성우주는 짙은 눈썹을 찡그리며 왠지 모르게 맞은편에 있는 아저씨에게 적대감을 느꼈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이번이 그들 첫 만남이었다.방매향은 인간 세상의 험악함에 익숙해졌기에 고청민의 눈빛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성우주를 뒤로 감싸고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였다."대표님.""방매향 씨 손자인가요?"고청민은 앞으로 몇 걸음 걸어갔다.마치 방매향의 움직임을 보지 못한 듯 눈빛은 여전히 성우주를 보고 있었다."아니에요."방매향이 부정했다."이 아이가 사람을 찾아왔는데 내가 지금 일이 없어서 돌봐주는 중이에요.""누구 찾으러 왔어요?"그녀는 그가 얼마나 많은 대화를 들었는지 몰라 망설였다."심지안 씨요."숨기는 것이 더욱 큰 의심을 불러올 것 같았다."성연신씨 아이인가요?"고청민이 그윽하게 쳐다보며 확실하다는 말투로 말했다.'어쩐지 처음 볼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더라니.'"네. 우리 아빠가 성연신이예요. 당신은 누구세요?"성우주가 대답했다. 그는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반문했다.고청민이 웃을락 말락 하며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말투로 말했다."내가 바로 네가 말한 연적이야. 지안 씨의 약혼자."성우주가 까만 눈을 크게 뜨고 경계심 가득한 눈초리로 그를 살폈다.이내 결론이 났다. 확실히 자신의 아버지보다는 많이 어려 보였다.성우주는 고청민에게 작은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고청민은 고개를 숙이고 성우주를 바라봤다. 그는 어린아이의 얼굴에서 심지안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입꼬리를 치켜세우고 무표정으로 말했다."지안 씨는 지금 없어. 그러니 돌아가."성우주는 눈을 깜박거리며 소리 없이 방매향을 쳐다봤다. 마치 그녀에게 물어보는 것 같았다.'할머니께서 지안 고모가 여기에 있다고 하셨는데?'방매향은 고청민이 일찍이 기분이 안 좋은 것을 알아차리고는 성우주에게 화가 미칠까 봐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우주야, 돌아가. 기사님 아직 밑에서 너 기다리는 거 맞지?"성우주는 고청민의
"타세요."심지안은 망설이지 않고 바로 차에 올랐다.그녀가 차에 오르자 운전사는 순식간에 차 문을 잠갔다.이와 동시에 차가운 칼 한 자루가 심지안의 목덜미로 들어왔다."움직이지 마. 그렇지 않으면 죽일 거야."심지안은 온몸이 굳었다. 그녀는 강도를 만난 줄 알았다.그녀는 호흡을 가다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저기요. 저 돈 있어요. 얼마면 되겠어요? 제발 저를 해치지만 말아주세요."남자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넌 네 목숨이 얼마 정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안전이 제일이죠. 나에게 있는 걸 다 드릴 수 있어요. 절대 인색하게 굴지 않아요."돈이 어떻게 목숨보다 중요하겠는가. 무서운 것은 죽는다면 돈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안타깝네. 우린 너의 돈을 원하는 게 아니야."심지안은 모골이 송연해졌다."무슨 뜻이에요?"이내 검은 포대가 그녀의 머리에 씌워졌고, 앞은 캄캄했다. 목덜미 뒤에는 뾰족한 칼자루가 있었다.강렬한 따끔거림에 심지안은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그녀는 상대방의 살기를 톡톡히 느꼈다.이건 단순한 약탈이 아니었다.그녀는 재빨리 생각했다. 그리고는 이내 임시연이 비밀 조직에 밀고해서 비밀 조직에서 보낸 킬러라는 결론이 나왔다.보아하니 변요석도 믿을 수 없었다. 두 명의 경호원은 어디로 갔는지 관건적인 시간에 보이지 않았다.차는 도심으로 들어가서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달리고 있었다."앞에서 교통경찰이 차를 검사하는데 어떻게 하죠?""괜찮아. 우린 좀 천천히 가자. 의심스러운 점을 보이지 말고. 길목에 도착하면 우리는 모퉁이를 돌아서 길을 바꾸자."심지안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게 자신의 마지막 구조기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후과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심지안을 정신을 차렸다. 땀방울이 뺨을 따라 흘러내렸다. 그녀는 천천히 손을 호주머니 속에 넣고 경보기를 만졌다. 만지는 동시에 그녀는 차 창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요 몇 년 동안 외국에 있으면서 늘 술에 취한 노숙자들
성연신의 차가운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마성 있는 목소리에 몇 가지 불확실함과 망설임이 섞여 있었다."네?""할아버지가 아직 연신 씨에게 말하지 않으셨죠?"심지안이 등을 곧게 펴고 냉담하게 사실을 말했다."임시연이 비밀 조직 사람이에요. 모든 것은 임시연이 꾸민 짓이에요."그녀는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고 싶지 않았다. 특히 성연신처럼 오만한 사람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았다.성연신은 제자리에 멍하니 서서 눈살을 찌푸렸다."임시연이 어떻게 비밀 조직과 관계가 있을 수 있죠... 만약 그렇다면 그녀가 어떻게 감히 할아버지가 깨어난 후에도 나에게 매달릴 수 있죠?""그러니 그녀는 일찍이 변요석과 손잡은 거겠죠."그녀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 아예 천화 레스토랑에서 한 녹음을 성연신에게 들려주었다.녹음에서 임시연은 분노의 포효로부터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기까지 짧디짧은 10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녀의 악행은 평생 속죄하기 어려웠다.성연신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며 한기가 감돌았다.그는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몇 년 동안 줄곧 자신을 속이고 있을 줄 몰랐다.심지어 우주를 이용해 관심을 얻으려 애쓰기도 했다...그는 심장이 아파왔다. 그가 그녀에게 준 상처는 눈앞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닐 수 있었다.암암리에 자신 모르게 숨겨진 것이 더 많을지도 몰랐다.'고청민과 함께 금관성을 떠나려 했을 때도 심지안은 분명히 실망을 많이 했었겠지...'심지안은 여유롭게 성연신을 바라보다가 옆에 있던 경호원 두 명을 바라봤다."아마 비밀 조직에서는 연신 씨와 변요석 씨의 관계에 대해 모를 거예요."임시연이 갖은 방법을 다 써서 변석환을 만났지만 상연신과 변석환의 아버지는 친구 사이였다.'이런 관계라... 구경할 게 많은 것 같네.'성연신인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지안 씨는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왜 나에게 말해주지 않은 거예요?"심지안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했다."내가 연신 씨에게 임시연이 이상하다고 비밀 조직과 관계가 있
임시연은 심지안과 변요석이 대체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지 알 수 없었다.'변석환이 심지안의 예쁘장한 얼굴을 보고 마음에 들어 했나? 아니면 또 다른 원인이 있는 건가?"송성훈은 임시연을 흘겨보며 손에 들고 있던 채찍을 한쪽에 던졌다. 그러고는 송준이 건네준 손수건을 받아 손을 꼼꼼히 닦았다."요 몇 달 동안 성연신 옆에서 의심스러운 사람을 발견했나요?"임시연이 대답했다."아니요. 선생님께서 나에게 보여준 그 사진은 잘 기억하고 있어요. 그 여자를 본 적은 없어요."송석훈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비슷한 사람도 보지 못했나요?"임시연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거짓말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네.""아버지, 다른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송준이 때마침 끼어들었다.송석훈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혹시... 그녀가 성형을 했을 수도 있지 않나요?"한 어머니가 치욕을 참고 비밀 조직을 탈출한 것은 성연신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겠는가?여러 해가 지났다. 그는 그녀가 성연신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진작 조사해 봤지만 성연신 주위에 성형한 의심스러운 여성이 나타났던 적이 없어.""아마도 사람들 속에서 성연신을 몰래 보았을 수 있겠네요. 행인인 척해서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걸 수도 있어요."송석훈은 멍해졌다. 그는 이내 웃어 보였다. 눈가에는 주름살이 잡혔고 다시 친절하게 말했다."가서 조사해 봐.""네, 아버지.""시연 씨를 데리고 나가. 온 집안에서 피비린내가 진동하네."송석훈은 말하며 임시연 쪽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굳었던 몸이 풀리면서 그녀는 숨을 헐떡였다. 그녀가 잘 넘겼다고 생각했을 때 송석훈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계속 변석환에게 붙어있어요. 그리고 성우주가 아직도 '시연 씨의 아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요."필요할 때 성연신은 옛정을 생각해 주지 않았다. 어린아이도 마찬가지였다.3일 내내 심지안은 마음이 매우 혼란스러웠다.그녀는 의롭게 고청민을 믿고 싶었다... 성
장현진은 화가 나서 성을 내다가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보고 갑자기 멍청하게 웃기 시작했다.“네가 패션을 알기나 해? 이거 요새 나온 리미티드 에디션이라고, 하나 구하기도 어려워.”“스케줄 간다고? 그거 오후 시작 아니야?”매니저가 비몽사몽하게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며 의아해서 물었다.“데이트 갈거야.”“누구랑?”“세움 그룹의 심지안 씨.”장현진은 악랄하게 웃었다.“고청민에 대해서 물어봐야할 것같아.”그말을 들은 매니저는 얼굴을 찌푸리고 소파에서 일어나 물었다.“진짜?”지난 번만 해도 그 사람이 손을 쓴 바람에 아티스트 한 달 일정이 다 밀렸는데 또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러 간다니.연예계 생활을 더는 하기 싫은 건가?장현진은 머리를 정리하면서 말했다.“그럼. 힘들게 진짜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은 데다가 지안 씨가 먼저 약속 잡은 건데 내가 거절하겠어?”“말 절대 함부로 하면 안 돼. 심지안 씨랑 고청민 씨 관계 이간질할 생각도 말고. 한창 잘 나가고 있는데 자기 무덤 파지 말아.”매니저는 노파심에 거듭 강조했다. 자칫하면 장현진뿐만 아니라 본인 직장도 없어질 노릇이었다.장현진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웃었다.“그러면 돌아가서 아빠랑 같이 소, 돼지 키우면 되겠다. 마침 목장 이어받을 사람도 없는데.”“...”금수저가 대단하긴 하다. 짜증 나게!...카페.심지안이 도착했을 때 장현진은 이미 카페에서 메뉴를 시키고 잔뜩 흥분한 채 테이블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그녀가 온 걸 보고는 삽시에 얼굴에 웃음꽃이 피면서 활기차게 옆의 의자를 빼냈다.“심지안 씨, 앉으세요.”“급하게 약속 잡아서 실례가 많네요.”“괜찮아요. 어차피 한가해서 나와서 바람 쐬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장현진은 커피를 그녀 쪽으로 밀었다.“뭐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신제품 있길래 시켜봤어요. 코코넛 라떼예요. 한번 드셔보세요.”“고마워요.”심지안은 컵을 들고 한 모금 마시더니 고개를 들고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맛있네요.”장현진은 심지안과 눈이 마주
심지안은 장현진과 헤어지고 한참 동안 혼자 있었다.그녀에게 있어서 스캔들 사건 자체는 사실 그렇게 큰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만약 자신을 속인 거라면 달라진다.거기다 성연신이 매번 모든 걸 다 안다는 듯한 눈길로 하던 경고들이... 불편했다.그녀는 장현진이 준 명함을 꽉 쥐고 있다가 잠깐 멈칫하고는 일어서서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다른 사람 입에서 고청민을 알고 싶지 않았다. 그녀 스스로 진실을 알아내고 싶었다.회사 계좌와 고청민 개인 계좌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지만 고청민은 심지안에게 숨기는 게 아예 없었기에 그의 계좌를 보는 건 쉬웠다.심지안은 차에 앉아서 노트북을 다리 위에 올려놓았다.손끝으로 키보드를 몇 번 누르자 쉽게 로그인됐다.고청민의 계좌 기록은 간단하고 적어서 찾아보기도 쉬웠다.그리고 심지안은 지난달 기록에서 고청민이 거액의 돈을 언론 회사에 보냈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현진이 말한 게 사실이었다. 더럽고 지독해 보이는 스캔들을 사주한 것이 고청민이었다. 심지안은 스크린을 한참동안 노려보면서 얼굴을 점점 찡그렸다. 잠깐 자신이 잘못 본 건 아닌지 의심이 갔다.하지만 컴퓨터의 숫자가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모든 게 사실이었다. 고청민은 장현진이 말하는 ‘비열한 자식’이었다.앉아서 진정하려고 노력한 심지안은 겨우 이성을 되찾고 바로 세움으로 돌아갔다. ...“지안 씨?”고청민은 프로젝트 보고서를 살펴보다가 인기척을 듣고 고개를 들어 반짝이는 눈으로 심지안을 쳐다봤다. “오늘 쉬는 날 아니에요?”“지난달에 왜 언론 회사에 송금했어요?”심지안은 진지하게 바로 핵심을 말했다.고청민은 미간이 살짝 찡그려졌지만 금방 자연스럽게 표정을 고치고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부드럽게 물었다.“누가 무슨 말을 했어요?”“먼저 대답해요. 그런 일이 있는지 없는지 대답해요.”그녀는 눈빛이 반짝였지만 평온하게 대답했다.“있어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심지안은 말문이 막혀서 믿기 힘들다는 눈길로 쳐다봤다.자칫하면 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