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인은 원인은 몰랐다. 하지만 변요석이 조금 화난 것같아서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몸을 일으켜 물러났다.저녁 열 시 반. 변석환은 운전해서 돌아왔다.고용인이 그에게 귀띔해 주었다.“공작님의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니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변석환은 멈춰서서 얘기했다.“여동생이 무슨 사고를 친 게 아니야?”변석환의 여동생은 어릴 때부터 오냐오냐 자라서 성격이 불같았다. 별것 아녀도 쉽게 화를 내는 성격이었다.“아무 말도 하지 않으셔서 모르겠습니다. 일단 들어가 보세요.”“그래.”거실에 앉아있던 변요석은 변석환을 보고 불쾌한 표정으로 물었다.“여자 친구가 생겼다며?”“네. 다음 주에 부모님께 얘기하려고 했습니다.”“임시연이라고 했지?”“네. 시연 씨는 부드러운 사람이에요. 알고 지낸 지 한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리고 애가 있다는 것도 알지만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는 법이잖아요. 저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요.”변요석은 말문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화를 참지 못한 그는 바로 변석환의 뺨을 때렸다.“그런 문란한 여자를 애인으로 둬?! 네가 정말 눈이 멀었구나!”“아버지, 시연 씨는 문란한 여자가 아닙니다. 사건을 제대로 몰라서 그럴 수도 있어요. 시연 씨는 피해자라고요!”변석환이 애써 변명했다. 항상 부드럽기만 하던 아버지가 오늘따라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를 몰랐다.“너 이 자식. 당장 헤어져! 두 번 얘기하게 하지 마.”“왜요? 계속 결혼하라고 재촉하셨으면서, 지금은 왜 막으시는 거예요!”“임시연은 왕실에 들어올 수 없어. 신분도 깨끗하지 못하고 관계도 복잡해. 네가 보는 것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야. 왕실에서 일어나는 일만으로도 충분하다. 더는 더러운 꼴을 보고 싶지 않구나.”“아버지, 시연 씨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니까요. 제가 증명할 수 있어요. 시연 씨는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에요.”변요석은 자기 아들을 보면서 생각이 복잡했다.“이만 나가봐.”변석환은 미간을 찌푸렸다. 무언가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
심지안은 눈을 깜빡였다. “내연남? 내가 생각하는 그런 거예요?”“네, 남자랑요.”고청민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녀는 흠칫 당황했다. “말도 안 돼요. 이성애자 같았는데, 어떻게...”장현진 집이 부유하다는 건 전에 기사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가 뜨는 과정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가 자신을 팔면서, 그것도 남자랑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심지안의 당혹스러운 얼굴을 보는 고청민의 눈에는 의미심장한 감정이 서려있었다. “그런 말이 있잖아요.. 얌전한 고양이가 먼저 부뚜막에 올라간다고요.”“그렇긴 해요. 임시연도 같은 부류잖아요.”그녀는 장현진한테 큰 미련은 없었다. 그저 놀랍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재밌는 가십거리니까.계약 관계일 뿐이다. 맘에 안 들면 바꾸면 된다.고청민은 심지안을 눈으로 배웅해주고, 씻으러 화장실로 갔다. 그는 커다란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의 고청민은 수려하고 점잖아 보였다. 웃는 눈에는 따뜻함이 서려 있어 친절한 사람 같아 보였다.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의 미소는 껍데기뿐이었다. 깊이 감춰진 서늘한 시선을 가려주는, 껍데기 말이다. ...다음 날 아침, 심지안은 평소처럼 출근했다.아침 회의가 끝나고 장현진이 찾아왔다.심지안은 의아해하면서 비서더러 커피 두 잔을 타오라고 시켰다."어제 지안씨 부서에서 한 라이브를 봤어요. 왜 제가 못 나오게 하신 거죠? 제가 뭘 잘못했나요?" 장현진은 겸허한 태도로 질문했다.심지안은 어제 고청민이 한 말을 떠올리고는 어색해져서 장현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라이브는 전문가한테 맡기는 거로 결론을 냈어요. 갑자기 사람을 바꾸면 시청자들이 받아들이기도 힘들 거로 생각해서 우리 회사의 쇼호스트가 하기로 했습니다.”“그렇군요... 어쩔 수 없죠. 저도 전에 쇼호스트를 해본 경험이 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저도 라이브를 하고 싶네요. 페이는 받지 않을게요.” 장현진은 오랜만에 좋아하게 된 여자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일 얘기로 천천히 친해질 수밖
기사가 터졌을 때 장현진은 녹화 중이었다. 매니저는 급하게 녹화를 중지해달라고 요청하고는 그를 뒤로 끌어갔다.“요새 누구한테 밉보인 적 있어?”“아니. 나 평판 괜찮은 거 알잖아. 누가 날 건드린다고 그래. 혹시 뭐 잘못 본 거 아니야?”“뭐라는 거야. 지금 인터넷에서 난리 났어.”장현진은 흠칫 놀랐다.“뭔데.”매니저는 흐릿한 사진 몇장을 찾아 확대했다. 장현진은 휴대폰을 건네받고 찬찬히 보고는 욕을 퍼부었다.“시X, 이거 나 아니잖아!”“난 당연히 알지, 너 아닌 거. 근데 너랑 체형이나 특징이 너랑 너무 닮았어. 그러니까 누가 일부러 널 해코지하는 거라고 확신하는 거야. 너 도대체 누구한테 미움을 산 거야? 얼른 가서 사과하고 빨리 이 일을 처리해야 해.”장현진은 머리가 복잡했다.“나 진짜 누구 안 건드렸어. 누구한테 사과하라는 거야?”"잘 생각해봐. 난 먼저 누가 한 일인지 조사하러 갈게. 여러 언론사에서 동시에 터뜨린 걸 보면 만만치 않은 상대일 거야. 그러니까 맞서서는 안 되고 조용히 해결해야 해."장현진은 짜증이 났다. 그는 인터넷의 여론이 심지안의 회사에 부담이 될까 봐 걱정되었다. 한참 고민한 그는 결국 심지안한테 사과 메시지를 보냈다....심지안은 너무 바빴다. 종일 휴대폰을 볼 시간도 없었다.저녁에는 모든 부서가 야근했다. 고청민도 외근 중이었다. 심지안은 저녁 먹을 겨를도 없었다. 배에서는 여러 번 꼬르륵 소리가 났다.직원들은 배달을 시키느라고 웅성거렸다. 방매향은 아무 말 없이 일을 그만 놓고 밖으로 나갔다.십 분도 지나지 않아 방매향은 따뜻한 도시락을 들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 도시락을 심지안의 책상에 올려놓더니 얘기했다.“이거 먹어요, 편의점에 이것 밖에 안 남았더라고요.”심지안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녀는 방매향의 태도가 조금 바뀐 것을 눈치챘다. 저번 레스토랑에서 그녀를 감싸는 말을 했던 건 우연이라고 해도, 이번은 절대 우연이 아닐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금방 일을 받았고 처리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심지안은 머쓱해 하는 정욱을 흘깃 보고 시간을 확인했다.“너무 늦었어요. 안 갈래요.”변요석이 또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그녀는 그가 반성하는 연기를 봐줄 시간이 없다.“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어르신과 도련님뿐이세요.”정욱은 차분한 태도로 말했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장담했다.“성 대표님께서 저번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하셨어요.” 심지안은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거절할게요. 다음부터 미리 말씀해주세요. 저도 바빠요. 전 성씨 가문에서 고용한 요리사가 아니라고요.”정욱은 머뭇거렸다. 이렇게 포기하면 성연신이 그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심지안은 그와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하품하고는 그를 지나쳐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지안 아가씨 잠시만요.”“제가 말했잖아요. 안 간다고.”“그것 때문이 아니라, 제가 여쭤볼 게 있어서요. 유진 씨와 계속 연락하시나요? 혹시 연락처 좀 주실 수 있나요?”심지안은 그대로 멈췄다. 그녀는 신대륙을 발견한 듯 정욱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유진이 좋아하세요?”정욱은 깜짝 놀라 한참 동안 반응하지 못했다. 그녀가 이렇게 직설적으로 질문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의 구릿빛 얼굴이 삽시간에 새빨개졌다.“모르겠어요. 그냥 유진 씨랑 연락하고 싶어요.”“그래요. 연락처 드릴게요.”심지안은 재빠르게 진유진의 번호를 정욱에게 알려줬다.얘가 몇 년째 솔로로 지내고 있는데, 연애할 때도 되지 않았나.정욱은 그 개 같은 성연신의 비서지만 인품이 발랐다. 유진이가 원한다면 그녀는 축하해 줄 것이다.“고마워요, 지안 아가씨.”정욱은 전화번호를 저장하는 한편, 어떻게 하면 심지안을 데려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 심지안의 입에서 마지막 숫자가 나오기 직전, 그는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지안 아가씨, 저랑 저택으로 갑시다. 성 대표님께서 이번 한 번만 오시면 식사를 두 번 차린 것으로 퉁쳐주겠다고 하셨어요.”심지안은 멈칫했다.“잠시만요, 녹음
유재한은 급하게 고개를 저었다.“안돼. 엄마 허락 없이는 안방 맘대로 못 들어간단 말이야.”성우주는 팔짱을 꼈다.“그럼 기말고사 때 시험지 안 보여 준다?”“그래도 안돼... 우리 엄마 엄청 무섭다고.”“알았어.”성우주는 눈썹을 치켜뜨고 차갑게 말했다.“내일 학교에서 정연이한테 네가 걔 좋아한다고 말할 거야. 네가 정연이 머리끈도 숨긴 것도 말할 거야.”이건 효과가 있었다. 유재한의 포동포동한 얼굴은 순식간에 빨갛게 변했다. 유재한은 잘 익은 사과 같은 얼굴로 더듬더듬 빌었다.“그러지 마... 음료 가져올게, 응?”목적을 달성하자 성우주의 차가운 눈빛이 누그러들었다. 그는 유재한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난 그냥 무슨 음료인지 궁금해서 그러는 거야. 맘대로 가져가지 않을게. 우린 계속 친구야. 내 숙제도 너한테 계속 보여주고 정연이 꼬시는 것도 내가 도와줄게.”유재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가슴을 두드렸다.“그럼 됐어. 우리 엄마가 집에 있는 물건이 줄어든 걸 아시면 날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근데 우리 지금 어떻게 가?”성우주는 주위를 살피며 그를 끌고 고용인들의 시선을 피했다.“쉿, 조용히 해. 좀 이따 택시 잡자.”...유재한의 집은 3킬로 정도 거리로 멀지 않아 십 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유재한은 조심스럽게 안방의 비밀번호를 입력하고는 도둑질을 하는 것처럼 까치발을 들고 살금살금 걸어가 ‘음료’ 한 병을 성우주한테 건넸다. 성우주는 그 음료를 자세히 보았다. 확실히 슈퍼에서 이 브랜드의 음료를 본 적이 없었다.그는 영어를 잘했지만, 음료에 적힌 그 글자들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저 몇 개 단어만으로 뜻을 유추할 뿐이었다.“남녀 간의 감정을 싹트게 하는...”성우주는 단어들을 입에서 작게 굴려보았다. 그는 이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아 조금은 고민되었다. 하지만 아빠가 노총각인 것을 생각하자 또 도울 수밖에 없었다.심지어 유재한 부모님의 성공사례까지 들었으니 한번 시도해 보고 싶었다.합법적으로 파는 물건인데, 무슨
성연신은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아들의 기대하는 눈을 보며 차갑게 거절했다.“안 마셔.”성우주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오렌지 주스를 성연신 앞에 가져다 놓았다.“금방 간 거예요. 맛있을 거예요. 비타민 좀 보충하라고 그러는 거예요.”성연신은 습관적으로 소파에 기대앉았다.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깍지를 낀 채 가슴 앞에 아무렇게나 올리고 얘기했다.“갑자기 효도하는 거야?”성우주는 입을 작게 연 채 놀라 얼어붙었다.아빠한테 들켰나?심지안은 이 상황을 보면서 성연신이 아이한테 너무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물을 떠다 주는데 이게 무슨 태도란 말인가.“우주야, 속상해하지 마. 이모가 대신 마셔줄게.”그녀는 고개를 젖혀 성우주 손에 든 오렌지 주스를 한입에 꿀꺽 삼켰다. 첫맛은 새콤달콤했지만, 자세히 맛보면 이상한 맛이 섞여 있었다.성우주는 당황했다.“지안이모...”성연신은 재빨리 일어나 제지했다. 그는 절반 남은 오렌지 주스를 낚아채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뱉었다.“이걸 진짜 마셔요?”“제가 왜 못 마셔요? 우주가 저한테도 한 잔 줬잖아요.”심지안은 당당했다. 그녀의 말랑한 얼굴에 불만이 드러났다.아이들에게는 함께하는 시간과 격려도 중요하지만, 부모가 인내심 있게 맞춰주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성연신은 냉혈한이 아니랄까 봐. 자기 아들한테도 다정하지 않았다.성연신은 참지 못하고 그녀의 볼을 꼬집었다. 화가 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심지안 씨, 당신 진짜 바보구나.”탁.심지안은 그의 손을 쳐내고 동그란 눈을 크게 떴다.“그래요. 당신은 참 똑똑하네요. 게다가 정말 악독해요. 우주의 가장 큰 불행은 당신 아들로 태어났다는 거예요.”“우주가 정말 그렇게 한가해 보여요?”“???”“네 입으로 말해.”성연신은 성우주한테 말했다.성우주는 고개를 숙인 채 옷깃을 구겼다. 성우주는 매우 불안해 보였다.“뭘 말하라고요... 아빠.”“위층에 뭐를 숨겼어?”“아무것도 없어요.”“그래?”사태가 이렇게까지 되니 성우주도 말하지
그의 눈에는 잠깐 놀란 기색이 스쳤다. 정말 한순간이었지만 심지안은 그것을 보아냈다.심지안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주먹을 말아쥐었다.“임시연은 비밀 조직 사람인가요?”성수광은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는 갑자기 피곤해진 말투로 말했다.“지안아, 이런 건 상관하지 마. 비밀 조직의 세력은 복잡해. 너희는 아직 젊어. 임시연은 이젠 연신이한테 집착하지 않잖아. 그냥 신경 쓰지 않으면 돼. 너희들의 앞날은 길어. 이미 끝난 일을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마”젊은 시절 군인이었던 그는 항상 가장 최전선에 용감하게 나섰다. 그는 하늘도 땅도 무서워하지 않았다.후에 집에 큰 변고가 생겨서야 그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깨달았다.감당할 수 없는 일들은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 숙이고 있는 건 담이 작아서가 아니라 잃는 게 두려워서다.“그럼 그들이 우리를 맘대로 괴롭히는 걸 두고 볼 수밖에 없어요?”심지안은 성수광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목소리는 가벼웠지만, 눈시울은 붉어졌다.“그들이 우리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갔으니 갚아 줘야죠.”세상을 알기도 전에 떠난 그녀의 아이는 원래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을 것이다.성수광이 입을 열었다.“두렵지 않아?”“두려워요, 당연히 두렵죠.”심지안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녀는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주어 말했다.“두려워도 그 진흙탕 속에 살던 시간이 누구 때문인지는 잊지 말아야죠.”만약 진정한 흑막이 비밀 조직이라면, 임시연의 출현은 계획된 것이 틀림없다. 우연으로 보였던 설명할 수 있었다.그녀는 두려워할 수 없었다. 까짓거 목숨으로 목숨을 바꾸는 일이다. 그녀의 아이를 희생양이 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성수광은 심지안을 오랫동안 바라보다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네 힘은 너무 적어. 달걀로 바위 깨는 격이야. 비밀 조직에는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어.”그녀는 미소를 지었다.“그럼 힘 닿는 데까지만 해보죠.”그녀는 모든 음모를 보고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무엇이라
심지안은 이상한 시선으로 성연신을 쳐다보면서 물었다.“또 덮치려고요?”성연신은 입가를 끌어올리고 대답하지 않았다.누가 누구를 덮칠지는 지켜봐야 하는 법이다.심지안은 계속 가겠다고 하면서 휘청이며 걸어 내려갔다.그러다가 결국 발이 걸려서 앞으로 넘어지려고 했다.다행히 성연신이 손을 뻗어 긴 팔로 그녀를 품에 안아 넘어지지 않았다.심지안은 저도 모르게 성연신의 목에 팔을 감았다. 넘어질 뻔했지만 이내 시원한 그의 품에 안겨 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다리가 왜 말을 안 들어서...”성연신은 시선을 내려 그녀를 쳐다보며 말캉한 촉감에 마음이 떨렸다. 성연신은 가까이 다가가 심지안의 귓가에 속삭였다.“동의한 걸로 이해해도 되죠?”뜨거운 숨이 그녀의 목을 간지럽히자 심지안은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몸에 힘이 빠져버려 그대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눈을 붉힌 심지안은 화가 나서 손을 떨면서 성연신을 밀어내려고 했다.“그런 적 없어요.”성연신은 그녀의 작은 손을 꼭 쥐었다. 차가운 손과 뜨거운 손이 닿은 순간, 심지안은 그를 밀어내지 못했다. 심지어는 그와 더 가까이하고 싶었다.“남아서 자고 가요.”성연신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상한 생각을 꾹 누르고 얘기했다.성우주가 가져온 물건은 몸에 위험한 물건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의사를 불러 심지안의 상태를 지켜보게 해야 할 것 같았다.천천히 머리를 드는 욕망에 심지안은 그저 몸이 달아오르고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성연신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힘이 빠진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성연신은 허리 숙여 심지안을 안은 후, 그녀를 침실로 데려갔다.그리고 화장실로 가서 수건을 적신 후 뜨겁게 달아오른 심지안의 몸을 열심히 구석구석 닦아주었다.성우주는 문 앞에 서서 불안함에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아빠, 지안 이모는 어떻게 됐어요?”“넌 가서 자.”성연신은 계속 심지안의 몸을 닦아주며 고개도 돌리지 않고 얘기했다.“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