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요!”심지안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다. “진현수라면 괜찮고요?”“왜 그렇게 생각해요?”“아닌가요?”“마음대로 생각해요.”성연신의 차가운 말투에 화가 치밀어오른 심지안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쳐다보았다. 그 모습에 성연신도 벌컥 화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박차고 나갔다. 문밖에서 발걸음 소리는 점점 멀어져갔고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는 심지안은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그날 이후로 성연신은 그녀가 퇴원할 때까지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달이 지나갔다.간병인은 며칠 동안 금관성에서 그녀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돌봐주고는 안심하고 떠났다. 떠나기 전에 간병인은 그녀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지안 씨, 주제넘은 말인 걸 알지만 그래도 해야겠어요. 성 대표님, 겉으로는 차가워 보여도 사실 지안 씨 걱정 많이 하고 있어요. 매일 전화하셔서 지안 씨의 건강 상태에 대해 물으셨어요.”“그래요?”“네, 제가 지안 씨랑 금관성으로 함께 돌아온 것도 성 대표님 지시였어요. 성 대표님이 지안 씨 잘 돌봐주라고 하셨어요. 가기 전에 이 말은 꼭 하고 싶었어요. 두 사람 서로 좋아하고 있는데 이렇게 오해만 깊어지면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어요?”간병인의 말에 심지안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알았어요, 나중에 잘 얘기해 볼게요.”한편, 간병인이 떠난 뒤 이내 불청객 한 명이 찾아왔다. 오랫동안 보이지 않던 홍교은이 이곳은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건지, 그녀가 기세등등하게 걸어와 심지안을 쳐다보며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말했죠. 임시연이 돌아오면 당신은 연신이한테 아무것도 아니라고. 참 쌤통이네요!”그녀의 말에 심지안은 피식 웃었다.“그래서 성연신 씨가 날 버리고 당신 곁으로 갔나요?”“이봐요!”“당장 이 집에서 나가요. 안 그러면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빨리 이사를 해야 하든지 해야지. 지금 심씨 가문은 너무 안전하지가 않아.’“왜 그렇게 흥분해요? 오랜만에 만났는데 나랑 얘기 좀 해
그의 말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흠칫했다. “국내에 유명한 피부과 전문의한테 예약받아 놨으니까 며칠 후에 나랑 같이 가요. 당신 얼굴에 흉터 남게 하지 않을게요.”그녀의 뜻을 알아차린 진현수는 주먹을 꽉 쥐었다.‘결국은 나한테 빚지기 싫다는 거구나.’...한편, 주 대표 사무실에 중요한 손님이 있다면서 비서는 심지안을 휴게실로 안내했다. “네.”15분 정도 기다렸을 때, 정욱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고 심지안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정 비서님이 여긴 어쩐 일이에요?”‘중요한 손님이라는 게 설마 성연신인 거야?’“대표님이랑 같이 왔어요. 대표님은 지금 주 대표님과 얘기 중이시고요.”주 대표가 일부러 같은 날로 약속을 잡았다고 생각한 심지안은 어이가 없었다. 한편, 정욱 또한 엄청 난감한 일에 맞닥뜨리게 되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지안 씨, 진유진 씨 좀 말려주세요.”“네?”“요 며칠 저한테 쉴 새 없이 문자하고 있어요. 제가 정상적으로 업무를 볼 수 없을 정도예요.”“정 비서님한테 무슨 문자를 해요?”“대표님이 나쁜 남자라고 양다리도 걸치고 임시연 씨를 임신까지 하게 만들었다고...”그의 말에 심지안은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며칠 전 진유진과 통화를 하다가 그녀는 진유진한테 임시연이 임신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다만 그녀는 진유진이 이렇게까지 의리를 지킬 줄은 몰랐다.“두 사람 혹시 무슨 오해가 있는 건 아닐까요? 대표님 곁에 매일 붙어있는 저도 이런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그리고 지안 씨가 먼저 대표님을 속인 거잖아요...”“그 얘기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요. 앞으로 나와 성연신 씨는 아무 관계 없어요.”마침 휴게실에 도착한 성연신과 주 대표가 그녀의 말을 듣게 되었다. 주 대표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말다툼을 한 두 사람에게 화해할 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한편, 차가운 성연신의 얼굴은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그는 문을 열고 성큼성큼 들어와
그 말에 흠칫하던 그녀는 이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시치미를 뗐다.“할아버지, 무슨 말씀이세요?”성수광은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직도 시치미를 떼는 것이냐? 늙은 이 할아버지를 속일 작정이냐?”‘어쩐지 이놈이 갑자기 어디서 이리 예쁘고 착한 손주며느리를 찾아왔다 했네. 역시 내가 너무 순진했어. 이놈의 잔꾀에 넘어가다니.’그의 호통에 심지안은 우물쭈물거렸다.‘지금껏 잘 숨기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들통난 거지?’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성수광은 화를 벌컥 내며 옆에 있는 성연신한테 호통했다.“와이프를 잃게 생겼는데 넌 이리 태연하게 앉아있는 것이냐?”성연신은 느긋하게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집고 한 손은 팔걸이에 올려둔 채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처음에 속인 건 사실이지만 그 후에는 진짜였어요.”그 말에 성수광은 눈을 부릅뜨고 심지안을 쳐다보았다.“저놈이 한 말이 사실이냐?”계약 결혼이긴 하지만 또 완전히 계약 관계는 아니었다.“네, 할아버지. 진짜예요.”성수광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화를 가라앉혔다.“너희들도 참, 똑바로 말할 것이지. 난 저놈이 또 혼자가 된 줄 알았네...”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지안은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 “하지만 지금은 헤어진 상태예요.”그녀의 말에 성수광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꾹 눌러 삼켰다.‘화내지 말자. 일단 이 일부터 해결하고 봐야지. 우리 착한 손주며느리를 이대로 내보낼 수는 없는 일이야.’심지안은 성수광의 반응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녀는 성수광이 혹여라도 지난번처럼 정신을 잃고 쓰러질까 봐 걱정되었다. “나한테 또 숨기는 일이 더 있느냐? 어디 한번 다 털어놓거라.”그녀는 담담하게 성연신을 쳐다보고는 성수광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전 없어요. 연신 씨는 잘 모르겠고요.”그 순간 성수광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이내 허벅지를 치며 따져 물었다.“헤어진 이유가 저놈 때문이냐?”성연신은 은근슬쩍 책임을 그녀에게 떠넘겼다.
아래층 거실, 젊은이들의 사랑싸움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성수광은 조금 서툰 모습이었다. “너희들 사이에 있었던 일은 이미 다 알고 있다. 넌 저놈을 속였고 저놈은 잘못을 저질렀고...”“맞아요.”“앞으로 임시연은 더 이상 네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야. 그러니 넌 연신이와 잘 지내거라.”“할아버지...”성수광의 말에 그녀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한평생 군인이었던 성수광은 얼굴이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에 그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검붉은색을 띠고 있었고 엄청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이 일은 이쯤에서 마무리하자. 난 친구네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고 해서 말이야. 친구네 집에 가 봐야겠다.”‘아무리 저놈이 실수였다고 해도 그런 잘못을 저질렀는데. 저놈의 편을 들려 하니 창피해 죽겠네, 정말.’자리를 뜨려는 성수광을 향해 심지안이 입을 열었다.“할아버지, 이렇게 제 편이 되어 주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저와 연신 씨는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안 된다! 그런 말 하지 말거라. 할아버지가 심장이 안 좋아서 말이야. 네가 자꾸 이러면 쓰러질지도 몰라.”그녀는 성연신처럼 성수광의 성격을 잘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성수광의 말에 깜짝 놀라 바로 하려던 말을 삼켜버렸다. “지안아, 난 네가 계속 우리 성씨 가문의 며느리가 되어줬으면 좋겠구나. 연신이 저놈이 네가 온 이후부터 많이 변했어. 웃기도 하고 성질도 부리고 예전에 무뚝뚝하던 돌멩이가 아니야. 세상 사람들은 명문 가문에서 태어나면 좋은 줄만 알고 있지. 그러나 이런 가문에서 태어나 얼마나 많은 짐을 짊어지고 있는지는 모를 거다. 겉으로 보기에는 연신이가 보광 그룹을 맡고 있지만 사실 성원 그룹도 연신이가 이끄는 거나 다름없어. 그리고 난 임시연이 마음에 안 들어. 이 일도 아마 임시연이 꾸민 짓일 거다. 이렇게 꼼수가 많은 여자를 난 절대 우리 집안에 들일 생각이 없다. 내가 살아있는 한 절대 우리 성씨 가문에 발을 들여놓지 못할
문을 열고 들어가니 성연신은 그녀를 등지고 앉아있었고 그의 시선은 여전히 컴퓨터 모니터를 향해 있었다. 그는 어두운 얼굴로 최근 몇 달 동안 성원 그룹의 적자 재무 표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마음 같아서는 성여광을 잡아다가 한바탕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성여광에게 전화를 걸었고 분노에 가득 찬 말투로 입을 열었다.“지난 분기 네가 투자한 프로젝트들 전부 다 올스톱 시키고 지금 당장 이사회에서 스스로 물러나. 넌 행정팀 팀장 노릇이나 착실히 해. 더 이상 회사의 프로젝트에 관여하지 말고.”옆에서 듣고 있던 심지안은 깜짝 놀랐다.‘엄청난 부자인 연신 씨가 저 정도로 화를 내다니. 성여광이 도대체 얼마를 손해 본 거야?’“안 돼요. 형, 나도 성씨 가문의 사람이에요. 이사회에 들어가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요. 할아버지께서 물러나라고 하시면 그땐 물러날게요.”그의 말에 성연신은 차갑게 웃었다.“그럼 잠자코 소식 기다리고 있어.”성여광이 말을 하기도 전에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던 그는 전화를 바로 끊어버렸다. 목이 말랐던 그는 몸을 돌리고 물컵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행동을 눈치챈 심지안은 이내 그에게 차를 건넸다. 그가 고개를 들자 두 사람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하늘색 긴 치마를 입고 옅은 화장을 하고 있는 그녀의 정교한 이목구비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여전히 그의 현명하고 귀여운 아내였다. 그의 그윽한 눈빛을 마주한 그녀가 이내 시선을 돌렸다.“백호 아저씨가 허리를 다쳐서 내가 대신 왔어요.”“할아버지께서 뭐라고 하시던가요?”“별... 별말씀 없으셨어요.”“그래요?”성연신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되물었다.“나한테 참고 살지 말라고 하셨어요.”그녀는 성수광의 한 앞부분 말을 못 들은 척하기로 했다. 성연신은 미간을 찌푸렸다.“할아버지의 말씀은 소용없어요.”“당신의 말도 소용없어요.”“어디 한번 해봐요.”“도대체 무슨 생각이에요?”“할아버지는 당신
성수광은 그녀에게 방 하나를 따로 내어주며 이곳에서 자고 가라고 하였다. 방안에 혼자 있던 그녀는 성수광의 따뜻한 말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노트북을 챙겨오지 않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때마침 진현수한테서 답장이 왔다. “그날 친구와 근처에서 골프를 쳤었어요. 집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지안 씨를 마주치게 된 거예요.”지도를 확인해 보니 정말 근처에 골프장이 하나 있었다. 그녀는 진현수를 오해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내 진현수에게서 또 한 통의 문자가 왔고 확인해 보니 실시간 검색어 링크였다. “지안 씨, 언젠가는 보게 되겠지만 당신한테 미리 말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네티즌과 나 때문에 지안 씨가 화내지 말았으면 해요.”기사를 확인해 보니 오전에 진현수가 그녀를 주헌 그룹으로 데려다준 모습이 사진에 담겨있었다. 아마 세움의 새 광고가 금방 출시한 탓에 화제가 되어 파파라치들이 그녀의 뒤를 따른 모양이다. 사진 속에는 진현수의 아래턱 상처도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상처는 햇빛 아래에서 더 뚜렷하게 보여 조금 흉악했고 기사 아래의 댓글에는 진현수에 대한 평판이 좋지 않았다. 「하하하, 미녀와 야수야?」「솔직히 저 상처가 아니라면 잘생긴 외모지. 당신들이 무슨 자격으로 비웃는 거야? 거울이나 한번 들여다봐 봐.」「이해가 안 되네, 요즘 예쁜 여자들 취향이 다 저런가?」댓글을 읽던 그녀는 화가 치밀어 올라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는 악성 댓글에 반박할 생각으로 글을 적었지만 이내 모두 삭제해 버렸다. 모델 계약 기간 3년 동안은 이미지에 주의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는 고청민의 말이 떠올랐다. 결국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 때문에 진현수가 얼굴을 다치게 되었다는 사실을 적으며 마지막에 한마디 더 보탰다. 「남자의 상처는 난공불락의 갑옷이에요. 요즘 세상에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를 한정할 필요가 있을까요?」기사의 주인공이 직접 나서서 해명하자 더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를 쳐다보던 그녀의 눈빛은 놀라움에서 분노로 변하였고 얼마 지내지 않아 절망으로 변해버렸다.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를 향해 소리쳤다. “나쁜 놈!”그가 왜 이런 방식으로 자신을 모욕하는지 그녀는 알 수가 없었다. 성연신과 함께 한 시간 동안 그녀는 단 한 번도 그한테 잘못한 일이 없었다. 성연신은 미친 듯이 그녀에게 키스를 퍼부었고 그녀를 집어삼켜 버릴 정도로 그의 손길은 거칠기만 했다. 그가 입을 열려는 순간 그녀가 눈을 뜨고는 차갑고 미움이 가득 찬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에 그는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고 가슴이 찢어지듯이 아팠다. 그는 그녀의 목을 꽉 틀어쥐며 그녀를 노려보았다.“내가 싫어요? 내가 아니고 진현수라면 싫지 않았겠지?”심지안은 그의 손길을 뿌리치며 눈시울을 붉혔다.“그래요! 당신이 미워요! 더 묻고 싶은 거 있어요?”정신이 번쩍 든 성연신은 이내 그녀를 놓아주었다.“꺼져.”심지안은 힘겹게 책상 위에서 내려와 바닥에 널려있는 옷들을 집어 다시 입었다. 서재를 나오기 전 그녀가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진현수 씨 펀드에 관한 일은 약속 지켜요.”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마침 위층으로 올라온 성수광을 마주치게 되었다. 성수광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순식간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서재로 들어가 성연신을 향해 호통쳤고 지팡이를 들어 성연신을 때렸다. “네놈이 제정신이야? 지안이랑 잘 지내라고 했지! 지안이 괴롭히지 말라고 했잖아!”성연신은 손을 뻗어 그를 막았고 차가운 얼굴로 아무 말로 하지 않은 채 아래층으로 내려와 차를 몰고 본가를 떠났다. ...제경, 가평 별장.남진영은 심연아를 데리고 정원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심연아는 으리으리한 별장을 둘러보며 눈빛을 반짝거렸다. “아저씨, 이곳이 세움을 만든 성씨 가문이에요?”“그래, 이따가 어르신이 나오면 좋은 모습 보여줘야 한다.”남진영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심연아를 쳐다보았다. 사실 오늘 이곳으로 심연아를 데려온 건 고청민의
“그럴게요!” 심연아는 눈빛을 반짝거렸다. 처음에는 왜 이곳에 자신을 데려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그녀와 고청민은 동갑내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같은 또래였고 의도적으로 두 사람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려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일은 예전에 심전웅도 했던 일이었으니까. 비즈니스를 하는 자리에 자녀들을 데리고 나가 만남을 추진하고 만약 두 사람이 서로 마음에 든다면 집안끼리 사돈을 맺는 것이었다. 심연아는 고청민의 수려한 외모가 떠올랐다. 비록 그녀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생김새는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그의 뒤에는 세움이 있으니 그녀한테 고청민은 만족스러운 상대였다. “어르신, 오셨습니까?”남진영은 이쪽으로 걸어오는 한 노인을 발견하고는 이내 달려가 그를 부축했다. 7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성동철은 운동복 차림을 하고 있었고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건강한 모습이 마치 동네 자상한 할아버지 같아 보였다. 고청민은 스스로 한쪽으로 물러서서 두 사람에게 얘기를 나눌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넌 왜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못해지는 것이냐? 멀쩡하던 회사를 이 꼴로 만들어 버리다니.”성동철은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남진영을 꾸짖었다.“네. 어르신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너무 경솔했습니다. 어르신, 이 아이는 제 수양딸입니다.”남진영은 심연아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할아버지, 연아라고 편히 불러주세요. 할아버지, 되게 젊어 보이세요. 전 할아버지께서 60대이신 줄 알았어요.”한편, 옆에 있던 심연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성동철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성동철은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말 참 예쁘게 하네.”고청민과 남진영은 서로 마주 보았고 고청민은 살짝 고개를 저었다. 보아하니 성동철은 심연아를 알아보지 못하였고 심연아에 대해 큰 호감이 없는 듯했다. “난 널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지켜봤어. 너의 회사 일은 내가 도와줄게. 너도 이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으니 무슨 일이나 경거망동하지 말거라.”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