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혜선은 병원 입구에서 우리 둘과 헤어졌다.“지아야, 난 그럼 너랑 같이 안 돌아갈게. 나도 집에 가봐야겠어. 이미 48시간 정도 지났네.”말을 마친 그녀는 웃었는데 그 웃음이 조금 참담했다. 그렇다, 그녀도 돌아가야 할 집이 있는데 그곳을 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누구도 정의할 수 없다. 나는 배현우를 따라 차에 올랐다. 돌아온 후 나는 한 번도 내 차를 운전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나를 보는 배현우의 눈 속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경원으로 갈까요, 아니면 골드 빌리지로 갈까요?”“당연히 골드 빌리지로 가야죠.”나는 좀 궁색해서, 감히 그를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했다.차량은 내 뜻대로 골드 빌리지로 향했다. 그는 의심할 여지 없이 차에서 내려 나를 따라 집에 들어왔고 자연스럽게 외투를 벗은 후 주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얼른 뒤따라가서 말했다. “조금 쉬어요. 우리 간단히 라면 끓여 먹는 게 어떄요?”그는 나를 뒤돌아보며 말했다. “올라가서 씻고 조금 쉬어요. 내가 할게요.”“오늘 좀 잤어요?”나는 그제야 생각나 배현우에게 물었다. 그도 나와 같이 스무 몇 시간 동안 쉴 틈 없었다. “내가 안쓰러워요?”그가 아련하게 날 쳐다봤다. “이따 우리 일찍 자요.”그의 한마디에 나는 또 얼굴이 붉어졌다. “나랑 같이 있을 때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요.”그는 긴 팔을 뻗어 나를 잠시 안은 후 내 이마에 살포시 입을 맞췄다. 그리고 나를 놓아주며 말했다. “얼른 밥해줄게요.”나는 조금 의아했다. 솔직히 말해 그가 요리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예전에 그가 나랑 콩이와 같이 이곳에서 살 때 너무 바빴고, 또 마침 내가 상처를 회복하느라 집에 있어서 내가 요리했다. 그런데 그가 요리해 준다니, 나는 조금 놀랐다. “요리할 줄 알아요?”나는 의아하게 물었다. “왜요? 내가 못 할 것 같아요?”그는 말하면서 손을 씻고 앞치마를 했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식재료를 꺼냈는데 냉장고에는 고기밖에 없었다. 가기 전에 남겨둔 채소는 신선하지
확실히 내가 좋아하는 양파에 볶은 간의 맛이 맞는데 이번이 그와 처음 이 음식을 먹는 날이었다. 그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웃더니 눈을 내리깔고 옅게 말했다. “추측한 거예요. 어릴 때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이런 양파를 좋아했어요. 그때 우리 집에서 자주 밥 먹고 갔었거든요.”나는 영문도 모른 채 그를 쳐다보았는데, 갑자기 그가 진짜 이세림과 찍은 그 사진이 머리에 떠올랐다.“이세림을 말하는 거예요?”나는 그의 환한 얼굴을 보며 물었다. 이번에는 그가 의아해하며 고개 들어 날 쳐다봤다. “이세림을 어떻게 알아요? 뭐가 떠오른 거예요?”나를 탐색하듯 바라보는 그의 시선과 마지막 말에 나는 조금 의문이 들었다. 나는 그와 눈을 마주치며 얼른 되물었다. “왜 그렇게 물어봐요? 떠오르다니, 무슨 뜻이에요?”내가 입을 열자, 그는 얼른 웃었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예요. 이세림을 알아요? 지금 그 이세림이 아니라?”“네. 제가 찾아냈어요.”나는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동철을 시켜 조사했는데 그가 사진 한 장을 찾았어요.”배현우의 미간이 갑자기 움찔하더니 날 바라봤다. “어떤 사진이에요?”나는 조금 후회됐다. 이건 내가 남의 사생활을 파헤치는 격인데 이렇게 솔직하게 말해도 되는지 알 수 없었다. 특히 배씨 집안의 비밀이라 더 실례가 됐다. “저... 당신 사생활을 조사해 기분을 상하게 할 의도는 아니었어요. 다만... 우연히 알아낸 거예요.”나는 긴장해서 횡설수설 해명했다. “나무라는 게 아니니 걱정하지 말아요. 난 당신이 날 더 많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날 믿을 수 있을 테니깐.”그는 또 내게 간 한 조각을 집어주며 말했다. “이야기는 천천히 하고 밥 먹어요.”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서야 마침내 나는 한시름 놓았다. 나는 전화기를 꺼내 그 사진을 찾은 후 그에게 전했다. “이 사진이에요. 이동철이 이 사람이 진짜 이세림이라고 했어요.”그는 손을 뻗어 핸드폰 속 사진을 확인하더니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그는 태연하게 전화를 내려놓고 부드럽게 내게 말했다 “우리 밥 먹어요. 식으면 맛없어요.”“현우 씨, 나에게 숨기는 일이 있는 거죠? 제가 너무 많은 것을 알지 않는 게 좋을수도 있겠네요.”나는 그를 슬쩍 떠봤다. 그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당신이 너무 많이 아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라 당신이 한 번에 받아들이지 못할까봐 걱정돼요. 우리 집 사정이 아주 복잡해서 일부러 숨기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말하려고 했어요. 언젠간 알게 될 텐데 전후 사정을 알아야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합리적인 그의 설명에 내 마음도 아주 기뻤다. “내가 당신을 조사한 일은 탓하지 않을 거예요?”나는 배현우를 보며 물었다. “사실, 진짜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탓하지 않아요. 오히려 잘된 일이에요. 당신이 적극적으로 나에 대해 알고 싶어 하니 좋은 일이죠. 적극적으로 날 주목한다는 것은 당신이 날 사랑한다는 걸 증명하죠.”그는 직설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하게 말했는데 나는 순식간에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밥은 한 입 먹는 척했다. “날 놀릴 줄 알았어요.”그는 약삭빠르게 웃으며 가지런한 이빨을 드러냈다. “변명할 이유가 더 있나요? 호감이 없다면 왜 날 조사했어요?”“난 이세림은 조사하다가 덤으로 같이 조사한 거거든요!”나는 확실히 변명하고 있었다. “알았어요. 밥 먹어요.”그는 여전히 음흉하게 웃었다. 우리는 그제야 식사를 시작했는데, 잠시 후에 나는 그에게 물었다.“그러니까 그가 진짜 이세림이 아닌 사실을 당신은 이미 알고 있었죠.”“맞아요.”“그런데 왜 그녀가 계속 이세림인 척하도록 놔뒀어요?”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임윤아의 죽음 때문에 그랬어요.”배현우는 전혀 비통한 감정이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들이 임윤아가 신분을 숨긴 이세림이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 그녀가 갑자기 비명횡사하자 외부랑 배씨 가문, 그리고 따르던 사람들에게 해명하기 어려워 지금의 이세림으로 진짜 이세림을 대신했어요.”배현우가
초인종 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서둘러 옷을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배현우도 잠에서 깨 날 바라보자 더 자라고 손짓했다. “조금 더 자요.”빠른 걸음으로 내려가며 아침 댓바람부터 누가 미친 듯이 초인종을 누르는지 추측했고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지 불안했다. 인터폰으로 찾아온 불청객이 김향옥인 것을 본 나는 무슨 일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나는 잠시 고민 후 문을 열었다. 대문이 열리자, 김향옥은 순식간에 문 앞까지 쳐들어왔고 분노가 드러난 내 얼굴을 보더니 나를 단번에 밀어내고 집안으로 쳐들어갔다. 노기등등하게 쳐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나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바라만 봤다. 집에 들어온 후 그녀는 큰 소리로 말했다. “지아야, 너 진짜 앞뒤가 다른 사람이구나. 콩이를 만나게 해준다고 했으면서 왜 또 못 보게 해. 무슨 뜻이야?”“아무리 그래도 콩이는 내 손녀고 몸속에 신씨 가문의 피가 흐르고 있어. 네가 뭔데 못 만나게 해? 순한 양처럼 굴더니 사실은 음흉한 늑대였네. 콩이는 어디 있어? 우리 손녀를 만날꺼야...”그녀는 기관총처럼 단숨에 불만을 퍼부었다. 나는 그녀가 마음껏 표출하는 것을 평온하게 바라봤다. 마음속으로 이게 신씨 가문의 본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녀가 표출할 기회를 충분히 줬다. 어쨌든 신씨 가문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고 또 콩이를 위하느라 발생한 일이니깐.“콩이더러 내려오라고 해. 아니면 내가 올라갈 거야. 너 정말 악독하구나, 지아야. 이것 좀 봐, 너는 호화로운 집에서 매일 자유롭게 살고 있잖아. 전부 신 씨 가문 덕분 아니야? 죽 쒀서 개 준다고 결국은 너만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네. 이건 불공평해. 왜 아직도 콩이를 못 만나게 하는 거야?”김향옥은 이 집에 대한 미련을 죽을 때까지 못 버리는 병에 걸린 것 같았다. 나는 문을 닫고 거실로 돌아와 그녀에게 물 한 잔 따라주며 말했다. “우선 앉아서 물 한 모금 마셔요.”“얼렁뚱땅 넘어갈 생각하지 마. 콩이는?”그는 바로 몸을 돌려 위층으로 올라
그날 콩이는 무섭게 그녀에게 물었다. “또 우리 엄마 괴롭힐 거예요?”나는 그녀가 잊지 않았으리라 믿었다.역시나, 김향옥은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마른침을 삼켰다.“그리고 저를 볼 때마다 이 집이 신씨 가문의 것이라고 말하지 마세요. 신씨 가문이 어떤 상태인지 만날 때마다 당신들에게 말해줄까요?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세요. 애초에 제가 없었더라면 신씨 가문이 지금 집에 살 수 있었을까요? 당신들이 사는 집을 거두지 않은 걸 감지덕지하게 생각하세요.”“콩이 할머니로 지내고 싶으면 잘해요. 제 앞에서 굳이 기강을 잡으려고 한다면 제가 체면을 세워주지 않아도 탓하지 마세요.”나는 그녀를 노려보며 갑자기 무언가 깨달았다. 불행함을 슬퍼하며, 못난 것에 분노하자, 바로 김향옥 같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내 시어머니로 있을 때 그녀에 대한 내 존경과 경애심을 그녀는 인정해야 한다. 지금은 그녀가 자발적으로 사람 밑으로 기어들어 오고 있다. 김향옥은 혼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움찔했지만 순간 할 말을 잃은 듯 날 바라봤다. 한참 지난 뒤에야 목을 빳빳이 들고 말했다. “그러면 왜 콩이를 제주도에 보냈어? 왜 내가 보자마자 콩이를 보낸 거야?”“이건 당신이 보고 말고랑 상관없어요. 저도 제 계획이 있어요. 우리 생활이 더 이상 신씨 가문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도 우리 생활과 일정을 계획할 권리가 있어요. 제주도에 간 것도 우연히 결정한 일이에요.”나는 방금 매서웠던 모습을 접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언제 돌아와?”그녀도 조금 흔들린 듯 기세를 꺾었다. “콩이가 진짜 기분이 좋아졌을 때 돌아올 거예요. 제가 말했잖아요, 연락드린다고.”나는 그녀를 한번 흘깃 봤다. “전화를 켜놓으시면 돼요.”“나... 전화 없어.”그녀는 내 눈을 피하며 뻣뻣한 목을 흔들었다.“전화기는요?”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전화기가 없을 수 있지?“강숙자에게 뺏겼어.”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나는
그녀의 표정이 내 마음을 울렸다. 나는 그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물었다. "어디가 안 좋으세요?”"몸이 안 좋아서 자꾸 아파서 잠을 못 자."그녀는 약간 무력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작은 목소리로 꾹 참으면서 말했다."아파서...”"어디가 아프세요?"나는 얼른 캐물었다."여기."그녀는 자신의 복부를 가리키며 손으로 쓰다듬었다."호연이한테 말 안 했어요?"물어보고 나니 마음이 좀 불안했다. 김향옥은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져있었다."호연이는 너무 바빠."김향옥의 말에는 힘이 없었다."얼마나 됐어요?"나는 계속해서 물었다."괜찮긴 한데, 잠이 안 와서... 그리고 콩이가 보고 싶어. 콩이가 보이지 않아. 앞으로 볼 시간이 별로 없을까 봐 걱정돼."그녀의 입꼬리가 심하게 떨렸다.나는 마음이 갑자기 꽉 막혀서 불편한 감을 느꼈다. 그녀의 누르스름한 얼굴을 진지하게 바라보면서 무슨 말을 더해야 할지 몰랐다.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나는 입을 열었다."너 먼저 앉아서 물 좀 마셔. 나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바로 내려올게.”"아니야. 콩이가 집에 없으니 이만 가볼게.”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신경도 쓰지 않고 위층으로 올라가 침실로 들어갔는데, 배현우가 씻고 있었다. 내가 올라오는 걸 보고 그가 물었다."누구야?”"콩이 할머니."나는 말하면서 욕실로 들어가 그와 함께 씻었다. "네 아침을 챙길 시간이 없어. 잠깐 나갔다 할머니를 데리고 병원에 가야 해. 할머니가 아픈 것 같아”배현우가 나를 쳐다보는데, 좀 미안한 감이 들었다."...어쨌든, 그녀는 콩이 할머니이고 콩이에게 진심이니까.”"알겠어."배현우는 나무라지 않았고 되려 나에게 물었다."의사를 찾아볼까?”"아니, 일단 병원부터 가보고, 필요하면 전화할게."빨리 씻고 옷을 입은 배현우를 보며 미안한 마음에 내가 말을 꺼냈다."오늘 일찍 올 테니까 밥 같이 먹어!”그는 긴 팔을 쭉 뻗어 나를 품에 꼭 껴안고 나에게 키스했다."알겠어. 나도 제
내 머리가 윙 울리는 듯했다. 간암? 게다가 말기라니.이 몇 글자가 순간적으로 내 손을 차갑게 했다.어떻게 이럴 수 있지, 병이 났을까 봐 걱정했는데 이렇게 심각할 줄은 몰랐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벌써 막막해 왔다.나는 의사가 내게 치료 방안을 말하는 것을 들었지만 그는 결국 큰 희망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비록 지금은 내가 김향옥의 친척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녀는 콩이의 할머니이고, 신씨 가문에서 마지막으로 콩이를 아껴주는 사람이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난다는 말에 마음이 답답했다.콩이가 그녀의 품에 안겨 목을 껴안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듯 했다. 오랫동안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그녀가 나를 어떻게 대하든, 함께 살아온 기억들은 여전히 좋았기 때문에 지워지지 않을 것이었다.나는 내가 어떻게 진료실을 나왔는지도 몰랐다. 시어머니가 내가 나오는 걸 보고 나를 부르지 않았다면, 그녀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잊을 뻔했다."지아야, 의사가 뭐라고 했어?"그녀는 어두운 눈으로 나를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쳐다보았고 걱정스러운 표정도 조금 보였다."아니에요. 의사 선생님은 제가 아는 선생님이에요. 사적으로 몇 마디 나눴어요. 할머니는 괜찮아요. 의사가 약을 처방해 주었으니, 평소에 잘 먹고 푹 쉬라고 하셨어요. 자신을 속이지 말고 항상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야 해요.""약을 받고 제가 모셔다드릴게요.""아니, 나 혼자 갈 수 있어!"그녀는 끈질긴 태도를 보였다."약을 처방받았는데 어떻게 먹는지 알려드릴게요."그녀를 데리고 가 약을 받고 나서 홀에 앉아 종류마다 먹는 방법을 약병에 적어 그녀의 손에 건네주면서 말했다. "제시간에 약을 먹고 잠을 잘 주무세요. 불편하면 저한테 전화해도 돼요. 물론 그들이 시간이 없는 정황에 말이죠.”"알겠어." 그녀의 눈에는 초인종을 눌렀을 때의 날카로움이 사라지고 약자 특유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그럼 콩이는...”그녀는 여전히 콩이를 잊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콩이를 데려와서 만
신예 건축의 아래층에서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시어머님이 검사한 서류를 챙긴 후 그것들을 들고 차에서 내려 회사로 걸어 들어갔다.이곳에 오는 건 이번이 두 번째인데 처음은 딸의 학교를 옮기려고 가족관계서를 요구하러 왔을 때였다. 그때는 건물 전체가 난리났었다.이번에는 어떻게 될지 아직 모르겠다. '나도 정말 대단해, 이런 식구들을 만나서... 싸우지도 않고도 전사가 될 수 있겠어.''내가 오기만 하면 여기는 분명 난리가 날 거야.'아니면 신연아를 만나 도망치지 못할 또 다른 악전고투가 될 수도 있었다.그동안 신씨네 집안이 어떤 상황이었길래 김향옥이 간암까지 걸리게 되었는지, 상황이 좋지 않았다는 것은 안봐도 뻔했다.신연아와 강숙자, 모녀 둘 다 보통이 아니었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신호연은 눈이 멀었나? 이 모녀가 이 정도로 엄마를 괴롭히는데, 어떻게 눈감아 주고 그냥 넘어갈 수 있어? 이게 우리 엄마라면, 나라면 반드시 해명을 받아야 해.'정말 사람을 너무 업신 여겼다. 김향옥 자신이 평생을 억울하게 살아온 탓이었다. 정말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이게 나라면 그가 어떻게 이런 태도를 보일 수 있을까, 하긴, 나도 이런 일은 할 리 없었고.역시 신예 건축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이 놀라서 눈을 부릅뜨고 나를 쳐다보았고, 외계인을 보기라도 한 듯 시끄럽던 큰 사무실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나도 그들의 표정을 신경 쓰기가 귀찮아서 일만 말하고 갈 생각이었다.신호연의 사무실에 도착해 문 앞에 있는 비서에게 물었다."신호연 씨 계신가요?”비서는 새로 온 사람이었다. 통통하고, 인형 같았고 귀여운 얼굴에 큰 눈을 깜박이며 나에게 물었다."예약하셨나요?”분명 그녀는 내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아니요, 급한 일이에요."이렇게 말하며 나는 손을 뻗어 문을 두드렸다.비서의 말을 듣자마자 그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비서는 내가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문을 두드리는 걸 보고 약간 어리둥절해서 얼른 일어나 문가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