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혜선은 병원 입구에서 우리 둘과 헤어졌다.“지아야, 난 그럼 너랑 같이 안 돌아갈게. 나도 집에 가봐야겠어. 이미 48시간 정도 지났네.”말을 마친 그녀는 웃었는데 그 웃음이 조금 참담했다. 그렇다, 그녀도 돌아가야 할 집이 있는데 그곳을 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누구도 정의할 수 없다. 나는 배현우를 따라 차에 올랐다. 돌아온 후 나는 한 번도 내 차를 운전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나를 보는 배현우의 눈 속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경원으로 갈까요, 아니면 골드 빌리지로 갈까요?”“당연히 골드 빌리지로 가야죠.”나는 좀 궁색해서, 감히 그를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했다.차량은 내 뜻대로 골드 빌리지로 향했다. 그는 의심할 여지 없이 차에서 내려 나를 따라 집에 들어왔고 자연스럽게 외투를 벗은 후 주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얼른 뒤따라가서 말했다. “조금 쉬어요. 우리 간단히 라면 끓여 먹는 게 어떄요?”그는 나를 뒤돌아보며 말했다. “올라가서 씻고 조금 쉬어요. 내가 할게요.”“오늘 좀 잤어요?”나는 그제야 생각나 배현우에게 물었다. 그도 나와 같이 스무 몇 시간 동안 쉴 틈 없었다. “내가 안쓰러워요?”그가 아련하게 날 쳐다봤다. “이따 우리 일찍 자요.”그의 한마디에 나는 또 얼굴이 붉어졌다. “나랑 같이 있을 때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요.”그는 긴 팔을 뻗어 나를 잠시 안은 후 내 이마에 살포시 입을 맞췄다. 그리고 나를 놓아주며 말했다. “얼른 밥해줄게요.”나는 조금 의아했다. 솔직히 말해 그가 요리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예전에 그가 나랑 콩이와 같이 이곳에서 살 때 너무 바빴고, 또 마침 내가 상처를 회복하느라 집에 있어서 내가 요리했다. 그런데 그가 요리해 준다니, 나는 조금 놀랐다. “요리할 줄 알아요?”나는 의아하게 물었다. “왜요? 내가 못 할 것 같아요?”그는 말하면서 손을 씻고 앞치마를 했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식재료를 꺼냈는데 냉장고에는 고기밖에 없었다. 가기 전에 남겨둔 채소는 신선하지
확실히 내가 좋아하는 양파에 볶은 간의 맛이 맞는데 이번이 그와 처음 이 음식을 먹는 날이었다. 그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웃더니 눈을 내리깔고 옅게 말했다. “추측한 거예요. 어릴 때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이런 양파를 좋아했어요. 그때 우리 집에서 자주 밥 먹고 갔었거든요.”나는 영문도 모른 채 그를 쳐다보았는데, 갑자기 그가 진짜 이세림과 찍은 그 사진이 머리에 떠올랐다.“이세림을 말하는 거예요?”나는 그의 환한 얼굴을 보며 물었다. 이번에는 그가 의아해하며 고개 들어 날 쳐다봤다. “이세림을 어떻게 알아요? 뭐가 떠오른 거예요?”나를 탐색하듯 바라보는 그의 시선과 마지막 말에 나는 조금 의문이 들었다. 나는 그와 눈을 마주치며 얼른 되물었다. “왜 그렇게 물어봐요? 떠오르다니, 무슨 뜻이에요?”내가 입을 열자, 그는 얼른 웃었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예요. 이세림을 알아요? 지금 그 이세림이 아니라?”“네. 제가 찾아냈어요.”나는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동철을 시켜 조사했는데 그가 사진 한 장을 찾았어요.”배현우의 미간이 갑자기 움찔하더니 날 바라봤다. “어떤 사진이에요?”나는 조금 후회됐다. 이건 내가 남의 사생활을 파헤치는 격인데 이렇게 솔직하게 말해도 되는지 알 수 없었다. 특히 배씨 집안의 비밀이라 더 실례가 됐다. “저... 당신 사생활을 조사해 기분을 상하게 할 의도는 아니었어요. 다만... 우연히 알아낸 거예요.”나는 긴장해서 횡설수설 해명했다. “나무라는 게 아니니 걱정하지 말아요. 난 당신이 날 더 많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날 믿을 수 있을 테니깐.”그는 또 내게 간 한 조각을 집어주며 말했다. “이야기는 천천히 하고 밥 먹어요.”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서야 마침내 나는 한시름 놓았다. 나는 전화기를 꺼내 그 사진을 찾은 후 그에게 전했다. “이 사진이에요. 이동철이 이 사람이 진짜 이세림이라고 했어요.”그는 손을 뻗어 핸드폰 속 사진을 확인하더니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그는 태연하게 전화를 내려놓고 부드럽게 내게 말했다 “우리 밥 먹어요. 식으면 맛없어요.”“현우 씨, 나에게 숨기는 일이 있는 거죠? 제가 너무 많은 것을 알지 않는 게 좋을수도 있겠네요.”나는 그를 슬쩍 떠봤다. 그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당신이 너무 많이 아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라 당신이 한 번에 받아들이지 못할까봐 걱정돼요. 우리 집 사정이 아주 복잡해서 일부러 숨기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말하려고 했어요. 언젠간 알게 될 텐데 전후 사정을 알아야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합리적인 그의 설명에 내 마음도 아주 기뻤다. “내가 당신을 조사한 일은 탓하지 않을 거예요?”나는 배현우를 보며 물었다. “사실, 진짜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탓하지 않아요. 오히려 잘된 일이에요. 당신이 적극적으로 나에 대해 알고 싶어 하니 좋은 일이죠. 적극적으로 날 주목한다는 것은 당신이 날 사랑한다는 걸 증명하죠.”그는 직설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하게 말했는데 나는 순식간에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밥은 한 입 먹는 척했다. “날 놀릴 줄 알았어요.”그는 약삭빠르게 웃으며 가지런한 이빨을 드러냈다. “변명할 이유가 더 있나요? 호감이 없다면 왜 날 조사했어요?”“난 이세림은 조사하다가 덤으로 같이 조사한 거거든요!”나는 확실히 변명하고 있었다. “알았어요. 밥 먹어요.”그는 여전히 음흉하게 웃었다. 우리는 그제야 식사를 시작했는데, 잠시 후에 나는 그에게 물었다.“그러니까 그가 진짜 이세림이 아닌 사실을 당신은 이미 알고 있었죠.”“맞아요.”“그런데 왜 그녀가 계속 이세림인 척하도록 놔뒀어요?”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임윤아의 죽음 때문에 그랬어요.”배현우는 전혀 비통한 감정이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들이 임윤아가 신분을 숨긴 이세림이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 그녀가 갑자기 비명횡사하자 외부랑 배씨 가문, 그리고 따르던 사람들에게 해명하기 어려워 지금의 이세림으로 진짜 이세림을 대신했어요.”배현우가
초인종 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서둘러 옷을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배현우도 잠에서 깨 날 바라보자 더 자라고 손짓했다. “조금 더 자요.”빠른 걸음으로 내려가며 아침 댓바람부터 누가 미친 듯이 초인종을 누르는지 추측했고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지 불안했다. 인터폰으로 찾아온 불청객이 김향옥인 것을 본 나는 무슨 일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나는 잠시 고민 후 문을 열었다. 대문이 열리자, 김향옥은 순식간에 문 앞까지 쳐들어왔고 분노가 드러난 내 얼굴을 보더니 나를 단번에 밀어내고 집안으로 쳐들어갔다. 노기등등하게 쳐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나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바라만 봤다. 집에 들어온 후 그녀는 큰 소리로 말했다. “지아야, 너 진짜 앞뒤가 다른 사람이구나. 콩이를 만나게 해준다고 했으면서 왜 또 못 보게 해. 무슨 뜻이야?”“아무리 그래도 콩이는 내 손녀고 몸속에 신씨 가문의 피가 흐르고 있어. 네가 뭔데 못 만나게 해? 순한 양처럼 굴더니 사실은 음흉한 늑대였네. 콩이는 어디 있어? 우리 손녀를 만날꺼야...”그녀는 기관총처럼 단숨에 불만을 퍼부었다. 나는 그녀가 마음껏 표출하는 것을 평온하게 바라봤다. 마음속으로 이게 신씨 가문의 본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녀가 표출할 기회를 충분히 줬다. 어쨌든 신씨 가문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고 또 콩이를 위하느라 발생한 일이니깐.“콩이더러 내려오라고 해. 아니면 내가 올라갈 거야. 너 정말 악독하구나, 지아야. 이것 좀 봐, 너는 호화로운 집에서 매일 자유롭게 살고 있잖아. 전부 신 씨 가문 덕분 아니야? 죽 쒀서 개 준다고 결국은 너만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네. 이건 불공평해. 왜 아직도 콩이를 못 만나게 하는 거야?”김향옥은 이 집에 대한 미련을 죽을 때까지 못 버리는 병에 걸린 것 같았다. 나는 문을 닫고 거실로 돌아와 그녀에게 물 한 잔 따라주며 말했다. “우선 앉아서 물 한 모금 마셔요.”“얼렁뚱땅 넘어갈 생각하지 마. 콩이는?”그는 바로 몸을 돌려 위층으로 올라
그날 콩이는 무섭게 그녀에게 물었다. “또 우리 엄마 괴롭힐 거예요?”나는 그녀가 잊지 않았으리라 믿었다.역시나, 김향옥은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마른침을 삼켰다.“그리고 저를 볼 때마다 이 집이 신씨 가문의 것이라고 말하지 마세요. 신씨 가문이 어떤 상태인지 만날 때마다 당신들에게 말해줄까요?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세요. 애초에 제가 없었더라면 신씨 가문이 지금 집에 살 수 있었을까요? 당신들이 사는 집을 거두지 않은 걸 감지덕지하게 생각하세요.”“콩이 할머니로 지내고 싶으면 잘해요. 제 앞에서 굳이 기강을 잡으려고 한다면 제가 체면을 세워주지 않아도 탓하지 마세요.”나는 그녀를 노려보며 갑자기 무언가 깨달았다. 불행함을 슬퍼하며, 못난 것에 분노하자, 바로 김향옥 같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내 시어머니로 있을 때 그녀에 대한 내 존경과 경애심을 그녀는 인정해야 한다. 지금은 그녀가 자발적으로 사람 밑으로 기어들어 오고 있다. 김향옥은 혼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움찔했지만 순간 할 말을 잃은 듯 날 바라봤다. 한참 지난 뒤에야 목을 빳빳이 들고 말했다. “그러면 왜 콩이를 제주도에 보냈어? 왜 내가 보자마자 콩이를 보낸 거야?”“이건 당신이 보고 말고랑 상관없어요. 저도 제 계획이 있어요. 우리 생활이 더 이상 신씨 가문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도 우리 생활과 일정을 계획할 권리가 있어요. 제주도에 간 것도 우연히 결정한 일이에요.”나는 방금 매서웠던 모습을 접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언제 돌아와?”그녀도 조금 흔들린 듯 기세를 꺾었다. “콩이가 진짜 기분이 좋아졌을 때 돌아올 거예요. 제가 말했잖아요, 연락드린다고.”나는 그녀를 한번 흘깃 봤다. “전화를 켜놓으시면 돼요.”“나... 전화 없어.”그녀는 내 눈을 피하며 뻣뻣한 목을 흔들었다.“전화기는요?”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전화기가 없을 수 있지?“강숙자에게 뺏겼어.”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나는
그녀의 표정이 내 마음을 울렸다. 나는 그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물었다. "어디가 안 좋으세요?”"몸이 안 좋아서 자꾸 아파서 잠을 못 자."그녀는 약간 무력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작은 목소리로 꾹 참으면서 말했다."아파서...”"어디가 아프세요?"나는 얼른 캐물었다."여기."그녀는 자신의 복부를 가리키며 손으로 쓰다듬었다."호연이한테 말 안 했어요?"물어보고 나니 마음이 좀 불안했다. 김향옥은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져있었다."호연이는 너무 바빠."김향옥의 말에는 힘이 없었다."얼마나 됐어요?"나는 계속해서 물었다."괜찮긴 한데, 잠이 안 와서... 그리고 콩이가 보고 싶어. 콩이가 보이지 않아. 앞으로 볼 시간이 별로 없을까 봐 걱정돼."그녀의 입꼬리가 심하게 떨렸다.나는 마음이 갑자기 꽉 막혀서 불편한 감을 느꼈다. 그녀의 누르스름한 얼굴을 진지하게 바라보면서 무슨 말을 더해야 할지 몰랐다.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나는 입을 열었다."너 먼저 앉아서 물 좀 마셔. 나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바로 내려올게.”"아니야. 콩이가 집에 없으니 이만 가볼게.”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신경도 쓰지 않고 위층으로 올라가 침실로 들어갔는데, 배현우가 씻고 있었다. 내가 올라오는 걸 보고 그가 물었다."누구야?”"콩이 할머니."나는 말하면서 욕실로 들어가 그와 함께 씻었다. "네 아침을 챙길 시간이 없어. 잠깐 나갔다 할머니를 데리고 병원에 가야 해. 할머니가 아픈 것 같아”배현우가 나를 쳐다보는데, 좀 미안한 감이 들었다."...어쨌든, 그녀는 콩이 할머니이고 콩이에게 진심이니까.”"알겠어."배현우는 나무라지 않았고 되려 나에게 물었다."의사를 찾아볼까?”"아니, 일단 병원부터 가보고, 필요하면 전화할게."빨리 씻고 옷을 입은 배현우를 보며 미안한 마음에 내가 말을 꺼냈다."오늘 일찍 올 테니까 밥 같이 먹어!”그는 긴 팔을 쭉 뻗어 나를 품에 꼭 껴안고 나에게 키스했다."알겠어. 나도 제
내 머리가 윙 울리는 듯했다. 간암? 게다가 말기라니.이 몇 글자가 순간적으로 내 손을 차갑게 했다.어떻게 이럴 수 있지, 병이 났을까 봐 걱정했는데 이렇게 심각할 줄은 몰랐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벌써 막막해 왔다.나는 의사가 내게 치료 방안을 말하는 것을 들었지만 그는 결국 큰 희망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비록 지금은 내가 김향옥의 친척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녀는 콩이의 할머니이고, 신씨 가문에서 마지막으로 콩이를 아껴주는 사람이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난다는 말에 마음이 답답했다.콩이가 그녀의 품에 안겨 목을 껴안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듯 했다. 오랫동안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그녀가 나를 어떻게 대하든, 함께 살아온 기억들은 여전히 좋았기 때문에 지워지지 않을 것이었다.나는 내가 어떻게 진료실을 나왔는지도 몰랐다. 시어머니가 내가 나오는 걸 보고 나를 부르지 않았다면, 그녀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잊을 뻔했다."지아야, 의사가 뭐라고 했어?"그녀는 어두운 눈으로 나를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쳐다보았고 걱정스러운 표정도 조금 보였다."아니에요. 의사 선생님은 제가 아는 선생님이에요. 사적으로 몇 마디 나눴어요. 할머니는 괜찮아요. 의사가 약을 처방해 주었으니, 평소에 잘 먹고 푹 쉬라고 하셨어요. 자신을 속이지 말고 항상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야 해요.""약을 받고 제가 모셔다드릴게요.""아니, 나 혼자 갈 수 있어!"그녀는 끈질긴 태도를 보였다."약을 처방받았는데 어떻게 먹는지 알려드릴게요."그녀를 데리고 가 약을 받고 나서 홀에 앉아 종류마다 먹는 방법을 약병에 적어 그녀의 손에 건네주면서 말했다. "제시간에 약을 먹고 잠을 잘 주무세요. 불편하면 저한테 전화해도 돼요. 물론 그들이 시간이 없는 정황에 말이죠.”"알겠어." 그녀의 눈에는 초인종을 눌렀을 때의 날카로움이 사라지고 약자 특유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그럼 콩이는...”그녀는 여전히 콩이를 잊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콩이를 데려와서 만
신예 건축의 아래층에서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시어머님이 검사한 서류를 챙긴 후 그것들을 들고 차에서 내려 회사로 걸어 들어갔다.이곳에 오는 건 이번이 두 번째인데 처음은 딸의 학교를 옮기려고 가족관계서를 요구하러 왔을 때였다. 그때는 건물 전체가 난리났었다.이번에는 어떻게 될지 아직 모르겠다. '나도 정말 대단해, 이런 식구들을 만나서... 싸우지도 않고도 전사가 될 수 있겠어.''내가 오기만 하면 여기는 분명 난리가 날 거야.'아니면 신연아를 만나 도망치지 못할 또 다른 악전고투가 될 수도 있었다.그동안 신씨네 집안이 어떤 상황이었길래 김향옥이 간암까지 걸리게 되었는지, 상황이 좋지 않았다는 것은 안봐도 뻔했다.신연아와 강숙자, 모녀 둘 다 보통이 아니었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신호연은 눈이 멀었나? 이 모녀가 이 정도로 엄마를 괴롭히는데, 어떻게 눈감아 주고 그냥 넘어갈 수 있어? 이게 우리 엄마라면, 나라면 반드시 해명을 받아야 해.'정말 사람을 너무 업신 여겼다. 김향옥 자신이 평생을 억울하게 살아온 탓이었다. 정말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이게 나라면 그가 어떻게 이런 태도를 보일 수 있을까, 하긴, 나도 이런 일은 할 리 없었고.역시 신예 건축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이 놀라서 눈을 부릅뜨고 나를 쳐다보았고, 외계인을 보기라도 한 듯 시끄럽던 큰 사무실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나도 그들의 표정을 신경 쓰기가 귀찮아서 일만 말하고 갈 생각이었다.신호연의 사무실에 도착해 문 앞에 있는 비서에게 물었다."신호연 씨 계신가요?”비서는 새로 온 사람이었다. 통통하고, 인형 같았고 귀여운 얼굴에 큰 눈을 깜박이며 나에게 물었다."예약하셨나요?”분명 그녀는 내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아니요, 급한 일이에요."이렇게 말하며 나는 손을 뻗어 문을 두드렸다.비서의 말을 듣자마자 그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비서는 내가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문을 두드리는 걸 보고 약간 어리둥절해서 얼른 일어나 문가에 섰다.
나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 마지못해 고개를 들어 서강민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서강민 씨, 먼저 들어가시죠. 언니가 깨서 서강민 씨를 보면 또 흥분할 것 같은데... 지금 같은 상황에 언니가 회복하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요.”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한마디 더 보탰다.“어떤 일들은 천천히 해야 해요. 언니한테 시간을 좀 주세요. 서로 생각을 정리해 봐요.”서강민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깊은 잠에 빠진 도혜선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발길을 돌리기 전에도 아쉬움에 한 번 더 뒤돌아보며 나한테 말했다.“고생해 줘요.”나도 담담히 답했다.“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 언니에게 시간을 좀 줘요. 언니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수 있잖아요.”내가 말하는 회복이 뭔지는 서강민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건 도혜선이 마음에 입은 상처였다. 오늘 도혜선의 행동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그녀의 상처는 아물 수 없을 것이다. 언급만 해도 피가 흘러내릴 만한 상처였다.잠시 후, 서강민은 한발 물러섰지만, 눈길은 여전히 도혜선에게 머물러 있었다. 평온해 보이는 모습 아래에서 어떠한 파도가 휘몰아치는지 나는 몰랐다.한참 전 도혜선이 했던 말들은 마디마디가 주옥이었다. 모두 그녀가 마음속으로만 담아두었던 것들이었고 또한 서강민의 약점이었다. 얼마나 아플지는 서강민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쓰디쓴 독주도 그는 혼자 삼켜내야만 했다.도혜선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와 깨어나려는 낌새가 보이고 나서야 서강민은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나는 마음이 아파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어 도혜선의 손을 맞잡았다.인제야 하루 종일 배현우에게서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쪽에는 어떤 상황인지, 김우연에게서는 소식이 없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도혜선을 보니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 같아 살며시 그녀의 손을 놓고 일어서려 했을때, 그녀는 다시 나를 잡으며 미약한 목소리로 말했다.“가지 마...”나는 너무 놀라 얼른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서강민은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나 하는 걸까?’“당시의 사고는 내가 저지른 거야. 그녀도 나 때문에 다쳐서 지금처럼 된 거고… 나는 좋은 남편이 아니야. 아내가 식물인간이 되었는데 나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말이야...”서강민은 여기까지 말하며 후회하는 기색을 내비쳤다.“그녀를 마주할 때마다 너무 죄책감이 들고 고민스러워. 나 또한 발버둥 쳐봤지.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의 일탈을 받아들일 수 있어 해. 그녀한테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내가 널 사랑하고 있다는 거야...”“강민 씨!”도혜선은 꾸짖는 듯한 말투로 그의 말을 잘랐다.“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당신 아내가 듣고 있을 거예요. 저를 끌어들여서 같이 속죄할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의 구세주가 아니에요. 저는 그냥 사람답게 살고 싶은 평범한 여자라고요. 저 좀 그냥 내버려둘 순 없어요?”도혜선은 말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하얗게 질린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녀는 한 손으로 본능적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나는 깜짝 놀라 그녀 앞으로 갔다.“혜선 언니, 움직이지 마! 위험해...”늑골 골절과 뇌진탕이 있는 환자다 보니 이러한 행동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위험했다.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녀를 안으려고 하는 한지아를 제지했다.“제가 오늘 한 말이 아직도 이해가 안 되나요? 서강민 씨, 저의 인생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당신한테 묶여 당신의 부속품이 되었었는데 저도 자존심이 있어요. 더 이상 당신처럼 지난날의 죄책감을 짊어지며 답답하게 살아가지 않을 거예요.”도혜선은 여전히 분노에 차 외치고 있었다.“매일 제 앞으로 와 지난날의 행동에 대해 속죄하라고 일깨워 주실 필요 없어요! 당신을 보면 저는 지난날 모든 서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치욕적인 과거가 떠올라요. 당신은 마음 가는 대로 해요. 당신은 아내와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해요.”말을 마친 도혜선은 숨이 차올랐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도혜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계속하여 들려왔다.“당신은 아무런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저 같은 여자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아도 돼요.”그녀는 자기비하적인 말을 내뱉었다.”선아...”“설사 강민 씨가 와이프와의 약속을 안 지킨다 해도 당신의 신분과 지위로 당신에게 더 어울릴만한 사람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저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물며 당신네 부부 눈에는 저는 그냥 염치없고 미천한 사람일 뿐이죠. 저 같은 사람은 본처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아요. 사모님이라는 호칭도 어울리지 않죠.”“나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오해하지 마.”서강민은 조급함에 한 발 앞으로 나서며 해명하려 했다.하지만 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를 막아섰다.“강민 씨... 해명하지 않아도 돼요. 당신의 행동이 모든 걸 설명해 주고 있어요! 장담하건대 아직 당신들이 어떤 의도로 얘기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보가 된 건 아니에요. 그녀는 정말 대단하네요. 죽을 때까지도 제가 이길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녀는 아무리 병상에 누워있어도 고상한 사람이고 저는 그냥 미천한 사람일 뿐이니 말이에요.”도혜선은 말을 내뱉으며 입가에 처량한 미소를 비췄다. 누가 봐도 가슴 아픈 미소였다.“이전의 저는 확실히 허례허식에 차 있는 사람이었지만 저도 성장했어요. 정신 차렸어요. 당신 앞에 있는 저의 진정한 가치가 어떤 것인지 깨달았어요. 저는 하나의 도구, 들러리뿐이었지만 원망하지 않았어요.”그녀는 여기까지 말하고 한숨 돌렸다. 얼굴빛은 아까보다 더 창백해져 있었다.“하지만 이제 저는 자존감을 챙기며 살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의탁하지 않고 쓰레기같은 취급을 받더라도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며 살고 싶어졌어요.”점점 더 차가워지는 도혜선을 바라보며 서강민은 답했다.“혜선아, 나는 널 한 번도 무시한 적 없어. 나는 그냥 내가 뭘 하든지 네가 다 이해해 줄 줄 알았어.”도혜선의 서강민의 말을 듣고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안색은 더 창백해져 있었다.“이해? 당신이 어떤 말을
방금 허투루 한 말이 어머니의 진실인가 싶다. 보아하니 어머니가 나를 속이는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마음속의 의문점이 점점 많아졌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마치고 차씨 가문의 할머니께 말씀을 드린 후, 위층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도혜선을 보러 가려고 준비했다.그리고 팔도 겸사겸사 검사하려고 했다. 차에 앉고 나서 배현우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이 이른 아침에 뭐 하러 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김우연 쪽에 무슨 소식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생각해 보니 이렇게 빠르진 않겠지? 몇 시간밖에 안 됐는데.'병실에 도착하자마자 도혜선이 노발대발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병실에는 도혜선과 서강민 두 사람만 보이고 이미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내가 들어서자 분위기가 좀 이상하고 심상치 않는 것을 느꼈다.침대 옆 머릿장에는 보온병이 놓여있다. 서강민은 오늘도 도혜선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러 온 것 같다.서강민은 침대 앞에 떡 하니 서있었고 침대에 있던 도혜선은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도혜선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상황을 정리하려고 다가가서 서강민에게 인사를 하고 도혜선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좀 어때?""별로야."도혜선은 차갑게 대답하더니 또 말을 건넸다. "지아야, 손님 좀 배웅해 줄래?"난감했다, 도혜선은 서강민을 내쫓으라고 하는 거였다. 난 당연히 그 뜻을 알고 있다. 조심스럽게 서강민을 쳐다보았다. "혜선아, 꼭 이래야 하니?"서강민은 씁쓸한 표정으로 도혜선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서강민씨, 저는 이미 분명히 말했고 두 번 다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도혜선은 내가 그 자리에 있다고 해서 서강민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다.참지 못하고 웃어 버렸다. "언니, 화 그만 내고 진정 좀 해. 초조해하는 거 알아, 점차 좋아질 거야. 강민씨랑 얘기 좀 하고 있어. 나는 팔 검사해야 돼서, 금방 돌아올 거야!"나는 핑계를 대고 떠나서 그들에게 자리를 비워주었다.
배현우는 나의 우울한 모습을 보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없는 동안에 회사 일도, 한심로얄의 마지막 한방도 둘 다 포기할 수 없잖아요. 신예 쪽 일도 있고, 전희가 다시 살아날 기회를 얻지 않도록 조심해야 돼요. 지금 모든 게 중요한 시기이니까요.""지금 그 누구도 아버지보다 중요하지 않아요! 수십년간 도망치면서만 살았는데 죄책감도 가지고 있었을 거예요, 분명 아주 괴로워하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는데, 내가... 내가 딸로서, 난..."배현우는 내 말을 듣고 나서 침대에 누워 나를 꼭 껴안고 말했다. "일단 내일 소식을 기다려 봅시다. 김우연 쪽에서 어떤 정보를 얻었는지 보고 결정합시다."배현우는 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제 말 듣고 일단 자세요, 내일 일어나서 먼저 할 일들을 처리하고 준비하고 있으세요, 만약에 상황이 좋으면 내일 같이 데리고 갈게요, 당신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배현우가 지금 나를 위로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내가 기분 나빠하는 모습을 보지를 못한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았다. 배현우의 따뜻한 품에 안기며 눈을 감고 내일 먼저 무엇을 처리해야 할지 생각했다.근데... 눈을 떠서 배현우를 쳐다보는데 배현우도 잠에 들지 않았다. "현우씨... 할머니가 보존하고 있는 CCTV를 보여주시겠어요?"'그 영상을 꼭 보고 싶었다, 알고 싶었다. 어머니가 어떻게...'"알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자세요, 나중에 보여 드릴게요. " 팔짱을 끼더니 분명히 나를 얼버무리고 있는 것이다. 배현우가 그 장면을 내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밤이 깊었고,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배현우의품에 안겨 점점 잠이 들었다. 아침이 밝았다. 날씨는 여전히 흐렸다. 배현우는 이미 곁에 없었고, 손을 뻗어 그가 누워 있던 곳을 만졌다. 이미 차가운 걸 보니 배현우는 일찍 침대에서 일어났나 보다.'무슨 소식이라도 왔나?'이
"할머니가 이번 사건을 피할 수 있었던 건 당시 큰 병을 앓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했어요. 제 생각에는 반은 꽤병인것 같아요. 직접 사표를 쓰고 나서도 서둘러 호주를 떠나지 않았다는 게 참 슬기로운 선택이었어요.""네?"너무 놀라서 몸 둘바를 몰랐다.배현우는 인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호주를 떠나지 않으셨어요. 그곳에 머물면서 배씨 저택의 인기척을 살피다가 배씨 저택의 요상한 소문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뒤에야 조용히 호주를 떠나셨어요."나도 모르게 할머니의 메커니즘에 감탄했다."저도 그때 상황을 잘 몰라서, 할머니도 몸이 허약했고 내 행방을 알아 볼 길이 없어 그 비밀을 계속 지켜왔었나봐요. 부하들이 할머니를 찾고 나서도 여전히 어리석은 척을 하고 있었지 뭐에요."배현우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할머니께서 저를 두눈으로 직접 보고서야 그걸 꺼냈어요."배현우의 말을 듣고 나니 할머니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던 중 배현우가 나를 쳐다보더니 나의 지친 모습을 보고서야 손을 들어 대문을 열어 장벽들이 천천히 열리는 걸 볼 수 있었다.차는 왔던 길을 따라 경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벌써 자정이 되어 우리 둘은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 방에 돌아왔다.'우리를 배신한 소인이 두 집안을 풍비박산 시켰다니. 오늘 밤 일어난 모든 일들은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간단히 씻고 걱정 가득채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태어나서 얼굴도 한번 못 본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를 걱정해 발 뻗고 자지 못했다. '한강인이랑 한걸은 이미 잡혔는데, 우리 아버지는? 그의 처지는 어떤지.''한씨 부자가 그저 아버지를 인질로 삼아 그들의 안전을 확보하려 했다면 왜 배현우는 그곳의 환경이 복잡하다고 했을가.''이유는 간단하다. 누군가 아버지를 미끼로 삼으려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보고 싶으려는 걸가?''배현우? 아니면 배유정?'생각할수록 더욱 걱정이 됬다.아버지의 이번생은 이미 충분히 힘들다.어머니랑 서로
나는 걱정스레 배현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배현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계속 말했다.“후에 목격자 어르신을 찾고서 한강인을 자세히 조사하니 한강인은 이 모든 것이 일어난 뒤에야 천우 그룹을 떠난 거였어요. 지아 씨도 알잖아요. 그때 당시 천우 그룹은 아직 배유정 손에 있었어요.”“현우 씨의 말은 한강인은 배유정 과도 사이가 틀어졌단 말인가요?”나는 추측하며 물었다.“우리가 조사할 때 이상한 단서 하나가 나왔어요. 한동안 배유정도 한강인을 찾았고 심지어 한강인에 대한 추살령도 내렸어요! 참 이상해요. 배유정은 왜 한강인을 죽이라고 지령을 내린 걸까요?”“이유는 하나뿐이죠. 즉 한강인이 분명 무엇을 알아냈거나? 아니면 어떤 일에 참여하였거나?”나는 대답했다.배현우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진백이 죽임을 당했듯이 이 안에는 분명 남들한테 들키면 안 되는 비밀이 있는 거겠죠. 우리는 이 단서를 따라 계속 추적해 보니 한강인의 혐의가 점점 더 드러나더군요. 그리고 그의 아들 한결도 같이 도망쳤어요.”“그러고 보니 이 안에는 분명히 또 다른 요소가 있겠네요!”나는 사색에 잠겼다.“그래서 우리는 추측했죠. 한강인은 확실히 이 사건이랑 연관이 있고 둘이 도주하는 과정에 서로 연락하는 빈도를 보아서 부자 둘은 서로 다른 곳에 있는 것으로 판단했어요.”“그리고 한강인이 도망 다니는 그 시기에 그의 모친이랑 누나 모두 영문도 모른 채 실종되었어요. 지금 보니 그분들은 아마 이미 이 세상을 떠난 것 같네요. 이 때문에 한강인은 고두리에 놀란 새가 돼서 끊임없이 도망치며, 이 또한 한강인이 지금의 상태로 되게 한 원인인 것 같아요. 사실 한강인은 원래 지금의 모양이 아니거든요.”배현우의 말을 듣자 나는 저도 모르게 아까 보았던 한강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강인은 극도의 공포 속에서 엄청 정신적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면 다른 기타 방식으로 정신을 잃지 않게 버티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저렇게 말라죽을 정도일 리가 없다.“그리고 한 가
배현우는 나를 한눈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었다.“맞아요. 제 씨 어머니가 얼마나 총명한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어요. 제 씨 어머니는 책 속에 카메라를 숨겨두고 만약 사고가 난다면 여기에 있는 이 물건을 숨겨두었다가 훗날 믿음직스러운 사람에게 주라고 할머니한테만 똑똑히 당부해 두셨어요!”나는 코가 찡긋거리더니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보아하니 제 씨 어머니는 분명 위험이 닥칠 거라는 것을 미리 예감했던 거네요!”배현우는 안색이 조금 어두워지더니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갑자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제 씨 어머니는 만약 자신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할머니더러 애들을 데리고 허씨 가문으로 가라고 할머니한테 당부하셨어요.”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고 코를 훌쩍이었다.배현우는 자기 손을 꽉 움켜쥐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참 생각지도 못한 게 모든 것이 제 씨 어머니의 예상대로 일어났고 감춰둔 카메라에 모든 것이 담겼어요! 근데 할머니는 제 씨 어머니의 뜻대로 우리 둘을 순리롭게 허씨 가문으로 데려가지 못했어요.”“급한 나머지 할머니는 고씨 가문에만 소식을 전했고 그마저도 나쁜 놈들보다 동작이 빠르지 못해 그들이 지아 씨를 데려간 후였어요. 그래서 저만 고씨 가문에서 데려갔어요.”나는 눈물을 닦아내면서 그때 당시의 내가 얼마나 힘없고 무력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돌아가신 데다가 배현우와 억지로 갈라지게 되었다.배현우는 내 손을 꽉 잡으며 손에 힘을 주었다.나도 배현우 지금의 심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날 배현우는 눈앞에서 억지로 끌려 나가는 나를 보기만 하고 반항할 수도 없는 그런 무능력함은 아마 배현우한테 평생 잊지 못할 아픔이 되었을 것이다.차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고 자동차가 앞으로 가는 소리밖에 안 들렸다.한참 뒤에야, 배현우의 잠긴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이런 것들을 찾은 후에야 비행기 추락 사고가 떠올랐고 이로써 모든 것들이 비로소 한강인을 추측하게 했으며 그 이후에 우리는 한강인
이 소식은 그야말로 나를 입이 떡 벌어지게 했다. ‘나를 데려간 게 어떻게 그 사람이지?’“맞아요. 우리는 유일한 목격자를 찾았어요. 그 당시 그쪽 산에서 약재를 캐는 어르신이신데 그때는 중년인이셨어요. 하늘의 뜻인지, 우리가 수년을 찾아 헤맨 끝에야 비로소 이 참극의 전부를 직접 목격한 증인을 찾아냈어요.”“그 어르신 정말로 전체 과정을 모두 목격하셨나요?”나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배현우 얘네가 얼마나 큰 공을 들여야 바다에서 바늘 건지는 것 같은 일을, 그것도 몇 년이 지났는데도 당시의 목격자를 찾아낸 걸까.“어르신의 말로는, 당시 자기는 산 위에서 내려오는 도중에 잠시 계단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아래 도로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해요. 알다시피 외국에서는 약재를 캐는 일은 엄청 드물어요.”배현우는 엄청 뿌듯한 말투로 말했다.“우리 형제들이 엄청나게 고생 많았어요. 십수 년을 하루같이 귀찮음을 마다하고 사건 지역을 탐방하러 다니면서 일말의 흔적도 소홀히 하지 않았어요.”나도 믿어지지 않아 입을 열었다.“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참 노고가 많았어요.”“어르신이 말씀하기를 당시의 장면은 엄청 아슬아슬했대요. 부딪힌 차는 거의 굴러떨어지기에 일보 직전이었는데 후에 폭발했대요. 어르신은 우리의 차가 폭발한 뒤 키 크고 마른 한 남자가 차에서 내리는 걸 똑똑히 봤다고 해요. 그리고 그 남자는 길 왼쪽의 언덕 아래로 달려가 무언가를 찾았대요.”배현우는 그때 당시의 장면을 묘사하였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때 당시의 상황을 필사적으로 상상해 내려고 하니 머리가 또 아파 났지만, 배현우가 말을 멈출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시에 일어난 이 모든 것, 전부 나한테는 엄청난 매력이었다. 나는 지금 내가 찾아낸 산산조각 난 퍼즐들을 하루빨리 제 위치에 맞춰서 하나의 완전한 그림을 만들어 내고 싶었으며 그때 당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되찾고 싶었다.그 뒤로 난 어떻게 Z 국의 만덕동에서 떠돌게 되었고 또 어떻게 지금의 한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