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민은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나 하는 걸까?’“당시의 사고는 내가 저지른 거야. 그녀도 나 때문에 다쳐서 지금처럼 된 거고… 나는 좋은 남편이 아니야. 아내가 식물인간이 되었는데 나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말이야...”서강민은 여기까지 말하며 후회하는 기색을 내비쳤다.“그녀를 마주할 때마다 너무 죄책감이 들고 고민스러워. 나 또한 발버둥 쳐봤지.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의 일탈을 받아들일 수 있어 해. 그녀한테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내가 널 사랑하고 있다는 거야...”“강민 씨!”도혜선은 꾸짖는 듯한 말투로 그의 말을 잘랐다.“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당신 아내가 듣고 있을 거예요. 저를 끌어들여서 같이 속죄할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의 구세주가 아니에요. 저는 그냥 사람답게 살고 싶은 평범한 여자라고요. 저 좀 그냥 내버려둘 순 없어요?”도혜선은 말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하얗게 질린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녀는 한 손으로 본능적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나는 깜짝 놀라 그녀 앞으로 갔다.“혜선 언니, 움직이지 마! 위험해...”늑골 골절과 뇌진탕이 있는 환자다 보니 이러한 행동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위험했다.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녀를 안으려고 하는 한지아를 제지했다.“제가 오늘 한 말이 아직도 이해가 안 되나요? 서강민 씨, 저의 인생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당신한테 묶여 당신의 부속품이 되었었는데 저도 자존심이 있어요. 더 이상 당신처럼 지난날의 죄책감을 짊어지며 답답하게 살아가지 않을 거예요.”도혜선은 여전히 분노에 차 외치고 있었다.“매일 제 앞으로 와 지난날의 행동에 대해 속죄하라고 일깨워 주실 필요 없어요! 당신을 보면 저는 지난날 모든 서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치욕적인 과거가 떠올라요. 당신은 마음 가는 대로 해요. 당신은 아내와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해요.”말을 마친 도혜선은 숨이 차올랐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나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 마지못해 고개를 들어 서강민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서강민 씨, 먼저 들어가시죠. 언니가 깨서 서강민 씨를 보면 또 흥분할 것 같은데... 지금 같은 상황에 언니가 회복하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요.”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한마디 더 보탰다.“어떤 일들은 천천히 해야 해요. 언니한테 시간을 좀 주세요. 서로 생각을 정리해 봐요.”서강민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깊은 잠에 빠진 도혜선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발길을 돌리기 전에도 아쉬움에 한 번 더 뒤돌아보며 나한테 말했다.“고생해 줘요.”나도 담담히 답했다.“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 언니에게 시간을 좀 줘요. 언니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수 있잖아요.”내가 말하는 회복이 뭔지는 서강민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건 도혜선이 마음에 입은 상처였다. 오늘 도혜선의 행동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그녀의 상처는 아물 수 없을 것이다. 언급만 해도 피가 흘러내릴 만한 상처였다.잠시 후, 서강민은 한발 물러섰지만, 눈길은 여전히 도혜선에게 머물러 있었다. 평온해 보이는 모습 아래에서 어떠한 파도가 휘몰아치는지 나는 몰랐다.한참 전 도혜선이 했던 말들은 마디마디가 주옥이었다. 모두 그녀가 마음속으로만 담아두었던 것들이었고 또한 서강민의 약점이었다. 얼마나 아플지는 서강민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쓰디쓴 독주도 그는 혼자 삼켜내야만 했다.도혜선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와 깨어나려는 낌새가 보이고 나서야 서강민은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나는 마음이 아파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어 도혜선의 손을 맞잡았다.인제야 하루 종일 배현우에게서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쪽에는 어떤 상황인지, 김우연에게서는 소식이 없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도혜선을 보니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 같아 살며시 그녀의 손을 놓고 일어서려 했을때, 그녀는 다시 나를 잡으며 미약한 목소리로 말했다.“가지 마...”나는 너무 놀라 얼른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깊은 밤, 딸을 재우고 나서야 난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침대에 기대어 핸드폰으로 틱톡 동영상을 넘겨보다가 길거리에서 진행하고 있는 라이브 방송 화면에 시선이 꽂혔다.순간, 화들짝 놀란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화면을 자세히 보려고 핸드폰을 가까이 댔지만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던 비제이가 화면을 돌려버렸다.난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핸드폰을 쥐고 있던 손에는 땀이 줄줄 흘렀다. 라이브 방송 시간을 확인해 보니 지금 시간 때와 똑같았기에 실시간 방송이 확실했을 뿐만 아니라 라이브 방송 장소가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이었다.난 다급하게 남편 신호연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남편이 부산에 출장 간지 3일이 지났는데 조금 전의 라이브 방송에 그의 모습이 찍혔다. 남편은 한 여자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연결음이 한참 울리고 나서야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화면이 살짝 흔들리더니 훤칠한 외모의 신호연이 나타났고 그는 카메라를 보며 나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여보!”“당신 지금 어디야?”난 남편에게 물으면서 화면 속 배경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식당의 복도인 듯했는데 남편은 흰색 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하지만 조금 전에 라이브에서 잠깐 봤던 남자는 분명히 회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난 고객이랑 밥 먹고 있다가 당신 전화를 받았지. 왜? 무슨 일 있어? 콩이는 자?”남편이 술술 대답했지만 난 여전히 의심이 들어서 계속 물었다.“당신 지금 부산에 있어?”“당연하지. 왜 그래?”남편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화면 속의 나를 쳐다보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그래? 아… 아니야! 언제 돌아와?”내 질문에 남편이 피식 웃으면서 다정하게 대답했다.“곧 돌아갈 거 같아. 여기 일만 잘 처리되면 바로 돌아갈게. 남편이 보고 싶은 거야? 최대한 일찍 갈 테니까 얼른 자. 난 아직 좀 바빠서 이만 끊을게!”남편은 나에게 입술을 삐죽 내민 뒤, 영상 통화를 끊었고 난 핸드폰을 손에 쥔 채, 남편을 의심한 나 자신에게 살짝 실망스러웠다.신호연은 모
내가 발신자를 확인하려고 핸드폰에 손을 뻗은 순간, 신호연이 갑자기 안방으로 돌아와 핸드폰을 확 낚아채더니 문자 내용을 힐끔 쳐다보고는 멍하니 자리에 굳어버린 나에게 말을 건넸다.“연아가 보낸 카톡이야!”“무슨 일인데 나한테 들키면 안 돼?”내가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남편을 빤히 쳐다보며 추궁했고 괜히 마음이 불안했다.그 카톡 내용은 단 한 마디였다.[혹시 들켰어?]간단한 몇 글자에 너무도 많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나에게 뭔가 들킬까 봐 걱정하고 있는 게 분명했을 뿐만 아니라 왠지 말투도 야릇해 보였다.난 신호연을 빤히 쳐다보면서 불길한 예감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이때, 신호연이 갑자기 피식 웃더니 핸드폰을 침대 끝에 다시 놓아둔 채, 나를 품속으로 확 잡아당기더니 가볍게 입을 맞추면서 말했다.“이상하게 생각하지 마! 네가 아니라 우리 엄마 얘기야! 연아가 또 나를 내세워서 엄마한테서 돈을 가져갔거든!”신연아는 신호연의 여동생으로 어렸을 때부터 몸이 허약하고 잔병치레가 많았기에 남편 집에서 애지중지 키웠던 것이다. 덕분에 부잣집 공주님 성격이 되어버린 신연아는 20대 중반이 되었지만 여태껏 일도 안 하고 여기저기 여행만 다니고 있었다.“어머님 돈을 가져갔다니, 어머님 돈이 결국 누구 돈인데?”내가 입을 삐죽 내밀면서 말하자 신호연이 실실 웃으면서 알몸인 나를 번쩍 안더니 연신 뽀뽀를 하며 욕실로 향했다.“그럼, 그럼, 다 우리 여보 돈이지! 난 착하고 마음이 넓은 와이프가 있어서 너무 좋아!”난 늘 남편의 이 한마디에 넘어갔었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시댁에 인색한 적이 없었으며 가정이 평화로워야 모든 것이 잘 풀린다고 여겼다.또한 내가 진심으로 상대방을 대하면 상대방도 그만큼 나에게 진심을 보일 것이다.욕조에서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은 난 기분이 너무 좋아서 불안했던 마음과 원망스러운 마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늦은 밤, 침대에 누운 난 신호연의 품에 안겨 아파트 얘기를 다시 꺼낼 수밖에 없었다. 결혼하고부터
“그저께? 어디서 봤는데?”난 자신도 모르게 말이 빨라졌고 이미연은 이런 나를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며 되물었다.“반응이 왜 이래?”“그 사람을 어디서 봤는데?”난 그녀의 말에 대답할 겨를도 없이 추궁했고 바로 이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으며 발신자를 확인한 그녀는 나에게 조용히 하라고 손짓하면서 몸을 뒤로 기댄 채, 전화를 받았다.“뭐? 내가 지금 당장 거기로 갈게!”통화를 하던 이미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를 힐끔 쳐다보다가 이내 노트북을 탁 닫더니 황급히 밖으로 향했다.“나중에 다시 연락할게. 나 먼저 간다!”“아니… 야!”이미연은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나를 가게에 덩그러니 남겨두고 부랴부랴 떠나갔고 난 그녀가 남긴 말을 곱씹었다.‘그저께 신호연을 만났다고? 그저께라면 남편은 분명히 부산에 있었는데 이미연은 남편을 어디서 본 거지? 그럼 그 시간에 미연이도 부산에 출장 간 건가? 그런 기막힌 우연이 있다고?’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닫은 채 앉아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감이 엄습했다. 라이브 방송에서 봤던 장면이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그 사람이 신호연이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설마 신호연이 나에게 거짓말을 한 건가? 애초부터 부산에 가지 않은 건가? 남편에게 여자가 생긴 걸까?’한 홀로 멍하니 디저트 가게에 앉아 머릿속이 복잡해졌으며 온몸은 어느새 얼음장 마냥 차갑게 식어버렸다.‘만약 신호연이 정말 바람을 피운 거라면 난 어떡해야 하지? 우리 콩이는 어떡하지? 우리 가정은 어떻게 되는 거지?’난 영혼을 잃은 시체 마냥 해롱해롱한 정신으로 하루를 보내느라 어린이집에 콩이를 데리러 가는 것마저 잊었다.다행히 신호연이 일찍 퇴근한 덕분에 아이가 집에 없는 걸 눈치채고 다정하게 날 위로해 준 뒤, 어린이집으로 향했고 난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나서 식사를 차리러 주방으로 들어갔다.신호연과 아이가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신연아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우리 집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기에 본인 집처럼 들락
난 얼른 핸드폰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가 전화를 받자마자 이미연에게 원망을 털어놓았다.“너 어떻게 그런 말만 남겨두고 도망갈 수 있어?”“회사에 문제가 좀 생겨서 급했어. 지금 막 처리하고 너에게 전화하는 거야. 왜 소리를 질러! 내가 너처럼 그렇게 한가한 줄 알아?”이미연의 목소리는 매우 피곤해 보였다. 잠시 머뭇거리던 난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그게… 너 그저께 신호연 봤다고 했잖아. 몇 시에 어디서 봤어?”난 하루 종일 이 질문을 하고 싶어서 미칠 것만 같았고 전화기 너머 이미연은 흠칫 놀란 듯하다가 이내 덤덤하게 대답했다.“나도 어디서 봤는지 기억은 안 나. 차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본 거거든.”“그래?”왠지 모르게 난 이미연의 대답에 살짝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덕분에 전전긍긍하고 있던 마음은 훨씬 홀가분했으며 피가 날 정도로 꽉 쥐고 있던 주먹도 스르르 풀렸다.어떻게든 신호연이 바람을 피웠다는 걸 입증하고 싶어 하는 나 자신에게 너무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신호연이 나의 하늘이고 그 하늘이 무너질까 봐 늘 조심스러운 건 사실이다.“넌 진짜 남편밖에 모르는구나. 신호연 이름만 언급되면 이렇게 신경을 곤두세우다니. 너도 이제 너 자신을 좀 가꿔 봐. 콩이도 어린이집에 보냈으니까 너도 네 할 일을 찾아야지. 설마 평생 신호연의 부속품으로 살 건 아니지? 너 그러다가 사회와 완전히 멀어져서 네 세상에 신호연 한 사람만 남을 수도 있어!”이미연이 구구절절 얘기하며 나에게 호통을 쳤고 입장이 난처해진 난 한숨을 푹 내쉬며 대답했다.“근데 신호연이…”“거 봐. 맨날 신호연, 신호연. 내 말이 맞지? 네 세상에는 이제 신호연밖에 없어. 그 사람 말이 법이고 성지가 됐다고! 너 그러다가 신호연이 죽으라면 죽을 거야? 널 어디에 팔아버려도 좋다고 실실 웃을 거야?”이미연이 한심한 듯 꾸짖었고 그 말에 난 버럭 반박했다.“퉤! 너 진짜! 그런 말 하지도 마! 신호연은 날 너무 사랑해서 절대 날 못 팔아!”“그래, 그래. 네 말
”오빠, 나 바래다주면 안 돼?”식사를 마치고 잠시 소파에 앉아있던 신연아가 신호준에게 말했고 그 모습에 내가 신연아를 힐끔 째려보았지만 그녀는 못 본 척하며 신호연의 팔을 잡고 계속 흔들었다.신호연은 난감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내 의견을 묻는 듯했지만 내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신호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조금만 기다려. 네 형수를 도와서 설거지만 하고 바래다줄게.”난 신연아의 꼴을 일 초도 더 보기가 싫었기에 신호연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얼른 바래다줘! 나 혼자서 치울 수 있어!”“아빠! 어디 가요? 나도 갈래요!”의자에 앉아있던 콩이가 벌떡 일어나 작은 손을 뻗으며 말하자 신호연은 아이가 혹시라도 떨어질까 봐 재빨리 아이를 안은 채, 볼에 가볍게 뽀뽀를 했다.“아빠 바로 올게! 엄마랑 잠깐만 놀고 있어. 착하지?”“어린 게 왜 따라오려고 그래?”신연아는 콩이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고 심지어 아이를 너무 귀찮아했다.“콩이야, 아빠는 고모를 바래다주러 가는 거야. 조금만 있으면 돌아올 거니까 엄마랑 잠깐만 있어주면 안 돼?”내가 아이를 건네받은 뒤, 아이에게 묻자 콩이가 맑고 고운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팔로 내 목을 감싸더니 고개를 돌려 신호연에게 말했다.“그럼 일찍 와요 아빠!”“알았어!”콩이의 이마에 뽀뽀를 남긴 신호연이 차 키를 챙겨 신연아와 집을 나섰고 오빠의 팔짱을 꽉 잡고 있던 신연아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의기양양하게 웃었다.이날 밤, 일찍 들어오겠다던 신호연은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지극한 효자인 그가 또 부모님과 얘기를 나누느라 늦은 거라고 여긴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난 신호연은 9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다고 하면서 내가 힘들까 봐 겸사겸사 아이까지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었다.신호연은 이렇듯 다정하고 세심한 사람이었으며 덕분에 난 신경 쓸 일이 거의 없었다. 이미연의 말처럼 신호연은 나를 완전히 애지중지 아꼈으며 모두가 인정하는 일등 남편이었다.
신흥 건재 회사가 진후 빌딩으로 이사 온 뒤, 난 이사 초기에 딱 한 번 회사에 와봤으며 그것도 신호연이 나를 데리고 구경한 것이다. 회사가 건물 전체를 전세 냈으며 보기만 해도 너무 화려하고 성취감이 느껴졌다. 그날 신호연은 나를 꽉 껴안으며 사무실 창가에 서서 세상 다정한 목소리로 나에게 약속했다.“고마워, 여보! 당신이 나에게 마음껏 꿈을 펼칠 자본을 만들어줬어! 난 상상치도 못한 인생을 살게 되었어! 내가 더 힘내서 조만간 이 건물을 당신에게 선물로 줄 테니까 나 믿고 딱 기다리고 있어!”이런저런 생각에 난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신호연이 두 손으로 직접 이 모든 걸 부수고 있는 셈이다.건물에 들어서자 데스크를 지키고 있던 직원이 나에게 몇 층으로 갈 건지, 또 누구를 찾는 건지 물었다. 내 입에서 신호연 이름이 언급되자 직원이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공적인 태도를 장착한 채 말했다.“죄송합니다! 신 대표님은 지금 자리에 없습니다. 사모님과 함께 나가셨습니다!”난 순간 번개라도 맞은 듯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충분한 마음의 준비도 했고 별의별 상황을 전부 상상했지만 이런 답을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가방을 꽉 움켜쥔 난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뭐라고요? 혹시 뭔가 오해가 있는 거 아니에요?”“전 오해할 리가 없어요. 10층 신흥 건재 회사의 신호연 대표님을 찾으시는 거 아닌가요? 그분은 확실히 아침 일찍 사모님과 나가셨습니다.”직원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확신에 찬 듯 말했다. 그녀의 단호함에 머리가 복잡해진 난 대체 같이 나간 그 사모님이 누구인지, 그러면 난 또 누구인지 너무도 물어보고 싶었지만 끝내 참은 채, 이를 악물고 진후 빌딩을 나섰다.난 최후의 체면을 챙기고 싶었던 것이다. 또한 저 직원이 잘못 알고 있는 거라고 믿고 싶었으며 신호연에게도 최후의 양심을 남겨주고 싶었다.데스크 직원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 난 떨리는 손으로 신흥 건재 마케팅 부서의 서강훈에게 전화를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