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 건재 회사가 진후 빌딩으로 이사 온 뒤, 난 이사 초기에 딱 한 번 회사에 와봤으며 그것도 신호연이 나를 데리고 구경한 것이다. 회사가 건물 전체를 전세 냈으며 보기만 해도 너무 화려하고 성취감이 느껴졌다. 그날 신호연은 나를 꽉 껴안으며 사무실 창가에 서서 세상 다정한 목소리로 나에게 약속했다.“고마워, 여보! 당신이 나에게 마음껏 꿈을 펼칠 자본을 만들어줬어! 난 상상치도 못한 인생을 살게 되었어! 내가 더 힘내서 조만간 이 건물을 당신에게 선물로 줄 테니까 나 믿고 딱 기다리고 있어!”이런저런 생각에 난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신호연이 두 손으로 직접 이 모든 걸 부수고 있는 셈이다.건물에 들어서자 데스크를 지키고 있던 직원이 나에게 몇 층으로 갈 건지, 또 누구를 찾는 건지 물었다. 내 입에서 신호연 이름이 언급되자 직원이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공적인 태도를 장착한 채 말했다.“죄송합니다! 신 대표님은 지금 자리에 없습니다. 사모님과 함께 나가셨습니다!”난 순간 번개라도 맞은 듯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충분한 마음의 준비도 했고 별의별 상황을 전부 상상했지만 이런 답을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가방을 꽉 움켜쥔 난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뭐라고요? 혹시 뭔가 오해가 있는 거 아니에요?”“전 오해할 리가 없어요. 10층 신흥 건재 회사의 신호연 대표님을 찾으시는 거 아닌가요? 그분은 확실히 아침 일찍 사모님과 나가셨습니다.”직원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확신에 찬 듯 말했다. 그녀의 단호함에 머리가 복잡해진 난 대체 같이 나간 그 사모님이 누구인지, 그러면 난 또 누구인지 너무도 물어보고 싶었지만 끝내 참은 채, 이를 악물고 진후 빌딩을 나섰다.난 최후의 체면을 챙기고 싶었던 것이다. 또한 저 직원이 잘못 알고 있는 거라고 믿고 싶었으며 신호연에게도 최후의 양심을 남겨주고 싶었다.데스크 직원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 난 떨리는 손으로 신흥 건재 마케팅 부서의 서강훈에게 전화를 걸
신호연이 딸을 데리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난 이미 요리를 끝낸 상태였다.“엄마, 저 다녀왔어요! 아빠가 저를 데리러 왔어요!”콩이가 토끼 마냥 총총 뛰어와 나에게 말을 걸었고 그 앳된 목소리에 순간 눈시울이 붉어진 난 억지로 눈물을 참으며 대답했다.“우리 콩이가 제일 좋아하는 딸기 사 왔어!”“와! 엄마 최고! 지금 먹을래요! 얼른 먹고 싶어요!”방방 뛰던 콩이가 돌아서서 신호연에게 달려가 안기며 계속 졸랐다.“아빠, 저 딸기 먹을래요!”“그래, 그럼 일단 하나만 먹고 나머지는 밥을 먹고 나서 먹자!”신호연이 딸기 한 알을 씻어서 콩이에게 건넸고 좁은 주방으로 들어오더니 뒤에서 나를 껴안으며 물었다.“오늘 맛있는 거 왜 이렇게 많이 했어?”마음이 너무 씁쓸했다. 이렇게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인데 한순간에 위기에 빠지다니.“출장 다녀오느라 고생했잖아! 오늘 바빴어?”난 피식 웃으며 덤덤한 표정으로 물었고 그는 나의 어깨에 기대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은 나는 팔꿈치로 그를 밀쳐내며 말했다.“수저 챙겨, 얼른 밥 먹자!”난 그의 스킨십에 헛구역질이 났다. 나를 안고 있는 이 순간에도 다른 여자를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의심됐다.“한잔할래? 오랜만에 술을 마시고 싶네.”식탁에 앉아 억지웃음을 보이며 그에게 묻자 신호연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왜 갑자기 술을 마시고 싶어?”“별다른 일도 없잖아. 당신 또 나갈 거 아니지? 맛있는 거 많이 했는데 분위기 있게 한잔해야지!”대꾸를 하면서도 마음속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술이 약한 신호연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난 그에게 조금 따라주고 나머지는 내가 마셨다.술이 어느 정도 취하자 우리 두 사람은 말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고 난 감개무량한 척하며 그와 옛 추억을 들먹였다.내가 신나 보이자 신호연은 자신에게 술을 조금 더 따르면서 나에게 과음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지만 결국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많이 마신 건 신호연이었다.그를 침대로 부축했을 때 그는 이미 만취
이튿날 아침, 나는 퀭한 눈으로 겨우 정신을 차리고 침대에서 일어났고 신호연이 초췌한 나의 모습을 보며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지아야, 너 어디 아파? 안색이 너무 안 좋네?”“네가 날 밤새 괴롭혔잖아. 몰라서 물어?”대충 얼버무리자 흠칫하던 신호연이 씩 웃으며 나를 껴안았다.“앞으로 술 마시지 말고 운동하자! 수면에 도움이 된대!”그의 말에 갑자기 구역질이 확 올라온 탓에 화장실로 달려가 콧물까지 흘려가며 토했고 신호연은 뒤에서 긴장한 얼굴로 내 등을 두드려 주며 말했다.“왜 이래? 나랑 같이 병원 가자!”“아니야, 몸이 살짝 피곤해서 그래. 당신이 콩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줘. 난 조금만 더 잘게!”난 신호연을 밀쳐내며 억지웃음을 보였고 그는 갑자기 나를 번쩍 들어 올리더니 침대에 눕힌 뒤, 이불까지 덮어줬다.“그럼 더 자. 딸은 내가 등원시킬게. 걱정하지 마. 혹시 많이 아프거나 불편하면 나에게 전화를 해. 알았지?”난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두 부녀의 소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현관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창가에 기대 신호연이 콩이를 차에 태우고 동네를 벗어나는 걸 확인했으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모든 게 예전처럼 평범하고 행복했으면 얼마나 좋을까?정신을 차리고 다급하게 나갈 준비를 했으며 평소의 옷차림과는 다르게 흰 티에 청바지, 그리고 머리를 깔끔하게 묶은 뒤, 모자를 푹 눌러썼다.진후 빌딩 맞은편에 있던 카페에 도착하여 빌딩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은 뒤, 빤히 빌딩 입구만 쳐다보았다.가장 멍청해 보이는 방법이지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하지만 3일 내내 카페에서 지켜보고 있어도 아무런 수확이 없었다. 난 신호연의 그림자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는데 신호연은 보통 지하 주차장으로 출입했으며 그곳에는 빌딩 로비로 통하는 통로가 있었다.4일째 되던 날, 점점 주의력이 분산되던 그때, 신호연이 핸드폰을 들고 빠른 걸음으로 빌딩에서
난 씁쓸하게 웃으며 알겠다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지금 이 순간, 이미연이 내 남편에게 꼬리를 치는 여우로 느껴졌으며 내 앞에서는 자기 계발을 하라고 그렇게 구구절절 설득하더니 지금은 내 남편 앞에서 한가한 여자라고 비꼬다니. 진짜 너무 소름이 돋았다.인제 보니 신호연을 봤다고 얘기한 것도 괜히 마음이 뜨끔해서 나를 떠본 것이 분명했다. 그날 밤 신호연도 나에게 이미연을 본지도 꽤 됐다고 말했던 게 생각이 났다.가장 친한 사람에게 농락을 당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 낯선 도시에서 유일하게 진심으로 최선을 다한 두 사람인데 이렇게 대놓고 날 바보로 만들다니. 이제 아무도 믿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난 창문을 빤히 바라보면서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신호연에게 전화를 걸었고 내 예상대로 그의 대답은 이미연과 완벽하게 일치했다.화가 치밀어 올라서 찻집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핸드폰이 울렸고 콩이가 어린이집 미끄럼틀에서 떨어졌다는 선생님의 전화였다.화들짝 놀란 마음에 택시를 잡고 병원으로 향하면서 신호연에게 전화를 걸어 딸이 사고가 났다고 전했다.나와 신호연은 거의 동시에 병원에 도착했고 응급실에 누워있는 콩이를 발견하자마자 아이가 땀까지 줄줄 흘리며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마음을 꾹 참고 선생님 품에서 아이를 건네받아 품에 꼭 안은 채, 그들을 원망했다.똑같이 놀란 신호연은 의사에게 콩이 상황을 물어보았고 의사가 검사 결과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아이가 어리고 몸이 유연한 덕분에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이마에 상처가 많이 생겨서 뇌진탕이 의심되기도 하기에 병원에 입원해서 관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더군다나 병원에 오기 전에 구토 현상도 있었다고 한다.콩이 담당 선생님은 너무 놀라서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될 정도로 울고 있다가 신호연과 원장 선생님을 쳐다보며 연신 사과를 했다.신호연도 기분이 언짢긴 했지만 이성적으로 아이의 사고 과정을 물었고 원장 선생님은 미끄럼틀에서 한 통통한 남자애한테 밀려 떨어졌다고
“지아가 지금 기분이 안 좋아!”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신호연이 나서서 설명을 하다가 이내 내 어깨에 손을 올려놓은 채, 힘을 살짝 주면서 다정하게 말했다.“여보, 걱정하지 마. 의사 선생님도 괜찮다고 했어. 집에 가서 조금만 주의하면 된대!”집이라는 말에 자극을 받아 순간 이성을 잃어버린 난, 신호연을 밀어버리고 벌떡 일어나 병실을 나서서 눈물을 흘렸고 이미연이 다급하게 나를 따라 나왔다.갑작스러운 모습에 병실에 있던 콩이도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지아야, 너 왜 그래? 아이가 놀라잖아! 기분이 안 좋아도 아이를 위해서 좀 참아야지!”이미연이 나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렸고 화가 치밀어 오른 난 그녀를 노려보며 소리를 질렀다.“참아? 내가 어떻게 참아?”이성을 잃은 나 자신에 정신이 번쩍 들어 겨우 감정을 억누르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입꼬리를 덜덜 떨며 말을 이어갔다.“너 먼저 돌아가. 우린 괜찮아. 네가 얼마나 바쁜데 네 일에 지장을 주면 안 되지!”말을 마친 뒤, 눈물을 닦고 이미연을 지나쳐서 병실로 돌아왔다. 콩이를 다독여주고 있는 신호연을 밀쳐내고 콩이 곁에 앉아 눈물을 뚝뚝 흘렸다.곁으로 밀려난 신호연은 멍한 표정으로 자리에 굳어 있다가 이내 다정하게 날 위로했다.“걱정하지 마. 응? 아이가 놀라잖아!”한참 지나고 나서야 병실로 돌아온 이미연은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입술만 만지작거리고 있었고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어색했다.“지아야, 나 먼저 갈게. 너무 마음 졸이지 말고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전화해!”조심스럽게 말을 하던 이미연은 돌아서서 콩이에게도 인사를 했다.“콩이야, 이모 이만 가볼게. 얼른 나아서 이모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당신 미연이를 오랜만에 보는 거잖아. 좀 바래다줘!”난 눈물을 닦으며 신호연에게 눈치를 주었고 흠칫하던 신호연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그래! 당신 그만 울어! 알겠지?”신호연이 이미연을 바래다주려고 병실을 나서던 순간, 이미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바래다줄 필
넘어진 후의 콩이는 조금 놀랐는지 하루 종일 내 품에 달라붙어 조금도 떨어지지 않으니 난 속이 타들어 갔다.신호연은 늙은 여우처럼 나에게 조금의 틈도 주지 않았다. 제시간에 출근하고, 제시간에 집에 돌아와 아무런 허점도 보이지 않았다.신호연이 가져온 모든 물건은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때로는 내 자신이 망상증에 걸린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점심, 겨우 콩이를 재우고 보니 집에 신선한 야채와 과일이 전혀 없었다. 콩이가 깊이 잠든 것을 보고 빨리 시장에 다녀오려 했다.시장은 집에서 가까웠고, 옷을 갈아입기 귀찮아 바로 집 문을 나섰다.하지만 장을 보고 돌아온 나는 멍해지고 말았다. 열쇠가 보이지 않았다!한참이나 곰곰이 생각한 나는 괴로워하며 머리를 때렸다. 틀림없이 나올 때 열쇠를 챙기지 않았을 것이다.신호연에게 전화를 거니, 그는 작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회의 중이야. 지금 못 가. 연아한테 전화해 봐!”또 회의? 핑계는 여태껏 변하지도 않네.난 하는 수없이 신연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에게 집 열쇠가 있었다. 만약 이번 기회에 그녀의 열쇠를 돌려받을 수 있다면 더욱 완벽했다.연결음이 한참 울린 후에야 신연아는 전화를 받았다. 많은 사람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고, 신연아의 목소리가 맑게 들려왔다.“새언니, 무슨 일이에요?”“열쇠를 집에 놓고 외출을 했어요. 열쇠 좀 갖다주시겠어요?”“저 지금 밖에 있어요. 갈 시간이 없네요.”신연아는 단칼에 거절했다. 그리고 옆 사람에게 말하는 듯했다.“저기… 잠깐만 기다려!”“그럼 어디예요? 제가 갈게요.”열쇠를 돌려받을 좋은 기회라 나는 얼른 말했다.신연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전화 너머에서 누군가 말했다.“아가씨, 캐비닛 위치 좀 봐주세요.”곧 전화가 끊어졌다.캐비닛? 무슨 캐비닛?신연아가 무슨 캐비닛을 보고 있는지 영문을 몰라 답답했다. 집에서 금이야 옥이야 자란 아가씨라, 기름병이 넘어져도 부축하지 않는데 무슨 캐비닛을 보고 있을까?
그 젊은 직원이 아첨하는 목소리로 ‘신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날벼락을 맞은 것 같았고,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홱 돌아섰다. 내 직함을 들먹이며 사기를 치고 다닌 이미연이 나를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확인하고 싶었다.나는 매서운 눈빛으로 뒤를 보았다. 이미연이 서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신연아가 보였다.옷은 화사하고 멋스럽게 차려입고, 린넨 색의 긴 머리는 웨이브를 넣어 풀어헤쳤고, 작은 얼굴은 정교하게 화장했다. 평범했던 얼굴에 약간의 요염함이 더해졌다.신연아는 우아한 발걸음으로 다가와 여유롭게 웃으며 입을 열려고 하는데, 사악한 기운을 띠며 고개를 홱 돌린 나를 보고 갑자기 눈이 움츠러들었다. 의아한 듯 자리에 멈추더니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오늘 우리 두 사람의 모습은 확실히 누가 봐도 그녀가 ‘신 사모님’이고 난 가정부였다.옷이 날개라고, 파자마 차림은 절대 명품의 아우라를 따라갈 수 없었다.신연아를 보고 신 사모님이라고 불렀다고?아주 제멋대로인 여동생이야.그 젊은 직원은 나의 반응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신연아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신연아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으니 젊은 직원은 나를 한번 힐끗 보더니 신연아에게 말했다.“신 사모님...”“잠깐!”난 그녀의 말을 끊고 신연아를 한번 본 다음 그 직원에게 물었다.“누가 신 사모님이라는 거죠?”젊은 직원은 나를 보더니 약간 의아한 미소를 지었다. 경멸하는 눈으로 나를 보더니 말했다.“이분은 10층 신흥 건재 대표님의 사모님이세요!”난 순간 참지 못하고 ‘푸’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비록 젊은 직원의 태도가 기분 나빴지만, 자칭 ‘신 사모님’의 출현으로 며칠 동안 나의 응어리가 풀린 셈이다.아무리 철이 없는 시누이라도 정도가 있지.‘신 사모님’의 자리까지 사칭하다니!내가 제멋대로 웃으니 현장의 여러 직원들도 어리둥절해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분명히 네 글자가 적혀있었다. 미친 여자!나는 신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리는 입을 열지 않았다. 신연아는 고개를 숙이고 입을 비쭉거리며 엘리베이터에 기대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신호연처럼 그녀의 못된 버릇을 받아 줄 마음이 없었다.신호연의 사무실에 도착해서 보니, 그는 진짜 회의 중이었다. 부하직원이 그를 불렀고, 나와 신연아의 모습을 본 신호연은 의아해하며 우리 둘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그리고 나의 옷차림에 시선이 고정되었다.“당신 옷차림이...”“창피하다 이거지? 장 보러 시장에 가는데 뭣하러 차려입어?”나는 신호연의 말을 끊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당연히 알고 있어 퉁명스럽게 말했다.“열쇠나 빨리 줘. 콩이 아직도 자고 있어.”신호연은 서둘러 사무실 책상으로 걸어갔고, 문서 가방에서 열쇠 꾸러미를 건네주었다.“내가 연아한테 말해서 열쇠 가져가라고 했잖아?”열쇠를 받아든 나는 불쾌하게 신연아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아가씨가 나한테 열쇠를 갖다 줄 시간이 어디 있어? 여기서 ‘신 사모님’행세하는 게 열쇠보다 더 중요한데.”“당신은 ‘신 사모님’이랑 좋은 시간 보내. 난 ‘신 사모님’을 행차하게 할 자격이 안 돼.”이번만큼은 신연아의 체면을 세워 줄 생각이 없었다.“오빠라는 사람이 참 대단하기도 하지. 어떻게 자기 부인 타이틀까지 동생한테 내어줘?”말을 마친 나는 냉담한 얼굴로 돌아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집에 콩이가 자고 있으니 더 이상 그들과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나는 화가 잔뜩 난 채로 열쇠를 들고 빌딩을 나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문을 열 때, 나는 손에 든 열쇠 꾸러미를 주의 깊게 보았다. 그중 두 개는 새것 같았다. 이리저리 뒤적여 보면서 대체 어디 열쇠인지 의문이 들었다.우리 집 열쇠를 찾아 문을 열고 급히 침실로 달려갔다. 콩이가 아직 깊이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침대 앞에 주저앉았다. 다행이야!나는 손에 든 묵직한 열쇠를 쳐다보았다. 그 두 개의 새 열쇠는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