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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엎친 데 덮친 격

난 씁쓸하게 웃으며 알겠다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지금 이 순간, 이미연이 내 남편에게 꼬리를 치는 여우로 느껴졌으며 내 앞에서는 자기 계발을 하라고 그렇게 구구절절 설득하더니 지금은 내 남편 앞에서 한가한 여자라고 비꼬다니. 진짜 너무 소름이 돋았다.

인제 보니 신호연을 봤다고 얘기한 것도 괜히 마음이 뜨끔해서 나를 떠본 것이 분명했다. 그날 밤 신호연도 나에게 이미연을 본지도 꽤 됐다고 말했던 게 생각이 났다.

가장 친한 사람에게 농락을 당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 낯선 도시에서 유일하게 진심으로 최선을 다한 두 사람인데 이렇게 대놓고 날 바보로 만들다니. 이제 아무도 믿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난 창문을 빤히 바라보면서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신호연에게 전화를 걸었고 내 예상대로 그의 대답은 이미연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화가 치밀어 올라서 찻집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핸드폰이 울렸고 콩이가 어린이집 미끄럼틀에서 떨어졌다는 선생님의 전화였다.

화들짝 놀란 마음에 택시를 잡고 병원으로 향하면서 신호연에게 전화를 걸어 딸이 사고가 났다고 전했다.

나와 신호연은 거의 동시에 병원에 도착했고 응급실에 누워있는 콩이를 발견하자마자 아이가 땀까지 줄줄 흘리며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마음을 꾹 참고 선생님 품에서 아이를 건네받아 품에 꼭 안은 채, 그들을 원망했다.

똑같이 놀란 신호연은 의사에게 콩이 상황을 물어보았고 의사가 검사 결과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아이가 어리고 몸이 유연한 덕분에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이마에 상처가 많이 생겨서 뇌진탕이 의심되기도 하기에 병원에 입원해서 관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더군다나 병원에 오기 전에 구토 현상도 있었다고 한다.

콩이 담당 선생님은 너무 놀라서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될 정도로 울고 있다가 신호연과 원장 선생님을 쳐다보며 연신 사과를 했다.

신호연도 기분이 언짢긴 했지만 이성적으로 아이의 사고 과정을 물었고 원장 선생님은 미끄럼틀에서 한 통통한 남자애한테 밀려 떨어졌다고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그 말에 난 소름이 쫙 돋았다. 미끄럼틀 높이가 적어도 1.5 미터는 될 텐데.

“당신들 대체 아이를 어떻게 돌본 겁니까? 부모들이 당신들을 믿고 아이를 맡겼는데 어떻게 이런 상황이 생길 수 있어요?”

참다못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갑작스러운 나의 반응에 신호연이 흠칫 놀란 듯했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난 단 한 번도 이렇게 소리를 지른 적이 없었기에 품에 안겨 있던 콩이도 화들짝 놀라서 몸을 바르르 떨다가 눈물을 왈칵 쏟았다.

신호연이 다급하게 날 위로했고 원장 선생님은 미안한 얼굴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입원 수속을 밟은 뒤, 병실까지 안배해 줬다.

급한 상황이 마무리되자마자 이미연에게서 전화가 왔고 나에게 어디냐고 묻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내가 어디 있는지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그녀가 가소로웠지만 그래도 콩이가 다쳐서 병원에 왔다고 얘기해 주었다.

조금 지나자 이미연이 다급한 모습으로 병실에 찾아와 콩이의 상황을 살폈고 마침 신호연도 병실에 있었으며 두 사람은 최대한 덤덤한 척했지만 난 그들 마음속의 소리가 들렸다.

특히 신호연은 불안하고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벌써 회의가 끝난 거야?”

일부러 모른 척하며 묻자 이미연이 얼버무리며 대충 대답했다.

“응! 심각하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어. 근데 무슨 일로 전화했어?”

“그냥! 내가 많이 한가하잖아. 호연이가 널 본지 꽤 됐다고 해서 점심에 밥이나 같이 먹을까 해서 전화를 했지!”

말을 하면서 이미연을 빤히 쳐다보았더니 그녀는 나를 힐끔거리면서 담담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래! 나중에 콩이가 괜찮아지면 내가 너희 가족에게 맛있는 거 쏠게!”

말을 하던 이미연은 콩이의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알았지, 콩이야? 나중에 우리 콩이가 먹고 싶다는 거 이모가 다 사줄게!”

콩이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서러운 듯 입을 삐죽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난 역겨운 듯 이미연의 손을 밀쳐냈다.

‘어디서 좋은 사람인 척하는 거야? 벌써 새엄마 역할을 하려는 건가? 아이부터 공략하려는 셈이야? 난 너에게 이 모든 걸 물려줄 생각이 전혀 없어!’

이미연은 이상한 낌새를 느낀 듯 흠칫하다가 조심스럽게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너 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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