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씁쓸하게 웃으며 알겠다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지금 이 순간, 이미연이 내 남편에게 꼬리를 치는 여우로 느껴졌으며 내 앞에서는 자기 계발을 하라고 그렇게 구구절절 설득하더니 지금은 내 남편 앞에서 한가한 여자라고 비꼬다니. 진짜 너무 소름이 돋았다.인제 보니 신호연을 봤다고 얘기한 것도 괜히 마음이 뜨끔해서 나를 떠본 것이 분명했다. 그날 밤 신호연도 나에게 이미연을 본지도 꽤 됐다고 말했던 게 생각이 났다.가장 친한 사람에게 농락을 당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 낯선 도시에서 유일하게 진심으로 최선을 다한 두 사람인데 이렇게 대놓고 날 바보로 만들다니. 이제 아무도 믿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난 창문을 빤히 바라보면서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신호연에게 전화를 걸었고 내 예상대로 그의 대답은 이미연과 완벽하게 일치했다.화가 치밀어 올라서 찻집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핸드폰이 울렸고 콩이가 어린이집 미끄럼틀에서 떨어졌다는 선생님의 전화였다.화들짝 놀란 마음에 택시를 잡고 병원으로 향하면서 신호연에게 전화를 걸어 딸이 사고가 났다고 전했다.나와 신호연은 거의 동시에 병원에 도착했고 응급실에 누워있는 콩이를 발견하자마자 아이가 땀까지 줄줄 흘리며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마음을 꾹 참고 선생님 품에서 아이를 건네받아 품에 꼭 안은 채, 그들을 원망했다.똑같이 놀란 신호연은 의사에게 콩이 상황을 물어보았고 의사가 검사 결과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아이가 어리고 몸이 유연한 덕분에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이마에 상처가 많이 생겨서 뇌진탕이 의심되기도 하기에 병원에 입원해서 관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더군다나 병원에 오기 전에 구토 현상도 있었다고 한다.콩이 담당 선생님은 너무 놀라서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될 정도로 울고 있다가 신호연과 원장 선생님을 쳐다보며 연신 사과를 했다.신호연도 기분이 언짢긴 했지만 이성적으로 아이의 사고 과정을 물었고 원장 선생님은 미끄럼틀에서 한 통통한 남자애한테 밀려 떨어졌다고
“지아가 지금 기분이 안 좋아!”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신호연이 나서서 설명을 하다가 이내 내 어깨에 손을 올려놓은 채, 힘을 살짝 주면서 다정하게 말했다.“여보, 걱정하지 마. 의사 선생님도 괜찮다고 했어. 집에 가서 조금만 주의하면 된대!”집이라는 말에 자극을 받아 순간 이성을 잃어버린 난, 신호연을 밀어버리고 벌떡 일어나 병실을 나서서 눈물을 흘렸고 이미연이 다급하게 나를 따라 나왔다.갑작스러운 모습에 병실에 있던 콩이도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지아야, 너 왜 그래? 아이가 놀라잖아! 기분이 안 좋아도 아이를 위해서 좀 참아야지!”이미연이 나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렸고 화가 치밀어 오른 난 그녀를 노려보며 소리를 질렀다.“참아? 내가 어떻게 참아?”이성을 잃은 나 자신에 정신이 번쩍 들어 겨우 감정을 억누르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입꼬리를 덜덜 떨며 말을 이어갔다.“너 먼저 돌아가. 우린 괜찮아. 네가 얼마나 바쁜데 네 일에 지장을 주면 안 되지!”말을 마친 뒤, 눈물을 닦고 이미연을 지나쳐서 병실로 돌아왔다. 콩이를 다독여주고 있는 신호연을 밀쳐내고 콩이 곁에 앉아 눈물을 뚝뚝 흘렸다.곁으로 밀려난 신호연은 멍한 표정으로 자리에 굳어 있다가 이내 다정하게 날 위로했다.“걱정하지 마. 응? 아이가 놀라잖아!”한참 지나고 나서야 병실로 돌아온 이미연은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입술만 만지작거리고 있었고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어색했다.“지아야, 나 먼저 갈게. 너무 마음 졸이지 말고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전화해!”조심스럽게 말을 하던 이미연은 돌아서서 콩이에게도 인사를 했다.“콩이야, 이모 이만 가볼게. 얼른 나아서 이모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당신 미연이를 오랜만에 보는 거잖아. 좀 바래다줘!”난 눈물을 닦으며 신호연에게 눈치를 주었고 흠칫하던 신호연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그래! 당신 그만 울어! 알겠지?”신호연이 이미연을 바래다주려고 병실을 나서던 순간, 이미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바래다줄 필
넘어진 후의 콩이는 조금 놀랐는지 하루 종일 내 품에 달라붙어 조금도 떨어지지 않으니 난 속이 타들어 갔다.신호연은 늙은 여우처럼 나에게 조금의 틈도 주지 않았다. 제시간에 출근하고, 제시간에 집에 돌아와 아무런 허점도 보이지 않았다.신호연이 가져온 모든 물건은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때로는 내 자신이 망상증에 걸린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점심, 겨우 콩이를 재우고 보니 집에 신선한 야채와 과일이 전혀 없었다. 콩이가 깊이 잠든 것을 보고 빨리 시장에 다녀오려 했다.시장은 집에서 가까웠고, 옷을 갈아입기 귀찮아 바로 집 문을 나섰다.하지만 장을 보고 돌아온 나는 멍해지고 말았다. 열쇠가 보이지 않았다!한참이나 곰곰이 생각한 나는 괴로워하며 머리를 때렸다. 틀림없이 나올 때 열쇠를 챙기지 않았을 것이다.신호연에게 전화를 거니, 그는 작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회의 중이야. 지금 못 가. 연아한테 전화해 봐!”또 회의? 핑계는 여태껏 변하지도 않네.난 하는 수없이 신연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에게 집 열쇠가 있었다. 만약 이번 기회에 그녀의 열쇠를 돌려받을 수 있다면 더욱 완벽했다.연결음이 한참 울린 후에야 신연아는 전화를 받았다. 많은 사람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고, 신연아의 목소리가 맑게 들려왔다.“새언니, 무슨 일이에요?”“열쇠를 집에 놓고 외출을 했어요. 열쇠 좀 갖다주시겠어요?”“저 지금 밖에 있어요. 갈 시간이 없네요.”신연아는 단칼에 거절했다. 그리고 옆 사람에게 말하는 듯했다.“저기… 잠깐만 기다려!”“그럼 어디예요? 제가 갈게요.”열쇠를 돌려받을 좋은 기회라 나는 얼른 말했다.신연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전화 너머에서 누군가 말했다.“아가씨, 캐비닛 위치 좀 봐주세요.”곧 전화가 끊어졌다.캐비닛? 무슨 캐비닛?신연아가 무슨 캐비닛을 보고 있는지 영문을 몰라 답답했다. 집에서 금이야 옥이야 자란 아가씨라, 기름병이 넘어져도 부축하지 않는데 무슨 캐비닛을 보고 있을까?
그 젊은 직원이 아첨하는 목소리로 ‘신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날벼락을 맞은 것 같았고,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홱 돌아섰다. 내 직함을 들먹이며 사기를 치고 다닌 이미연이 나를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확인하고 싶었다.나는 매서운 눈빛으로 뒤를 보았다. 이미연이 서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신연아가 보였다.옷은 화사하고 멋스럽게 차려입고, 린넨 색의 긴 머리는 웨이브를 넣어 풀어헤쳤고, 작은 얼굴은 정교하게 화장했다. 평범했던 얼굴에 약간의 요염함이 더해졌다.신연아는 우아한 발걸음으로 다가와 여유롭게 웃으며 입을 열려고 하는데, 사악한 기운을 띠며 고개를 홱 돌린 나를 보고 갑자기 눈이 움츠러들었다. 의아한 듯 자리에 멈추더니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오늘 우리 두 사람의 모습은 확실히 누가 봐도 그녀가 ‘신 사모님’이고 난 가정부였다.옷이 날개라고, 파자마 차림은 절대 명품의 아우라를 따라갈 수 없었다.신연아를 보고 신 사모님이라고 불렀다고?아주 제멋대로인 여동생이야.그 젊은 직원은 나의 반응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신연아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신연아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으니 젊은 직원은 나를 한번 힐끗 보더니 신연아에게 말했다.“신 사모님...”“잠깐!”난 그녀의 말을 끊고 신연아를 한번 본 다음 그 직원에게 물었다.“누가 신 사모님이라는 거죠?”젊은 직원은 나를 보더니 약간 의아한 미소를 지었다. 경멸하는 눈으로 나를 보더니 말했다.“이분은 10층 신흥 건재 대표님의 사모님이세요!”난 순간 참지 못하고 ‘푸’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비록 젊은 직원의 태도가 기분 나빴지만, 자칭 ‘신 사모님’의 출현으로 며칠 동안 나의 응어리가 풀린 셈이다.아무리 철이 없는 시누이라도 정도가 있지.‘신 사모님’의 자리까지 사칭하다니!내가 제멋대로 웃으니 현장의 여러 직원들도 어리둥절해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분명히 네 글자가 적혀있었다. 미친 여자!나는 신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리는 입을 열지 않았다. 신연아는 고개를 숙이고 입을 비쭉거리며 엘리베이터에 기대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신호연처럼 그녀의 못된 버릇을 받아 줄 마음이 없었다.신호연의 사무실에 도착해서 보니, 그는 진짜 회의 중이었다. 부하직원이 그를 불렀고, 나와 신연아의 모습을 본 신호연은 의아해하며 우리 둘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그리고 나의 옷차림에 시선이 고정되었다.“당신 옷차림이...”“창피하다 이거지? 장 보러 시장에 가는데 뭣하러 차려입어?”나는 신호연의 말을 끊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당연히 알고 있어 퉁명스럽게 말했다.“열쇠나 빨리 줘. 콩이 아직도 자고 있어.”신호연은 서둘러 사무실 책상으로 걸어갔고, 문서 가방에서 열쇠 꾸러미를 건네주었다.“내가 연아한테 말해서 열쇠 가져가라고 했잖아?”열쇠를 받아든 나는 불쾌하게 신연아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아가씨가 나한테 열쇠를 갖다 줄 시간이 어디 있어? 여기서 ‘신 사모님’행세하는 게 열쇠보다 더 중요한데.”“당신은 ‘신 사모님’이랑 좋은 시간 보내. 난 ‘신 사모님’을 행차하게 할 자격이 안 돼.”이번만큼은 신연아의 체면을 세워 줄 생각이 없었다.“오빠라는 사람이 참 대단하기도 하지. 어떻게 자기 부인 타이틀까지 동생한테 내어줘?”말을 마친 나는 냉담한 얼굴로 돌아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집에 콩이가 자고 있으니 더 이상 그들과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나는 화가 잔뜩 난 채로 열쇠를 들고 빌딩을 나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문을 열 때, 나는 손에 든 열쇠 꾸러미를 주의 깊게 보았다. 그중 두 개는 새것 같았다. 이리저리 뒤적여 보면서 대체 어디 열쇠인지 의문이 들었다.우리 집 열쇠를 찾아 문을 열고 급히 침실로 달려갔다. 콩이가 아직 깊이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침대 앞에 주저앉았다. 다행이야!나는 손에 든 묵직한 열쇠를 쳐다보았다. 그 두 개의 새 열쇠는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왜 그래?”신호연은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힘들어서 그래? 잠깐 들어가서 쉬어. 내가 콩이랑 놀고 있을게.”나는 감정을 억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응, 힘들어. 그러면 잘 놀고 있어. 들어가서 눈 좀 붙일게.”나는 말을 마치고, 과일을 탁자 위에 놓았다.“콩이한테 먹여줘. 주방에 다른 것도 있어.”“그래, 들어가서 쉬어. 깨면 같이 나가서 밥 먹자!”신호연은 말하면서 포크를 집어 콩이에게 피타야를 먹였다.나는 돌아서서 침실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호흡이 가빠지더니 눈물이 흘러내렸다.보아하니 그 두 열쇠는 절대로 평범하지 않다. 급하게 집으로 달려온 것은 콩이가 걱정되어서가 아니라 열쇠를 돌려받기 위해서였다.바람난 남자는 너무 뻔뻔했다. 어쩌면 열쇠는 그 여자 집의 열쇠일지도 모른다.나는 저도 모르게 이미연이 생각났다. 2년 동안 사업이 번창해서 혼자 큰 아파트에 입주한지 오래되었지만 종래로 어디에 사는지 말한 적이 없었다. 나를 집으로 초대하지도 않았다. 보아하니 남자를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서였다.생각하면 할수록 분통이 터졌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배신당한 느낌에 구역질이 났다. 어쩐지 이미연이 나보고 신호연에게 속아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더라니.이건 나에 대한 노골적인 도발이었다.비록 이미연이 가짜 ‘신 사모님’이 아니더라도, 그녀는 절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다. 속에 꿍꿍이가 없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신연아 이 얼간이는 하필 이 지점에 일을 벌여 사태를 복잡하게 만들었지만, 이미연이 그날 신호연과 함께 쌍으로 거짓말을 한 것은 분명 뭔가 있다.알려져서는 안 되는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 분명하다.보아하니 신호연은 진작에 날 방비하고 있었다. 어쩐지 여태까지 아무런 낌새도 찾을 수 없더라니. 대체 언제부터 신호연이 밤마다 도둑처럼 날 방비하고 있었지?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가슴에 큰 바위가 눌린 것처럼 답답하고 아팠다.밖에서 부녀는 재밌게 놀고 있는데
서강훈은 우리 회사의 마케팅 부서의 총괄 담당자이다. 우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아주 열정적으로 맞이했다. 콩이와도 놀아주면서 우리의 주문을 도와주었다.서강훈은 마케팅 부서를 담당하고 있으니 내 자리를 이어받은 셈이다.서강훈은 내가 채용하여 회사로 들여왔고 나랑 1년 넘게 일했다. 그 당시 마케팅 부서는 발로 뛰는 단일한 마케팅 방식이었고 다섯 명의 직원밖에 없었다. 서강훈은 대학을 졸업하고 머리가 잘 돌아가, 죽은 사람도 입으로 살려내는 마케팅에 최적화된 사람이었다.내가 임신한 후, 내 자리를 이어받아 신호연의 밑에서 집중 트레이닝을 받으며 자랐다.지금은 이미 신호연의 오른팔이자 왼팔이었다.이 식당에 자주 오는지, 우리를 보자마자 매니저를 찾아 단독 룸을 마련해 주었다. 신호연의 말보다 잘 먹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계속 우리 대표님이라고 강조하며 절대 선을 넘지 않는 모습이었다.신연아는 서강훈과 잘 아는 사이인 듯 주문할 때 눈을 마주치며 말을 주고받았다.나는 콩이를 데리고 주문은 신경 쓰지 않고 바로 룸으로 들어갔다. 이 방면에서 신호연은 절대 믿을 수 있었다.음식을 주문하고 서강훈도 따라 들어왔다. 마침 오랫동안 그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앉아서 이야기하자고 했다.나는 그에게 지금 회사의 상황을 물었고, 서강훈은 하나도 빠짐없이 설명하면서 신호연을 흘끔 쳐다보았다. 지금의 서강훈은 내가 회사에 있을 때의 서강훈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금의 주인은 신호연이니, 그의 눈에 난 그저 한물간 대표일 뿐이었다. 지금의 대표에게 잘 보이려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난 속으로 섭섭했다. 어쩌면 이미연의 말처럼 난 이미 도태되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신흥 건재에서는 이미 과거형이 되었고, 신 사모님이라는 소리도 충분히 나를 존중하는 호칭이다.어느 날 나와 신호연이 헤어지게 되면 이 사람들은 아예 날 모른 척할 것이다. 신호연도 날 배신했는데, 누가 회사를 위해 피를 토해가며 술을 마시던 전처를 기억하겠는가?슬프게도 그때의 일로 나는 담
이상한 소리였다. 서로 잡아당기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마치...칸막이를 밀치고 나오려는데, 한 남자의 말소리가 들렸다.“이쁜이, 드디어 만났네.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나는 멍해졌다. 분명 서강훈의 목소리였다. 나는 문을 열려던 손을 갑자기 움츠렸다.서강훈이 이렇게 대담한 사람인 줄은 전혀 몰랐다. 그의 아내는 아주 괜찮은 여자인데도 밖에서 이런 짓을 하는 걸 보면 남자는 역시 똑같다.“뻥치지 마, 요즘 딴 년이랑 눈이 맞은 거 아니었어?”여자는 질투 섞인 말투로 말했다.“방금 문 앞에서 열정적이던 모습은 어디 갔어? 나한테는 왜 그만큼 열정적이지 않는 건데? 그런데도 내가 당신한테 중요한 사람이라고? 쳇. 입만 살았지.”“오해야. 널 얼마나 좋아하는데...”그리고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기다려 봐. 키스하고 싶어 미치겠어...”서강훈의 도발적인 말에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회사 대표님인데 당연히 열정적으로 모셔야지, 안 그래? 내 밥그릇을 잘 챙기지 않으면 뭔 돈으로 우리 이쁜이를 만나겠어?”“당신네 대표 정말 잘생겼더라. 잠깐... 왜 이렇게 서두르는 거야. 이따가 누가 와... 악!”분명 낯 뜨거운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조금 화가 난 나는 막 나가려는데 서강훈의 목소리가 들렸다.“아무리 잘생겨도 네가 가질 순 없어. 그분 주위에 어여쁜 꽃들이 얼마나 많은데, 넌 그냥 나만 잘 시중들면 돼.”나는 머리가 윙윙거렸다. 보아하니 신호연의 외도를 서강훈도 알고 있는 모양이다. 난 얼굴이 갑자기 화끈거렸다. 방금 말끝마다 사모님이라고 부르며 아첨하던 그 태도가 얼마나 가식적인가!사모님이라고 부르면서 속으로는 나를 얼마나 비웃었을까!휴대폰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며 가슴이 먹먹해났다.밖에서 나는 소리에 얼굴이 빨개진 나는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올라, 휴대폰을 켜고 조용히 칸막이를 열었다.하지만 소리만 있을 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가장 안쪽의 청소 도구실에서 흘러나왔다. 안에서는 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