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훈은 우리 회사의 마케팅 부서의 총괄 담당자이다. 우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아주 열정적으로 맞이했다. 콩이와도 놀아주면서 우리의 주문을 도와주었다.서강훈은 마케팅 부서를 담당하고 있으니 내 자리를 이어받은 셈이다.서강훈은 내가 채용하여 회사로 들여왔고 나랑 1년 넘게 일했다. 그 당시 마케팅 부서는 발로 뛰는 단일한 마케팅 방식이었고 다섯 명의 직원밖에 없었다. 서강훈은 대학을 졸업하고 머리가 잘 돌아가, 죽은 사람도 입으로 살려내는 마케팅에 최적화된 사람이었다.내가 임신한 후, 내 자리를 이어받아 신호연의 밑에서 집중 트레이닝을 받으며 자랐다.지금은 이미 신호연의 오른팔이자 왼팔이었다.이 식당에 자주 오는지, 우리를 보자마자 매니저를 찾아 단독 룸을 마련해 주었다. 신호연의 말보다 잘 먹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계속 우리 대표님이라고 강조하며 절대 선을 넘지 않는 모습이었다.신연아는 서강훈과 잘 아는 사이인 듯 주문할 때 눈을 마주치며 말을 주고받았다.나는 콩이를 데리고 주문은 신경 쓰지 않고 바로 룸으로 들어갔다. 이 방면에서 신호연은 절대 믿을 수 있었다.음식을 주문하고 서강훈도 따라 들어왔다. 마침 오랫동안 그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앉아서 이야기하자고 했다.나는 그에게 지금 회사의 상황을 물었고, 서강훈은 하나도 빠짐없이 설명하면서 신호연을 흘끔 쳐다보았다. 지금의 서강훈은 내가 회사에 있을 때의 서강훈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금의 주인은 신호연이니, 그의 눈에 난 그저 한물간 대표일 뿐이었다. 지금의 대표에게 잘 보이려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난 속으로 섭섭했다. 어쩌면 이미연의 말처럼 난 이미 도태되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신흥 건재에서는 이미 과거형이 되었고, 신 사모님이라는 소리도 충분히 나를 존중하는 호칭이다.어느 날 나와 신호연이 헤어지게 되면 이 사람들은 아예 날 모른 척할 것이다. 신호연도 날 배신했는데, 누가 회사를 위해 피를 토해가며 술을 마시던 전처를 기억하겠는가?슬프게도 그때의 일로 나는 담
이상한 소리였다. 서로 잡아당기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마치...칸막이를 밀치고 나오려는데, 한 남자의 말소리가 들렸다.“이쁜이, 드디어 만났네.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나는 멍해졌다. 분명 서강훈의 목소리였다. 나는 문을 열려던 손을 갑자기 움츠렸다.서강훈이 이렇게 대담한 사람인 줄은 전혀 몰랐다. 그의 아내는 아주 괜찮은 여자인데도 밖에서 이런 짓을 하는 걸 보면 남자는 역시 똑같다.“뻥치지 마, 요즘 딴 년이랑 눈이 맞은 거 아니었어?”여자는 질투 섞인 말투로 말했다.“방금 문 앞에서 열정적이던 모습은 어디 갔어? 나한테는 왜 그만큼 열정적이지 않는 건데? 그런데도 내가 당신한테 중요한 사람이라고? 쳇. 입만 살았지.”“오해야. 널 얼마나 좋아하는데...”그리고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기다려 봐. 키스하고 싶어 미치겠어...”서강훈의 도발적인 말에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회사 대표님인데 당연히 열정적으로 모셔야지, 안 그래? 내 밥그릇을 잘 챙기지 않으면 뭔 돈으로 우리 이쁜이를 만나겠어?”“당신네 대표 정말 잘생겼더라. 잠깐... 왜 이렇게 서두르는 거야. 이따가 누가 와... 악!”분명 낯 뜨거운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조금 화가 난 나는 막 나가려는데 서강훈의 목소리가 들렸다.“아무리 잘생겨도 네가 가질 순 없어. 그분 주위에 어여쁜 꽃들이 얼마나 많은데, 넌 그냥 나만 잘 시중들면 돼.”나는 머리가 윙윙거렸다. 보아하니 신호연의 외도를 서강훈도 알고 있는 모양이다. 난 얼굴이 갑자기 화끈거렸다. 방금 말끝마다 사모님이라고 부르며 아첨하던 그 태도가 얼마나 가식적인가!사모님이라고 부르면서 속으로는 나를 얼마나 비웃었을까!휴대폰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며 가슴이 먹먹해났다.밖에서 나는 소리에 얼굴이 빨개진 나는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올라, 휴대폰을 켜고 조용히 칸막이를 열었다.하지만 소리만 있을 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가장 안쪽의 청소 도구실에서 흘러나왔다. 안에서는 나의
신연아는 내 말이 듣기 싫었는지 언짢게 말했다.“언니! 욕심이 너무 큰 거 아니에요? 우리 오빠가 언니한테 얼마나 잘하는데요? 오빠 혼자 밖에서 힘들게 일하니까 언니가 전업주부로 편안한 생활을 하는 거 아니에요? 무슨 자격으로 오빠한테 그런 말을 해요? 적당히 하세요.”나는 차갑게 신연아를 바라보았다.“왜요? 오빠한테 뭐라고 하니까 기분 나빠요? 언제부터 우리 대화에 끼어들 자격이 있었죠?”신연아는 어이없다는 듯 눈을 흘겼다.“난...”“전업주부가 어때서요?”난 신연아의 말을 뚝 끊었다.“내가 전업주부인 게 그렇게 마음에 걸렸나 봐요? 그래서 회사에 가서 사모님 놀이 한 거예요? 재밌었어요?”나는 공격적인 눈빛으로 신연아를 바라보았다. 예전엔 내가 너무 현모양처라 그녀까지도 나를 얕잡아보았다.“오빠 혼자서 일해요? 오빠한테 직접 물어봐요. 내 앞에서 이런 말 할 자격이 있는지!”난 신연아에게 다시 입을 열 기회를 주지 않았다.“내가 서울 바닥을 다 뛰어다니면서, 비굴하게 위출혈이 날 때까지 술을 마신 건 아가씨가 모르는 거예요? 아니면 그쪽 식구들은 다 모르는 거예요? 오빠도 감히 혼자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말 못 하는데, 아가씨가 나한테 자격이 없다고 하는 거예요?”신연아는 화가 단단히 나서 신호연을 바라보았다.하지만 난 입을 다물지 못했다.“내가 일궈놓은 성과를 누리고, 우리 집 돈을 쓰면서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잖아요. 그럼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은 아가씨가 자격이 있는 걸까요?”나는 전에 없던 차가운 눈으로 신연아를 쏘아보았다.“우리 집에 계속 손 내밀고 싶다면 얌전히 있어요. 앞으로 내 앞에서 이런 말 따위 하지 말고요. 난 아가씨 오빠가 아니라서 못된 버르장머리를 받아줄 의무가 없어요.”“너!”“나보고 적당히 하라고요? 이 문제는 앞으로 아가씨한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다시 얘기하죠.”나는 화가 치밀어 오른 신연아를 경시하며 쳐다보고, 신호연에게 말했다.“당신 동생 계속 버릇없게 내버려 둘 거야? 최소한의 예의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콩이는 잠이 들었다.차를 세우고 신호연은 콩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 눕혔다.나는 콩이를 침대에 잘 눕히고 샤워하러 가려 했다.신호연의 전화는 수시로 울렸다. 그는 힐끗 쳐다보고는 끊어버렸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내 앞에서 절대 받지 않을 것이라는 걸 난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잠옷을 가져가는 김에 휴대 전화도 챙겼고, 욕실에 들어가서 물을 틀어놓고 문틈 사이로 바깥의 동정을 살폈다. 신호연은 역시 목소리를 낮추며 통화하고 있었다.나는 이미연에게 전화를 거니, 통화 중이라는 안내음이 흘러나왔다.역시나, 신호연은 분명 이미연과 통화 중이다. 나는 화가 나서 손이 떨렸다.나는 대충 헹구고 욕실을 나섰고, 신호연은 나의 움직임을 듣고 얼른 전화를 끊고 베란다에서 돌아와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여보, 다 씻었어?”그는 가식적인 웃음을 보이며 내 손에 있는 수건을 가져가 내 뒤에 서서 머리를 닦아줬지만 정신은 딴 데 팔린 듯했다.“누구 전화야?”나는 담담하게 물었다.“엄마야!”신호연은 머리를 굴리지도 않고 곧바로 대답했다. 내 마음속에는 갑자기 불길이 치솟았다.콩이가 갑자기 울자, 신호연은 당황해서 손에 들고 있던 수건을 나에게 주고 콩이의 방으로 가며 대화를 회피했다.나는 수건을 들고 생각에 빠졌다. 그는 또 거짓말을 하고 있다. 이 저녁에 시어머니가 전화했을 리가 없다. 나는 욕실로 돌아가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시어머니는 아들에게 전화한 적이 없다고 한다.나는 욕실의 벽에 기대어 무력감을 느꼈다.신호연은 콩이를 안고 화장실로 들어왔다. 콩이는 오줌이 마려워서 잠에서 깼던 것이다.콩이는 여전히 졸려서 눈도 뜨지 못하고 오줌을 눴다. 저녁에 음료를 너무 많이 마신 탓인 듯했다.갑자기 신호연의 전화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고, 좁은 화장실에서 그 벨 소리가 상당히 귀에 거슬렸다. 신호연은 당황한 나머지 손에 있던 콩이를 잊은 채 전화를 챙기러 갔다.콩이는 그대로 떨어져 변기 위에 내동댕이쳐졌고, 나는
우리 두 사람 모두 깜짝 놀랐다. 신호연의 눈은 갑자기 움츠러들었고, 나의 눈은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 나는 공격적으로 그를 바라보며 의심할 여지없이 말했다.“받아!”신호연의 몸은 굳어지더니 그 자리에 뻣뻣하게 서 있었다.“신호연, 양심이라는 게 있다면 내 앞에서 전화받아! 마지막 기회야!”나는 울고 있는 콩이를 꼭 껴안고,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말했다.“세상 모든 남자들이 배신해도 당신은 아닐 줄 알았어. 당신이 날 저버린 거야.”난 마침내 마주하고 싶지 않은 말을 내뱉었다. 우리 둘 사이에 배신이라는 단어가 생길 줄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말을 마친 나는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고, 콩이의 엉엉 소리와 함께 어우러져 끝없는 슬픔과 절망에 빠졌다. 신호연은 나의 협박에 천천히 휴대전화를 꺼냈다. 벨 소리는 더욱 맑게 울려 현재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았다.나는 신호연을 쳐다보고, 신호연은 제자리에 서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주먹을 움켜쥐고 어금니를 꽉 깨물고 명령했다. “받아!”신호연은 휴대전화를 힐끗 쳐다보더니 말했다.“연아야!”“받아”!누구든 그에게 추호의 기회도 주고 싶지 않았다.그는 잠시 망설였지만 나의 굳건한 표정을 보고는 하는 수 없이 전화를 받고 서둘러 말했다.“연아야, 나 언니랑 얘기 중이니까 할 말 있으면 내일 해.”“그래, 그럼 내일 다시 전화할게!”전화기 너머에서 신연아의 목소리가 들렸다.신호연은 억울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예상치 못한 결과에 나는 멍해졌다. 콩이가 엄마를 외치며 우는소리에 더 이상 캐묻기 곤란했다. 나는 콩이를 안고 방으로 가서 문을 세게 닫았다.“여보, 여보.”문이 닫히는 순간,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분명 그의 가면을 찢을 수 있었는데, 거의 다 왔는데. 관건적인 순간에 일이 그르친 건 분명 신연아가 오빠를 감싸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신연아는 충분히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신연아와 나는 절대 화목하게 지낼 수 없는 존재이다.지금의 신호연은
쉴 새 없이 울리는 벨 소리를 들으며 어떻게 나의 심정을 묘사해야 할지 몰랐다. 신호연이 바로 나간 이 기가 막힌 타이밍에 이미연이 전화가 왔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분명 신호연이 나가서 상황을 보고했을 것이다.나는 담담하게 전화를 받았다.“응! 미연아!”“뭐 하고 있었어? 콩이는 괜찮아?”이미연의 목소리는 상당히 경쾌하고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나는 마음속으로 비뚤어진 생각을 했다. 나랑 신호연이 한바탕 싸웠으니 이미연은 당연히 기뻐할 수밖에 없지!“오늘 한가하나 봐? 이른 아침부터 웬 전화야?”나는 비꼬아서 말했다.“내가 뭔 로봇도 아니고, 당연히 에너지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내가 밥 사줄까?”이미연은 웃으며 말했다.“콩이 아직 안 데려다줬어. 집에서 나랑 놀고 있어.”나는 덤덤하게 대답했다.“그래? 그럼 잘 됐네. 나한테 콩이 좀 보여줘. 저번엔 네가 화가 많이 나서 오래 못 봤잖아.”이미연은 장난스레 말했다.생각해 보니 이건 절호의 기회였다. 이미연이 먼저 적극적으로 나섰는데, 이 기회를 잘 이용하지 않는다면 그녀의 열정에 미안한 격이다.“좋아. 뭘 먹든 상관없어. 그냥 조용히 있고 싶어. 너희 집으로 갈게. 아직까지 날 한 번도 집으로 초대한 적 없잖아. 급한 일 있을 때 네가 연락이 안 되면 난 어디 가서 널 찾아? 집에 꿀단지라도 파묻었어? 왜 그렇게 꽁꽁 숨겨.”나는 평소의 대화방식대로 가볍게 말했다.이미연은 망설이는 것 같았고, 나는 휴대전화를 꼭 움켜쥐었다.“설마 거절할 거야?”이미연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나는 일부러 자극했다.“뭔 소리야? 내가 왜 거절해. 우리 집에 남자가 숨어있다고 해도, 남자를 쫓아내고 널 불러야지.”그녀는 통쾌하게 말했다.“그래, 그럼 우리 집에서 만나자. 조금 있다가 내가 데리러 갈 테니까, 너랑 콩이는 집에서 나 기다리고 있어. 내가 데리러 갈게!”전화를 끊은 나는 콩이를 안고 마음이 무거웠다. 이 모든 일이 사실이 아니라면 얼마나 좋을까. 깨어나면 사라지는 악
한 바퀴 둘러보았지만 남성용 슬리퍼 하나 나오지 않았다. 그 사실이 나를 실망스럽게 만들었다. 심지어 모든 흔적을 다 지워버린 후 우리를 데리러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시간, 흔적을 지워버리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정말 쓸데없는 고생이 아닌가. 이미연은 내 정신이 다른 곳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챈 건지 콩이에게 요즘 간식거리를 꺼내어 주고 대형 스크린의 텔레비전을 켜서 애니메이션을 틀어 준 다음 내 옆으로 와서 앉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살짝 부담스러웠다. 그녀는 손을 내 손 위에 포갠 후 내 손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얘기해 봐.”순간 뜨끔해진 나는 고개를 돌려 이미연을 보며 경계심을 세운 채 손을 빼냈다. “뭘 얘기해 보라는 거야?”“네가 속앓이하는 얘기 말이야.”부드럽게 얘기하는 이미연은 마치 나를 떠보는 듯했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온다. 그런 이미연을 마주하고 있으니 저도 모르게 말투마저 차가워졌다. “속앓이라니? 무슨 소리야?”이미연의 입꼬리가 작게 움찔거렸다. 그리고 바로 일어나서 말했다. “그래 그럼 일단 콩이랑 놀아주고 있어. 가서 맛있는 거 준비해 줄게.”이미연은 외투를 벗고 옷을 갈아입은 후 주방으로 들어갔다.전혀 집중할 수 없었던 나는 스크린에 띄워진 애니메이션을 보며 생각이 복잡해졌다.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갑자기 이미연의 휴대폰이 울렸다. 예민하게 오감을 세운 나는 그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그 전화가 마치 신호연이 걸어온 전화일 것 같았다. 나는 몸을 움직여 주방과 가장 가까운 소파로 가서 앉았다. 이미연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통화를 하는 것이 들렸다. 나랑 있을 때는 가식 없는 목소리였지만 지금은 간드러진 목소리로 대화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대화 내용이 잘 들리지 않았다.심정이 이루어 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했다. 나는 바로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갔다. 하지만 내가 주방으로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이미연이 통
믿을 수가 없었다. 내 손안의 두 열쇠는 전혀 비슷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 ‘왜 다른 거지? 내가 착각했나…’그 여자가 이미연이 아니거나, 아니면 신호연이 다른 열쇠가 있다거나. 하여튼, 지금 당장 내 눈앞에 펼쳐진 사실은 의외의 결과였다. 기뻐해야 할지 머리 아파해야 할지 몰랐다. 나의 머릿속은 순식간에 백지장이 되었다.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나는 고개를 홱 돌렸다. 그 순간, 나는 너무 놀라서 뒤로 자빠질 뻔했다. 이미연이 바로 내 뒤에서 덤덤하게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원하는 답은 찾았어?”여유로운 말투는 마치 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는 사람 같았다.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이미연을 보고 있지만 더욱더 그녀를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내 행동을 들킨 것도 부끄러웠다. 나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이미연과 눈을 똑바로 맞췄다. 이렇게 된 이상 솔직하게 말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차갑게 이미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미연아,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거야? 왜 날 속인 거야? 신호연이랑은 무슨 관계고!”너무도 덤덤한 이미연의 태도에 나는 그만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난 처음부터 널 속여왔어. 네가 말하는 게 뭔지 알아. 내가 찻집에서 신호연을 만난 걸 얘기하는 거지!”이미연은 여전히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나를 쳐다보았다. “네가 다치지 않기를 바라니까! 나 이미연은 널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어. 네 애인을 뺏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아! 우리 사이 우정이 그렇게 얄팍했니?”이미연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나를 압박하며 물었다. 콩이는 우리의 분위기가 심각해진 것을 느꼈는지 짧은 다리로 기어와 내 다리를 안았다. 커다란 눈망울로 나와 이미연을 번갈아 보던 콩이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엄마!”나는 재빨리 무릎을 굽혀 쪼그려 앉아 콩이를 안아 토닥토닥 위로를 해주었다. “걱정하지 마, 아가. 엄마랑 미연 이모는 그저 토론하고 있는 거야. 절대로 싸우는 게 아니야.”이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