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사람이 응당 해야 할 의무입니다.” 송경재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저 녀석은 누구지?” 진완선은 임지환을 한 번 힐끗 보며 경멸이 섞인 눈길을 보냈다.“여보, 이분은 내가 자주 당신과 언급했던 임 대사야.”홍진이 이 기회에 임지환을 소개했다.“네가 바로 그 임지환이야? 어떻게 감히 우리 집에 들어올 엄두를 낸 거야?”진완선은 임지환을 불쾌한 눈빛으로 쳐다봤다.“사모님, 우리가 예전에 만난 적이 있나요?”임지환은 진완선의 말에 당황해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너만 아니었다면 내 불쌍한 동생이 이씨 가문의 오래된 저택으로 유배를 당하지 않았을 거잖아. 이 모든 건 다 너 때문이야!”진완선은 눈에 띄게 흥분해하며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임지환은 살짝 놀랐지만 홍진과 이성강이 처남 관계라는 것을 떠올리자 이 상황이 이해되었다.홍진은 얼굴이 굳어지며 조용히 아내를 나무랐다. “여동생과 매형은 그럴 만한 죄가 있었잖아. 그걸 왜 임 대사 탓으로 돌려? 이런 어이없는 말은 다시 입 밖에 꺼내지 마.”그러고는 급히 임지환에게 해명했다. “임 대사, 제 아내는 보시다시피 직설적인 성격이라서요. 절대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괜찮아요. 난 양심에 거리낄 일을 한 적이 없으니까요. 딴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제게는 상관없는 일이에요.”임지환은 담담하게 웃으며 진완선의 언행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양심에 거리낄 일이 없다고? 네가 중간에서 방해하지 않았더라면 성강 부부가 이런 꼴을 당하기나 했겠어?”하지만 진완선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따졌다.“어머님, 우리 할아버지는 이미 둘째 삼촌에게 매우 관대하게 대해주셨어요. 삼촌이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면, 삼촌을 감옥에 보내도 절대 과하지 않아요.”임지환 옆에 있던 이청월이 참지 못하고 임지환을 변호했다.“네가 함부로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넌 가만히 있어.”진완선은 이청월를 흘겨보며 쌀쌀하게 말했다. “이 사람이 서연을 구해준 사실 하나로 우리 집 문턱을 넘을 수 있었던 거야. 안
“왜 선물을 준비해야 하죠?” 임지환이 웃으며 되물었다.“이렇게 뻔뻔한 사람은 처음 보네. 선물도 준비하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다니.” 진완선은 비웃으며 비꼬았다.“어머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송경재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임 대사가 이렇게 수수한 옷차림을 한 걸 보니 아마 돈이 없어서 적당한 선물을 준비할 수 없었을 거예요.”홍서연은 어머니와 송경재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모아 임지환을 에둘러 비꼬는 것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임 대사가 와주신 것만으로도 최고의 선물이에요.” 홍서연이 소리를 높여 반박했다.“우리 딸이 맞는 말을 했어요. 임 대사 같은 분이 제 체면을 봐서 흔쾌히 와주신 것만으로도 우리 홍씨 가문에게는 큰 영광입니다.” 홍진은 진완선을 힐끔 쳐다보고는 말했다. “자, 다들 서 있지 말고 얼른 앉아서 식사합시다. 임 대사, 상석에 앉으세요.”말을 마치고 홍진은 직접 임지환을 상석으로 모셨다.임지환도 주저하지 않고 바로 자리에 앉았다.“흥!”홍진이 임지환을 이 정도로 두둔해 주자 송경재는 냉소를 지으며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다시 기회를 노렸다. 진완선도 인상을 찌푸린 채 입을 다물었다. 홍진이 이 자리에 없었다면 얼굴을 붉히며 임지환을 이미 내쫓았을 것이다.“임 대사, 제가 만든 탕수육을 드셔보세요. 이 송어 요리도 괜찮을 거예요. 이 요리를 배우느라 제가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거든요.”저녁 식사가 시작되자 임지환의 오른손 편에 앉은 홍서연은 임지환에게 쉬지 않고 음식을 덜어주었다.임지환의 그릇이 거의 넘칠 것처럼 보이자 홍진은 진심으로 부러워하며 웃었다. “역시 임 대사는 대단하신 분이군요. 집에서 제가 이런 대우를 받은 적이 없어요.”“아빠, 그건 다르죠.”홍서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임 대사는 제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에요. 만약 임 대사가 없었다면 난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거예요.”“꼭 그런 건 아니야... 만약 그 당시에 내가 알았더라면 분명 아는 인
“임 대사, 인정하기 싫지만 당신의 실력이 대단한 건 확실한 것 같네요. 우리 형님이 그렇게 많은 부하를 데리고 갔는데, 게다가 형님과 부하들은 총까지 들고 있었죠. 당신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도 여전히 우리 형님을 죽일 수 있다니. 이런 비범한 능력만으로도 대사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죠. 하지만... 아무리 철저하게 뒤처리한다고 해도 빈틈은 있는 법이죠. 당시 우리 송씨 가문 사람들 외에도 우씨 가문의 보안팀이 있었어요. 내가 조금만 강압적으로 고문하니 그 사람들이 전부 순순히 자백했어요.”송경재는 여유로운 태도로 태연하게 말했다.“그랬군요. 그다음은요?”임지환은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입에 넣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물었다.“솔직히 말해서, 당신의 담력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할아버지가 이미 수배령을 내렸어요. 아마 머지않아 당신에게 큰 재앙이 닥칠 거예요.” 송경재는 연민의 눈빛으로 임지환을 측은하게 바라보며 말했다.송씨 가문과 맞서 싸운 사람들은 항상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송경재가 보기에는 임지환은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었다.“임 대사, 진짜 당신이 송승조를 죽였나요?” 홍진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맞아요.”임지환은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이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그러자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전부 표정이 확 달라졌다.“여보, 똑똑히 들었죠? 이 사람이 자기 입으로 직접 인정했으니 뭐가 고민될 게 있나요? 빨리 사람을 불러 이 사람을 잡아야죠.”진완선은 임지환이 시원하게 시인한 것을 보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임지환이 홍진 앞에서 살인 사실을 인정할 정도로 어리석고 무지막지할 줄은 몰랐으니까.“아빠, 분명 오해가 있을 거예요. 임 대사님은 결코 무고한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난폭한 분이 아니에요.” 홍서연은 조급한 말투로 걱정을 털어놨다.홍진은 잠시 침묵한 후 무거운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서연아, 일단 진정해. 이 일은 내가 책임지고 자세히 조사할 거야.”“홍 시장님은 항상
식당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무거워졌고 무언의 압박이 모두를 덮쳤다.이 항성에서 온 도련님은 마치 다른 사람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판사처럼 거만하기 짝이 없었다.“송경재, 네 눈에 뵈는 게 없구나. 여기는 시장 관저야, 너희 송씨 가문 본가의 뒷마당이 아니라고!”홍진은 화산처럼 분노를 분출하며 외쳤다.“홍 시장님, 저에게 좀 더 공손하게 대하는 게 좋을 겁니다.”송경재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안 그러면... 곧 도착할 사람들이 무고한 사람을 다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거든요.”“웃기고 자빠졌네, 너 따위가 감히 날 겁줄 수 있을 것 같아?”홍진은 휴대폰을 꺼내 들고 아파트 단지 경호원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홍진의 예상과는 달리 휴대폰 너머에서 아무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전화로 사람을 부르려고 한다면, 그만두는 게 좋을 겁니다. 당신이 배치한 주변 경호원들은 지금 모두 저승길로 떠나는 귀신이 되었으니까요.”송경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약을 올렸다.쾅!누군가가 거대한 소리와 함께 대문을 힘껏 열어졎혔다.반짝거리는 대머리와 얼굴에 붉은 용 문신을 한 중년 남자가 부하로 보이는 무리와 함께 살기등등하게 저택으로 침입했다.“너희는 누구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고 있나?”자기 저택에 그 무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홍진의 마음은 급속히 가라앉았다.“어디긴 어디겠어? 시장 관저잖아. 총독의 관저에도 들어간 적이 있는데 고작 시장 관저가 뭐라고 그 난리야?”그 무리는 홍진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며 활개 치며 천천히 걸어왔다.현장에 있던 세 여성은 이 무시무시한 광경에 겁에 질려 바르르 떨며 몸을 움츠렸다.문신한 남자는 송경재의 곁으로 걸어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사람처럼 신나는 말투로 보고했다. “송 도련님, 여기 경호원은 전부 처리했습니다. 이 집에 있는 사람들은 이제 그야말로 주머니 속의 쥐입니다.”“역시 거미줄 조직의 최고 킬러답네. 일 처리가 참으로 깔끔하고 신속해.”송경재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홍진을
“저 두 여자를 그냥 죽이는 건 너무 아까워요.”조직원 중 키가 2미터에 육박하고 털이 수북해 마치 곰처럼 우직한 한 킬러가 이청월과 홍서연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홍서연은 기겁하며 얼굴이 하얗게 질려 서둘러 임지환의 뒤로 몸을 숨겼다.이청월은 겉으로는 차분해 보였지만 무의식적으로 임지환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곰탱아, 작작 해. 이런 상황에서 그런 일이 중요해? 얼른 해야 할 일부터 처리하자. 일이 끝난 후에 이 여자들은 전부 네가 데려가도 상관없어.”촉용이 손을 흔들며 짜증 냈고 이내 송경재를 바라보았다, “송 도련님이 명령만 내리신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은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경재야, 너와 서연은 그래도 동창이잖아. 옛정을 봐서라도 우리 가족은 놓아주어야 하는 게 아니겠어?”진완선은 자기 생사가 송경재 손에 달려 있음을 알아채고 본능적으로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했다.“어머님, 그 말은 틀렸어요. 당신들의 생사는 제 손에 있는 게 아니라 임 대사 손에 달려 있어요. 임 대사가 나와 협력한다면 다들 기분 좋게 무사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죠. 하지만 임 대사가 협력하지 않는다면 당신 가족은 아무래도 저승에서나 다시 상봉할 수 있겠죠.”송경재는 희희낙락하며 임지환을 바라봤다. “어때?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겠어?”“아주 잠깐 생각해 봤는데, 역시 널 죽이는 게 최상의 선택인 것 같아.” 임지환은 느긋하게 말했다.그 말에 송경재는 잠시 멍해 있다가 갑자기 책상을 탁 치고 임지환을 내려다보며 호통쳤다.“그래? 나 바로 여기 있어. 절대 움직이지 않을게. 할 수 있으면 어디 한 번 해봐. 근데 네가 날 죽이기 전에 총알이 네 머리를 먼저 날려버릴걸?”송경재는 입술을 핥으며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그래? 까짓거 한 번 해보지 뭐.”임지환은 어깨를 으쓱하며 고기를 집던 젓가락을 들었다.“그걸로는 어림도...”푹!송경재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가슴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이상함을 느낀 송경재가 가
말이 끝나자마자 검은 가죽 재킷을 입고 몸매가 끝내주는 혼혈 미인이 거실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이 미인은 어깨에 중형 저격총을 짊어지고 엉덩이를 흔들며 걸어갔는데 묘한 매력을 발산했다.미인의 뒤를 따라 체형이 날씬한 미녀 세 명도 함께 들어왔다.“유란 씨, 어떻게 여기에 있죠?”이청월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이번에 귀국한 건 주로 임 선생님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씨 그룹과의 계약은 부차적인 것이고요.”유란은 이청월에게 간단히 해명하고 임지환을 바라보며 지시를 요구했다.“임 선생님, 여기 있는 시체는 저희가 알아서 처리할까요?”“후속 처리는 제가 하겠으니까 굳이 손대지 않아도 됩니다.” 홍진이 자진해서 말했다.“홍 시장님, 폐를 끼쳤네요.”임지환이 웃으며 미안한 마음을 표했다.“임 대사, 우리 사이에 이런 예의는 필요 없어요. 이 송경재의 시체는 제가 송씨 가문 사람들에게 연락해 치워버리라고 하겠어요.”송씨 가문이 이렇게 무모하게 사람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에 홍진도 유달리 크게 분노했다.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홍 시장을 만만하게 본 것이 분명했다.“만약 송씨 가문이 이쯤에서 그만둔다면 천만다행이지만 이 사람들이 아직도 소란을 피울 생각이 꿈틀댄다면 내가 송씨 가문에게 가문의 함몰이란 어떤 건지 똑똑히 알려줄 겁니다.”임지환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고 단어 하나하나에 살벌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송씨 가문은 이래 봬도 항성에서 백 년을 이어온 명문대가예요. 신중히 생각하고 움직이는 게 좋을 거예요.”이청월은 임지환이 송씨 가문과 정면으로 맞서려고 벼르는 것을 보고 서둘러 자기 소견을 밝혔다.비록 여태껏 임지환의 여러 가지 대단한 능력을 직접 목격했고 그의 대사 신분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송씨 가문도 항성에서 백 년 동안 굳건히 자리 잡아 왔고 항성 최고의 가문인 이씨 가문과도 정면으로 겨룰 실력이 있는 상태였다.이런 명문대가를 건드리는 것은 절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임 선생
“홍 시장님, 저희는 그럼 이만 가보겠어요. 유란이 여기 있으니 안전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예요.” 임지환이 홍진을 안심시키며 작별 인사를 나눴다.홍진은 공손하게 주먹을 쥐고 고마움을 표했다. “임 대사, 진짜 감사합니다.”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청월과 함께 저택을 떠나려 했다.“임 대사님, 잠시만요.”임지환의 뒤에 서 있던 홍서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왜 그래?” 임지환이 홍서연을 돌아보았다.“엄마가 아직 깨어나지 않았어요...” 홍서연은 살짝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의식을 잃고 바닥에 기절해 누워 있는 진완선을 가리켰다.방금 두 사람 사이에 불쾌한 마찰이 있어서 홍서연은 임지환이 엄마를 구해주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아, 이건 아주 간단한 일이야.”임지환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가 손가락으로 진완선의 인중을 꾹 눌렀다.그러자 시장 부인은 금세 혼수상태에서 정신을 차리고 깨어났다.“당신은... 사람이에요? 아니면 귀신이에요?”깨어난 진완선은 임지환이 멀쩡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깜짝 놀라며 물었다.“여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임 대사의 솜씨가 이 정도로 뛰어난데 이 무리의 악당들이 임 대사의 털끝이라도 다칠 수 있겠어?” 홍진이 엄숙한 표정으로 진완선을 꾸짖었다.진완선은 홍진의 말을 듣고 그제야 뒤늦게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거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아까 그 오만하고 잔인한 킬러들은 어느새 전부 시체로 변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진완선은 눈을 크게 뜨고 임지환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이 사람들은 전부 당신이 죽인 거예요?”“그건 아니에요.”임지환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진완선은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당신이 그 정도 능력은 없다고.”진완선은 중얼거리며 바닥에서 일어나 홍진의 옆으로 걸어가려다 임지환의 느릿느릿한 목소리를 등 뒤에서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송경재는 내가 죽인 게 맞
홍 시장 저택을 떠난 뒤, 임지환은 이청월의 차에 탔다.“아까부터 계속 우울해 보이는데, 무슨 걱정거리가 있어?”임지환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이청월를 보며 물었다.“임지환, 난 네가 너무 튀는 것 같다고 생각해. 한씨 가문이든 항성 송씨 가문이든, 모두 깊은 역사를 가진 명문대가야. 네가 무술 대가라는 건 잘 알지만 실력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결국 한계가 있을 게 아니야? 난 진심으로 네 안전이 걱정돼.”이청월이 깊은 한숨을 쉬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확실히 임지환의 안전을 걱정하고 있음이 숨김없이 드러났다.“걱정 마. 별일 아니야.” 임지환은 이청월의 걱정과 달리 태연하게 말했다.“좀 자제하면 안 돼?” 이청월이 간절하게 설득하려고 시도했다.“진짜 걱정 안 해도 돼. 네가 말한 그 가문 사람들이 내게 그럴싸한 상처를 줄 자격이 전혀 없어.”임지환은 빙그레 웃으며 마음에 두지 않았다.“넌 모든 게 다 좋지만, 너무 자신만만한 게 옥에 티인 것 같아.”이청월은 한숨을 쉬며 더 이상 설득하는 걸 포기하고 고개를 저었다.사실 이청월은 충분히 에둘러 표현했다. 다른 누구라 할지라도 임지환을 미친놈으로 볼 법한 상황이었다.한 사람의 힘으로 두 개의 백 년 이어온 가문에 정면으로 맞선다?이건 사실 더 이상 자신감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한낱 망상에 불과한 일이다.“그만 걱정해. 난 확신이 없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아.”임지환은 어깨를 으쓱하며 이청월을 안심시켰다.이청월은 더 이상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긴 얘기를 접고 입을 꾹 다문 채 운전에 집중했다.“도착했어.”이청월이 임지환을 용은 저택에 내려준 후 쌀쌀하게 한 마디 던지고 떠나려고 했다.그러자 임지환은 눈을 뜨고 담담하게 말문을 열었다. “오늘 여기서 자고 가는 게 어때?”“너... 그게 무슨 뜻이야?”평소에 털털한 이청월은 그 말에 순간 얼굴이 붉어지고 열기가 확 올라왔다.이 초대는 너무 갑작스러웠다.오늘 밤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걸까?“오해
자리에 앉은 후, 양쪽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마쳤다.“민수 씨, 보아하니 이 지역 사람은 아닌 것 같네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척 슬쩍 물었다.육민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적시고 말했다.“저는 백운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이번에 내려온 건 여행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기 위해서입니다.”“여행이라고요?”임지환은 순박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육민수를 보며 살짝 놀란 듯 물었다.“맞습니다, 이번이 산에서 처음 내려오는 겁니다.”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스승님께서 배울 건 거의 다 배웠으니 나머지는 여행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그래요? 그렇다면 민수 씨는 은둔한 검수란 말이군요. 근데 민수 씨 등에 멘 그 상자 속에는 대체 어떤 절세 명검이 숨겨져 있는 겁니까?”임지환은 차를 든 채로 무심하게 말했다.윙!임지환의 말이 끝나는 순간, 맞은편에 앉아 있던 육민수의 표정이 돌연 엄숙해졌다.육민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임지환을 노려보며 물었다.“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왜 그러죠?”임지환이 담담하게 되물었다.“어떻게 내 상자 속에 검이 들어 있는 걸 알았습니까? 설마 날 계속 미행해 온 겁니까?”육민수는 칼집에서 칼날이 뽑혀 나온 듯한 기세를 뿜어내며 사람을 압도하는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발산했다.“진정해요, 난 당신에게 악의는 없어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듯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느긋하게 말했다.“왜 내가 상자 속에 있는 게 명검이란 걸 아는지 궁금한가요? 내가 그냥 추측한 거라면 믿을 수 있나요?”“믿습니다.”몇 초 동안 고민하던 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임지환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민수 씨,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군요.”육민수는 임지환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도 생각보다 훨씬 더 속이 깊은 사람이군요.”“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자세히 들어보고 싶군요.”임지환은 육민수에게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세속의 일반인들은 그렇게 쉽게 검수의 존재를 알아채지
“넌 누구야? 이 녀석을 감싸려는 거야? 내 신발은 200만 원짜리 신발이야. 네 몸에 걸친 그 싼 구제 옷이랑은 비교도 안 된다고.”장해수는 임지환을 힐끔 보며 코웃음을 쳤다.비록 임지환은 육민수보다 훨씬 더 정상적인 사람 같아 보였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친 걸 다 합쳐도 10만 원이 넘지 않을 것 같았다.장해수는 이런 사람은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여긴 것이다.“겨우 200만 원 갖고 이렇게 화내? 큰돈도 아니잖아.”이때 이청월이 뒤따라와 말했다.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샤넬 가방에서 돈뭉치를 꺼내어 바로 옆 빈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이청월의 행동은 아주 자연스럽고 매끄러웠다.“헉...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었나?”장해수는 임지환이 가리고 있던 시야에서 벗어난 이청월을 보자마자 시선을 이청월 몸에서 뗄 수 없었다.식당 안에 있던 다른 남자 손님들도 이청월의 뛰어난 외모를 보며 잠시 넋을 잃었다.이렇게 아무런 성형 수술 흔적도 없이도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여성은 요즘 시대에 참 보기 드물었다.사람들의 시선은 곧 임지환의 저렴한 옷차림으로 옮겨졌고 속으로는 질투가 활활 타올라 임지환을 모욕하기 시작했다.“또 여자 등쳐먹는 기생오라비야? 저렇게 예쁜 여자가 왜 저런 녀석이랑...”“아가씨 체면을 봐서 이 돈은 받아둘게. 근데 이건 만 원이 안 되잖아.”장해수는 순식간에 돈을 세어보곤 다시 빈정거렸다.그 돈뭉치는 60만이었고 장해수가 요구한 금액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네가 신은 신발이 진품이라 해도 최대 40만 원 정도일 거야. 더군다나 너 그거 짝퉁이잖아.”이청월은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60만 원이면 충분하고도 남아.”“밥은 아무렇게나 먹어도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돼. 무슨 증거라도 있어? 내가 신은 신발이 짝퉁이라는 걸 입증할 증거 말이야.”장해수는 이청월의 정곡을 찌르는 말을 듣고 내심 당황했다.사실 이 신발은 장해수가 8만 원 주고 산 고퀄리티 짝퉁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절대 그걸 인정할 수 없었다.
“손대지 마!”남자가 황급히 소리쳤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하얀 머리 청년은 손으로 검은 천을 살짝 벗겨냈다.윙!임지환은 갑자기 오싹한 냉기가 식당을 감도는 기묘한 기운을 느꼈다.다시 집중해서 감지하자 그건 다름 아닌 예리한 검기였다.남자는 하얀 머리 청년의 손목을 꽉 잡았고 아까와 달리 부드럽던 눈빛이 확 차갑고 날카로워졌다.“내 물건에 손대지 마. 안 그러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남자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고 하얀 머리 청년의 손을 밀어내고는 다시 조심스럽게 검은 천을 덮으며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정성스럽게 접었다.그 과정을 마친 후, 남자의 차가웠던 눈빛은 다시 온화하고 순박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조그마한 살기도 없는 사람처럼 무난해 보였다.“겨우 너덜너덜한 상자 하나 가지고 뭘 그렇게 유난이야?”하얀 머리 청년은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날 이렇게 툭 쳐놓았으면 적어도 사과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어떻게 사과하면 되겠어?”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 이 신발은 한정판이야. 200만 원이 넘는다고. 근데 네가 이렇게 더럽게 만들었으니 내가 어떻게 신고 다니겠냐고?”하얀 머리 청년은 뻔뻔하게 말했다.“그럼...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해?”남자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자기가 잘못한 게 맞다고 인정하는 듯했다.하얀 머리 청년 장해수는 흡족한 표정으로 웃으며 남자를 내려다봤다. 이 남자가 마을에서 처음으로 시내로 올라온 촌스럽고 순진한 사람이라 살짝 겁주기만 하면 쩔쩔맨다는 걸 알아차렸다.“간단하지. 신발값 물어내.”장해수는 의자를 하나 끌어다 앉아 다리를 꼬았다.“난... 돈 없어.”남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이제야 남자는 돈이 없으면 영웅도 꼼짝 못 한다는 말이 실감 나는 것 같았다.“돈 없다고? 돈도 없으면서 음식점에 들어와? 난 네가 진짜 돈이 있든, 없든 하나도 상관없어. 오늘 신발값 물어내지 않으면 경찰 불러서 널 잡아넣을 거야.”장해수는 계속 몰아붙였다.“이 사람
“안 돼, 꼭 한 입 먹어봐. 안 그러면 내가 직접 먹여줄 거야.”이청월은 고귀한 신분을 자랑하는 여왕처럼 임지환에게 명령하듯 말했다.“그럼... 알았어.”이청월의 기대에 찬 눈빛을 보며 임지환은 마지못해 한 입 떼어먹었다.“어때? 너무 맛있지?”이청월은 기대에 가득 차서 물었다.“괜찮네...”임지환은 대충 웃어넘기고는 이내 물었다.“얼마나 더 걸을 거야?”“왜? 벌써 지친 거야?”이청월은 앞을 내다보고는 웃으며 말했다.“저 앞에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 있는데 저기서 저녁 먹고 호텔로 가는 게 어때?”“그러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세 번 절하고 아홉 번 꿇는 것까지 견뎠는데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두 사람은 함께 운우 골목에 위치한 “천향 식당”에 들어갔다.식당 내부는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고 값비싼 홍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심지어 최고급 백단향이 타오르고 있었다.아마도 이 과시적인 분위기에 관광객들이 약간 눌린 것인지 레스토랑 내부는 손님이 많지 않아 비교적 조용했다.임지환과 이청월은 2층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심심한 이청월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다.임지환은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곧 시선을 한 사람에게 고정했다.임지환의 시선을 잡은 사람은 식당 입구에 서 있던 한 남자였다.임지환이 특별한 취향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 남자가 너무 독특했기 때문이었다.남자는 우람진 체형에 날카로운 눈매와 눈동자를 가졌고 온몸에서 강렬한 고수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하지만 그 남자는 딱 봐도 특이한 헝겊으로 된 긴 상의와 긴 바지를 입고 있었고 발에는 헝겊신을 신고 있었다.남자의 등에는 길쭉한 상자를 검은 천으로 싸서 메고 있었는데,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그 기묘한 차림 덕분에 임지환은 물론,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당연히 한 몸에 받았다.하지만 남자는 부끄러운 듯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식당 안쪽을 향해 바라
“나더러 제자를 받으라고?”임지환의 표정이 묘해졌다.전에 소태진이 제자 타령하더니 이번엔 이민재가 이러네...임지환은 이 노인들이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 건지 궁금해졌다.“안 받아!”임지환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이민재는 임지환이 이렇게 단칼에 거절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해 잠시 멍해졌다.이래 봬도 명의라 불릴 만큼 명성이 자자한 자기가 어디를 가든 분명 환영받고 존중받을 정도인데 임지환에게 이토록 매정하게 거절당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거절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이민재는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넌 너무 늙었고 못생겼잖아. 내가 원하는 건 미인이란 말이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너한테 관심이 생기겠어?”임지환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네?”이민재는 입이 떡 벌어져 말을 잇지 못했다.설마 자기가 단호하게 거절당한 이유가 늙고 못생긴 데다 미인이 아니기 때문일 줄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이청월이 옆에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영감, 내가 좋은 방법 하나 알려줄까?”“무슨 방법인데요?”이민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외국에 가서 성전환 수술하고 얼굴 리프팅까지 하고 오면 돼. 그러면 내가 임지환에게 널 제자 삼으라고 말해볼게.”이청월은 말을 마치자마자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허청열과 화도윤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체면을 생각해서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당신들... 이건 너무하잖아요! 제자를 안 받는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사람을 모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이민재는 눈을 부라리며 씩씩댔고 분노가 가득 찬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평생 힘들게 쌓아온 명성이 오늘 하루 만에 모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널 제자로 안 받는 이유는 네가 미인이 아니거나 늙어서도 아니야.”임지환은 조금 모자란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그럼 도대체 왜 안 받는 겁니까?”이민재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임 대사, 정말 고맙습니다. 도윤아, 날 대신해서 임 대사를 정성껏 대접해라!”화연평은 그제야 임지환의 말을 따라 침대에 편안하게 누우며 화도윤에게 조용히 당부했다.임지환과 이청월도 더 이상 화연평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방을 나섰다.“임 선생님, 제가 자인 호텔에 방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화도윤이 싱글벙글 웃으며 얼른 쫓아 나와 임지환에게 말했다.“필요 없어. 우리가 직접 거기로 갈 테니 넌 여기서 화 장군님을 잘 돌봐.”임지환은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임지환, 우리가 간만에 금릉에 왔잖아. 제대로 한 번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자.”이청월은 지금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그래, 네 말대로 하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잠깐! 두 분, 멈춰주세요!”두 사람이 막 떠나려 할 때 이민재가 허겁지겁 뒤쫓아왔다.“이 침왕, 아직도 볼 일이 남았나요?”화도윤의 이마에 주름이 잡히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까 이민재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아버지가 자칫 죽을 뻔했으니 화도윤의 마음속엔 여전히 이민재에 대한 불만이 남아 있었다.이민재가 의술로 유명하지 않았다면 이미 저택에서 쫓아냈을 것이다.“임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이민재는 아까와는 다르게 공손한 태도로 존댓말까지 써가며 말했다.“부디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뭘 묻고 싶은 거야?”임지환은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화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을 도대체 어떻게 제거하셨는지 궁금합니다.”이민재는 진심으로 지식에 굶주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제가 침을 놓을 때 장군님 체내의 생기를 운용해 분명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는데 왜 결국엔...”“내가 왜 너에게 말해줘야 하지?”임지환이 이민재의 말을 끊었다.“그건...”이민재는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임지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굳이 자기에게 말해줄 필요가 없다는 걸 이민재는 알고 있었다.“저는 의사로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
“아악!”비명이 또 방에서 들려왔고 이번엔 더 고통스럽고 무시무시했다.“날 들여보내 주세요!”화도윤은 방 안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화 회장님, 죄송합니다만, 그럴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화도윤을 막아섰다.“허 교관! 넌 정말 이대로 우리 아버지를 죽게 내버려두겠다는 건가?”화도윤의 눈은 핏발이 서서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물어뜯을 것 같은 야수 같았다.“저도 물론 장군님이 돌아가시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임 선생님 외에는 누구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임 선생님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들어가게 놔둘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이를 악물고 단호하게 말했다.옆에 있던 이청월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너무나도 끔찍했기 때문이었다.“이대로 가다간 나조차도 장군님의 생명을 지탱하기 어려울 겁니다.”이민재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내 생각엔 먼저...”“끄악!”다시 한번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방 안은 곧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화도윤과 허청열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할 말을 잃었다.“어휴... 이젠 무슨 말을 해도 늦었습니다.. 당신들, 사람을 잘못 믿은 겁니다.” 이민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끼익...”바로 그때, 임지환이 문을 열고 나와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방금 뭐가 늦었다고 했어?”“넌 실력도 부족하면서 괜히 잘난 척하다가 화 장군님을 네 손으로 죽인 거야. 이제 어떻게 수습할지 지켜보겠어.”이민재는 냉랭하게 비웃으며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임 선생님...”허청열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와 조급한 얼굴로 물었다.“걱정 마,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은 내가 이미 완전히 제거했어. 이제 장군님 생명에는 더 이상 지장이 없을 거야.”임지환은 표정 변화도 없이 차분하게 대답했다.“정말입니까?”“임 선생님, 그 말씀, 정말입니까?”화도윤과 허청열은
“만약은 절대 없습니다!”화도윤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로워지며 은은하게 살기가 서렸다.“이 영감탱이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네. 말을 왜 이 따위로 해? 네가 실력이 바닥을 친다고 해서 임지환 실력도 바닥을 친다는 도리는 없잖아!”이청월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임지환을 깎아내리는 말이라 곧바로 받아쳤다.“이 버릇없는 계집, 닥치지 못해? 난 아직 네 죗값도 묻지 않았어!”이민재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손을 들었다.“이 침왕, 자중하십시오.”둘을 지켜보던 허청열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이청월 앞을 막아섰다.허청열의 몸에서 칼날이 칼집에서 막 빠져나오기 직전인 듯 날카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좋아요, 저 녀석이 진짜 화 장군님을 살려낸다면 이 부러진 손은 그냥 넘어가 주겠습니다. 하지만 살려내지 못한다면 화 선생은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길 바랍니다.”이민재는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이민재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허청열과 싸워봤자 손쉽게 당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콜록콜록...”방 안에서 갑자기 거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그 기침 속에는 피를 토하는 소리까지 섞여 있는 듯했다.화도윤의 얼굴이 굳어지며 안으로 뛰어들 듯이 몸을 움찔했다.그러나 허청열이 화도윤을 막아섰고 고개를 저으며 냉정하게 말했다.“화 회장님, 임 선생님의 허락 없이는 우리가 밖에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알겠네.”화도윤은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화도윤은 임지환에게 모든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한편, 방 안에서 오랜 시간 거친 숨을 몰아쉬던 화연평이 마침내 힘겹게 피곤이 가득한 눈을 떴다.화연평은 희미하게 보이는 임지환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 임 대사, 고... 고맙습니다.”“화 장군님, 아직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조금 고통스러울 수도 있으니 꾹 참고 견뎌주시길
“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난 의사로서 수십 년간 수많은 생명을 구했고 의학계에서 꾸준히 명성을 쌓아왔어. 오늘 너 같은 풋내기에게 내 명예를 더럽히게 둘 수는 없어!”이민재는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로 눈이 뒤집혀 거의 쌍욕이라도 할 듯한 기세였다.“이 영감탱이가 어쩜 이렇게 말이 안 통하지? 환자가 너 때문에 병이 더 악화했는데도 뭐라 하지 말라는 거야?”이청월은 눈을 부릅뜨고 이민재에게 쏘아붙였다.이민재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오랜 명성을 자랑하는 침술의 대가일지 몰라도 이청월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단 하나, 임지환을 건드리는 건 절대 안 된다는 것뿐이었다.“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이민재는 이청월을 가리키며 화가 치밀어 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지금 화 장군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인데 넌 환자를 살릴 방법을 찾기보다 네 명성 걱정부터 앞서는구나. 내 생각엔 넌 그냥 명예에만 집착하는 돌팔이야!”이청월의 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민재의 급소를 정확히 찔렀다.“어디서 나타난 계집이 감히 어르신에게 말대꾸를 해? 오늘 내가 네 부모를 대신해 제대로 교육해 주마!”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민재는 더 이상 체면 따위는 개의치 않고 손을 뻗어 이청월을 때리려 했다.하지만 이민재의 손이 이청월에게 닿기도 전에 임지환이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고 가볍게 힘을 주었다.딱!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민재의 팔이 임지환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부러지는 소리였다.“아악!”이민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팔을 부여잡았고 그의 얼굴은 분노와 고통으로 붉게 달아올랐다.허청열과 화도윤은 이 광경에 놀라서 숨을 들이쉬며 얼굴이 창백해졌다.임지환의 행동은 너무나 대담했다. 침술의 왕이라 불리는 이민재의 팔을 부러뜨리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이 일이 의학계에 널리 퍼지기라도 하면 임지환은 의학계 전체의 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허 교관, 지금부터 난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