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율과 남초윤이 막 자리에 앉자 유설영이 급히 돌아왔다. 그녀는 다소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제 브로치를 본 사람 있나요? 방금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그 사이에 브로치가 사라졌어요.” 어떤 손님이 물었다. “그 80억짜리 에메랄드 브로치 말인가요?” “맞아요, 혹시 본 사람 없나요? 사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 브로치는 저에게 너무나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잃어버리면 너무 안타까워요.” 조안미는 과하게 웃으며 의도적으로 말했다. “브로치를 옷에 단 거면 잘 떨어질 리 없을 텐데, 어떻게 갑자기 없어졌을까요? 설영 씨, 혹시 앤티크 브로치를 탐낸 누군가가 일부러 훔쳐간 게 아닐까요?” 그 말을 하면서 그녀는 남초윤을 곁눈질로 슬쩍 쳐다보았다. 남초윤도 그 눈빛을 알아차리고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조유진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너무 섣불리 나서지 마. 일단 저 여자가 뭘 하려는지 지켜봐.” 이건 분명한 함정이었다. 유설영이 명백하게 함정을 파놓고 남초윤이 실수를 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변명하는 순간 남초윤은 자신이 도둑임을 증명하는 셈이 될 테니. 유설영은 결국 입을 열었다. “아까 화장실과 정원을 다 뒤져봤는데 못 찾았어요. 초윤 씨, 아까 초윤 씨도 정원에 있었잖아요. 혹시 본 적 있어요?” “본 적 없어요. 잘 챙기지 그랬어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유설영은 조유진을 잠깐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지난번 초윤 씨 친구 유진 씨가 이 브로치 때문에 경매장에서 나랑 치열하게 입찰 경쟁을 했잖아요. 160억까지 부르면서 말이에요. 유진 씨가 이 브로치를 그렇게 좋아했던 거 아니에요?” 그 말이 떨어지자 주변의 손님들은 일제히 남초윤과 조유진을 ‘용의자’로 지목하는 눈빛을 보냈다. 경매장에서 160억까지 부를 만큼 이 브로치를 좋아했다면 어쩌면 욕심이 생겼을 수도 있다는 합리적인 추측이었다. 조안미는 남초윤과 조유진이 못마땅했는지 재빨리 말했다. “그렇게 비싼 물
조안미가 틈을 노려 남초윤을 자극했다. “너희들이 안 훔쳤다면 왜 몸수색을 두려워해? 몸수색을 하면 브로치가 너희들 몸에 없다는 걸 증명할 수 있잖아?” 조유진이 나서서 말했다. “아주머니, 그 말씀은 잘못됐어요. 몸수색은 사람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에요. 설령 귀중한 물건을 잃어버렸다고 해도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용의자가 될 수 있으니, 그건 경찰이 와서 해야 할 일이지 당신이 누구 몸을 수색할지 결정할 문제가 아니에요.” 육지율 역시 몸수색에 동의하지 않았다. “여긴 육씨 집안이고, 초윤 씨는 육씨 집안의 며느리에요. 초윤 씨의 몸을 수색하는 건 육씨 집안의 명예를 깎아내리는 일이기도 하고요.” 남초윤은 잠시 멍해졌다. 이 개 같은 남자가 유설영과 자신 사이에서 자기 편을 들게 될 줄 몰랐던 것이다. 육지율은 경호원들에게 모든 구석구석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경호원들이 한참을 찾다가 거실로 돌아와 보고했다. “육 변호사님, 잔디밭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브로치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자 조안미가 즉시 말했다. “땅에서 못 찾았다면 사람 몸에 있을 가능성이 크겠죠! 조유진이 여기 있는 모두가 용의자라 했으니 저야 떳떳하니까 몸수색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어요. 지율아, 경호원들에게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을 수색하게 하는 게 공정하지 않겠어?” 그 말에 일부 손님들은 찬성했고 일부는 반대했다. 조안미는 먼저 자신의 가방과 주머니를 뒤집으며 결백을 증명하려 했다. 그 브로치는 가격이 매우 비싸서 경찰에 신고할 만한 상황이긴 했다. 하지만 여긴 육씨 집안이었다. 육씨 집안에서 귀중한 물건을 잃어버렸다는 소문이 나면 그 누구에게도 좋을 리 없었다. 육지율이 말했다. “여기 있는 분들은 모두 귀한 손님이십니다. 몸수색은 적절하지 않아요. 유설영 씨가 브로치를 육씨 집안에서 잃어버린 것이니 삼일 내로 찾지 못하면 육씨 집안에서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유설영은 불만스러워하며 말했다. “지율아, 그건
조유진의 말이 떨어지자 손님들은 모두 상황을 눈치챘다. 실제로 도둑이 있는 게 아니라 누군가 일부러 일을 꾸미고 있다는 것을. 자신의 혐의를 벗으려면 먼저 이 혼란을 키워야 한다는 계산이었다. 그때 이성적인 손님 한 명이 나서서 공정하게 말했다. “오늘은 어르신의 생신잔치인데 이런 일로 분위기를 망치는 건 좀 무례하지 않나요? 주인집의 체면도 생각해야 하니까 오늘은 일단 이쯤에서 끝내고 진짜 잃어버린 물건이 있으면 나중에 따로 해결하는 게 어떨까요? 만약 찾지 못하면 육씨 집안에서 책임지고 보상해 줄 겁니다!” 조유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 다이아몬드 귀걸이는 천천히 찾아도 되니 괜찮아요. 근데 설영 씨는 아까부터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하니 아마 어르신의 체면이나 기분은 고려하지 않는 모양이네요.” 이 말은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태도로 보였다. 유설영이 계속 이 문제를 물고 늘어진다면 그녀가 눈치 없는 사람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 모임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규칙을 정하는 사람들이지만 정작 자신들은 그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서도 남이 규칙을 어기는 것은 싫어한다. 여기 있는 모두가 육씨 집안의 손님인 만큼, 주인집과 사이가 나빠지는 건 아무도 원치 않았다. 육씨 집안과 조금이라도 연이 닿아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눈치가 빠르고 상황을 잘 파악하는 사람들이었다. “어르신의 80번째 생신인데, 경찰에 신고한다니 참 불길하네요!” “생신잔치에서 도둑 이야기가 나오면 소문나서 웃음거리가 될 테니 이건 그만둬야죠!” “잔치 끝나고 나서 알아서 해결해요!” “어르신께서 연극 무대까지 준비하셨으니 저흰 공연이나 보러 가자고요. 이 소란스러운 연극은 그만 봐요!” 구경하던 손님들은 하나둘씩 뒤뜰로 가서 진짜 연극을 보기 시작했고, 더 이상 이 시시한 소동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유설영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는데 조유진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이 다정해 보이는 조유진이 이렇게 교활하고 치밀하다니
[뭐야? 무슨 상황이야?] 남초윤이 메시지로 물었다. [그냥 네 불효자식이 바치는 효도금이라고 생각해.] [근데 이건 너 귀걸이 값으로 받은 거잖아?] [내 귀걸이는 잃어버린 적 없어. 그냥 편히 받아.] 남초윤은 놀라서 조유진에게 엄지를 올리며 말했다. [헐! 대박이야. 너 진짜 돈 세탁의 달인이구나!] 결과만 놓고 보면 남초윤이 육지율에게서 2억 원을 받은 셈이지만 과정에서 보면 육지율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돈이었다. 조유진은 화장대 앞에 앉아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보석함에 넣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남자의 목소리가 위에서 들려왔다. “남초윤 때문에 당신 남편까지 속였어?” 그녀가 ‘여보’라고 부른 게 남초윤 때문이라는 생각에 배현수의 가슴속에 묘한 질투가 일었다. 조유진은 잠시 멍했다. 사실 속이려던 게 아니라고 해명하려 했지만 그의 눈을 마주치는 순간 이유 없이 마음이 불안해졌다. 드래곤 파 사건 이후로 그녀는 배현수를 제대로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그가 예지은의 죽음에 대해 물어볼까 봐, 그리고 자신이 그에게 상처를 줄까 봐 두려웠다. 그녀는 강한 최면을 받았었다. 특히 배현수와의 기억들에 관해. 조유진이 배현수를 계속 기억하고 있었던 이유는 최면 중에도 끊임없이 그를 사랑한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었기 때문이다. 그 실험실에서 최면을 받던 날들을 어떻게 버텼는지 자신도 모르겠다. 최면사는 그녀와 배현수 사이의 행복했던 기억을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만들고 고통스럽고 나쁜 기억들을 깊이 각인시키려 했다. 최면이 끝날 때마다 조유진은 배현수가 아이보리 산에서 자신에게 청혼했던 장면을 하나씩 맞춰가며 기억하려 애썼다. 아마도 그 분홍빛 폭죽비가 그녀의 마음속 깊이 내려앉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기억들이 희미해져도 그 순간만은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사랑이 이렇게 강력할 줄이야. 심지어 최면을 받아도 그의 손가락 사이에 손을 끼워 넣으면서 함께 손을 맞잡았던 그 감각을 잊을 수 없었다.
다른 일에선 항상 조유진에게 순응하던 배현수는 유독 감정 문제에 있어서만은 조유진이 자신을 회피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막 그녀의 옷을 벗기려던 찰나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은 송지연. 아마도 조유진의 최면과 관련된 이야기일 터였다.배현수는 조유진을 침대에 눕히고 이마에 입을 맞춘 후 말했다. “잠깐, 전화 하나 받고 올게. 금방 와서 같이 놀아줄게.” “???” 놀다니? 진주 속옷을 입은 그녀를 말인가? 조유진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누가 그런 걸 하겠대?’배현수가 전화를 받으러 방을 나가자마자 조유진은 그 진주 속옷을 서랍 구석에 대충 처박아 넣었다.배현수는 송지연과 꽤 오랫동안 통화하며 조유진의 상태에 관해 이야기했다. 다시 방으로 돌아왔을 때 조유진은 이미 잠이 들었다. 침대 옆에 앉아 그녀를 바라보던 배현수의 눈빛에 잠시 안타까움이 스쳤다.송지연은 이렇게 말했다. 조유진은 깊은 최면을 받은 상태였고, 그녀가 그를 너무나도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동안 쌓아 올린 기억들을 하나하나 다시 짜 맞추는 과정이 없었다면, 조유진은 이미 레비아단의 손에 넘어가 배현수를 해칠 도구로 전락했을 거라고. 조유진이 레비아단에게 잡혀 있을 때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았고, 그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그 어두운 진실들을 마주하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녀는 배현수에게 그 모든 걸 고백하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있었다. 조유진이 완전히 기억을 되찾고 예지은의 죽음을 직시할 수 있게 하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한편, 남초윤과 육지율은 어르신의 생신 잔치를 마치고 소정 별장으로 돌아왔다. 남초윤의 머릿속엔 내내 육성일이 했던 말이 맴돌았다. “너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구나.” 두 달의 시간 중 벌써 한 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남초윤은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별장에 도착하자마자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문명희였다.남초윤은 핸드폰을 들고 화장실로 가서 문을 닫고, 물을 틀어둔 뒤 전화를 받았다.
남초윤은 욕실에서 꽤 오랫동안 망설였다. 샤워를 끝내고 검은색 레이스 속옷을 입은 채 거울을 보니 코피가 터질 것만 같았다. 이 옷, 생각보다 너무 자극적이었다. 아무것도 안 입은 것보다 더 자극적인 느낌이랄까.남초윤은 황급히 흰색 가운을 잡아챈 후 몸에 감싸고 적어도 욕실 밖으로 나갈 용기를 얻었다. 세면대에 있는 향수도 꺼내어 손목과 귀 뒤에 뿌렸다. 향기는 신선하고 독특한 복숭아 향이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그녀는 거울을 보며 몇 번이나 깊은 숨을 내쉬었다. 만약 이러고도 육지율이 눈치 못 챈다면 아마 그 부위에 문제가 있을 것이다!그 시각, 육지율은 법무법인의 동료들과 화상 회의를 진행하며 대규모 인수 사건 몇 건을 논의하고 있었다. 그가 침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남초윤은 한쪽 다리를 침대에 살짝 올리고 앉아 ‘과장된 동작’으로 바디 로션을 바르고 있었다.남초윤은 그가 다가오자 약한 버드나무처럼 그의 품에 기대며 몸을 맡겼다. 육지율은 고개를 숙여 그녀를 보며 말했다.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이러는 거예요?” “...” 남초윤은 입꼬리를 살짝 떨며 눈을 굴리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그리고 마치 유설영처럼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그를 부르며 말했다. “지율 씨, 등은 내가 혼자 못 바르니까 도와줄래요?” 육지율은 천천히 눈썹을 치켜올리며 묻듯이 바라봤다. “뭐라고 불렀어요?” “지율 씨라고... 그렇게 부르면 안 돼요?” 유설영도 늘 그런 말투로 그를 불렀는데 왜 자신은 안 된다는 거지? 솔직히 방금 부르는 게 너무 어색하긴 했다.육지율은 그녀의 팔을 붙잡고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부를 수는 있는데 익숙하진 않네요.” 사실, 남초윤 자신도 너무 어색해서 곧 토할 것만 같았다. 육지율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말투 좀 똑바로 해요. 여우처럼 굴지 말고.” 남초윤은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유설영도 그렇게 여우처럼 굴면서 맨날 ‘지율아~’ 라고 하던데, 그땐 꽤 좋아 보이던데요?”
“...” 그는 결국 다시 물었다. “가운 위에 바를까?” “...” 남초윤은 가운 끈을 풀려다가 문득 가운 속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손이 멈췄다. 그녀가 가운을 벗지 않자 육지율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처음 본 것도 아닌데. 왜, 부끄러워요?” 남초윤은 침대 가장자리로 기어가더니, ‘탁’ 소리와 함께 천장에 있는 등을 껐다. 순간 방 안은 어둠으로 가득 찼다. 육지율은 의아한 듯 말했다. “?” 남초윤은 목소리가 살짝 떨리며 말했다. “어차피 바디로션만 바를 거니까 대충, 대충 바르면 돼요. 꼭, 꼭 안 봐도 돼요.” 그녀는 등을 돌린 채 가운 끈을 풀고 가운을 내려 몸을 노출시켰다. 남초윤의 하얀 등이 그의 눈앞에 드러났다. 그녀는 몸매가 아주 좋았고 특히 허리와 엉덩이의 비율이 자연스럽게 잘 잡혀 있었다. 가느다란 허리 아래에는 살짝 풍만한 엉덩이가 이어졌다. 비록 방 안은 어두웠지만 커튼을 치지 않아 바깥의 희미한 빛이 방 안으로 들어왔고, 육지율의 시력이 워낙 좋아서 남초윤이 입고 있는 레이스 끈까지 다 보였다. 특히 허리 아래로 검은색 레이스가 살짝 끼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육지율의 눈빛이 살짝 어두워지며 말했다. “이 밤에 티백을 입었어요?” 남초윤은 마치 몸에 개미가 기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비록 그녀는 그의 눈빛을 볼 수 없었지만 드러난 피부가 공기에 닿을 때마다 온몸이 간지럽고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남초윤은 물었다. “지, 지율 씨 이거 안 좋아해요? 아니면... 안, 안 어울리나?” 육지율은 손바닥에 바디로션을 덜어 그녀의 등에 발랐다. 바디로션은 차가웠고 그 순간 남초윤은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의 손바닥은 뜨거웠다. 그의 손은 천천히 그녀의 등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허리 부분에 닿았을 때 남초윤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의 손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려갔다. 가볍게 손을 움직여 그녀를 자신
“그래서 싫어요?” 남자의 입가에 웃음이 더 짙어지며 농담조로 대답했다. “그닥. 불 켜고 보면 더 좋아할지도 모르죠.” 이 죽일 놈! “...” 남초윤은 부끄러워서 땅속으로라도 숨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육지율은 계속 물었다. “불 켤 거예요, 말 거예요?” “...”‘대체 뭐라고 대답하라는 거야!’육지율은 그녀의 침묵을 동의로 받아들이고 손을 침대 머리맡으로 뻗었다. ‘딸깍’ 소리와 함께 불이 켜졌다. 순간 방 안은 환하게 밝아졌다. 남초윤은 무의식적으로 손으로 눈을 가렸다. 육지율은 그녀의 전신을 확인한 순간 그녀가 눈을 가린 손목을 갑자기 잡아내리며 부드러운 베개 위에 눌렀다. 그리고 다시 그녀 위로 몸을 덮었다. 남초윤은 점점 아래로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육지율을 올려다보며 어찌 된 일인지, 자극적이어서 그런지 혹은 복잡한 감정 탓인지 눈이 촉촉해졌다. 그는 그녀의 귀에 입을 대고 낮게 웃으며 속삭였다.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요. 완전 초짜네.” 순간 질투심이 몰려오자 그녀는 이렇게 묻고 말았다. “나랑 유설영 씨 누가 더 예뻐요?” “침대에서 다른 여자를 언급하는 건 좀 별로지 않나?” 남초윤은 그의 목에 팔을 감으며 고집을 부렸다. “육지율 씨, 대답해요.”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 진지해서인지, 육지율은 잠시 멈추었다. 그는 한 팔로 그녀 위에 몸을 지탱하며 다른 손으로 땀에 젖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그의 시선에는 드물게 따스함이 담겨 있었고 목소리는 더 낮고 부드러워졌다. “유설영이 그렇게 거슬려요?” “지금 내가 결혼한 사람은 남초윤이라는 사람이에요. 이혼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 당신 남편일 거고요.” 하지만 그녀가 아이를 가지게 되면 그들은 이혼할 것이다. 육지율의 미래는 그녀의 것이 될 수 없었다. 그들의 세계는 본래 다르다. 지금의 교차점은 그저 운명이 그녀를 장난처럼 휘둘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