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원은 찰칵하는 소리에 손을 풀더니 핸드폰을 뺏으려고 매니저를 향해 덮쳤다.“X발, 감히 사진을 찍어? 당장 삭제해!”매니저는 핸드폰을 꼭 쥐고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당신이 무고한 사람을 때려놓고, 뭐가 그렇게 당당해!”유설영은 상황을 보고 급히 핸드폰을 꺼내 육지율에게 전화를 걸었다.“지율아, 나 지금 지하 주차장인데, 어떤 미친 중년 남자한테 맞았어, 빨리 와줘!”전화를 끊고 유설영은 옷을 조금 더 내려뜨리고 단추도 풀어 헤치며 치마 단추까지 하나 풀었다. 유설영은 놀란 토끼처럼 육지율의 품에 달아가 안겼다.그녀는 두 손으로 육지율의 허리를 감싸며 눈시울이 붉어진 채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변태가 날 폭행하려고 했어. 거절하니까 내 머리채를 휘어잡고 마구 때렸어!”남재원은 두 눈을 부릅뜬 채 깜짝 놀랐다. 그는 손가락으로 유설영을 가리키며 말했다. “경고하는데, 헛소리하지 마! 내가? 내가 너를 강간하려고 했다고? 네가 내 사위를 먼저 유혹했잖아! 이 여우 같은 년아!”유설영은 육지율의 품에 안긴 채 부들부들 떨면서 눈물 어린 눈으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지율아, 저 사람이... 네 장인어른이야?”그는 자신의 허리에 두른 유설영의 손을 떼어냈다. 그녀의 옷은 흐트러져 있었고 얼굴에는 자국이 남아 있었다. 누구라도 수상하게 여길 만한 상황이었다.그때 매니저가 눈치 빠르게 말했다. “육 변호사님, 전 변호사님 장인인 줄도 모르고 이미 경찰에 신고했어요. 근데 저 사람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우리 설영 씨를 이렇게 만들다니!”유설영은 육지율 뒤에 숨은 채 옷소매를 붙잡고 말했다. “지율아, 난 저 사람이 네 장인어른인지 정말 몰랐어. 그래도 네가 제때 와줘서 다행이야. 어쨌든 나에게 실질적인 해를 끼친 건 아니니까... 유현 언니, 신고 취하해주세요, 그냥 넘어가죠.”“사위, 저 여우 같은 년 말을 믿지 마! 저 여자 지금 거짓말하는 거야!”남재원은 화가 치밀어 거의 분통을 터뜨릴 지경이었다. 분노에 휩싸여 다
이내 몇몇 사람들은 경찰서에서 소란을 피웠다.황급히 달려온 남초윤은 유설영이 육지율의 코트를 어깨에 걸치고 옆에 애처롭게 서 있는 것을 보았다.유설영은 남초윤을 보자마자 손을 뻗어 육지율의 팔을 잡아당기며 흔들었다.“저 사람이 기자인데 오늘 일을 발설하지 말라고 해.”육지율은 아무렇지도 않게 팔을 빼더니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는 유설영을 스쳐 남초윤을 바라보았다.“집안일에 대한 것은 초윤 씨가 폭로하지 않을 거야.”유설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럼 됐어.”“아직도 모른 척해? 이 년이! 윤이야, 이리 와서 얘기 좀 해. 이 여자가 뻔뻔스럽게도 내가 자기를 강간했대! 분명 바기가 다른 사람의 남편을 꼬셔놓고는!”남재원은 유설영을 노려보며 남초윤을 끌어당겼다.유설영은 육지율 뒤에 서서 말했다.“지율 씨와 예전에 2년 동안 연애한 적이 있긴 하지만 우린 이제 협력관계일 뿐이에요! 우리에게 그런 오명을 씌우지 마세요!”남재원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말했다.“방금까지 내 사위 품에 안겼잖아! 그런데 아직도 여기서 나약한 척하고 있어? 너 같은 사람을 내가 많이 봤어! 무슨 속셈일지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 정실부인이 왔으니 이제 너의 자리에 가!”경찰은 책상을 치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할 말 있으면 똑바로 하세요. 그렇게 계속 욕하지 마시고요! 여기는 경찰국서예요! 아무나 싸우는 시장이 아니라고요!”그들이 싸움은 이유를 대충 알고 있던 경찰은 유설영을 보며 물었다.“남재원이 강간이 미수로 되자 차고에서 때렸다고 했죠?”“내 머리채를 잡고 뺨을 몇 대 때리고 손찌검까지 했어요. 매니저까지 봤어요.”유설영은 CCTV가 있다는 것을 알고 말을 바꿨다.매니저도 얼른 맞장구쳤다.“네, 경찰관님. 제가 증언합니다. 우리 설영이 얼굴이 다 부었어요! 내일 아침에 광고 촬영도 있는데 이 얼굴로 내일 광고주를 어떻게 봐요?”만약 계약위반 통보가 오면 일정한 부분을 배상해야 한다.유설영의 얼굴의 상처는 남재원이 낸 것이다.매
남재원이 입을 벌리더니 또 뭔가 말하려 했다.이때 남초윤은 갑자기 손을 들어 남재원의 얼굴에 뺨을 때렸다.남재원과 유설영, 그리고 매니저도 어리둥절했다.부녀 사이에... 갑자기 내분이 생겼다고?남초윤은 굳은 얼굴로 남재원에게 말했다.“빨리 사과하지 않고 뭐해요! 남의 얼굴을 어떻게 때렸는지 보세요! 남이 내연녀가 되든 말든 우리와 상관없어요! 하지만 사람을 때린 것은 분명 잘못한 거예요!”매니저는 눈살을 찌푸렸다.“내연녀를 욕하는 거예요?”남초윤은 차가운 얼굴로 남재원에게 말했다.“본인 욕한 것도 아닌데 왜 그래요.”“너...!”유설영은 매니저의 팔을 잡아당기며 잔꾀를 부렸다.남초윤이 계속 말했다.“남재원 씨, 빨리 사과하세요! 얼른 사과하면 그냥 넘어가겠다잖아요. 터무니없이 비싼 광고비를 물어줄 돈이 있어요?”배상하라는 말을 듣자마자 남재원도 어쩔 수 없이 유설영을 째려보더니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미.안.해.”유설영은 어이가 없었다.매니저가 말했다.“그게 무슨 태도예요? 우리 설영이 얼굴을 이렇게 때려놓고.”찰싹!남초윤 또다시 남재원의 뺨을 때렸다.남초윤은 유설영을 바라보며 물었다.“우리 아빠가 뺨을 몇 대 때렸죠? CCTV 있어요? 이걸로 성의 없다고 생각하면 더 때릴게요.”배상이란 있을 수 없다.집에 있는 별장마저 넘어갈 판이라 배상할 수는 없지만 남재원의 얼굴은 마음대로 때려도 된다.유설영은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남재원은 얼굴이 아프다고 호소하면서도 다급하게 말했다.“뺨은 두세 대 때렸잖아! 다른 건 아무것도 안 했어! 내가 강간했다고 하는 것은 나를 모함하는 거야! 따지지 않을게! 사위, 나는 강간하지 않았어! 그건 나를 모욕하는 거야! CCTV가 있잖아. 한 번 봐봐. 더러운 일 같은 거 할 생각해본 적도 없어! 정말 억울해!”남초윤이 말했다.“당신은 명예는 값어치가 없어요. 이 사람은 국제적으로 유명한 사람인데 오늘 이 일이 알려지면...”그러자 매니저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하, 파
흰색 미니밴의 문이 ‘스르륵' 소리를 내며 열렸다. 남재원은 하마터면 손을 낄 뻔했다.승합차가 먼지를 날리며 가버리자 남재원은 자리에 서서 욕했다.“죽으러 가는 거야. 뭐가 그렇게 급해!”이때 육지율과 남초윤도 경찰서에서 나왔다.남초윤이 말했다.“아까 아빠 뒷수습해 주셔서 고마워요.”유설영과 매니저가 책임을 묻는다면 그 엄청난 광고 위약금을 남재원이 물어줄 수 없다.육지율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말했다.“갑자기 왜 이렇게 예의를 차려요?”남초윤이 또 소란을 피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이렇게 덤덤하니 좀 의아했다.남초윤이 입술을 달싹이며 말했다.“나중에 아빠가 돈 달라고 하면 그냥 무시하세요.”남재원이 육지율한테서 너무 많이 가져갔다. 남재원도 그녀도 갚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육지율도 남재원을 더 이상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남재원의 핸드폰 번호를 차단했으니 앞으로 나도 상관하지 않을 거예요.”이 사람은 봐주면 봐줄수록 문제를 일으킨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다.그는 사실 남초윤더러 마음을 독하게 먹고 남재원과 인연을 끊어버리라고 말하고 싶었다.그러나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을 다시 삼켰다.부녀 관계를 끊을 자격이 없는 것 같았다.남초윤도 짐작하고 있었다. 육지율은 남재원에게 3년 동안 뒷수습을 해줬고 진작 짜증이 난 상태였다.남재원을 돕는 것은 정 때문이었지 의무가 아니었다. 하지만 흡혈귀는 멀리하는 것이 좋다. 남재원은 거머리처럼 그의 몸에 붙어 3년 동안 피를 빨아 먹었다. 남초윤도 이 점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진짜 이렇게 덤덤한 육지율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조금 아팠다.남초윤이 말했다.“그동안 남재원이 진 빚은 다 갚을게요.”육지율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그깟 돈 필요 없어요. 당신에게 백 사줬다고 생각하면 돼요.”가벼운 말투는 별로 큰일이 아닌 듯했지만 남초윤의 가슴은 사실 피가 흘렀다.힘들이지 않고 청산할 수 있는 빚을 그녀는 힘껏 갚아야 하는 이 사실...예전에 망상에 빠져 그의 세
“너는 말이야 이런 관계가 있으면 이용할 줄도 알아야지. 조금만 힘을 쓰면 너의 잡지사에서 이미 편집장으로 승진했을 거야! 사장님이 됐을지도 몰라!”육성일, 육성일! 그해 높은 자리에 있을 때, 저녁 뉴스에 나오던 사람이다.딸이 멍청해 이득 볼 줄도 잘난 척할 줄도 모른다고 생각한 남재원은 참지 못하고 몇 마디 투덜거렸다.“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육지율의 비위를 아주 잘 맞췄을 거야. 너는 적극적이기는커녕 걸핏하면 이혼하겠다고 하고! 그러니까 밖에서 저런 요염한 여자나 만나지! 너는 너의 어머니에게 잘 못 배웠어. 바깥 사회가 얼마나 난잡한지 모르지? 그래서 하루 종일 꿈만 꾸는 것이고. 육지율을 잡았는데 평생 먹고살 걱정할 필요가 없잖아? 휴, 기회를 줘도 쓸 줄 모르니 정말 소용이 없어!”남재원은 조수석에 앉아 계속 중얼거렸다.운전하는 남초윤은 너무 귀찮아 경적을 눌렀다.“그럼 본인이 직접 하든가요!”“만약 내가 여자고 어느 정도 몸매가 되면 바로 했겠지! 너에게 기회를 주지도 않았어! 네 엄마는 너를 예쁘게 낳기만 하고 머리는 그렇게 멍청하게 낳았으니 쯧쯧!”남초윤은 너무 화가 나 스스로에게 욕을 퍼부었다.“내 머리가 좋으면 돼지로 환생했겠죠. 당신 딸이 아니라!”“너! 아버지에게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어?”“당신한테서 배운 거예요!”...한편 저녁에 남초윤은 소정 별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육지율은 본인이 유설영과 작업하는 것을 남초윤이 신경 쓴다고 생각해 전화를 걸었다.첫 번째 통화 연결음은 오랫동안 울렸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두 번째 통화에서 저쪽 남초윤은 느릿느릿 말했다.“여보세요?”육지율은 씩 웃었지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왜 아직도 안 돌아와요? 여기에서 나 혼자 두고 소리 없이 항의하는 거예요?”남초윤은 무력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무슨 항의를 했다고요?”요 며칠 집에 큰 변화가 생겨서 낮에 짐을 싸고 이사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육지율은 그녀가 화가 난 줄 알고 달랬다.“말했잖아요.
밤 9시 반, 불야항 바.배현수가 뒤늦게 도착했을 때, 육지율은 담배를 입에 문 채 바에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금방 나온 칵테일 두 잔의 색깔은 선명하고 유혹적이었다.육지율은 그중 한 잔을 배현수에게 내밀며 말했다.“내가 얼마나 체면을 세워주는지 봐봐. 직접 술까지 따라 주고.”배현수가 말했다.“이거 마실 수 있는 거야?”지난번에 용맹스러웠던 75도 공업용 알코올은 목구멍에서 뱃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위를 태울 뻔했다.육지율은 배현수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죽는 것도 두렵지 않은 사람이 독주를 마시는 게 뭐가 두려워? 배현수, 조유진과 화해하더니 갑자기 쫄기 시작한 거야?”칵테일을 한 모금 마신 배현수는 칵테일의 부드러움을 느끼며 말했다.“이제 가족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목숨을 아껴야 해.”육지율은 담뱃갑과 라이터를 그에게 던졌지만 배현수는 받지 않았다.“집에 가면 유진이가 검사할 거야.”육지율은 배현수의 멀쩡한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와이프가 엄격하네! 앞으로 나와서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안 마시니 여자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안 보겠지. 배현수, 너 이제 끝났어. 앞으로 무슨 낙으로 살아?”육지율이 동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자 배현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총탄이 빗발치는 곳에 오래 있으면 안정감과 든든함이 얼마나 소중한지 너는 몰라.”그는 7년 동안 외로운 나날을 보냈고 이걸로 충분히 고통받았다.총탄과 전우 이제 필요 없다.조유진만 있으면 이 세상 다 가진 것 같다.육지율은 얼음을 입에 물더니 독한 술로 입안을 가득 채우며 뜨거움과 찬 자극을 즐겼다.그러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눈밭의 불꽃은 따뜻하고 칼끝의 꿀은 달콤하지. 그 어떤 이런 자극 앞에서는 가치가 없어.”배현수가 가볍게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얇은 입술로 두 글자를 뱉었다.“천한 놈.”“사람이 한평생밖에 살지 못하잖아. 천하지 않으면 재미가 없겠지? 조유진과 그렇게 오랫동안 밀당한 너야말로 천한 놈이겠지?”육지율의 말도 일리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면 그게 사람이든 일이든 어렵지 않다. 육지율처럼 돈이 부족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가장 간단했다.하지만 어느 날, 돈도 필요 없고 가방도 필요 없다고 하며 사랑 이야기를 나누면 곤란해진다.사랑의 빚은 갚기가 가장 어렵다.배현수는 전혀 놀라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더 이상 함부로 행동하지 마. 그러다가 무릎 꿇고 울어야 할 수 있어.”그는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누가 감히 나에게 무릎을 꿇기고 울게 할 수 있는데?”그 집 할아버지도 그럴 능력이 없는데 남초윤에게 있다고?어린 나이에는 할아버지의 매에 울었지만 나중에는... 대들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몇 년 동안, 그는 누구에게 진 적이 없다. 감히 누구 그를 건드리겠는가?아마 배현수밖에 없을 것이다.719부대의 사격 연습장에 10발의 총알이 전부 과녁을 맞혔다. 정말 대단했다.사령관과 육성일은 한쪽에 서서 주시하고 있었다. 판사가 되어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을 아버지라고 부르기로 했다.고개를 숙인 것은 그 한 번뿐이었다.육지율이라는 사람은 어릴 때부터 육성일을 따라다녔기에 권력의 힘을 알고 있었다.주변 사람들은 관계를 맺기 위해 그에게 굽실거렸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의 호불호 의도를 알아낼 수 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그의 룰에 따라 움직였다.습관적으로 지배하고 통제하는 것은 육씨 집안의 뼈에 새겨진 유전자와 같다.권력은 산이다. 누구도 넘을 수 없다.그것에 복종하든지, 아니면 배현수처럼 규칙을 깨고 질서를 새로 짤 정도로 강하든지였다.술을 마신 배현수는 대리운전을 불러 막 떠나려던 참이었다.이때 뒤에서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배 대표님! 정말 배 대표네요.”배현수는 돌아서자마자 낯익은 여인을 보았지만 왠지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누구?”“주명은이에요. 배 대표님, 기억 안 나세요? 전에 저한테...”주명은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수줍은 표정을 지었다.그러자 육지율은 장난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배현수,
주명은의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배현수는 대리운전이 오자마자 남자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가버렸다.주명은은 서러워하며 눈물을 흘리자 육지율은 우스운 얼굴로 물었다.“배현수가 어떻게 했는데 이렇게 서러워하는 거야?”한참을 울던 주명은은 누군가 와서 ‘관심’을 보이자 눈물을 왈칵 쏟았다.“내, 내 처음을 모두 준 사람이에요. 설날 요 며칠 동안 줄곧 나를 무시했어요. 오늘 어렵게 만났는데 이제는 관심을 보여야 하지 않아요? 조유진과 대학 때부터 같이 있었고 두 사람 갈라놓을 생각이 없었어요. 나도 처음이니까...”육지율은 멍해진 얼굴로 다시 한번 물었다.“너의 말은 배현수가... 배현수가 너와 잤다고?”주명은은 눈물을 훔치며 울먹였다. “네, 못 믿는 거 알지만 진짜예요...”“증거가 있어?”주명은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이자 육지율은 멍해졌다.‘배현수 이 자식! 대체 어쩌자는 거야?’...산성 별장.조유진은 밤새도록 선유와 보드게임을 한 뒤 녀석을 씻긴 후 핑크색 가운을 두르고 껴안고 자기 방으로 갔다.시간을 보니 11시인데 배현수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막 전화를 걸어 물어보려고 할 때 휴대전화에서 메시지가 하나 왔다.주명은이 보낸 것이다.[유진아, 나 임신했어.]밑도 끝도 없는 한마디에 조유진은 어리둥절했다.[?]주명은은 무관심한 조유진의 태도에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내일 만나서 얘기할 수 있을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네가 감당하지 못할까 봐 걱정돼.]주명은이 임신했는데 그녀 감당 못 할 게 뭐가 있겠는가?조유진이 답장했다.[아이가 내 아이도 아닌데 내가 감당 못 할 게 뭐가 있어.]만약 조유진이 주명은을 임신시켰다면 조유진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한바탕 놀랄 일이다.주명은이 답장했다.[나 원망하지 마, 나도, 나도 어쩔 수 없이...]그녀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유진의 호기심을 자극했다.하지만 조유진은 워낙 수다스러운 사람이 아니었기에 주명은에 대해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조유진이 답장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