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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5화

밤 9시 반, 불야항 바.

배현수가 뒤늦게 도착했을 때, 육지율은 담배를 입에 문 채 바에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금방 나온 칵테일 두 잔의 색깔은 선명하고 유혹적이었다.

육지율은 그중 한 잔을 배현수에게 내밀며 말했다.

“내가 얼마나 체면을 세워주는지 봐봐. 직접 술까지 따라 주고.”

배현수가 말했다.

“이거 마실 수 있는 거야?”

지난번에 용맹스러웠던 75도 공업용 알코올은 목구멍에서 뱃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위를 태울 뻔했다.

육지율은 배현수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죽는 것도 두렵지 않은 사람이 독주를 마시는 게 뭐가 두려워? 배현수, 조유진과 화해하더니 갑자기 쫄기 시작한 거야?”

칵테일을 한 모금 마신 배현수는 칵테일의 부드러움을 느끼며 말했다.

“이제 가족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목숨을 아껴야 해.”

육지율은 담뱃갑과 라이터를 그에게 던졌지만 배현수는 받지 않았다.

“집에 가면 유진이가 검사할 거야.”

육지율은 배현수의 멀쩡한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와이프가 엄격하네! 앞으로 나와서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안 마시니 여자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안 보겠지. 배현수, 너 이제 끝났어. 앞으로 무슨 낙으로 살아?”

육지율이 동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자 배현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총탄이 빗발치는 곳에 오래 있으면 안정감과 든든함이 얼마나 소중한지 너는 몰라.”

그는 7년 동안 외로운 나날을 보냈고 이걸로 충분히 고통받았다.

총탄과 전우 이제 필요 없다.

조유진만 있으면 이 세상 다 가진 것 같다.

육지율은 얼음을 입에 물더니 독한 술로 입안을 가득 채우며 뜨거움과 찬 자극을 즐겼다.

그러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눈밭의 불꽃은 따뜻하고 칼끝의 꿀은 달콤하지. 그 어떤 이런 자극 앞에서는 가치가 없어.”

배현수가 가볍게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얇은 입술로 두 글자를 뱉었다.

“천한 놈.”

“사람이 한평생밖에 살지 못하잖아. 천하지 않으면 재미가 없겠지? 조유진과 그렇게 오랫동안 밀당한 너야말로 천한 놈이겠지?”

육지율의 말도 일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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