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총부리를 겨눠서 만약 오발이라도 나면 네 남은 평생의 행복은 누가 책임질까.”조유진은 조롱했다.“나중에 또 날 속이면 이 총으로 겨눌게요. 무섭죠?”배현수는 입꼬리를 올렸다.“무서워. 한 방 쏘고 반동을 느껴봐.”펑!총알이 날아가 과녁 한가운데 적중했다.처음 총을 쏘는 조유진이라 손목에 힘이 부족해서 반동력 때문에 손목에 무리가 갔다.배현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손목이 이렇게 흔들리면 어떻게 해. 연습할 겸 밤에 벌을 줘야겠어.”조유진이 깜짝 놀라 물었다.“어떻게 연습해요?”남자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농담임을 알 수 있었다.“간단해. 총을 잡고 연습하면 되지.”조유진 왠지 모르게 귀가 뜨거워졌다.배현수는 이미 웃음을 거두고 그녀의 손을 잡고 다시 과녁을 겨누었다.“세 발 쏘면서 가르쳐줄게, 반동력에 습관이 되어야 해. 네 번째 발은 혼자 연습해.”펑!두 번째 총을 쏘자 조유진은 손목뼈가 후줄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찌릿찌릿한 느낌이 들었다.배현수는 일부러 그녀를 혼냈다.“오늘 목표는 과녁을 맞히지 못하면 밤에 무릎 꿇고 계속하는 거야.”조유진은 ‘흥’하고 콧방귀를 뀌고는 말했다.“감사하네요. 선생님.”“천만의 말씀. 엄한 스승이 훌륭한 제자를 배출하니까.”멀지 않은 곳.짙은 검은 눈동자가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고 이곳의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배현수에게 총을 겨누며 웃는 조유진을 바라보는 그의 눈가에 매서운 빛이 스쳐 지났다.한 부하가 지나가면서 그에게 인사를 했다.“사령관님 안녕하세요.”한편 조유진은 네 번째로 총을 쏠 준비를 하고 있었다.사령관은 두 손을 뒤로 한 채 다가와 말했다.“총이 재미있어요?”조유진이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이분은?”배현수가 대답했다.“사령관님이야. 여기는 조유진.”사령관의 시선이 조유진을 스쳐 지나갔다.“이분이 당신을 공해에서 구사일생으로 구했다는 사람이에요?”심지어 그녀를 위해 719 대장의 자리를 넘겨받았다.배현수는 조유진을 끌
기지에서 돌아간 후 조유진은 손목에 파스를 붙였다.산성 별장에 도착하니 선유가 물었다.“엄마, 손목이 왜 그래? 다쳤어?”배현수는 가볍게 웃었다.“어머니가 총을 다루지도 못하면서 굳이 하려고 해서 그래.”조유진도 한마디 했다.“아니. 엄마가 개와 싸우다가 손목을 삐었어.”선유는 눈을 돌려 루루를 의심했다.“루루! 감히 내 말을 안 들어! 맞아!”저녁.배현수는 휴대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려 휴대폰을 켜보니 카톡 메시지가 곧 폭발할 것 같았다.엄창민의 메시지다.[배현수! 감히 환희에게 이렇게 대하다니! 기다려! 내일 아침 대제주시로 환희 데리러 갈 테니!]엄준의 메시지도 있었다.[환희를 너에게 맡겼는데 어떻게 환희에게 그럴 수 있어? 너무 실망이야!]처제 엄명월의 메시지도 있었다.[배 대표님, 너무 잘 노네요. 몸매도 좋고요! 하지만 이건 평가하기 어려워요! 성공하시길 바랍니다.]육지율의 메시지도 있었다.[배현수, 안 놀면 그만이라더니 예전에는 내가 너를 얕봤어! 조유진이 뭐라고 안 해? 대단해!]서정호에게서도 메시지가 왔다.[배 대표님, 큰일 났어요! 빨리 답장 좀!]배현수는 이런 두서없는 정보들을 보며 멍해졌다.무슨 큰 죄를 지었는지 이 사람들은 거의 같은 시간에 메시지가 왔다.아마 주명은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짐작한 배현수는 SNS에 접속했다.인기 검색어가 하늘 높이 걸려 있었다.[SY그룹.][베드신.]샤워하고 욕실에서 나온 조유진은 안색이 어두운 배현수를 보고 다가와 물었다.“왜?”“주명은이 사진을 공개해 화제가 되고 있어.”조유진은 의외가 아니라고 생각했다.주명은은 분명 이런 방법을 써서 배현수를 핍박하여 배 속의 아이를 보게 할 줄 알았다.휴대전화를 들고 댓글을 뒤적이니 누리꾼들이 의논이 분분했다.심지어 댓글 창에는 조햇살을 부르는 누리꾼도 있었다.[하하하! 조햇살! 너의 강적이 드디어 나타났어!][아니, SY그룹이 조햇살을 좋아하는 것은 그렇다 쳐. 적어도 조햇살은 예쁘잖아.][SY그룹이
아래층 응접실에는 건장한 중년 남자 몇 명이 뛰어 들어왔다. 그들은 입에 담배를 물고 있고 어떤 이들은 손에 도끼와 칼을 들고 흉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남재원은 그 얼굴들을 보자마자 염라대왕을 만난 듯 발을 빼 위층으로 뛰어갔다.우두머리가 거실 소파에 앉더니 턱을 올리자 손아랫동생이 바로 알아차리고는 달려들어 남재원을 잡아당겼다.“어딜 뛰어? 달리기는 빠르네! 이제 이 다리를 잘라야겠어! 다음에 또 무엇을 가지고 도망가는지 보자고!”그 사람은 손에 날카로운 도끼를 들고 남재원의 오른쪽 다리에 손짓을 두 번 했다.남재원은 겁에 질렸다.“형님들, 도망갈 생각 아니었어요! 위층으로 올라가서 집에 현금이 있는지 확인한 거예요. 가져와서 빚을 갚아야죠!”그 사람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진짜인 척하네.”우두머리는 이 별장을 둘러보더니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쯧쯧, 이런 집에 살면서 빚이나 지고. 그러면서 이렇게 좋은 집에 살고 있어! 주머니에 아직 돈이 있나 보네, 빚 갚기 아까운가 봐?”남재원은 서둘러 설명했다.“아니요. 이 집은 이미 법원에 넘어갔어요. 이 집이 여전히 제집이라면 당장 은행 대출을 받아서라도 형님들의 빚을 갚았겠죠. 보세요. 법원 봉인이 아직 문 앞에 있어요! 진짜 거짓말 아니에요!”그러자 제일 큰 우두머리 형님이 피식 웃었다.“그래. 무슨 뜻인지 알겠어. 갚을 돈이 없다는 거지?”“조금만 시간을 주면 안 될까요? 돈이 생기면 바로 갚을게요!”큰형님은 손을 뻗어 남재원의 얼굴을 툭툭 두드렸다.“봐달라고? 누가 널 봐줘? 이 빚은 원래 설 전에 청산해야 하는데 이제 설도 지나고 봄이 곧 다가와! 나 같은 사람들은 밥도 못 먹고 기다리고 있잖아! 네가 돈을 갚지 않으면 어디서 밥을 먹을 수 있겠어? 동생, 내 위에도 사람이 있는데 나를 곤란하게 하면 안 되지. 나도 살아야 할 거 아니야!”남재원은 놀라서 털썩하고 무릎을 꿇었다.“그런데 지금은 갚을 돈이 정말 없어요. 입구에 차가 있으니 운전해 가세요. 중고로 팔아도
“육성일! 육성일 아세요? 전에 7시 뉴스에 나왔을 거예요!”전우영은 틈만 나면 뉴스를 볼 정도로 뉴스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니 육성일이라는 이름도 자연스럽게 들어본 적이 있었다.그는 가볍게 웃음을 흘리며 대꾸했다.“육성일이라니… 그렇게 높은 사람이 너 같은 신용불량자랑 아는 사이라는 거야? 네가 정말 황족이라면 돈을 못 갚을 이유가 없지. 안 그래? 돈 안 갚으려고 별 핑계를 다 대는구나! 점점 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늘어놓으려고 하네!”“다 끌고 가! 저놈이랑 저놈 딸내미까지 싹 다 끌고 가! 너 같은 자식은 호성시에서 설거지나 하는 게 제일 어울려!”전우영의 수하가 물었다.“형님, 저 노인네도 같이 데려갈까요?”전우영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다 데려가! 다리 하나라도 잘라서 우리 애들 기분 풀어줘야지!”그 말에 남재윤은 놀라 까무러칠 뻔했다.…깊숙한 골목에 있는 작은 집 안에서는 희미한 조명이 가까스로 어둠을 밝혀주고 있었다.전우영의 수하들이 도끼날을 날카롭게 갈고 있었다.그 광경을 보는 남재원은 혼비백산해 새하얗게 질려있었다.그는 남초윤의 손을 잡고 울부짖었다.“빨리 어르신한테 도와달라고 연락해! 아니면 변호사님한테라도! 제발 아무나 불러서 나 좀 도와줘! 나 다리 하나 잃는 것쯤은 괜찮아! 그런데 너까지 호성시 도박장에 팔아넘기려고 하잖니!”“초윤아, 내 생각은 안 해도 된다. 너를 생각해서라도 얼른 도와달라고 해야지!”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던 남초윤의 눈은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그녀가 이를 꽉 깨문 채 물었다.“마지막으로 물을게요. 또 도박할 거예요?”“안 할게! 다시는 도박 같은 거 안 한다! 맹세할게! 내가 다시 도박하면 저 사람들 손에 죽을게!”맹세가 끝나기 무섭게 남재윤은 남자들에 의해 끌려나갔다.여러 명이 달려들어 돼지 잡듯 남재윤을 잡아 눌렀다. 그러고는 금발 머리의 남자가 도끼를 들고 오더니 손을 높이 들어 도끼를 휘두르려 했다.그 모습에 남재윤의 눈이 커
남초윤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소정 별장으로 돌아왔다.밖에서는 가랑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돌아온 그녀는 별장 입구에서부터 집 안까지 마당을 지나며 뛰어 들어와야 했다. 그 때문에 온몸은 안개에 뒤덮인 듯 촉촉한 이슬이 맺혀있었다.별장 안은 어둡고 조용했다.남초윤은 불도 켜지 않고 조용히 2층으로 걸어 올라가더니 샤워를 하기 위해 잠옷을 들고 욕실로 향했다.그 순간, 등 뒤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더니 단단한 가슴이 그녀의 몸에 닿았다.그 감촉에 남초윤의 등이 뻣뻣하게 굳었다.등 뒤에서 육지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을 덜 깬 그의 목소리는 낮게 잠겨 있었다.“왜 이제 들어오는 거예요?”순간적으로 헛숨을 들이쉰 남초윤은 들고 있던 잠옷을 바닥에 툭 떨어뜨렸다.그녀는 몸을 돌려 육지율의 목을 끌어안더니 어둠 속에서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육지율과 혀를 섞으며 남초윤은 흐릿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보고 싶었어요.”“…”그 말에 육지율이 적잖이 놀란 듯 멈칫했다.하지만 곧 다시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오밤중에 도둑이라도 든 줄 알았잖아요.”남초윤이 원한다면 육지율도 거절할 리 없었다.남자의 큰 손이 남초윤의 허리를 꼭 끌어안더니 더 진하게 입을 맞추며 그녀의 옷을 천천히 벗겨내기 시작했다.“꿀이라도 먹었어요? 오늘따라 왜 이렇게 달콤하지?”남초윤도 천천히 육지율의 잠옷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육지율은 급한듯한 남초윤의 손을 잡더니 낮게 웃음을 흘렸다.“이럴 생각이었어요? 얼마나 원했는지 한 번 볼까요?”남초윤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육지율에게 더 가까이 달라붙었다.그 작은 접촉에도 두 사람은 빠르게 달아올랐다.육지율은 한 손으로 남초윤의 움직임을 통제하더니 그녀를 침대 가장자리로 데리고 갔다.그러고는 다른 한 손으로 침대 옆 서랍을 열어 콘돔을 찾기 위해 손으로 더듬어 보았지만 찾지 못했다.남초윤은 그런 육지율의 팔을 끌어당기더니 숨을 몇 번 고르고는 그의 귓가에 나지
…반응을 지켜보던 조유진은 커뮤니티를 나가려던 찰나, 주명은에게서 온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배현수 못 만나게 하면, 동영상 공개해 버릴 거야.“반협박 어린 말투로 보아 인내심이 바닥 난 모양이었다.하지만 조유진은 차분하게 대답했다.[정말 모든 인터넷이 네 19금 이야기에 대해 알아주길 바라는 거야? 그런 거라면 올리든지.]어차피 영상 속의 남자는 배현수가 아니었으니 잃을 것도 없었다.아무렇지도 않은 조유진의 반응에 주명은은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조유진은 주명은과의 대화 내용을 캡처해 남초윤에게 전송했다.[네 실적 올려줄게. 나 대신 이거 좀 폭로해줄래?]조유진의 메시지를 받은 남초윤은 충격적인 소식에 곧장 조유진에게 전화를 걸었다.뒤늦게 상황 파악을 마친 남초윤은 대화 내용 캡처본을 들고 본격적으로 일을 하러 갔다.오후가 되자 상황이 예상대로 흘러갔다.지금 실시간 인기검색어는 대화 내용 캡처였다.네티즌들의 반응이 폭발했다.“그거 봐! 내가 반전이 있을 거라고 했잖아! 결국, 이 여자가 계획적으로 SY 꼬신 거라니까! 올린 글에는 SY가 먼저 꼬셨다고 했으면서!”“동영상도 있다고?? ㅇ이 여자 진짜 대단하네! 그 순간에 영상을 찍은 거야??”“헐! SY는 왜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지? 그냥 영상 공개하라고 하는데??”“SY랑 저 여자 못 만나게 하는 사람은 또 누구야? 저 사람 누가 봐도 진짜 본처잖아!”“설마 SY 약혼녀 아니야? 그 엄씨 가문 아가씨.““미친! 조햇살도 이렇게까지 무모한 짓은 안 했어! SY가 조햇살을 얼마나 대놓고 밀어줬는데, 저런 식으로 인터넷에서 대놓고 협박한 적 없었어. 저 여자는 대체 뭐길래 저런 자신감이 생겨난 거지?”“이 사건 점점 재밌어지네…”…주명은은 조유진이 자신과 사적으로 나눈 채팅 내용을 이런 식으로 무례하게 공개해버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하지만 주명은은 포기하지 않고 배현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보내기 전, 그녀는 수십 번이고 내용을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
예지은이 실종된 지 거의 일주일이 지났다. 이제 와서 단서가 발견된 것은 좋은 일이었다.하지만 조유진은 배현수의 이번 출국이 어딘가 걱정되었다.“만약 드래곤 파가 현수 씨를 협박하기 위해서 어머님을 납치한 거라면요? 그렇다면 그 사람들도 분명 현수 씨가 올 걸 예상하고 함정을 파놨을 거예요.”배현수는 그런 조유진의 마음을 이해했다.“내가 안 갔으면 좋겠어?”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인 법이다. 예지은이라면 조유진에게 엄청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배현수는 조유진의 인생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존재나 마찬가지였다.조유진은 그런 배현수의 말을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현수 씨 친어머니니까, 현수 씨가 그렇게 몸을 사리지 않는 걸 이해할 수는 있어요. 저도 현수 씨를 막을 자격은 없죠. 그냥 제가 걱정되는 건…”배현수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배현수가 조유진의 손을 잡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약속했다.“무사히 돌아올게.”하지만 조유진은 배현수를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조유진을 너무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던 배현수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안 돌아오면 내가 너랑 결혼을 어떻게 하겠어?”“…”조유진은 눈을 살짝 내리깔며 애써 달아오르는 눈시울을 숨겼다.그녀는 배현수의 셔츠 단추를 만지작거리며 아쉬운 듯 말했다.“선유가 방학에 엄마 아빠랑 여행 가고 싶다고 했었는데, 또 계획 틀어지게 생겼네요. 현수 씨가 나중에 직접 가서 설명할래요?”일전, 배현수와 조유진은 이미 선유에게 같이 놀러 갈 거라는 약속을 한 상태였다. 이번에 또 약속을 어긴다면 아이가 화를 낼 게 뻔했다.배현수는 조유진의 손을 잡아 가볍게 몇 번 쥐더니 깊은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응, 내가 가서 다 얘기할게. 주명은 일은…”“주명은 일은 내가 알아서 다 처리할게요. 현수 씨는 신경 쓰지 말아요.”배현수는 조유진을 꼭 끌어안더니 자신의 턱을 그녀의 머리 위에 가볍게 괴고는 옅은 한숨을 쉬었다.“유진아, 이번이 마지막이야. 널 이렇게 걱
배현수는 팔을 벌려 선유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아빠가 자리를 뜨고… 아이의 방문이 닫혔다.선유는 곧장 영어사전을 저 멀리 던져 버리고는 다시 태블릿을 쥔 채 침대에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랄랄라! 랄랄라! 나는 꼬마 신문 배달부… 아빠 출장 따위는 기다리지 않지…”“찰칵.”아이의 방문이 다시 열렸다.선유는 민첩하게 침대에 엎드려 이불 속에 고개를 묻고는 서럽게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아이의 울음소리에 놀라 달려온 조유진이 물었다.“선유야, 왜 그래? 아빠한테 혼났어?”엄마의 목소리에 선유는 곧바로 이불 속에서 기어 나왔다.“아, 엄마였구나! 깜짝 놀랐잖아요! 엄마, 내일 아빠 출장 가시면 우린 어디 놀러 가요?”“…”대단한 녀석이다.조유진은 혹시라도 딸이 슬퍼할까 봐 걱정했건만, 배현수와 자신만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던 셈이었다.…서재.계약서를 작성하던 배현수가 조유진을 보며 물었다.“선유는 아직도 기분 안 좋대?”이걸… 뭐라고 대답해줘야 할까?조유진은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조금요.”하지만 아주 조금.아이는 이미 혼자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그 말에 배현수의 마음이 갑자기 약해지더니 어딘가 모를 죄책감이 들면서도 또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다.“이제 선유가 정말 사랑스러운 내 딸이 됐네. 내가 돌아오면 같이 디즈니랜드 가자고 전해줘.”선유는 사랑스러운 딸이 맞았다. 어딘가 나사 빠진 딸이어도 사랑스러운 딸이었다.조유진이 가까스로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그 말 들으면 선유 진짜 좋아하겠어요.”배현수는 손에 들고 있던 계약서를 조유진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거 좀 봐봐.”“이게 뭔데요?”계약서를 건네받아 확인한 조유진의 표정이 묘해졌다.배현수가 펜을 꺼내며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말했다.“추가할 거 없으면 여기에 사인하면 돼. 그럼 내가 변호사한테 보내서 공증까지 끝낼게.”배현수가 내민 것은 재산 양도 계약서였다.배현수는 자신이 소유한 모든 개인 자산을 조유진에게 양도하며 자발적으로 증여한다는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