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수는 침실에 들어서자마자 조유진을 껴안고 은은한 향기를 맡으며 말했다.“샤워했어? 너무 향기롭네.”조유진은 대답한 후 그의 품에서 몸을 돌리고는 그를 마주 보고 말했다.“배현수 씨, 둘째 아이가 생겼다고 들었어요.”순간 멍해 있던 배현수의 눈빛이 이내 반짝였다.“몇 주 됐대?”설레임 뒤에 걱정들이 몰려왔다...그는 조유진의 허리를 감싸 안고는 큰 손으로 아랫배를 만지며 고개를 숙이고는 낮은 소리로 물었다.“지난번 유산한 것도 아직 몸조리 안 했는데 지금 임신하면 몸이 버틸 수 있겠어?”그리고 조유진이 유산한 후부터 관계를 가질 때마다 계속 조치를 취하고 있다.배현수는 또다시 사고가 생긴 줄 알았다.“내일 아침 병원에 같이 가자.”“내가 아니고요.”배현수는 어리둥절해 하더니 물었다.“네가 아니면 누가 내 아이를 가질 수 있는데?”“주명은.”여자 혼자 아이를 낳는다고?조유진은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사진을 보여줬다.“사진 속 남자가 현수 씨와 똑같이 생겼어.”유일한 차이점은 이 사진 속 남자는 왼쪽 가슴에 칼자국이 없고 Y자 문신도 없다는 것이다.배현수는 눈빛을 반짝였다.예지은의 실종이 주명은에게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조유진이 웃으며 물었다.“어떡해요, 주명은이 이 사진을 가지고 다니면 배 속의 아이를 모른 체할 수 없잖아요. 그러면 진짜 배신자가 될 테니까? 이 사진 속의 사람이 현수 씨를 너무 닮은 것 같아요. 포토샵 한 것일까요?”“포토샵이 아니라 진짜로 나를 사칭하는 사람이야. 드래곤 파에서 주명은과 몰래 접촉했을 가능성이 커.”조유진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그들은 예지은을 납치한 뒤 주명은과 접촉했다... 발이 점점 더 넓어지고 있다.조유진은 오랫동안 답장하지 않았다.그러자 주명은이 또 메시지를 보냈다.[유진아, 배 대표님은 뭐래? 설마 자기 자식도 모른 척하는 것은 아니지?]이 일은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만약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주명은은 반드시 사진을 가지고 인터넷에서 소란을 피울
조유진은 그의 목을 껴안고 남자의 얇은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배 대표님이 자꾸 상기시키는데 그깟 혼인신고 정도는 뭐가 두려워요?”두렵냐고?배현수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더니 웃으며 말했다.“도망칠까 봐 무섭다면?”“그런데 오늘 구청이 문을 열지 않네요.”게다가 그녀에게 줄 ‘선물’은 반드시 혼인신고서를 받기 전에 서명해야 했다.조유진은 은은한 술 냄새를 맡으며 오늘 밤 그에게 줬던 미션을 떠올렸다.“참, 육 변호사의 생각은 어때요? 처음 집에 이렇게 큰일이 생겼는데 상황을 알고 있었어요?”“남초윤에게 기대하지 말라고 일러두는 게 좋을 거야.”배현수는 딱 잘라 말하지 않고 주의만 주었다.그 뜻을 알아차린 조유진은 육지율이 생각보다 덤덤하다고 생각했다.“결혼한 지 3년이나 됐는데 정이 하나도 없어요?”지독한 사람이다.배현수는 담담한 얼굴로 대답했다.“돈이 전부니까. 육지율은 돈과 권력을 제일 좋아해. 이 세 가지 중에서 하나만 선택하라면 주저 없이 권력을 선택하고 돈과 사랑을 포기할 거야.”조유진은 몇 초를 생각하다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그럼 당신은요?”생각지도 못한 반문에 배현수는 잠시 멍해졌지만 이내 말했다.“나는 육지율과 달라. 권력에 대한 갈망은 가문에서 비롯됐으니 그는 평생 위해 가문을 저버리지 못할 거야. 어느 날 권력보다 더 탐나는 것을 찾아내지 않는 한 말이야. 하지만 나는 권력에 대한 갈망이 전적으로 조유진이라는 사람에게서 나와. 조유진을 포기하면 권력을 쫓을 동력이 없어져.”어찌 보면 조유진이 배현수를 만든 셈이다.조유진은 일부러 배현수에게 난처한 질문을 던졌지만 오히려 그녀가 감동을 받았다. 권력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극한의 권력은 거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육지율은 가문에서 권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권력을 갈망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권력이 가져다주는 우월함을 너무 많이 누렸다. 그러다 보니 감정에 있어서 대수롭지 않았다.그는 영원히 가족을 등질
조유진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이게 말로만 듣던 생존 본능인가?...다음날 오전, 찻집.이 찻집의 주인은 육지율로 환경의 비밀성이 매우 좋다.조유진과 주명은이 룸에 마주 앉아 중간중간 차를 끓이고 있었고 차 향기가 모락모락 났다.주명은은 참지 못하고 룸 입구를 여러 번 쳐다보면서 말했다.“어젯밤 배 대표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다며? 그런데 배 대표님은 왜 안 오셨어? 조유진, 너 지금 거짓말한 거야?”조유진은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물어봤는데 필요 없대.”주명은은 독이 오른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배 대표가 원하지 않는 게 아니라 네가 원하지 않는 거겠지.”조유진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본인 아이가 아닌데 왜 필요하겠어?”“뭐라고?”처음에는 어리둥절하던 주명은은 이내 승리를 확신하고 득의양양하게 웃기 시작했다.“조유진, 미운 오리 새끼 같은 주명은이 언젠가 너의 약혼자와 잘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지? 그래서 내 뱃속의 아이가 배현수의 것이라고 믿고 싶지 않은 것이고!”조유진은 집요한 척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말했다.“그 남자와 언제 사귄 거야? 임신한 지 얼마나 됐어?”주명은은 입꼬리를 올렸다.“네가 립스틱을 돌려준 다음 날, 배 대표가 술을 마시고 한밤중에 직접 우리 집 문을 두드렸어. 네가 단속이 너무 심하다고 몰래 나를 찾아올 수밖에 없다고 했어.”잠깐 멈칫한 주명은은 계속 말했다.“그리고 배 대표님이 그러는데 네가 매일 차가운 얼굴로 있어서 재미없대. 침대에서 나무처럼 딱딱하고 전혀 흥미롭지 않다고 했어! 나 같은 여자가 좋다고 했어!”조유진은 담담한 얼굴로 욕을 내뱉었다.“너 같은 걸 좋아한다고? 너처럼 남자 뒤나 찾아다니는 사람?”“조유진! 너!”늘 덤덤하고 차분한 조유진이 욕설을 내뱉는 경우는 드물었다.하지만 지금 최악의 욕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위협을 느껴 화가 났다는 뜻이다.여기까지 생각한 주명은은 이내 입을 열었다.“조유진, 배 대표님이 그날 밤 나와 몇 번이나
“주명은, 네가 속았어. 그날 밤 당신과 함께 있었던 사람은 배현수가 아니야.”하지만 그 말을 들을 주명은이 아니었다.“조유진, 또 거짓말하네! 알아. 배 대표님이 너와 결혼한 게 아니라는 것을. 내가 혹시라도 너의 사모님 자리를 빼앗을까 봐 두려운 거잖아! 항상 고상하고 우아한 척했잖아. 그럼 나와 공정하게 배현수를 놓고 경쟁할 수 있어?”조유진은 피식 웃었다.“내 대답보다 배현수 본인이 그럴 의향이 있는지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니야?”주명은은 조롱하듯 말했다.“내 몸속에서 죽어도 된다고 했어. 그런데 어떻게 원하지 않을 수 있어? 조유진, 믿기 싫으시면 내가 동영상을 보내줄게.”그날 밤, 그녀는 배현수가 술을 마셔 취한 상태에 인정하지 않을까 봐 몰래 촬영했다.이것들은 모두 중대한 증거이다.조유진이 정말 강요한다면 그 증거들을 차곡차곡 내놓을 것이다.조유진은 그녀가 집착하는 것을 보고는 더 이상 타이르려 하지 않고 의자 등 뒤로 기대어 차분하게 주명은을 바라보았다.“그런 것들은 눈 따가워서 보고 싶지 않아. 만약 온라인 전체에 너를 보여주고 싶다면 공개해, 말리지 않을게. 너는 배 속의 아이는 진짜 친아버지를 찾아가야지 배현수에게 매달릴 게 아니야.”배현수를 그렇게 오랫동안 사모해온 주명은은 이제 겨우 관계를 맺게 되었기에 진작 이성을 잃었다.그는 조유진의 이런 말이 전혀 들리지 않은 듯 손가락만 쥐어짜며 말했다.“조유진, 배현수가 아직도 너를 사랑하는 줄 알아? 열여덟 살부터 같이 있으면서 몇 년이나 지났는데 진작 너에게 열정과 흥미를 잃었어! 남자들은 다 새로움을 찾는 거야...”가방을 들고 나가려던 조유진은 주명은의 말에 걸음을 멈췄다.“너에게 충격을 주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네. 너는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임신했어. 너무 충분해. 그런데 굳이 스스로 천한 여자가 되고 싶다면 똑똑히 말할게. 그날 밤 진짜 배현수는 내 옆에서 자고 있었어. 배현수와 몇 번을 잤는데 그 사람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내가 너보다
넋을 잃은 배현수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에게 다가와 눈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유진아, 방금 뭐라고 했어?”“뽀뽀 안 할 거면 됐고.”조유진이 몸을 돌려 차를 타려고 하자 배현수가 그녀의 팔을 잡아당기더니 품에 안았다.고개를 들자 이내 배현수가 고개를 숙였고 두 사람은 입술이 아플 정도로 키스했다.조유진이 살짝 물러서려 하자 배현수는 그녀를 문 옆에 깔고 입술과 혀를 철저히 침범했다.분명히 그렇게 많은 키스를 했지만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배현수는 그녀를 품에 안고 말했다.“룸메이트가 너를 괴롭혔어?”“아니.”그녀가 주명은을 한바탕 괴롭혔다.한편 위층에서 이를 지켜보던 주명은은 손끝에 잡힌 커튼을 꽉 잡았다.그날 밤 그녀와 함께 있었던 것은 분명 배현수였다!세상에 어떻게 똑같은 얼굴이 두 개 있을 수 있단 말인가?배현수에게 쌍둥이 형제도 없다.조유진이 주명은의 임신으로 인해 자신의 지위가 위협받을까 봐 거짓말을 한 것이 틀림없다.배현수는... 그녀와 관계를 가졌으니 절대 이대로 끝낼 수 없다....주명은과 ‘맞짱’을 뜬 후 배현수는 조유진을 데리고 719부대로 향했다.부대는 교외에 있고 그들은 중간에 세 대의 차량을 바꿔탔다. 한 구간에서는 전 과정에 카메라와 모니터링이 없었다.이 기지는 내비게이션에서도 전혀 찾을 수 없다.조유진은 한 번 와봤지만 배현수의 안내가 없으면 다시 찾을 수 없을 것이다.기지에 들어가기 전, 늘 그렇듯 안전 검사를 했다.눈치가 빠른 보안검색대 경호원은 조유진을 한 번 훑어본 뒤 바로 인사했다.“형수님, 안녕하세요.”조유진도 멋쩍게 대답했다.“... 안녕하세요.내부 수비가 삼엄한 이곳은 아주 넓다.배현수는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내 손을 놓지 마. 이따가 용의자로 잡힐 거야.”조유진은 그의 손을 ‘탁’치며 말했다.“손을 잡고 싶으면 바로 말해요.”“사모님, 역시 눈치가 빠르네.”배현수는 그녀의 손을 잡더니 깍지를 끼고 그녀를 사
“내게 총부리를 겨눠서 만약 오발이라도 나면 네 남은 평생의 행복은 누가 책임질까.”조유진은 조롱했다.“나중에 또 날 속이면 이 총으로 겨눌게요. 무섭죠?”배현수는 입꼬리를 올렸다.“무서워. 한 방 쏘고 반동을 느껴봐.”펑!총알이 날아가 과녁 한가운데 적중했다.처음 총을 쏘는 조유진이라 손목에 힘이 부족해서 반동력 때문에 손목에 무리가 갔다.배현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손목이 이렇게 흔들리면 어떻게 해. 연습할 겸 밤에 벌을 줘야겠어.”조유진이 깜짝 놀라 물었다.“어떻게 연습해요?”남자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농담임을 알 수 있었다.“간단해. 총을 잡고 연습하면 되지.”조유진 왠지 모르게 귀가 뜨거워졌다.배현수는 이미 웃음을 거두고 그녀의 손을 잡고 다시 과녁을 겨누었다.“세 발 쏘면서 가르쳐줄게, 반동력에 습관이 되어야 해. 네 번째 발은 혼자 연습해.”펑!두 번째 총을 쏘자 조유진은 손목뼈가 후줄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찌릿찌릿한 느낌이 들었다.배현수는 일부러 그녀를 혼냈다.“오늘 목표는 과녁을 맞히지 못하면 밤에 무릎 꿇고 계속하는 거야.”조유진은 ‘흥’하고 콧방귀를 뀌고는 말했다.“감사하네요. 선생님.”“천만의 말씀. 엄한 스승이 훌륭한 제자를 배출하니까.”멀지 않은 곳.짙은 검은 눈동자가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고 이곳의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배현수에게 총을 겨누며 웃는 조유진을 바라보는 그의 눈가에 매서운 빛이 스쳐 지났다.한 부하가 지나가면서 그에게 인사를 했다.“사령관님 안녕하세요.”한편 조유진은 네 번째로 총을 쏠 준비를 하고 있었다.사령관은 두 손을 뒤로 한 채 다가와 말했다.“총이 재미있어요?”조유진이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이분은?”배현수가 대답했다.“사령관님이야. 여기는 조유진.”사령관의 시선이 조유진을 스쳐 지나갔다.“이분이 당신을 공해에서 구사일생으로 구했다는 사람이에요?”심지어 그녀를 위해 719 대장의 자리를 넘겨받았다.배현수는 조유진을 끌
기지에서 돌아간 후 조유진은 손목에 파스를 붙였다.산성 별장에 도착하니 선유가 물었다.“엄마, 손목이 왜 그래? 다쳤어?”배현수는 가볍게 웃었다.“어머니가 총을 다루지도 못하면서 굳이 하려고 해서 그래.”조유진도 한마디 했다.“아니. 엄마가 개와 싸우다가 손목을 삐었어.”선유는 눈을 돌려 루루를 의심했다.“루루! 감히 내 말을 안 들어! 맞아!”저녁.배현수는 휴대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려 휴대폰을 켜보니 카톡 메시지가 곧 폭발할 것 같았다.엄창민의 메시지다.[배현수! 감히 환희에게 이렇게 대하다니! 기다려! 내일 아침 대제주시로 환희 데리러 갈 테니!]엄준의 메시지도 있었다.[환희를 너에게 맡겼는데 어떻게 환희에게 그럴 수 있어? 너무 실망이야!]처제 엄명월의 메시지도 있었다.[배 대표님, 너무 잘 노네요. 몸매도 좋고요! 하지만 이건 평가하기 어려워요! 성공하시길 바랍니다.]육지율의 메시지도 있었다.[배현수, 안 놀면 그만이라더니 예전에는 내가 너를 얕봤어! 조유진이 뭐라고 안 해? 대단해!]서정호에게서도 메시지가 왔다.[배 대표님, 큰일 났어요! 빨리 답장 좀!]배현수는 이런 두서없는 정보들을 보며 멍해졌다.무슨 큰 죄를 지었는지 이 사람들은 거의 같은 시간에 메시지가 왔다.아마 주명은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짐작한 배현수는 SNS에 접속했다.인기 검색어가 하늘 높이 걸려 있었다.[SY그룹.][베드신.]샤워하고 욕실에서 나온 조유진은 안색이 어두운 배현수를 보고 다가와 물었다.“왜?”“주명은이 사진을 공개해 화제가 되고 있어.”조유진은 의외가 아니라고 생각했다.주명은은 분명 이런 방법을 써서 배현수를 핍박하여 배 속의 아이를 보게 할 줄 알았다.휴대전화를 들고 댓글을 뒤적이니 누리꾼들이 의논이 분분했다.심지어 댓글 창에는 조햇살을 부르는 누리꾼도 있었다.[하하하! 조햇살! 너의 강적이 드디어 나타났어!][아니, SY그룹이 조햇살을 좋아하는 것은 그렇다 쳐. 적어도 조햇살은 예쁘잖아.][SY그룹이
아래층 응접실에는 건장한 중년 남자 몇 명이 뛰어 들어왔다. 그들은 입에 담배를 물고 있고 어떤 이들은 손에 도끼와 칼을 들고 흉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남재원은 그 얼굴들을 보자마자 염라대왕을 만난 듯 발을 빼 위층으로 뛰어갔다.우두머리가 거실 소파에 앉더니 턱을 올리자 손아랫동생이 바로 알아차리고는 달려들어 남재원을 잡아당겼다.“어딜 뛰어? 달리기는 빠르네! 이제 이 다리를 잘라야겠어! 다음에 또 무엇을 가지고 도망가는지 보자고!”그 사람은 손에 날카로운 도끼를 들고 남재원의 오른쪽 다리에 손짓을 두 번 했다.남재원은 겁에 질렸다.“형님들, 도망갈 생각 아니었어요! 위층으로 올라가서 집에 현금이 있는지 확인한 거예요. 가져와서 빚을 갚아야죠!”그 사람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진짜인 척하네.”우두머리는 이 별장을 둘러보더니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쯧쯧, 이런 집에 살면서 빚이나 지고. 그러면서 이렇게 좋은 집에 살고 있어! 주머니에 아직 돈이 있나 보네, 빚 갚기 아까운가 봐?”남재원은 서둘러 설명했다.“아니요. 이 집은 이미 법원에 넘어갔어요. 이 집이 여전히 제집이라면 당장 은행 대출을 받아서라도 형님들의 빚을 갚았겠죠. 보세요. 법원 봉인이 아직 문 앞에 있어요! 진짜 거짓말 아니에요!”그러자 제일 큰 우두머리 형님이 피식 웃었다.“그래. 무슨 뜻인지 알겠어. 갚을 돈이 없다는 거지?”“조금만 시간을 주면 안 될까요? 돈이 생기면 바로 갚을게요!”큰형님은 손을 뻗어 남재원의 얼굴을 툭툭 두드렸다.“봐달라고? 누가 널 봐줘? 이 빚은 원래 설 전에 청산해야 하는데 이제 설도 지나고 봄이 곧 다가와! 나 같은 사람들은 밥도 못 먹고 기다리고 있잖아! 네가 돈을 갚지 않으면 어디서 밥을 먹을 수 있겠어? 동생, 내 위에도 사람이 있는데 나를 곤란하게 하면 안 되지. 나도 살아야 할 거 아니야!”남재원은 놀라서 털썩하고 무릎을 꿇었다.“그런데 지금은 갚을 돈이 정말 없어요. 입구에 차가 있으니 운전해 가세요. 중고로 팔아도
육성일의 압도적인 기운은 전화 너머에서도 남초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묵직한 압박감은 느껴졌다. 그때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는지, 어떻게 육씨 집안에 시집갔는지 스스로도 의아했다. 만약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차라리 구걸을 하더라도 절대 육씨 집안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남초윤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할아버지, 부탁드려요. 저희가 약속했던 건 두 달 전이었잖아요. 아직 두 달이 채 안 지났고, 제가 지금 아기를 가졌다고 해도 확인이 안 될 수도 있어요.” 그 말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기에 육성일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전화를 겨우 넘겼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이번엔 ‘개자식’ 육지율이었다. “...” 할아버지와 손자는 통화 시간까지 맞춘 것처럼 기가 막히게 연달아 전화를 걸어온다. 그녀는 냉랭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왜요?” 육지율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폭탄이라도 먹었어요?” 육지율이 자신의 책을 내리게 만들고, 지난달과 이번 달 원고료도 다 날려버린 상황에서 그녀가 전화를 받아준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아직 유지 중이었고 필요한 것도 있으니 남초윤은 결국 목소리를 가다듬고 좀 더 부드럽게 말했다. “지율 오빠, 무슨 일이에요?” “... 뭐라고 불렀어요?” “지~율~오~빠~” 그녀는 유설영의 말투를 흉내 내며, 아니, 오히려 더 능숙하게 말했다. 육지율은 순간 닭살이 돋았다. “제발 평소처럼 말해요. 저녁에 내 친구가 귀국하는데 같이 식사해요. 6시에 잡지사로 데리러 갈게요.” 남초윤은 단번에 거절했다. “난 안 갈래요.” “저녁에 뭐 다른 약속 있어요?” 남초윤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결혼한 지 3년 됐지만 당신은 나한테 친구 한 명도 소개해 준 적 없잖아요.” 그리고 이제 곧 이혼할 텐데 친구를 만날 필요는 더 없었다.이혼하고 나서 친구들이
조유진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학교에서 누가 너 괴롭히진 않았어?” 배선유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응, 나 괴롭히는 사람 없어. 할아버지가 우리 학교에 엄청난 돈을 기부하셔서 선생님들도 항상 나한테 잘해주시고 많이 관심 해주셨어. 그래서 나도 함부로 장난칠 수가 없어. 혹시 선생님이 할아버지한테 이르실까 봐.” 배현수는 이 말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배선유는 작은 악동처럼 말이 많았고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아이였다. 배현수의 말에도 자주 대꾸를 하니, 만약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면 벌써부터 떠벌렸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남을 괴롭히는 쪽에 더 가까웠다. 성남에서 엄준은 배선유를 엄청나게 아끼며 키웠고, 그래서인지 아이는 주눅이 들지 않고 활발하게 자랐다.조유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다행이네. 우리 선유가 공부를 게을리할 걱정은 없겠어.” 배현수는 딸을 겁주듯 말했다. “너 공부 안 하고 일찍 연애라도 시작하면, 널 대제주에 데려와서 24시간 동안 지켜볼 거야.” 배선유는 입술을 내밀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이건 너무 심해요! 나 혹시 쓰레기통에서 주워 온 거 아니에요?” 배현수는 코웃음을 치며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말했다. “공부 안 하면 좋은 날은 없을 거야.” 잠시 후, 학교 종이 울릴 시간이 가까워졌다. 배선유는 전화를 끊으려다가 친구가 그린 결혼사진 두 장을 영상 속으로 건네받았다. “선유야! 너랑 지우의 결혼사진 내가 그려놨어! 한 번 봐봐!” 배선유가 물었다. “한 장에 얼마야?” “너니까 공짜로 해줄게! 대신 다음번엔 나랑 결혼해 줄 수 있어?” “생각해볼게!” “...” 이 속도로라면 그들 부부는 도대체 몇 명의 사위를 맞이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한편, 스타라이트 매거진에서.남초윤이 사이트 편집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그녀의 책은 예상대로 플랫폼에서 삭제되었고 이달 원고료는 한 푼도 들어오지 않
[합법적 부부] 함께 올라온 사진엔 결혼반지를 낀 두 손이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이 게시글이 올라가자마자 마치 깊은 바다에 떨어진 폭탄처럼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어 반응했다. 육지율: [8년의 여정 끝에 드디어 자랑할 수 있네!] 송하진: [어! 전 두 사람 목숨 구해준 은인이에요. 제가 아니었으면 두 사람이 어떻게 혼인신고까지 했겠어요? 당장 절 주빈으로 식사 대접해요!] 남초윤: [아아아아! 유진이를 결혼이라는 무덤 속으로 끌어들이다니! 대표님 너무하세요!] 엄창민: [내 여동생한테 잘해요. 혹시라도 괴롭히면 내 주먹이 용서 못 해요!] 엄명월: [형부! 이렇게 좋은 일에 저희한테 뭐라도 사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강이찬: [축하해, 결국 원하는 대로 됐네.] 심미경: [백년해로하세요.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서정호: [대표님, 일 다 끝냈으면 빨리 돌아오세요. 의사 선생님이 여기서 엄청 화내고 있어요. 저 더는 못 버틸 것 같아요!] 학교 가기 싫어: [와! 아빠랑 엄마가 드디어 결혼했네요! 헤헷, 아빠, 나도 오늘 결혼했어요!] 배현수는 배선유의 댓글을 보고 순간 검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조유진이 운전하며 그의 미세한 변화를 눈치채고 물었다. “왜 그래요?” “선유가 결혼했다는데.” “뭐라고요?” 조유진은 깜짝 놀라 차를 도로 옆에 세우고 급히 배선유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저쪽에서 배선유는 학교에 있었는데 마침 쉬는 시간이었다. 외국어 학교라 분위기가 자유로워 아이들은 평소에도 부모님과 연락을 하기 위해 휴대폰을 가지고 다녔다. 배선유는 전화를 받자마자 얼굴을 카메라 앞으로 들이밀었다. “엄마, 아빠! 나 사진 보고 싶어!” 조유진은 그녀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나서 물었다. “선유야, 아까 결혼했다고 했잖아. 누구랑 결혼한 거야?” “우리 반 한지우랑! 엄마, 나 오늘 엄청 많은 축의금을 받았어! 내가 다 적어 놨어!”
조유진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갈게요.” 그가 환자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이번 한 번은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 다음 날 이른 아침. 서정호가 산성 별장에서 두 벌의 정장과 결혼 서류를 준비해왔다. 조유진은 오랜만에 풀 메이크업을 하고 머리도 고데기로 말았다. 그녀는 하얀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사진에 잘 나올 수 있도록 최대한 신경 썼다. 그녀는 한동안 이렇게까지 꾸미지 않았는데 하이힐을 신고 배현수 앞에 서니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조금 어색해졌다. 그래서 물었다. “나 어때요?” “아름다워. 넌 언제나 아름다워.” 배현수는 전혀 망설임 없이 그녀를 칭찬했다. 조유진은 웃음을 참으며 옆에 있던 넥타이를 집어 들고 배현수에게 매어주었다. 배현수는 그녀의 손길에 고개를 숙이며 협조했다. 조유진은 평소와 다르게 더 복잡하고 정중한 ‘엘드리지 매듭’으로 넥타이를 맸는데 배현수는 평소에 간단한 윈저 매듭만 했었다. “이 매듭은 좀 생소하네.” 조유진은 넥타이를 다 매고 나서 그의 셔츠와 정장 재킷의 깃을 정리해 주었다. “이게 엘드리지 매듭이라고 해요. 중요한 자리에서 어울리는 방식이죠. 어때요, 괜찮아요?” “멋져. 하지만 여보, 우리 서둘러야 해. 조금 있으면 의사가 올 거야.” 웃으며 농담하듯 이야기하던 배현수는 조유진의 외투를 챙겨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고, 그녀를 한 손으로 감싸 병실을 몰래 빠져나갔다. 두 사람은 마치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와 차에 올랐다. ... 그들이 빠져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사가 병실에 회진을 왔다.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그곳에는 ‘무관한 사람’만 남아 있었다. 의사는 엄숙한 표정으로 서정호를 보며 물었다. “환자는 어디 갔죠? 튜브까지 다 뽑다니, 누가 뽑았습니까?” 서정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환자 본인이 뽑았습니다.” “도대체 어디 간 겁니까? 팔을 정말 망가지게 할 작정인가요
배현수의 가슴이 떨렸다. 그는 조유진과 이마를 맞대며 낮게 속삭였다. “그때 난 네 옆에 있진 않았지만 네 뒤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 그런데 왜 울었어?” “현수 씨 생각이 났어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펐거든요. 내가 이렇게 좋은 남자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아쉽고 후회스러웠죠. 그래서 울었어요.” 지금 이렇게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은 느낌이었다. 조유진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이번 눈물은 슬픔이나 후회 때문이 아니었다. 감동과 감사함 때문이었다. 운명이 그들을 온갖 고난 속에서도 끝끝내 묶어 놓았고, 그들 사이에선 이제 더 이상 헤어질 수 없는 깊은 연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배현수는 긴 손가락을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천천히 끼워 넣으며 손을 꼭 맞잡았다. 순간 그들의 손바닥에서 따뜻함이 퍼져나갔다. 그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진아, 넌 한 번도 날 잃은 적 없어. 우리가 몇 번을 떨어져도, 얼마나 오랫동안 떨어져 있더라도 난 결국 널 찾아내서 꼭 안고 말해줄 거야. 사랑한다고. 오직 너만 사랑한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조유진은 배현수의 유일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조유진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현수 씨, 우리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까요?” “그럼.” 그의 대답은 8년 전과 똑같았다. 짧지만 확고했으며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조유진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손목에 걸린 달콤한 연녹색 비취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상처가 나으면 우리 같이 아주머니를 위한 좋은 묘지를 고르러 가요. 그분을 위한 의관묘라도 만들어 드리는 게 어때요?” “아직도 ‘아주머니’라고 불러?” 조유진은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며 말투를 바꿨다. 배현수는 그녀의 팔찌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풍수 좋은 곳을 따로 고를 필요는 없어. 어머니께
육지율은 그 필명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기억해 냈다. “이 자식! 기억났어! 이 녀석이 책에서 날 모욕하지 않았나? 내 명성을 망가뜨렸잖아?” 남초윤은 급하게 말했다. “잘못 본 거 아니에요? 비엘 작가가 주인공을 모욕할 리가 없어요! 그러면 밥숟가락 들고 욕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어요?” “나를 ‘수’로 묘사한 게 모욕이 아니고 뭐예요? 왜 항상 배현수가 공이냐고?” 남초윤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그 부분을 신경 쓰고 있었던 거였다.남초윤은 그가 진짜 작가를 고소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래서 변명하듯 말했다. “다음번엔 지율 씨가 공이고, 배 대표님이 수가 될 수도 있잖아요. 원래 BL 소설에서는 공수 구분이 모호해요. 겉보기에 수 같아도 사실은 공일 수도 있다고요!” 조유진은 살짝 의문을 제기했다. “난 현수 씨가 수 같지는 않았는데. 만약 현수 씨가 진짜 수라면 캐릭터 붕괴지. 차라리 육 변호사님이 수인 게 더 어울려. 자유롭고, 매력적이고, 다정하잖아.”“?”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육지율은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며 조유진에게 따졌다. “아니, 조유진. 내가 약해 보이는 수 같은 느낌을 준다고?” “...” 배현수는 차갑게 말했다. “유진이가 쓴 것도 아닌데 왜 화내? 그럴 시간 있으면 작가나 고소해.” 남초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그냥 재미로 쓴 거지 무슨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작가를 고소하면 너무 쪼잔해 보일 거예요!” 하지만 육지율은 이성을 잃고 이를 악물었다. “쪼잔해 보이든 말든, 그 책을 하차할 거예요!” 자신이 소설 속에서 수 역할로 묘사되었고, 그것도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있다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조유진은 객관적으로 말했다. “사실 책 내용은 나쁘지 않아요. 꽤 재미있고 독자도 많아요.” “독자가 몇 명인데?”“몇만 명 정도?” “뭐?”‘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날 수로 상상했
병실에서 조유진은 그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앉아 있다가 잠들었다. 잠에 들어서도 손가락이 배현수의 손에 살짝 얽혀 있었는데 다정하고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이 사진은 완전히 남자 친구 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입원 생활이 지루하다고 하다니.육지율이 댓글을 남겼다. “뭐야, 입원했어? 혹시 가정 폭력이라도 당한 거야?” 댓글을 남기고 나서 육지율은 차에 시동을 걸며 남초윤에게 말했다. “과일 바구니 좀 사서 병문안이나 가요. 친구가 입원했어요.” “친구? 설마 배 대표님이세요? 어디 아파요?” 육지율은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진짜 아플 수도 있고 그냥 꾀병일 수도 있고.” 혹시 모른다. 꾀병일지도....병원에서는 조금 전 장은숙이 산성 별장에서 저녁 식사를 가져왔다. 수술 후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밤은 죽 같은 유동식만 먹어야 했다. 배현수는 오른손을 쓸 수 없었기에 조유진이 죽 그릇을 들고 숟가락으로 그에게 먹여주고 있었다. 첫 숟가락을 그의 입 앞에 가져가자 배현수는 뜨겁다고 투덜댔다. 조유진이 후후 불어 온도를 맞춘 후 말했다. “이제 적당히 식었어요.” 배현수는 그제야 죽을 한 입 삼켰다. 그 순간 병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장난스러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며칠 못 본 사이에 아기로 됐네? 밥도 혼자 못 먹고, 조유진이 널 너무 오냐오냐한 거 아냐?” 조유진이 놀라서 뒤돌아보니, 육지율과 남초윤이 병실에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설명했다.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입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며칠 동안 오른손은 쓰지 말라고 하셨어요. 상처가 더 심해질 수 있거든요.” 그러자 육지율은 다짜고짜 그의 오른쪽 어깨를 툭 쳤다. “진짜야?” 배현수는 고통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미친놈아!” 조유진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변호사님, 진짜로 다쳤다니까요! 어깨에 구멍이 났다고요, 함부로 건드리지 마세요!
그녀를 겨우 한 번 데리러 온 김에 출퇴근길의 불편함을 느끼고는 아예 차를 사서 해결하려고 하다니, 정말 육지율 다운 방식이었다.이 4S 매장에서 파는 차들은 모두 포르쉐였고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가장 저렴한 모델도 수천억 원대였다. 남초윤은 이미 남씨 집안이 육지율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었기에, 그가 차를 선물해 주겠다고 해도 받을 수 없었다.남초윤은 차분히 말했다. “앞으로는 출퇴근 길에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 굳이 차를 선물할 필요는 없어요.”육지율은 순간 멈칫했다가 살짝 비웃으며 말했다. “차 한 대 선물한다고 귀찮다는 딱지가 붙어요? 이런 확산적 사고방식은 참 대단하네.”“....”정말 그런 게 아니란 말인가?평소에도 성격이 불 같았던 육지율은 차를 주겠다고 하면서도 그녀를 달래는 상황이 우스웠는지 어이없어 웃었다. 둘 중 누가 더 성격이 나쁜지 모를 일이었다.영업 직원은 남초윤을 육지율이 외부 애인으로 오해했고, 이 큰 거래가 깨질까 봐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가씨, 변호사님께서 차를 사주시는 건 출퇴근 시간을 줄여서 그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게 해주려는 마음이 아닐까요?”남초윤은 더 이상 그의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미 갚을 수 없는 빚이 너무 많았고 계속해서 더 쓴다면 두 아이를 낳아야 겨우 그 빚을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나 육지율은 그 여느 때처럼 행동했다. 그는 VIP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빨리 골라요. 차 안 사면 집에 못 돌아가요.”남초윤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여자 영업 직원이 다가와 다양한 모델을 소개할 때, 그저 듣기만 했다. 그 직원은 미소를 띠며 말도 아주 달콤하게 했다. “변호사님은 저희 매장의 단골이세요. 그런데 여자를 데리고 온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변호사님이 정말로 많이 아끼시는 것 같아요. 비싼 차를 고르시면 아마 더 기뻐하실 거예요.”역시, 판매왕이었다.감정적 가치를 제공하는 법을 너무나 잘 아는 직원이었다. 하지만 남초윤은 그저 외부의
남초윤은 결혼 상태를 한 번도 업데이트한 적이 없었다. 동료들 눈에는 여전히 미혼으로 보였다.처음 그녀와 육지율의 스캔들이 터졌을 때 온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사실 모두 육지율의 매력적인 외모 때문이었다. 아무도 남초윤처럼 작고 평범한 존재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육지율이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들의 침대 사진이 언론이나 남재원에게 유출되지 않은 것도 기적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육지율이라는 유명한 바람둥이가 ‘함정'에 빠져 순진한 여자와 관계를 맺은 후, 마지못해 결혼했다는 소문만 믿고 있었다.육지율이 연예계 인물이 아닌 만큼 동료들 중에서도 아무도 그 사건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육지율이 ‘좋은 집안의 아들’ 이라는 사실만 기억하고 그의 결혼 상대가 누군지에는 무관심했다. 그녀는 어디에도 크게 드러나지 않았고 언론에서도 그의 곁에 서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남초윤은 그렇게 세상 사람들의 눈에 숨겨져 있었다.동료들은 그저 그녀가 조금 집안 배경이 있는 부유한 여자인 줄로만 알았고 육지율의 아내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육지율의 아내라면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그들과 같이 일하며 고생할 일은 없을 테니까. 설령 과거에 파파라치 일을 했더라도 그렇게 높은 곳에 시집갔다면 육씨 집안이 그녀를 계속 그 일을 하도록 놔두지 않았을 거라고 여겼다.비록 세상은 모두 직업의 평등을 외치고 있지만 상류 사회에는 여전히 그들만의 규칙이 있었다. 체면과 명예가 그들의 신분과 존엄을 상징했다. 파파라치라는 직업은 육씨 집안에게 있어 절대 자랑스러울 수 없는 일이었으니, 육지율과 강란희가 그녀에게 좀 더 체면 있고 유망한 직업들을 제안했지만 남초윤은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렇게 시간을 보낸 끝에 동료들은 하나둘씩 퇴근하고 남초윤만 남았다. 한 시간이 흐른 뒤 남초윤은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저녁 7시가 되었다. 그녀는 통화 기록을 훑어보고 다시 한 번 메시지를 확인했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