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765화

작가: 남희은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07-30 19:00:00
이 질문에 계단교실 맨 뒷줄에 앉은 조유진은 심장이 벌렁거렸다.

남초윤이 다가와 빙그레 웃었다.

“배 대표님, 이젠 실명을 거론할 때가 됐지?”

조유진은 갑자기 대인기피증이 심해졌다.

너무 큰 계단교실이 한눈에 봐도 온통 사람뿐이다. 적어도 500명은 된다.

조유진이 물었다.

“촬영 다 했어?”

남초윤은 그녀의 마음을 한눈에 꿰뚫어 봤다.

“다 찍었어, 왜, 도망가려고?”

교탁 위에서 배현수는 맨 뒷줄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사람 머리 너머로 조유진과 배현수의 시선이 마주쳤다.

배현수가 학생 질문에 답하려 할 때, 조유진은 남초윤은 허리를 숙인 채 도둑질하듯 뒷문으로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마이크를 들고 있는 배현수는 몰래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고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학교 학생이에요. 여러분들의 선배님입니다.”

그러자 한 학생이 물었다.

“선배님 이름이 뭐예요? 어느 학번 어느 학과인가요?”

조유진은 ‘무사히’ 교실을 빠져나왔다.

배현수는 웃으며 말했다.

“구체적인 이름은 말하지 않을게요. 수줍어하는 편이라 유명해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추후 결혼생활이 상관없는 사람에게 방해받는 것도 원하지 않아요. 방금 말한 사적인 감정은 그저 재밌는 이야깃거리라고 생각하세요.”

계단교실 안은 여유로운 분위기였지만 공부를 하는 곳에서 사랑 타령은 적절치 않았다.

...

조유진과 남초윤은 계단교실을 나와 학교 커플 동산에 들러 연인들을 찍으러 갔다.

학교 내부 도로를 건너자 검은 벤틀리 한 대가 그녀들 앞에 멈춰 섰다.

뒷좌석 유리창이 천천히 내려왔다. 김성혁이다.

남초윤을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 시간 돼? 할 말이 있어.”

남초윤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김 대표님, 제가 어떤 상황인지 방금 봤잖아요? 옛날이야기를 하는 것이 불편...”

김성혁은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녀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5년 전, 내가 왜 갑자기 대제주시를 떠났는지 궁금하지 않아?”

남초윤은 목이 메었다. 순간 온몸이 얼어붙은 듯했다.

망설이는 남초윤을 보자 김성
잠긴 챕터
앱에서 이 책을 계속 읽으세요.

관련 챕터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766화

    조유진은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물은 사람이겠지.”이 말을 들은 방시아의 아버지 방지운은 얼굴이 굳어졌다.“학생, 무슨 욕을 그렇게 하나?”조유진이 대답했다.“방 구청장님, 따님이 먼저 저더러 남의 내연녀를 하라고 꼬드겼어요.”방지운은 딸을 바라보며 물었다.“정말이야?”“아빠, 그런 적 없어요! 평소에 아빠가 나를 얼마나 엄격하게 교육했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어요? 조유진이에요. 조유진은 열여덟 살에 남자랑 놀아나고 아이까지 가졌어요. 열여덟 살에 혼전임신을 한 여자예요. 아빠, 조유진은 교양이 없는 사람이에요. 조유진이 먼저 저를 욕했어요!”방지운은 당연히 자신의 귀한 딸을 믿는다.게다가 열여덟 살에 혼전임신을 했다는 얘기를 들은 방지운은 미덥지 않은 눈빛으로 조유진을 바라봤다.눈빛은 금세 변했고 그녀에 대해 안 좋은 인상을 갖게 되었다.방지운은 관리자로서 지휘하기를 좋아했다.너그러운 표정으로 조유진을 가리키며 말했다.“사과해, 이 일은 그러면 없던 것으로 할게. 우리 시아가 성격이 급해. 그쪽이 이해하지.”방시아는 방지운의 팔짱을 낀 채 턱을 치켜들었다. 눈빛은 득의양양했다.조유진은 피식 웃었다.“제가 왜 사과를 해야 하죠? 따님을 달래고 싶으시면 직접 사과하세요. 왜 제가 저렇게 큰 자이언트 베이비를 달래야 하나요?”방시아가 벌컥 화를 냈다.“조유진, 누가 자이언트 베이비라고!”방지운도 분을 삭이지 못했다. 관리자로서 그리고 어른으로서 지적했다.“학생, 지금 얘기하고 있잖아. 그게 무슨 태도야? 내가 오늘 대제주시에 온 이유도 우리 딸의 체면을 봐서 모교 축제에 참석하러 온 거야. 학교 관리자들과도 잘 알고 지내. 저녁에 모두 함께 식사도 할 거야. 같은 대제주시 대학을 졸업했는데 너는 왜 이렇게 교양이 없니?”방시아는 웃으며 말했다.“아빠, 농담하지 마세요. 조유진 신분상 저녁에 우리와 한 상에 앉아 밥 먹을 자격이 어디 있겠어요. 겨우 십만 원 기부했어요. 유명한 동문도 아니고 모교에서 조유진을 수치

    최신 업데이트 : 2024-07-30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767화

    방시아는 교만한 사람이지만 매우 대범하다.“그래. 우리 아버지께 얘기해서 학교에 말해 좌석 하나 더 달라고 할게. 젓가락 하나 더 놓는 일인데 뭘!”“시아야, 넌 정말 좋은 친구야!”방시아는 돈을 별로 기부하지 않았지만 대신 좋은 아버지를 뒀다.하지만 주명은은... 아버지도, 그녀 자신도 잘 나가지 못했다. 하지만 엘리트들을 만나고 싶어 했다.예를 들면... 배현수 같은 거물에게 자신의 명함 한 장을 건네주거나, 배현수 옆에 서 있는 여자가 어떤 여신인지 보는 것이다.정말 너무 궁금했다.그때 조유진과 친한 이유도 조유진과의 이런 사이를 이용해 배현수를 몇 번 더 보기 위해서이다.한 번은 조유진이 배현수에게 책을 빌렸다. 돌려주기 전에 주명은은 몰래 가져가 그 사이에 연애편지를 끼워 배현수에게 돌려주었다.연애편지에 그녀는 배현수에 대한 애정을 잔뜩 담았다.조유진처럼 대담하기만 하면 배현수가 받아주지는 않더라도 자기를 쳐다볼 줄 알았다.그 연애편지를 보낸 후, 그녀는 뜨거운 가마솥 위의 개미처럼 초조하게 하루하루를 기다렸다...하지만 일주일 뒤 조유진과 같이 식당에서 배현수를 만났을 때, 식판을 들고 있는 배현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유진의 재잘거리는 말소리를 들으며 이따금 고기를 집어줬다.심지어 주명은을 쳐다보지도 않았다.그저 주명은만 바늘방석에 앉아 안절부절못했다.지금까지도 주명은은 확실하지 않다. 배현수가 그 책을 다시 봤는지, 그 안에 숨겨진 연애편지를 보았는지...그렇게 뒤척이며 거의 한 달을 보냈지만 이 일은 결국 아무런 하이라이트 없이 끝났다.조유진도 그녀가 배현수에게 연애편지를 쓴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 후로도 같이 친하며 밥도 자주 먹었다.하지만 그녀가 조유진이었어도 당시의 주명은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그때의 주명은은 까맣고 촌스러워서 조유진 옆에 서면 오징어가 된 것 같았다. 오히려 조유진이 더 돋보였고 예뻤다. 그러니 위협이 될 리가 있겠는가?당시 조유진이 자신의 팔을 잡는 것도 싫었다.조

    최신 업데이트 : 2024-07-31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768화

    반 교장은 깜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정말 나를 속이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고요?”배현수는 피식 웃었다.“반 교장님을 왜 속이겠어요. 결혼식 하면 초대장 보내드릴게요. 꼭 오세요.”반 교장은 배현수와 저기 서 있는 여학생을 번갈아 보았다.그 여학생은 옅은 색의 캐주얼한 양모직 코트를 입고 있었다. 청순하면서도 대범해 보였고 온화하고 명랑해 보였다.그냥 예쁜 것이 아니라 너무 예뻤다.대제주대학의 몇 기수 퀸카보다 더 예뻤다.반 교장은 왠지 낯이 익은 느낌에 의아한 얼굴로 배현수에게 물었다.“우리 학교를 졸업했나요?”배현수는 손을 들어 조유진을 불렀다.조유진은 배현수가 학교 관리자와 이야기 하는 것을 보고 교실 뒤에서 서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배현수가 손짓하자 당당하게 걸어갔다.배현수는 조유진의 손을 잡은 뒤 반 교장에게 소개했다.“저의 약혼녀 조유진입니다.”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조유진을 바라봤다.“반 교장 선생님이야.”조유진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반 교장 선생님, 안녕하세요.”조유진을 보고 있는 반 교장은 순간 정신을 못 차렸다.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쉽네.”이렇게 좋은 사윗감이 남의 사위가 되다니.조유진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뭐가 아쉽지?의심스러운 듯 배현수를 바라보았다.배현수는 바로 반응했다.“반 교장 선생님은 우리가 일찍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것이 아쉬운 것 같아.”반 교장은 얼른 웃으며 대꾸했다.“맞아요. 맞아요. 결혼식 날, 축의금 두둑이 챙겨가겠습니다. 참, 저녁에 학교 근처에 있는 주상 호텔에서 연회가 열릴 거예요. 와서 한잔하세요.”배현수는 조유진을 바라봤다.아내의 동의를 구하는 눈빛이었다.반 교장은 피식 비웃었다.“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벌써 아내 눈치를 보는 거예요. 조유진 학생, 얼른 허락해 주세요.”조유진은 그 농담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오늘은 개교기념일이다. 일이 많은 반 교장은 몇 마디 하고 자리를 떴다.아직 식사 시간이 되지 않아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캠퍼스

    최신 업데이트 : 2024-07-31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769화

    배현수는 노을을 등진 채 그녀를 안고 서서 한참 동안 입을 맞추었다.옆에는 행인이 가끔 지나갔다.조유진이 살짝 밀어도 멈추지 않았다.이곳은 커플 동산이다. 커플들이 키스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었기에 유별난 것은 아니었다.하지만 조유진은 배현수의 키스에 얼굴이 점점 시뻘게졌다. 점차 숨을 헐떡였다.배현수는... 점점 더 거칠고 방자해졌다.조유진은 문득 그들의 첫 키스 장면이 떠올랐다.처음엔 아주 딱딱했다. 하지만 남자는 이런 면에 선수인 것 같다.점점 배현수는 단순히 키스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통제 불능으로 만지기 시작했다.그때 어린 나이의 조유진은 이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욕망에 얼떨떨해하며 저도 모르게 그의 뺨을 때렸다.두 사람 모두 멍해졌다.이후 조유진은 며칠째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배현수만 보면 숨었다.참다못한 배현수는 여자 기숙사 아래층에서 그녀를 막아서며 진지한 얼굴로 사과했다.조유진이 물었다.“앞으로도 그럴 거예요?”배현수는 씩 웃으며 말했다.“뭘?”조유진은 목까지 시뻘게진 상태로 씩씩거리며 말했다.“키스할 거면 키스만 해요. 왜 갑자기 만지작거리는데요?”서로가 처음이었다.솔직히 말해서 조유진만 놀란 게 아니다.배현수 자신마저도 주체할 수 없는 무의식적인 욕망에 놀랐다.남자 기숙사에는 매일 같이 학생들이 야동을 보며 자위를 한다.조유진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배현수는 그들의 저급한 욕망에 비하면 본인은 상대적으로 마음이 비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정말 그녀와 마주쳤을 때, 통제하기 어려웠다.조유진이 저지하지 않았더라면 더 심하고 거칠었을 것이다.자신의 그런 욕망을 알아차린 배현수는 허탈했다.조유진은 화난 상태로 경고했다.“다시는 그러지 마세요!”배현수는 조유진을 뚫어지게 노려보며 솔직히 말했다.“장담 못 해.”조유진이 아무 대답을 하지 않자 배현수는 정색한 얼굴로 자기 의견을 말했다.“아니면 너도 나를 만질래?”그때 조유진은 화가 나서 3일 동안 그와 말을 하지 않았

    최신 업데이트 : 2024-08-01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770화

    김성혁은 그녀의 손가락이 가볍게 떨리는 것을 보았다.손을 뻗어 예전처럼 그녀의 손을 잡고 품속으로 끌어안고 달래고 싶었다.우스운 것은 더 이상 그에게는 그럴만한 신분과 입장이 없다.심호흡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내가 잘못했어. 작별인사도 안 하고 떠나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헤어지는 게 아니었는데.”남초윤은 고개를 살짝 들더니 피식 웃었다.“인제 와서 이런 얘기 해봤자 의미 없어요. 하지만 성혁 씨의 말이 맞아요. 우리가 명확하게 끝낸 게 아니잖아요. 이제 확실히 마침표를 찍을 때가 되었죠. 안 그러면 뭔가 마무리가 안 된 것 같잖아요. 솔직히 말해봐요. 그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아니면 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었어요?”김성혁은 피식 웃었다.“더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 5년 전이나 5년 후인 지금이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단 한 명 너 남초윤이야. 나도 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어. 그러면 귀국해서 너를 찾아갈 필요도 없고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 네가 나처럼 5년 전의 감정에 머물러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김성혁의 한마디 한 글자는 남초윤의 심장을 쿡쿡 찌르는 것 같았다. 너무 아팠다.남초윤의 꼭 쥔 주먹 때문에 손톱이 손바닥을 찔렀다. 그 아픔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무표정하게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성혁 씨가 뭔데, 왜 내가 성혁 씨를 계속 기다릴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다가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 동안 사라지면...”김성혁은 그녀의 말을 끊었다. 가슴 아파하는 것을 그의 눈빛에서 볼 수 있었다.“그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을 거야. 그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면 나도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어!”남초윤은 잠시 어리둥절했다. 고개를 들고 물었다.“무슨 뜻이에요?”그녀를 바라보는 김성혁도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때 너의 아빠가 그랬어. 현금 200억을 주면 우리 사이를 허락하겠다고. 그때의 나에게는 너무 큰 돈이라 당연히 어려웠어. 그래서 생각했어.

    최신 업데이트 : 2024-08-01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771화

    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당시 한 교수님이 나를 좋게 봐줬어. 너도 알 거야. 나를 위해 해외 유학 전액 장학금 신청도 해주고 돈도 지원해주고... 나보고 제주시를 떠나라고 했어. 다 알고 계셨거든. 그때 내가 만약에... 여기 남으면 한평생 망칠 거라는 것을. 그때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어. 엄마가 돌아가신 지 이틀도 안 됐는데 너의 아버지가 다시 찾아오셨어. 비수 같은 말들로 나를 모욕했고... 초윤아, 미안해. 그때 너무 힘들어서 내가 주먹을 날렸어. 너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더라고. 그때 나는 완전히 무너졌어. 빚쟁이들이 하마터면 학교까지 찾아올 뻔했어. 그러면 내 스스로를 마주할 수 없었을 거야. 너의 얼굴은 더더욱 볼 수 없었을 거야. 다행히 교수님이 사람을 찾아서 이 모든 일을 해결해 주시고 나더러 빨리 떠나라고 했어. 긴급으로 비자를 신청하고 비자가 나온 후 바로 떠났어. 가기 전에 너를 볼 엄두가 안 났어. 네가 이 일을 알까 봐, 너를 보면 내가 흔들릴까 봐 두려웠어. 그래서 가장 나약한 방식을 선택했어. 작별인사도 없이 떠나는 거...”김성혁의 목소리는 매우 억압적이다. 이미 음 이탈이 되어 떨리고 있었다.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두 눈은 빨갛게 달아올랐다.남초윤의 눈은 진작 촉촉해졌다.두 사람은 좌석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어둠 속에서 조용히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분명히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지금은... 단 한 마디도 묻지 못했다.그녀는 애써 감정을 억제하고 있었지만 떨리는 심장은 주체할 수 없었다.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김성혁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또 들렸다.“윤이야, 미안해.”5년이나 늦은 사과이다.엄청난 내용들 때문에 남초윤은 정신을 못차렸다.마치 밧줄에 꽁꽁 묶인 듯 숨이 막힐 것 같았다.꽉 쥔 주먹에 새파란 핏줄이 선명히 드러났다.천천히 두 팔을 껴안으며 몸을 웅크렸다.고개를 숙인 채 신발을 내려다보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울다가 웃으며 말했다.“그런데... 너무 늦었어요.

    최신 업데이트 : 2024-08-01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772화

    남초윤은 어리둥절할 정도로 울었다.차에서 내릴 때, 사람 전체가 흐리멍덩했다.손에 쥔 휴대전화 화면이 몇 번이나 밝아졌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천근만근인 두 다리로 찬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한참을 걷다가 도저히 버티기 어려워 천천히 몸을 웅크리고 자신을 끌어안고 목놓아 울었다.세상은 왜 이렇게 그녀를 조롱하는 것일까?검은색 벤틀리 차 안, 김성혁의 비서 정동민이 차에 올랐다. 백미러로 뒷좌석 남자의 시뻘게진 눈을 보았다.사람들 앞에서의 김성혁은 냉정하고 차분하고 신사적이다. 사람들과 어느 정도 거리도 둔다.오늘처럼 실성한 것은 처음이다.차 안의 분위기는 침울하기 짝이 없다.김성혁은 한참 후에야 그나마 진정되었다. 가슴속 화산은 폭발하기 직전인 듯 이마의 핏줄이 심하게 뛰었다.손을 번쩍 들어 문손잡이를 잡았다.정동민은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채고 황급히 고개를 돌려 말했다.“대표님, 동진 과학이 곧 상장합니다. 우리를 바라보는 주시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그러다가 원한을 품고 있는 사람에게 찍힌다면...”김성혁은 시뻘게진 눈으로 백미러를 바라봤다. 남초윤은 100m쯤 떨어진 곳에 있다.만약 그저 남초윤 아가씨였다면 그는 거리낌 없이 그녀에게 다가가 위로하고 심지어 포옹까지 할 수 있다.하지만 이제 그녀는 남초윤 아가씨가 아니라 또 다른 신분과 직함을 가지고 있다.육지율의 마누라, 육씨 집안의 며느리.문고리를 잡고 있던 김성혁은 천천히 손을 놓았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정동민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대표님, 빨리 떠납시다. 오늘 개교기념일에 참석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기자들이 와 있을지 몰라요.”남초윤도 기자이다. 그녀가 왔다는 것은 기자들도 적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김성혁은 시트에 있는 카메라를 응시했다.남초윤이 빠뜨린 것이다.조금 전, 서로의 감정은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남초윤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울었다. 카메라를 챙기는 것마저도 잊었다.100m 떨어진 곳에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본 김성혁은 도저히

    최신 업데이트 : 2024-08-01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773화

    조유진은 피식 웃었다.“그럼 내 전 남자친구가 찾아온다면요? 어떨 것 같아요?”배현수는 눈살을 찌푸렸다.“네가 어떻게 할 거라고 생각 안 해.”조유진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배현수가 말을 이었다.“전 남자친구든 현 남자친구든 다 나 아니야? 내가 찾아오는 거니까 상관없어.”잠시 멈칫하던 배현수는 이내 말을 이었다.“하지만 남초윤은 이미 결혼했어. 김성혁이 다시...”배현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초윤이 조유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무사하다는 연락이었다.[나 괜찮아. 이미 집에 왔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조유진이 물었다.[김성혁 씨가 뭐라고 했어?][나중에 시간 날 때 다시 얘기해. 엄마 아빠 집에 왔어.]조유진은 그녀가 친정에 갔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조유진은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으며 물었다.“내가 결혼했는데 현수 씨는 내가 결혼했다는 걸 모르고 나를 찾아왔으면 어떨 것 같아요?”배현수는 그녀를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그럴 일은 절대 있을 수 없어.”“왜요?”“네가 다른 사람과 결혼할 기회를 줄 수 없으니까.”잠시 생각하던 조유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혹시 내가 어떤 사정이 있어서 다른 사람과 결혼해야 해요.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계속 이혼을 고려하고요. 어쩌면 현수 씨를 잊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이런 상황을 알면 현수 씨는 어떻게 할 거예요?”배현수는 들으면 들을수록 눈살이 찌푸려졌다.“날 잊지 못할 수도 있다니? 그럼 아직 사랑하는 거야, 아니면 그냥 어장관리 하는 거야?”“왜 이렇게 까다로워요!”배현수는 자기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나는 김성혁이 아니야. 남초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모르고.”“그럼 육지율 씨는요? 남초윤을 어떻게 생각하는데요?”배현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래도 김성혁이 더 믿음직스럽지.”“육 변의 참 좋은 형제가 맞네요.”배현수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사람은 자기 입장에서 문제를 생각해. 나는 첫눈에 너에게 반했어. 첫눈에 반한 것

    최신 업데이트 : 2024-08-01

최신 챕터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7화

    육성일의 압도적인 기운은 전화 너머에서도 남초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묵직한 압박감은 느껴졌다. 그때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는지, 어떻게 육씨 집안에 시집갔는지 스스로도 의아했다. 만약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차라리 구걸을 하더라도 절대 육씨 집안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남초윤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할아버지, 부탁드려요. 저희가 약속했던 건 두 달 전이었잖아요. 아직 두 달이 채 안 지났고, 제가 지금 아기를 가졌다고 해도 확인이 안 될 수도 있어요.” 그 말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기에 육성일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전화를 겨우 넘겼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이번엔 ‘개자식’ 육지율이었다. “...” 할아버지와 손자는 통화 시간까지 맞춘 것처럼 기가 막히게 연달아 전화를 걸어온다. 그녀는 냉랭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왜요?” 육지율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폭탄이라도 먹었어요?” 육지율이 자신의 책을 내리게 만들고, 지난달과 이번 달 원고료도 다 날려버린 상황에서 그녀가 전화를 받아준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아직 유지 중이었고 필요한 것도 있으니 남초윤은 결국 목소리를 가다듬고 좀 더 부드럽게 말했다. “지율 오빠, 무슨 일이에요?” “... 뭐라고 불렀어요?” “지~율~오~빠~” 그녀는 유설영의 말투를 흉내 내며, 아니, 오히려 더 능숙하게 말했다. 육지율은 순간 닭살이 돋았다. “제발 평소처럼 말해요. 저녁에 내 친구가 귀국하는데 같이 식사해요. 6시에 잡지사로 데리러 갈게요.” 남초윤은 단번에 거절했다. “난 안 갈래요.” “저녁에 뭐 다른 약속 있어요?” 남초윤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결혼한 지 3년 됐지만 당신은 나한테 친구 한 명도 소개해 준 적 없잖아요.” 그리고 이제 곧 이혼할 텐데 친구를 만날 필요는 더 없었다.이혼하고 나서 친구들이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6화

    조유진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학교에서 누가 너 괴롭히진 않았어?” 배선유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응, 나 괴롭히는 사람 없어. 할아버지가 우리 학교에 엄청난 돈을 기부하셔서 선생님들도 항상 나한테 잘해주시고 많이 관심 해주셨어. 그래서 나도 함부로 장난칠 수가 없어. 혹시 선생님이 할아버지한테 이르실까 봐.” 배현수는 이 말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배선유는 작은 악동처럼 말이 많았고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아이였다. 배현수의 말에도 자주 대꾸를 하니, 만약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면 벌써부터 떠벌렸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남을 괴롭히는 쪽에 더 가까웠다. 성남에서 엄준은 배선유를 엄청나게 아끼며 키웠고, 그래서인지 아이는 주눅이 들지 않고 활발하게 자랐다.조유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다행이네. 우리 선유가 공부를 게을리할 걱정은 없겠어.” 배현수는 딸을 겁주듯 말했다. “너 공부 안 하고 일찍 연애라도 시작하면, 널 대제주에 데려와서 24시간 동안 지켜볼 거야.” 배선유는 입술을 내밀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이건 너무 심해요! 나 혹시 쓰레기통에서 주워 온 거 아니에요?” 배현수는 코웃음을 치며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말했다. “공부 안 하면 좋은 날은 없을 거야.” 잠시 후, 학교 종이 울릴 시간이 가까워졌다. 배선유는 전화를 끊으려다가 친구가 그린 결혼사진 두 장을 영상 속으로 건네받았다. “선유야! 너랑 지우의 결혼사진 내가 그려놨어! 한 번 봐봐!” 배선유가 물었다. “한 장에 얼마야?” “너니까 공짜로 해줄게! 대신 다음번엔 나랑 결혼해 줄 수 있어?” “생각해볼게!” “...” 이 속도로라면 그들 부부는 도대체 몇 명의 사위를 맞이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한편, 스타라이트 매거진에서.남초윤이 사이트 편집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그녀의 책은 예상대로 플랫폼에서 삭제되었고 이달 원고료는 한 푼도 들어오지 않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5화

    [합법적 부부] 함께 올라온 사진엔 결혼반지를 낀 두 손이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이 게시글이 올라가자마자 마치 깊은 바다에 떨어진 폭탄처럼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어 반응했다. 육지율: [8년의 여정 끝에 드디어 자랑할 수 있네!] 송하진: [어! 전 두 사람 목숨 구해준 은인이에요. 제가 아니었으면 두 사람이 어떻게 혼인신고까지 했겠어요? 당장 절 주빈으로 식사 대접해요!] 남초윤: [아아아아! 유진이를 결혼이라는 무덤 속으로 끌어들이다니! 대표님 너무하세요!] 엄창민: [내 여동생한테 잘해요. 혹시라도 괴롭히면 내 주먹이 용서 못 해요!] 엄명월: [형부! 이렇게 좋은 일에 저희한테 뭐라도 사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강이찬: [축하해, 결국 원하는 대로 됐네.] 심미경: [백년해로하세요.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서정호: [대표님, 일 다 끝냈으면 빨리 돌아오세요. 의사 선생님이 여기서 엄청 화내고 있어요. 저 더는 못 버틸 것 같아요!] 학교 가기 싫어: [와! 아빠랑 엄마가 드디어 결혼했네요! 헤헷, 아빠, 나도 오늘 결혼했어요!] 배현수는 배선유의 댓글을 보고 순간 검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조유진이 운전하며 그의 미세한 변화를 눈치채고 물었다. “왜 그래요?” “선유가 결혼했다는데.” “뭐라고요?” 조유진은 깜짝 놀라 차를 도로 옆에 세우고 급히 배선유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저쪽에서 배선유는 학교에 있었는데 마침 쉬는 시간이었다. 외국어 학교라 분위기가 자유로워 아이들은 평소에도 부모님과 연락을 하기 위해 휴대폰을 가지고 다녔다. 배선유는 전화를 받자마자 얼굴을 카메라 앞으로 들이밀었다. “엄마, 아빠! 나 사진 보고 싶어!” 조유진은 그녀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나서 물었다. “선유야, 아까 결혼했다고 했잖아. 누구랑 결혼한 거야?” “우리 반 한지우랑! 엄마, 나 오늘 엄청 많은 축의금을 받았어! 내가 다 적어 놨어!”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4화

    조유진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갈게요.” 그가 환자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이번 한 번은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 다음 날 이른 아침. 서정호가 산성 별장에서 두 벌의 정장과 결혼 서류를 준비해왔다. 조유진은 오랜만에 풀 메이크업을 하고 머리도 고데기로 말았다. 그녀는 하얀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사진에 잘 나올 수 있도록 최대한 신경 썼다. 그녀는 한동안 이렇게까지 꾸미지 않았는데 하이힐을 신고 배현수 앞에 서니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조금 어색해졌다. 그래서 물었다. “나 어때요?” “아름다워. 넌 언제나 아름다워.” 배현수는 전혀 망설임 없이 그녀를 칭찬했다. 조유진은 웃음을 참으며 옆에 있던 넥타이를 집어 들고 배현수에게 매어주었다. 배현수는 그녀의 손길에 고개를 숙이며 협조했다. 조유진은 평소와 다르게 더 복잡하고 정중한 ‘엘드리지 매듭’으로 넥타이를 맸는데 배현수는 평소에 간단한 윈저 매듭만 했었다. “이 매듭은 좀 생소하네.” 조유진은 넥타이를 다 매고 나서 그의 셔츠와 정장 재킷의 깃을 정리해 주었다. “이게 엘드리지 매듭이라고 해요. 중요한 자리에서 어울리는 방식이죠. 어때요, 괜찮아요?” “멋져. 하지만 여보, 우리 서둘러야 해. 조금 있으면 의사가 올 거야.” 웃으며 농담하듯 이야기하던 배현수는 조유진의 외투를 챙겨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고, 그녀를 한 손으로 감싸 병실을 몰래 빠져나갔다. 두 사람은 마치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와 차에 올랐다. ... 그들이 빠져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사가 병실에 회진을 왔다.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그곳에는 ‘무관한 사람’만 남아 있었다. 의사는 엄숙한 표정으로 서정호를 보며 물었다. “환자는 어디 갔죠? 튜브까지 다 뽑다니, 누가 뽑았습니까?” 서정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환자 본인이 뽑았습니다.” “도대체 어디 간 겁니까? 팔을 정말 망가지게 할 작정인가요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3화

    배현수의 가슴이 떨렸다. 그는 조유진과 이마를 맞대며 낮게 속삭였다. “그때 난 네 옆에 있진 않았지만 네 뒤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 그런데 왜 울었어?” “현수 씨 생각이 났어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펐거든요. 내가 이렇게 좋은 남자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아쉽고 후회스러웠죠. 그래서 울었어요.” 지금 이렇게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은 느낌이었다. 조유진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이번 눈물은 슬픔이나 후회 때문이 아니었다. 감동과 감사함 때문이었다. 운명이 그들을 온갖 고난 속에서도 끝끝내 묶어 놓았고, 그들 사이에선 이제 더 이상 헤어질 수 없는 깊은 연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배현수는 긴 손가락을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천천히 끼워 넣으며 손을 꼭 맞잡았다. 순간 그들의 손바닥에서 따뜻함이 퍼져나갔다. 그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진아, 넌 한 번도 날 잃은 적 없어. 우리가 몇 번을 떨어져도, 얼마나 오랫동안 떨어져 있더라도 난 결국 널 찾아내서 꼭 안고 말해줄 거야. 사랑한다고. 오직 너만 사랑한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조유진은 배현수의 유일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조유진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현수 씨, 우리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까요?” “그럼.” 그의 대답은 8년 전과 똑같았다. 짧지만 확고했으며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조유진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손목에 걸린 달콤한 연녹색 비취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상처가 나으면 우리 같이 아주머니를 위한 좋은 묘지를 고르러 가요. 그분을 위한 의관묘라도 만들어 드리는 게 어때요?” “아직도 ‘아주머니’라고 불러?” 조유진은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며 말투를 바꿨다. 배현수는 그녀의 팔찌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풍수 좋은 곳을 따로 고를 필요는 없어. 어머니께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2화

    육지율은 그 필명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기억해 냈다. “이 자식! 기억났어! 이 녀석이 책에서 날 모욕하지 않았나? 내 명성을 망가뜨렸잖아?” 남초윤은 급하게 말했다. “잘못 본 거 아니에요? 비엘 작가가 주인공을 모욕할 리가 없어요! 그러면 밥숟가락 들고 욕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어요?” “나를 ‘수’로 묘사한 게 모욕이 아니고 뭐예요? 왜 항상 배현수가 공이냐고?” 남초윤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그 부분을 신경 쓰고 있었던 거였다.남초윤은 그가 진짜 작가를 고소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래서 변명하듯 말했다. “다음번엔 지율 씨가 공이고, 배 대표님이 수가 될 수도 있잖아요. 원래 BL 소설에서는 공수 구분이 모호해요. 겉보기에 수 같아도 사실은 공일 수도 있다고요!” 조유진은 살짝 의문을 제기했다. “난 현수 씨가 수 같지는 않았는데. 만약 현수 씨가 진짜 수라면 캐릭터 붕괴지. 차라리 육 변호사님이 수인 게 더 어울려. 자유롭고, 매력적이고, 다정하잖아.”“?”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육지율은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며 조유진에게 따졌다. “아니, 조유진. 내가 약해 보이는 수 같은 느낌을 준다고?” “...” 배현수는 차갑게 말했다. “유진이가 쓴 것도 아닌데 왜 화내? 그럴 시간 있으면 작가나 고소해.” 남초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그냥 재미로 쓴 거지 무슨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작가를 고소하면 너무 쪼잔해 보일 거예요!” 하지만 육지율은 이성을 잃고 이를 악물었다. “쪼잔해 보이든 말든, 그 책을 하차할 거예요!” 자신이 소설 속에서 수 역할로 묘사되었고, 그것도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있다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조유진은 객관적으로 말했다. “사실 책 내용은 나쁘지 않아요. 꽤 재미있고 독자도 많아요.” “독자가 몇 명인데?”“몇만 명 정도?” “뭐?”‘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날 수로 상상했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1화

    병실에서 조유진은 그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앉아 있다가 잠들었다. 잠에 들어서도 손가락이 배현수의 손에 살짝 얽혀 있었는데 다정하고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이 사진은 완전히 남자 친구 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입원 생활이 지루하다고 하다니.육지율이 댓글을 남겼다. “뭐야, 입원했어? 혹시 가정 폭력이라도 당한 거야?” 댓글을 남기고 나서 육지율은 차에 시동을 걸며 남초윤에게 말했다. “과일 바구니 좀 사서 병문안이나 가요. 친구가 입원했어요.” “친구? 설마 배 대표님이세요? 어디 아파요?” 육지율은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진짜 아플 수도 있고 그냥 꾀병일 수도 있고.” 혹시 모른다. 꾀병일지도....병원에서는 조금 전 장은숙이 산성 별장에서 저녁 식사를 가져왔다. 수술 후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밤은 죽 같은 유동식만 먹어야 했다. 배현수는 오른손을 쓸 수 없었기에 조유진이 죽 그릇을 들고 숟가락으로 그에게 먹여주고 있었다. 첫 숟가락을 그의 입 앞에 가져가자 배현수는 뜨겁다고 투덜댔다. 조유진이 후후 불어 온도를 맞춘 후 말했다. “이제 적당히 식었어요.” 배현수는 그제야 죽을 한 입 삼켰다. 그 순간 병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장난스러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며칠 못 본 사이에 아기로 됐네? 밥도 혼자 못 먹고, 조유진이 널 너무 오냐오냐한 거 아냐?” 조유진이 놀라서 뒤돌아보니, 육지율과 남초윤이 병실에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설명했다.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입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며칠 동안 오른손은 쓰지 말라고 하셨어요. 상처가 더 심해질 수 있거든요.” 그러자 육지율은 다짜고짜 그의 오른쪽 어깨를 툭 쳤다. “진짜야?” 배현수는 고통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미친놈아!” 조유진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변호사님, 진짜로 다쳤다니까요! 어깨에 구멍이 났다고요, 함부로 건드리지 마세요!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0화

    그녀를 겨우 한 번 데리러 온 김에 출퇴근길의 불편함을 느끼고는 아예 차를 사서 해결하려고 하다니, 정말 육지율 다운 방식이었다.이 4S 매장에서 파는 차들은 모두 포르쉐였고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가장 저렴한 모델도 수천억 원대였다. 남초윤은 이미 남씨 집안이 육지율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었기에, 그가 차를 선물해 주겠다고 해도 받을 수 없었다.남초윤은 차분히 말했다. “앞으로는 출퇴근 길에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 굳이 차를 선물할 필요는 없어요.”육지율은 순간 멈칫했다가 살짝 비웃으며 말했다. “차 한 대 선물한다고 귀찮다는 딱지가 붙어요? 이런 확산적 사고방식은 참 대단하네.”“....”정말 그런 게 아니란 말인가?평소에도 성격이 불 같았던 육지율은 차를 주겠다고 하면서도 그녀를 달래는 상황이 우스웠는지 어이없어 웃었다. 둘 중 누가 더 성격이 나쁜지 모를 일이었다.영업 직원은 남초윤을 육지율이 외부 애인으로 오해했고, 이 큰 거래가 깨질까 봐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가씨, 변호사님께서 차를 사주시는 건 출퇴근 시간을 줄여서 그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게 해주려는 마음이 아닐까요?”남초윤은 더 이상 그의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미 갚을 수 없는 빚이 너무 많았고 계속해서 더 쓴다면 두 아이를 낳아야 겨우 그 빚을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나 육지율은 그 여느 때처럼 행동했다. 그는 VIP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빨리 골라요. 차 안 사면 집에 못 돌아가요.”남초윤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여자 영업 직원이 다가와 다양한 모델을 소개할 때, 그저 듣기만 했다. 그 직원은 미소를 띠며 말도 아주 달콤하게 했다. “변호사님은 저희 매장의 단골이세요. 그런데 여자를 데리고 온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변호사님이 정말로 많이 아끼시는 것 같아요. 비싼 차를 고르시면 아마 더 기뻐하실 거예요.”역시, 판매왕이었다.감정적 가치를 제공하는 법을 너무나 잘 아는 직원이었다. 하지만 남초윤은 그저 외부의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59화

    남초윤은 결혼 상태를 한 번도 업데이트한 적이 없었다. 동료들 눈에는 여전히 미혼으로 보였다.처음 그녀와 육지율의 스캔들이 터졌을 때 온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사실 모두 육지율의 매력적인 외모 때문이었다. 아무도 남초윤처럼 작고 평범한 존재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육지율이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들의 침대 사진이 언론이나 남재원에게 유출되지 않은 것도 기적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육지율이라는 유명한 바람둥이가 ‘함정'에 빠져 순진한 여자와 관계를 맺은 후, 마지못해 결혼했다는 소문만 믿고 있었다.육지율이 연예계 인물이 아닌 만큼 동료들 중에서도 아무도 그 사건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육지율이 ‘좋은 집안의 아들’ 이라는 사실만 기억하고 그의 결혼 상대가 누군지에는 무관심했다. 그녀는 어디에도 크게 드러나지 않았고 언론에서도 그의 곁에 서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남초윤은 그렇게 세상 사람들의 눈에 숨겨져 있었다.동료들은 그저 그녀가 조금 집안 배경이 있는 부유한 여자인 줄로만 알았고 육지율의 아내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육지율의 아내라면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그들과 같이 일하며 고생할 일은 없을 테니까. 설령 과거에 파파라치 일을 했더라도 그렇게 높은 곳에 시집갔다면 육씨 집안이 그녀를 계속 그 일을 하도록 놔두지 않았을 거라고 여겼다.비록 세상은 모두 직업의 평등을 외치고 있지만 상류 사회에는 여전히 그들만의 규칙이 있었다. 체면과 명예가 그들의 신분과 존엄을 상징했다. 파파라치라는 직업은 육씨 집안에게 있어 절대 자랑스러울 수 없는 일이었으니, 육지율과 강란희가 그녀에게 좀 더 체면 있고 유망한 직업들을 제안했지만 남초윤은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렇게 시간을 보낸 끝에 동료들은 하나둘씩 퇴근하고 남초윤만 남았다. 한 시간이 흐른 뒤 남초윤은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저녁 7시가 되었다. 그녀는 통화 기록을 훑어보고 다시 한 번 메시지를 확인했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아마도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