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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1화

작가: 남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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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강성의 어느 작은 마을.

예지수가 말했다.

“그때 조범이 너의 아버지를 죽였어. 그래서 너의 어머니가 조범을 미워했어. 안정희를 찾아가서 증언을 해 달라고 했지만 안정희는 그때 임신 중이었고 곧 출산을 앞두고 있었어. 안정희는 너의 어머니가 안타까웠지만 사람은 그 누구나 이기적인 부분이 있잖아.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 이익이 먼저니까. 조범이 아무리 나빠도 남편이고 뱃속 아이의 아버지야. 그래서 너의 어머니가 부탁하러 갔을 때 물론 흔들렸지만 거절했어.”

배현수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래서 어머니가 안정희까지 미워서 안정희의 아이를 바꿔치기한 거예요?”

예지수는 더 이상 숨길 수 없자 순순히 인정했다.

지난 일을 생각하는 그녀의 눈빛에는 왠지 쓸쓸함과 부끄러움이 비쳤다.

“그때 너의 어머니가 복수심에 불타 안정희의 출산 예정일을 알아보라고 했어. 원래는 안정희의 아이를 데려가려고 했어. 아이를 잃은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주려고 말이야. 나는 그때 시립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어. 처음에는 너의 어머니의 생각을 바로 거절했어. 안정희가 아무리 잘못했다고 해도 아이는 죄가 없으니까. 하지만 너의 어머니가 무릎까지 꿇으며 도와달라고 해서... 나와 너의 어머니는 비록 사촌 자매이지만 집안 조건이 차이가 많이 났어. 너의 어머니는 너의 아버지와 결혼한 후 더욱 행복하게 살았어. 하지만 내 아버지는 도박과 여자에게 재산을 탕진했어. 내 대학 등록금까지 다 날렸지. 그때, 너의 어머니가 돈을 대줬어. 만약 너의 어머니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시립병원에 취직할 수 없었을 거야. 예전에는 병원에 취직한다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거든. 그래서 나에게 너의 어머니는 언니이자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해준 부모와 같은 존재야. 그런 언니가 나한테 부탁을 하고 무릎 꿇고 애걸복걸하니 내가 어떻게...”

배현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럼 안정희의 수양딸은 우리 어머니가 데려온 거예요?”

예지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또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의 어머니와 얘기한 후 나는 이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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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지수는 한숨을 내쉬었다.“사실 너의 어머니는 다른 사람이 건드리지 않으면 본인도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아. 뼛속은 선량하지만 조범이 너무 나빴어. 그리고 너의 아버지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오롯이 복수의 칼날만 다듬었지.”배현수는 주먹을 쥐고 말했다.“그럼 안정희의 아들은요? 죽었어요?“처음에는 안정희의 아들을 너의 어머니께 줬어. 아이를 목 졸라 죽이려고 했는데 막상 손을 대려니 안 되겠다고 생각했나 봐. 아이를 빗속에 던져버렸어... 이젠 오랜 세월이 흘렀어. 나와 너의 어머니 외에는 아무도 이 일을 몰라. 안정희는 죽을 때까지도 몰랐다. 애초에 낳은 것이 아들이었다는 것을... 이것도 본인의 업보라고 할 수밖에... 업보는 조범이 너의 아버지를 죽이게 내버려 둔 것이야. 나중에는 조범이 아들만 중시하는 바람에 조범에게 배신당하여 잘 지내지 못했어. 평생 자기 아들을 만나지도 못하고 인생이 끝이 났지. 모든 사람은 잘못을 저지르면 그에 상응한 대가를 치러야 해. 안정희도 그렇고 너의 어머니도 그렇고... 너의 어머니는 이 일을 끝낸 후, 아마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거야. 좋은 사람이 아주 나쁜 일을 저질렀으니 많이 힘들었을 거야.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이 오락가락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예지수의 말을 들은 배현수는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얼굴은 극도로 어두웠다.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이모님, 육씨 집안과 우리 어머니에게 원한이 있는 집안 중에 엄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어요?”“아니, 들어본 적 없어. 왜 그러는데?”배현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아무것도 아닙니다. 단지 어머니가 당시 안정희의 수양딸을 어떻게 만났는지 알고 싶을 뿐이에요.”“데려온 그 여자아이를 말하는 거야?”“네.”“그건 나도 잘 모르겠지만 주워왔다고만 했어. 진짜로 주워온 것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어. 너의 어머니만 알겠지. 하지만 지금은 정신이 오락가락하니 물어도 네가 원하는 대답을 얻기는 어려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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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753화

    밤 10시가 넘은 시각.산성 별장에 불이 켜지지 않아 어두컴컴했다.배현수가 밖에서 술을 마신 탓에 서정호가 차로 데려다주었다.집에 들어서자마자 예삐가 계속 울었다.하지만 예지수의 입에서 과거의 원한에 대해 알게 된 후, 마음이 무거웠다. 입구에 여자 신발이 놓여 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손을 들어 넥타이를 풀고 우는 예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거실을 지나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의 센서 등이 켜졌다.문을 밀고 안방으로 들어간 후 문을 휙 닫았다. 센서 등의 희미한 빛은 문에 의해 철저히 차단되었다.모든 감정이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배현수는 온몸으로 우울한 감정을 내뿜고 있었다. 알코올이 몸속에서 소용돌이쳤다. 관자놀이가 따끔거렸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잡아당기려는 순간 손이 멈췄다.뼛속 깊이 새겨져 있는 경각심 때문에 어둠 속에서도 상대의 연약한 목을 단숨에 움켜쥐었다.“누구야?”“웁... 나예요.”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자던 조유진은 깜짝 놀랐다.본능적인 삶의 욕구가 그녀의 목을 조른 배현수의 손을 힘껏 잡아당겼다.배현수는 놀라서 얼른 손을 떼었다.딸깍.침대 머리맡에 무드등이 켜지자 따뜻한 오렌지색 빛이 안방 전체를 비추었다.조유진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몸은 이미 그 팔에 안겨 있었다.배현수는 고개를 숙이고 물었다.“아파?”그녀의 하얀 목덜미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다. 단지 약간의 홍조만 있을 뿐이다. 방금 배현수가 힘주어 꽉 쥔 자리이다. 곧 가라앉을 것이다.조유진이 괜찮은 것을 본 배현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왜 갑자기 대제주시로 돌아온 거야? 나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방금 난 또...”조유진은 정신을 차렸다. 졸음이 싹 가시고 정신이 맑아졌다.눈빛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또 뭐요? 나 말고 다른 여자가 이 침대에 누워 잤단 말이에요?”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과민반응이 이토록 심할 수 있을까?배현수의 팽팽했던 신경은 완전히 풀렸다.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살인자가 집에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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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754화

    그녀의 등허리를 껴안은 큰 손은 점점 더 조여졌다. 서로의 가슴이 딱 달라붙었다. 심장 박동도 같은 빈도로 뛰는 듯했다. 두 심장이 서로 엉켜서 함께 뛰는 것 같았다.숨이 막힐 때까지 키스하고서야 배현수는 그녀를 놓아주었다.조유진은 두 손을 그의 어깨에 얹은 채 시선을 피했다.하지만 배현수는 그녀의 붉은 입술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눈빛에는 깊은 욕망이 흘러나왔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삼킬 것 같았다.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잠깐 멈칫했지만 두 입술은 다시 뒤엉켰다.조용하고 따뜻한 안방에서 키스가 점점 더 깊어졌다.배현수는 넥타이를 풀더니 키스를 하며 말했다.“오늘 네가 너무 보고 싶은 줄 어떻게 알았어? 얼마나 기다린 거야?”“오후 2시에 도착했어요.”“그럼 왜 공항으로 마중 나오라고 전화하지 않았어?”그 시간이면 배현수는 대제주시에 있을 때이다. 그녀가 오늘 돌아온다는 것을 알았다면 예지수를 찾으러 강성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조유진의 볼이 뜨겁게 달구어졌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말했다.“서프라이즈를 주고 싶어요.”배현수는 피식 웃었다.“나에게는 서프라이즈지만 너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을까 봐 걱정이네.”조유진은 잠시 숨을 돌렸다. 기복이 심했던 가슴이 드디어 진정되었다.배현수는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다 쉬었어? 계속할까?”조유진은 고개만 끄덕였다. 오늘 밤 그녀는 이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할 것이다.그녀가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6시부터 지금까지 저녁은 물론이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배고파.”배현수는 그녀와 이마 맞대며 장난기 섞인 말투로 말했다.“나를 먹어.”조유진은 그의 어깨를 밀쳤다.“담배 냄새와 술 냄새가 너무 심해요.”한 시간 넘게 술집에 있은 탓에 옷에서 담배 냄새와 술 냄새가 많이 났다.“뭐 먹고 싶어?”조유진이 물었다.“집에 국수 있어요?”“냉장고에 있을 거야. 내가 끓일게.”조유진은 배현수보고 샤워하라고 했다.“내가 끓일게요.”초저녁 내내 잤으니 움직일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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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755화

    조유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배현수 때문에 목이 간지러웠다.“예삐랑 점점 닮아가요? 내가 일할 때만 와서 괴롭히냐 말이에요.”배현수는 깨끗한 그녀의 옆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나도 예삐처럼 여주인을 좋아하나 봐.”조유진은 가스 불을 끄고 야채와 달걀을 건져냈다.먹음직스럽고 영양가 있어 보이는 청경채 계란국수 두 그릇이 완성되었다.“들고 가서 먹어요.”배현수는 가만히 있었다. 두 손은 그녀의 허리를 감싼 채 그녀의 목덜미에 기대 말했다.“유진아, 우리 혼인신고 하러 가자.”그는... 하루라도 빨리 행복해지고 싶다.조유진이 여기에 서서 그의 셔츠를 입고 간단한 국수 한 그릇 끓여주는 것만으로도 이런 상황에 빠져들었다.결혼 생활을 시작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조유진은 어리둥절해 하며 고개를 돌렸다.“그런데 호적등본도 여기 없어요. 혼인신고 하기 전에 아빠께 말씀드려야죠.”배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지. 섣달 그믐날에 찾아뵐게.”“아빠가 허락하지 않으면 어떡해요?”배현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그럼 엄씨 사택에서 허락할 때까지 눌러 있을 거야.”조유진은 피식 웃었다.“배현수라는 사람이 떼를 쓸 줄도 안다고요?”“유진아, 너와의 결혼 생활을 8년 동안 생각했어.”8년, 충분히 긴 시간이다.분명 달콤하리라 생각했다.조유진은 코가 찡했다.두 사람은 오픈 키친의 테라스에 앉아 국수를 먹었다.지난번 조유진이 국수를 만들어준 지가 벌써 반년 전이다.서로 그렇게 깊은 갈등을 겪었지만 이런 평범한 일상은 극히 드물다.하지만 조유진은 밥을 거의 하지 않는다. 폐가 안 좋아 기름 연기만 맡아도 기침이 많이 나기 때문이다. 같이 있을 때 배현수가 그녀에게 요리를 못하게 했다. 가끔 국수를 삶는 것만 했다.조유진은 고개를 숙여 면을 먹었다. 배현수는 젓가락을 들지 않고 대신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조유진이 의아한 듯 물었다.“국수가 불겠어요. 찍을 게 뭐가 있다고...”배현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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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756화

    배현수는 그녀의 허리를 받쳐 가볍게 안았다. 그녀의 허리에 쌓여 있던 셔츠가 천천히 미끄러져 떨어졌다.몸이 갑자기 싸늘해졌다.배현수의 목을 감싸고 있는 조유진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코알라가 아이를 안고 있는 자세에서 키스를 나눴다.서로를 오랫동안 기다린 탓에 불타오른 불꽃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펑' 하는 소리가 났다.조유진은 냉장고 문에 밀쳐졌다. 등 뒤로 전해지는 차가운 촉감에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주방은 어둡고 창문은 늘 블라인드 커튼이 쳐져 있다. 이 일대는 단독 빌라 구역으로 낮이든 밤이든 사생활 보장이 아주 잘 된다.어두운색의 냉장고가 그녀의 피부를 더욱 눈부시고 하얗게 보이게 했다.배현수는 거의 통제력을 잃었다.조유진의 하얗고 가느다란 손은 남자의 목덜미에 감겨 있었다. 손끝에 힘을 주자 손등의 가느다란 힘줄이 조금씩 솟아올랐다.조용한 부엌에서 들려오는 숨소리에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뛰었다.조유진의 목에 뜨거운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한쪽 다리에 힘이 빠져 미끄러질 것 같았지만 큰 손에 잡혀 다시 그를 감싸 안았다.배현수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살짝 시선을 피했다.이때 주방 입구에서 때아닌 ‘야옹’하는 소리가 들렸다.조유진은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그녀의 목덜미와 가슴 앞에 엎드린 사람도 순간 멈칫했다.하지만 잠깐 멈추었을 뿐 배현수는 이내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잡더니 얼굴을 돌려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왜 쟤를 봐, 나 좀 봐.”두 입술이 다시 포개졌다.한참 동안 입을 맞추던 배현수는 뭔가 생각난 듯 동작을 멈췄다. 그녀를 위로 받쳐주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꼭 잡아. 안고 침실로 갈 테니.”인제야 침실이 생각난 것인가?조유진을 안고 계단을 오르자 예삐도 따라왔다.배현수는 호통쳤다.“꺼져!”예삐는 순간 멍해졌다. 맑은 눈을 동그랗게 뜬 예삐는 너무 놀라 어쩔 줄 모르는 듯했다. 온몸을 움츠리며 반걸음 물러섰다.조유진도 깜짝 놀랐다.“괜히 고양이에게 스트레스 주지 마요.”고양이가 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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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75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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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성일의 압도적인 기운은 전화 너머에서도 남초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묵직한 압박감은 느껴졌다. 그때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는지, 어떻게 육씨 집안에 시집갔는지 스스로도 의아했다. 만약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차라리 구걸을 하더라도 절대 육씨 집안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남초윤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할아버지, 부탁드려요. 저희가 약속했던 건 두 달 전이었잖아요. 아직 두 달이 채 안 지났고, 제가 지금 아기를 가졌다고 해도 확인이 안 될 수도 있어요.” 그 말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기에 육성일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전화를 겨우 넘겼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이번엔 ‘개자식’ 육지율이었다. “...” 할아버지와 손자는 통화 시간까지 맞춘 것처럼 기가 막히게 연달아 전화를 걸어온다. 그녀는 냉랭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왜요?” 육지율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폭탄이라도 먹었어요?” 육지율이 자신의 책을 내리게 만들고, 지난달과 이번 달 원고료도 다 날려버린 상황에서 그녀가 전화를 받아준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아직 유지 중이었고 필요한 것도 있으니 남초윤은 결국 목소리를 가다듬고 좀 더 부드럽게 말했다. “지율 오빠, 무슨 일이에요?” “... 뭐라고 불렀어요?” “지~율~오~빠~” 그녀는 유설영의 말투를 흉내 내며, 아니, 오히려 더 능숙하게 말했다. 육지율은 순간 닭살이 돋았다. “제발 평소처럼 말해요. 저녁에 내 친구가 귀국하는데 같이 식사해요. 6시에 잡지사로 데리러 갈게요.” 남초윤은 단번에 거절했다. “난 안 갈래요.” “저녁에 뭐 다른 약속 있어요?” 남초윤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결혼한 지 3년 됐지만 당신은 나한테 친구 한 명도 소개해 준 적 없잖아요.” 그리고 이제 곧 이혼할 텐데 친구를 만날 필요는 더 없었다.이혼하고 나서 친구들이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6화

    조유진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학교에서 누가 너 괴롭히진 않았어?” 배선유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응, 나 괴롭히는 사람 없어. 할아버지가 우리 학교에 엄청난 돈을 기부하셔서 선생님들도 항상 나한테 잘해주시고 많이 관심 해주셨어. 그래서 나도 함부로 장난칠 수가 없어. 혹시 선생님이 할아버지한테 이르실까 봐.” 배현수는 이 말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배선유는 작은 악동처럼 말이 많았고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아이였다. 배현수의 말에도 자주 대꾸를 하니, 만약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면 벌써부터 떠벌렸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남을 괴롭히는 쪽에 더 가까웠다. 성남에서 엄준은 배선유를 엄청나게 아끼며 키웠고, 그래서인지 아이는 주눅이 들지 않고 활발하게 자랐다.조유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다행이네. 우리 선유가 공부를 게을리할 걱정은 없겠어.” 배현수는 딸을 겁주듯 말했다. “너 공부 안 하고 일찍 연애라도 시작하면, 널 대제주에 데려와서 24시간 동안 지켜볼 거야.” 배선유는 입술을 내밀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이건 너무 심해요! 나 혹시 쓰레기통에서 주워 온 거 아니에요?” 배현수는 코웃음을 치며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말했다. “공부 안 하면 좋은 날은 없을 거야.” 잠시 후, 학교 종이 울릴 시간이 가까워졌다. 배선유는 전화를 끊으려다가 친구가 그린 결혼사진 두 장을 영상 속으로 건네받았다. “선유야! 너랑 지우의 결혼사진 내가 그려놨어! 한 번 봐봐!” 배선유가 물었다. “한 장에 얼마야?” “너니까 공짜로 해줄게! 대신 다음번엔 나랑 결혼해 줄 수 있어?” “생각해볼게!” “...” 이 속도로라면 그들 부부는 도대체 몇 명의 사위를 맞이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한편, 스타라이트 매거진에서.남초윤이 사이트 편집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그녀의 책은 예상대로 플랫폼에서 삭제되었고 이달 원고료는 한 푼도 들어오지 않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5화

    [합법적 부부] 함께 올라온 사진엔 결혼반지를 낀 두 손이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이 게시글이 올라가자마자 마치 깊은 바다에 떨어진 폭탄처럼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어 반응했다. 육지율: [8년의 여정 끝에 드디어 자랑할 수 있네!] 송하진: [어! 전 두 사람 목숨 구해준 은인이에요. 제가 아니었으면 두 사람이 어떻게 혼인신고까지 했겠어요? 당장 절 주빈으로 식사 대접해요!] 남초윤: [아아아아! 유진이를 결혼이라는 무덤 속으로 끌어들이다니! 대표님 너무하세요!] 엄창민: [내 여동생한테 잘해요. 혹시라도 괴롭히면 내 주먹이 용서 못 해요!] 엄명월: [형부! 이렇게 좋은 일에 저희한테 뭐라도 사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강이찬: [축하해, 결국 원하는 대로 됐네.] 심미경: [백년해로하세요.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서정호: [대표님, 일 다 끝냈으면 빨리 돌아오세요. 의사 선생님이 여기서 엄청 화내고 있어요. 저 더는 못 버틸 것 같아요!] 학교 가기 싫어: [와! 아빠랑 엄마가 드디어 결혼했네요! 헤헷, 아빠, 나도 오늘 결혼했어요!] 배현수는 배선유의 댓글을 보고 순간 검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조유진이 운전하며 그의 미세한 변화를 눈치채고 물었다. “왜 그래요?” “선유가 결혼했다는데.” “뭐라고요?” 조유진은 깜짝 놀라 차를 도로 옆에 세우고 급히 배선유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저쪽에서 배선유는 학교에 있었는데 마침 쉬는 시간이었다. 외국어 학교라 분위기가 자유로워 아이들은 평소에도 부모님과 연락을 하기 위해 휴대폰을 가지고 다녔다. 배선유는 전화를 받자마자 얼굴을 카메라 앞으로 들이밀었다. “엄마, 아빠! 나 사진 보고 싶어!” 조유진은 그녀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나서 물었다. “선유야, 아까 결혼했다고 했잖아. 누구랑 결혼한 거야?” “우리 반 한지우랑! 엄마, 나 오늘 엄청 많은 축의금을 받았어! 내가 다 적어 놨어!”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4화

    조유진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갈게요.” 그가 환자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이번 한 번은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 다음 날 이른 아침. 서정호가 산성 별장에서 두 벌의 정장과 결혼 서류를 준비해왔다. 조유진은 오랜만에 풀 메이크업을 하고 머리도 고데기로 말았다. 그녀는 하얀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사진에 잘 나올 수 있도록 최대한 신경 썼다. 그녀는 한동안 이렇게까지 꾸미지 않았는데 하이힐을 신고 배현수 앞에 서니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조금 어색해졌다. 그래서 물었다. “나 어때요?” “아름다워. 넌 언제나 아름다워.” 배현수는 전혀 망설임 없이 그녀를 칭찬했다. 조유진은 웃음을 참으며 옆에 있던 넥타이를 집어 들고 배현수에게 매어주었다. 배현수는 그녀의 손길에 고개를 숙이며 협조했다. 조유진은 평소와 다르게 더 복잡하고 정중한 ‘엘드리지 매듭’으로 넥타이를 맸는데 배현수는 평소에 간단한 윈저 매듭만 했었다. “이 매듭은 좀 생소하네.” 조유진은 넥타이를 다 매고 나서 그의 셔츠와 정장 재킷의 깃을 정리해 주었다. “이게 엘드리지 매듭이라고 해요. 중요한 자리에서 어울리는 방식이죠. 어때요, 괜찮아요?” “멋져. 하지만 여보, 우리 서둘러야 해. 조금 있으면 의사가 올 거야.” 웃으며 농담하듯 이야기하던 배현수는 조유진의 외투를 챙겨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고, 그녀를 한 손으로 감싸 병실을 몰래 빠져나갔다. 두 사람은 마치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와 차에 올랐다. ... 그들이 빠져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사가 병실에 회진을 왔다.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그곳에는 ‘무관한 사람’만 남아 있었다. 의사는 엄숙한 표정으로 서정호를 보며 물었다. “환자는 어디 갔죠? 튜브까지 다 뽑다니, 누가 뽑았습니까?” 서정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환자 본인이 뽑았습니다.” “도대체 어디 간 겁니까? 팔을 정말 망가지게 할 작정인가요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3화

    배현수의 가슴이 떨렸다. 그는 조유진과 이마를 맞대며 낮게 속삭였다. “그때 난 네 옆에 있진 않았지만 네 뒤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 그런데 왜 울었어?” “현수 씨 생각이 났어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펐거든요. 내가 이렇게 좋은 남자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아쉽고 후회스러웠죠. 그래서 울었어요.” 지금 이렇게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은 느낌이었다. 조유진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이번 눈물은 슬픔이나 후회 때문이 아니었다. 감동과 감사함 때문이었다. 운명이 그들을 온갖 고난 속에서도 끝끝내 묶어 놓았고, 그들 사이에선 이제 더 이상 헤어질 수 없는 깊은 연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배현수는 긴 손가락을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천천히 끼워 넣으며 손을 꼭 맞잡았다. 순간 그들의 손바닥에서 따뜻함이 퍼져나갔다. 그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진아, 넌 한 번도 날 잃은 적 없어. 우리가 몇 번을 떨어져도, 얼마나 오랫동안 떨어져 있더라도 난 결국 널 찾아내서 꼭 안고 말해줄 거야. 사랑한다고. 오직 너만 사랑한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조유진은 배현수의 유일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조유진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현수 씨, 우리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까요?” “그럼.” 그의 대답은 8년 전과 똑같았다. 짧지만 확고했으며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조유진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손목에 걸린 달콤한 연녹색 비취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상처가 나으면 우리 같이 아주머니를 위한 좋은 묘지를 고르러 가요. 그분을 위한 의관묘라도 만들어 드리는 게 어때요?” “아직도 ‘아주머니’라고 불러?” 조유진은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며 말투를 바꿨다. 배현수는 그녀의 팔찌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풍수 좋은 곳을 따로 고를 필요는 없어. 어머니께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2화

    육지율은 그 필명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기억해 냈다. “이 자식! 기억났어! 이 녀석이 책에서 날 모욕하지 않았나? 내 명성을 망가뜨렸잖아?” 남초윤은 급하게 말했다. “잘못 본 거 아니에요? 비엘 작가가 주인공을 모욕할 리가 없어요! 그러면 밥숟가락 들고 욕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어요?” “나를 ‘수’로 묘사한 게 모욕이 아니고 뭐예요? 왜 항상 배현수가 공이냐고?” 남초윤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그 부분을 신경 쓰고 있었던 거였다.남초윤은 그가 진짜 작가를 고소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래서 변명하듯 말했다. “다음번엔 지율 씨가 공이고, 배 대표님이 수가 될 수도 있잖아요. 원래 BL 소설에서는 공수 구분이 모호해요. 겉보기에 수 같아도 사실은 공일 수도 있다고요!” 조유진은 살짝 의문을 제기했다. “난 현수 씨가 수 같지는 않았는데. 만약 현수 씨가 진짜 수라면 캐릭터 붕괴지. 차라리 육 변호사님이 수인 게 더 어울려. 자유롭고, 매력적이고, 다정하잖아.”“?”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육지율은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며 조유진에게 따졌다. “아니, 조유진. 내가 약해 보이는 수 같은 느낌을 준다고?” “...” 배현수는 차갑게 말했다. “유진이가 쓴 것도 아닌데 왜 화내? 그럴 시간 있으면 작가나 고소해.” 남초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그냥 재미로 쓴 거지 무슨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작가를 고소하면 너무 쪼잔해 보일 거예요!” 하지만 육지율은 이성을 잃고 이를 악물었다. “쪼잔해 보이든 말든, 그 책을 하차할 거예요!” 자신이 소설 속에서 수 역할로 묘사되었고, 그것도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있다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조유진은 객관적으로 말했다. “사실 책 내용은 나쁘지 않아요. 꽤 재미있고 독자도 많아요.” “독자가 몇 명인데?”“몇만 명 정도?” “뭐?”‘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날 수로 상상했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1화

    병실에서 조유진은 그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앉아 있다가 잠들었다. 잠에 들어서도 손가락이 배현수의 손에 살짝 얽혀 있었는데 다정하고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이 사진은 완전히 남자 친구 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입원 생활이 지루하다고 하다니.육지율이 댓글을 남겼다. “뭐야, 입원했어? 혹시 가정 폭력이라도 당한 거야?” 댓글을 남기고 나서 육지율은 차에 시동을 걸며 남초윤에게 말했다. “과일 바구니 좀 사서 병문안이나 가요. 친구가 입원했어요.” “친구? 설마 배 대표님이세요? 어디 아파요?” 육지율은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진짜 아플 수도 있고 그냥 꾀병일 수도 있고.” 혹시 모른다. 꾀병일지도....병원에서는 조금 전 장은숙이 산성 별장에서 저녁 식사를 가져왔다. 수술 후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밤은 죽 같은 유동식만 먹어야 했다. 배현수는 오른손을 쓸 수 없었기에 조유진이 죽 그릇을 들고 숟가락으로 그에게 먹여주고 있었다. 첫 숟가락을 그의 입 앞에 가져가자 배현수는 뜨겁다고 투덜댔다. 조유진이 후후 불어 온도를 맞춘 후 말했다. “이제 적당히 식었어요.” 배현수는 그제야 죽을 한 입 삼켰다. 그 순간 병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장난스러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며칠 못 본 사이에 아기로 됐네? 밥도 혼자 못 먹고, 조유진이 널 너무 오냐오냐한 거 아냐?” 조유진이 놀라서 뒤돌아보니, 육지율과 남초윤이 병실에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설명했다.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입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며칠 동안 오른손은 쓰지 말라고 하셨어요. 상처가 더 심해질 수 있거든요.” 그러자 육지율은 다짜고짜 그의 오른쪽 어깨를 툭 쳤다. “진짜야?” 배현수는 고통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미친놈아!” 조유진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변호사님, 진짜로 다쳤다니까요! 어깨에 구멍이 났다고요, 함부로 건드리지 마세요!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0화

    그녀를 겨우 한 번 데리러 온 김에 출퇴근길의 불편함을 느끼고는 아예 차를 사서 해결하려고 하다니, 정말 육지율 다운 방식이었다.이 4S 매장에서 파는 차들은 모두 포르쉐였고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가장 저렴한 모델도 수천억 원대였다. 남초윤은 이미 남씨 집안이 육지율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었기에, 그가 차를 선물해 주겠다고 해도 받을 수 없었다.남초윤은 차분히 말했다. “앞으로는 출퇴근 길에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 굳이 차를 선물할 필요는 없어요.”육지율은 순간 멈칫했다가 살짝 비웃으며 말했다. “차 한 대 선물한다고 귀찮다는 딱지가 붙어요? 이런 확산적 사고방식은 참 대단하네.”“....”정말 그런 게 아니란 말인가?평소에도 성격이 불 같았던 육지율은 차를 주겠다고 하면서도 그녀를 달래는 상황이 우스웠는지 어이없어 웃었다. 둘 중 누가 더 성격이 나쁜지 모를 일이었다.영업 직원은 남초윤을 육지율이 외부 애인으로 오해했고, 이 큰 거래가 깨질까 봐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가씨, 변호사님께서 차를 사주시는 건 출퇴근 시간을 줄여서 그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게 해주려는 마음이 아닐까요?”남초윤은 더 이상 그의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미 갚을 수 없는 빚이 너무 많았고 계속해서 더 쓴다면 두 아이를 낳아야 겨우 그 빚을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나 육지율은 그 여느 때처럼 행동했다. 그는 VIP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빨리 골라요. 차 안 사면 집에 못 돌아가요.”남초윤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여자 영업 직원이 다가와 다양한 모델을 소개할 때, 그저 듣기만 했다. 그 직원은 미소를 띠며 말도 아주 달콤하게 했다. “변호사님은 저희 매장의 단골이세요. 그런데 여자를 데리고 온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변호사님이 정말로 많이 아끼시는 것 같아요. 비싼 차를 고르시면 아마 더 기뻐하실 거예요.”역시, 판매왕이었다.감정적 가치를 제공하는 법을 너무나 잘 아는 직원이었다. 하지만 남초윤은 그저 외부의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59화

    남초윤은 결혼 상태를 한 번도 업데이트한 적이 없었다. 동료들 눈에는 여전히 미혼으로 보였다.처음 그녀와 육지율의 스캔들이 터졌을 때 온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사실 모두 육지율의 매력적인 외모 때문이었다. 아무도 남초윤처럼 작고 평범한 존재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육지율이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들의 침대 사진이 언론이나 남재원에게 유출되지 않은 것도 기적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육지율이라는 유명한 바람둥이가 ‘함정'에 빠져 순진한 여자와 관계를 맺은 후, 마지못해 결혼했다는 소문만 믿고 있었다.육지율이 연예계 인물이 아닌 만큼 동료들 중에서도 아무도 그 사건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육지율이 ‘좋은 집안의 아들’ 이라는 사실만 기억하고 그의 결혼 상대가 누군지에는 무관심했다. 그녀는 어디에도 크게 드러나지 않았고 언론에서도 그의 곁에 서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남초윤은 그렇게 세상 사람들의 눈에 숨겨져 있었다.동료들은 그저 그녀가 조금 집안 배경이 있는 부유한 여자인 줄로만 알았고 육지율의 아내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육지율의 아내라면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그들과 같이 일하며 고생할 일은 없을 테니까. 설령 과거에 파파라치 일을 했더라도 그렇게 높은 곳에 시집갔다면 육씨 집안이 그녀를 계속 그 일을 하도록 놔두지 않았을 거라고 여겼다.비록 세상은 모두 직업의 평등을 외치고 있지만 상류 사회에는 여전히 그들만의 규칙이 있었다. 체면과 명예가 그들의 신분과 존엄을 상징했다. 파파라치라는 직업은 육씨 집안에게 있어 절대 자랑스러울 수 없는 일이었으니, 육지율과 강란희가 그녀에게 좀 더 체면 있고 유망한 직업들을 제안했지만 남초윤은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렇게 시간을 보낸 끝에 동료들은 하나둘씩 퇴근하고 남초윤만 남았다. 한 시간이 흐른 뒤 남초윤은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저녁 7시가 되었다. 그녀는 통화 기록을 훑어보고 다시 한 번 메시지를 확인했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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