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시.조유진은 저녁 늦게 호텔에 도착한 뒤 남초윤의 메시지를 확인했다.공장에서 하루 종일 생산 라인을 주시하느라 휴대전화를 볼 틈이 없었다.이제야 숨돌릴 틈이 있어 남초윤에게 답장했다.[왜 그래?]남초윤은 핸드폰을 보고 있는 중인 듯 이내 답장했다.[대머리가 나보고 김성혁을 인터뷰하라고 해애애애애애! 진짜 퇴사하고 싶은 마음마저 생겼다니까! 하지만 가난한 내가 뭘 할 수 있겠어!]조유진은 의아한 듯 물었다.[육지율 씨의 카드는? 긁지 말래?][돌려줬어. 이혼할 때 돈 갚으라고 할까 봐 못 쓰겠어. 그 카드가 손에 있으면 전혀 통제가 안 돼. 나중에 내가 긁은 리스트를 보고 깜짝 놀랐어. 내 월급이 겨우 160만 원인데 그 카드로 1600만 원을 쓴 거 있지? 역시 내 돈이 아니니까 긁어도 실감이 안 나. 조금만 더 함부로 긁다가는 한 달에 2천만 원을 넘을 수도...]‘이혼'이라는 두 글자를 본 조유진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남초윤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조유진이 물었다.“육지율과 정말 이혼할 생각이야? 육씨 집안 그 할아버지가 내버려 둔대?”육지율의 할아버지는 비록 퇴직했지만 지위가 높고 권력이 있는 사람이다. 어떤 일이든 간섭하려고 결심하는 순간 매우 쉽게 손을 쓸 수 있다.남초윤은 불편을 토로했다.“할아버지 쪽에서는 아이 낳으라고만 재촉해. 다른 건 별로 연락하지 않아서 나도 몰라. 하지만 육지율 씨와 이혼하기로 약속했고 이미 승낙했어.”“진짜 잘 생각한 거 맞아? 홧김에 그냥 하는 말, 아니야?”남초윤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다시 얼버무리며 입을 열었다.“유진아, 네가 말해봐... 이혼을 준비하던 두 사람이 갑자기 또 뭐야, 이상한 짓을 해.”조유진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뭐, 뭐라고?”“그러니까... 응...”물을 마시던 조유진은 바로 사레가 들었다.“허허... 누가 먼저 한 거야?”어젯밤의 상황을 한참 동안 생각한 남초윤은 얼굴이 뜨거워 견딜 수 없었다.“그 사람이 제안한 거
그녀와 배현수는 결혼이라는 족쇄가 없다. 왕래가 적어도 자유롭다.남초윤과 육지율... 결혼이라는 울타리에 갇힌 두 마리 짐승처럼 뒤엉켜 기어 나오려 해도 주변에 가로막는 사람이 너무 많다.예를 들어, 남초윤의 부모님, 특히 남재원 같은 속물주의자들은 남초윤이 이혼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면 가장 먼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결혼은 하기는 쉬워도 끝내기는 어렵다.조유진이 물었다.“초윤아, 육지율 씨를 진짜 안 좋아해?”서재에서 전화를 걸고 있는 남초윤은 집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다. 인터뷰 원고를 정리하고 있어 휴대전화를 들고 있기가 불편해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집에 금방 도착한 육지율은 때마침 서재 앞에 다다랐을 때 스피커 폰으로 전해지는 조유진의 말소리를 들었다.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남초윤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확실히 육지율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녀의 사랑은 이미 5년 전에 김성혁과의 갑작스러운 헤어짐으로 완전히 사라졌다.그런데 육지율에게 조금도 마음이 없는지 묻는다면 그것 또한 바로 대답하기 어렵다.육지율의 훤칠한 얼굴... 얼굴을 심하게 보는 남초윤으로서는 싫어하기 힘들다.적어도 그를 배척하지 않는다.조유진은 남초윤이 대답하기 어려워하는 것을 알고 다시 물었다.“그럼 김성혁은? 마음속에 아직도 그 사람이 있는 거야?”조유진과 얘기할 때면 남초윤은 모든 것을 숨기지 않고 항상 솔직하게 털어놓는 편이다.“오랜 시간 거쳐 지은 빌딩 한 채가 순식간에 무너졌어. 내가 아무리 치우려고 해도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어. 아무리 원상복구를 하려고 해도 흔적들이 남아있겠지.”미세한 먼지들을 그녀는 한 번 또 한 번 쓸었다.하지만 좁은 구석마저 깨끗하게 청소하기가 어렵다.사랑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아예 깨끗이 지운 것은 아니다.조유진이 물었다.“그때 갑자기 떠난 게 말 못 할 사정이 있었다면 용서해 줄 거야?”남초윤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아무도 그녀에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없다.그래
전화를 거의 끊을 무렵 남초윤은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주의를 주었다.“배현수가 프러포즈한다면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거야. 나처럼 결혼이라는 울타리에 갇히면 나중에 벗어나려고 해도 힘들 테니까”이혼 숙려기간이 60일로 바뀌었다.결혼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한 가지 일이 들어가기 쉬워도 나오기 어려울 때, 경계심을 높여야 한다. 어쩌면 큰 수렁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조유진은 남초윤이 자신을 위해 이렇게 말한다는 것을 안다.“응, 알아. 네가 정말 육지율과 이혼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초윤아, 난 영원히 네 편이야.”그 말뜻을 남초윤은 알아들었다.남초윤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내가 가장 후회하지 않는 것이 너와 절친이 된 거야. 나를 낳은 부모님도 내 편이 아닌데 말이야. 유진아, 고마워.”“고맙긴, 너는 선유의 양어머니잖아. 나 혼자 임신했을 때도 같이 있어 줬고.”...전화를 끊은 후 남초윤은 잠시 서재에서 멍하니 있었다.인터뷰 기사에 실린 김성혁의 자료를 보는 눈빛에는 수심이 가득했다.피할 수 없는 과거라면 마주할 수밖에 없다.원고를 정리하고 기지개를 켜며 서재를 나왔다.서재 입구 대리석 바닥에 최신형 슬림 노트북이 놓여 있었다.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허리를 굽혀 노트북을 들었다. 별장 안을 둘러보았지만 육지율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아래층에서 진씨 아주머니가 저녁밥을 짓고 있다.노트북을 들고 2층 난간에 기대어 물었다.“아주머니, 지율 씨가 방금 다녀왔어요?”“도련님이요? 방금까지 여기 계셨는데 어느새 보이지 않네요. 사모님, 무슨 일로 도련님을 찾으세요?”“아, 아닙니다.”진씨 아주머니는 한약을 다 끓여놓고 2층을 올려다보며 말했다.“사모님, 한약 다 끓였는데 지금 드실래요, 아니면 나중에 드실래요?”남초윤은 어이없는 얼굴로 중얼거렸다.“또 한약이에요...?”진씨 아주머니는 시댁에서 보내온 하인이다. 하지만 다른 하인과는 신분이 다르다.진씨 아주머니는 육씨 집안 할아버지 쪽에서 보낸 사람이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두 사람은 아직 함께 설을 쇠거나 제대로 된 명절을 보낸 적이 없다.이날 조유진은 일찌감치 하던 일을 마쳤다.다음날이 바로 새해이다. 설날은 원래 공휴일이지만 납품 일정이 빠듯해 공장에서 일부 근로자들이 야근하도록 배치했다.저녁 7시 반, 엄명월이 갑자기 다가와 말했다.“배 대표와 설을 쇠러 가지 않아요? 다들 퇴근하는데 아직도 공장에 틀어박혀 뭐 하는 거예요?”조유진은 팔을 뻗어 엄명월의 목을 조르며 말했다.“배 대표님께서 진주시로 올 시간이 없다고 하네요. 오늘 밤은 우리 둘이 설을 쇠야겠어요.”엄명월은 ‘쳇’ 하며 조유진의 손을 뿌리쳤다. 그러고는 차 키를 던지며 말했다.“진주시에서 대제주시까지 가는데 고작 한 시간이에요. 지금 차를 몰고 가도 늦지 않아요.”조유진은 차키를 꼭 쥐고 말했다.“내일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잖아요.”엄명월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내일 아침까지 돌아오면 되지 않아요?”일리가 있는 말인 것 같다.엄명월은 조유진이 계속 멍하니 서 있자 재촉했다.“뭘 망설이고 있어요? 얼른 다녀오세요!”엄명월이 그녀를 밀며 빨리 가라고 했다.조유진은 순간 착각에 빠졌다. 조유진보다 엄명월이 그녀와 배현수를 만나게 하려고 안달이 난 것 같다.차에 탄 후, 조유진은 내비게이션을 켰다.배현수에게 전화를 걸어 미리 얘기라도 할까 생각했지만 결국에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이런 일은 미리 알려주면 서프라이즈가 아니다.그렇게 차를 몰고 진제고속도로로 향했다.8시 반, 고속도로에서 거의 내려갈 때 전화가 갑자기 울렸다.배현수에게서 온 전화이다.전화를 받자마자 배현수가 물었다.“유진아, 어디야?”조유진은 일부러 호텔인 척했다.“나 호텔인데요.”전화기 너머의 사람은 어이없게 웃었다.“나 지금 너의 방 문 앞에 있는데 한참 두드려도 아무도 안 열어주네. 엄명월 씨의 말로는 차를 몰고 대제주시로 나 찾으러 갔다며?”그녀는 대제주시로, 배현수는 진주시로 달려갔다.정말 서로를 향해 달렸던 것
관광 케이블카에 도착했다.배현수는 손을 들어 그녀가 입고 있는 베이지색 코트를 여몄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유진아.”“네?”“오늘 밤 네가 대제주시로 가 허탕을 쳤지만 내 마음은 정말 기뻐.”그녀를 보는 그의 눈빛은 당장이라도 불타오를 정도로 뜨거웠다.조유진은 그의 시선을 살짝 피하며 케이블카 유리창 너머 산을 바라봤다.“산꼭대기에 무슨 서프라이즈라도 있어요?”배현수는 뒤에서 그녀를 백허그 하며 머리 위에 입술을 맞췄다. 그리고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서프라이즈니까 당연히 비밀이겠지?”그녀는 문득 남초윤의 말이 생각났다.배현수가 진짜로 프러포즈를 하는 것일까?조유진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오늘 배현수는 안경테가 있는 안경을 쓰지 않았다.“눈은 이제 다 나은 거예요?”“응, 거의 다 나았어.”조유진은 한참 동안 그를 쳐다봤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배현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왜 그렇게 쳐다봐?”조유진도 같이 웃었다.“아니에요. 그냥 무슨 서프라이즈인지 궁금해서요.”케이블카가 천천히 산꼭대기로 올라갔다.최근 진주시에는 큰 눈이 내렸다. 산에 눈이 가득 쌓였고 아직 녹지 않아 시야가 온통 하얗다.코끼리 산의 정상에는 거대한 전망대가 있다.케이블카에서 내리자 배현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전망대까지 안내했다.전망대에 따뜻한 오렌지색 등이 켜져 있어 밝고 아늑했다.전망대 주변 난간에는 누군가가 정성껏 배치한 다양한 장미꽃이 가득했다.조유진이 걸어가자 정밀한 천체망원경이 놓여 있었다.혹시 별을 보려는 것인지 물으려고 할 때, 배현수가 옆에서 말했다.“유진아, 발밑을 봐봐.”조유진이 고개를 숙이자 발밑 유리 바닥이 밟는 순간 핑크빛 불꽃이 터지는 것을 발견했다.유리 밑에 감지 센서가 있다.조유진은 깜짝 놀랐다.“이것은 원래 있던 거예요, 아니면...”“일주일 전부터 준비한 거야. 마음에 들어?”조유진은 신기해하며 유리 바닥을 여러 번 밟았다. 한 번 밟을 때마다 센서를
조유진은 잘못 들은 줄 알고 멀뚱멀뚱 배현수를 쳐다보았다.“저 별 이름이 뭐라고요?”배현수는 그녀가 믿지 않는 것을 알고 다시 설명했다.“내가 임명권을 샀어. 그래서 저 별은 앞으로 유진별이라고 불릴 거야. 전에 나보고 별을 달라고 하지 않았어?”조유진은 전혀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충격적인 얼굴이었다.“그냥 해본 말이에요.”보름 전, 배현수가 그녀를 찾으러 성남에 왔다.그때 그들은 냉전 중이었다. 신라호텔에서 그가 특별히 원하는 것이 있냐고 물었다.조유진은 생각나는 대로 하늘의 별 얘기를 꺼냈다.그런데 뜻밖에도 그는 정말 마음에 두고 있었다.배현수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조유진을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유진아, 네가 말한 모든 것을 배현수는 다 기억하고 있어.”서로 눈이 마주쳤다.조유진은 먼저 웃었지만 웃으며 웃을수록 가슴이 쿵쾅거렸고 눈시울이 촉촉해졌다.배현수는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쓰다듬더니 장난기 섞인 말투로 말했다.“두 번째 서프라이즈인데 너무 빨리 감동하지 마.”조유진은 깜짝 놀랐다.“또 있다고요?”배현수는 손을 들어 손목시계의 시간을 보았다.초침이 열두 시를 가리켰을 때, 전망대의 등이 갑자기 꺼졌다.어둠 속에서 불과 몇 초가 흘렀다.그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귓가에 갑자기 ‘펑'하는 소리가 났다.이어 폭죽 터지는 소리가 길게 났다.배현수가 귀띔했다.“나를 보지 말고 하늘을 봐.”그들은 산꼭대기에 서 있다.멀지 않은 하늘에 몇 개의 빛이 갑자기 솟아올랐다.다섯 개의 불꽃이 웅장하게 하늘로 솟구쳤다.새해 0시를 알리는 소리와 함께 ‘쾅’ 하는 폭죽이 밤하늘을 밝혔다.폭죽은 빙빙 도는 모양도 있고 변하는 모양도 있었다... 한데 모였다가 흩어지는 순간 마치 환상적인 핑크빛 불꽃 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불꽃이 거의 꺼질 줄 알았을 때, 다섯 개의 불꽃이 두 번째로 터지면서 하늘에서 눈에 띄는 글자를 형성했다.‘유진아, 나와 결혼해줘.’조유진은 멀지 않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멍한 표정으
산 너머 하늘은 온통 핑크빛 별바다처럼 현란하기 그지없다.불꽃은 ‘펑’ 소리와 함께 끊임없이 터졌다.한쪽 무릎을 꿇은 배현수는 ‘생각해 볼게요’라는 말에 얼떨떨하게 웃었다.“3초면 충분할까?”흥분한 조유진은 머릿속이 공백이라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다.“뭐라고요?”“배현수와 결혼할지 말지 3초 안에 결정하라고. 셋, 둘...”하나를 마저 세기 전에 조유진이 말을 끊었다.“배현수 씨, 할 말이 있어요.”배현수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말해.”조유진은 심호흡한 뒤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흥분한 마음이 점차 가라앉았다.“나는 이미 성행 그룹에 남아 일하기로 했어요. 미래가 어떻든 적어도 지금은 성남에 있을 거고요. 이 결정을 내리는데, 현수 씨 때문에 일부 사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전부는 아니에요. ‘당신 때문'이라는 핑계로 당신을 끊임없이 타협하게 할 수 없어요. 조금만 더 기다려보고 내가 먼저 현수 씨 곁으로 갈 수 있을 때, 현수 씨나 내가 이 결혼을 할 의향이 있는지 말하려 했어요. 친아버지가 엄 어르신이기는 하지만 알다시피 나는 어릴 때부터 조씨 집안에서 살았어요. 조범과 안정희의 결혼이... 결혼에 대한 첫 이미지로 각인 되었고요. 그래서 결혼 자체를 갈망하지 않아요. 단지 현수 씨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배현수이기 때문에 원해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과 결혼할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결혼하려면 무조건 현수 씨와 할 거예요. 하지만 잘 모르겠어요. 타지에서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현수 씨에게 한 걸음씩 다가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현수 씨, 그래도... 기다릴 수 있어요? 만약 현수 씨가 괜찮다면 나는 무조건 승낙이에요.”조유진은 감정을 억누르려고 애썼다. 하지만 청량한 목소리는 벌써 음 이탈이 났고 점점 흐느끼는 톤이 역력했다.목소리는 높지 않지만 매우 똑똑히 들렸다.산속이라 찬바람 소리가 곁들어 있었지만 배현수는 한 마디도 빼놓지 않고 전부 귀에 담았다.
현란한 불꽃놀이 속에서 배현수는 그녀의 뒤통수를 감싼 채 키스를 나눴다.산바람은 차갑지만 손가락 깍지를 끼고 있어 손바닥에 온기가 가득했다....코끼리 산에서 설을 쇠고 호텔로 돌아갔다.조유진은 프러포즈 영상과 핑크 폭죽을 반복적으로 돌려봤다.배현수가 뒤에서 백허그를 하며 그녀의 볼에 입술을 맞췄다.“늦었어. 가서 샤워해.”“이 핑크색 불꽃이 어떻게 글씨를 만들 수 있어요? 혹시 사람을 시켜 디자인한 거예요?”“맞춤제작이야. 싫어?이렇게 화려한 불꽃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조유진은 궁금한 듯 물었다.“이 폭죽 많이 비싸죠?”“별로, 너의 손가락에 있는 다이아몬드 반지보다 비싸지 않아.”말을 남긴 배현수는 몸을 돌려 욕실로 가서 샤워했다.조유진은 고개를 돌려 불었다.“보통 얼마예요?”배현수는 담담한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10억 4천만 원.”‘유진아, 나와 결혼해줘.’ 가 10억 4천만 원이라고?카메라로 영상을 촬영해서 반복적으로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한 번만 보기에는 가성비가 너무 떨어진다.조유진은 손가락에 낀 다이아몬드 반지를 내려다보더니 욕실 문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전에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는 스위스 집에 있어요. 찾으면 분명...”배현수는 이미 셔츠를 벗었다. 완벽한 복근과 근육질 라인을 자랑하며 조유진의 앞에 갑자기 나타났다.조유진은 말을 멈췄다. 몇 초 동안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렸다.“먼저 샤워해요.”몸을 돌려 가려다가 뒤에 있는 길고 힘센 팔에 의해 한 손에 잡혔다.남자는 한쪽 팔로 그녀의 가는 허리를 감싸고 짙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같이 씻을래?”조유진은 귀가 뜨거워졌다. 머리를 옆으로 갸웃하며 작은 샤워부스를 바라봤다.호텔은 5성급 호텔이지만 규격과 등급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여기에 묵은 이유는 공장에 쉽게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다 보니 욕실이 크지 않다.조유진은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욕실이 좁아서 같이 씻기 불편해요.”“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