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어요.”불효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어르신은 지팡이를 집어 들더니 그의 등을 세게 내리쳤다.육지율은 혼잣말로 욕설을 퍼부었다.“X발! 진짜 때리네!”육성일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내가 때리지 않으면 누구를 때리겠어? 하루 종일 일은 하지 않고 매일 그런 술집에 박혀 있으니 말이야!”육지율은 팔뚝을 흔들었다. 등 근육이 뻐근했다.“술집에 박혀 있는 게 아니에요. 술집도 돈 잘 벌어요. 왜 이렇게 고집이 심하세요? 나중에 우리 바에 한 번 와보세요. 젊은이들의 삶이 어떤 것인지 체험시켜 드릴게요. 그럼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서 때리지 못할 거예요.”어르신은 지팡이를 들더니 또 몽둥이로 내리치려 했다.이번에는 육지율이 재빨리 피하는 바람에 때리지 못했다.“이리 오너라!”할아버지는 지팡이를 짚고 책상 맞은편에 있는 육지율을 가리켰다.육지율은 눈살을 찌푸렸다.“안 때리시면 갈게요.”어르신은 이를 악물었다.“때리지 않을 테니 이리 와봐.”“정말요?”인내심을 잃은 할아버지는 어두운 안색으로 말했다.“당장 오지 못할까?”육지율은 한숨을 내쉬었다.“할아버지가 내 할아버지라서 내가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지 만약 모르는 사람이 나를 이렇게 세게 때린다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바로 조상 옆에 묻을 거니까!”퍽!지팡이는 더 독하고 더 센 힘을 싣고 그의 등에 꽂혔다.육지율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할아버지, 시...”발이라는 글자를 입 밖에 내기도 전에 육성일이 물었다.“시 뭐?”육지율은 너무 아파 이마에 식은땀까지 났다.몽둥이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그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몽둥이로 두 대 때리고 나니 어르신의 화가 많이 누그러졌다.손에 힘을 빼고 지팡이를 옆으로 던졌다.그는 육지율을 노려보며 말했다.“두 가지 선택지를 줄게. 하나, 한 달 안에 남초윤을 임신시켜 아이를 낳아. 너의 아비가 못난 것은 둘째치고 너라도 사람 노릇은 해야 할 거 아니야. 앞으로 너의 일
육성일은 순간 얼어붙었다.두 눈이 마주친 순간 방 안의 분위기마저 얼음장으로 만들 것 같았다.육지율의 눈이 시뻘게졌다.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할아버지, 저는 할아버지 손자예요. 원수가 아니에요. 하루 종일 이렇게 몰아붙이면 기분이 좋으세요?”육성일이 큰 소리로 호통쳤다.“형의 죽음 때문에 이렇게 의기소침한 거라면 너 육지율 정말 못난 놈이라고밖에 말 못 하겠네!”그러자 육지율도 바로 대꾸했다.“네, 제가 나쁜 놈이에요. 인정해요. 저 겁쟁이야, 그래서 내 아이도 겁쟁이일 거예요. 할아버지가 나를 키우지 못한 것처럼 내 자식도 키울 수 없어요. 그러니까 더 이상 몰아붙이지 마세요!”말투는 잔뜩 화가 나 있다.찰싹!육성일은 손으로 육지율 왼쪽 뺨을 세게 때렸다.육지율은 얼굴을 옆으로 돌린 채 한참 동안 고개를 들지 않았다.얼굴을 숙인 채 혀끝을 뺨에 대고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형은 뭐든 다 잘하죠. 할아버지 말을 너무 잘 들어서 탈이에요. 하지만 나는 육지운이 아니에요. 저는 육지율이라고요. 할아버지, 마지막으로 말씀드리지만 저는 할아버지가 걸었던 그 길을 가고 싶지 않아요.”그 말을 들은 육성일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입을 열었다.“내가 걸었던 길을 가기 싫으면 너 스스로 새길 개척해서 보여줘. 지금처럼 일하지 않고 매일 빈둥빈둥 놀지만 말고. 계속 그러면 너도 더 이상 육씨 성을 가질 생각하지 말고! 그때는 와이프도 미처 챙겨주지 못할 거야!”육성일이 온 힘을 실어 때린 따귀에 육지율은 입안에 희미하게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그는 혀끝으로 피를 핥았다.“앞으로 밖에서 일할 때 두 번 다시 육씨 가문의 이름을 쓰지 않을게요. 할아버지 불편하지 않도록 손자라는 것도 얘기하지 않을게요.”육지율은 냉랭한 얼굴로 콧방귀를 뀌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그래, 어디 말한 대로 하나 보자!”육지율은 고개를 숙이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못하면 할아버지의 개가 되겠습니다.”육지율은 상당히 기분이 나쁜 듯 입술을 달
“아버님, 지율이도 이제 서른 살이에요. 자꾸 이렇게 때리시면 더욱 엇나가려 할 거예요. 그러다가 원수가 되면 어떻게 해요. 친손자에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지난 1년 동안 육지율이 본가로 돌아가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이것은 사람을 원망하게 만든 결과이다.육성일이 한숨을 내쉬었다.“때리지 않으면 엇나가지 않을 줄 알았어? 아예 생각의 싹을 잘라버릴 거야. 육씨 집안이 없으면 그 자식은 아무것도 아니야.”“지율이는 그의 형과 달라요. 정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육씨 집안이 녀석의 뒷바라지를 못 해주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핍박하세요? 증손자를 원하시면 남초윤에게 잘 말씀하세요.”“중손을 안고 싶다고요? 흥, 그래 말 한마디 맞게 한 것은 있지. 그 꼬락서니 좀 봐, 태어난 아이가 그 자식보다 더 나쁠 거야.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계속 밑 빠진 독을 붙잡고 있으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본인이 더 잘 알 거야.”강란희는 한숨을 내쉬었다.“남초윤은 집안 배경이 평범하지만 그래도 효도하는 편이에요. 아이를 낳는 것은 제가 다시 얘기해 볼게요.”육성일은 피식 웃었다.“처음에 화가 나서 배경도 없고 백도 없는 사람을 골랐잖아. 그럼 앞으로 어떤 길을 갈지 알아야지. 3년 동안 내버려 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불효자식을 봐준 거야. 그 녀석이 스스로 선택한 거야. 그럼 알아서 자기 와이프를 보호해야지. 보호하지 못하는 것은 능력이 없는 거야!”...소정 별장에 도착한 육지율의 몸에서는 약간의 술 냄새가 났다.남초윤은 노트북을 들고 서재로 들어가 원고를 쓰려고 준비 중이었다. 그러다가 비틀거리며 위층으로 올라가는 그를 발견했다.최대한 그의 존재를 무시하려고 애쓰며 한눈팔지 않고 서재로 들어가려 했지만 결국 육지율에게 잡혔다.남자는 그녀의 팔을 잡더니 고개를 떨구고 말했다.“서재에 숨어서 김성혁과 바람피우고 있는 거야?”남초윤은 얼떨떨해하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누가 몰래 바람을 피웠다고 그래요? 단어 선택에 주의하세
부부의무...육지율의 입에서 나온 네 글자가 왜 이렇게 풍자적으로 들릴까?결혼한 지 3년이 다 되어간다. 저녁에 집에 안 들어온 시간이 2년까지는 아니더라도 1년 반은 훌쩍 넘을 것이다.지금 남초윤은 이혼하고 싶다. 그런데 그는 그녀에게 부부의 의무를 언급하고 있다.하지만 지난 3년 동안, 육지율은 남초윤의 집안에 계속해서 많은 돈을 투자했다. 물론 이 돈들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서로 스무 번 하자고 약속했으니 몸으로라도 빚을 갚을 생각이었다.하지만 약속은 결국 약속이다. 어떤 독한 말도 할 수 있다.정말 해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컴퓨터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화면이 깨졌다.남초윤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내 노트북...!”“내일 새로 사줄게.”남초윤이 무슨 말을 더하려 할 때, 온몸이 갑자기 싸늘해졌다. 육지율은 이미 그녀가 입고 있던 홈웨어를 찢어버렸다.그녀가 일어나 앉으려고 몸부림치자 육지율은 큰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누르며 다시 침대 위로 밀었다.동시에 알코올 냄새가 진동하는 키스가 이어졌다.처음에 두 사람 모두 눈을 감고 이 키스를 즐기지 않았다.남초윤은 취기 어린 눈으로 물든 육지율의 눈과 마주쳤다. 평소의 경망한 눈빛과 달리 한없이 그윽해 보였다.자기를 보고 있는 것을 느낀 육지율은 동작을 멈추었다.입술을 살짝 떼며 쉰 목소리로 물었다.“싫어요?”남초윤은 주먹을 꼭 쥐었다.“스무 번 다 하면 이혼합의서에 서명할 거예요?”그는 어리둥절해 하더니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던 큰 손에 살짝 힘을 주며 말했다.“그렇게 이혼을 원하는 거예요? 육씨 집안에서 눈치를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그래도 남씨 집 안에 있는 것보다 못해요?”남재원은 걸핏하면 그녀를 거칠게 대했다.육씨 집안 어른들은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바로 앞에서 그녀에게 폭언하지 않는다. 집안 어른들이 가끔 안 좋은 기색을 내비치면 그는 그 자리에서 그녀를 두둔했다.게다가 그들은 확실히 본가에 별로 가지 않았다.소정 별장에서 아주 자유롭게
남초윤의 심장은 당장이라도 뛰쳐나올 듯 빨리 뛰었다. 결국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흐린 빛 속에서 눈빛이 반짝였다. 누가 먼저 신중함을 포기했는지 알 수 없다. 잠시 멈추었던 입술이 다시 엉켰다.진한 키스 속에 남초윤은 타락한 듯 눈을 감았다.분위기를 깨는 전화벨이 울렸다.남초윤의 핸드폰이 울렸다. 침대맡에 손을 뻗어 휴대폰을 잡으려 했다. 육지율은 오늘 밤 본전을 뽑으려고 결심한 듯 그녀의 손을 붙잡고 다시 원위치로 옮겼다. 손길은 결코 부드럽지 않았다.하지만 치명적이다.휴대폰 벨 소리가 얼마나 오래 울렸는지는 모르지만 이 소리는 다른 소리를 감추는 도구로 변했다.그 후, 분위기는 점점 더 치열해졌다....다음날 오전.남초윤은 편집장이 와서 임무를 지시할 때까지 자리에 앉아 오전 내내 멍하니 있었다.“남초윤 씨, 지난번 경제신문용으로 동진의 김 사장을 인터뷰했던 건이요. 김 대표가 남초윤 씨에 대한 인상이 좋은지 방금 다시 약속을 잡았어요. 꼭 남초윤 씨가 와서 인터뷰해달라고 하네요.”순간 정신을 차린 남초윤은 완곡하게 거절했다.“하지만 아직 편집하지 못한 인터뷰 원고들이 많이 남아있어요. 제가 주로 하는 것은 예능이라 경제신문과 과학 쪽은 류진이가 잘해요. 류진아, 네가 해.”그러자 옆에 있던 동료 류진이 손을 들었다.“편집장님, 동진의 김 대표 인터뷰는 제가 할게요. 좀 이따 제가 동진에 연락하겠습니다. 초윤 언니, 김 대표님 비서의 연락처 좀 부탁해요.”남초윤이 마침 승낙하려고 할 때 편집장이 눈살을 찌푸리며 남초윤에게 말했다.“김 대표와 예능 신문 만들면 되잖아요. 머리가 왜 이렇게 안 돌아가요? 누가 지루한 집안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해요. 예능 기사를 쓰면 되죠. 이참에 김 대표님께 좋아하는 여자가 있는지 물어도 보고요.”남초윤은 거절하려고 일어섰다.하지만 편집장은 한 마디만 남기고 사무실로 돌아갔다.“이렇게 하기로 한 거예요. 이미 동진에게 간다고 답장을 보냈으니 괜히 바람맞히면 안 돼요!”남초윤은 주
진주시.조유진은 저녁 늦게 호텔에 도착한 뒤 남초윤의 메시지를 확인했다.공장에서 하루 종일 생산 라인을 주시하느라 휴대전화를 볼 틈이 없었다.이제야 숨돌릴 틈이 있어 남초윤에게 답장했다.[왜 그래?]남초윤은 핸드폰을 보고 있는 중인 듯 이내 답장했다.[대머리가 나보고 김성혁을 인터뷰하라고 해애애애애애! 진짜 퇴사하고 싶은 마음마저 생겼다니까! 하지만 가난한 내가 뭘 할 수 있겠어!]조유진은 의아한 듯 물었다.[육지율 씨의 카드는? 긁지 말래?][돌려줬어. 이혼할 때 돈 갚으라고 할까 봐 못 쓰겠어. 그 카드가 손에 있으면 전혀 통제가 안 돼. 나중에 내가 긁은 리스트를 보고 깜짝 놀랐어. 내 월급이 겨우 160만 원인데 그 카드로 1600만 원을 쓴 거 있지? 역시 내 돈이 아니니까 긁어도 실감이 안 나. 조금만 더 함부로 긁다가는 한 달에 2천만 원을 넘을 수도...]‘이혼'이라는 두 글자를 본 조유진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남초윤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조유진이 물었다.“육지율과 정말 이혼할 생각이야? 육씨 집안 그 할아버지가 내버려 둔대?”육지율의 할아버지는 비록 퇴직했지만 지위가 높고 권력이 있는 사람이다. 어떤 일이든 간섭하려고 결심하는 순간 매우 쉽게 손을 쓸 수 있다.남초윤은 불편을 토로했다.“할아버지 쪽에서는 아이 낳으라고만 재촉해. 다른 건 별로 연락하지 않아서 나도 몰라. 하지만 육지율 씨와 이혼하기로 약속했고 이미 승낙했어.”“진짜 잘 생각한 거 맞아? 홧김에 그냥 하는 말, 아니야?”남초윤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다시 얼버무리며 입을 열었다.“유진아, 네가 말해봐... 이혼을 준비하던 두 사람이 갑자기 또 뭐야, 이상한 짓을 해.”조유진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뭐, 뭐라고?”“그러니까... 응...”물을 마시던 조유진은 바로 사레가 들었다.“허허... 누가 먼저 한 거야?”어젯밤의 상황을 한참 동안 생각한 남초윤은 얼굴이 뜨거워 견딜 수 없었다.“그 사람이 제안한 거
그녀와 배현수는 결혼이라는 족쇄가 없다. 왕래가 적어도 자유롭다.남초윤과 육지율... 결혼이라는 울타리에 갇힌 두 마리 짐승처럼 뒤엉켜 기어 나오려 해도 주변에 가로막는 사람이 너무 많다.예를 들어, 남초윤의 부모님, 특히 남재원 같은 속물주의자들은 남초윤이 이혼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면 가장 먼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결혼은 하기는 쉬워도 끝내기는 어렵다.조유진이 물었다.“초윤아, 육지율 씨를 진짜 안 좋아해?”서재에서 전화를 걸고 있는 남초윤은 집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다. 인터뷰 원고를 정리하고 있어 휴대전화를 들고 있기가 불편해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집에 금방 도착한 육지율은 때마침 서재 앞에 다다랐을 때 스피커 폰으로 전해지는 조유진의 말소리를 들었다.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남초윤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확실히 육지율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녀의 사랑은 이미 5년 전에 김성혁과의 갑작스러운 헤어짐으로 완전히 사라졌다.그런데 육지율에게 조금도 마음이 없는지 묻는다면 그것 또한 바로 대답하기 어렵다.육지율의 훤칠한 얼굴... 얼굴을 심하게 보는 남초윤으로서는 싫어하기 힘들다.적어도 그를 배척하지 않는다.조유진은 남초윤이 대답하기 어려워하는 것을 알고 다시 물었다.“그럼 김성혁은? 마음속에 아직도 그 사람이 있는 거야?”조유진과 얘기할 때면 남초윤은 모든 것을 숨기지 않고 항상 솔직하게 털어놓는 편이다.“오랜 시간 거쳐 지은 빌딩 한 채가 순식간에 무너졌어. 내가 아무리 치우려고 해도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어. 아무리 원상복구를 하려고 해도 흔적들이 남아있겠지.”미세한 먼지들을 그녀는 한 번 또 한 번 쓸었다.하지만 좁은 구석마저 깨끗하게 청소하기가 어렵다.사랑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아예 깨끗이 지운 것은 아니다.조유진이 물었다.“그때 갑자기 떠난 게 말 못 할 사정이 있었다면 용서해 줄 거야?”남초윤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아무도 그녀에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없다.그래
전화를 거의 끊을 무렵 남초윤은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주의를 주었다.“배현수가 프러포즈한다면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거야. 나처럼 결혼이라는 울타리에 갇히면 나중에 벗어나려고 해도 힘들 테니까”이혼 숙려기간이 60일로 바뀌었다.결혼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한 가지 일이 들어가기 쉬워도 나오기 어려울 때, 경계심을 높여야 한다. 어쩌면 큰 수렁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조유진은 남초윤이 자신을 위해 이렇게 말한다는 것을 안다.“응, 알아. 네가 정말 육지율과 이혼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초윤아, 난 영원히 네 편이야.”그 말뜻을 남초윤은 알아들었다.남초윤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내가 가장 후회하지 않는 것이 너와 절친이 된 거야. 나를 낳은 부모님도 내 편이 아닌데 말이야. 유진아, 고마워.”“고맙긴, 너는 선유의 양어머니잖아. 나 혼자 임신했을 때도 같이 있어 줬고.”...전화를 끊은 후 남초윤은 잠시 서재에서 멍하니 있었다.인터뷰 기사에 실린 김성혁의 자료를 보는 눈빛에는 수심이 가득했다.피할 수 없는 과거라면 마주할 수밖에 없다.원고를 정리하고 기지개를 켜며 서재를 나왔다.서재 입구 대리석 바닥에 최신형 슬림 노트북이 놓여 있었다.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허리를 굽혀 노트북을 들었다. 별장 안을 둘러보았지만 육지율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아래층에서 진씨 아주머니가 저녁밥을 짓고 있다.노트북을 들고 2층 난간에 기대어 물었다.“아주머니, 지율 씨가 방금 다녀왔어요?”“도련님이요? 방금까지 여기 계셨는데 어느새 보이지 않네요. 사모님, 무슨 일로 도련님을 찾으세요?”“아, 아닙니다.”진씨 아주머니는 한약을 다 끓여놓고 2층을 올려다보며 말했다.“사모님, 한약 다 끓였는데 지금 드실래요, 아니면 나중에 드실래요?”남초윤은 어이없는 얼굴로 중얼거렸다.“또 한약이에요...?”진씨 아주머니는 시댁에서 보내온 하인이다. 하지만 다른 하인과는 신분이 다르다.진씨 아주머니는 육씨 집안 할아버지 쪽에서 보낸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