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조유진, 배현수만큼 강하지 않은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왜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려요? 만약 방해된다고 생각하면 직접 얘기해 주면 되잖아요. 내가 협조해서 한국을 떠날게요. 현수 씨가 없는 6년 동안 나 혼자서 선유와 양어머니를 모시고 잘 버텼어요! 배현수 씨, 조유진은 그렇게 강하지 않지만 생각보다 약하지도 않아요.”조유진은 하이톤으로 말했다.텅 빈 황폐한 공장 안에서 배현수의 고막을 찌르는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그녀는 마음속의 불쾌함을 한꺼번에 모두 소리쳤다.며칠 동안 가슴에 묵직하게 쌓여 있던 분노가 순식간에 폭발했다.마음 깊이 드리워졌던 그늘이 강풍에 휘날려 간 듯 마음속이 순간적으로 후련해졌다.화가 나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조유진은 마치 작은 짐승처럼 배현수를 노려보고 있다.배현수는 화를 내는 대신 피식 웃었다.“말 다 했어?”조유진의 강한 펀치가 그에게는 솜사탕처럼 가벼운 듯한 공격 같았다.배현수가 그녀의 가는 손목을 잡고 살짝 잡아당겼다. 그의 얇은 입술과 그녀의 입술이 닿을 듯 말 듯했다.조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거야?”“몇 번 더 물라고요?”조유진은 더 이상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입을 벌렸지만 움직이지 않았다.배현수는 피식 웃었다.“새끼 강아지, 왜 아직 안 물어?”“누가 강아지예요!”배현수는 큰 손으로 그녀의 귀밑에 있는 머리를 뒤로 넘겼다. 눈빛에는 사랑이 가득했다.“사람을 이렇게 무는데 강아지가 아니라고?”조유진은 그를 힐끗 쳐다봤다. 손을 뿌리치고 하이힐을 또각또각 밟으며 자리를 뜨려 했다.‘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하이힐이 바닥에 던져진 안경을 밟아 부쉈다.조유진은 깜짝 놀라 천천히 발을 떴다. 안경알은 이미 그녀의 하이힐에 깔려 산산조각이 났다...배현수는 눈을 살짝 치켜들며 물었다.“어떻게 배상할 거야?”조유진은 다급히 설명했다.“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칠흑같이 어두운 바람에 진짜로 앞을 똑똑히 보지 못했다.그런
폐허 공장을 나온 조유진은 배현수의 지팡이가 되어 그를 차로 데려갔다.배현수는 조수석에 앉았고 조유진이 운전했다.시내 거리를 지나던 조유진은 양쪽에 있는 가게들을 곁눈질로 계속 지켜봤다. 그러다가 안경원을 발견했다.“안경가게가 열려 있으니 안경을 새로 맞춰요.”그녀는 마침 주차할 자리를 찾으려던 참이었다.그러나 배현수가 거절했다.“나에게 네가 필요 없을 거라고 했잖아? 그런데 지금 저처럼 안 보이는 상태에서는 네가 너무 필요해.”안경을 맞출 필요가 있겠는가?그는 안경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조유진은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내 말은 서로를 믿는다는 뜻이에요. 안경 하나로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 그리고 오늘 밤 엄씨 사택으로 돌아가야 해요. 혼자 호텔에 안경도 쓰지 않고 있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배현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의 말을 끊었다.“같이 안 있어 줄 거야?”“내일 아침에 진주시로 출장 가야 해요. 어떻게 같이 있어요? 가서 안경 하나 맞춰요.”조유진은 운전대를 잡고 주차공간을 찾아 머리를 기웃거렸다.‘눈먼 멋쟁이'를 부축해 안경원에 도착해 점원에게 말했다.“지금 도수를 재서 제일 좋은 안경을 맞춰주세요.”도수를 잰 후 배현수를 이끌고 안경테를 고르기 시작했다.카운터 안에 각양각색의 안경테가 놓여 있다.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많았다. 조유진은 고개를 돌려 물었다.“어떤 스타일의 안경을 좋아해요?”“네가 골라준 거면 다 상관없어.”조유진은 일부러 가장 오버스러운 검은 테두리 안경을 고른 후, 점원에게 말했다.“언니, 이거 한번 해 볼게요.”점원은 커다란 검은 뿔테 안경테를 꺼내 조유진에게 건넸다.조유진은 또 배현수에게 안경테를 건네며 말했다.“한번 써봐요.”배현수는 안경을 받는 대신 얼굴을 숙였다.“네가 해줘.”눈이 침침한 것이지 손이 부러진 것은 아니지 않나?왜 갑자기 손까지 아픈 행세를 하는 것일까?방금까지만 해도 멀쩡하지 않았던가?하지만 아직 여독이 채 가시지 않은 걸 봐서 조유진은
조유진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그렇게 심각해요?”차를 몰던 조유진은 한 손을 들어 그의 이마를 짚었다. 아픈 줄 알았다.하지만 열이 나지 않았다. 아픈 것 같지는 않다.안경 하나 쓴 게 어지럽고 토할 정도라고?조유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안경이 안 좋은 것 아니에요? 가게로 돌아가서 물어볼까요? 아니면 다른 거로 다시 맞춰볼래요?”배현수는 바로 거절했다.“안경만 쓰면 어지러워.”조유진은 잠깐 생각에 잠긴 뒤 말했다.“그럼 그 전의 안경은요? 엊그제 계속 쓰고 있었잖아요. 불편해 보이지 않던데...”“그것도 어지러워. 이 정도는 아니었지만.”게다가 그것은 이미 조유진에 의해 밟혀 부서졌다.신라호텔에 도착한 후, 배현수는 머리가 어지럽다며 안경 쓰기를 꺼렸다. 조유진은 어쩔 수 없이 방까지 데려다줬다.방에 도착하자 배현수는 발을 들어 문을 걷어찼다.긴 팔을 올리더니 조유진의 잘록한 허리를 감싸 안았다. 뜨거운 호흡이 그녀의 귓가에 전해졌다.“내일 아침 꼭 진주시에 가야 해?”조유진은 솔직히 말했다.“엄 팀장님과 약속했어요. 아, 참. 엄 팀장님!”문득 백소미의 공격을 받은 엄명월이 떠올랐다. 지금 어떤 상황인지도 모른다.서둘러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엄명월에게 전화했다.그녀의 뒤에 있는 배현수는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이제는 엄명월 같은 하찮은 사람조차도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 같았다.조유진은 누군가 질투의 눈빛을 보내고 있는 것을 느꼈다.전화가 연결되자 바로 물었다.“엄 팀장님, 어디 다친 데 없어요?”엄명월은 전화기 너머로 울부짖었다.“나 지금 병원이에요. 환희 씨는요? 배 대표가 구하러 왔어요?”조유진의 자초지종을 들은 엄명월은 욕설을 퍼부었다.“미친, 백소미가 이렇게 손을 쓰다니! 방금 CT를 찍었는데 의사가 뇌진탕이라고 했어요!”“그렇게 심각해요? 지금 병원에 혼자 있어요?”“네! 왜요, 같이 있어 줄래요?”조유진은 무의식적으로 옆에 있는 남자를 쳐다봤다.침대 옆에 앉아 있는 배현수
이날 밤,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다.엄청난 정보량에 조유진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배현수는 그녀를 노려봤다. 그녀가 말하지 않으면 오늘 밤은 절대 떠날 수 없다.조유진은 산만한 표정을 거두며 진지하게 말했다.“우리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다시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그 말이 입 밖에 나오자 남자의 미간이 눈에 띄게 찌푸려졌다.조유진은 그가 오해할까 봐 얼른 한마디 보탰다.“배현수 씨,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그동안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7년 동안이라는 공백 기간이 있었어요. 우리 서로 다시 알아갈 필요가 있어요. 서로 잘 모르면 앞으로도 신뢰 문제로 관계가 무너질 수 있어요.”그녀의 말뜻을 알고 난 배현수의 안색은 한결 좋아졌다.그녀가 헤어지고 싶은 마음이 아니고 그를 피하고 싶은 마음도 아니라면... 그에게 기회만 준다면 어떻든 다 좋다.하지만 배현수란 사람은 하나면 하나, 둘이면 둘, 모든 것을 확실하게 하고 싶었다. “그럼 시간이 얼마나 더 필요한데? 하룻밤이면 충분해?”말문이 막힌 조유진은 피식 웃었다.“내 말은 평범한 친구들처럼 만나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신뢰를 쌓아가자는 얘기예요.”평범한 친구?이 한 마디는 마치 누군가의 심기를 크게 건드린 것 같다.남자의 얼굴이 다시 차갑게 굳어졌다.“지금 너에게 나는 그저 평범한 친구야?”조유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배현수는 그녀를 품에 안더니 허리를 잡았다.“다른 친구들과도 이렇게 안고 키스해?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강압적이었다.“유진아, 너에게 평범한 친구가 몇 명 있는데?”조유진은 그를 올려다봤다. 입가는 분명히 웃고 있었지만 실수로 듣기 싫은 말을 한다면 오늘 밤 무사하지 못할 것 같았다.그녀는 피식 헛웃음을 지었다.“아이고, 평범한 친구 한 명뿐이에요.”배현수는 장난 어린 얼굴로 그녀를 노려봤다.“엄창민은?”“가족이죠, 의남매?”“그럼 엄명월은 또 어떻게 된 거지?”“마찬가지이죠. 의자매.”그러자 배현수가 또
“네! 아가씨, 조심히 오세요.”조유진이 방금 전화를 끊자마자 목덜미가 갑자기 따끔거렸다.배현수가 그녀를 모질게 깨물었다.조유진은 너무 아파 한마디 물었다.“왜 물어요?”“나더러 큰 개라고 욕한 거 아니야? 큰 개가 몇 입 무는데 그게 어때서?”조유진은 아랫입술을 달싹였다.“너무 아파요.”배현수는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그럼 너도 물어. 강아지야, 다른 데로 물래?”혀를 깨물고 목을 깨무는 것은 더 이상 재미가 없다.그윽한 그의 눈빛은 확실히 무엇인가 말하고 있었다.단번에 알아차린 조유진은 바로 귀가 뜨거워졌다.하지만 못 알아듣는 척했다.“누가 강아지예요?”“그럼 누가 큰 개인데?”조유진이 그를 밀치며 말머리를 돌렸다.“도 집사가 집에 오라고 계속 재촉해요. 더 늦으면 아빠가 의심하실 거예요.”배현수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유진아, 내가 그렇게 떳떳하지 못해?”서른 살이 다 되었지만 아직도 부모를 속이고 연애를 해야 한단 말인가?조유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아빠가 아직 현수 씨를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그리고... 전에 나도 여기에 떳떳하게 온 것은 아니잖아요.”지금도 인터넷에서는 조햇살이 배현수와 송인아와의 ‘커플' 사이에 끼어들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이 말에 배현수의 표정이 오히려 굳어졌다.조유진은 그가 화난 줄 알았다.그런데 갑자기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그건 내가 잘못했어. 내일 아침 일찍 서정호더러 홍보팀 사람들에게 너와 나의 관계를 밝히라고 통보할게.”“싫어요.”조유진이 단호하게 거절했다.배현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왜 싫은데?”조유진은 다른 생각이 있었다.“지금 저의 평판이 너무 안 좋아요.”“상관없어.”그는 한번도 이런 것에 신경 쓴 적이 없다.평판이 썩어 있다 해도 그게 조유진이라면 상관없었다.조유진은 심호흡한 후 말했다.“신경 쓰지 않는 건 알아요. 하지만 내가 신경 쓰여요. 이렇게 많은 일을 겪으면서 저도 알게 되었어요. 원래는 진주시에서 출장 다녀온 다음에
배현수는 감정 기복이 없는 담백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눈을 감은 순간, 조유진은 흐릿한 빛 속에서 그의 눈꼬리가 살짝 붉어진 것을 분명히 보았다.그는 양복 바짓가랑이에 드리운 손을 가볍게 떨었다.조유진도 그것을 발견했다.우울증에 걸린 적이 있는 조유진은 이런 반응에 대해 잘 알고 있다.신체화 증상.배현수가 오랫동안 경계선 인격장애를 앓고 있었던 것을 알고 있다.배현수가 송지연에게서 4년 가까이 경계선 인격장애 치료를 받았다는 말을 서정호에게 들은 적이 있다. 출소 후 줄곧 치료를 받았지만 효과가 없었다고 했다.조유진이 물었다.“미칠 뻔했는데 왜 보름 넘게 연락이 없었는데요?”침을 꿀꺽 삼킨 배현수는 감정을 가까스로 누르며 말했다.“처음에는 살 수 없을 줄 알았어. 몸에 독이 너무 오래 쌓여 실명했어. 원래는 완전히 회복된 후 다시 성남으로 널 만나러 오고 싶었지만 성행 그룹에서 약혼 파기 기사를 내면서 더 이상 너를 달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조유진은 어이가 없었다.“백소미 씨가 중독 사실을 말하지 않았더라면 언제 나에게 말할 생각이었는데요?”“말했잖아. 동정은 싫다고. 불쌍히 여기는 것도 싫어. 중독으로 나에게 시집와 달라고 강요하고 싶지 않아. 네가 내킬 때 나와 결혼해 주기를 바랐어. 배현수라는 사람을 평생을 믿고 맡길 수 있다고 생각이 들 때 나와 결혼해 주길 바랐어. 해독약으로 어르신을 구한 은혜를 갚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진아, 그런 연민은 필요 없어. 만약 나에게 그 어떤 감정이 있다면 그저 순수하고 진한 사랑이었으면 좋겠어.”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아주 평온했다.깊은 눈빛이었지만 끝없는 그리움이 끓어오르고 있었다.이번에 그들은 보름 넘게 만나지 못했다. 사실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다.하지만 배현수에게는 또 한 번의 생이별이었다.살 수 있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719부대에 숨어 있는 동안 매일 눈을 뜨는 것은 새로운 재난의 시작과 다름없었다.조유진은 몰랐다. 다시 살아서 성남에 왔고
“그리고 해독제를 얻기 위해서였다 하더라도 나를 숨기고 다른 사람과 가짜 약혼한 것을 용서할 수 없어요...”그녀는 증오스러운 말투로 한바탕 욕을 퍼부었다.배현수는 그녀의 허리를 껴안고 몸을 살짝 숙여 귓불에 입을 맞췄다.“잘못했어.”조유진은 멍하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뭘 잘못했는데요?”배현수는 검은 눈망울에 옅은 웃음을 머금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내가 다 잘못했어.”조유진은 마음이 살짝 내려앉았지만 입으로는 계속 경고를 퍼부었다.“앞으로 계속 그러면 진짜 안 봐줄 거예요. 사과해도 소용없어요.”“앞으로 안 그럴게.”조유진이 뭐라고 하면 배현수는 다 받아줬다.그녀를 보는 눈에는 사랑이 가득 담겨있었다.배현수는 그녀를 한참이나 안고 있었다. 하지만 그저 안고 있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그러던 중 도 집사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시간이 확실히 늦긴 했다.벌써 새벽이 다 되어갔다.아직 혼인신고 전이라 어른들이 보기에 이치에 맞지 않았다.미래를 생각해 배현수는 그녀를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시간이 늦었어. 너 혼자 운전하면 내 마음이 안 놓일 것 같아. 나와 서정호가 너를 데려다줄까?”시력에 문제가 있는 배현수는 운전할 수 없다. 그렇지만 않았어도 혼자 그녀를 데려다줬을 것이다.조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내일 아침에 나 진주시로 출장을 가면 몸조리 잘해요.”배현수는 피식 웃더니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무 무정해. 이렇게까지 말하면 마음이 약해서 같이 있어 줄 줄 알았어.”조유진도 사실 미안했다.“엄 팀장이 늘 나더러 가서 사모님 노릇이나 하라고 그래요. 엄 팀장님과 진주시로 출장 가기로 약속만 하지 않았다면 여기 있었을 거예요. 안 그러면 회사 내에서 또 말이 많을 거예요. 성행에 놀러 왔다느니 며칠 후면 대제주시로 시집갈 거라느니, 만약 몇 명의 대주주가 진짜로 내가 언제든지 도망가리라 생각한다면 분명 나를 지지하지 않을 거예요. 게다가.... 만약 이번에 진주시로 출장 가지 않으면 엄명
배현수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눈빛에는 가슴 아픈 기색이 역력했다.“두리안 위에 무릎 꿇은 것쯤이야 무슨 대수겠어.”오늘 밤 그녀를 여러 번 안았다.그녀의 사타구니에 튀어나온 뼈를 여러 번 만졌다.원래부터 마른 조유진이었지만 보름 넘게 만나지 못한 사이 더 말랐다는 느낌이 들었다.대학에 다닐 때, 그녀의 체중이 45킬로에서 48킬로 사이였던 것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그때 48킬로만 되어도 다이어트를 한다며 소란을 피웠다.168의 키에 50킬로도 안되는 사람이 어떻게 뚱뚱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조유진이 방송과였기에 배현수도 자주 그 과에 갔다. 아마 예술과 관련된 과였고 앞으로 진행자가 되려면 TV에 예쁘게 나와야 해서 그 과의 여자애들은 뚱뚱하지 않아도 늘 살을 빼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다른 사람이 살을 빼든 말든 그는 상관할 바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하지만 조유진의 다이어트는 절대 허락할 수 없었다.조유진이 다이어트를 한다고 할 때마다 일부러 맛있는 음식을 잔뜩 챙겨오며 유혹했다.그런데 지금, 그의 품에 있는 그는 너무 가벼웠다. 45킬로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그녀를 안는 것조차 힘을 줄 수 없었다. 혹시라도 아플까 봐...스위스에서 혼자 유산을 겪으면서 얼마나 아팠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그녀에게 그 무엇이든 보상하고 싶었다.배현수는 팔로 그녀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특별히 갖고 싶은 것이 있어?”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조유진은 그의 넥타이를 손가락에 감으며 말했다.“하늘의 별이라도 괜찮아요?”사실 조유진은 순간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지 못해 헛소리했을 뿐이다.하지만 배현수는 바로 대답했다.“응, 조유진이 열여덟 살 때 배현수가 약속했지. 원하는 것을 다 주겠다고.”그게 설령 하늘의 별이라도.이 말은 약속이자 사랑이었다.하지만 조유진은 왠지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여러 해 동안 두 사람은 이별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그렇게 몇 번이나 많은 일들을 겪었다. 그 말을 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