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준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뭐가 아닌데? 환희가 비록 내 친딸이기는 하지만 회사에서는 명월이 확실히 선배야. 명월이 환희에게 회사 업무를 숙지시키는데 무슨 문제가 있어?”엄명월은 본질적인 성격이 나쁘지는 않지만 일을 하는 데 급급하고 늘 지름길만 택했다.엄창민은 이런 엄명월을 잘 알고 있었다. 조유진이 엄명월 곁에 있으면 분명 괴롭힘을 당할 것이다.엄창민이 돌려 말했다.“회사 업무는 저도 잘 아니까 환희는 제가 가르칠까요?”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엄명월은 팔짱을 낀 채 피식 웃었다.“벌써 마음이 아픈 거야? 아버지, 오빠가 이러니 엄환희에게 무엇을 가르치겠어요? 물론 굳이 본인이 가르치고 싶어 하면 저도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어요.”어쨌든 엄명월의 눈에 조유진은 온실 속의 화초나 다름없었다. 밖에서 갖은 고생을 겪은 엄명월에게는 이런 조유진이 아니꼬울 뿐이었다. 배현수에게 시집가 사모님 생활을 하는 것이 조유진에게 제일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엄준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조유진을 바라보며 물었다.“환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해?”“창민 오빠와는 너무 친해서 내가 정말로 뭘 잘못해도 오빠가 저를 욕하지 못할 거예요. 명월 씨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니까 제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요.”이렇게 대범한 말에 엄명월은 잠시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체면 때문에 티를 낼 수 없었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미리 말하는데 나는 둔한 사람을 싫어해요. 성격도 아주 나쁘고요. 욕도 자주 하고...”조유진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알고 있어요. 저도 공과 사는 구분해요.”“그래요. 그때 가서 울면서 아버지께 일러바치지 마세요.”엄명월은 여전히 도도한 태도였지만 일단은 조유진을 데리고 성행 그룹에 들어가 회사 일을 가르쳐주는 것을 받아들였다.하지만 그녀가 조유진을 옆에 둔 것은 엄준의 체면 때문도 아니고 선한 마음 때문도 아니다.조유진이 비즈니스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저녁을 먹은
“일단 몸부터 잘 추슬러. 명월이 옆에 있으면 업무 강도가 너무 높아. 체력이 없으면 따라가다가 지쳐 쓰러질 거야.”조유진은 알겠다고 대답했다. 엄준은 진지한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명월이와 창민이는 모두 좋은 무기를 가지고 있어. 명월은 예리하고 창민은 도끼 같은 사람이야. 환희야, 그들을 잘 이해해. 성격을 잘 파악하고 그들을 어떻게 이용할지 배워. 특히 명월이에게서 리더가 되는 법을 배우면 앞으로 네가 성행 그룹을 맡게 되면 많이 쉬울 거야.”조유진은 잠시 멍해졌다.이 말은 어디서 들은 것 같다.배현수도 스위스에 있을 때 그녀에게 비슷한 말을 했다.임원이 되려면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고 세력을 통제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업무 능력보다 더 중요하다고...엄준은 조유진이 넋을 놓고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무슨 생각하는 거야?”조유진은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아빠, 엄명월이라는 사람에 대해 얘기해 주세요. 저와 별로 접촉이 없어서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요. 욕먹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옆에서 일할 때 계속 욕먹으면서 하고 싶지 않아요.”“그래.”...조유진은 몸조리하는 동안 성행 그룹의 기본과 발전사, 사업구조에 대해 파악했다.선유는 성남에 있으면서 공부도 빼놓지 않았다.엄준 엄창민에게 과외 선생님을 찾으라고 시켰다. 그러다 보니 녀석이 받아야 할 수업도 한두 개가 아니었다.조유진은 선유와 함께 공부했다.일이 있어서 그런지 시간이 아주 빨리 지나갔다.또 일주일이 지났다.어느 날 트위터에 이슈가 터졌다.성행 그룹의 공식 계정에서 게재한 기사였다.[SY그룹 배현수와 엄씨 집안 외동딸 엄환희의 약혼은 가짜! 부디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스캔들을 반박하는 소식이 발표되자 트위터는 순식간에 폭발했다.네티즌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뭐라고? 전에 약혼 소식을 그렇게 떠들썩하게 내놓고 계속 그 얘기 하고 있었는데! 다른 기자들도 기사 다 썼다고 그러던데 인제 와서 가짜라고?”“우리에게 장난하는 거야, 뭐야! 두 그룹에
송하진은 휴대전화를 들고 이미 뜨거운 감자가 된 트위터 내용을 보여주며 말했다.“나쁜 소식은 바로...”“성행 그룹 공식 계정에서 뉴스가 가짜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했어요. 배현수 씨와 엄씨 집안의 외동딸 약혼 소식이 가짜라고요!”배현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하지만 확실히 나쁜 소식이다.엄환희가 바로 조유진이다.조유진이 가장 결혼하고 싶어 할 때, 그는 여러 번 그녀를 속였고 떳떳한 신분을 주지 않았다.스위스 대성당에서의 프러포즈도 조유진이 먼저 했다.이제 친딸을 찾은 엄준은 당연히 조유진을 위해 나설 수밖에 없다.이번에도 조유진과 결혼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그럼 좋은 소식은요?”송하진은 그를 힐끗 쳐다보더니 장난기 섞인 어조로 말했다.“좋은 소식은 조유진이 바로 엄환희라는 거예요. 엄환희가 약혼을 취소했다는 것은 조유진이 배현수 씨와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죠!”배현수의 얼굴이 싸늘해졌다.“웃겨요?”“아니요. 웃기지 않다.사실... 정말 슬픈 일이다.송하진은 웃음을 참았다. 조유진의 일로 그와 장난을 친다는 것이 그의 심기를 건드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배현수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시X, 적당히 좀 해!”송하진은 그제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좋은 소식은 배현수 씨의 몸에 남은 독이 거의 다 제거되어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거예요. 눈은 내일쯤 거즈를 벗길 수 있어요. 하지만... 시력이 한동안 흐려서 정상 시력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물건만 보이면 돼요.”무언가를 깨달은 송하진은 갑자기 경악했다.“이 상태로 아내 찾으러 성남으로 가려고요?”배현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뭐가 문제죠?”“오, 나의 형제님. 지금은 너무 조급해요! 지금 시력은 약시예요! 그런데 배현수 씨는 방금 드래곤 파의 중요한 거점을 파괴했어요. 만약 그들이 계속해서 킬러를 시켜 복수할 기회를 노린다면 어떻게 스스로를 보호할 건데요? 내가 봤을 때, 시력을 회복할 때
“네, 감사합니다.”구 한의사가 돌아간 후, 엄준은 조유진을 보며 말했다. “내일 급하게 그룹에 출근할 필요 없어. 몸조리 좀 더 해. 건강이야말로 근본적인 본전이니까.”하지만 조유진은 거부했다.“엄명월 씨와 이미 약속했어요. 안 가겠다고 하면 저에 대한 인상이 안 좋아질 거예요. 회사에 놀러 온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조유진의 걱정도 일리가 있었다.엄준도 더 이상 말을 아꼈다.“어떤 일이 있어도 혼자 짊어지려 하지 마. 나는 너의 아버지야. 내가 살아 있는 한평생 너의 편이 되어줄게.”마음이 든든해진 조유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인생의 제일 밑바닥에 있을 때마다 항상 함께 해주셔서 힘이 되는 것 같아요.”바다에 뛰어들었을 때나 지금 유산을 겪은 후나 곁에 늘 엄준이 있었다.엄준은 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아빠가 오늘 회사 홍보팀에 배현수와의 약혼 소식은 사실이 아니라고 기사를 내라고 했어. 내 탓 하지 않지?”조유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그 약혼 기사는 처음부터 저와 낸 게 아니잖아요. 정정하는 게 당연한 도리고요. 그건 그렇고 아빠, 당분간 저의 신분을 외부에 비밀로 하면 안 될까요?”엄준은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이 일에 대해 다른 생각이 있는 거야?”사실 엄창민에게 언론과 연락을 취하라고 진작 얘기했다. 다음 주에 기자회견을 열어 그녀의 신원을 밝힐 예정이었다.조유진은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말했다.“아시다시피 예전에 위증한 적도 있고 나중에 법원에 가서 진술을 번복했지만 인터넷에서 평판이 매우 좋지 않아요. 만약 아빠의 친딸이라고 공개하면 성행 그룹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성행 그룹이 저 때문에...”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준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환희야, 어떤 일이 있었든 네가 내 친딸이라는 사실은 바꿀 수 없어. 위증했다고 해서 아빠가 너를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고. 네가 인터넷에서 평판이 나쁘다고 해서 너와 관계를 끊을 수도 없어. 그동안 배현수가 SY 주식
빨간색 페라리는 교외의 한 골프장 입구에 정차했다.엄명월은 선글라스를 벗더니 에르메스 종이봉투를 조유진에게 던졌다.“들고 내려요.”조유진도 시키는 대로 할 뿐 묻지 않았다.엄명월을 따라 골프장으로 들어갔다.“참, 골프 칠 줄 알아요?”“조금요.”옛날 조범의 집에 있을 때 그는 조유진을 좋은 ‘도구’로 키우기 위해서 부자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배우게 했다. 바이올린, 승마, 골프... 그러다 보니 조유진도 조금씩은 다 할 줄 알았다.“조금이 어느 정도인데요?”조유진이 대답했다.“홀인원 정도?”이게 조금이라고?이것은 조금 많이 아는 거겠지!엄명월은 깜짝 놀라는 얼굴이었다. 눈빛이 반짝이더니 의외라는 듯한 모습으로 말했다.“이따가 솜씨 좀 보여줘요. 이 고객은 골프를 아주 좋아해요. 요리도 좋아하고 노는 타입이죠.”조유진은 고개를 끄덕인 후 물었다.“이 고객과 무슨 사업을 할 건데요?”“성행 그룹은 처음에 건축자재로 시작했어요. 부동산 시장이 급부상하면서 남쪽의 부동산 업자들이 필요로 하는 건축자재를 성행이 거의 독점으로 공급하다시피 했죠. 지난 2년 동안 부동산 개발 속도가 느려지면서 성행 그룹은 주로 에너지 및 리조트 호텔 프로젝트에 투자했어요. 얼마 전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건축자재 관련 협력업체들이 모두 떠나갔죠. 지금 건축자재가 성행 그룹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사업은 아니지만 아버지는 물론 성행 그룹 임원들도 이 사업은 포기하고 싶지 않아 하죠. 오늘 만날 이 고객은 하민 건설의 구매 부서 책임자예요. 하민 건설은 얼마 전에 성남에 부동산 프로젝트를 하러 왔어요. 고급 주택 3개를 건설하려면 대량의 건축 자재가 필요해요.”조유진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엄명월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더니 한마디 귀띔했다.“아무튼 먼저 술자리에 앉혀놓고 얘기해요. 술자리에 앉혀야만 오래 얘기할 수 있고 그래야 일 얘기도 할 수 있으니까. 술을 마실 줄 알아요?”“조금밖에 못 마셔요.”“잘 마신다는 뜻이에요?”조유진은
장 주임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엄 팀장, 이런 행동은 매우 위험해요. 이거 혹시 뇌물인가요?”엄명월은 웃으며 말했다.“제가 감히 그럴 수 있겠어요? 그냥 가방일 뿐이에요. 명함과 가방은 여기 둘게요. 잊지 말고 가져가세요.”눈치 빠른 조유진은 명함을 바로 에르메스 종이봉투에 집어넣었다.장 주임은 이런 작은 행동들을 모두 보았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엄명월은 손을 뻗어 귀밑에 곱슬머리를 쓸어넘기더니 웃으며 말했다.“장 주임님, 성남에 오신 지 얼마 안 돼서 맛있는 음식을 잘 모르시죠? 신라 호텔에 성남의 야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 자리를 예약해 뒀어요. 저희와 같이 가서 저녁 먹으면서 이야기 나눌까요?”“아이고! 또 안 들어갔어!장 주임은 엄명월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이 샷이 홀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이를 본 조유진은 한쪽에 있는 골프채를 들어 팔을 휘둘러 바로 홀인원을 했다.장 주임은 어리둥절해졌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여자애가 홀인원이라니?조유진은 입꼬리를 올리더니 캐디가 고개를 숙이고 공을 줍는 틈을 타서 손에 든 골프채를 내려놓으며 박수를 쳤다.“장 주임님, 대단하십니다. 홀인원! 오늘 캐디가 팁을 받겠네요.”엄명월도 덩달아 박수를 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장 주임님, 대단하십니다! 사진 한 장 찍어드릴게요. 스토리에 꼭 올려주세요. 오늘 홀인원의 멋진 장면!”장 주임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다들... 보셨나요?”“네, 봤습니다.”“네, 봤습니다.”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두 젊은 아가씨가 그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홀인원은 평생 한 번으로도 족하다!이 기세를 몰아 조유진은 생수 뚜껑을 따서 건네며 말했다.“장 주임님, 골프 치느라 지치셨죠. 물 좀 드세요.”약간 얼떨떨해진 장 주임은 말없이 생수병을 받아들었다. 앞에 있는 두 계집애를 바라보며 그저 멍해졌다.이런 수단이 너무... 체면을 구기는 것은 아닐까
어느 정도 술이 오간 후, 엄명월은 직접 장 주임에게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장 주임님, 오늘 얘기가 이렇게 잘 통하는 김에 계약서까지 가지고 왔어요. 보세요. 우리...”장 주임은 우유부단한 얼굴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엄 팀장, 이 일은 저 혼자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성행 그룹의 견적이 확실히 좀 높아요. 아무래도 비즈니스다 보니... 하지만 대범한 엄 팀장이니까 이 계약이 성사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의 우정은 남아 있는 거예요. 다음에 다시 이야기합시다. 다음에 이야기합시다.”이 말은 분명 예의를 차리는 인사말이었다.그러나 엄명월은 굳은 표정을 짓기는커녕 오히려 미소를 짓더니 더 적극적으로 말했다.“성행 그룹에서 건축자재 가격을 조금 높게 부른 것은 사실이지만 저희 물건은 품질이 확실히 좋습니다. 보온 층 재료만 놓고 봐도 그래요. 그 뭐지… 더한인가? 비록 가격은 낮지만 물건의 품질은 우리 것과 전혀 비교할 수 없어요.”더한은 성남의 또 다른 건축 자재 기업이다.성행 그룹이 에너지와 같은 신흥 분야에 집중한 지난 2년 동안 더한은 품질이 좋으면서도 저렴한 건축자재로 성남의 일부 건축 자재 시장을 빠르게 점유했다.일부 기업은 처음에는 더한이 커진 다음에 공격하려 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강해져 나중에 처리하기가 어려워졌다.더한의 급부상은 성행 그룹에 교훈을 주었다.자금력과 자질이 최상위에 있더라도 아래에서 물불 가리지 않고 행동하는 동종 업계 종사자들을 주의해야 했다. 가만히 내버려 뒀다가 세력이 진짜로 만만치 않게 되기 때문이다.하지만 장 주임은 분명 엄명월의 이 말을 듣지 않았다.그는 조유진을 끌어당기며 말했다.“밥상 앞에서는 사업 얘기 하지 마시죠. 골프 얘기 계속해요. 엄환희 씨, 다음에 우리 약속 잡고 홀인원 한 번 더 갑시다!”조유진은 두 손으로 잔을 들어 공손히 건배하며 말했다.“장 주임님, 원샷하겠습니다!”“시원시원해서 좋네요.”엄명월은 협상이 달성되지 않자 조유진과 시선을 마주쳤다
조유진의 프로필을 누르니 스토리에 올린 사진 한 장이 보였다.사진에는 골프장에서 쿨하게 스윙하는 낯선 남자의 뒷모습이 담겨 있었다.그 밑에는 한 마디 문구가 적혀 있었다.[대박! 홀인원!]조유진이 배현수의 전화를 끊었던 그 시간에 바로 이 남자와 함께 공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전화를 받기 불편했을까?대박?그녀의 말투는 마치 어린 팬 같았다.배현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눈빛은 조금씩 차가워졌다.서정호가 백미러로 힐끗 쳐다봤다. 배 대표 얼굴이 얼어붙을 듯했다.“배 대표님, 조유진 씨에게 한 번 더 전화해볼까요? 아마 손이 미끄러 실수로 끊었을 겁니다.”서정호는 핑곗거리를 찾았다.울분을 가라앉힌 배현수는 다시 조유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번에 조유진은 전화를 끊지 않았다.차가운 기계적인 통화연결음이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지금 거신 전화기는 꺼져있으므로 잠시 후에 다시 걸어 주십시오...”휴대전화를 들고 있는 배현수는 잠시 멍해졌다.서정호는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보더니 머뭇거리며 말했다.“아직도 안 받나요?”“전화기가 꺼졌어.”서정호는 어떻게든 핑곗거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혹시 드래곤 파 사람들에게 잡혀간 거 아닐까요? 세상에! 조유진 씨가 지금 위험에 처한 것은 아니겠죠?”어설프고 황당하기 그지없는 이유였다.배현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드래곤 파에 잡혔는데 골프를 치고 있겠어?”서정호는 헛웃음을 지었다.“하긴, 그렇기는 하네요... 아마 휴대폰 배터리가 다 되었나 봐요! 오죽하면 전화기가 꺼졌을까 하하하...”차 안 분위기가 어색해졌다.검은 벤틀리 한 대가 그들 차 옆을 지나갔다.서정호는 눈빛을 반짝였다.“배 대표님, 엄씨 집안 차 같은데 조유진 씨가 돌아왔나 봐요.”...조유진과 엄명월은 저녁에 술을 마셨다.엄창민이 두 사람을 마중하러 갔다.엄씨 사택에 도착한 후, 엄창민은 차에서 내려 뒷좌석 문을 열고 조유진을 부축해 들어왔다.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엄명월에게 말했다.“알코올 알레르기가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