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 엄씨 사택.엄씨 가문에는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그 사람은 바로 엄준의 친딸 백소미였다.엄준은 셰프에게 백소미를 맞이할 수 있도록 한상차림을 준비하라고 했다.저녁 식사 자리에는 조유진과 엄창민도 참석했다.엄준은 기쁜 마음에 잔을 들더니 말했다.“자. 소미가 돌아온 것을 축하하는 의미로 한잔하지.”사람들은 다 같이 축배를 들었다.엄준은 백소미와 몇 마디 나누더니 조유진을 바라보았다.“최근에 환희 바이올린 연주 실력이 대단하다고 들었어.”조유진은 겸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조금은 할 줄 알아요.”백소미는 엄씨 가문에 오기 전에 가족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왔기 때문에 살짝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전에 인터넷에서 조햇살 씨가 바이올린 연주하는 동영상을 보게 되었어요. 엄청나게 잘하시던데요? 아빠, 전에 ‘골든 스틸’을 좋아하신다고 하지 않았어요? 오늘 밤 분위기도 좋은데 유진 씨 저희를 위해 연주해 줄 수 있을까요?”엄준은 아내 신희수가 죽은 뒤로 옛 기억이 떠오를가봐 연주회도 관람하지 않아 ‘골든 스틸’을 들을 기회가 없었다.그는 기대가 가득 찬 눈빛으로 조유진을 바라보았다.“환희야, 가능하다면 한 곡 부탁드릴게.”오늘은 친딸도 돌아오고, 수양아들 수양딸도 한자리에 함께해서 와인도 마셨겠다 아주 기분 좋은 상태였다.조유진은 분위기를 깨기 싫어서 이렇게 말했다.“그러면 부끄러운 실력이지만 한 곡 연주해 보겠습니다. 못해도 웃으시면 안 돼요.”엄준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는지 그녀를 부드럽게 바라보더니 말했다.“도 집사, 사모님 바이올린 가져와 봐.”“사모님 바이올린이요?”도 집사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특별제작한 그 바이올린은 신희수가 남긴 유물이었다. 살아생전 이 바이올린으로 자주 엄준에게 ‘골든 스틸’을 연주해 주었기 때문에 아무도 못 만지게 할 정도로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물건이었다.‘그거를 조유진 씨한테 준다고?’“맞아. 환희가 연주할 수 있게 가져와 봐. 특별제작한 거라 음색이 아주 좋거든.”이 순
문제 있을 리가 없었다.세상에 비슷한 사람이 많다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그저 엄준과 조유진이 인연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었다.엄준은 혼이 빠져나간 듯 조유진을 쳐다보고 있었다.“그러게, 너무 닮았어...”아름다운 선율이 클라이맥스에 달했을 때, 끼익 소리와 함께 현이 하나 끊어지면서 노랫소리가 그만 멈추고 말았다.도 집사는 그만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현이 끊어졌다는 건 좋은 징조가 아닌데...’“어르신, 이거...”엄준이 손을 저었다.“괜찮아. 몇 해 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그래. 현도 정기적으로 점검을 해야 하는데 시간이 오래돼서 끊기는 것도 정상이야. 다시 새로 교체하면 돼. 아무것도 아니야.”조유진이 사과했다.“저 때문에 끊어졌으니 교체하는 것은 저한테 맡겨주세요.”“그래. 이 바이올린 환희한테 어울리는 것 같은데 마음에 들면 내가 선물해 주고 싶어.”엄준이 아무렇지 않게 한 말에 사람들은 놀라고 말았다.조유진은 이 선물을 받을 수가 없었다.“아버지. 너무 소중한 물건이라 받을 수가 없어요.”이 바이올린은 조유진한테는 그저 평범한 바이올린뿐이었지만 신희수의 유물이라 엄준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엄준은 담담하게 웃으면서 말했다.“예전에는 먼지가 쌓일가봐 계속 옷장에 넣어두고 있었어. 그런데 바이올린은 연주하라고 만들어진 거잖아. 계속 옷장에 있어봤자 빛을 발하지 못해. 몇 해 동안 사용하지 않았더니 바로 끊어지는 거 봐. 예술은 계승해야 한다고 부모님께서 말씀하셨다며. 아무도 사용하지 않으면 그냥 무용지물이 되는 거야. 받아. 소중한 물건이라고 생각되면 나한테 자주 연주해 줘.”엄창민이 말했다.“환희야, 받아. 아버지께서 큰맘 먹고 선물하는 건데 안 받으면 속상해하실 거야.”엄준은 엄창민을 가리키더니 소리 내 웃었다.“그동안 옆에 데리고 다닌 보람이 있네. 역시 창민이가 나를 가장 잘 알아.”엄준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조유진도 더는 거절하지 않고 기꺼이 받았다.“아버지, 저 이 바이
백소미는 엄준을 방까지 모셔다드리고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핸드폰이 울려 발신자 번호를 봤더니 모르는 번호였다.“여보세요, 보스님.”상대방은 변조된 목소리로 통화했다.“일은 잘 진행되고 있나?”“네.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이미 한 달도 지났는데 엄씨 가문에서는 언제 너의 신분을 밝히는 거야?”백소미는 미간을 찌푸렸다.“지금은 아직 엄준의 신임을 받지 못한 상황입니다. 보스님, 저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전화기 너머 남자의 말투는 아주 단호했다.“그러니까, 일이 잘 진행되고 있다더니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네?”“엄준이 수양딸로 받아들인 조유진을 많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엄씨 가문에 들어왔어도 엄환희의 신분은 계속 조유진이 사용하고 있습니다.”“만약 조유진이 우리의 계획을 방해하고 있다면 없애버려도 좋아.”“네, 알겠습니다. 보스님.”“빨리 성행 그룹에 입사해서 결정적 업무를 받아야 해. 나는 네가 엄씨 가문의 신임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만한 인내심이 없다는 거 잘 알잖아.”“그러면 엄창민은...”전화기 너머의 남자가 악독하게 말했다.“방해되는 자는 모조리 죽여버려!”“...네.”“그리고 등 뒤에 있는 몽고반점 언제나 명심해. 엄씨 가문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경계심을 품고 있을 거야.”“알겠습니다.”백소미는 통화를 마치고 통화기록을 지워버렸다.옷을 벗어 거울을 통해 등 뒤를 확인했더니 멍든 자국이 아직 남아있었다.며칠 후 멍 자국이 없어지면 다시 부딪혀 보기로 했다....대제주시 반얀트리 호텔.하나의 검은 그림자가 창문을 통해 침입했다.“보스님, 조유진이 엄준의 친딸일 수도 있습니다. 계속 살려둘까요?”“아니, 죽여버려.”똑 똑 똑.말이 끝나자마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방 안에 있던 사람은 표정이 확 바뀌더니 말했다.“일단 가봐.”“네.”침입자는 다시 귀신처럼 창문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갔다.단 몇 초 사이, 스위트 룸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문밖
“그렇게나 빨리? 대제주시에서 볼 일은 다 끝났어?”“그건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야. 네 주인인 내가 어디 가면 그냥 따라오면 돼.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그래요, 주인님.”하지만 성남으로 돌아가기 전, 두 사람의 목숨부터 해결하기로 했다.‘조유진이 죽으면 엄준이 슬퍼할지 모르겠네. 아쉽네, 곧 죽게 되는 마당에 자기 친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니.’...다음 날 오후 6시.엄창민은 말끔한 정장을 입고 조수석 문을 열었다.“연주회 저녁 8시에 시작해서 10시에 끝나니까 먼저 저녁부터 먹자. 아니면 2시간 동안 배고플 거야.”“그래요, 간단히 아무거나 먹죠.”조유진이 차에 올라타자 엄창민이 물었다.“뭐 먹고 싶어?”“훠궈 먹으러 가요.”“훠궈?”엄창민에겐 오늘이 연인 사이의 데이트는 아니더라도 첫 정식 데이트라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첫 데이트에 훠궈? 좀 그렇지 않나?’조유진은 그가 훠궈를 싫어하는 줄 알고 말했다.“삼겹살 먹어도 괜찮아요.”“...그래. 네가 먹고 싶은 거 먹어.”이들은 극장 근처에 있는 쇼핑몰로 향했다.조유진은 아무거나 대충 먹자는 말 그대로 엄창민을 평범한 삼겹살 가게로 데려갔다.가게 앞에는 대기하는 사람들이 많아 한참 기다려야 했다.정장 차림인 엄창민은 다소 이 가게와 어울리지 않았다.조유진은 그를 쳐다보더니 머쓱해하면서 말했다.“평소에 어떤 곳에서 식사해요? 고급 레스토랑?”“...응.”사실대로 말했지만 조유진이 무안해할가봐 또 말을 바꿨다.“그런데 이 가게도 맛있을 것 같아. 삼겹살 가게는 또 처음 와보네. 삼겹살 좋아해?”“네. 평소에 많이 먹어요.”조유진은 삼겹살이며 훠궈를 먹기 좋아했다. 배현수와 연애했을 때도 그가 시간 날 때마다 같이 영화 보고, 밀크티를 마시고, 훠궈도 먹고 삼겹살도 먹었었다... 그리고 쇼핑몰 안마의자에서 온 오후 시간을 보냈었다.함께라면 아무리 재미없는 일을 해도 행복하기만 했다.사실 배현수는 주말에 그녀와 침대에서 뒹구는 것을 좋아했
삼겹살 가게 안에는 사람이 오고 갔고 기름 냄새가 가득했다.엄창민은 처음으로 이런 가게에 와봐서 그런지 주문하는 것도 서툴렀다.조유진은 테이블 위에 있는 큐알 코드를 스캔하더니 몇 가지 장바구니에 담고는 핸드폰을 엄창민에게 건넸다.“창민 오빠, 먹고 싶은 거 장바구니에 담으면 돼요.” 엄창민은 메뉴판을 보더니 순진하게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말했다.“M9은 소고기랑 육질이 아예 달라. 이미지처럼 생기지도 않았고, 가격이 이렇게 쌀 리가 없어. 먹을 수 있는 거야?”조유진: “...풉!”조유진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내뿜는 모습에 엄창민은 흠칫하더니 설명했다.“그게 아니라, 이 가게에서 신선하지 않은 소고기를 판매할가봐. 정말 이 가게에서 먹을 거야? 배탈 나면 어떡해?”조유진이 웃었다.“저는 이런 가짜 와규를 자주 먹었어요. 맛있기만 했지 아무런 문제도 없었어요.”“...”‘이런 가게에 데리고 오는 것이 아니었어. 창민 오빠 낯설어하네. 길거리 음식이나 먹을 걸 그랬나? 그러면 더 습관이 안 되겠지.’“창민 오빠한테는 더 좋은 것이 어울려요.”음식 가게든 사람이든 말이다.엄창민은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환희가 좋아하는 음식 나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난 원래 새로운 걸 도전하기 싫어해서 어느 음식점이 괜찮으면 계속 그 음식점에만 가서 먹었어. 그런데 네가 좋아한다면 나도 새로운 거 도전할 마음이 있어.”“창민 오빠, 너무 나한테 맞춰줄 필요 없어요. 저희는 그냥 다른 사람이라 취미도 다르고, 입맛도 다르고, 습관도 다른 거예요.”“시도해 보려고. 네가 좋아하는 거 나도 좋아할지 어떻게 알아?”엄창민은 어딘가 조급해 보였다.조유진은 몇 초간 멈칫하더니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그러면 이따 이 집의 삼겹살을 드셔보세요.”불이 오르고, 엄창민은 정장 외투를 벗어 셔츠 소매를 걷더니 조유진을 위해 삼겹살을 구웠다.처음 해보는 일이라 서투르기만 했다.조유진은 그를 전혀 비웃지 않고 집게를 가져오더니 농담 식으로
“내가 괜찮다면? 네가 마음을 비울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면...”“평생 비울 수가 없다면요?”엄창민은 멈칫하고 말았다.몇 초간의 침묵을 깨고 엄창민이 먼저 물었다.“배현수가 그렇게 좋아? 평생 잊어버릴 수 없을 만큼?”“좋고 나쁜 걸 떠나서 저는 저 자신한테 확신이 없어요. 그 사람을 깨끗하게 지울 수 있을지. 깨끗이 지우기 전까지는 새로운 시작 안 할 거예요. 창민 오빠는 저의 생명의 은인이잖아요. 저는 오빠한테 미안한 짓을 할 수가 없어요. 해서도 안 되고요.”“환희야, 사실 내 마음을 계속 모른척해도 돼. 난 계속 기다릴 수 있어. 네가 배현수를 잊을 때까지...”“제가 싫어요.”조유진은 멈칫하더니 일부러 한마디 더 쏘아붙였다.“저는 현수 씨를 잊어버리지 않을 거예요.”조유진은 일부러 그에게 상처를 주었다.엄창민은 그대로 굳어버리더니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환희야, 꼭 그렇게 매정하게 거절해야겠어? 전에 배현수랑 불가능하다고 했잖아...”“맞아요. 현수 씨랑 불가능해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랑은 더욱 불가능한 거예요. 창민 오빠, 혹시 감정도 배타성을 띄고 있는 거 알아요?”엄창민도 당연히 가까운 사이에 배타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런데 배현수랑 사실 6년 동안 떨어져 있었는데 아직도 배타성을 가지고 있어?”“네. 저는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저는 창민 오빠를 속이고 싶지 않았어요. 심적으로는 육체적으로든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그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도 강한 배타성을 가지고 있다는 건 전생에 현수 씨한테 빚진 것이 있거나, 제가 비정상일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저는 다른 사람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요.”조유진의 말이 끝나자, 엄창민은 침묵을 지키더니 실성한 듯 웃었다.“나 심지어 배현수랑 싸워보지도 못하고 졌어. 그런데 난 배현수한테 진 것이 아니라 너한테 진 거야. 환희 네가 나한테 기회를 주지 않아서야.”“미안해요.”엄창민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내가
두 사람은 생수를 들고 카운터로 향했다.이때 한 훤칠한 키의 남자 역시 생수 한 병을 쥐더니 따라서 카운터로 향했다.그가 손에 쥐고 있는 이 생수병은 조유진이 만졌다가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은 것이었다.그렇게 그는 조유진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계속 뒤를 따랐다.조유진과 엄창민 사이가 어느 정도로 깊어졌는지는 몰랐지만 함께 슈퍼를 돌 정도로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배현수는 아주 가까운 사이에서만 가능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함께 슈퍼를 돌면서 물건을 사는 것은 한 사람의 취미와 일상생활이 보이기 때문에 조유진 이외의 사람과 슈퍼를 돌 일이 없었다.조유진과 헤어진 이후로 슈퍼에도 가지 않았고, 생활용품은 모두 서정호에게 맡겼었다.송진연한테서 MECT 치료를 받으려고 했지만 병실 침대에 눕자마자 도망치고 말았다.여러 차례 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모두 수신 거부하고 밤중에 성남으로 달려왔던 것이다.배현수는 이대로 포기할 수가 없어 조유진과 엄창민이 도대체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직접 성남에 와서 확인하고 싶었다.그저 엄창민이 자신보다 조유진을 더 많이 좋아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뿐이었다.엄창민이 강이찬과 같이 그저 조유진의 외모에 혹해 만날까 봐 두려웠다.조유진은 자타공인의 미인이었기 때문이다.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조유진에게는 남자들이 좋아하는 첫사랑 이미지가 있었다.강이찬이 그녀를 좋아하게 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그가 조유진을 좋아한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조유진을 사랑하는 정도에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배현수는 그렇게 이 둘의 뒤를 따라다니게 되었고, 시선은 오로지 조유진만 바라보고 있었다.텔레파시가 통해서인지, 미행하는 내내 조유진은 계속 뒤돌아보았고, 배현수는 계속 피했다.배현수는 오늘 이상하리만큼 스타일이 평소와 달랐다.조유진은 그런 그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볼캡과 마스크를 쓰고 있어 피하지 않는다고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차에 올라타기 전, 엄창민은 자꾸만 뒤돌아
조유진이 유리에 비친 그림자를 보고 발걸음을 멈추니, 뒤에 있던 사람도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이때 엄창민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더니 물었다.“뭘 보고 있어? 얼른 들어가자. 10분 뒤면 시작해.”조유진이 뒤돌아 확인하려고 했을 때, 그 사람은 이미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연주회 감상하러 온 사람이겠지.’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조유진을 지나쳐 앞으로 걸어갔다.이 사람은 블랙 볼캡에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다크 그레이색 후드를 입고 있었으며 후줄근해 보이긴 했어도 깔끔해 보였다.평소에 도도한 모습의 배현수와는 아예 다른 사람이었다.하지만 키가 크고 다리가 긴 것이... 체형은 똑같아 보였다.그가 옆을 지나쳤을 때 조유진은 은은한 침목향의 담배 냄새를 맡게 되었다.배현수는 조유진이 침목향을 사준 이후로 계속 사용하고 있었다.조유진은 그의 뒷모습을 보고 심장이 갑자기 빨리 뛰는 느낌에 본능적으로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현수 씨!”이 외침에 엄창민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앞에서 걷고 있는 그는 역시나...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그저 아무렇지 않게 앞으로 걸어가더니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내가 잘못 봤나?’엄창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배현수였다면 모른척할 리가 없겠지.”‘만약 정말 배현수였다면, 평소에 했던 짓을 봤을 때 진작에 환희를 끌고 갔겠지. 저번에 대제주시 공항에서도 대놓고 뺏어갔잖아. 이름까지 불렀는데 모른척할 리가 없어.’...엄창민과 조유진이 극장으로 들어가자 연주회가 바로 시작되었다.두 줄 뒤에 앉은 배현수의 자리에서는 바로 조유진이 보였다.하지만 조유진은 고개 돌릴 일이 없었다.고개를 돌린다고 해도 배현수가 보일 리는 없었다.루커스는 조유진이 어릴 때부터 몇십 년 동안 좋아했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조유진이 18살 되던 해, 루커스가 유럽 순회공연을 하고 있을 때 목이 빠져라 기대하면서 물은 적이 있었다.“우리 언제 루커스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