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소미는 엄준을 방까지 모셔다드리고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핸드폰이 울려 발신자 번호를 봤더니 모르는 번호였다.“여보세요, 보스님.”상대방은 변조된 목소리로 통화했다.“일은 잘 진행되고 있나?”“네.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이미 한 달도 지났는데 엄씨 가문에서는 언제 너의 신분을 밝히는 거야?”백소미는 미간을 찌푸렸다.“지금은 아직 엄준의 신임을 받지 못한 상황입니다. 보스님, 저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전화기 너머 남자의 말투는 아주 단호했다.“그러니까, 일이 잘 진행되고 있다더니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네?”“엄준이 수양딸로 받아들인 조유진을 많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엄씨 가문에 들어왔어도 엄환희의 신분은 계속 조유진이 사용하고 있습니다.”“만약 조유진이 우리의 계획을 방해하고 있다면 없애버려도 좋아.”“네, 알겠습니다. 보스님.”“빨리 성행 그룹에 입사해서 결정적 업무를 받아야 해. 나는 네가 엄씨 가문의 신임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만한 인내심이 없다는 거 잘 알잖아.”“그러면 엄창민은...”전화기 너머의 남자가 악독하게 말했다.“방해되는 자는 모조리 죽여버려!”“...네.”“그리고 등 뒤에 있는 몽고반점 언제나 명심해. 엄씨 가문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경계심을 품고 있을 거야.”“알겠습니다.”백소미는 통화를 마치고 통화기록을 지워버렸다.옷을 벗어 거울을 통해 등 뒤를 확인했더니 멍든 자국이 아직 남아있었다.며칠 후 멍 자국이 없어지면 다시 부딪혀 보기로 했다....대제주시 반얀트리 호텔.하나의 검은 그림자가 창문을 통해 침입했다.“보스님, 조유진이 엄준의 친딸일 수도 있습니다. 계속 살려둘까요?”“아니, 죽여버려.”똑 똑 똑.말이 끝나자마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방 안에 있던 사람은 표정이 확 바뀌더니 말했다.“일단 가봐.”“네.”침입자는 다시 귀신처럼 창문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갔다.단 몇 초 사이, 스위트 룸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문밖
“그렇게나 빨리? 대제주시에서 볼 일은 다 끝났어?”“그건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야. 네 주인인 내가 어디 가면 그냥 따라오면 돼.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그래요, 주인님.”하지만 성남으로 돌아가기 전, 두 사람의 목숨부터 해결하기로 했다.‘조유진이 죽으면 엄준이 슬퍼할지 모르겠네. 아쉽네, 곧 죽게 되는 마당에 자기 친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니.’...다음 날 오후 6시.엄창민은 말끔한 정장을 입고 조수석 문을 열었다.“연주회 저녁 8시에 시작해서 10시에 끝나니까 먼저 저녁부터 먹자. 아니면 2시간 동안 배고플 거야.”“그래요, 간단히 아무거나 먹죠.”조유진이 차에 올라타자 엄창민이 물었다.“뭐 먹고 싶어?”“훠궈 먹으러 가요.”“훠궈?”엄창민에겐 오늘이 연인 사이의 데이트는 아니더라도 첫 정식 데이트라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첫 데이트에 훠궈? 좀 그렇지 않나?’조유진은 그가 훠궈를 싫어하는 줄 알고 말했다.“삼겹살 먹어도 괜찮아요.”“...그래. 네가 먹고 싶은 거 먹어.”이들은 극장 근처에 있는 쇼핑몰로 향했다.조유진은 아무거나 대충 먹자는 말 그대로 엄창민을 평범한 삼겹살 가게로 데려갔다.가게 앞에는 대기하는 사람들이 많아 한참 기다려야 했다.정장 차림인 엄창민은 다소 이 가게와 어울리지 않았다.조유진은 그를 쳐다보더니 머쓱해하면서 말했다.“평소에 어떤 곳에서 식사해요? 고급 레스토랑?”“...응.”사실대로 말했지만 조유진이 무안해할가봐 또 말을 바꿨다.“그런데 이 가게도 맛있을 것 같아. 삼겹살 가게는 또 처음 와보네. 삼겹살 좋아해?”“네. 평소에 많이 먹어요.”조유진은 삼겹살이며 훠궈를 먹기 좋아했다. 배현수와 연애했을 때도 그가 시간 날 때마다 같이 영화 보고, 밀크티를 마시고, 훠궈도 먹고 삼겹살도 먹었었다... 그리고 쇼핑몰 안마의자에서 온 오후 시간을 보냈었다.함께라면 아무리 재미없는 일을 해도 행복하기만 했다.사실 배현수는 주말에 그녀와 침대에서 뒹구는 것을 좋아했
삼겹살 가게 안에는 사람이 오고 갔고 기름 냄새가 가득했다.엄창민은 처음으로 이런 가게에 와봐서 그런지 주문하는 것도 서툴렀다.조유진은 테이블 위에 있는 큐알 코드를 스캔하더니 몇 가지 장바구니에 담고는 핸드폰을 엄창민에게 건넸다.“창민 오빠, 먹고 싶은 거 장바구니에 담으면 돼요.” 엄창민은 메뉴판을 보더니 순진하게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말했다.“M9은 소고기랑 육질이 아예 달라. 이미지처럼 생기지도 않았고, 가격이 이렇게 쌀 리가 없어. 먹을 수 있는 거야?”조유진: “...풉!”조유진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내뿜는 모습에 엄창민은 흠칫하더니 설명했다.“그게 아니라, 이 가게에서 신선하지 않은 소고기를 판매할가봐. 정말 이 가게에서 먹을 거야? 배탈 나면 어떡해?”조유진이 웃었다.“저는 이런 가짜 와규를 자주 먹었어요. 맛있기만 했지 아무런 문제도 없었어요.”“...”‘이런 가게에 데리고 오는 것이 아니었어. 창민 오빠 낯설어하네. 길거리 음식이나 먹을 걸 그랬나? 그러면 더 습관이 안 되겠지.’“창민 오빠한테는 더 좋은 것이 어울려요.”음식 가게든 사람이든 말이다.엄창민은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환희가 좋아하는 음식 나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난 원래 새로운 걸 도전하기 싫어해서 어느 음식점이 괜찮으면 계속 그 음식점에만 가서 먹었어. 그런데 네가 좋아한다면 나도 새로운 거 도전할 마음이 있어.”“창민 오빠, 너무 나한테 맞춰줄 필요 없어요. 저희는 그냥 다른 사람이라 취미도 다르고, 입맛도 다르고, 습관도 다른 거예요.”“시도해 보려고. 네가 좋아하는 거 나도 좋아할지 어떻게 알아?”엄창민은 어딘가 조급해 보였다.조유진은 몇 초간 멈칫하더니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그러면 이따 이 집의 삼겹살을 드셔보세요.”불이 오르고, 엄창민은 정장 외투를 벗어 셔츠 소매를 걷더니 조유진을 위해 삼겹살을 구웠다.처음 해보는 일이라 서투르기만 했다.조유진은 그를 전혀 비웃지 않고 집게를 가져오더니 농담 식으로
“내가 괜찮다면? 네가 마음을 비울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면...”“평생 비울 수가 없다면요?”엄창민은 멈칫하고 말았다.몇 초간의 침묵을 깨고 엄창민이 먼저 물었다.“배현수가 그렇게 좋아? 평생 잊어버릴 수 없을 만큼?”“좋고 나쁜 걸 떠나서 저는 저 자신한테 확신이 없어요. 그 사람을 깨끗하게 지울 수 있을지. 깨끗이 지우기 전까지는 새로운 시작 안 할 거예요. 창민 오빠는 저의 생명의 은인이잖아요. 저는 오빠한테 미안한 짓을 할 수가 없어요. 해서도 안 되고요.”“환희야, 사실 내 마음을 계속 모른척해도 돼. 난 계속 기다릴 수 있어. 네가 배현수를 잊을 때까지...”“제가 싫어요.”조유진은 멈칫하더니 일부러 한마디 더 쏘아붙였다.“저는 현수 씨를 잊어버리지 않을 거예요.”조유진은 일부러 그에게 상처를 주었다.엄창민은 그대로 굳어버리더니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환희야, 꼭 그렇게 매정하게 거절해야겠어? 전에 배현수랑 불가능하다고 했잖아...”“맞아요. 현수 씨랑 불가능해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랑은 더욱 불가능한 거예요. 창민 오빠, 혹시 감정도 배타성을 띄고 있는 거 알아요?”엄창민도 당연히 가까운 사이에 배타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런데 배현수랑 사실 6년 동안 떨어져 있었는데 아직도 배타성을 가지고 있어?”“네. 저는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저는 창민 오빠를 속이고 싶지 않았어요. 심적으로는 육체적으로든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그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도 강한 배타성을 가지고 있다는 건 전생에 현수 씨한테 빚진 것이 있거나, 제가 비정상일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저는 다른 사람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요.”조유진의 말이 끝나자, 엄창민은 침묵을 지키더니 실성한 듯 웃었다.“나 심지어 배현수랑 싸워보지도 못하고 졌어. 그런데 난 배현수한테 진 것이 아니라 너한테 진 거야. 환희 네가 나한테 기회를 주지 않아서야.”“미안해요.”엄창민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내가
두 사람은 생수를 들고 카운터로 향했다.이때 한 훤칠한 키의 남자 역시 생수 한 병을 쥐더니 따라서 카운터로 향했다.그가 손에 쥐고 있는 이 생수병은 조유진이 만졌다가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은 것이었다.그렇게 그는 조유진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계속 뒤를 따랐다.조유진과 엄창민 사이가 어느 정도로 깊어졌는지는 몰랐지만 함께 슈퍼를 돌 정도로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배현수는 아주 가까운 사이에서만 가능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함께 슈퍼를 돌면서 물건을 사는 것은 한 사람의 취미와 일상생활이 보이기 때문에 조유진 이외의 사람과 슈퍼를 돌 일이 없었다.조유진과 헤어진 이후로 슈퍼에도 가지 않았고, 생활용품은 모두 서정호에게 맡겼었다.송진연한테서 MECT 치료를 받으려고 했지만 병실 침대에 눕자마자 도망치고 말았다.여러 차례 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모두 수신 거부하고 밤중에 성남으로 달려왔던 것이다.배현수는 이대로 포기할 수가 없어 조유진과 엄창민이 도대체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직접 성남에 와서 확인하고 싶었다.그저 엄창민이 자신보다 조유진을 더 많이 좋아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뿐이었다.엄창민이 강이찬과 같이 그저 조유진의 외모에 혹해 만날까 봐 두려웠다.조유진은 자타공인의 미인이었기 때문이다.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조유진에게는 남자들이 좋아하는 첫사랑 이미지가 있었다.강이찬이 그녀를 좋아하게 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그가 조유진을 좋아한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조유진을 사랑하는 정도에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배현수는 그렇게 이 둘의 뒤를 따라다니게 되었고, 시선은 오로지 조유진만 바라보고 있었다.텔레파시가 통해서인지, 미행하는 내내 조유진은 계속 뒤돌아보았고, 배현수는 계속 피했다.배현수는 오늘 이상하리만큼 스타일이 평소와 달랐다.조유진은 그런 그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볼캡과 마스크를 쓰고 있어 피하지 않는다고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차에 올라타기 전, 엄창민은 자꾸만 뒤돌아
조유진이 유리에 비친 그림자를 보고 발걸음을 멈추니, 뒤에 있던 사람도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이때 엄창민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더니 물었다.“뭘 보고 있어? 얼른 들어가자. 10분 뒤면 시작해.”조유진이 뒤돌아 확인하려고 했을 때, 그 사람은 이미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연주회 감상하러 온 사람이겠지.’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조유진을 지나쳐 앞으로 걸어갔다.이 사람은 블랙 볼캡에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다크 그레이색 후드를 입고 있었으며 후줄근해 보이긴 했어도 깔끔해 보였다.평소에 도도한 모습의 배현수와는 아예 다른 사람이었다.하지만 키가 크고 다리가 긴 것이... 체형은 똑같아 보였다.그가 옆을 지나쳤을 때 조유진은 은은한 침목향의 담배 냄새를 맡게 되었다.배현수는 조유진이 침목향을 사준 이후로 계속 사용하고 있었다.조유진은 그의 뒷모습을 보고 심장이 갑자기 빨리 뛰는 느낌에 본능적으로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현수 씨!”이 외침에 엄창민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앞에서 걷고 있는 그는 역시나...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그저 아무렇지 않게 앞으로 걸어가더니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내가 잘못 봤나?’엄창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배현수였다면 모른척할 리가 없겠지.”‘만약 정말 배현수였다면, 평소에 했던 짓을 봤을 때 진작에 환희를 끌고 갔겠지. 저번에 대제주시 공항에서도 대놓고 뺏어갔잖아. 이름까지 불렀는데 모른척할 리가 없어.’...엄창민과 조유진이 극장으로 들어가자 연주회가 바로 시작되었다.두 줄 뒤에 앉은 배현수의 자리에서는 바로 조유진이 보였다.하지만 조유진은 고개 돌릴 일이 없었다.고개를 돌린다고 해도 배현수가 보일 리는 없었다.루커스는 조유진이 어릴 때부터 몇십 년 동안 좋아했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조유진이 18살 되던 해, 루커스가 유럽 순회공연을 하고 있을 때 목이 빠져라 기대하면서 물은 적이 있었다.“우리 언제 루커스 유
배현수는 조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이거 내 전부 재산이야. 나중에 월급도 이 계좌로 들어올 거야. 비밀번호는 너의 생일. 뭐 사고 싶은 거 있으면 나한테 말할 필요도 없이 그냥 긁으면 돼. 그런데 매달 내 용돈과 담뱃값은 남겨줘야 해. 나머지는 다 네 거야.”조유진은 감동해서 두 눈이 붉어졌고 그의 목을 끌어안더니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래도 아직 대답하지 않았잖아요.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이건 아무것도 아닐 거잖아요.”배현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유진아, 난 마음이 쉽게 안 변해. 난 너를 잃는 게 두려워. 그래서 마음도 안 변할 거야.”배현수는 맞는 말만 하는 사람이라 영원하다면 영원한 것이었다.그래도 조유진이 믿지 않을까 봐 말을 덧붙였다.“2년 후 네가 법적으로 혼인신고 가능한 나이가 되면 우리 바로 혼인 신고하러 가자. 응?”“너무 빠른 거 아니에요? 그때면 저는 고작 20살인데, 현수 씨한테 시집가야 해요?”“유진아.”배현수는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말했다.“나랑 결혼 안 하면 누구랑 할 건데?”“...”그때 조유진은 어려서 혼인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그저 배현수와 영원히 함께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결혼해도 마음이 변할 수 있잖아요. 법률은 결혼 혹은 이혼만 상관했지 현수 씨 마음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잖아요.”배현수는 어처구니가 없어 웃더니 조유진의 얼굴을 꼬집으면서 말했다.“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이혼할 생각부터 하고 있어? 유진이는 정말 대단해.”“...아파요!”“아픈 건 아네. 일단 결혼했으면 이혼할 수 없는 거야. 이혼하려고 하면 더 아프게 할거야.”조유진은 그의 목을 꽉 깨물더니 말했다.“현수 씨는 왜 복수심이 그렇게 강해요?”“나를 뭐 하루 이틀 봐?”배현수는 그녀를 품에 와락 안더니 진지하게 말했다.“유진아, 난 마음이 안 변해. 결혼하면 내 수입과 재산 다 네 것으로 만들 거야. 똑같이 너도 날 버리면 안 돼.”이때 조유진은 그의 품에 안겨 손가락으로 목젖을 어루만지더니 장
아이를 낳지 않아도 되었었다. 마음이 아파서 조유진에게 출산의 고통을 맛보게 하고싶지 않았다.그때 당시 조유진은 너무 어렸기 때문에 차마 잠자리를 가지지 못해 동거했을 때 얼마나 냉수마찰을 하면서 진정시켰는지 몰랐다.그는 늘 조유진의 이마에 키스하면서 이렇게 말했다.“아프면 안 해도 돼.”그때까지만 해도 조유진과 오래 만날 거라는 생각에 얼마든지 기다려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감옥에 간 이후로...조유진은 18살에 임신하고, 아이를 낳고,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6년 동안 싱글맘으로 살았었다...약속했던 모든 것들이 바사삭 깨지고 말았고 모든 일이 모두 정상을 벗어나고 말았다...조유진을 그렇게 아꼈지만 결국엔 고생이란 고생은 다 맛보게 한 것이었다.이제는 성숙해지고, 강해져서 더는 애교도 부리지 않았고, 또 마음이 변할 건지와 같은 유치한 질문도 하지 않았다. 배현수는 옛날로 돌아가고 싶었다.조유진이 예전처럼 목에 매달려 마음이 변할 건지, 자신을 영원히 사랑할 건지, 자신을 버릴 건지 계속 물어봐 줬으면 했다.그러면 한 번이고 두 번이고 단호하게 알려줬을 것이다.마음이 변하지 않을 것이고, 영원히 사랑할 것이며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하지만 조유진은 더는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뒷좌석에 앉은 배현수는 살짝 고개를 쳐들어 어두운 불빛 속에서 조유진만 쳐다보았다.루커스의 연주를 함께 보았지만, 사이에 두 줄이라는 간격이 있을 뿐이었다.조유진은 무대를 보고 있었고, 배현수를 그녀를 보고 있었다.루커스의 연주는 그야말로 완벽했지만 조유진은 집중할 수가 없었다.그렇게 기대했던 연주회를 몇 년이 지나 드디어 보게 되었지만 옆에 앉은 사람이 배현수가 아니라는 느낌에 아쉽기만 했다.조유진은 자신의 감정을 들키기 싫어서 몰래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엄창민이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눈물범벅이 되고 말았고, 그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묵묵히 휴지를 건넸다.“이걸로 닦아. 메이크업이 번지면 안 되잖아.”“고마워요.”연주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