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병원에 있는 배현수는 방금 진통 소염 수 링거 두 병을 맞았다.병상에 누워있던 배현수가 일어나려고 하자 서정호가 다급한 얼굴로 말했다.“배 대표님, 상처 좀 더 지켜보다가 가시죠.”조금 이따 조유진 씨가 병원에 올 텐데 배 대표님이 안 계시면 안 되잖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니까...서정호는 목구멍의 말을 삼키고 있었고 배현수는 서정호의 말이 마치 시어머니 잔소리처럼 느껴졌다.“지켜보긴 뭘 지켜봐, 안 죽어.”“배 대표님... 정말이에요. 만약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해요?”순간 배현수는 까만 눈동자로 서정호를 노려보며 말했다.“지금 나를 저주하는 거야?”그 말에 서정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감히?배현수가 자리를 박차고 가려고 할 때 지나가는 간호사와 눈이 마주쳤다.“어디 가시는 거죠?”“링거를 다 맞았으니 이제 가도 되죠?”“팔의 상처는 치료 안 하고 가실 거예요? 상처에 물이 닿아 많이 심각해졌을 텐데. 이 팔 이제 필요 없으신 거예요?”옆에 있던 서정호가 다급히 간호사의 말을 거들었다.“네, 배 대표님. 간호사님이 상처를 다시 봐주실 수 있게 여기 앉으세요. 그러다가 진짜로 한 쪽팔 못 쓰시게 되면 조유진 씨가 얼마나 자책하겠어요.”똑똑한 서정호는 이런 상황에 조유진을 언급하면 분명 배현수가 말을 듣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아니나 다를까 배현수는 정색한 얼굴로 원하지 않는 표정을 지었지만 다시 병상에 앉았다. 간호사는 의료용 장갑을 끼고 그의 팔에 있는 거즈를 떼어냈다. 상처 자체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는데 물까지 닿았다. 게다가 봉합된 부분도 약간 벌어져 있어 그 안에 붉은 살점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상태에 간호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일단 상처 주의를 깨끗이 닦아낸 다음에 약 한 번 바꿔 드릴게요. 그리고 수술 밴드 붙여드릴 테니까 절대 물에 닿으면 안 됩니다. 안 그러면 분명 후유증이 남을 거예요. 일부러 상처를 덧나게 하는 이유라도 있어요? 스파
서정호가 몸을 옆으로 돌려 시신을 피해서 돌아서려는데 뒤에서 귀에 익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서 비서님!”서정호가 고개를 들어보니 그곳에는 조유진이 서 있었다.“유진 씨, 오셨어요?”조유진은 배현수가 교통사고가 났다는 말에 외투만 대충 걸치고 병원으로 달려왔다.평소 시내 안에서의 제한 속도는 80, 90킬로 정도였지만 오늘 밤 그녀는 100킬로를 넘나드는 속도로 이곳까지 단숨에 달려왔다.슬리퍼를 신은 채 서 있는 그녀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아마 차에서 내리자마자 이곳까지 바로 뛰어온 것 같았다. “유진 씨, 배 대표님은...”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옆에서 시신을 운구하던 의료진이 지나가면서 한마디 했다.“다들 옆으로 비켜주세요!”순간 조유진의 시선은 하얀 천으로 덮인 시신을 향했다.서정호가 시신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모습에 그녀는 이 시신이 배현수라고 확신했다.조유진은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고 흰 천으로 덮인 시신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순간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현수 씨...”조유진이 시신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자 서정호는 그녀와 시신을 번갈아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유진 씨가...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조유진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하얀 손으로 시신이 놓여있는 침대를 잡았다.“저... 마지막으로 이 사람 한 번만 볼 수 있을까요?”의료진이 물었다.“사망자 가족분 되십니까?”“네...”아이의 아빠예요.의료진도 이런 상황은 자주 겪었던지라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그럼 빨리 마지막 인사하세요. 그리고 바로 영안실로 모실게요.”여기에 너무 오래 머무르면 응급환자들의 이동에 방해가 된다.조유진은 침을 몇 번 삼키고 나서야 얼굴에 덮인 흰 천을 거둘 용기를 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이 흰 천에 닿으려 할 때 그녀는 갑자기 배현수를 볼 용기가 없었다.오늘 밤의 그 포옹이 두 사람의 마지막 포옹이 될 줄 몰랐다.오늘의 만남이 마지막이 될 줄은 더더
배현수는 왼팔을 뻗어 조유진의 등을 감싼 채 몇 초 동안 꼭 껴안았다.이때 시신 옆에 서 있던 병원 직원이 한 마디 툭 쏘아붙였다.“사랑싸움하는데 길은 막지 말아야 할 거 아니에요! 비키세요!”배현수가 한 손으로 조유진을 안아 옆으로 옮겼다.시신이 멀리 옮겨진 후 주위는 다시 조용해졌다.조유진은 배현수를 꼭 껴안은 채 그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점차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마음이 진정된 후에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어색함이 찾아왔다. 조유진은 고개를 들어 멋쩍은 얼굴로 상황을 설명하려 했다.“그게...”배현수는 허리를 약간 숙인 채 큰 손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고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한 마디 물었다.“울다가 웃으면?”조유진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내가 죽어야 네가 나를 위해 우나 보네.”그녀가 계속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배현수는 입술을 깨물더니 그녀를 보며 한마디 했다.“이걸로도 충분해. 유진아.”적어도 그녀의 마음속에 배현수의 자리가 있다는 뜻이니까 그걸로도 충분하다.조유진이 입술을 깨물자 한 줄기의 맑은 눈물이 또다시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울지 마, 나 안 죽었잖아. 너의 앞에 이렇게 잘 서 있잖아.”계속 울면 배현수는 조유진을 더더욱 놓아주지 못할 것이다.조유진은 아직도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한 듯 입을 벌리고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듯했다.13년 동안 알고 지내 두 사람은 서로의 눈빛만 봐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알고 있었다.예전에 조유진이 불안해할 때마다 배현수는 늘 그녀를 꼭 껴안아 줬다. 가끔은 아무 말 없이 그저 안고만 있어도 어느새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갔었다. 조유진은 포옹을 좋아했다.배현수가 그녀를 안았던 팔을 풀며 물었다.“계속 안고 있어?”조유진은 아무 말 없이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천천히 다시 그를 껴안았다.그녀는 배현수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그의 온몸의 체취를 느끼고 있었다.아마 담배를 피울 때 침향 스틱을 계속
산성 별장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새벽 3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고 사정없이 쏟아지던 비는 어느새 그쳐 있었다. 조유진이 슬리퍼를 신은 채 차에서 내리려 했지만 배현수는 병원에서처럼 그녀를 안아 올렸다.그는 한쪽 팔로 그녀의 허벅지와 엉덩이를 받쳐주었고 조유진은 떨어질까 봐 그의 목을 꼭 껴안았다.“나 혼자 갈 수 있어요.”하지만 배현수는 그녀를 놓지 않았고 안은 자세 그대로 별장 안으로 향했다.“다음번에는 언제가 될지 모르잖아.”어쩌면 오늘이 그녀를 마지막으로 안는 것일 수도 있었다.잠깐 생각에 잠겼던 배현수가 입을 열었다.“유진아, 오늘 병원에 찾아와 줘서 고마워.”조유진은 그런 배현수가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두 사람 사이가 어쩌다 지금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조유진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이게 바로 운명의 장난일지도 모른다.이게 사람의 인생이다. 좌우할 수도, 바꿀 수도 없다. 그저 인생이 시키는 대로 그 강력한 힘에 떠밀려 갈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조유진은 또다시 마음이 약해졌다.“현수 씨 팔의 상처가 아직 낫지 않았어요. 그리고 우리가 약속한 기한이 5일이나 남았고요. 정말... 정말...”배현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었다.“유진아, 내가 불쌍하다고 생각돼서 그러는 거면 됐어. 너에게 불쌍하게 보이고 싶지 않아.”배현수가 원하는 것은 그녀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불쌍한 감정은 나약한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다. 도도하기 짝이 없는 배현수는 남이 자기를 불쌍히 보는 것도 싫고 조유진이 자기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었다.별장에 들어서자마자 배현수는 그녀를 소파에 내려놓았다.그는 깨끗한 슬리퍼 한 켤레를 가지고 와서 한쪽 무릎을 그녀 앞에 꿇고는 그녀의 발을 잡고 슬리퍼를 신겨 주었다.그러고는 고개를 떨구고 한마디 했다.“유진아, 여기까지만 할게. 앞으로 혼자 잘 가야 해. 그러다가 도저히 못 가겠으면...”사실 배현수가 하고 싶은 말은 혼자 가기 힘들면 자기를 찾으러 돌아오라는 것이었다.하
강이진이 문을 열자 강이찬의 초췌한 모습이 보였다.“오빠, 미경 씨... 어떻게 됐어?”그의 표정을 보니 심미경의 상태가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설마... 이미 죽었나?강이찬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강이진은 떠보는 마음에 다시 한번 그를 불렀다.“오빠? 너무 슬퍼하지 마. 이건 사고일 뿐이야. 너무 자책하지 마.”“미경 씨 꼭 깨어날 거야. 월말에 우리 결혼식도 제대로 할 거고.”강이찬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의 말투는 매우 확고하고 고집스러웠다. 순간 강이진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심미경이 아직 안 죽었다고?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뿐이라고?심미경, 이 여자 팔자가 생각보다 꽤 센데? 진짜로 숨이 남아있을 줄이야... 그런데 임산부가 차를 저렇게 박았는데... 깨어날 확률이 그렇게 높지는 않을 거야!이때 강이찬의 핸드폰이 울렸고 화면에는 ‘진민우’라고 떠 있었다.“여보세요?”“사장님, 경찰서에서 심미경 씨의 블랙박스와 내비게이션을 확인해 봤는데 내비게이션의 마지막 목적지가 산성 별장이었어요.”산성 별장?심미경이 한밤중에 산성 별장에 갔다고? 뭐 하러?지난번 통화에서는 그저 조유진이 자기를 살려준 것에 고맙다고 선물을 보내드리기 위해 주소가 필요하다고 했는데...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심미경이 왜 늦은 밤에 차를 몰고 산성 별장으로 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는 조유진과 친한 사이도 아니고 배현수와는 더더욱 친하지 않다.그때 옆에 있던 강이진이 조심스럽게 강이찬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오빠? 무슨 일인데? 사고를 낸 차주가 뭐라고 했대?”강이찬이 굳은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미경 씨가 한밤중에 왜 나갔는지 알아?”“내가...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나 밤에 친구와 함께 파티에 갔어. 심미경이 외출한 줄도 몰랐어! 걔는 한밤중에 왜 나갔대? 도둑질이라도 하러 나갔대?”강이찬은 그녀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너 설마 또 미경 씨 괴롭힌 거야?”“아니야! 한 번만 더 그러면 나를 쫓
조유진은 성남에서 대제주시에 올 때 달랑 캐리어 하나만 끌고 왔다. 그래서 짐도 정리할 게 별로 없었다. 선유가 달려와 그녀의 품에 안기며 말했다.“엄마, 성남에는 왜 나 안 데려가는 거야? 나도 성남에 놀러 가고 싶단 말이야.”조유진은 몸을 웅크리고 앉아 선유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그런데 우리 선유는 대제주시에서 학교도 다녀야 하잖아. 방학이 되면 엄마가 성남 구경시켜 줄게. 어때?”“그러면 아빠는? 아빠와 같이 성남에 놀러 가도 돼?”비록 아빠는 어른이지만 선유는 항상 아빠가 자기보다 엄마를 더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조유진은 선유의 얼굴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그래, 아빠가 원하면 같이 와.”하지만 배현수는 분명 거절할 것이다. 배현수가 원하는 것을 조유진은 줄 수 없기 때문에...그녀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데 만나 봤자 질척거릴 뿐 아무런 진전이 없을 것이며 서로에게도 좋을 것도 없었다. 조유진도 배현수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사실 이런 관계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너무 잘 알고 있다.“선유야, 앞으로 공부할 때는 아빠 곁에 있고 방학이 되면 엄마와 같이 있는 거야. 어때?”선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엄마, 왜 대제주시에 안 있는 거야? 비행기 타고 다니기 힘들지 않아?”그녀가 이번에 성남으로 돌아간 이유는 엄 어르신을 만나야 하는 것도 있었지만 엄준의 성행 그룹에 입사하라는 요청을 받아들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엄마가 성남에 가서 열심히 일해야 돈 많이 벌어서 선유에게 밀크티 사줄 수 있어.”선유는 맑고 깨끗한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는 조유진을 바라보며 작은 입을 삐죽거렸다.“엄마, 엄마는 대제주시가 싫은 거지?”순간 조유진은 선유의 물음에 어리둥절했다.대제주시, 이곳은 그녀의 너무 많은 추억이 담겨 있는 곳이다. 그녀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배현수와 함께했던 모든 추억이 전부 이곳에 있었다.아름답고 처절했던 그 시간들...그녀는 확실히 대제주시를 좋
“아니.”선유는 깜찍하고 귀여운 얼굴에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타일렀다.“거짓말쟁이, 나보다 엄마 보내는 게 더 싫잖아요. 엄마가 가면 분명 다시 선유 보러 올 거예요. 엄마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엄마는 절대 선유를 버리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엄마가 이번에 가면 아빠를 버릴지 안 버릴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요.”어린아이의 말은 정말 거리낌이 없었다.선유의 직설적인 말은 마치 칼날처럼 배현수의 심장을 찔렀다.얼마나 아픈지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어린 녀석을 차갑게 쏘아보며 말했다.“다 까불었어?”그 말에 선유가 눈살을 찌푸렸다.“누가 까부는데요? 아빠, 내 호의를 그렇게 무시하면 안 돼요.”“선유야... 이런 말은 대체 누구에게서 배운 거야?”선유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저 이제 1학년이에요. 학교에서 다 배운단 말이에요. 아빠 1학년 때는 안 배웠어요?”선유는 1학년이 되기 전부터 드라마에서 이런 말을 많이 들었었다.그는 배현수를 한심하게 바라보며 계속 잔소리를 했다.“아빠, 지금 엄마에게 가서 가지 말라고 한 번 빌어봐요. 엄마가 내 체면을 봐서라도 안 갈 수 있으니까.”배현수는 녀석의 잔소리에 할 말을 잃었다.잠시 멈칫하던 배현수는 녀석을 힐끗 바라보며 물었다.“어떻게 빌어?”“허벅지를 껴안고 가지 말라고 애원해 봐요. 내가 이렇게 부탁하면 엄마가 늘 다시 나를 꼭 껴안아 줬어요.”배현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너야?”이 무슨 유치한 아이의 장난이란 말인가?선유는 목을 한 번 움츠리더니 작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싫으면 말고요. 그런데 그렇게 화낼 필요는 없잖아요. 나중에 후회나 하지 말아요!”녀석은 말을 마치자마자 방을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배현수는 선유의 팔을 끌어당기며 물었다.“어디 가?” “아빠도 안 하는데 그럼 나라도 빌어서 며칠만 더 있어 달라고 해야죠! 이번 주 토요일에 엄마와 같이 동물원에도 가고 싶단 말이에요!”“안돼, 가지 마.”
선유는 맑고 큰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작은 입을 삐죽거리며 안쓰러운 눈빛으로 배현수를 바라보았다.그러자 배현수는 귀찮은 녀석 때문에 눈살을 찌푸렸다. “울고 싶지 않으니 내려가서 엄마나 바래다줘.”선유는 얼굴을 가까이하고 그의 표정을 열심히 살폈다.“진짜죠? 아빠, 나 그럼 엄마 바래다주고 올게요. 너무 많이 울지는 마세요.”녀석은 작은 손으로 그의 팔을 툭툭 치더니 어른처럼 쓰다듬었다.방문 앞까지 왔을 때 배현수가 다시 한번 선유를 불렀다.“명심해, 절대 엄마 앞에서 소란 피우지 말고 보내드려야 해.”“알았어요. 아빠나 후회하지 마세요.”선유는 나가더니 작은 손으로 손잡이를 당겨 문을 꼭 닫았다.이따가 아빠 혼자 너무 크게 울면 까칠한 아빠는 분명 창피해할 것이다....조유진이 짐을 다 싸자 서정호가 트렁크에 그 짐을 실었다.“유진 씨, 차에 타세요. 더 늦으면 10시 비행기 못 탈지도 몰라요.”시각이 벌써 9시가 다 되어갔다. 이때 선유가 뛰쳐나오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엄마! 아빠가 빨리 가래!”서정호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배 대표님, 진심입니까?’조유진도 어이가 없었지만 이내 선유를 보고 웅크리고 앉아 녀석을 꼭 끌어안았다.“그러면 엄마 먼저 갈게, 방학이 되면 엄마가 데리러 올게.”선유는 아빠의 당부가 기억나 고개를 들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말했다.“엄마, 보고 싶지 않을 거야. 내 걱정 안 해도 돼! 나는 아빠와 잘 지낼게! 엄마는 엄마만 잘 돌봐!”녀석은... 너무 착해서 탈인 것 같다.조유진은 사실 선유가 허벅지를 껴안고 울면 며칠만 더 같이 있어 주려고 했다.하지만 지금 보니 부녀 두 사람에게 조유진이 딱히 필요 없는 것 같다.조유진은 그나마 한시름은 놓았지만 약간 실망스러운 마음도 있었다.“우리 선유도 밥 잘 챙겨 먹고 잠도 잘 자고 아빠 말 잘 들어야 해. 알겠지?”“어!”선유는 조유진의 목을 껴안고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엄마, 빨리 가. 안 가면 비행기 놓쳐.”“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