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초윤이 대체 무슨 수로 그 많은 돈을 돌려준단 말인가?남초윤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자 육지율이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입을 열었다.“장난이에요. 할아버지께서 저녁에 함께 본가에서 식사하라고 당부하셨어요. 할아버지께서 당신을 보지 못한다면 또 잔소리를 한가득 퍼부을 거예요. 그러니 저와 함께 가요. 네?”육지율은 여전히 남초윤이 심술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아마 최근 몇 년 동안 남초윤이 너무 얌전히 지내서 그런지 육지율은 그녀에게 이혼할 용기와 자금이 있을 리가 없다고 여겼다.그렇다. 확실히 그녀에게 이혼할 자금은 없었다.하지만 이번이야말로 남초윤은 더는 그와 부부연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남초윤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 매우 굳건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방금 지율 씨가 말한 남씨 가문에 투자한 돈은 제가 당신에게 빚진 게 아니에요. 남씨 가문의 법인도 제가 아니고요. 빚이라면 남씨 가문의 가주인 남재원을 찾아가세요. 당신도 변호사이니 소송을 제기한다고 하더라도 제 책임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겠죠.”“...”육지율의 눈빛이 희미하게 떨리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초윤 씨, 이제 심술을 부리는 것도 정도가 있어야 할거예요.”육지율은 남초윤의 합법적인 남편으로서 이미 충분히 관대하게 그녀와 김성혁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대했다.결혼하기 전, 남초윤이 김성혁과 연애를 했었고 김성혁과 과거의 시간을 함께했다고 하여도 그는 아무렇지도 않았다.누구에게 과거 하나 없겠는가?그래, 육지율은 그들의 과거를 따지지 않았다.남초윤이 김성혁과 몰래 만나고 있는 것만 아니라면 모두 괜찮았다.하지만 육지율 또한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만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육지율은 그 키스를 누가 먼저 했든 진작에 걷어차 버렸을 것이다.그리고 오늘 아침, 그들의 스캔들은 바로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왔다.육지율의 핸드폰은 육씨 가문 측에서 걸려온 전화로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지경이었다.가문의 어르신들은 전화기로 남초윤의 욕설을 퍼부었다.
남재원의 아부에 육지율은 싸늘한 목소리로 그를 쏘아붙였다.“한 번만 더 초윤 씨에게 손을 대시면 앞으로 저한테서 한 푼도 받을 생각 마세요. 초윤 씨 얼굴을 때린다는 건 제 얼굴을 때리는 것과 같습니다. 어찌 되었든 초윤 씨는 지금 제 호적에 올려진 사람이니까요. 그러니 당신은 초윤 씨를 혼낼 자격이 없다는 말입니다.”그때 남초윤이 육지율과 결혼을 할 때 남씨 가문에서는 그녀를 부추겨 호적을 정리하여 육씨 가문으로 호적을 옮기도록 하였다.육씨 가문 역시 남재원의 심보를 모를 리가 없었다. 호적을 옮긴다는 것은 결국 나중에 재산을 나눠 받기 위함인 것이다.육씨 가문의 지위로 남씨 가문을 막으려 마음을 먹는다면 남초윤이 이혼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한 푼도 가져갈 수 없을 것이다.호적을 옮기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육지율은 비록 전 여자친구들한테는 잘해주지 않았지만, 그의 아내에게는 매우 대범하였다. 육씨 가문은 가풍이 비교적 전통적이었기에 집안 남자들의 사상도 보수적인 편이었다. 하여 그들은 결혼하고 여자들이 경제적으로 남편에 완전히 의지하는 것은 별로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다.그 때문에 육지율은 당시 남초윤이 호적을 옮기는 것을 흔쾌히 동의하였다.남재원이 다시 얼굴을 들이밀며 아부를 떨었다.“그럼 그럼. 초윤이는 이미 육 서방에게 시집을 갔으니 확실히 육씨 집안의 사람인 셈이지. 다들 시집간 딸은 엎지른 물과도 같다잖아. 그러니 나도 더는 관여하지 않을게. 이제 육 서방 마음대로 해. 그나저나 육 서방, 오늘 우리 집에서 저녁 식사나 하고 갈래?”남재원은 육지율이 남초윤과 이혼만 하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권세에 빌붙어 아부를 떨어대는 남재원의 모습을 보니 유지율은 속이 울렁거리는 기분이었다.“괜찮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저녁에 집에 들러 식사하라고 하셔서 나중에 초윤 씨를 데리고 본가에 다녀올 겁니다.”그러자 남재원은 더욱 환하게 웃어 보였다.“그렇다면 무조건 가야지. 이따가 내가 초윤이한테 잘 보일 수 있도록 말 좀 잘하
배현수가 육지율을 다시 한번 측은하게 바라보았다.“그럼 넌? 넌 초윤 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데?”전에 남초윤과 육지율이 이혼소동을 일으킬 때 남초윤이 육지율에게 딱 한 번 물어봤었다. 하지만 당시 육지율의 대답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였다.육지율도 확실히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어릴 적부터 육지율이 자라온 생활환경에서는 항상 그에게 한가지 관념을 밀어 넣곤 했었다.사람과 사람 사이의 왕래는 모두 이익에 의해 대체된다는 것이다.감정이라는 것은 변화무쌍한 것이기에 이익보다 온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마치 육지율의 부모님처럼 모두 상정 이익으로 혼인을 맺었다.부모님의 관계는 줄곧 담담했지만, 또한 상당히 안정적이었다.그 때문에 육지율은 그와 남초윤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로 그가 남씨 가문에 투자하고 남초윤에게 가방을 사 주면 남초윤은 그저 순순히 육 사모님 역할만 잘 해내면 된다고 생각해 왔었다.이런 관계에 문제 될 게 뭐가 있겠는가?육지율은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이 관계에 대해 부적절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오늘 남초윤은 매우 슬픈 표정으로 육지율에게 자신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고 상대방이 자신을 사랑해줬으면 좋겠다고 선포했다.사랑?그깟 사랑이 몇 푼이나 한다고?사랑이 벽 전체에 걸려 있는 저 많은 가방을 사 줄 수 있는가?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육지율은 손으로 담뱃불을 끄고 콧방귀를 뀌었다.“첫사랑이 아무리 좋아도 결국 다 기한이 지난 존재일 뿐이야.”남초윤은 현재 육지율 호적에 올려진 사람이다.김성혁이 아무리 천한 사람일지라도 설마 상간남이 되고 싶은 건 아니겠지?육지율의 자신만만한 말에 배현수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잠시 고민 끝에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다.“조심해. 첫사랑과의 추억은 쉽게 떨쳐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내가 충고하는데, 빨리 이혼해서 첫사랑과 재결합하도록 도와주면 좋은 사람으로라도 남을 수 있을 거야.”“...”배현수의 말에 육지율의 안색이 철저히 어두워졌다.“너
육지율이 과거에 했던 연애는 대체로 이런 경우였다. 육지율에게 있어 연애란 그저 심심할 때 시간 보내기 용이었다.하여 육지율이 첫사랑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정상이었다.“육 변호사님은 전에... 연애를 많이 하셨었나요?”육지율의 연애사가 그렇게나 풍부하다고?“구체적인 건 잘 모르지만, 육지율과 함께 있는 여자는 초윤 씨밖에 못 봤어.”“...”이건 친구 사이에 의리를 지키는 화법인 건가?조유진은 배현수의 말에 대해 반신반의하였다....산성 별장에 도착하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조유진은 권 여사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그 연애 프로그램 말이에요, 이미 확정되었으니 다음 주에 바로 첫 촬영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대본 보내드릴 테니 요 며칠 동안 꼭 봐봐요.”“벌써요? 대제주시에서 촬영하는 거예요?”“아니요. 인천에서 촬영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유진 씨가 받게 될 캐릭터가 조금 미움을 살수도 있는 캐릭터예요. 유진 씨는 계속 짝사랑만 할 거고 세 명의 남자 게스트들은 모두 처음에 유진 씨를 좋아하지도, 선택하지도 않을 텐데 괜찮겠어요?”조유진은 돈을 받으러 가는 것이기에 이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괜찮아요. 여사님, 정말 고마워요.”권 여사에게는 이미 생각이 있었다.“원래는 누구나 다 유진 씨에게 매혹되는 여신 이미지를 주려고 했는데 정말 프로그램에서 게스트와 이어지기라도 한다면 방송이 끝나고 다시 공식 이별을 선언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거든요. 그리고 또 그럴 필요도 없고요.”“네. 아부만 떤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매니저님, 그럼 이따가 저한테 구체적인 일정과 시나리오를 보내주세요.”“그래요. 아 맞다, 그리고 오늘 밤에는 얼굴을 공개한 영상을 하나 올려요. 연애 프로그램에 나오기 전에 얼굴 공개 먼저 하고 미리 이슈 좀 터뜨리도록 합시다.”조유진은 항상 얼굴을 공개하지 않은 채 노래만 불러 왔었기에 막상 정말 얼굴 공개를 하자니 조금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하지만 이미 조유진은 권 여사와 계약을 마친 상태
천우 별장 안.서재로부터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오빠, 난 다 오빠를 위해서 하는 거라니까. 오빠가 조유진을 좋아하는 걸 아니까 오빠와 조유진을 이어주려고 하는 거였다고요. 그런데 그 음료수를 현수 오빠가 마실 줄 알았나...”“짝!”강이찬의 손이 강이진의 뺨을 거칠게 스쳤다.“너 정말 미쳤어?”강이진의 뺨이 화끈거리게 아파져 왔다.강이진은 손가락을 꽉 쥐더니 이내 피식 냉소를 터뜨렸다.“만약 그날 밤에 오빠가 정말 조유진과 자게 됐다면 지금 이렇게 나한테 화를 내고 때렸을 것 같아요? 강이찬. 이제 인정해. 오빠는 나보다 나을 게 없는 사람이에요. 그저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기 두려워하는, 아무것도 못 하는 겁쟁이일 뿐이라고요!”눈앞의 강이진을 바라보는 강이찬의 눈 속에는 슬픔과 의혹의 기색이 역력했다.“너 예전에는 안 이랬잖아. 이진아, 대체 왜 이렇게 변해버린 거야?”“난 안 변했어! 오빠가 나에 대해서 모르는 거예요. 하지만 내가 보기에 오빠는 나에 대해서 모를 뿐만 아니라 오빠 본인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어. 오빠 심미경 사랑해요? 심미경 안 사랑하면서 왜 그 여자와 결혼한 거예요? 오빠는 그저 마음이 공허한데 현수 오빠와 조유진을 뺏을 용기가 없으니까 한 걸음 물러나서 다른 사람 찾은 거잖아요!”“...”강이찬은 주먹을 꽉 쥔 채 새파랗게 질려버린 얼굴로 강이진을 바라보았으나 결국 끝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그때, 서재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그들의 대화를 듣게 된 심미경이 시선을 내리고 손을 뻗어 아직 눈에 띄지 않는 복부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자신의 배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시울이 어느새 빨갛게 물들었다.‘아가야, 만약 엄마가 너를 데리고 이곳을 떠나, 그리고 아빠를 떠난다면 어때?’이건 심미경이 처음으로 어딘가를 떠나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어젯밤, 강이찬이 그녀의 옆에 누워 잘 때 그녀를 품에 안고 또 한 번 조유진의 이름을 불렀었다.강이찬이 꿈속에서 무심결에 조유진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심미경은
「!! 나 아직 육씨 가문 잔치에 있어서 좀 이따 네 영상 딱 기다리고 있을게. 영상 올릴 때 나한테 귀띔 좀 해줘!」육씨 가문 잔치?「너 육 변호사님과 화해한 거야?」「아니. 그냥 임무 완수하러 온 거야. 육지율 할아버지께서 우리한테 대체 둘 중 누구한테 문제가 있길래 아직도 아기가 안 생기냐고 물으셨어. 어르신께 우리 둘 다 문제가 있다고 알려드리고 싶은데 우리더러 병원을 다녀오래.」몇 초 뒤, 남초윤이 두 장의 사진을 보냈다.「한의사님께 부탁하셔서 우리를 위해 끓이신 임신보조제래. 진짜 맛없어 죽을 것 같아. 그런데 내가 맛을 봐보니까 육지율 약이 더 토 나오더라.」이윽고 남초윤은 토하는 이모티콘 하나를 덤으로 보냈다.이 몇 가지 메시지를 보자 조유진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화면 너머로부터 남초윤이 얼마나 이 보조제를 혐오하는지 너무 잘 느껴졌다.한편으로는 이혼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억지로 임신보조제를 먹어야 한다니 참으로 우스웠다.우습기도 했지만, 조유진은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나 다음 주면 연애 프로그램 촬영하러 인천에 가는데 너도 나랑 같이 갈래? 촬영장은 바다뷰가 보이는 별장인데 환경도 좋으니까 나랑 같이 기분 전환하러 가자.」「나한테 시간이 어디 있어? 좀 이따 네가 영상을 올리고 나면 난 또 그때부터 야근하면서 원고를 써야 해. 이렇게 안 하면 어떻게 독점 뉴스를 뺏을 수 있겠냐. 다음 주에 엄청 지위가 상당하신 분과 인터뷰 잡아서 시간 못 낼 것 같아. 아 너무 고통스러워. 그나저나 네가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데 배 대표님께서 반대 안 하셨어?」당시 배현수가 조유진더러 2800억을 갚으라고 하면서 조유진은 빚을 갚기 위해 권 여사의 요청을 수락하였다. 그리고 권 여사도 매우 흔쾌하게 연애 프로그램 자원을 조유진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솔직히 프로그램 하나로 2억의 출연료도 받고 인기도 얻을 수 있는 건데 아부만 떤다고 해도 완전히 이득인 셈이다.게다가 당시 이미 계약서를 모두 작성했기에 인제 와서 후회해도 소
조유진의 마음속에서는 선유가 배현수보다 더 중요할 것이다. 이건 인정할 수 있다.어찌 되었든 선유의 몸에서는 그녀의 피가 흐르고 있고 그들의 딸이기 때문이다.그는 충분히 조유진이 다시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안정희도 배현수보다 더 중요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7년 전의 법정에서 안정희가 아닌 그를 선택했을 것이다.하지만 이 또한 7년 전의 일이고 이미 다 뒤엎어진 일이니 넘길 수 있다.그러나 지금은, 이놈 저놈 다 배현수보다 중요했다.조유진이 고개를 들어 배현수를 바라보며 목을 가다듬었다. 배현수의 말 속에 담긴 의미를 알아챈 조유진의 눈가가 붉은 기를 띄었다.“현수 씨는 아직도 제가 그때 당신을 선택하지 않은 것을 원망하고 있군요. 그래요. 어떤 일은 이미 발생하면 엎질러진 물과도 같이 다시 되돌릴 수가 없어요. 그때는 제가 정말 죄송했어요. 만약 아직도 제가 당신에게 빚지고 있다고 생각되시면 저도 안 갈게요...”그때, 배현수의 핸드폰이 울렸다.발신자는 어머니가 머무는 요양원이었다.조유진도 화면을 보게 되었고 아마 또 예지은에게 문제가 생겼음을 눈치챘다.배현수가 등을 돌려 전화를 받았다.“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배현수가 통화하고 있을 때 조유진은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조유진은 알고 있다. 배현수가 여전히 넘기지 못하는 마음속의 고비는 7년 전 조유진이 법정에서 그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그렇다면 조유진은? 조유진의 마음속 고비는 예지은이 정희를 죽였다는 것이다.배현수는 만약 그들이 결혼하게 된다면 절대 그녀 혼자 혼인 속의 사소한 문제들을 맞서게 하지 않으리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이 또한 결국 만약에 그칠 뿐이다.조유진은 배현수의 아내가 되고 싶지만, 예지은의 며느리가 될 수는 없다.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범인의 며느리가 된다는 것은 너무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정원으로부터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이윽고 배현수가 항상 몰고 다니는 검은 마이바흐가 산성 별
「인제 와서 갑자기 얼굴을 공개하는 건 또 무슨 뜻이래? 누가 봐도 돈 뜯어내려고 하는 거잖아. 그런데 너무 예쁘셔서 이분은 사기 쳐도 인정이다.」「햇살 여보! 저와 결혼해주세요!」「흑흑흑 어떻게 이렇게 예쁠 수 있지? 언니 드라마에 출연해주시면 안 돼요? 최근에 소설 원작 드라마 주인공이 너무 못생겨서 봐줄 수가 없다고요. 언니 진짜 소설 속에 맑고 차가우면서 희고 고운 백화와도 같은 캐릭터 이미지와 너무 어울려요! 언니! 진짜 저 사랑해주세요!」...곧 그녀가 올린 영상은 알고리즘을 타고 큰 인기를 끌었다.영상 업로드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던 남초윤은 바로 스타 엔터테인먼트의 간판을 달고 가장 먼저 이슈를 포착하여 영상을 편집해 기사를 내보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영상은 곧바로 수만 개의 좋아요를 받게 되었다.이윽고 조유진의 기본 정보도 네티즌들에 의해 낱낱이 파헤쳐지기 시작했다.대제주대학교, 신문방송학과 17학번에서 소문난 얼짱 미인.그러자 댓글 창에서는 또 한 번 난리가 났다.「씁하씁하! 언니가 명문대 출신이라니!」「인플루언서들 중에는 고학력 출신이 엄청 드문데 바로 입덕합니다! 진짜 화면에서 못 빠져나올 것 같아요.」「17학번 얼짱이셨구나. 어쩐지 예쁘시더라.」「저와 결혼해주세요. 제발요!」「언니 빨리 데뷔해주세요! 언니 얼굴은 정말 모든 로맨스 소설 속 맑고 여린 백화 여주 캐릭터 이미지와 어울려요!」...다른 한편, 배현수가 예지은의 일을 처리하고 차에 탑승하자마자 틱톡으로부터 알림 하나가 떴다--구독하신 「조햇살」님께서 새로운 영상을 업로드 하였습니다.배현수가 전에 조햇살 계정을 구독한 적이 있으므로 알림이 뜨는 것이었다.무의식 간에 알림을 클릭하여 계정으로 들어갔다.배현수는 그녀가 전에 올렸던 영상들을 계속하여 꼬박꼬박 챙겨봤었다.하지만 오늘 밤 업로드된 영상은 이전에 업로드했던 영상들과 달랐다.조유진이 얼굴을 공개한 것이다.오늘 영상의 좋아요 수와 공유 수는 전보다 몇 배나 더 많이 늘었다.조유진
육성일의 압도적인 기운은 전화 너머에서도 남초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묵직한 압박감은 느껴졌다. 그때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는지, 어떻게 육씨 집안에 시집갔는지 스스로도 의아했다. 만약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차라리 구걸을 하더라도 절대 육씨 집안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남초윤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할아버지, 부탁드려요. 저희가 약속했던 건 두 달 전이었잖아요. 아직 두 달이 채 안 지났고, 제가 지금 아기를 가졌다고 해도 확인이 안 될 수도 있어요.” 그 말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기에 육성일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전화를 겨우 넘겼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이번엔 ‘개자식’ 육지율이었다. “...” 할아버지와 손자는 통화 시간까지 맞춘 것처럼 기가 막히게 연달아 전화를 걸어온다. 그녀는 냉랭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왜요?” 육지율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폭탄이라도 먹었어요?” 육지율이 자신의 책을 내리게 만들고, 지난달과 이번 달 원고료도 다 날려버린 상황에서 그녀가 전화를 받아준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아직 유지 중이었고 필요한 것도 있으니 남초윤은 결국 목소리를 가다듬고 좀 더 부드럽게 말했다. “지율 오빠, 무슨 일이에요?” “... 뭐라고 불렀어요?” “지~율~오~빠~” 그녀는 유설영의 말투를 흉내 내며, 아니, 오히려 더 능숙하게 말했다. 육지율은 순간 닭살이 돋았다. “제발 평소처럼 말해요. 저녁에 내 친구가 귀국하는데 같이 식사해요. 6시에 잡지사로 데리러 갈게요.” 남초윤은 단번에 거절했다. “난 안 갈래요.” “저녁에 뭐 다른 약속 있어요?” 남초윤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결혼한 지 3년 됐지만 당신은 나한테 친구 한 명도 소개해 준 적 없잖아요.” 그리고 이제 곧 이혼할 텐데 친구를 만날 필요는 더 없었다.이혼하고 나서 친구들이
조유진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학교에서 누가 너 괴롭히진 않았어?” 배선유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응, 나 괴롭히는 사람 없어. 할아버지가 우리 학교에 엄청난 돈을 기부하셔서 선생님들도 항상 나한테 잘해주시고 많이 관심 해주셨어. 그래서 나도 함부로 장난칠 수가 없어. 혹시 선생님이 할아버지한테 이르실까 봐.” 배현수는 이 말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배선유는 작은 악동처럼 말이 많았고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아이였다. 배현수의 말에도 자주 대꾸를 하니, 만약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면 벌써부터 떠벌렸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남을 괴롭히는 쪽에 더 가까웠다. 성남에서 엄준은 배선유를 엄청나게 아끼며 키웠고, 그래서인지 아이는 주눅이 들지 않고 활발하게 자랐다.조유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다행이네. 우리 선유가 공부를 게을리할 걱정은 없겠어.” 배현수는 딸을 겁주듯 말했다. “너 공부 안 하고 일찍 연애라도 시작하면, 널 대제주에 데려와서 24시간 동안 지켜볼 거야.” 배선유는 입술을 내밀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이건 너무 심해요! 나 혹시 쓰레기통에서 주워 온 거 아니에요?” 배현수는 코웃음을 치며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말했다. “공부 안 하면 좋은 날은 없을 거야.” 잠시 후, 학교 종이 울릴 시간이 가까워졌다. 배선유는 전화를 끊으려다가 친구가 그린 결혼사진 두 장을 영상 속으로 건네받았다. “선유야! 너랑 지우의 결혼사진 내가 그려놨어! 한 번 봐봐!” 배선유가 물었다. “한 장에 얼마야?” “너니까 공짜로 해줄게! 대신 다음번엔 나랑 결혼해 줄 수 있어?” “생각해볼게!” “...” 이 속도로라면 그들 부부는 도대체 몇 명의 사위를 맞이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한편, 스타라이트 매거진에서.남초윤이 사이트 편집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그녀의 책은 예상대로 플랫폼에서 삭제되었고 이달 원고료는 한 푼도 들어오지 않
[합법적 부부] 함께 올라온 사진엔 결혼반지를 낀 두 손이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이 게시글이 올라가자마자 마치 깊은 바다에 떨어진 폭탄처럼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어 반응했다. 육지율: [8년의 여정 끝에 드디어 자랑할 수 있네!] 송하진: [어! 전 두 사람 목숨 구해준 은인이에요. 제가 아니었으면 두 사람이 어떻게 혼인신고까지 했겠어요? 당장 절 주빈으로 식사 대접해요!] 남초윤: [아아아아! 유진이를 결혼이라는 무덤 속으로 끌어들이다니! 대표님 너무하세요!] 엄창민: [내 여동생한테 잘해요. 혹시라도 괴롭히면 내 주먹이 용서 못 해요!] 엄명월: [형부! 이렇게 좋은 일에 저희한테 뭐라도 사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강이찬: [축하해, 결국 원하는 대로 됐네.] 심미경: [백년해로하세요.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서정호: [대표님, 일 다 끝냈으면 빨리 돌아오세요. 의사 선생님이 여기서 엄청 화내고 있어요. 저 더는 못 버틸 것 같아요!] 학교 가기 싫어: [와! 아빠랑 엄마가 드디어 결혼했네요! 헤헷, 아빠, 나도 오늘 결혼했어요!] 배현수는 배선유의 댓글을 보고 순간 검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조유진이 운전하며 그의 미세한 변화를 눈치채고 물었다. “왜 그래요?” “선유가 결혼했다는데.” “뭐라고요?” 조유진은 깜짝 놀라 차를 도로 옆에 세우고 급히 배선유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저쪽에서 배선유는 학교에 있었는데 마침 쉬는 시간이었다. 외국어 학교라 분위기가 자유로워 아이들은 평소에도 부모님과 연락을 하기 위해 휴대폰을 가지고 다녔다. 배선유는 전화를 받자마자 얼굴을 카메라 앞으로 들이밀었다. “엄마, 아빠! 나 사진 보고 싶어!” 조유진은 그녀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나서 물었다. “선유야, 아까 결혼했다고 했잖아. 누구랑 결혼한 거야?” “우리 반 한지우랑! 엄마, 나 오늘 엄청 많은 축의금을 받았어! 내가 다 적어 놨어!”
조유진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갈게요.” 그가 환자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이번 한 번은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 다음 날 이른 아침. 서정호가 산성 별장에서 두 벌의 정장과 결혼 서류를 준비해왔다. 조유진은 오랜만에 풀 메이크업을 하고 머리도 고데기로 말았다. 그녀는 하얀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사진에 잘 나올 수 있도록 최대한 신경 썼다. 그녀는 한동안 이렇게까지 꾸미지 않았는데 하이힐을 신고 배현수 앞에 서니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조금 어색해졌다. 그래서 물었다. “나 어때요?” “아름다워. 넌 언제나 아름다워.” 배현수는 전혀 망설임 없이 그녀를 칭찬했다. 조유진은 웃음을 참으며 옆에 있던 넥타이를 집어 들고 배현수에게 매어주었다. 배현수는 그녀의 손길에 고개를 숙이며 협조했다. 조유진은 평소와 다르게 더 복잡하고 정중한 ‘엘드리지 매듭’으로 넥타이를 맸는데 배현수는 평소에 간단한 윈저 매듭만 했었다. “이 매듭은 좀 생소하네.” 조유진은 넥타이를 다 매고 나서 그의 셔츠와 정장 재킷의 깃을 정리해 주었다. “이게 엘드리지 매듭이라고 해요. 중요한 자리에서 어울리는 방식이죠. 어때요, 괜찮아요?” “멋져. 하지만 여보, 우리 서둘러야 해. 조금 있으면 의사가 올 거야.” 웃으며 농담하듯 이야기하던 배현수는 조유진의 외투를 챙겨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고, 그녀를 한 손으로 감싸 병실을 몰래 빠져나갔다. 두 사람은 마치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와 차에 올랐다. ... 그들이 빠져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사가 병실에 회진을 왔다.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그곳에는 ‘무관한 사람’만 남아 있었다. 의사는 엄숙한 표정으로 서정호를 보며 물었다. “환자는 어디 갔죠? 튜브까지 다 뽑다니, 누가 뽑았습니까?” 서정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환자 본인이 뽑았습니다.” “도대체 어디 간 겁니까? 팔을 정말 망가지게 할 작정인가요
배현수의 가슴이 떨렸다. 그는 조유진과 이마를 맞대며 낮게 속삭였다. “그때 난 네 옆에 있진 않았지만 네 뒤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 그런데 왜 울었어?” “현수 씨 생각이 났어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펐거든요. 내가 이렇게 좋은 남자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아쉽고 후회스러웠죠. 그래서 울었어요.” 지금 이렇게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은 느낌이었다. 조유진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이번 눈물은 슬픔이나 후회 때문이 아니었다. 감동과 감사함 때문이었다. 운명이 그들을 온갖 고난 속에서도 끝끝내 묶어 놓았고, 그들 사이에선 이제 더 이상 헤어질 수 없는 깊은 연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배현수는 긴 손가락을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천천히 끼워 넣으며 손을 꼭 맞잡았다. 순간 그들의 손바닥에서 따뜻함이 퍼져나갔다. 그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진아, 넌 한 번도 날 잃은 적 없어. 우리가 몇 번을 떨어져도, 얼마나 오랫동안 떨어져 있더라도 난 결국 널 찾아내서 꼭 안고 말해줄 거야. 사랑한다고. 오직 너만 사랑한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조유진은 배현수의 유일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조유진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현수 씨, 우리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까요?” “그럼.” 그의 대답은 8년 전과 똑같았다. 짧지만 확고했으며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조유진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손목에 걸린 달콤한 연녹색 비취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상처가 나으면 우리 같이 아주머니를 위한 좋은 묘지를 고르러 가요. 그분을 위한 의관묘라도 만들어 드리는 게 어때요?” “아직도 ‘아주머니’라고 불러?” 조유진은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며 말투를 바꿨다. 배현수는 그녀의 팔찌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풍수 좋은 곳을 따로 고를 필요는 없어. 어머니께
육지율은 그 필명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기억해 냈다. “이 자식! 기억났어! 이 녀석이 책에서 날 모욕하지 않았나? 내 명성을 망가뜨렸잖아?” 남초윤은 급하게 말했다. “잘못 본 거 아니에요? 비엘 작가가 주인공을 모욕할 리가 없어요! 그러면 밥숟가락 들고 욕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어요?” “나를 ‘수’로 묘사한 게 모욕이 아니고 뭐예요? 왜 항상 배현수가 공이냐고?” 남초윤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그 부분을 신경 쓰고 있었던 거였다.남초윤은 그가 진짜 작가를 고소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래서 변명하듯 말했다. “다음번엔 지율 씨가 공이고, 배 대표님이 수가 될 수도 있잖아요. 원래 BL 소설에서는 공수 구분이 모호해요. 겉보기에 수 같아도 사실은 공일 수도 있다고요!” 조유진은 살짝 의문을 제기했다. “난 현수 씨가 수 같지는 않았는데. 만약 현수 씨가 진짜 수라면 캐릭터 붕괴지. 차라리 육 변호사님이 수인 게 더 어울려. 자유롭고, 매력적이고, 다정하잖아.”“?”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육지율은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며 조유진에게 따졌다. “아니, 조유진. 내가 약해 보이는 수 같은 느낌을 준다고?” “...” 배현수는 차갑게 말했다. “유진이가 쓴 것도 아닌데 왜 화내? 그럴 시간 있으면 작가나 고소해.” 남초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그냥 재미로 쓴 거지 무슨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작가를 고소하면 너무 쪼잔해 보일 거예요!” 하지만 육지율은 이성을 잃고 이를 악물었다. “쪼잔해 보이든 말든, 그 책을 하차할 거예요!” 자신이 소설 속에서 수 역할로 묘사되었고, 그것도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있다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조유진은 객관적으로 말했다. “사실 책 내용은 나쁘지 않아요. 꽤 재미있고 독자도 많아요.” “독자가 몇 명인데?”“몇만 명 정도?” “뭐?”‘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날 수로 상상했
병실에서 조유진은 그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앉아 있다가 잠들었다. 잠에 들어서도 손가락이 배현수의 손에 살짝 얽혀 있었는데 다정하고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이 사진은 완전히 남자 친구 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입원 생활이 지루하다고 하다니.육지율이 댓글을 남겼다. “뭐야, 입원했어? 혹시 가정 폭력이라도 당한 거야?” 댓글을 남기고 나서 육지율은 차에 시동을 걸며 남초윤에게 말했다. “과일 바구니 좀 사서 병문안이나 가요. 친구가 입원했어요.” “친구? 설마 배 대표님이세요? 어디 아파요?” 육지율은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진짜 아플 수도 있고 그냥 꾀병일 수도 있고.” 혹시 모른다. 꾀병일지도....병원에서는 조금 전 장은숙이 산성 별장에서 저녁 식사를 가져왔다. 수술 후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밤은 죽 같은 유동식만 먹어야 했다. 배현수는 오른손을 쓸 수 없었기에 조유진이 죽 그릇을 들고 숟가락으로 그에게 먹여주고 있었다. 첫 숟가락을 그의 입 앞에 가져가자 배현수는 뜨겁다고 투덜댔다. 조유진이 후후 불어 온도를 맞춘 후 말했다. “이제 적당히 식었어요.” 배현수는 그제야 죽을 한 입 삼켰다. 그 순간 병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장난스러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며칠 못 본 사이에 아기로 됐네? 밥도 혼자 못 먹고, 조유진이 널 너무 오냐오냐한 거 아냐?” 조유진이 놀라서 뒤돌아보니, 육지율과 남초윤이 병실에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설명했다.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입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며칠 동안 오른손은 쓰지 말라고 하셨어요. 상처가 더 심해질 수 있거든요.” 그러자 육지율은 다짜고짜 그의 오른쪽 어깨를 툭 쳤다. “진짜야?” 배현수는 고통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미친놈아!” 조유진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변호사님, 진짜로 다쳤다니까요! 어깨에 구멍이 났다고요, 함부로 건드리지 마세요!
그녀를 겨우 한 번 데리러 온 김에 출퇴근길의 불편함을 느끼고는 아예 차를 사서 해결하려고 하다니, 정말 육지율 다운 방식이었다.이 4S 매장에서 파는 차들은 모두 포르쉐였고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가장 저렴한 모델도 수천억 원대였다. 남초윤은 이미 남씨 집안이 육지율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었기에, 그가 차를 선물해 주겠다고 해도 받을 수 없었다.남초윤은 차분히 말했다. “앞으로는 출퇴근 길에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 굳이 차를 선물할 필요는 없어요.”육지율은 순간 멈칫했다가 살짝 비웃으며 말했다. “차 한 대 선물한다고 귀찮다는 딱지가 붙어요? 이런 확산적 사고방식은 참 대단하네.”“....”정말 그런 게 아니란 말인가?평소에도 성격이 불 같았던 육지율은 차를 주겠다고 하면서도 그녀를 달래는 상황이 우스웠는지 어이없어 웃었다. 둘 중 누가 더 성격이 나쁜지 모를 일이었다.영업 직원은 남초윤을 육지율이 외부 애인으로 오해했고, 이 큰 거래가 깨질까 봐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가씨, 변호사님께서 차를 사주시는 건 출퇴근 시간을 줄여서 그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게 해주려는 마음이 아닐까요?”남초윤은 더 이상 그의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미 갚을 수 없는 빚이 너무 많았고 계속해서 더 쓴다면 두 아이를 낳아야 겨우 그 빚을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나 육지율은 그 여느 때처럼 행동했다. 그는 VIP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빨리 골라요. 차 안 사면 집에 못 돌아가요.”남초윤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여자 영업 직원이 다가와 다양한 모델을 소개할 때, 그저 듣기만 했다. 그 직원은 미소를 띠며 말도 아주 달콤하게 했다. “변호사님은 저희 매장의 단골이세요. 그런데 여자를 데리고 온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변호사님이 정말로 많이 아끼시는 것 같아요. 비싼 차를 고르시면 아마 더 기뻐하실 거예요.”역시, 판매왕이었다.감정적 가치를 제공하는 법을 너무나 잘 아는 직원이었다. 하지만 남초윤은 그저 외부의
남초윤은 결혼 상태를 한 번도 업데이트한 적이 없었다. 동료들 눈에는 여전히 미혼으로 보였다.처음 그녀와 육지율의 스캔들이 터졌을 때 온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사실 모두 육지율의 매력적인 외모 때문이었다. 아무도 남초윤처럼 작고 평범한 존재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육지율이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들의 침대 사진이 언론이나 남재원에게 유출되지 않은 것도 기적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육지율이라는 유명한 바람둥이가 ‘함정'에 빠져 순진한 여자와 관계를 맺은 후, 마지못해 결혼했다는 소문만 믿고 있었다.육지율이 연예계 인물이 아닌 만큼 동료들 중에서도 아무도 그 사건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육지율이 ‘좋은 집안의 아들’ 이라는 사실만 기억하고 그의 결혼 상대가 누군지에는 무관심했다. 그녀는 어디에도 크게 드러나지 않았고 언론에서도 그의 곁에 서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남초윤은 그렇게 세상 사람들의 눈에 숨겨져 있었다.동료들은 그저 그녀가 조금 집안 배경이 있는 부유한 여자인 줄로만 알았고 육지율의 아내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육지율의 아내라면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그들과 같이 일하며 고생할 일은 없을 테니까. 설령 과거에 파파라치 일을 했더라도 그렇게 높은 곳에 시집갔다면 육씨 집안이 그녀를 계속 그 일을 하도록 놔두지 않았을 거라고 여겼다.비록 세상은 모두 직업의 평등을 외치고 있지만 상류 사회에는 여전히 그들만의 규칙이 있었다. 체면과 명예가 그들의 신분과 존엄을 상징했다. 파파라치라는 직업은 육씨 집안에게 있어 절대 자랑스러울 수 없는 일이었으니, 육지율과 강란희가 그녀에게 좀 더 체면 있고 유망한 직업들을 제안했지만 남초윤은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렇게 시간을 보낸 끝에 동료들은 하나둘씩 퇴근하고 남초윤만 남았다. 한 시간이 흐른 뒤 남초윤은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저녁 7시가 되었다. 그녀는 통화 기록을 훑어보고 다시 한 번 메시지를 확인했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