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287화

작가: 남희은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01-25 19:00:00
남초윤은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건물 테라스로 올라가 바람을 쐬었다.

그때 갑자기 등 뒤에서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윤이야.”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 소리는...

순간 남초윤은 두 손으로 난간을 꽉 잡았다.

윤이는 남초윤의 애칭이다. 윤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그녀의 부모님 외에... 한 사람밖에 없다.

심지어 육지율과 조유진조차 윤이라는 애칭을 모른다.

남초윤 고개를 천천히 돌렸고 당장이라도 숨이 멎을 듯 온몸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김성혁... 그가 돌아왔다.

희미한 불빛 아래 서 있는 김성혁은 늘 그렇듯 우월한 기럭지를 자랑하며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5년 만이다. 시간은 기억 속의 가난한 젊은이를 도도하고 멋진 훌륭한 청년으로 완전히 탈바꿈해 놓았고 그에게서는 예전과 사뭇 다른 성숙함이 물씬 풍겼다.

남초윤은 자리에 얼어붙은 채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한참 후에야 그녀는 억지로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태연한 척 인사했다.

“안녕, 오랜만이야.”

...

한편 배현수는 몸을 휘청거리며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강이진이 뛰어오더니 그의 팔을 부축했다.

“현수 오빠, 어디 아파요?”

강이진의 팔을 뿌리친 배현수의 얼굴에는 냉기가 감돌았다.

하지만 그 모습에 주눅들 강이진이 아니다.

그녀는 다시 배현수 옆으로 다가오더니 그의 팔을 잡고 말했다.

“현수 오빠, 안색이 안 좋아 보여요. 설마 열이 나는 건 아니죠? 내가 방까지 부축할게요. 가서 좀 쉬어요.”

“꺼져!”

배현수는 다시 한번 강이진을 밀쳤다.

하지만 강이진은 전혀 물러날 기색이 없이 다시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대신 이번에 그녀는 다른 방법으로 배현수를 설득했다.

“현수 오빠, 오빠 지금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그냥 가겠어요. 내가 방까지 일단 먼저 부축해 드리고 유진 언니 불러서 오빠 돌보라고 할게요.”

조유진이라는 세글자에 배현수의 눈빛도 순간 반짝 빛났다.

강이진은 배현수가 아무 말이 없자 자기 제안을 받아들인 줄로 알고 다시 한번 그의 팔을
잠긴 챕터
앱에서 이 책을 계속 읽으세요.

관련 챕터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288화

    순간, 배현수는 그녀의 허리를 덥석 껴안았고 차가운 눈빛으로 육지율을 향해 외쳤다.“지금 뭐 하는 거야?”하지만 육지율은 이미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어 테라스 앞까지 왔다.그러자 조유진이 다급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괜찮아요. 저 안에 초윤이와 김성혁이 있는데... 저는 육 변이 오해할까 봐...”“두 사람이 안에서 뭐 하고 있는데?”그 말에 조유진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어 그저 묵묵히 가만히 있었다.남초윤은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이다. 그래서 남초윤이 무엇을 하든 조유진은 반드시 남초윤 편에 설 것이다.설사 남초윤이 대역죄인이 될 만한 짓을 했다 하더라도 조유진은 무조건 남초윤 편이다.조유진은 여전히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편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배현수는 이미 무언가 짐작한 듯 물었다.“남초윤과 김성혁이 껴안고 있었어?”“아니요...”“그럼 키스했어?”“초윤이는 절대로 일부러 한 게 아닐 거예요.”배현수는 의미심장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남초윤이 사람을 죽이겠다고 하면 너는 칼을 준비해 주겠네?”조유진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물론 당연히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조유진이 목을 빼 들며 테라스의 상황을 보려고 하자 배현수는 그녀를 잡아당겼고 그녀는 중심을 못 잡고 비틀거리다가 다시 그의 품에 넘어졌다. 순간 두 사람의 코끝이 마주치며 서로의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다. 그녀는 얼굴이 살짝 붉어진 채 배현수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왜 그래요?”배현수는 그녀의 초롱초롱한 눈을 보며 말했다.“네가 필요해. 나 지금 너무 힘들어...”한 글자 한 글자 너무 똑똑하게 들려서 부정할 수도 없었다.조유진이 무슨 상황인지 미처 파악도 하기 전에 배현수는 이미 그녀를 껴안고는 그녀의 목에 얼굴을 파묻은 채 중얼거렸다. “유진아, 나 좀 부축해 줘. 응?”“그런데 저기 초윤이가...”“지금 도움이 더 필요한 사람은 나야. 초윤 씨가 아니라.”배현수는 조유진의 말을 끊으며 마지막 한 가닥의 희망

    최신 업데이트 : 2024-01-25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289화

    조유진은 고개를 들어 배현수를 향해 새하얀 목덜미를 드러내며 눈을 꼭 감았다.그리고는 떨리는 마음을 애처 참으며 입을 열었다. “현수 씨, 하려면 빨리해요.”순간 배현수는 그녀의 목을 잡고 몸을 수그렸고 그의 뜨거운 몸이 그녀를 전부 감쌌다....한편 테라스에서.남초윤이 김성혁을 밀치자 낯익은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지율 씨...”그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로 남초윤의 앞에 선 채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너무 일찍 와서 두 사람 방해했네요? 옛날얘기는 잘하셨어요?”옛날얘기.육지율은 특히 이 두 단어에 무거운 감정을 싣고 물었다.남초윤의 화사한 얼굴도 점점 핏기 없이 창백해졌다.사실 조금 전, 그녀도 김성혁이 그녀에게 키스할 줄 몰랐다.김성혁은 자기 분수를 잘 아는 사람이라 상황 파악도 잘하고 가벼운 행동을 쉽게 하지 않는다. 하물며 두 사람은 진작에 헤어졌다. 그런 그가 남초윤을 만나자마자 이렇게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조금 전 키스는 남초윤이 먼저 한 게 아니다. 그리고 그녀와 육지율의 결혼도 비즈니스 필요로 한 것이지 서로에게 감정이란 전혀 없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육지율과 마주쳤을 때 남초윤은 저도 모르게 죄인이 된 것 같았다. 그녀가 육지율을 향해 걸음을 옮기려 하자 갑자기 옆에 있던 김성혁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얼마나 세게 꽉 잡았던지 남초윤이 벗어나려고 해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때 김성혁이 입을 열었다.“윤이야. 나에게 소개 안 해줘? 이분은?”윤이야?육지율은 처음으로 남초윤을 부르는 애칭이 윤이라는 걸 알았다. 순간 남초윤은 목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저는 육지율이라고 합니다. 초윤이 남편 되는 사람이에요.”육지율은 말이 끝나자마자 성큼성큼 걸어가 남초윤의 손목을 잡았다.하지만 김성혁이 손을 놓지 않자 육지율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비웃는 얼굴로 말했다.“김 대표님도 체면이 있는 분이신데 이렇게 남의 아내를 붙잡고 손을 놓지 않으면 사람들이 안 좋게 보

    최신 업데이트 : 2024-01-26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290화

    “남초윤이 언제 결혼했는지 알아봐 줘. 또... 결혼한 이유도.”...육지율은 남초윤의 손을 끌고 연회장에서 나왔다.그의 걸음 폭이 하도 커 하이힐을 신고 있는 남초윤이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였다.그녀는 육지율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지율 씨, 뭐가 기분이 나쁜 건데요?”남자는 그녀를 세면대 쪽으로 끌고 가더니 한마디 했다.“깨끗이 씻어요.”그 말에 남초윤은 순간 멈칫했다.“뭐라고요?”“왜요? 섭섭해요? 김성혁이 돌아왔는데 더 이상 예전의 가난뱅이가 아니어서 후회돼요? 당신 아버지도 김성혁에게 꺼지라고 못 하겠고 이제는 남씨 가문의 사업을 위해서 자금을 대줄 능력도 생겼으니 나와 이혼이라도 할 거예요?”이것은 육지율이 두 번째로 그녀 앞에서 ‘이혼’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것이다. 첫 번째는 선유가 그녀와 김성혁의 딸인 줄 알았을 때였다. 물론 남초윤은 이런 의심에 너무 어이가 없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남씨 가문의 사업에 필요한 자금줄이었기에 그녀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육지율의 말에 남초윤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결혼 전에 육 대표님이 그랬잖아요? 결혼 후에도 알아서 각자 즐기자고? 서로 사생활 침범하지 말고. 그런데 왜요? 다른 남자랑 뽀뽀한 것 같고 질투라도 하는 거예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뭐 그런 내로남불인 거예요?”“누구와 같이 놀든 상관 안 해요. 술집에 있는 이름 모를 아무나 다 상관없어요. 하지만 김성혁은 안 돼요. 잊지 말아요, 당신은 육 씨 집안 며느리라는걸!”그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로 말을 하고 있었다. 평소 건들거리는 모습과는 완전 딴판이었다.하지만 이것은 남초윤에게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지금 이 모습이야말로 육지율의 가면을 벗은 진짜 모습이기 때문이다.두 사람은 이제 결혼한 지 막 2년이 되었다.육지율과 관련된 스캔들은 수도 없이 많았고 남초윤이 직접 처리한 것들을 다 세려면 열 손가락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연예계 뉴스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남초윤에게 육지율은 항

    최신 업데이트 : 2024-01-26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291화

    오늘 저녁, 김성혁이 돌아왔으니 환승할 곳을 찾았기에 더 이상 이혼도 두렵지 않다는 건가? 남씨 가문, 하... 지난 2년간 남씨 가문에 들어간 돈이 얼만데 차라리 지나가는 개나 줘버릴걸! 개를 키우면 뼈다귀 하나만 던져줘도 주인에게 고맙다고 꼬리를 흔드는데 남초윤은 오히려 눈을 치켜뜨며 대들고 있으니!여기까지 생각한 육지율은 인상을 더 심하게 찌푸리며 발아래 액셀을 힘껏 밟았다.육지율이 탄 컬리넌은 어두운 밤을 가르며 쏜살같이 내달렸고 남초윤에게로 유턴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남초윤은 큰길에 서서 조유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조유진은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았다.이때 검은색 벤틀리 한 대가 그녀 앞으로 다가와 차창을 천천히 내리더니 그 안에는 김성혁의 얼굴이 보였다. “타. 집까지 바래다줄게.”무슨 마음에서였을까? 몇 초 동안 망설이던 남초윤은 이내 별말 없이 드레스 자락을 움켜쥐고 그의 차에 올라탔다.육지율이 그녀가 환승할 곳을 찾았다고 했듯이 어쩌면 진짜 그럴지도 모른다.그래서 이혼이라도 하려고?이혼하면 하는 거지 굳이 남초윤이 세 번째로 이혼하자는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매번 싸울 때마다 남초윤은 머리를 숙이고 육지율을 달랬다.육지율은 어릴 때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부잣집 도련님이다. 그래서 거만하고 제멋대로이며 그 누구도 안중에 없다. 한마디로 눈에 뵈는 게 없다. 그래서 남초윤이 그를 달래고 타이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절대 분위기 파악을 못 하는 염치없는 사람이 아니다. 적시 적소에 항상 본인 분수에 맞게 그리고 필요할 때는 능글맞은 태도로 사람을 대한다. ...호텔 로얄 스위트룸.배현수의 입술이 하얀 그녀의 피부를 헤엄치듯 어루만지고 있었다. 조유진은 두 손을 꼭 쥔 채 온몸을 심하게 떨었다.그녀는 최대한 이 상황을 즐겨보려고 노력했지만 눈을 감자마자 안정희가 계단 아래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누워있던 모습이 저도 모르게 머릿속에 떠올랐다.그날 안정희

    최신 업데이트 : 2024-01-26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292화

    조유진의 모습을 본 순간, 아까부터 가까스로 욕구를 참고 있던 배현수의 눈에 빛이 반짝였다.그는 침대 머리맡에 팔을 기댄 채 일어나 앉아 힘겹게 손을 들어 문 앞에 있는 조유진을 향해 말했다.“다시 들어와 놓고 거기 그렇게 서 있으면 어떡해?”그 물음에 조유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배현수는 그녀가 겁을 먹고 있다고 생각해 얼굴에 살짝 미소를 띠며 말했다.“싫으면 건드리지 않을게. 이리와 앉아, 유진아.”조유진은 한 번 크게 심호흡하더니 천천히 배현수 앞으로 다가갔다.순간 침대 끝에 앉아 있는 배현수는 그녀를 품으로 확 끌어당겼고 조유진은 그 이끌림에 따라 그의 다리에 앉았다. 배현수는 자신의 이마를 살며시 그녀에게 기대었다. 그의 욕구는 이미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지만 최대한 태연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다시 돌아왔어?”사실 조유진은 그대로 갈 수도 있었다.그녀가 이렇게 배현수를 거부하는데 그가 어떻게 조유진을 잡고 놓지 않으려 하겠는가? “현수 씨는 채권자이고 저는 아직 2천 8백억 원을 빚졌어요. 빚쟁이 주제 도망치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해요.”그녀의 진지한 대답에 배현수는 피식하며 미소를 지었다.배현수는 그녀의 코끝을 한 번 톡 치더니 그녀를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웃었다.조유진이 계약에 대해 이렇게 진지하게 생각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그녀는 빚을 갚기로 약속하고 또 정말 부지런히 빚을 갚으려 하고 있다.하지만 조유진은 배현수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배현수의 불덩이 같음 몸 상태를 빨리 해결하는 것이었다.그녀는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내가... 내가 어떻게 하면 현수 씨를 도울 수 있을까요?”그러자 배현수는 쉰 목소리로 그녀를 보며 되물었다.“정말 나를 돕고 싶은 거야?”“네...”돕고 싶지 않았다면 절대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배현수가 물었다. “병원에 데려다줄래?”그 말에 조유진은 일어나 그를 부축하려 했다.

    최신 업데이트 : 2024-01-26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293화

    각자 알아서 즐기는 것은 마치 육지율에게만 적용이 된 듯 남초윤은 함부로 즐길 수도 즐겨서도 안 되었다. 이 비즈니스 결혼은 남 씨 집안에서 육지율에게 부탁해 겨우 진행된 것이다. 그래서 남초윤은 이익만 보고한 결혼 앞에서 절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지난 2년 동안, 그녀는 이렇게 힘든 날들 속에서 살아왔고... 이제 더 이상은 참기 어려울 지경까지 이르렀다.순간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남초윤은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조차 잊은 듯 슬프게 흐느꼈다. 김성혁은 깨끗한 손수건을 건네며 한마디 했다. “이걸로 닦아.”“고마워요.”남초윤은 그가 건네는 손수건을 받아 눈물을 닦았고 이미지 관리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듯 코까지 풀었다.옆에 앉아 있는 김성혁은 그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쳐다봤다.남초윤은 아직도 설움이 가시지 않았는지 계속 흐느끼며 말했다. “나중에 새것 하나 사줄게요. 이건 제가 더럽혀서... 죄송해요.”하지만 김성혁이 신경 쓰는 것은 절대 손수건 하나가 아니다. 그저 자신이 그녀 옆에 없는 이 시간 동안 그녀가 어떻게 지내고 있었는지가 너무 궁금했다. 하지만 울음이 그치지 않는 그녀를 보니 분명 잘 지내지는 못한 것 같았다.김성혁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예전처럼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다.하지만 그녀가 결혼했다는 것이 순간 생각난 김성혁은 올렸던 손을 다시 내렸다. 늘 상황 파악을 잘하고 자신이 있어야 할 곳, 해야 할 일, 하면 안 되는 일, 모든 것을 자신의 분수에 맞게 행동하는 김성혁이다. 오늘 밤 그녀에게 키스한 이유는 남초윤이 결혼한 줄 진짜 몰랐기 때문이다.5년 만에 그녀를 다시 만났지만 가슴은 여전히 그때처럼 두근거렸다.젊었을 때 소중한 사람을 못 알아본 대가는 일생을 들여 치러야 했다.사실 김성혁은 그녀를 옆에서 이렇게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충분히 귀국한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곧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고 차에서 내린 남초윤이 김성혁에게 한마디 했다. “데려다줘서

    최신 업데이트 : 2024-01-27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294화

    두 시간 뒤...로얄 스위트룸은 아직 애매한 분위기가 가시지 않았다.배현수가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만지며 물었다. “힘들어?”조유진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분명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당장 쓰러질 것 같이 아픈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정신이 맑아 보이지? 이미 욕구를 해결해서...? 그래서 기분이 상쾌한건가?화장실로 들어간 조유진은 수도꼭지를 틀었고 찬물이 그녀의 두 손에 남은 뜨거운 열기를 씻어냈다.그때 배현수도 화장실로 들어오더니 넓은 가슴을 그녀의 등 뒤에 대며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손이 아파?”말을 하고 있는 배현수의 얼굴은 너무 진지했고 전혀 농담하는 것 같지 않았다. 조유진은 그의 말에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았고 대신 옆으로 걸음을 옮겨 그의 품을 벗어났다.“늦었어요. 현수 씨 상태도 많이 좋아진 것 같으니 빨리 산성 별장으로 가요. 선유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요.”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가방과 휴대전화를 챙기며 방을 나서려 했다.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니 12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선유에게 전화할까 말까를 고민하면서 휴대전화를 본 조유진은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가 온 것을 발견했다. 전부 남초윤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오늘 밤 조유진에게는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 그녀는 이전의 일들을 잠시 잊었었다. 그리고 휴대전화의 남초윤의 이름을 보고서야 잠시 잊었던 기억들이 다시 생각났다.남초윤과 김성혁이 테라스에 있던 모습... 그리고 그 모습을 육지율이 보게 된 상황...물론 조유진은 그 후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지만 분명 심상치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남초윤이 이 시간에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는 것 자체가 육지율과 싸웠다는 것을 설명한다.여기까지 생각한 조유진은 급히 남초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화장실에서 셔츠를 다시 정리하고 나온 배현수는 휴대전화를 들고 초조해하는 조유진을 보고 한 마디 물었다.“왜? 무슨 일 있어?”“10시가 넘었을 때 초윤이가 나

    최신 업데이트 : 2024-01-27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295화

    조유진의 호소를 듣고 있는 배현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결혼생활의 자질구레한 일들까지 배현수가 어찌 알겠는가?그러고 보니 조유진은 남초윤의 일에서만 이성을 잃는 것 같다. 여기까지 생각한 배현수는 기분이 조금 나빴다. 조유진도 감정이 있고 표현도 하고 화를 낼 줄 아는 사람인데 유독 자신에게만 늘 아무런 감정 없는 사람처럼 대한다. 조유진은 육지율의 막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방을 빨리 나가려고 두리번거리며 휴대전화를 찾았다. 그러자 배현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 “뭘 찾아?”“휴대전화요.”“너의 손에 있잖아.”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숙여보니 휴대전화는 조유진 손에 쥐여 있었다. 조유진은 멋쩍은 듯 머뭇거리더니 이내 화제를 돌렸다.“가요. 늦었어요.”배현수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호텔 로얄 스위트룸을 나섰다.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 배현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쉽게 이혼 얘기를 꺼내는 건 지율이가 잘못한 거야.”배현수는 만약 자신이 조유진과 결혼한다면 절대 이혼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혹시라도 조유진이 이 단어를 언급하면 그는 그녀가 두 번 다시 언급 못 하도록 만들 것이다. 육지율은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친한 친구지만 이런 부분에서 배현수는 그의 편에 설 수 없다.배현수에게 결혼이란 그 무엇보다 신성한 것으로 일단 평생 함께하기로 약속한 이상 절대 어기면 안 된다. 두 사람이 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네 면의 밝은 거울에 두 사람의 모습이 반사되었다. 배현수의 옆에 서 있는 조유진은 반사된 모습을 통해 곁눈질로 그를 힐끗 바라봤다.구체적으로 뭐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확실히 배현수가 변했다는 것을 조유진은 느낄 수 있었다. 혹시 착각일까? 오늘따라 배현수가 유난히 조유진을 챙기고 그녀의 편을 들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조유진의 머릿속에는 온통 남초윤의 걱정뿐이다. 만약 남초윤이 결심하고 이 결혼생활을 끝내려 한다면

    최신 업데이트 : 2024-01-27

최신 챕터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7화

    육성일의 압도적인 기운은 전화 너머에서도 남초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묵직한 압박감은 느껴졌다. 그때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는지, 어떻게 육씨 집안에 시집갔는지 스스로도 의아했다. 만약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차라리 구걸을 하더라도 절대 육씨 집안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남초윤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할아버지, 부탁드려요. 저희가 약속했던 건 두 달 전이었잖아요. 아직 두 달이 채 안 지났고, 제가 지금 아기를 가졌다고 해도 확인이 안 될 수도 있어요.” 그 말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기에 육성일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전화를 겨우 넘겼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이번엔 ‘개자식’ 육지율이었다. “...” 할아버지와 손자는 통화 시간까지 맞춘 것처럼 기가 막히게 연달아 전화를 걸어온다. 그녀는 냉랭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왜요?” 육지율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폭탄이라도 먹었어요?” 육지율이 자신의 책을 내리게 만들고, 지난달과 이번 달 원고료도 다 날려버린 상황에서 그녀가 전화를 받아준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아직 유지 중이었고 필요한 것도 있으니 남초윤은 결국 목소리를 가다듬고 좀 더 부드럽게 말했다. “지율 오빠, 무슨 일이에요?” “... 뭐라고 불렀어요?” “지~율~오~빠~” 그녀는 유설영의 말투를 흉내 내며, 아니, 오히려 더 능숙하게 말했다. 육지율은 순간 닭살이 돋았다. “제발 평소처럼 말해요. 저녁에 내 친구가 귀국하는데 같이 식사해요. 6시에 잡지사로 데리러 갈게요.” 남초윤은 단번에 거절했다. “난 안 갈래요.” “저녁에 뭐 다른 약속 있어요?” 남초윤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결혼한 지 3년 됐지만 당신은 나한테 친구 한 명도 소개해 준 적 없잖아요.” 그리고 이제 곧 이혼할 텐데 친구를 만날 필요는 더 없었다.이혼하고 나서 친구들이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6화

    조유진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학교에서 누가 너 괴롭히진 않았어?” 배선유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응, 나 괴롭히는 사람 없어. 할아버지가 우리 학교에 엄청난 돈을 기부하셔서 선생님들도 항상 나한테 잘해주시고 많이 관심 해주셨어. 그래서 나도 함부로 장난칠 수가 없어. 혹시 선생님이 할아버지한테 이르실까 봐.” 배현수는 이 말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배선유는 작은 악동처럼 말이 많았고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아이였다. 배현수의 말에도 자주 대꾸를 하니, 만약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면 벌써부터 떠벌렸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남을 괴롭히는 쪽에 더 가까웠다. 성남에서 엄준은 배선유를 엄청나게 아끼며 키웠고, 그래서인지 아이는 주눅이 들지 않고 활발하게 자랐다.조유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다행이네. 우리 선유가 공부를 게을리할 걱정은 없겠어.” 배현수는 딸을 겁주듯 말했다. “너 공부 안 하고 일찍 연애라도 시작하면, 널 대제주에 데려와서 24시간 동안 지켜볼 거야.” 배선유는 입술을 내밀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이건 너무 심해요! 나 혹시 쓰레기통에서 주워 온 거 아니에요?” 배현수는 코웃음을 치며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말했다. “공부 안 하면 좋은 날은 없을 거야.” 잠시 후, 학교 종이 울릴 시간이 가까워졌다. 배선유는 전화를 끊으려다가 친구가 그린 결혼사진 두 장을 영상 속으로 건네받았다. “선유야! 너랑 지우의 결혼사진 내가 그려놨어! 한 번 봐봐!” 배선유가 물었다. “한 장에 얼마야?” “너니까 공짜로 해줄게! 대신 다음번엔 나랑 결혼해 줄 수 있어?” “생각해볼게!” “...” 이 속도로라면 그들 부부는 도대체 몇 명의 사위를 맞이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한편, 스타라이트 매거진에서.남초윤이 사이트 편집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그녀의 책은 예상대로 플랫폼에서 삭제되었고 이달 원고료는 한 푼도 들어오지 않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5화

    [합법적 부부] 함께 올라온 사진엔 결혼반지를 낀 두 손이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이 게시글이 올라가자마자 마치 깊은 바다에 떨어진 폭탄처럼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어 반응했다. 육지율: [8년의 여정 끝에 드디어 자랑할 수 있네!] 송하진: [어! 전 두 사람 목숨 구해준 은인이에요. 제가 아니었으면 두 사람이 어떻게 혼인신고까지 했겠어요? 당장 절 주빈으로 식사 대접해요!] 남초윤: [아아아아! 유진이를 결혼이라는 무덤 속으로 끌어들이다니! 대표님 너무하세요!] 엄창민: [내 여동생한테 잘해요. 혹시라도 괴롭히면 내 주먹이 용서 못 해요!] 엄명월: [형부! 이렇게 좋은 일에 저희한테 뭐라도 사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강이찬: [축하해, 결국 원하는 대로 됐네.] 심미경: [백년해로하세요.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서정호: [대표님, 일 다 끝냈으면 빨리 돌아오세요. 의사 선생님이 여기서 엄청 화내고 있어요. 저 더는 못 버틸 것 같아요!] 학교 가기 싫어: [와! 아빠랑 엄마가 드디어 결혼했네요! 헤헷, 아빠, 나도 오늘 결혼했어요!] 배현수는 배선유의 댓글을 보고 순간 검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조유진이 운전하며 그의 미세한 변화를 눈치채고 물었다. “왜 그래요?” “선유가 결혼했다는데.” “뭐라고요?” 조유진은 깜짝 놀라 차를 도로 옆에 세우고 급히 배선유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저쪽에서 배선유는 학교에 있었는데 마침 쉬는 시간이었다. 외국어 학교라 분위기가 자유로워 아이들은 평소에도 부모님과 연락을 하기 위해 휴대폰을 가지고 다녔다. 배선유는 전화를 받자마자 얼굴을 카메라 앞으로 들이밀었다. “엄마, 아빠! 나 사진 보고 싶어!” 조유진은 그녀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나서 물었다. “선유야, 아까 결혼했다고 했잖아. 누구랑 결혼한 거야?” “우리 반 한지우랑! 엄마, 나 오늘 엄청 많은 축의금을 받았어! 내가 다 적어 놨어!”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4화

    조유진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갈게요.” 그가 환자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이번 한 번은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 다음 날 이른 아침. 서정호가 산성 별장에서 두 벌의 정장과 결혼 서류를 준비해왔다. 조유진은 오랜만에 풀 메이크업을 하고 머리도 고데기로 말았다. 그녀는 하얀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사진에 잘 나올 수 있도록 최대한 신경 썼다. 그녀는 한동안 이렇게까지 꾸미지 않았는데 하이힐을 신고 배현수 앞에 서니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조금 어색해졌다. 그래서 물었다. “나 어때요?” “아름다워. 넌 언제나 아름다워.” 배현수는 전혀 망설임 없이 그녀를 칭찬했다. 조유진은 웃음을 참으며 옆에 있던 넥타이를 집어 들고 배현수에게 매어주었다. 배현수는 그녀의 손길에 고개를 숙이며 협조했다. 조유진은 평소와 다르게 더 복잡하고 정중한 ‘엘드리지 매듭’으로 넥타이를 맸는데 배현수는 평소에 간단한 윈저 매듭만 했었다. “이 매듭은 좀 생소하네.” 조유진은 넥타이를 다 매고 나서 그의 셔츠와 정장 재킷의 깃을 정리해 주었다. “이게 엘드리지 매듭이라고 해요. 중요한 자리에서 어울리는 방식이죠. 어때요, 괜찮아요?” “멋져. 하지만 여보, 우리 서둘러야 해. 조금 있으면 의사가 올 거야.” 웃으며 농담하듯 이야기하던 배현수는 조유진의 외투를 챙겨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고, 그녀를 한 손으로 감싸 병실을 몰래 빠져나갔다. 두 사람은 마치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와 차에 올랐다. ... 그들이 빠져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사가 병실에 회진을 왔다.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그곳에는 ‘무관한 사람’만 남아 있었다. 의사는 엄숙한 표정으로 서정호를 보며 물었다. “환자는 어디 갔죠? 튜브까지 다 뽑다니, 누가 뽑았습니까?” 서정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환자 본인이 뽑았습니다.” “도대체 어디 간 겁니까? 팔을 정말 망가지게 할 작정인가요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3화

    배현수의 가슴이 떨렸다. 그는 조유진과 이마를 맞대며 낮게 속삭였다. “그때 난 네 옆에 있진 않았지만 네 뒤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 그런데 왜 울었어?” “현수 씨 생각이 났어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펐거든요. 내가 이렇게 좋은 남자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아쉽고 후회스러웠죠. 그래서 울었어요.” 지금 이렇게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은 느낌이었다. 조유진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이번 눈물은 슬픔이나 후회 때문이 아니었다. 감동과 감사함 때문이었다. 운명이 그들을 온갖 고난 속에서도 끝끝내 묶어 놓았고, 그들 사이에선 이제 더 이상 헤어질 수 없는 깊은 연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배현수는 긴 손가락을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천천히 끼워 넣으며 손을 꼭 맞잡았다. 순간 그들의 손바닥에서 따뜻함이 퍼져나갔다. 그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진아, 넌 한 번도 날 잃은 적 없어. 우리가 몇 번을 떨어져도, 얼마나 오랫동안 떨어져 있더라도 난 결국 널 찾아내서 꼭 안고 말해줄 거야. 사랑한다고. 오직 너만 사랑한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조유진은 배현수의 유일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조유진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현수 씨, 우리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까요?” “그럼.” 그의 대답은 8년 전과 똑같았다. 짧지만 확고했으며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조유진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손목에 걸린 달콤한 연녹색 비취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상처가 나으면 우리 같이 아주머니를 위한 좋은 묘지를 고르러 가요. 그분을 위한 의관묘라도 만들어 드리는 게 어때요?” “아직도 ‘아주머니’라고 불러?” 조유진은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며 말투를 바꿨다. 배현수는 그녀의 팔찌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풍수 좋은 곳을 따로 고를 필요는 없어. 어머니께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2화

    육지율은 그 필명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기억해 냈다. “이 자식! 기억났어! 이 녀석이 책에서 날 모욕하지 않았나? 내 명성을 망가뜨렸잖아?” 남초윤은 급하게 말했다. “잘못 본 거 아니에요? 비엘 작가가 주인공을 모욕할 리가 없어요! 그러면 밥숟가락 들고 욕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어요?” “나를 ‘수’로 묘사한 게 모욕이 아니고 뭐예요? 왜 항상 배현수가 공이냐고?” 남초윤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그 부분을 신경 쓰고 있었던 거였다.남초윤은 그가 진짜 작가를 고소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래서 변명하듯 말했다. “다음번엔 지율 씨가 공이고, 배 대표님이 수가 될 수도 있잖아요. 원래 BL 소설에서는 공수 구분이 모호해요. 겉보기에 수 같아도 사실은 공일 수도 있다고요!” 조유진은 살짝 의문을 제기했다. “난 현수 씨가 수 같지는 않았는데. 만약 현수 씨가 진짜 수라면 캐릭터 붕괴지. 차라리 육 변호사님이 수인 게 더 어울려. 자유롭고, 매력적이고, 다정하잖아.”“?”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육지율은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며 조유진에게 따졌다. “아니, 조유진. 내가 약해 보이는 수 같은 느낌을 준다고?” “...” 배현수는 차갑게 말했다. “유진이가 쓴 것도 아닌데 왜 화내? 그럴 시간 있으면 작가나 고소해.” 남초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그냥 재미로 쓴 거지 무슨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작가를 고소하면 너무 쪼잔해 보일 거예요!” 하지만 육지율은 이성을 잃고 이를 악물었다. “쪼잔해 보이든 말든, 그 책을 하차할 거예요!” 자신이 소설 속에서 수 역할로 묘사되었고, 그것도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있다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조유진은 객관적으로 말했다. “사실 책 내용은 나쁘지 않아요. 꽤 재미있고 독자도 많아요.” “독자가 몇 명인데?”“몇만 명 정도?” “뭐?”‘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날 수로 상상했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1화

    병실에서 조유진은 그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앉아 있다가 잠들었다. 잠에 들어서도 손가락이 배현수의 손에 살짝 얽혀 있었는데 다정하고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이 사진은 완전히 남자 친구 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입원 생활이 지루하다고 하다니.육지율이 댓글을 남겼다. “뭐야, 입원했어? 혹시 가정 폭력이라도 당한 거야?” 댓글을 남기고 나서 육지율은 차에 시동을 걸며 남초윤에게 말했다. “과일 바구니 좀 사서 병문안이나 가요. 친구가 입원했어요.” “친구? 설마 배 대표님이세요? 어디 아파요?” 육지율은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진짜 아플 수도 있고 그냥 꾀병일 수도 있고.” 혹시 모른다. 꾀병일지도....병원에서는 조금 전 장은숙이 산성 별장에서 저녁 식사를 가져왔다. 수술 후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밤은 죽 같은 유동식만 먹어야 했다. 배현수는 오른손을 쓸 수 없었기에 조유진이 죽 그릇을 들고 숟가락으로 그에게 먹여주고 있었다. 첫 숟가락을 그의 입 앞에 가져가자 배현수는 뜨겁다고 투덜댔다. 조유진이 후후 불어 온도를 맞춘 후 말했다. “이제 적당히 식었어요.” 배현수는 그제야 죽을 한 입 삼켰다. 그 순간 병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장난스러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며칠 못 본 사이에 아기로 됐네? 밥도 혼자 못 먹고, 조유진이 널 너무 오냐오냐한 거 아냐?” 조유진이 놀라서 뒤돌아보니, 육지율과 남초윤이 병실에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설명했다.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입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며칠 동안 오른손은 쓰지 말라고 하셨어요. 상처가 더 심해질 수 있거든요.” 그러자 육지율은 다짜고짜 그의 오른쪽 어깨를 툭 쳤다. “진짜야?” 배현수는 고통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미친놈아!” 조유진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변호사님, 진짜로 다쳤다니까요! 어깨에 구멍이 났다고요, 함부로 건드리지 마세요!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0화

    그녀를 겨우 한 번 데리러 온 김에 출퇴근길의 불편함을 느끼고는 아예 차를 사서 해결하려고 하다니, 정말 육지율 다운 방식이었다.이 4S 매장에서 파는 차들은 모두 포르쉐였고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가장 저렴한 모델도 수천억 원대였다. 남초윤은 이미 남씨 집안이 육지율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었기에, 그가 차를 선물해 주겠다고 해도 받을 수 없었다.남초윤은 차분히 말했다. “앞으로는 출퇴근 길에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 굳이 차를 선물할 필요는 없어요.”육지율은 순간 멈칫했다가 살짝 비웃으며 말했다. “차 한 대 선물한다고 귀찮다는 딱지가 붙어요? 이런 확산적 사고방식은 참 대단하네.”“....”정말 그런 게 아니란 말인가?평소에도 성격이 불 같았던 육지율은 차를 주겠다고 하면서도 그녀를 달래는 상황이 우스웠는지 어이없어 웃었다. 둘 중 누가 더 성격이 나쁜지 모를 일이었다.영업 직원은 남초윤을 육지율이 외부 애인으로 오해했고, 이 큰 거래가 깨질까 봐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가씨, 변호사님께서 차를 사주시는 건 출퇴근 시간을 줄여서 그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게 해주려는 마음이 아닐까요?”남초윤은 더 이상 그의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미 갚을 수 없는 빚이 너무 많았고 계속해서 더 쓴다면 두 아이를 낳아야 겨우 그 빚을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나 육지율은 그 여느 때처럼 행동했다. 그는 VIP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빨리 골라요. 차 안 사면 집에 못 돌아가요.”남초윤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여자 영업 직원이 다가와 다양한 모델을 소개할 때, 그저 듣기만 했다. 그 직원은 미소를 띠며 말도 아주 달콤하게 했다. “변호사님은 저희 매장의 단골이세요. 그런데 여자를 데리고 온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변호사님이 정말로 많이 아끼시는 것 같아요. 비싼 차를 고르시면 아마 더 기뻐하실 거예요.”역시, 판매왕이었다.감정적 가치를 제공하는 법을 너무나 잘 아는 직원이었다. 하지만 남초윤은 그저 외부의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59화

    남초윤은 결혼 상태를 한 번도 업데이트한 적이 없었다. 동료들 눈에는 여전히 미혼으로 보였다.처음 그녀와 육지율의 스캔들이 터졌을 때 온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사실 모두 육지율의 매력적인 외모 때문이었다. 아무도 남초윤처럼 작고 평범한 존재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육지율이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들의 침대 사진이 언론이나 남재원에게 유출되지 않은 것도 기적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육지율이라는 유명한 바람둥이가 ‘함정'에 빠져 순진한 여자와 관계를 맺은 후, 마지못해 결혼했다는 소문만 믿고 있었다.육지율이 연예계 인물이 아닌 만큼 동료들 중에서도 아무도 그 사건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육지율이 ‘좋은 집안의 아들’ 이라는 사실만 기억하고 그의 결혼 상대가 누군지에는 무관심했다. 그녀는 어디에도 크게 드러나지 않았고 언론에서도 그의 곁에 서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남초윤은 그렇게 세상 사람들의 눈에 숨겨져 있었다.동료들은 그저 그녀가 조금 집안 배경이 있는 부유한 여자인 줄로만 알았고 육지율의 아내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육지율의 아내라면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그들과 같이 일하며 고생할 일은 없을 테니까. 설령 과거에 파파라치 일을 했더라도 그렇게 높은 곳에 시집갔다면 육씨 집안이 그녀를 계속 그 일을 하도록 놔두지 않았을 거라고 여겼다.비록 세상은 모두 직업의 평등을 외치고 있지만 상류 사회에는 여전히 그들만의 규칙이 있었다. 체면과 명예가 그들의 신분과 존엄을 상징했다. 파파라치라는 직업은 육씨 집안에게 있어 절대 자랑스러울 수 없는 일이었으니, 육지율과 강란희가 그녀에게 좀 더 체면 있고 유망한 직업들을 제안했지만 남초윤은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렇게 시간을 보낸 끝에 동료들은 하나둘씩 퇴근하고 남초윤만 남았다. 한 시간이 흐른 뒤 남초윤은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저녁 7시가 되었다. 그녀는 통화 기록을 훑어보고 다시 한 번 메시지를 확인했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아마도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