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진의 끈질긴 집착에 못 이겨 강이찬은 결국 입을 열었다.그는 엄숙한 표정으로 강이진에게 경고했다“널 데리고 가도 괜찮지만 만약 오늘 밤 또 문제를 일으킨다면 앞으로 네 생활비를 끊을 거야. 이 집에서 나가 혼자 벌어서 살아. 더 이상 널 상관하지 않을 거야.”“그렇게까지 매정할 필요가 있어?”강이찬은 단호했다. “매정한 것 같으면 가지 마.”“알았어. 절대 사고 안 치면 되잖아.”말을 마치고 강이진은 위층으로 올라가 드레스룸에 가서 한참 동안 고민하다 드레스하나를 골랐다.강이진은 드레스를 들고 몸에 대어 보며 심미경 앞으로 달려가 물었다. “오늘 밤에 이거 입으면 어떨까요?”심미경은 힐끗 쳐다보고는 대충 대답했다. “좋네요.”강이진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오빠가 당신 말고 날 데려가서 질투하는 거 아니죠?”“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해요. 전 졸려서 낮잠 좀 자야겠어요. 더 볼 일 있어요?”심미경이 방문을 닫으려고 하자 강이진을 막아섰다. “솔직히 말해서 나랑 조유진, 누가 더 예쁘다고 생각해요?”“...”심미경은 다가가서 몇 번 자세히 쳐다보더니 진지하게 말했다. “솔직히 어디서 온 자신감이에요? 무슨 용기로 이런 질문을 하는 거죠?”“무슨 눈썰미에요! 역시 시골에서 와서 미적 감각이 조금도 없네요!”말로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강이진의 얼굴은 이미 화가 나서 표정이 안 좋았다.심미경, 이 시골뜨기가 아부라도 할 줄 알았는데...처음에 심미경과 강이찬이 사귀었을 때 심미경은 듣기 좋은 말을 많이 했었다.그러나 점차 강이진의 태도가 심해지고 나빠지자 심미경도 당연히 더 이상 그녀의 비위를 맞추기 싫어졌다.어떤 사람은 떠받들어 줄수록 더 잘난 체하는데 강이진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네, 제가 시골뜨기여서 안목이 없어요. 그럼 배현수도 취향이 시골뜨기랑 같네요. 그렇지 않으면 왜 당신처럼 아름다운 미녀는 쳐다보지도 않고 하필이면 조유진에게 반했을까요? 아, 맞다. 그리고 당신 오빠도 시골뜨기 취향이네요. 조유
심미경이 강이찬과 결혼하고 싶어 한다지?강이진은 그녀의 뜻대로 되게 하지 않을 테다!...요양원에서 원장은 미안해하며 말했다.“배 대표님, 예 사모님이 요즘 계속 감정이 격해져서 한밤중에 잠을 안 자고 심하게 떠들어요. 낮에 소란을 피우면 그만인데 한밤중에 다들 자야 하니 다른 사람들도 불만이 있어요.”“알겠습니다, 오늘 어머니가 퇴원 절차를 밟는 것을 도와드리러 왔어요.”“죄송합니다. 저희 불찰입니다.”배현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안정희가 죽은 후부터 예지은의 기분은 계속 불안정했다.배현수도 진작에 요양원을 옮길 생각이었다. 예지은이 이 요양원에 여러 해 동안 머물렀기 때문에 일단 새로운 환경으로 옮기면 아마 오랫동안 적응해야 할 것이다.지난 1년 동안 또 너무 많은 일이 발생했다.당시 예지은의 실수로 안정희가 뜻밖에 사망했고 안정희가 죽자 조유진은 완전히 살고 싶은 의욕이 없어졌다... 그때 조유진이 바다에 뛰어들자 배현수는 낙담했다.안정희의 사망으로 조유진의 마지막 지푸라기가 사라지지만 않았어도 조유진이 그렇게 단호하게 배현수를 끊어내지 않았을 것이다.그 당시, 배현수는 심리적으로 예지은을 회피했다. 그래서 예지은의 요양원을 옮기는 일도 미뤄졌다. 퇴원 절차를 마치고 서정호는 예지은의 물건을 옮기는 것을 돕기 위해 일손을 배치했다.예지은은 침대에 걸터앉아 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녀는 배현수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성질을 부렸다.“현수야, 우리 어디 가는 거야?”배현수는 침착하게 말했다.“여기서 잠이 안 온다면서요?”예지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항상 밤에 눈을 감으면 안정희가 나를 찾아오는 것 같아... 무섭지만 요양원을 바꾸고 싶지는 않아.”“이번 한 번만 바꾸고 앞으로는 안 바꿀게요.”배현수는 예지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래 주었다.예지은은 배현수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속상해하며 말했다.“현수야, 오랫동안 나를 보러 오지 않았는데 나를 탓 하는 거 아니지? 내가 잘못해서...”“아뇨
조유진은 거울에 비친 나비뼈 아래의 크지도 작지도 않은 연청색 태반을 보았다.사실 예전에 그녀도 여기에 태반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등이 드러나는 옷을 잘 입지 않아서 자연히 신경을 별로 쓰지 않았다.처음에 배현수와 막 연인이 되었을 때 그는 아끼는 마음에 그녀를 오랫동안 건드리지 않았다.두 사람은 오랫동안 플라토닉 연애를 했다. 배현수는 조유진을 안고 키스했지만 잠자리를 갖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모든 흔적을 잘 알고 있었다.등에 있는 옅은 청색 태반도 배현수가 가장 먼저 발견했다. 남초윤은 조유진이 드레스를 살지 말지 고민하던 틈을 타 휴대전화를 들고 사진을 찍어줬다.남초윤은 사진을 감상하며 말했다. “정말 예뻐, 이걸로 하자! 아니면 내가 사진을 배 대표에게 보내서 확인해 볼까?”조유진은 얼굴을 붉히며 남초윤의 휴대전화를 가로챘다.“싫어. 그 사람 눈썰미로 이런 거 잘 몰라. 난 널 믿어.”남초윤은 그녀를 곁눈질로 보고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 “어이구, 부끄러워하는 거야? 말해 봐, 배현수랑 지금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 정말 화해했어? 결혼할 거야?” “아니. 난 지금 빚을 갚기 위해 그 사람 곁에 있는거야.”남초윤은 조유진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그럼 한 달 후면 각자 갈 길 가는 거야?”“응. 앞으로 나는 그저 선유 엄마일 뿐이고 그도 그저 선유 아빠일 뿐이야.”연애에 대해서는... 설레는 순간부터 가슴 아픈 대가를 치러야 한다.그녀는 강철 인간이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감정 속을 헤매며 온몸에 가시가 박혀 더 이상 물불 가리지 않고 연애할 수 없다. 조유진과 배현수의 이 관계는 이렇게 오랫동안 발버둥 쳤지만 결과는 항상 만족스럽지 못했다.마치 그들은 어긋난 운명인 것처럼.어쩌면 너무 사랑해서 계속 불안하고, 진짜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조유진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시는 감정이 동요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연애는 용감한 자의 게임이고 그녀는 어울리지 않았다. 남초윤이 탄식했다. “연애든
“아주머니도 그냥 하는 말일 거야. 마음에 담아두지 마. 게다가 낳을지 낳지 않을지는 네 마음이잖아.”“그건 그래. 어차피 난 낳지 않을 거야. 서로 애정이 없는데 아이를 낳는건 비극이야. 남자는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곁에 둘 수 있는 게 아니야.”옆에서 묵묵히 밀크티를 마시던 선유가 자신의 작은 핸드폰을 집어 들고 엄마가 양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는 틈을 타 몰래 엄마의 예쁜 사진을 찍었다...그리고 아무 말 없이 아빠한테 보냈다....블랙 마이바흐 차 안.배현수가 예지은을 데리고 요양원에서 나와 차에 탔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한통의 메세지가 왔다.선유의 학교 가기 싫어인 카톡 아이디가 보낸 메시지였다.「사진 한 장」사진 속 조유진은 흰색 새틴 소재의 머메이드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옆모습을 찍은 것이었다.튜브톱 드레스에 머메이드 디자인으로 날씬한 허리를 잘 드러냈다. 조유진은 날씬하지만 균형 잡힌 몸매를 가지고 있다.헤어스타일은 특별히 하지 않은 듯 물결모양 긴 머리가 아무렇게나 늘어뜨려져 있었고 머리카락 사이로 예쁜 등이 보일 듯 말 듯 했다.조유진이 밝고 아름다웠다.단지... 이 드레스는 등이 너무 많이 노출된 것 같은데?그는 그 사진을 보면서 눈빛이 약간 어두워졌다.선유에게서 또 다른 메세지가 왔다. 「아빠! 엄마가 아빠한테 예쁜지 물어보라고 했어요!」배현수의 미간이 조금 움찔했다. 긴 손가락이 두 글자를 보냈다.「그냥 그래.」「아빠, 역시 엄마 말이 맞아요! 안목이 별로네요. 나는 예쁘다고 생각하는데. 다음에는 안 물어볼래요!」“...”별로라고 말했지만... 배현수는 그 사진을 눌러 바로 갤러리에 저장했다. 잠시 후, 휴대전화가 다시 진동했다.이번에 받은 것은 은행에서 온 결제 문자였다. 「존경하는 배현수 씨, XXX에서 5,400만 원 결제되었습니다...」배현수는 휴대전화를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옆에 앉아 있던 예지은은 배현수가 웃는 것을 보고 호기심에 물었다. “아들, 여자 친구랑 문자하는
강이찬이 매장 직원에게 말했다.“이 신발은 저 아가씨에게 포장해 주세요.”“네.”강이진은 옆에서 성질을 부렸다.“오빠, 아직 돈도 안 냈는데 내가 사면 안 돼?”강이찬은 차갑게 쏘아붙였다.“이 신발은 내가 살게. 됐지?”“그게 뭐야?”강이진은 성질을 부리고 싶었지만 강이찬이 있어서 참았다.강이찬은 조유진을 바라보며 사과했다. “방금은 이진이가 잘못했어요. 사과의 의미로 이 신발은 제가 살게요. 어때요?”조유진이 완곡하게 거절했다.“아니에요. 강 사장님의 마음만 받을게요.”“유진 씨...”강이찬이 말을 더 하려고 했는데 남초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강 사장이 유진이에게 신발을 사주는 게 말이 돼요? 나중에 현수 씨랑 미경 씨가 알게 되면 누가 먼저 화를 낼 것 같아요?”“그저 사과의 의미일 뿐이에요.”남초윤은 강이진을 냉담하게 쳐다보곤 아니꼽게 말했다. “사과는 됐어요. 못난 동생이나 잘 챙겨요.”“지금 누가 못났다는 거예요?”강이찬은 화가 나서 남초윤에게 따지려고 했다. 그러자 강이찬이 말렸다. “그만해, 하루 종일 시비 거는 거 피곤하지 않아?”“오빠...”“계속 난리 칠 거면 오늘 저녁 파티에 안 가는 게 좋겠어.”강이진은 어쩔 수 없이 말을 멈추었다.카운터 쪽에서는 조유진이 블랙카드를 직원에게 건네주어 결제했다.직원이 영수증을 조유진에게 건네 서명해달라고 했는데 배현수의 이름을 적는 것을 보고 강이찬은 주먹을 쥐었다.조유진이 물건을 사고 떠난 후에도 매장에는 강이진이 신발을 고르고 있었다. 강이찬은 소파에 쇼핑백이 놓여 있는 것을 봤다. 쇼핑백 안을 훑어보니 남자 넥타이 같았다.매장 직원도 발견하고 말했다. “아이고, 방금 전 손님이 두고 간 것 같아요.”강이찬은 쇼핑백을 집어 들며 말했다. “아직 멀리 가지 않았을 거예요. 제가 전해줄게요.”“정말 고맙습니다.”...조유진 일행이 매장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강이찬은 바로 쫓아올 수 있었다.그는 물건을 조유진에게 건네주었다. “물건을
“당연하죠.”다가온 강이진이 웰링턴 부인이 목에 걸고 있는 그 파란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한눈에 보았다.강이진은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와, 이거 혹시 희망의 별 블루 다이아몬드에요?”웰링턴 부인은 빙긋 웃었다.“이분은?”“제 여동생 강이진이에요.”“이진 씨, 안녕하세요.”웰링턴 부인은 강이진과 웃으며 악수했다.“이 블루 다이아몬드에 대해 아시나요?”강이진은 전에 상류층 모임에 들어가고 싶어서 보석과 가방들에 대해 좀 알아봤었다.그녀는 희망의 별이라는 이 블루 다이아몬드를 매우 인상 깊게 보았다.그래서 강이진은 뽐내기 시작했다. “이 블루 다이아몬드는 역사적으로 ‘불행의 다이아몬드’로 유명하다고 들었어요. 피로 물든 불길한 물건이라고요. 1909년에 처음 세상에 나왔는데 그것을 가진 주인들은 모두 의문사를 당했다고...”웰링턴 부인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강이찬은 재빨리 기침하며 그녀의 말을 끊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부인, 제 여동생은 사실 보석에 대해 잘 몰라요. 이 다이아몬드는 공예가 정교하고 매우 아름다워요. 예전에 루이 14세에게 바쳐졌다고 들었습니다. 전엔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부인에게 있었네요. 지금 이 다이아몬드의 가치는 정말 대단하죠.”강이찬의 높은 EQ가 강이진의 실수를 만회했다. 웰링턴 부인의 표정도 조금 부드러워졌다. “제가 착용한 이 다이아몬드는 희망의 별에서 떼어낸 조각들 중 한 조각이에요. 불행의 다이아몬드라고 할 수 없죠.”“...”이 말을 들은 강이진은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망신을 당한 게 분명했다.“그럼요. 이 파란 다이아몬드가 웰링턴 부인의 혈색이 좋아 보이게 하는 걸 보니 행운의 다이아몬드가 틀림없어요. 어떻게 불행과 연관될 수 있겠어요?”강이찬이 몇 마디 칭찬한 후에야 이 일이 해결됐다.웰링턴 부부가 떠난 후 강이진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원래 불행의 다이아몬드인데 말도 못 하게 하다니 너무 가식적이야.”강이찬은 씩
강이찬은 강이진에게 다가가 주스를 건넸다. “좀 마셔요. 현수는 왜 아직도 안 왔어요?”조유진은 예의상 잔을 받았다.“오늘 일이 좀 있어서 늦게 오겠다고 했어요.”강이찬은 옆에 서서 손에 쥐고 있던 샴페인을 한 모금 마셨다. 그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아무 말이나 둘러댔다.“남초윤은요? 방금까지 같이 있는 걸 봤어요.”“화장실에 갔어요.”조유진은 묻는 말에만 대답하고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강이진이 조유진을 애타게 바라보았다.왜 아직도 안 마시지?조유진이 주스 잔을 들고 한 모금 마시려고 하는데...배현수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렸다. “유진아.”조유진은 멈춰 서서 고개를 들고 쳐다봤다. 배현수는 긴 다리로 이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는 양복 외투를 팔에 걸치고 셔츠 단추를 세 개 풀고 있었는데 평소처럼 빈틈없는 모습이 아니었다. 아마 서둘러 온 것 같았다.오늘 무엇을 하러 갔을까?파티 한편에 있던 엄명월도 자연스럽게 배현수를 보았다.그녀는 손에 든 샴페인 잔을 흔들며 김 씨와 함께 인사하려다 배현수 곁에 있는 파트너에게 시선이 갔다.그 여자는 등을 돌리고 있었는데 긴 머리는 포니테일로 묶었고 드레스는 등을 드러냈다. 그 희고 눈부신 등의 날개뼈 아래, 크지도 작지도 않은 연청색의 태반이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엄명월의 눈빛이 움찔했다.의부께서 친딸의 등에도 이런 연청색 태반이 있다고 하셨는데 우연의 일치인가 아니면...?그녀가 걸어가 똑바로 보려고 하고 있는데...배현수가 팔에 걸쳤던 양복 재킷을 여자 파트너에게 씌웠다.재킷은 드러난 등을 순식간에 가렸다.엄호월의 시선이 비로소 여자의 등에서 얼굴로 옮겨졌다.조유진!“김 씨, 방금 그녀의 등을 보았어요?”김 씨는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평가했다. “네, 하얗네요.”날씬하기도 하고.배현수 안목이 좋네, 여자 파트너가 아주 예뻐.엄명월은 눈을 흘기며 그를 한번 쳐다봤고 입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 그녀의 등에 있는 태반을 보
...그들 사이의 오고 가는 말들은 당연히 강이찬의 마음을 더없이 아프게 했다. 그는 손에 든 술잔을 힘껏 움켜쥐었지만 최대한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따뜻한 음료가 저기에 있어.”배현수가 조유진을 이끌고 따뜻한 음료를 가지러 가는 길에 엄명월과 우연히 마주쳤다.엄명월은 양쪽 입꼬리를 올리며 먼저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배 대표님, 대표님 얘기는 오래전부터 많이 들었습니다.”배현수도 살짝 고개를 숙여 기본 예의만 갖춘 인사를 했다.“안녕하세요.”두 사람이 손을 잡고 있는 것을 본 엄명월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유진 씨도 있었네요. 보아하니 좋은 소식이 곧 들릴 것 같네요.”조유진과 엄명월 모두 엄준의 수양딸이지만 두 사람이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다.조유진은 말이 없는 성격이라 쉽게 누군가와 친해지지 못한다. 그녀는 엄명월을 향해 그저 고개만 살짝 끄덕이며 인사했다. 그러나 사교성이 좋은 엄명월은 그녀의 뜨뜻미지근한 반응도 아랑곳하지 않고 친한 척 먼저 입을 열었다. “유진 씨가 결혼하면 아버지가 무조건 축의금 두툼이 챙겨드릴 거예요. 두 사람 미리 축하드리고 꼭 백년해로하길 바랄게요.”엄명월은 손에 든 샴페인을 들고 홀짝홀짝 마셨다.배현수는 담담하게 웃으며 그녀의 말에 대꾸했다.“감사합니다.”배현수의 대답에 조유진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고 배현수는 생각보다 꽤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조유진에게 마치 두 사람의 혼사가 곧 다가오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했다. 배현수가 조유진을 이끌고 엄명월의 옆을 지나갈 때 엄명월은 일부러 조유진 어깨에 걸친 양복 코트를 슬쩍 끌어당겨 바닥에 떨어뜨렸고 재빨리 조유진의 등으로 시선을 돌렸다.순간 조유진 등 뒤의 태반이 엄명월의 눈에 들어왔다. 동전 한 닢 크기에 연청색 타원형의 태반은 그 무엇보다도 선명히 눈에 띄었다. 엄명월은 순간 멈칫하더니 이내 허리를 굽혀 코트를 줍고서는 먼지도 묻지 않은 코트를 예의상 두 번 턴 후 조유진에게 건네주
육성일의 압도적인 기운은 전화 너머에서도 남초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묵직한 압박감은 느껴졌다. 그때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는지, 어떻게 육씨 집안에 시집갔는지 스스로도 의아했다. 만약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차라리 구걸을 하더라도 절대 육씨 집안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남초윤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할아버지, 부탁드려요. 저희가 약속했던 건 두 달 전이었잖아요. 아직 두 달이 채 안 지났고, 제가 지금 아기를 가졌다고 해도 확인이 안 될 수도 있어요.” 그 말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기에 육성일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전화를 겨우 넘겼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이번엔 ‘개자식’ 육지율이었다. “...” 할아버지와 손자는 통화 시간까지 맞춘 것처럼 기가 막히게 연달아 전화를 걸어온다. 그녀는 냉랭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왜요?” 육지율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폭탄이라도 먹었어요?” 육지율이 자신의 책을 내리게 만들고, 지난달과 이번 달 원고료도 다 날려버린 상황에서 그녀가 전화를 받아준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아직 유지 중이었고 필요한 것도 있으니 남초윤은 결국 목소리를 가다듬고 좀 더 부드럽게 말했다. “지율 오빠, 무슨 일이에요?” “... 뭐라고 불렀어요?” “지~율~오~빠~” 그녀는 유설영의 말투를 흉내 내며, 아니, 오히려 더 능숙하게 말했다. 육지율은 순간 닭살이 돋았다. “제발 평소처럼 말해요. 저녁에 내 친구가 귀국하는데 같이 식사해요. 6시에 잡지사로 데리러 갈게요.” 남초윤은 단번에 거절했다. “난 안 갈래요.” “저녁에 뭐 다른 약속 있어요?” 남초윤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결혼한 지 3년 됐지만 당신은 나한테 친구 한 명도 소개해 준 적 없잖아요.” 그리고 이제 곧 이혼할 텐데 친구를 만날 필요는 더 없었다.이혼하고 나서 친구들이
조유진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학교에서 누가 너 괴롭히진 않았어?” 배선유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응, 나 괴롭히는 사람 없어. 할아버지가 우리 학교에 엄청난 돈을 기부하셔서 선생님들도 항상 나한테 잘해주시고 많이 관심 해주셨어. 그래서 나도 함부로 장난칠 수가 없어. 혹시 선생님이 할아버지한테 이르실까 봐.” 배현수는 이 말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배선유는 작은 악동처럼 말이 많았고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아이였다. 배현수의 말에도 자주 대꾸를 하니, 만약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면 벌써부터 떠벌렸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남을 괴롭히는 쪽에 더 가까웠다. 성남에서 엄준은 배선유를 엄청나게 아끼며 키웠고, 그래서인지 아이는 주눅이 들지 않고 활발하게 자랐다.조유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다행이네. 우리 선유가 공부를 게을리할 걱정은 없겠어.” 배현수는 딸을 겁주듯 말했다. “너 공부 안 하고 일찍 연애라도 시작하면, 널 대제주에 데려와서 24시간 동안 지켜볼 거야.” 배선유는 입술을 내밀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이건 너무 심해요! 나 혹시 쓰레기통에서 주워 온 거 아니에요?” 배현수는 코웃음을 치며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말했다. “공부 안 하면 좋은 날은 없을 거야.” 잠시 후, 학교 종이 울릴 시간이 가까워졌다. 배선유는 전화를 끊으려다가 친구가 그린 결혼사진 두 장을 영상 속으로 건네받았다. “선유야! 너랑 지우의 결혼사진 내가 그려놨어! 한 번 봐봐!” 배선유가 물었다. “한 장에 얼마야?” “너니까 공짜로 해줄게! 대신 다음번엔 나랑 결혼해 줄 수 있어?” “생각해볼게!” “...” 이 속도로라면 그들 부부는 도대체 몇 명의 사위를 맞이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한편, 스타라이트 매거진에서.남초윤이 사이트 편집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그녀의 책은 예상대로 플랫폼에서 삭제되었고 이달 원고료는 한 푼도 들어오지 않
[합법적 부부] 함께 올라온 사진엔 결혼반지를 낀 두 손이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이 게시글이 올라가자마자 마치 깊은 바다에 떨어진 폭탄처럼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어 반응했다. 육지율: [8년의 여정 끝에 드디어 자랑할 수 있네!] 송하진: [어! 전 두 사람 목숨 구해준 은인이에요. 제가 아니었으면 두 사람이 어떻게 혼인신고까지 했겠어요? 당장 절 주빈으로 식사 대접해요!] 남초윤: [아아아아! 유진이를 결혼이라는 무덤 속으로 끌어들이다니! 대표님 너무하세요!] 엄창민: [내 여동생한테 잘해요. 혹시라도 괴롭히면 내 주먹이 용서 못 해요!] 엄명월: [형부! 이렇게 좋은 일에 저희한테 뭐라도 사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강이찬: [축하해, 결국 원하는 대로 됐네.] 심미경: [백년해로하세요.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서정호: [대표님, 일 다 끝냈으면 빨리 돌아오세요. 의사 선생님이 여기서 엄청 화내고 있어요. 저 더는 못 버틸 것 같아요!] 학교 가기 싫어: [와! 아빠랑 엄마가 드디어 결혼했네요! 헤헷, 아빠, 나도 오늘 결혼했어요!] 배현수는 배선유의 댓글을 보고 순간 검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조유진이 운전하며 그의 미세한 변화를 눈치채고 물었다. “왜 그래요?” “선유가 결혼했다는데.” “뭐라고요?” 조유진은 깜짝 놀라 차를 도로 옆에 세우고 급히 배선유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저쪽에서 배선유는 학교에 있었는데 마침 쉬는 시간이었다. 외국어 학교라 분위기가 자유로워 아이들은 평소에도 부모님과 연락을 하기 위해 휴대폰을 가지고 다녔다. 배선유는 전화를 받자마자 얼굴을 카메라 앞으로 들이밀었다. “엄마, 아빠! 나 사진 보고 싶어!” 조유진은 그녀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나서 물었다. “선유야, 아까 결혼했다고 했잖아. 누구랑 결혼한 거야?” “우리 반 한지우랑! 엄마, 나 오늘 엄청 많은 축의금을 받았어! 내가 다 적어 놨어!”
조유진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갈게요.” 그가 환자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이번 한 번은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 다음 날 이른 아침. 서정호가 산성 별장에서 두 벌의 정장과 결혼 서류를 준비해왔다. 조유진은 오랜만에 풀 메이크업을 하고 머리도 고데기로 말았다. 그녀는 하얀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사진에 잘 나올 수 있도록 최대한 신경 썼다. 그녀는 한동안 이렇게까지 꾸미지 않았는데 하이힐을 신고 배현수 앞에 서니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조금 어색해졌다. 그래서 물었다. “나 어때요?” “아름다워. 넌 언제나 아름다워.” 배현수는 전혀 망설임 없이 그녀를 칭찬했다. 조유진은 웃음을 참으며 옆에 있던 넥타이를 집어 들고 배현수에게 매어주었다. 배현수는 그녀의 손길에 고개를 숙이며 협조했다. 조유진은 평소와 다르게 더 복잡하고 정중한 ‘엘드리지 매듭’으로 넥타이를 맸는데 배현수는 평소에 간단한 윈저 매듭만 했었다. “이 매듭은 좀 생소하네.” 조유진은 넥타이를 다 매고 나서 그의 셔츠와 정장 재킷의 깃을 정리해 주었다. “이게 엘드리지 매듭이라고 해요. 중요한 자리에서 어울리는 방식이죠. 어때요, 괜찮아요?” “멋져. 하지만 여보, 우리 서둘러야 해. 조금 있으면 의사가 올 거야.” 웃으며 농담하듯 이야기하던 배현수는 조유진의 외투를 챙겨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고, 그녀를 한 손으로 감싸 병실을 몰래 빠져나갔다. 두 사람은 마치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와 차에 올랐다. ... 그들이 빠져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사가 병실에 회진을 왔다.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그곳에는 ‘무관한 사람’만 남아 있었다. 의사는 엄숙한 표정으로 서정호를 보며 물었다. “환자는 어디 갔죠? 튜브까지 다 뽑다니, 누가 뽑았습니까?” 서정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환자 본인이 뽑았습니다.” “도대체 어디 간 겁니까? 팔을 정말 망가지게 할 작정인가요
배현수의 가슴이 떨렸다. 그는 조유진과 이마를 맞대며 낮게 속삭였다. “그때 난 네 옆에 있진 않았지만 네 뒤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 그런데 왜 울었어?” “현수 씨 생각이 났어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펐거든요. 내가 이렇게 좋은 남자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아쉽고 후회스러웠죠. 그래서 울었어요.” 지금 이렇게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은 느낌이었다. 조유진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이번 눈물은 슬픔이나 후회 때문이 아니었다. 감동과 감사함 때문이었다. 운명이 그들을 온갖 고난 속에서도 끝끝내 묶어 놓았고, 그들 사이에선 이제 더 이상 헤어질 수 없는 깊은 연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배현수는 긴 손가락을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천천히 끼워 넣으며 손을 꼭 맞잡았다. 순간 그들의 손바닥에서 따뜻함이 퍼져나갔다. 그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진아, 넌 한 번도 날 잃은 적 없어. 우리가 몇 번을 떨어져도, 얼마나 오랫동안 떨어져 있더라도 난 결국 널 찾아내서 꼭 안고 말해줄 거야. 사랑한다고. 오직 너만 사랑한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조유진은 배현수의 유일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조유진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현수 씨, 우리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까요?” “그럼.” 그의 대답은 8년 전과 똑같았다. 짧지만 확고했으며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조유진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손목에 걸린 달콤한 연녹색 비취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상처가 나으면 우리 같이 아주머니를 위한 좋은 묘지를 고르러 가요. 그분을 위한 의관묘라도 만들어 드리는 게 어때요?” “아직도 ‘아주머니’라고 불러?” 조유진은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며 말투를 바꿨다. 배현수는 그녀의 팔찌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풍수 좋은 곳을 따로 고를 필요는 없어. 어머니께
육지율은 그 필명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기억해 냈다. “이 자식! 기억났어! 이 녀석이 책에서 날 모욕하지 않았나? 내 명성을 망가뜨렸잖아?” 남초윤은 급하게 말했다. “잘못 본 거 아니에요? 비엘 작가가 주인공을 모욕할 리가 없어요! 그러면 밥숟가락 들고 욕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어요?” “나를 ‘수’로 묘사한 게 모욕이 아니고 뭐예요? 왜 항상 배현수가 공이냐고?” 남초윤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그 부분을 신경 쓰고 있었던 거였다.남초윤은 그가 진짜 작가를 고소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래서 변명하듯 말했다. “다음번엔 지율 씨가 공이고, 배 대표님이 수가 될 수도 있잖아요. 원래 BL 소설에서는 공수 구분이 모호해요. 겉보기에 수 같아도 사실은 공일 수도 있다고요!” 조유진은 살짝 의문을 제기했다. “난 현수 씨가 수 같지는 않았는데. 만약 현수 씨가 진짜 수라면 캐릭터 붕괴지. 차라리 육 변호사님이 수인 게 더 어울려. 자유롭고, 매력적이고, 다정하잖아.”“?”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육지율은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며 조유진에게 따졌다. “아니, 조유진. 내가 약해 보이는 수 같은 느낌을 준다고?” “...” 배현수는 차갑게 말했다. “유진이가 쓴 것도 아닌데 왜 화내? 그럴 시간 있으면 작가나 고소해.” 남초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그냥 재미로 쓴 거지 무슨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작가를 고소하면 너무 쪼잔해 보일 거예요!” 하지만 육지율은 이성을 잃고 이를 악물었다. “쪼잔해 보이든 말든, 그 책을 하차할 거예요!” 자신이 소설 속에서 수 역할로 묘사되었고, 그것도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있다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조유진은 객관적으로 말했다. “사실 책 내용은 나쁘지 않아요. 꽤 재미있고 독자도 많아요.” “독자가 몇 명인데?”“몇만 명 정도?” “뭐?”‘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날 수로 상상했
병실에서 조유진은 그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앉아 있다가 잠들었다. 잠에 들어서도 손가락이 배현수의 손에 살짝 얽혀 있었는데 다정하고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이 사진은 완전히 남자 친구 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입원 생활이 지루하다고 하다니.육지율이 댓글을 남겼다. “뭐야, 입원했어? 혹시 가정 폭력이라도 당한 거야?” 댓글을 남기고 나서 육지율은 차에 시동을 걸며 남초윤에게 말했다. “과일 바구니 좀 사서 병문안이나 가요. 친구가 입원했어요.” “친구? 설마 배 대표님이세요? 어디 아파요?” 육지율은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진짜 아플 수도 있고 그냥 꾀병일 수도 있고.” 혹시 모른다. 꾀병일지도....병원에서는 조금 전 장은숙이 산성 별장에서 저녁 식사를 가져왔다. 수술 후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밤은 죽 같은 유동식만 먹어야 했다. 배현수는 오른손을 쓸 수 없었기에 조유진이 죽 그릇을 들고 숟가락으로 그에게 먹여주고 있었다. 첫 숟가락을 그의 입 앞에 가져가자 배현수는 뜨겁다고 투덜댔다. 조유진이 후후 불어 온도를 맞춘 후 말했다. “이제 적당히 식었어요.” 배현수는 그제야 죽을 한 입 삼켰다. 그 순간 병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장난스러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며칠 못 본 사이에 아기로 됐네? 밥도 혼자 못 먹고, 조유진이 널 너무 오냐오냐한 거 아냐?” 조유진이 놀라서 뒤돌아보니, 육지율과 남초윤이 병실에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설명했다.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입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며칠 동안 오른손은 쓰지 말라고 하셨어요. 상처가 더 심해질 수 있거든요.” 그러자 육지율은 다짜고짜 그의 오른쪽 어깨를 툭 쳤다. “진짜야?” 배현수는 고통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미친놈아!” 조유진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변호사님, 진짜로 다쳤다니까요! 어깨에 구멍이 났다고요, 함부로 건드리지 마세요!
그녀를 겨우 한 번 데리러 온 김에 출퇴근길의 불편함을 느끼고는 아예 차를 사서 해결하려고 하다니, 정말 육지율 다운 방식이었다.이 4S 매장에서 파는 차들은 모두 포르쉐였고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가장 저렴한 모델도 수천억 원대였다. 남초윤은 이미 남씨 집안이 육지율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었기에, 그가 차를 선물해 주겠다고 해도 받을 수 없었다.남초윤은 차분히 말했다. “앞으로는 출퇴근 길에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 굳이 차를 선물할 필요는 없어요.”육지율은 순간 멈칫했다가 살짝 비웃으며 말했다. “차 한 대 선물한다고 귀찮다는 딱지가 붙어요? 이런 확산적 사고방식은 참 대단하네.”“....”정말 그런 게 아니란 말인가?평소에도 성격이 불 같았던 육지율은 차를 주겠다고 하면서도 그녀를 달래는 상황이 우스웠는지 어이없어 웃었다. 둘 중 누가 더 성격이 나쁜지 모를 일이었다.영업 직원은 남초윤을 육지율이 외부 애인으로 오해했고, 이 큰 거래가 깨질까 봐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가씨, 변호사님께서 차를 사주시는 건 출퇴근 시간을 줄여서 그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게 해주려는 마음이 아닐까요?”남초윤은 더 이상 그의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미 갚을 수 없는 빚이 너무 많았고 계속해서 더 쓴다면 두 아이를 낳아야 겨우 그 빚을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나 육지율은 그 여느 때처럼 행동했다. 그는 VIP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빨리 골라요. 차 안 사면 집에 못 돌아가요.”남초윤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여자 영업 직원이 다가와 다양한 모델을 소개할 때, 그저 듣기만 했다. 그 직원은 미소를 띠며 말도 아주 달콤하게 했다. “변호사님은 저희 매장의 단골이세요. 그런데 여자를 데리고 온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변호사님이 정말로 많이 아끼시는 것 같아요. 비싼 차를 고르시면 아마 더 기뻐하실 거예요.”역시, 판매왕이었다.감정적 가치를 제공하는 법을 너무나 잘 아는 직원이었다. 하지만 남초윤은 그저 외부의
남초윤은 결혼 상태를 한 번도 업데이트한 적이 없었다. 동료들 눈에는 여전히 미혼으로 보였다.처음 그녀와 육지율의 스캔들이 터졌을 때 온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사실 모두 육지율의 매력적인 외모 때문이었다. 아무도 남초윤처럼 작고 평범한 존재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육지율이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들의 침대 사진이 언론이나 남재원에게 유출되지 않은 것도 기적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육지율이라는 유명한 바람둥이가 ‘함정'에 빠져 순진한 여자와 관계를 맺은 후, 마지못해 결혼했다는 소문만 믿고 있었다.육지율이 연예계 인물이 아닌 만큼 동료들 중에서도 아무도 그 사건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육지율이 ‘좋은 집안의 아들’ 이라는 사실만 기억하고 그의 결혼 상대가 누군지에는 무관심했다. 그녀는 어디에도 크게 드러나지 않았고 언론에서도 그의 곁에 서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남초윤은 그렇게 세상 사람들의 눈에 숨겨져 있었다.동료들은 그저 그녀가 조금 집안 배경이 있는 부유한 여자인 줄로만 알았고 육지율의 아내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육지율의 아내라면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그들과 같이 일하며 고생할 일은 없을 테니까. 설령 과거에 파파라치 일을 했더라도 그렇게 높은 곳에 시집갔다면 육씨 집안이 그녀를 계속 그 일을 하도록 놔두지 않았을 거라고 여겼다.비록 세상은 모두 직업의 평등을 외치고 있지만 상류 사회에는 여전히 그들만의 규칙이 있었다. 체면과 명예가 그들의 신분과 존엄을 상징했다. 파파라치라는 직업은 육씨 집안에게 있어 절대 자랑스러울 수 없는 일이었으니, 육지율과 강란희가 그녀에게 좀 더 체면 있고 유망한 직업들을 제안했지만 남초윤은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렇게 시간을 보낸 끝에 동료들은 하나둘씩 퇴근하고 남초윤만 남았다. 한 시간이 흐른 뒤 남초윤은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저녁 7시가 되었다. 그녀는 통화 기록을 훑어보고 다시 한 번 메시지를 확인했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