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배 대표님이 7년이라는 시간에 대한 개념이 없다면 똑똑히 알려줄게요. 7년이면 인체의 모든 세포가 한 번 바뀌어요. 7년 전의 저와 지금의 저는 같은 사람이지만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7년 전 조유진은 배현수를 위해 열여덟 살에 아이를 낳을 정도로 사랑했어요.”“하지만 지금 당신 앞에 서 있는 사람은 25살의 조유진이에요. 그녀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 단지 당신과 선을 긋고 싶을 뿐이에요.”조유진은 배현수의 품에 갇혀 얼굴이 창백하고 온몸이 심하게 떨렸다. 이런 스트레스 반응은 그녀를 숨을 쉴 수 없게 했다. 하지만 조유진은 한 마디 한 마디 분명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배현수가 한순간 뻣뻣하게 굳었다. 그를 사랑하지 않아...배현수의 집념적인 관점에서 사랑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에 대한 조유진의 감정이 엄창민에게로 옮겨간 거라고 믿었다. 그의 눈에는 순식간에 차가운 기운이 맴돌았다. 배현수는 조유진의 귀에 대고 말했다. “당신과 엄창민, 어디까지 발전했어?”배현수는 그녀에게 귀부터 뺨, 입술까지 가볍게 뽀뽀를 하고 있지만 소유욕이 넘쳤다.“내가 말했잖아요. 그와는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하지만 배현수는 이미 미쳤고 질투와 분노가 그를 통제 불능으로 만들었다.“엄창민이 당신을 이렇게 만졌어?”“...”“유진아, 내가 너를 가장 미워하는 게 뭔지 알아?”“...”예전에 배현수는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조유진이 자신을 배신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야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그녀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괜찮다. 사랑이라는 것은 그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질 수 있으니 다른 사람에게서 다시 그에게로 옮겨질 수도 있다.배현수의 입맞춤은 더욱 깊어졌다. 배현수는 조유진의 입술을 깨물었는데 그녀가 심하게 떠는 것을 느끼고 동작을 멈추었다.“왜? 싫어?”엄창민, 그 사람이 나은가? 그들은 단지 일 년 동안 떨어져 있었을 뿐이다. 전에 그가 그녀를 건드릴 때 그녀는 이렇게
배현수가 멀어져 가는 랜드로버를 보며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엄 대표님.”“배 대표님? 갑자기 저한테 전화한 이유가 뭐예요?”“엄창민이 대표님의 의자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일부 추잡한 말은 먼저 앞에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난처해지면 안 좋을 것 같아요.”“엄창민? 그 애와 배 대표가 무슨 불화가 있었어요?”“엄창민은 대제주시에서 SY와의 합작 프로젝트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는 일을 경솔하게 하고 공사를 구분하지 못해요.”엄 노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엄창민의 성격은 내가 잘 알고 있어요. 그는 일을 매우 진중하게 처리하는데, 공사를 구분하지 못할 리가 없어요. 배 대표님,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말씀하시는 건가요?”“엄창민 씨가 저를 세 대 때려서 턱뼈가 약간 금이 갔어요.”“뭐라고요?”엄 노인은 깜짝 놀랐다.“무슨 일 때문에 싸웠어요?”“한 여자때문에요.”“...”엄 노인은 이것이 너무 황당하다고 느꼈다.“그 여자가...?”“조유진이요. 제 전처이자 아이의 엄마예요.”엄 노인은 심호흡을 했다.“...”이게...하지만 두 그룹이 협력하고 있기 때문에 배현수의 미움을 사면 안 되었다. 만약 이런 개인적인 일로 이렇게 큰 협력을 망친다면, 이것은 분명히 자격을 갖춘 사업가의 행동이 아니다.엄 노인은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엄창민을 즉시 성남으로 불러들여 똑똑히 물어볼게요. 엄창민이 배 대표를 때린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합당한 해명을 할게요. 하지만 이런 개인적인 일이 우리의 정상적인 비즈니스 거래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랍니다.”배현수에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당연하죠. 엄 대표님이 잘 알겠지만, 전 공사가 분명한 사람입니다. 대제주시의 성행 그룹 책임자는 진중한 사람으로 바꾸길 권합니다. 그래야 성행과 SY의 비즈니스 협력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 같아요.”“...”이것은 압박이다. 엄 노인은 여러 해 동안 업계를 종횡무진한 노련한 사람이니 당연히
“그러니까 배현수 이 자식이 일러바친 거예요? 제가 주먹으로 세 대 때린 건 얘기 안 하던가요? 환희에게 그렇게 함부로 하는데 걔는 맞아도 싸요. 환희 대신 몇 대 더 때리지 못한 게 아직도 분이 안 풀리는데!”그러자 엄준은 타이르는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조유진과 배현수, 두 사람의 개인적인 감정이야. 아무리 그래도 네가 우리 협력사 파트너를 때리면 안 되지. 만약 배현수가 고소라도 하면 우리가 하려던 사업은 고사하고 거액의 배상금까지 내야 할 수도 있어. 어쨌든 사람을 때리는 것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용납할 수 없어.”“하지만 배현수가 사람을 너무 괴롭히잖아요!”“어렸을 때부터 내가 항상 너와 명월에게 무모하게 행동하면 안 된다고 가르쳤잖아. 오늘 너의 행동 좀 다시 한번 생각해 봐. 얼마나 무모한지. 일단 대제주시의 업무를 전부 명월에게 주고 너는 내일 아침 당장 돌아와!”엄준의 목소리는 더없이 진지했고 엄창민도 더 이상 토를 달지 못하고 순순히 답했다.“네, 아버지.”전화를 끊은 엄창민은 침대 머리맡에 앉아 심호흡을 몇 번 하며 분노를 가라앉히더니 이내 일어나 맞은편 방으로 갔다.“환희야, 너에게 할 말이 있어.”엄창민은 조금 전 통화 내용을 조유진에게 말하는 대신 내일의 일정에 대해 말했다. “환희야, 내일 아침 나는 일찍 성남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이렇게 불시에요? 어르신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죠?”“아니야. 업무 조정 때문에. 너... 너는 어떻게 할 거야? 나와 함께 성남으로 갈 거야?”엄창민은 배현수가 개인적인 일로 엄준을 협박하여 자기를 성남으로 돌려보내게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당분간은 돌아갈 수 없어요. 오빠도 알다시피 며칠 후에 선유와 영화 보기로 한 것도 있고... 선유와 오랜만에 한 약속이라 절대 어기고 싶지 않아요.”그러자 엄창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해해. 만약 배현수가 또 너를 괴롭히면 나에게 전화해. 내가 바로 올 테니.”“알겠어요. 고마워요. 창민 오빠.”“참,
한편, 조유진을 잡고 있던 엄창민은 그녀의 손을 놓더니 작별 인사를 하려 했다. 순간 키가 크고 어깨가 쩍 벌어진 기세등등한 남자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강한 기세와 얼음장 같이 차가운 얼굴에는 당장이라도 거센 바다를 집어삼킬 듯한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배현수다!배현수가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지?그를 본 조유진은 순간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배현수는 그녀 앞에 성큼성큼 오더니 그녀의 손목을 꽉 잡고는 그녀를 데려가려고 했다.“배현수 씨, 뭐 하는 거예요?”엄창민은 조유진을 붙잡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배현수는 이미 그녀를 자기 등 뒤에 숨겼다. 엄창민이 더 가까이 가려 하자 배현수가 한 발 앞으로 나와 그를 가로막았다.배현수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로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두 개의 선택지를 줄게요. 하나는 혼자 꺼지던가 아니면 그날 밤처럼 조유진을 데려가기 위해 나와 다시 한번 싸우든가.”배현수가 일부러 엄창민을 자극하고 있었다.엄창민은 엄준의 지시에 따라 반드시 성남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조유진도 선유 친아빠가 누군가에게 맞길 바라지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엄창민은 있는 힘껏 꽉 쥔 주먹을 도저히 휘두를 수 없었다. “역시 배 대표님의 계산이 제 주먹보다 빠르다는 걸 오늘 다시 한번 느끼네요.”만약 엄창민이 이곳을 떠나지 않고 배현수와 맞선다면 엄준의 말을 거역하게 되며 그 뒤에 어떤 결과가 따를지 절대 상상할 수 없었다. 어쩌면 성행 그룹과 SY 사이의 협력관계도 완전히 끝날 수 있다. 그리고 양아버지는 그에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존재이다.여덟 살이 되던 그해, 엄창민은 엄준에게 입양되었고 그 후로 20년간 그는 엄준을 친아버지처럼 모시며 언제 어디서나 성행 그룹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움직였다.양아버지와 성행 그룹은 그의 마음속에서 흔들림 없이 1위를 차지하는 존재이다.그리고 이것은 엄창민 인생의 신조이며 누구도 그의 인생 신조를 흔들 수 없다.하지만 30년 동안 살면서 그
조유진은 입술을 꼭 다문 채 그의 품에서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또 한 번의 이 숨 막히는 공간 속에서 이대로 숨이 멎을 것 같은 느낌이다. 마치 깊은 바닷속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손을 내밀어 구원요청을 하지만 더 매서운 파도가 온몸을 휩쓸어가는 것 같다. 거센 파도에 온몸은 위로 높이 던져지기도 하고 갑자기 내동댕이쳐지기도 했다.지금 이 순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쿵쾅. 쿵쾅. 쿵쾅.심장은 당장이라도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미친 듯이 빨리 뛰었다.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서정호는 차 유리에 붙인 필름 때문에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배현수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그것도 아주 차분히... 하지만 배현수의 인내심은 이미 오래전에 바닥이 나 있었고 조유진이 엄창민을 따라 성남으로 돌아가려 한다고 생각했을 때는 질투에 눈이 멀어 눈에 뵈는 게 없었다.그는 눈을 살짝 치켜뜨고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말해 봐. 25살의 조유진은 왜 배현수하고만 선을 긋고 싶어 하는지? 일부러 그러는 거야 아니면 진심인 거야?”조유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1초...2초...3초...끝없는 침묵이 이어졌다.배현수는 가볍게 웃었고 그 웃음에는 조롱과 실망 그리고 허탈한 감정이 전부 섞여 있는 듯했다.지금 이 순간, 침묵만이 가장 좋은 대답이다.배현수는 점점 더 힘주어 조유진의 팔을 잡았다. 순간 그녀의 왼쪽 가슴에 난 칼자국을 발견한 그는 손가락으로 가볍게 조유진의 상처를 쓰다듬었다. 배현수의 손끝은 한없이 차가웠다. 분명 부드러운 손길이었지만 그의 얼굴도 손처럼 얼음장같이 차가웠고 손끝에서는 아무런 온기도 느낄 수 없었다. “꼭 그렇게 나와 선을 그어야 속이 시원해?”조유진은 이번에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배현수는 그녀의 셔츠를 허리춤까지 벗겼다.차 안에는 에어컨이 켜져 있지 않았지만 조유진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그녀의 손바
배현수는 순간 모든 행동을 멈추더니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유진아...”조유진의 얼굴, 몸은 마치 물에 빠졌다 나온 사람처럼 흠뻑 젖어 있었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조유진을 안고 있던 배현수는 그제야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고 그녀를 안아 자리에 앉히더니 자기의 어깨에 기대게 한 후 큰 손으로 그녀가 숨을 고르게 쉴 수 있도록 등을 어루만져줫다.“숨 한 번 크게 들이마셔 봐.”조유진은 그의 어깨에 기댄 채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들이마셨다 내뱉기를 반복했다. 시간이 얼마쯤 지났을까? 배현수의 어깨에 기대어 있던 조유진의 호흡이 점차 안정되기 시작했다.배현수가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그녀를 보았을 때 그의 이마는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배현수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조유진의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주었다. 그러고는 그녀를 달래듯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맞췄다. “내가 그렇게 무서워?”사실 배현수는 그녀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힘들어하는 그녀의 모습에 배현수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렇게 배현수는 조유진을 꼭 끌어안은 채 차 안에 오래도록 같이 있으며 그녀의 마음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렸고 시간이 좀 지나니 배현수의 정서도 안정되는 듯했다. 긴 시간 동안 배현수라는 존재가 확실히 그녀에게 큰 후유증이 된 것 같다. 얼마쯤 지났을까? 조유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 이제 가도 돼?”배현수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사실 조유진이 약한 모습을 보인 이유는 단지 배현수 옆을 빨리 떠나기 위해서였다.그때 배현수가 조유진을 바라보며 한 마디 내뱉었다.“안 돼.”배현수의 대답에 조유진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이미 두려움과 절망이 가득했다.순간 옆에 있는 배현수가 손을 올리자 그녀는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배현수는 그녀의 셔츠를 허리에서 어깨로 올려주고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한마디 했다.“옷도 제대로 입지 않고 어디를 가려고?”조유
차에 오른 서정호는 백미러로 뒷좌석에 앉아 있는 배현수를 조심스럽게 힐끗힐끗 쳐다보았다.배현수는 시선을 아래로 내린 채 작은 진주 귀걸이를 손에 쥐고 만지작거렸다. 그의 모습은 마치 혼이 반쯤 나간 사람 같았다. 그때 서정호가 물었다.“배 대표님, 조유진 씨를 따라갈까요? 방금 떠났으니 우리가 빨리 운전하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겁니다.”배현수는 잠시 아무 말을 하지 않더니 갑자기 실소를 터뜨렸다.“한쪽만 아니라고 하면 결국에는 아닌 게 되는 거였어.”그는 목을 한 번 가다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유진이가 나를 피해.”배현수는 조유진에게 좀 더 다가가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배현수가 한 걸음만 다가가도 그녀는 열 걸음 뒤로 물러선다.그녀와 더 멀어지지 않기 위해 배현수는 멈출 수밖에 없다.서정호는 배현수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살짝 당황했다. 어찌 되었든 회사 대표인지라... 아무 말이나 할 수 없었다.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배 대표님, 대표님과 조유진 씨는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면서 좋아하게 되었다는 거 잘 알아요. 그래서 서로 같이 많은 경험을 했죠. 그 추억들이 아름다운 것이든 아니면 심장을 찌르도록 아픈 것이든 두 사람에게만 있는 추억입니다. 그 추억은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이고 나중에 그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절대 서로를 대체하지 못할 거예요. 그 누구도 서로의 마음속 위치를 대체할 수 없죠.마음 깊이 새길 수 있는 이런 감정들은 많은 사람은 경험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요. 대표님보다 좀 더 오래 산 사람으로서 말씀드리자면 저와 저의 아내는 대표님과 조유진 씨처럼 감정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지 않았지만 저의 아내도 저와의 결혼생활을 포기하려고 했어요.다른 사람들의 눈에 저희의 결혼이 원만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거든요. 그런 말이 있죠. 죽고 못 살 정도의 사랑으로 한 결혼이라고 해도 상대방을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울 때가 있다고. 사람이 동물도 아니고 이런 감정들이 어찌 없겠습니까. 대표님과
“다 알고 있었어요? 우리 오빠가 미경 씨와 있을 때 조유진 씨 이름을 많이 불렀나 봐요!”심미경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조유진이 죽었다고요?”“몰랐어요? 조유진 그 여자가 1년 전에 바다에 뛰어들어 죽었어요. 아, 그리고 시신은 아직 못 찾았어요.”시신을 못 찾았다고 말을 하는 강이진은 뭔가 통쾌한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강이진은 조유진을 미워했다.조유진 같은 여자를 배현수가 계속 잊지 못한다는 사실이 항상 강이진을 질투하게 했다. 심미경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런데... 우리 지난주에 조유진 씨와 샤브샤브를 먹었어요. 조유진 씨 안 죽었어요.”“뭐라고요?”강이진은 깜짝 놀라 손에 쥐었던 포크를 땅에 떨어뜨렸다.땡그랑.그때 마침 강이찬도 집에 도착해 현관에서 거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진아 너 또 사고 쳤니?”그녀는 강이찬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재빨리 그의 옆으로 다가가 물었다.“오빠, 조유진 아직 살아있어? 직접 오빠 두 눈으로 살아있는 거 확인했어?”강이찬은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물었다.“왜? 또 조유진 귀찮게 하려고? 겨우 살아서 돌아온 사람 귀찮게 할 생각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네가 또 괴롭히면 너의 그 현수 오빠가 절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강이진은 마치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조유진이 살아있다니... 아직 살아있었어...”강이진의 멍한 모습에 강이찬은 더욱 눈살을 찌푸렸다. “이진아, 너도 이제 어린애가 아니니 더 이상 배현수 따라다니지 마. 내가 말했잖아. 현수는 평생 결혼을 안 하면 안 했지, 너를 여자로 볼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게다가 지금은 유진 씨까지 돌아왔으니 인제 그만 꿈 좀 깨는 게 어때?”“아니야...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일 없을 거야. 현수 오빠 어머니가 조유진 엄마를 죽였어. 두 사람 사이 때문에 죽은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다시 만나! 두 사람은 만나서는 안 되는 사이라고!”이 말을 하는 강이진의 두 눈은 순간 반짝였
육성일의 압도적인 기운은 전화 너머에서도 남초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묵직한 압박감은 느껴졌다. 그때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는지, 어떻게 육씨 집안에 시집갔는지 스스로도 의아했다. 만약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차라리 구걸을 하더라도 절대 육씨 집안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남초윤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할아버지, 부탁드려요. 저희가 약속했던 건 두 달 전이었잖아요. 아직 두 달이 채 안 지났고, 제가 지금 아기를 가졌다고 해도 확인이 안 될 수도 있어요.” 그 말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기에 육성일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전화를 겨우 넘겼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이번엔 ‘개자식’ 육지율이었다. “...” 할아버지와 손자는 통화 시간까지 맞춘 것처럼 기가 막히게 연달아 전화를 걸어온다. 그녀는 냉랭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왜요?” 육지율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폭탄이라도 먹었어요?” 육지율이 자신의 책을 내리게 만들고, 지난달과 이번 달 원고료도 다 날려버린 상황에서 그녀가 전화를 받아준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아직 유지 중이었고 필요한 것도 있으니 남초윤은 결국 목소리를 가다듬고 좀 더 부드럽게 말했다. “지율 오빠, 무슨 일이에요?” “... 뭐라고 불렀어요?” “지~율~오~빠~” 그녀는 유설영의 말투를 흉내 내며, 아니, 오히려 더 능숙하게 말했다. 육지율은 순간 닭살이 돋았다. “제발 평소처럼 말해요. 저녁에 내 친구가 귀국하는데 같이 식사해요. 6시에 잡지사로 데리러 갈게요.” 남초윤은 단번에 거절했다. “난 안 갈래요.” “저녁에 뭐 다른 약속 있어요?” 남초윤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결혼한 지 3년 됐지만 당신은 나한테 친구 한 명도 소개해 준 적 없잖아요.” 그리고 이제 곧 이혼할 텐데 친구를 만날 필요는 더 없었다.이혼하고 나서 친구들이
조유진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학교에서 누가 너 괴롭히진 않았어?” 배선유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응, 나 괴롭히는 사람 없어. 할아버지가 우리 학교에 엄청난 돈을 기부하셔서 선생님들도 항상 나한테 잘해주시고 많이 관심 해주셨어. 그래서 나도 함부로 장난칠 수가 없어. 혹시 선생님이 할아버지한테 이르실까 봐.” 배현수는 이 말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배선유는 작은 악동처럼 말이 많았고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아이였다. 배현수의 말에도 자주 대꾸를 하니, 만약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면 벌써부터 떠벌렸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남을 괴롭히는 쪽에 더 가까웠다. 성남에서 엄준은 배선유를 엄청나게 아끼며 키웠고, 그래서인지 아이는 주눅이 들지 않고 활발하게 자랐다.조유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다행이네. 우리 선유가 공부를 게을리할 걱정은 없겠어.” 배현수는 딸을 겁주듯 말했다. “너 공부 안 하고 일찍 연애라도 시작하면, 널 대제주에 데려와서 24시간 동안 지켜볼 거야.” 배선유는 입술을 내밀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이건 너무 심해요! 나 혹시 쓰레기통에서 주워 온 거 아니에요?” 배현수는 코웃음을 치며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말했다. “공부 안 하면 좋은 날은 없을 거야.” 잠시 후, 학교 종이 울릴 시간이 가까워졌다. 배선유는 전화를 끊으려다가 친구가 그린 결혼사진 두 장을 영상 속으로 건네받았다. “선유야! 너랑 지우의 결혼사진 내가 그려놨어! 한 번 봐봐!” 배선유가 물었다. “한 장에 얼마야?” “너니까 공짜로 해줄게! 대신 다음번엔 나랑 결혼해 줄 수 있어?” “생각해볼게!” “...” 이 속도로라면 그들 부부는 도대체 몇 명의 사위를 맞이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한편, 스타라이트 매거진에서.남초윤이 사이트 편집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그녀의 책은 예상대로 플랫폼에서 삭제되었고 이달 원고료는 한 푼도 들어오지 않
[합법적 부부] 함께 올라온 사진엔 결혼반지를 낀 두 손이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이 게시글이 올라가자마자 마치 깊은 바다에 떨어진 폭탄처럼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어 반응했다. 육지율: [8년의 여정 끝에 드디어 자랑할 수 있네!] 송하진: [어! 전 두 사람 목숨 구해준 은인이에요. 제가 아니었으면 두 사람이 어떻게 혼인신고까지 했겠어요? 당장 절 주빈으로 식사 대접해요!] 남초윤: [아아아아! 유진이를 결혼이라는 무덤 속으로 끌어들이다니! 대표님 너무하세요!] 엄창민: [내 여동생한테 잘해요. 혹시라도 괴롭히면 내 주먹이 용서 못 해요!] 엄명월: [형부! 이렇게 좋은 일에 저희한테 뭐라도 사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강이찬: [축하해, 결국 원하는 대로 됐네.] 심미경: [백년해로하세요.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서정호: [대표님, 일 다 끝냈으면 빨리 돌아오세요. 의사 선생님이 여기서 엄청 화내고 있어요. 저 더는 못 버틸 것 같아요!] 학교 가기 싫어: [와! 아빠랑 엄마가 드디어 결혼했네요! 헤헷, 아빠, 나도 오늘 결혼했어요!] 배현수는 배선유의 댓글을 보고 순간 검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조유진이 운전하며 그의 미세한 변화를 눈치채고 물었다. “왜 그래요?” “선유가 결혼했다는데.” “뭐라고요?” 조유진은 깜짝 놀라 차를 도로 옆에 세우고 급히 배선유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저쪽에서 배선유는 학교에 있었는데 마침 쉬는 시간이었다. 외국어 학교라 분위기가 자유로워 아이들은 평소에도 부모님과 연락을 하기 위해 휴대폰을 가지고 다녔다. 배선유는 전화를 받자마자 얼굴을 카메라 앞으로 들이밀었다. “엄마, 아빠! 나 사진 보고 싶어!” 조유진은 그녀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나서 물었다. “선유야, 아까 결혼했다고 했잖아. 누구랑 결혼한 거야?” “우리 반 한지우랑! 엄마, 나 오늘 엄청 많은 축의금을 받았어! 내가 다 적어 놨어!”
조유진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갈게요.” 그가 환자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이번 한 번은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 다음 날 이른 아침. 서정호가 산성 별장에서 두 벌의 정장과 결혼 서류를 준비해왔다. 조유진은 오랜만에 풀 메이크업을 하고 머리도 고데기로 말았다. 그녀는 하얀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사진에 잘 나올 수 있도록 최대한 신경 썼다. 그녀는 한동안 이렇게까지 꾸미지 않았는데 하이힐을 신고 배현수 앞에 서니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조금 어색해졌다. 그래서 물었다. “나 어때요?” “아름다워. 넌 언제나 아름다워.” 배현수는 전혀 망설임 없이 그녀를 칭찬했다. 조유진은 웃음을 참으며 옆에 있던 넥타이를 집어 들고 배현수에게 매어주었다. 배현수는 그녀의 손길에 고개를 숙이며 협조했다. 조유진은 평소와 다르게 더 복잡하고 정중한 ‘엘드리지 매듭’으로 넥타이를 맸는데 배현수는 평소에 간단한 윈저 매듭만 했었다. “이 매듭은 좀 생소하네.” 조유진은 넥타이를 다 매고 나서 그의 셔츠와 정장 재킷의 깃을 정리해 주었다. “이게 엘드리지 매듭이라고 해요. 중요한 자리에서 어울리는 방식이죠. 어때요, 괜찮아요?” “멋져. 하지만 여보, 우리 서둘러야 해. 조금 있으면 의사가 올 거야.” 웃으며 농담하듯 이야기하던 배현수는 조유진의 외투를 챙겨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고, 그녀를 한 손으로 감싸 병실을 몰래 빠져나갔다. 두 사람은 마치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와 차에 올랐다. ... 그들이 빠져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사가 병실에 회진을 왔다.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그곳에는 ‘무관한 사람’만 남아 있었다. 의사는 엄숙한 표정으로 서정호를 보며 물었다. “환자는 어디 갔죠? 튜브까지 다 뽑다니, 누가 뽑았습니까?” 서정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환자 본인이 뽑았습니다.” “도대체 어디 간 겁니까? 팔을 정말 망가지게 할 작정인가요
배현수의 가슴이 떨렸다. 그는 조유진과 이마를 맞대며 낮게 속삭였다. “그때 난 네 옆에 있진 않았지만 네 뒤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 그런데 왜 울었어?” “현수 씨 생각이 났어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펐거든요. 내가 이렇게 좋은 남자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아쉽고 후회스러웠죠. 그래서 울었어요.” 지금 이렇게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은 느낌이었다. 조유진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이번 눈물은 슬픔이나 후회 때문이 아니었다. 감동과 감사함 때문이었다. 운명이 그들을 온갖 고난 속에서도 끝끝내 묶어 놓았고, 그들 사이에선 이제 더 이상 헤어질 수 없는 깊은 연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배현수는 긴 손가락을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천천히 끼워 넣으며 손을 꼭 맞잡았다. 순간 그들의 손바닥에서 따뜻함이 퍼져나갔다. 그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진아, 넌 한 번도 날 잃은 적 없어. 우리가 몇 번을 떨어져도, 얼마나 오랫동안 떨어져 있더라도 난 결국 널 찾아내서 꼭 안고 말해줄 거야. 사랑한다고. 오직 너만 사랑한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조유진은 배현수의 유일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조유진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현수 씨, 우리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까요?” “그럼.” 그의 대답은 8년 전과 똑같았다. 짧지만 확고했으며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조유진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손목에 걸린 달콤한 연녹색 비취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상처가 나으면 우리 같이 아주머니를 위한 좋은 묘지를 고르러 가요. 그분을 위한 의관묘라도 만들어 드리는 게 어때요?” “아직도 ‘아주머니’라고 불러?” 조유진은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며 말투를 바꿨다. 배현수는 그녀의 팔찌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풍수 좋은 곳을 따로 고를 필요는 없어. 어머니께
육지율은 그 필명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기억해 냈다. “이 자식! 기억났어! 이 녀석이 책에서 날 모욕하지 않았나? 내 명성을 망가뜨렸잖아?” 남초윤은 급하게 말했다. “잘못 본 거 아니에요? 비엘 작가가 주인공을 모욕할 리가 없어요! 그러면 밥숟가락 들고 욕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어요?” “나를 ‘수’로 묘사한 게 모욕이 아니고 뭐예요? 왜 항상 배현수가 공이냐고?” 남초윤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그 부분을 신경 쓰고 있었던 거였다.남초윤은 그가 진짜 작가를 고소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래서 변명하듯 말했다. “다음번엔 지율 씨가 공이고, 배 대표님이 수가 될 수도 있잖아요. 원래 BL 소설에서는 공수 구분이 모호해요. 겉보기에 수 같아도 사실은 공일 수도 있다고요!” 조유진은 살짝 의문을 제기했다. “난 현수 씨가 수 같지는 않았는데. 만약 현수 씨가 진짜 수라면 캐릭터 붕괴지. 차라리 육 변호사님이 수인 게 더 어울려. 자유롭고, 매력적이고, 다정하잖아.”“?”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육지율은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며 조유진에게 따졌다. “아니, 조유진. 내가 약해 보이는 수 같은 느낌을 준다고?” “...” 배현수는 차갑게 말했다. “유진이가 쓴 것도 아닌데 왜 화내? 그럴 시간 있으면 작가나 고소해.” 남초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그냥 재미로 쓴 거지 무슨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작가를 고소하면 너무 쪼잔해 보일 거예요!” 하지만 육지율은 이성을 잃고 이를 악물었다. “쪼잔해 보이든 말든, 그 책을 하차할 거예요!” 자신이 소설 속에서 수 역할로 묘사되었고, 그것도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있다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조유진은 객관적으로 말했다. “사실 책 내용은 나쁘지 않아요. 꽤 재미있고 독자도 많아요.” “독자가 몇 명인데?”“몇만 명 정도?” “뭐?”‘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날 수로 상상했
병실에서 조유진은 그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앉아 있다가 잠들었다. 잠에 들어서도 손가락이 배현수의 손에 살짝 얽혀 있었는데 다정하고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이 사진은 완전히 남자 친구 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입원 생활이 지루하다고 하다니.육지율이 댓글을 남겼다. “뭐야, 입원했어? 혹시 가정 폭력이라도 당한 거야?” 댓글을 남기고 나서 육지율은 차에 시동을 걸며 남초윤에게 말했다. “과일 바구니 좀 사서 병문안이나 가요. 친구가 입원했어요.” “친구? 설마 배 대표님이세요? 어디 아파요?” 육지율은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진짜 아플 수도 있고 그냥 꾀병일 수도 있고.” 혹시 모른다. 꾀병일지도....병원에서는 조금 전 장은숙이 산성 별장에서 저녁 식사를 가져왔다. 수술 후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밤은 죽 같은 유동식만 먹어야 했다. 배현수는 오른손을 쓸 수 없었기에 조유진이 죽 그릇을 들고 숟가락으로 그에게 먹여주고 있었다. 첫 숟가락을 그의 입 앞에 가져가자 배현수는 뜨겁다고 투덜댔다. 조유진이 후후 불어 온도를 맞춘 후 말했다. “이제 적당히 식었어요.” 배현수는 그제야 죽을 한 입 삼켰다. 그 순간 병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장난스러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며칠 못 본 사이에 아기로 됐네? 밥도 혼자 못 먹고, 조유진이 널 너무 오냐오냐한 거 아냐?” 조유진이 놀라서 뒤돌아보니, 육지율과 남초윤이 병실에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설명했다.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입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며칠 동안 오른손은 쓰지 말라고 하셨어요. 상처가 더 심해질 수 있거든요.” 그러자 육지율은 다짜고짜 그의 오른쪽 어깨를 툭 쳤다. “진짜야?” 배현수는 고통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미친놈아!” 조유진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변호사님, 진짜로 다쳤다니까요! 어깨에 구멍이 났다고요, 함부로 건드리지 마세요!
그녀를 겨우 한 번 데리러 온 김에 출퇴근길의 불편함을 느끼고는 아예 차를 사서 해결하려고 하다니, 정말 육지율 다운 방식이었다.이 4S 매장에서 파는 차들은 모두 포르쉐였고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가장 저렴한 모델도 수천억 원대였다. 남초윤은 이미 남씨 집안이 육지율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었기에, 그가 차를 선물해 주겠다고 해도 받을 수 없었다.남초윤은 차분히 말했다. “앞으로는 출퇴근 길에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 굳이 차를 선물할 필요는 없어요.”육지율은 순간 멈칫했다가 살짝 비웃으며 말했다. “차 한 대 선물한다고 귀찮다는 딱지가 붙어요? 이런 확산적 사고방식은 참 대단하네.”“....”정말 그런 게 아니란 말인가?평소에도 성격이 불 같았던 육지율은 차를 주겠다고 하면서도 그녀를 달래는 상황이 우스웠는지 어이없어 웃었다. 둘 중 누가 더 성격이 나쁜지 모를 일이었다.영업 직원은 남초윤을 육지율이 외부 애인으로 오해했고, 이 큰 거래가 깨질까 봐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가씨, 변호사님께서 차를 사주시는 건 출퇴근 시간을 줄여서 그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게 해주려는 마음이 아닐까요?”남초윤은 더 이상 그의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미 갚을 수 없는 빚이 너무 많았고 계속해서 더 쓴다면 두 아이를 낳아야 겨우 그 빚을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나 육지율은 그 여느 때처럼 행동했다. 그는 VIP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빨리 골라요. 차 안 사면 집에 못 돌아가요.”남초윤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여자 영업 직원이 다가와 다양한 모델을 소개할 때, 그저 듣기만 했다. 그 직원은 미소를 띠며 말도 아주 달콤하게 했다. “변호사님은 저희 매장의 단골이세요. 그런데 여자를 데리고 온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변호사님이 정말로 많이 아끼시는 것 같아요. 비싼 차를 고르시면 아마 더 기뻐하실 거예요.”역시, 판매왕이었다.감정적 가치를 제공하는 법을 너무나 잘 아는 직원이었다. 하지만 남초윤은 그저 외부의
남초윤은 결혼 상태를 한 번도 업데이트한 적이 없었다. 동료들 눈에는 여전히 미혼으로 보였다.처음 그녀와 육지율의 스캔들이 터졌을 때 온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사실 모두 육지율의 매력적인 외모 때문이었다. 아무도 남초윤처럼 작고 평범한 존재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육지율이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들의 침대 사진이 언론이나 남재원에게 유출되지 않은 것도 기적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육지율이라는 유명한 바람둥이가 ‘함정'에 빠져 순진한 여자와 관계를 맺은 후, 마지못해 결혼했다는 소문만 믿고 있었다.육지율이 연예계 인물이 아닌 만큼 동료들 중에서도 아무도 그 사건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육지율이 ‘좋은 집안의 아들’ 이라는 사실만 기억하고 그의 결혼 상대가 누군지에는 무관심했다. 그녀는 어디에도 크게 드러나지 않았고 언론에서도 그의 곁에 서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남초윤은 그렇게 세상 사람들의 눈에 숨겨져 있었다.동료들은 그저 그녀가 조금 집안 배경이 있는 부유한 여자인 줄로만 알았고 육지율의 아내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육지율의 아내라면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그들과 같이 일하며 고생할 일은 없을 테니까. 설령 과거에 파파라치 일을 했더라도 그렇게 높은 곳에 시집갔다면 육씨 집안이 그녀를 계속 그 일을 하도록 놔두지 않았을 거라고 여겼다.비록 세상은 모두 직업의 평등을 외치고 있지만 상류 사회에는 여전히 그들만의 규칙이 있었다. 체면과 명예가 그들의 신분과 존엄을 상징했다. 파파라치라는 직업은 육씨 집안에게 있어 절대 자랑스러울 수 없는 일이었으니, 육지율과 강란희가 그녀에게 좀 더 체면 있고 유망한 직업들을 제안했지만 남초윤은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렇게 시간을 보낸 끝에 동료들은 하나둘씩 퇴근하고 남초윤만 남았다. 한 시간이 흐른 뒤 남초윤은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저녁 7시가 되었다. 그녀는 통화 기록을 훑어보고 다시 한 번 메시지를 확인했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