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배현수 이 자식이 일러바친 거예요? 제가 주먹으로 세 대 때린 건 얘기 안 하던가요? 환희에게 그렇게 함부로 하는데 걔는 맞아도 싸요. 환희 대신 몇 대 더 때리지 못한 게 아직도 분이 안 풀리는데!”그러자 엄준은 타이르는 듯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조유진과 배현수, 두 사람의 개인적인 감정이야. 아무리 그래도 네가 우리 협력사 파트너를 때리면 안 되지. 만약 배현수가 고소라도 하면 우리가 하려던 사업은 고사하고 거액의 배상금까지 내야 할 수도 있어. 어쨌든 사람을 때리는 것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용납할 수 없어.”“하지만 배현수가 사람을 너무 괴롭히잖아요!”“어렸을 때부터 내가 항상 너와 명월에게 무모하게 행동하면 안 된다고 가르쳤잖아. 오늘 너의 행동 좀 다시 한번 생각해 봐. 얼마나 무모한지. 일단 대제주시의 업무를 전부 명월에게 주고 너는 내일 아침 당장 돌아와!”엄준의 목소리는 더없이 진지했고 엄창민도 더 이상 토를 달지 못하고 순순히 답했다.“네, 아버지.”전화를 끊은 엄창민은 침대 머리맡에 앉아 심호흡을 몇 번 하며 분노를 가라앉히더니 이내 일어나 맞은편 방으로 갔다.“환희야, 너에게 할 말이 있어.”엄창민은 조금 전 통화 내용을 조유진에게 말하는 대신 내일의 일정에 대해 말했다. “환희야, 내일 아침 나는 일찍 성남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이렇게 불시에요? 어르신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죠?”“아니야. 업무 조정 때문에. 너... 너는 어떻게 할 거야? 나와 함께 성남으로 갈 거야?”엄창민은 배현수가 개인적인 일로 엄준을 협박하여 자기를 성남으로 돌려보내게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당분간은 돌아갈 수 없어요. 오빠도 알다시피 며칠 후에 선유와 영화 보기로 한 것도 있고... 선유와 오랜만에 한 약속이라 절대 어기고 싶지 않아요.”그러자 엄창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해해. 만약 배현수가 또 너를 괴롭히면 나에게 전화해. 내가 바로 올 테니.”“알겠어요. 고마워요. 창민 오빠.”“참,
한편, 조유진을 잡고 있던 엄창민은 그녀의 손을 놓더니 작별 인사를 하려 했다. 순간 키가 크고 어깨가 쩍 벌어진 기세등등한 남자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강한 기세와 얼음장 같이 차가운 얼굴에는 당장이라도 거센 바다를 집어삼킬 듯한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배현수다!배현수가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지?그를 본 조유진은 순간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배현수는 그녀 앞에 성큼성큼 오더니 그녀의 손목을 꽉 잡고는 그녀를 데려가려고 했다.“배현수 씨, 뭐 하는 거예요?”엄창민은 조유진을 붙잡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배현수는 이미 그녀를 자기 등 뒤에 숨겼다. 엄창민이 더 가까이 가려 하자 배현수가 한 발 앞으로 나와 그를 가로막았다.배현수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로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두 개의 선택지를 줄게요. 하나는 혼자 꺼지던가 아니면 그날 밤처럼 조유진을 데려가기 위해 나와 다시 한번 싸우든가.”배현수가 일부러 엄창민을 자극하고 있었다.엄창민은 엄준의 지시에 따라 반드시 성남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조유진도 선유 친아빠가 누군가에게 맞길 바라지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엄창민은 있는 힘껏 꽉 쥔 주먹을 도저히 휘두를 수 없었다. “역시 배 대표님의 계산이 제 주먹보다 빠르다는 걸 오늘 다시 한번 느끼네요.”만약 엄창민이 이곳을 떠나지 않고 배현수와 맞선다면 엄준의 말을 거역하게 되며 그 뒤에 어떤 결과가 따를지 절대 상상할 수 없었다. 어쩌면 성행 그룹과 SY 사이의 협력관계도 완전히 끝날 수 있다. 그리고 양아버지는 그에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존재이다.여덟 살이 되던 그해, 엄창민은 엄준에게 입양되었고 그 후로 20년간 그는 엄준을 친아버지처럼 모시며 언제 어디서나 성행 그룹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움직였다.양아버지와 성행 그룹은 그의 마음속에서 흔들림 없이 1위를 차지하는 존재이다.그리고 이것은 엄창민 인생의 신조이며 누구도 그의 인생 신조를 흔들 수 없다.하지만 30년 동안 살면서 그
조유진은 입술을 꼭 다문 채 그의 품에서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또 한 번의 이 숨 막히는 공간 속에서 이대로 숨이 멎을 것 같은 느낌이다. 마치 깊은 바닷속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손을 내밀어 구원요청을 하지만 더 매서운 파도가 온몸을 휩쓸어가는 것 같다. 거센 파도에 온몸은 위로 높이 던져지기도 하고 갑자기 내동댕이쳐지기도 했다.지금 이 순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쿵쾅. 쿵쾅. 쿵쾅.심장은 당장이라도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미친 듯이 빨리 뛰었다.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서정호는 차 유리에 붙인 필름 때문에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배현수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그것도 아주 차분히... 하지만 배현수의 인내심은 이미 오래전에 바닥이 나 있었고 조유진이 엄창민을 따라 성남으로 돌아가려 한다고 생각했을 때는 질투에 눈이 멀어 눈에 뵈는 게 없었다.그는 눈을 살짝 치켜뜨고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말해 봐. 25살의 조유진은 왜 배현수하고만 선을 긋고 싶어 하는지? 일부러 그러는 거야 아니면 진심인 거야?”조유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1초...2초...3초...끝없는 침묵이 이어졌다.배현수는 가볍게 웃었고 그 웃음에는 조롱과 실망 그리고 허탈한 감정이 전부 섞여 있는 듯했다.지금 이 순간, 침묵만이 가장 좋은 대답이다.배현수는 점점 더 힘주어 조유진의 팔을 잡았다. 순간 그녀의 왼쪽 가슴에 난 칼자국을 발견한 그는 손가락으로 가볍게 조유진의 상처를 쓰다듬었다. 배현수의 손끝은 한없이 차가웠다. 분명 부드러운 손길이었지만 그의 얼굴도 손처럼 얼음장같이 차가웠고 손끝에서는 아무런 온기도 느낄 수 없었다. “꼭 그렇게 나와 선을 그어야 속이 시원해?”조유진은 이번에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배현수는 그녀의 셔츠를 허리춤까지 벗겼다.차 안에는 에어컨이 켜져 있지 않았지만 조유진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그녀의 손바
배현수는 순간 모든 행동을 멈추더니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유진아...”조유진의 얼굴, 몸은 마치 물에 빠졌다 나온 사람처럼 흠뻑 젖어 있었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조유진을 안고 있던 배현수는 그제야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고 그녀를 안아 자리에 앉히더니 자기의 어깨에 기대게 한 후 큰 손으로 그녀가 숨을 고르게 쉴 수 있도록 등을 어루만져줫다.“숨 한 번 크게 들이마셔 봐.”조유진은 그의 어깨에 기댄 채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들이마셨다 내뱉기를 반복했다. 시간이 얼마쯤 지났을까? 배현수의 어깨에 기대어 있던 조유진의 호흡이 점차 안정되기 시작했다.배현수가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그녀를 보았을 때 그의 이마는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배현수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조유진의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주었다. 그러고는 그녀를 달래듯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맞췄다. “내가 그렇게 무서워?”사실 배현수는 그녀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힘들어하는 그녀의 모습에 배현수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렇게 배현수는 조유진을 꼭 끌어안은 채 차 안에 오래도록 같이 있으며 그녀의 마음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렸고 시간이 좀 지나니 배현수의 정서도 안정되는 듯했다. 긴 시간 동안 배현수라는 존재가 확실히 그녀에게 큰 후유증이 된 것 같다. 얼마쯤 지났을까? 조유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 이제 가도 돼?”배현수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사실 조유진이 약한 모습을 보인 이유는 단지 배현수 옆을 빨리 떠나기 위해서였다.그때 배현수가 조유진을 바라보며 한 마디 내뱉었다.“안 돼.”배현수의 대답에 조유진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이미 두려움과 절망이 가득했다.순간 옆에 있는 배현수가 손을 올리자 그녀는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배현수는 그녀의 셔츠를 허리에서 어깨로 올려주고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한마디 했다.“옷도 제대로 입지 않고 어디를 가려고?”조유
차에 오른 서정호는 백미러로 뒷좌석에 앉아 있는 배현수를 조심스럽게 힐끗힐끗 쳐다보았다.배현수는 시선을 아래로 내린 채 작은 진주 귀걸이를 손에 쥐고 만지작거렸다. 그의 모습은 마치 혼이 반쯤 나간 사람 같았다. 그때 서정호가 물었다.“배 대표님, 조유진 씨를 따라갈까요? 방금 떠났으니 우리가 빨리 운전하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겁니다.”배현수는 잠시 아무 말을 하지 않더니 갑자기 실소를 터뜨렸다.“한쪽만 아니라고 하면 결국에는 아닌 게 되는 거였어.”그는 목을 한 번 가다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유진이가 나를 피해.”배현수는 조유진에게 좀 더 다가가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배현수가 한 걸음만 다가가도 그녀는 열 걸음 뒤로 물러선다.그녀와 더 멀어지지 않기 위해 배현수는 멈출 수밖에 없다.서정호는 배현수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살짝 당황했다. 어찌 되었든 회사 대표인지라... 아무 말이나 할 수 없었다.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배 대표님, 대표님과 조유진 씨는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면서 좋아하게 되었다는 거 잘 알아요. 그래서 서로 같이 많은 경험을 했죠. 그 추억들이 아름다운 것이든 아니면 심장을 찌르도록 아픈 것이든 두 사람에게만 있는 추억입니다. 그 추억은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이고 나중에 그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절대 서로를 대체하지 못할 거예요. 그 누구도 서로의 마음속 위치를 대체할 수 없죠.마음 깊이 새길 수 있는 이런 감정들은 많은 사람은 경험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요. 대표님보다 좀 더 오래 산 사람으로서 말씀드리자면 저와 저의 아내는 대표님과 조유진 씨처럼 감정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지 않았지만 저의 아내도 저와의 결혼생활을 포기하려고 했어요.다른 사람들의 눈에 저희의 결혼이 원만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거든요. 그런 말이 있죠. 죽고 못 살 정도의 사랑으로 한 결혼이라고 해도 상대방을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울 때가 있다고. 사람이 동물도 아니고 이런 감정들이 어찌 없겠습니까. 대표님과
“다 알고 있었어요? 우리 오빠가 미경 씨와 있을 때 조유진 씨 이름을 많이 불렀나 봐요!”심미경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조유진이 죽었다고요?”“몰랐어요? 조유진 그 여자가 1년 전에 바다에 뛰어들어 죽었어요. 아, 그리고 시신은 아직 못 찾았어요.”시신을 못 찾았다고 말을 하는 강이진은 뭔가 통쾌한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강이진은 조유진을 미워했다.조유진 같은 여자를 배현수가 계속 잊지 못한다는 사실이 항상 강이진을 질투하게 했다. 심미경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런데... 우리 지난주에 조유진 씨와 샤브샤브를 먹었어요. 조유진 씨 안 죽었어요.”“뭐라고요?”강이진은 깜짝 놀라 손에 쥐었던 포크를 땅에 떨어뜨렸다.땡그랑.그때 마침 강이찬도 집에 도착해 현관에서 거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진아 너 또 사고 쳤니?”그녀는 강이찬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재빨리 그의 옆으로 다가가 물었다.“오빠, 조유진 아직 살아있어? 직접 오빠 두 눈으로 살아있는 거 확인했어?”강이찬은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물었다.“왜? 또 조유진 귀찮게 하려고? 겨우 살아서 돌아온 사람 귀찮게 할 생각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네가 또 괴롭히면 너의 그 현수 오빠가 절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강이진은 마치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조유진이 살아있다니... 아직 살아있었어...”강이진의 멍한 모습에 강이찬은 더욱 눈살을 찌푸렸다. “이진아, 너도 이제 어린애가 아니니 더 이상 배현수 따라다니지 마. 내가 말했잖아. 현수는 평생 결혼을 안 하면 안 했지, 너를 여자로 볼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게다가 지금은 유진 씨까지 돌아왔으니 인제 그만 꿈 좀 깨는 게 어때?”“아니야...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일 없을 거야. 현수 오빠 어머니가 조유진 엄마를 죽였어. 두 사람 사이 때문에 죽은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다시 만나! 두 사람은 만나서는 안 되는 사이라고!”이 말을 하는 강이진의 두 눈은 순간 반짝였
하지만 강이찬은 바보가 아니다.강이진이 한 말에는 허점이 너무 많다.“네가 어떻게 봤는데? 네가 그 요양원에 가서 뭐 해? 나도 조유진 씨 어머니가 누군지 모르는데 네가 어떻게 알아?”강이진은 그의 눈을 피하고자 고개를 살짝 숙이고 몸을 부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내가... 요양원에 간 이유는 현수 오빠의 어머니를 보러 간 거야. 현수 오빠가 나에게 호감을 느끼려면 어머니에게 점수 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 오빠, 내가 요양원에 간 건 진짜 현수 오빠 어머니 예지은을 보러 간 거라고! 허튼짓 안 했어. 제발 믿어 줘.”“진짜로?”강이진은 강이찬의 팔을 붙잡으며 애원했다.“오빠, 내가 조유진을 싫어하는 거 다 아는데 내가 만약 그때 거기에 있었다고 하면 나를 범인이라 생각할 거 아니야? 하지만 나 진짜 아니야. 예지은이 밀었다고. 나와는 전혀 상관없어! 제발 부탁인데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말아줘. 나 감옥 가기 싫단 말이야...”강이찬은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녀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계속 애원했다.“오빠, 제발 비밀 지켜줘야 해? 엄마, 아빠에게 나 잘 돌봐줄 거라 약속했잖아. 현수 오빠가 대제주시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만약 나를 살인자라고 생각하면 분명 나를 고소할 거야. 그러면 나는 무조건 감옥에 가게 될 텐데...오빠, 설마 벌써 잊은 건 아니지? 1년 전, 현수 오빠가 그 아이 때문에 우리 둘을 회사에서 쫓아냈잖아. 현수 오빠 눈에는 조유진밖에 없어. 그러니까 분명 그 일을 나에게 뒤집어씌울 거란 말이야. 그러면 본인이 조유진과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그녀의 말을 듣고 있는 강이찬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러자 강이진은 계속 애원하며 말했다.“오빠, 오빠가 조유진 좋아하는 거 알아. 심미경이랑 같이 있는 것도 저 여자가 조유진을 닮아서 그러는 거잖아. 나 다 알아. 다 이해해. 그래서 조유진이 다시 살아 돌아왔으니까 이제 다시 현수 오빠랑 만난대?”강이찬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순간, 세 사람은 모두 멍해졌다.강이진은 깜짝 놀라 대뜸 큰소리로 외쳤다. “당신!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내가 우리 오빠와 얘기하는거 엿듣기라도 하고 있었던 거예요?”그러자 심미경은 다급히 입을 열었다.“아니요. 저녁에 뭐 먹고 싶은지 여쭤보려고 왔어요.”하지만 강이진은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고 그녀가 심미경에게 한마디 더 하려할 때 강이찬이 그녀를 막았다.“아무거나. 해주는 거로 먹을게. 가자, 내가 같이 요리하는 거 도게.”강이찬은 심미경과 함께 부엌으로 가 같이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심미경은 채소를 썰고 강이찬은 옆에서 채소를 씻었다.이때 갑자기 강이찬이 물었다.“방금 문 앞에서 무슨 말 들었어?”“아니...”도마에서 채소를 썰고 있던 그녀는 순간 멈칫했다.그러자 강이찬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이진이가 성격이 불같아서 말을 이쁘게 하지 못해. 이해해줘. 몸만 성인이지 아직 어린애나 다름없어. 나중에 우리가 블루레일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 그때는 부딪치는 일 별로 없을 거야. 조금만 참아.”그녀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강이찬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이찬 씨, 방금 그 말은... 우리 결혼, 다시 원래대로 하자는 얘기예요?”“응.”강이찬의 ‘응’이라는 한 마디에 심미경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녀는 조유진이 돌아왔기에 강이찬이 자기와 헤어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성남, 엄 씨 사택.엄창민은 대제주시에서 성남으로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엄준을 만나러 왔다.그곳에는 엄명월도 있었다.엄명월은 엄창민을 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여자 하나 때문에 협력사와 싸우고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오빠가 일하는 게 침착하다고 나보고 따라 배우라 하시네... 하... 그런데 훌륭한 후계자는 절대 이런 억지스러운 남녀의 감정 때문에 집단의 이익을 해치지 않아. 하지만 오빠는 어떻게 여자 때문에 협력사 대표에게 주먹을 휘두를 수 있어? 정말 그동안 내가 알던 오빠 맞아?그래도 오빠 덕분에 대제주시 일이 나에게 넘어왔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