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후, 조유진은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출발했다.출발하기 전날 밤, 엄준이 또 그녀를 보러 병원으로 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엄준이 사진 한 장을 들고 그녀에게 다가와 물었다.“유진 씨, 이 사진 속의 아가씨가 당신 맞나요?”사진에는 배현수와 눈이 내리는 날 눈싸움을 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그녀는 절대 자기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진 속의 아가씨는 자신과 똑같이 생겼다.조유진은 도저히 반박할 수 없어 창백한 얼굴로 물었다.“엄 어르신, 어르신이 어떻게 이 사진을... 가지고 있으세요?”“그래서 당신은 정말로 배현수 대표의 아내인가요?”아내?조유진은 아연실색한 얼굴로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저에게 어떻게 그런 자격이 있습니까? 저와 그 사람은 진작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입니다.”“그럼 배현수 대표와 어떤 관계인가요?”“대학 시절 연애를 한 적이 있는데 그냥 전 여자 친구일 뿐이에요.”전 여자 친구일 뿐인데 배현수가 굳이 성남까지 찾아와 사람을 찾아달라고 부탁할 수 있을까? 그 어떤 대가도 치를 수 있을 만큼 사람 찾는 거에 올인하려 할까? 엄준은 오랫동안 사업을 해 오면서 행동 하나 표정 하나로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바로 파악했다. 배현수 얘기가 나오자 조유진의 얼굴은 확연히 달라졌다.그녀는 분명히 숨기는 일이 있을 것이다.하지만 엄준도 억지로 말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배현수 씨는 성남에 있어요. 우리 그룹과 계약서를 체결하러 온 줄 알았는데 사실은 조유진 씨를 찾으러 온 거래요.”순간 그녀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유진 씨가 어디 있는지 말하지 않았어요. 전에 배현수를 모른다고 한 것도 분명 말 못 할 사정이 있을 거로 생각해요. 물론 유진 씨가 구체적인 이유를 말하지는 않지만 유진 씨 결정을 존중할게요. 저도 배현수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 모르기에 쉽게 그에게 유진 씨에 대해 얘기할 수 없어요. 그리고 내일 아침 일찍 미국으로 출발하면
성남은 남방의 도시로 대제주시만큼 번화하다. 그리고 밤에도 곳곳마다 가로등과 상가의 불이 환하게 켜져 먼 곳까지 훤히 보였다.창가에 선 조유진은 환한 불빛에 도심까지 한눈에 보였다.지구같이 생긴 랜드마크 건물이 바로 반도호텔이다.그렇게 그녀는 오랫동안 그곳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내일 아침 일찍, 조유진은 만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에 있는 미국에 치료받으러 가야 한다.앞으로 배현수와는 산과 바다를 사이에 둔 채 두 번 다시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다.그녀는 말없이 창문을 닫은 후 커튼을 쳤다.이제 더 이상 조유진으로 살지 않기로 했으니 앞으로 조유진과 관련된 모든 과거도 같이 봉인해야 했다....반도 호텔 안.서정호가 문을 두드린 후 안으로 들어왔다.“배 대표님, 제가 음식 몇 개 주문해 드렸어요. 좀 이따 호텔 직원이 가져다줄 겁니다.”배현수는 손에 든 사진을 내려놓으며 물었다.“조유진 소식은 새로 확인된 게 있어?”서정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아직... 없어요. 배 대표님, 우리가 엄 어르신께 같이 찾아달라고 부탁했으니 곧 소식이 있을 겁니다. 조급해하지 마세요.”하지만 서정호 역시 현재 상황을 너무 잘 알고 있었고 그저 배현수를 위로하기 위해 한 말이었다. 조유진이 바다에 뛰어들어 실종된 지 한 달이 넘었다. 그녀의 생존 확률은 매우 낮다.사실 그들은 조유진이 죽었다는 사실을 진작에 받아들였다. 조유진의 절친 남초윤마저도 배현수더러 이제는 장례를 치르자고 재촉했다. 하지만 배현수는 조유진이 죽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주위에서도 오직 배현수만 모든 정신을 다 쏟아부으며 그녀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배현수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자 서정호가 하던 말을 계속했다.“배 대표님, 저희가 성남에 며칠째 있으니... 대제주시에서 자꾸 전화가 오네요. 내일 아침 비행기 표를 예약하고 대제주시로 다시 돌아가는 게 어떨까요?”사실 그는 직접 말하고 싶었다. 조유진은 이미 죽었고 시간을 허비해서 사람을 찾아도 그저 스스로 잠
이튿날 아침, 성남에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성남 공항 안, 오고 가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엄 어르신과 도 집사가 직접 조유진을 공항 로비까지 데려다줬다. “조유진 씨, 조심히 가요.”“메이오 클리닉에 무사히 도착하면 전화해요.”조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엄 어르신, 도 아저씨, 건강 잘 챙기세요.”엄 어르신이 손을 흔들었다.“늦었어요. 들어가요.”조유진이 항공권과 여권을 들고 국제 탑승구로 걸어갔다.한편, 조유진이 금방 들어갔을 때.배현수와 서정호도 공항 로비에 도착했다. 다만 그들은 국내 탑승구로 가서 대제주시에 갈 예정이었다.공항 휴게실에 들어가기 전, 조유진은 한번 뒤돌아봤다. 24년 동안 국내에서 생활하다 갑자기 떠나려니 마음속에 조금의 불안함과 실망감이 있었다. 앞날은 멀고 생사를 예측할 수 없다. 지금 이렇게 떠나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 그녀는 아쉬움에 마지막으로 뒤돌아봤다. 이와 동시에, VIP 휴게실로 들어가려던 배현수가 의식적으로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눈길을 돌려 바라봤다.거의 같은 순간, 조유진이 뒤돌아 국제 탑승구에 들어갔다. 순식간에 인파가 넘쳐흐르고, 수많은 사람의 그림자가 뒤엉켰다. 이윽고 서로 인파 속에 파묻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배현수는 공항 왼쪽으로 가고 조유진은 공항 오른쪽으로 갔다. 서로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비행기가 이륙하기 전.비즈니스석에 앉은 배현우가 낡은 검은색 핸드폰을 열었다. 갤러리를 열자 모두 조유진 사진이었다. 두 사람이 연애할 때, 그녀는 늘 그의 전화로 셀카 찍기를 좋아했다. 그들이 같이 찍은 사진도 엄청 많았다. 그런데 대부분 시간은 그가 일에 몰두하고 그녀가 옆에 앉아 그의 전화로 몰래 그들이 함께한 수많은 순간을 찍었다. 비행기가 이륙할 시간이 되어 배현수는 전화를 껐다. 그는 부처님을 믿지 않았지만 한 번쯤 부처님을 믿고 그 앞에 무릎 꿇고 싶었다. 그도 그녀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녀를 기다리는 데 방해되
배현수가 성남에서 산성 별장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저녁 10시였다.별장에는 작은 무드등만 켜져 있었다. 갑자기 작은 그림자가 튀어나와 그의 허벅지를 꼭 껴안았다. “선유?”그는 손을 뻗어 작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선유가 시무룩해서 입을 열었다. “아빠, 아빠도 안 돌아오는 줄 알았어요.”“그럴 리가, 아빠는 널 버리지 않을 거야.”“엄마도 그렇게 말했는데 날 버렸잖아요. 아빠, 아빠는 엄마처럼 안 좋은 생각하면 안돼요.”아이는 작은 얼굴을 들어 그를 애타게 바라봤다. 배현수의 심장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그는 억지웃음을 지었다. “아빠... 안 좋은 생각 한 적 없어.”“거짓말, 엄마가 떠난 후 매일 밤 엄마가 꼈던 반지를 보며 멍때렸잖아요. 가끔 거실 소파에서 밤새 말 한마디 없이 앉아있기도 하고. 아빠, 엄마랑 같이 가지 마요. 무서워요.”아이의 작은 두 손은 그의 정장 바지를 꼭 잡고 있었다. 마치 손을 놓으면 아빠가 떠날 것처럼. 배현수가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아줬다. “아빠가 약속할게. 언제가 곁에 있을 거야.”이것은 조유진의 유언이었다. 아무리 죽을 만큼 고통스러워도 선유를 잘 키울 것이다. “엄마는 떠났고 다시는 안 돌아오는 거 맞죠?”선유의 머루알 같은 눈동자가 배현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이가 비록 어리지만 모든 걸 다 알고 있다. 매번 초윤이 이모가 올 때마다 눈빛이 비통했다. 예전에 이모한테 엄마에게 연락해달라고 하면 바로 전화했었는데 지금은 화제전환만 할 뿐이다. 배현우는 몸을 숙여 아이와 눈을 맞췄다. 투박하고 따뜻한 큰 손이 말랑한 작은 손을 꼭 움켜쥐었다. 그는 손을 뻗어 아이를 안고 작은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낮은 목소리로 타일렀다. “선유야 무서워하지 마. 아빠는 언제나 네 곁에 있을 거야.”“아빠, 앞으로 우리 둘밖에 없잖아요. 꼭 잘 있어야 해요. 아빠한텐 내가 있잖아요.”배현수는 눈시울이 붉어지며 대답했다. “응, 알았어.”그날 밤, 배현수는 선유를 안고 아기방으로 갔고 이
“아빠, 오늘 저녁은 강 삼촌이 사주는 거예요?”“응, 강 삼촌이 결혼 준비 중이야. 여자 친구랑 같이 우리를 만나러 올 거야.”일 년 전, 배현수가 한번 화낸 것 때문에 강이찬이 강이진을 데리고 SY 그룹을 떠났다. 일 년간, 그들 사이에 연락이 많지 않았다. 모두 육지율이 가운데서 소식을 전했다. 강이진은 성격이 간사하고 제멋대로지만 강이찬은 항상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잘못된 일을 한 적이 없다. SY가 오늘과 같은 날이 있게 된 것도 강이찬 덕분이 크다. 그룹의 주식 분할도 강이찬의 몫이 줄곧 있었다. 배현수는 그의 주식을 회수하지 않았다. 선유는 작은 입을 움찔거리며 물었다. “그... 강이진 이모도 있는 건 아니죠? 그 이모는 만나고 싶지 않아요. 만나면 참지 못하고 싸워요.”“없어. 오늘 강 삼촌이 나만 불렀어. 그리고 육 삼촌이랑 초윤이 이모가 올거야.”“너무 좋아요. 육 삼촌이랑 이모 안 본 지 오래됐어요.”금방 룸 문 앞에 도착했을 때 배현수는 육지율의 목소리를 들었다. 룸 안, 육지율이 강이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하고 있었다. “이찬아, 현수가 그때는 단지 화가 나서 강이진이 꺼지길 바란 거야. 네가 맞서서 뜻대로 안 되니 당연히 너한테 화내서 같이 꺼지라고 한 거지. 일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어?”“나... 안 돌아가고 싶어. 지율아, 너도 내 성격 알잖아. 난 사람과 대립하는 걸 안좋아하는 거. 만약 계속 SY에 있으면 너희랑 의견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어. 그런데 난 일 때문에 형제랑 얼굴 붉히고 싶지 않아. 그리고 지금 SY는 충분히 강대해져서 더 이상 내가 필요하지 않아. 내가 있든 없든 SY는 잘 될 거야.”육지율은 또 몇 마디 타일렀다. “우리 셋이 대학교 때부터 전우 같은 사이였는데. 진짜 형제를 버리고 혼자 창업할거야?”“내가 언제 너희를 버렸어? 오늘 같이 밥 먹자고 불렀잖아. 내가 창업해서 성공하면 너희들을 주주로 영입할게.”말하고 있는데 배현수가 선유의 손을 잡고 들어왔다.
남초윤이 반응하기도 전에 강이찬이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들어온 여자를 끌어안고 소개했다. “심미경이라고 해. 우리 지금 약혼한 사이고 다음 주에 결혼식을 할 생각이야.”두 사람이 맞잡은 손에는 백금 커플링이 끼워져있었다. “미경 씨, 두 분은 내 제일 친한 친구 배현수와 육지율이에요. 배 대표랑 육 대표라고 부르면 돼요.”심미경이 웃으며 두 사람과 인사했다. “배 대표, 육 대표님 안녕하세요.”배현수의 예리한 눈빛이 심미경을 천천히 훑어봤다. 1초만 머물고 재빨리 눈길을 거뒀다. 칠흑 같은 눈동자 아래 기쁨과 분노가 분명치 않았다. 사람이 전부 도착하자 음식이 바로 올라왔다. 선유는 배현수 옆에서 아가 새처럼 입을 벌리고 음식을 먹으며 한편으로 강이찬 옆의 여자를 관찰했다. 심 이모라는 사람이 왜 엄마처럼 꾸몄지?선유는 배현수에게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빠, 심 이모가 엄마랑 닮은 것 같지 않아요?”아이가 개미만 한 목소리로 말해 배현수만 들을 수 있었다. 배현수는 갈비찜을 한 조각 집어주며 뜨뜻미지근하게 한마디 했다. “안 닮았어. 헛소리 하지 마.”“아... 네.”선유는 묵묵히 갈비를 들어 작은 입을 틀어막아 더 이상 헛소리하지 않았다. 선유가 궁금해하지 않자 오히려 남초윤이 궁금증이 생겼다. 심미경의 얼굴을 보고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심미경의 생김새가 비록 부드럽고 귀엽게 생겼지만 자세히 보면 조유진과 차이가 컸다. 그런데 옷차림과 꾸민 모습이 조유진과 너무 많이 닮았다. 마치... 일부러 따라 하는 것처럼.설마 강이찬이 이런 취향이 있는 건가?친구의 여자를... 짝사랑하는?남초윤은 술을 한 잔 따라 강이찬과 심미경에게 권했다. “강 대표님, 심 여사님. 두 분 약혼 축하드립니다.”심미경이 술잔을 들고 얼른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저는 원샷할게요. 편한 만큼 드세요.”심미경이 고개를 들고 원샷했다. 남초윤은 그런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뭘 생각한 거지?심미경이 어떻게 유진일 수
옆에 앉아있던 배현수는 심미경이 술을 권하기 전까지 줄곧 말하지 않았다. “배 대표님, 한잔하시지요.”배현수는 살짝 눈을 들었다. 맑은 검은 눈동자가 냉정하게 그의 옷차림을 훑더니 목소리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이 옷차림, 어울리지 않아요.”젓가락을 쥐고 있는 강이찬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이유를 모르는 심미경이 물었다.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건가요?”배현수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 숙여 선유에게 음식을 집어줬다. 심미경은 무안하게 술잔을 들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절반쯤 먹었는데 배현수는 입에 술을 대지 않았다. 그는 옆의 아이에게 물었다.“배불렀어?”선유가 만족의 트림을 하더니 턱을 끄덕였다. “네. 배불러요.”“수박 한 조각 가지고 가자.”수박을 좋아하는 선유는 고사리 같은 손을 뻗어 수박 한 조각 집었다. 배현수가 일어나며 말했다. “선유가 졸려 하네. 먼저 데리고 가야겠어. 천천히 먹어.”배현수와 선유가 차량 근처까지 걸어갔을 때, 강이찬이 쫓아왔다. 배현수는 선유에게 당부했다. “먼저 차에 타. 아빠는 강 삼촌이랑 이야기 몇 마디하고 갈게.”“네.”선유는 얌전히 차에 탄 후 문을 닫았다. 두 사람은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 강이찬이 말했다.“현수야, 네가 생각하는 거 아니야. 심미경은...”“내가 생각한 게 아니면 왜 굳이 쫓아 나와서 해명해?”“난...”“심미경은 심미경이고, 조유진은 조유진이야. 헷갈리지 않았으면 해.”강이찬이 한숨을 쉬었다. “심미경은 단지 우연히 옷 스타일이 조유진과 비슷할 뿐이야. 내가 말했었지, 조유진에게 마음 없다고.”배현수는 강이찬의 해명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입을 움찔거렸다. “만약 창업에 도움 필요하면 말해. 그리고 SY에 돌아올 생각이 있어도 말해.”“현수야...”“들어가. 다들 기다리겠다.”“나랑 심미경 결혼식 날에 올 거야?”“상황 봐서. 지금 결혼하는 장면 못 봐. 너도 알잖아, 나 부럽고 질투 날걸.”그의 목소리는 담담했
블루레일 아파트 안.심미경이 강이찬을 따라 집에 들어가자마자 강이찬 현관에 눌렀다. 오늘 저녁은 대리를 불러 집에 왔다. 배현수가 떠난 후, 강이찬이 술을 엄청 많이 마셨다. 이때, 감정을 이미 통제할 수 없었다. 그는 심미경의 치마자락을 들춘 후 그녀의 허리를 짓눌렀다. 심미경이 놀라서 뒤돌아보려 했다. “이찬 씨...”“말하지 마요.”입을 열면 그녀와 닮지 않았다. 조유진의 목소리는 맑고 청아했다. 음이 날카롭지 않고 시냇물 같았는데 방송과 전공이어서 표준어가 매우 정확했다. 심미경은 남쪽에서 나고 자랐다. 비록 대제주시에서 2년 일했지만 목소리가 부드럽고 달콤했다. 조유진의 목소리와는 정반대였다. 삼 개월 전, 심미경이 강이찬이 창업한 회사의 프런트 면접을 봤다. 그날 묶음 머리에 흰 치마를 입고 발에는 컨버스 하이를 신었다. 얼굴에는 옅은 화장을 했다. 면접 볼 때 긴장해서 표현이 좋지 않았는데 왜인지 통과했다. 그리고 어느 날 회사에서 컵라면을 먹다 회사 사장 강이찬을 만났다. 강이찬은 그녀에게 영양소가 없는 음식을 먹지 말라고 하고 심지어 적극적으로 그녀를 데리고 외부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이렇게 오고 가다 두 사람은 연인 사이가 되었다. 오늘까지도 심미경은 강이찬이 자기를 마음에 들어 한 이유를 몰랐다. 그녀는 평범한 대학을 졸업했고 학력과 집안 모두 평범했다. 그런데 강이찬은 국내 최고급 학교를 졸업하고 예전엔 큰 회사 임원이었다가 지금은 창업한 사장이었다. 둘은 신분 차이가 커 외부 사람이 보기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강이찬은 다정하고 돈이 많을 뿐만 아니라 잘생기기까지 했다. 그의 구애에 심미경이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강이찬을 잡게 된다면 앞으론 더 이상 프런트 걸이 아니다. 그녀는 곧바로 사모님으로 신분 상승할 수 있는데 이것은 많은 사람이 꿈도 못 꿀 일이다. “이찬 씨, 방으로 가는 게 어때요?”그녀는 뒤돌아 그를 안고 키스하려고 했는데 남자에게 다시 제압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