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사를 마친 후, 엄명월은 과일 한 접시를 들고 엄준의 서재로 갔다.엄준은 책상에 앉아 아내의 옛날 사진을 보고 있었다.“아버지, 또 어머니를 생각하시는 거예요?”“너의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어. 그녀도 폐가 좋지 않았단다. 그 시절에는 의료기술이 지금처럼 좋지 않았어. 나는 그때 너의 어머니를 데리고 전국 곳곳의 명의들을 다 찾아다녔지만 방법이 없었어. 나중에 나는 너의 어머니가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서 병원에 부탁해 심장만 뛰게 해달라고 했어. 너의 어머니는 나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도 고통스러웠어. 조유진, 그 아이를 보면 자꾸 너의 어머니가 생각나. 그래서 더 측은한 마음이 드는 것 같아.”엄명월은 그제야 엄준이 조유진을 챙기는 이유를 알았다. 그때 엄명월 눈길이 탁자 위에 놓인 계약서를 향했다.그것은 다름 아닌 공급 협력계약서였다.“아버지, 우리 성행 그룹이 정말로 SY그룹과 같이 일해요? SY그룹에 불평등한 조항이 꽤 있던데 우리가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겠죠?”“이번에 대제주시에 가서 SY그룹그룹을 견학했는데 그들의 경영에는 그룹 문화가 포함되어 있어서 규칙을 비교적 잘 지키고 있었어. SY그룹가 제시한 가격이 상대적으로 적당하기도 하고 그룹 규모도 비교적 크기에 우리가 공급상으로서 SY그룹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을 수 있으면 오랫동안 같이 발전할 수 있어.”“아버지, 아직 계약서 체결 안 하기도 했고 혹시 모르니까 제가 배현수 씨를 한 번 만나고 올까요?”“요즘 해외사업부 일 때문에 바쁘잖아. 괜찮으니까 엄창민 보고 가라고 해. 엄창민은 너의 오빠야, 당연히 더 많은 것들을 책임질 줄 알아야지.” 엄명월은 붉은 입술을 꼭 깨물며 다소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그 모습에 엄준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네가 뭐든 잘 해내는 건 알아. 하지만 너는 너무 급해. 앞만 보고 달리려고 하고 옆을 보지 않아. 하지만 창민이는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는 애라 이런 건 네가 좀 배워야 해. 인제 그만 얘기하고 가서 창민이나 불러
밤이 된 성남은 곳곳이 번화한 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대제주시는 북쪽에, 성남은 남쪽에, 이렇게 남과 북은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조유진은 병실 창가에 서서 창문을 열어 밤바람을 쐬고 있었다.불과 한 달만에 대제주시에서 발생한 일들은 마치 전생처럼 머릿속에 그려졌다.큰 트라우마를 겪고 나면 선택적 기억상실증에 걸린다고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왜 잊히지 않고 오히려 더 또렷이 기억이 나는 걸까?그녀는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천천히 손을 들어 허전한 목을 만졌다.조유진은 원래 이곳에 은반지가 있는 은목걸이를 항상 하고 다녔다. 엄창민이 보온병을 들고 병실에 들어갔을 때 가녀린 그림자가 창가에 넋이 나간 채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는 주먹을 쥔 손을 입 앞에 갖다 대며 가볍게 기침했다. “조유진 씨, 이건 아버지가 보내라고 한 음식이에요. 엄 씨 사택의 주방에서 만들었는데 입맛에 맞는지 한 번 드셔보세요.”조유진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다.“고마워요. 괜히 저 때문에 늦은 시간에 여기까지 오게 했네요. 저 대신 어르신에게도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저에게 베풀어준 은혜는 나중에... 나중이라는 시간이 주어지면 꼭 최선을 다해 갚도록 할게요.” “메이오 클리닉은 의료기술이 아주 잘 되어 있으니 유진 씨에게도 분명 나중이 있을 겁니다.”그는 조유진에게 한 마디 위로를 건넸다. 조유진은 풍성한 음식들을 보고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띠며 인사를 전했다.“다들 고마워요. 덕분에 저에게도 나중이 있다는 것을 기대하게 되었어요”점점 빨개지는 그녀의 눈시울을 보고 있자니 엄창민은 갑자기 궁금한 것이 생겼다. 그녀가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기에 가녀린 아가씨가 바다에 뛰어들기까지 했는지 말이다. 하지만 엄창민은 참하고 됨됨이가 있는 사람이라 사적인 일을 절대 쉽게 묻지 않는다. “엄 어르신에게서 들었는데 유진 씨가 예전에 SY그룹에서 일했다면서요? 혹시 SY 그룹에 대해 기억나는 게 있을까요?”그 말에 그녀의 동공이 끊임없이 흔들렸고
...다음 날 이른 아침.엄준은 도 집사를 데리고 조유진을 보러 왔다.“이분은 도 집사예요. 엄 씨 사택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으니까 무슨 일이 있으면 도 집사를 찾으세요.”“도 집사 아저씨, 안녕하세요.”도 집사는 병상의 조유진을 보고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감탄했다.“어르신, 이 아가씨는 그때 당시의 사모님과 정말 비슷하네요.”그러자 엄준이 웃으며 대답했다.“내 말이 맞지? 유진 씨는 나와 인연이 깊다니까. 도 집사, 내가 사라고 한 새 휴대전화는?”도 집사는 새 휴대폰를 조유진에게 건네주며 말했다.“아가씨, 이건 어르신이 유진 씨를 위해 사라고 한 새 휴대전화입니다. 안에 SIM 카드도 다 넣어 놨어요.”조유진은 감히 손을 내밀지 못했다.“어르신, 저는...”“받아요, 그저 새 핸드폰일 뿐이에요. 병원에 혼자 있으니, 우리가 이렇게 왔다 갔다 하기도 불편하고. 핸드폰이 있으면 우리도 유진 씨와 연락하기 편해서 그래요.”조유진은 이미 충분히 신세를 지고 있는 상황에 더 이상 그들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아 건네는 휴대폰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엄 어르신, 고마워요.”“근데 아가씨는 왜 아직도 어르신이라고 부르나요. 어제 어르신이 수양딸로 삼기로 했잖아요.”엄준은 기대에 가득 찬 표정으로 조유진을 바라보았다.조유진은 도저히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한참을 머뭇거린 후에야 겨우 한마디 했다.“아버지.”순간 엄준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만개했다.하지만 그녀의 병을 생각하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유진 씨, 미국에 가는 비자는 제가 사람을 보내서 신청하게 했는데 발급기관에서 신분을 증명할 만한 서류가 필요하다고 하네요. 혹시 신분증 같은 건 있나요?”“아니요, 바다에 뛰어들 때는 아무것도 안 가지고 있었어요.”엄준과 도 집사는 서로 얼굴을 한 번 마주 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눈앞에 있는 젊은 아가씨가 죽을 결심으로 바다에 뛰어들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했다. 엄준이 입을 열었다.“사실 다른 서류라면 돈 좀 들
“뭐라고? 아버지가 조유진에게 엄환희의 신분으로 비자를 발급하라 했다고? 조유진이 뭔데! 그 여자는 아버지가 길 가다 주운 고양이잖아!”이 일을 알게 된 엄명월은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다.그 해에 그녀가 엄준을 따라 복지원을 나올 때도 엄준이 그녀의 이름을 지어주었다.엄명월.명월은 휘영청 밝은 달을 뜻한다. 그리고 달이 많은 별들을 품고 있다는 뜻도 있었다.당시 그녀는 이 이름을 매우 좋아했다.엄준의 수양딸이 된 후, 더 이상 복지관에서 괴롭힘을 당하지 않아도 되고 유통기한이 지난 빵을 먹지 않아도 되었다. 엄명월이 된 순간부터 그녀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하지만 이 이름이 아무리 많은 별을 품고 있다고 해도 절대 엄환희라는 이름과는 비교할 수 없다.엄환희는 엄준의 친딸이다.‘환’자를 붙인 것은 아버지가 딸에게 바라는 것이 바로 딸 인생의 평안과 기쁨이고 항상 웃고 행복하길 바라는 진심 어린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엄명월은 전화기 너머의 비서에게 말했다.“조유진이 대체 어디서 온 거예요? 아버지 말로는 예전에 SY그룹에서 일했다고 했는데 설마 SY그룹에서 보낸 스파이는 아니겠죠? 가서 뒷조사 좀 해주세요. 만약 진짜로 상대방이 보낸 비즈니스 스파이라면 그 여자에게 매운맛을 톡톡히 보여줘야죠.”조유진에게 어떤 목적이 있든 엄명월은 그녀가 모든 것을 다 차지하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일주일 후, 미국으로 가는 비자가 발급되었다.엄준은 서류봉투를 조유진에게 건네며 입을 열었다.“여기에 미국으로 가는 신분증과 비자 서류들이 들어 있어요.”조유진은 그 묵직한 서류봉투를 받으며 저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쥐었다.지금, 이 순간의 감정은 ‘감격’이라는 두 글자 외에 도저히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조유진의 눈시울은 순식간에 뜨거워졌고 쉰 목소리로 흐느끼며 말했다.“엄 어르신, 어르신은 제 은인이에요. 저의 친아버지도 이렇게까지 저를 따뜻하게 대한 적이 없어요.”그녀는 난생처음으로 부성애를 느꼈다. 우습게도 혈연관계가
“어르신, 저 꼭 살아서 돌아올게요. 걱정하지 마세요.”엄준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그녀는 꼭 살아야 했다. 엄준이 병실을 막 나올 때 갑자기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엄창민이 건 전화다. “아버지, SY그룹에서 저희 회사에 왔는데 배현수 대표가 직접 왔어요. 지금 우리 건물 1번 회의실에서 계약서를 체결하기를 기다리고 있어요.”“알았어, 금방 갈게.”...성행 그룹의 회의실.배현수는 창가에 서 있었고 떡 벌어진 어깨는 남다른 분위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곧바로 엄준과 엄창민 모두 회의실에 도착했다.“배 대표님, 처음 뵙겠습니다. 대표님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엄준이 앞으로 걸어가며 배현수와 악수를 했다.모든 협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한 시간 후, 성행 그룹과 SY그룹은 공급 협력계약서를 성공적으로 체결했다.이번에 배현수는 성남에 올 때 서정호 비서만 대동하고 왔다. 엄준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배 대표가 계약서를 체결하기 위해 성남까지 오실 줄은 몰랐어요.”“이번에 성남에 온 이유는 사업 때문만이 아니에요. 굳이 숨길 필요도 없으니 드리는 말씀이지만 저는 성남에 온 김에 성행 그룹과 계약서까지 체결하는 거예요. 저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 있어요. 그래서 엄 어르신의 도움이 필요해요.”“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배 대표도 어려운 일을 이 노인네가 할 수 있을까요?”엄준은 배현수에 대해 예전부터 많은 얘기를 들었다. SY그룹, 이 회사는 배현수가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공부를 하면서 설립한 회사로서 이제 막 창립 6주년이다.하지만 그사이 창업자가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쓰고 3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출소 후, 그는 딱 3년이라는 시간 안에 SY 그룹을 작은 스타트업 회사에서 막강한 재단을 갖춘 큰 회사로 키워냈다. 그의 과거는 마치 안갯속에 있는 것처럼 위험한 것 같지만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다. 배현수의 일 처리는 한 치의 허점도 없었고 모든 결단이 칼같이 확실하고 정확했다. 비즈
이틀 후, 조유진은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출발했다.출발하기 전날 밤, 엄준이 또 그녀를 보러 병원으로 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엄준이 사진 한 장을 들고 그녀에게 다가와 물었다.“유진 씨, 이 사진 속의 아가씨가 당신 맞나요?”사진에는 배현수와 눈이 내리는 날 눈싸움을 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그녀는 절대 자기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진 속의 아가씨는 자신과 똑같이 생겼다.조유진은 도저히 반박할 수 없어 창백한 얼굴로 물었다.“엄 어르신, 어르신이 어떻게 이 사진을... 가지고 있으세요?”“그래서 당신은 정말로 배현수 대표의 아내인가요?”아내?조유진은 아연실색한 얼굴로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저에게 어떻게 그런 자격이 있습니까? 저와 그 사람은 진작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입니다.”“그럼 배현수 대표와 어떤 관계인가요?”“대학 시절 연애를 한 적이 있는데 그냥 전 여자 친구일 뿐이에요.”전 여자 친구일 뿐인데 배현수가 굳이 성남까지 찾아와 사람을 찾아달라고 부탁할 수 있을까? 그 어떤 대가도 치를 수 있을 만큼 사람 찾는 거에 올인하려 할까? 엄준은 오랫동안 사업을 해 오면서 행동 하나 표정 하나로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바로 파악했다. 배현수 얘기가 나오자 조유진의 얼굴은 확연히 달라졌다.그녀는 분명히 숨기는 일이 있을 것이다.하지만 엄준도 억지로 말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배현수 씨는 성남에 있어요. 우리 그룹과 계약서를 체결하러 온 줄 알았는데 사실은 조유진 씨를 찾으러 온 거래요.”순간 그녀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유진 씨가 어디 있는지 말하지 않았어요. 전에 배현수를 모른다고 한 것도 분명 말 못 할 사정이 있을 거로 생각해요. 물론 유진 씨가 구체적인 이유를 말하지는 않지만 유진 씨 결정을 존중할게요. 저도 배현수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 모르기에 쉽게 그에게 유진 씨에 대해 얘기할 수 없어요. 그리고 내일 아침 일찍 미국으로 출발하면
성남은 남방의 도시로 대제주시만큼 번화하다. 그리고 밤에도 곳곳마다 가로등과 상가의 불이 환하게 켜져 먼 곳까지 훤히 보였다.창가에 선 조유진은 환한 불빛에 도심까지 한눈에 보였다.지구같이 생긴 랜드마크 건물이 바로 반도호텔이다.그렇게 그녀는 오랫동안 그곳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내일 아침 일찍, 조유진은 만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에 있는 미국에 치료받으러 가야 한다.앞으로 배현수와는 산과 바다를 사이에 둔 채 두 번 다시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다.그녀는 말없이 창문을 닫은 후 커튼을 쳤다.이제 더 이상 조유진으로 살지 않기로 했으니 앞으로 조유진과 관련된 모든 과거도 같이 봉인해야 했다....반도 호텔 안.서정호가 문을 두드린 후 안으로 들어왔다.“배 대표님, 제가 음식 몇 개 주문해 드렸어요. 좀 이따 호텔 직원이 가져다줄 겁니다.”배현수는 손에 든 사진을 내려놓으며 물었다.“조유진 소식은 새로 확인된 게 있어?”서정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아직... 없어요. 배 대표님, 우리가 엄 어르신께 같이 찾아달라고 부탁했으니 곧 소식이 있을 겁니다. 조급해하지 마세요.”하지만 서정호 역시 현재 상황을 너무 잘 알고 있었고 그저 배현수를 위로하기 위해 한 말이었다. 조유진이 바다에 뛰어들어 실종된 지 한 달이 넘었다. 그녀의 생존 확률은 매우 낮다.사실 그들은 조유진이 죽었다는 사실을 진작에 받아들였다. 조유진의 절친 남초윤마저도 배현수더러 이제는 장례를 치르자고 재촉했다. 하지만 배현수는 조유진이 죽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주위에서도 오직 배현수만 모든 정신을 다 쏟아부으며 그녀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배현수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자 서정호가 하던 말을 계속했다.“배 대표님, 저희가 성남에 며칠째 있으니... 대제주시에서 자꾸 전화가 오네요. 내일 아침 비행기 표를 예약하고 대제주시로 다시 돌아가는 게 어떨까요?”사실 그는 직접 말하고 싶었다. 조유진은 이미 죽었고 시간을 허비해서 사람을 찾아도 그저 스스로 잠
이튿날 아침, 성남에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성남 공항 안, 오고 가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엄 어르신과 도 집사가 직접 조유진을 공항 로비까지 데려다줬다. “조유진 씨, 조심히 가요.”“메이오 클리닉에 무사히 도착하면 전화해요.”조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엄 어르신, 도 아저씨, 건강 잘 챙기세요.”엄 어르신이 손을 흔들었다.“늦었어요. 들어가요.”조유진이 항공권과 여권을 들고 국제 탑승구로 걸어갔다.한편, 조유진이 금방 들어갔을 때.배현수와 서정호도 공항 로비에 도착했다. 다만 그들은 국내 탑승구로 가서 대제주시에 갈 예정이었다.공항 휴게실에 들어가기 전, 조유진은 한번 뒤돌아봤다. 24년 동안 국내에서 생활하다 갑자기 떠나려니 마음속에 조금의 불안함과 실망감이 있었다. 앞날은 멀고 생사를 예측할 수 없다. 지금 이렇게 떠나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 그녀는 아쉬움에 마지막으로 뒤돌아봤다. 이와 동시에, VIP 휴게실로 들어가려던 배현수가 의식적으로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눈길을 돌려 바라봤다.거의 같은 순간, 조유진이 뒤돌아 국제 탑승구에 들어갔다. 순식간에 인파가 넘쳐흐르고, 수많은 사람의 그림자가 뒤엉켰다. 이윽고 서로 인파 속에 파묻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배현수는 공항 왼쪽으로 가고 조유진은 공항 오른쪽으로 갔다. 서로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비행기가 이륙하기 전.비즈니스석에 앉은 배현우가 낡은 검은색 핸드폰을 열었다. 갤러리를 열자 모두 조유진 사진이었다. 두 사람이 연애할 때, 그녀는 늘 그의 전화로 셀카 찍기를 좋아했다. 그들이 같이 찍은 사진도 엄청 많았다. 그런데 대부분 시간은 그가 일에 몰두하고 그녀가 옆에 앉아 그의 전화로 몰래 그들이 함께한 수많은 순간을 찍었다. 비행기가 이륙할 시간이 되어 배현수는 전화를 껐다. 그는 부처님을 믿지 않았지만 한 번쯤 부처님을 믿고 그 앞에 무릎 꿇고 싶었다. 그도 그녀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녀를 기다리는 데 방해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