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순간 엄준과 한 선생은 깜짝 놀라 서로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한 선생이 먼저 입을 열었다.“검사는 해 봤어요?”조유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그때 제가 흉부에 심각한 외상을 입어 정밀검사는 하지 못하고 흉부 X-ray 사진만 찍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저의 폐 상태가 좋지 않다며 병원에 입원해 정밀검사를 하라고 했는데... 그때 제가 다른 일이 있어서 병원을 더 가지 못했어요.”“그럼 이렇게 해요. 사진 다시 한번 찍고 필요하면 정밀검사까지 해서 지금 상태가 어떤지 확인합시다.”조유진은 아무 대답이 없었지만, 눈빛은 그의 깊은 생각을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엄준은 조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유진 씨, 당신이 어떤 병이든 나는 최선을 다해 도울 거예요. 하지만 당신이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아무도 당신을 도울 수 없어요. 폐암이 아무리 치료할 수 있는 병이라 해도 당신이 죽기를 간절히 바라면 염라대왕이라도 당신을 구할 수는 없어요.”“엄 어르신, 구해줘서 고맙지만 저는 더 이상 세상을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했어요...”“살아있는 게 의미가 있는 거예요. 유진 씨, 당신은 잠시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을 뿐이에요. 유진 씨는 아직 젊기에 무엇이든 해 볼 수 있잖아요. 유진 씨보다 훨씬 더 오래 산 내 말을 한번 믿어봐요. 세상을 살아가는 것보다 더 좋은 게 없다는 거, 그리고 죽음은 비겁한 자들이 하는 선택이라는 것을 알게 될 거예요. 하늘이 우연한 기회로 당신을 구하게 했으면 분명 당신더러 이 세상을 더 살아가라는 의미예요. 유진 씨, 자신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봐요. 방금 유진 씨가 말했던 살아갈 의미? 그건 당신이 살아야만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엄준은 최선을 다해 그녀를 타이르고 있었다.그의 양아들인 엄창민은 창백한 얼굴로 병상에 누워있는 조유진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당신은 아직 너무 젊어요.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쉽게 포기해서
엄준은 지팡이를 움켜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유진 씨, 만약 미국의 메이오 클리닉에서 치료만 가능하면 저는 당장이라도 유진 씨를 그곳에 보내드릴 수 있어요.”“엄 어르신, 저는 어르신과 핏줄로 이어진 친척도 아닌데 왜 이렇게 저에게 잘해주세요? 저는...” 조유진의 눈시울은 벌써 뜨거워졌다.그 모습에 엄준이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괜히 잘해주는 건 아니에요. 물론 제가 남을 돕는 일을 많이 하지만 누구에게나 다 이렇게 하지는 않아요. 저는 유진 씨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왠지 모르게 친근감이 느껴졌어요.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유진 씨는 제가 아는 한 사람과 너무 닮았어요. 물론 그 사람은 이미 하늘나라로 갔지만 저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거든요.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유진 씨 나이가... 저의 잃어버린 딸과 비슷해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측은지심이 들어요.”옆에 있던 한청희가 갑자기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엄 어르신, 어르신은 유진 씨와 이렇게 인연이 깊은 데 수양딸을 한 명 더 두시는 게 어때요? 어차피 어르신의 수양딸과 아들은 어느 곳에나 다 있잖아요.” “안 그래도 그 말을 하려고 했어요. 저에게는 수양딸과 아들이 각각 한 명씩 있어요. 딸이 한 명 더 있으면 저야 당연히 더 좋죠.”그러자 한청희가 조유진을 보며 말했다.“조유진 씨, 엄 어르신을 양아버지로 받아들이시는 게 어때요?”엄준은 따뜻한 눈빛으로 조유진을 바라보았다.“유진 씨, 어떻게 생각해요?”그 말에 조유진은 감정이 북받쳐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엄 어르신, 어르신과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제 평생의 영광이고 복이에요. 어르신은 제 목숨을 구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수양딸까지 말씀하시다니... 이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만약 제가 운이 좋아서 다시 살게 되면 앞으로 어르신이 원하는 일은 그게 무엇이든 절대 마다하지 않고 다 할 수 있습니다.”“그래요. 당연히 살아야죠. 그래야 나도 필요할 때 유진 씨 부를 수 있죠. 유진 씨
엄준은 저녁이 다 되어서야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고 엄 씨 사택에는 이미 음식 냄새가 진동했다.“도 집사, 주방에 무슨 요리를 하라고 시켰기에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나?”엄명월은 그 소리에 얼른 소파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버지, 다녀오셨어요?”그녀는 활짝 웃으며 엄준의 팔짱을 꼈다.“도 집사 아저씨께서 오늘 아버지의 기분이 좋으시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주방에 몇 가지 요리를 더 추가하라고 하셨다면서요?”엄준은 엄명월의 손등을 톡톡 치더니 입을 열었다.“너도 오랜만에 왔구나. 오늘은 창민이도 있으니 너희 둘이 나와 한잔하면 되겠네.”“좋아요! 그런데 아버지, 저 요즘 살이 빠진 것 같지 않아요?”엄준이 앉자마자 엄명월이 그의 앞에서 한 바퀴 돌며 말했다.“그룹 내부 일 처리가 너무 힘들어서 그런 거야? 아니며 좀 쉴래? 해외사업부 일을 창민이에게 맡기고. 놀러 나가서 남자 친구나 좀 찾아서 데려와. 그래... 내 탓이지. 그렇게 많은 일을 맡겼으니 연애할 시간도 없을 거야.”엄창민과 엄명월은 그의 오른팔이나 다름없었다.비록 성행 그룹의 주요 책임자는 엄준이지만 그는 많은 일을 엄창민과 엄명월에게 맡겼고 또 나이가 들면서 게으름도 피우며 살고 싶었다.엄창민과 엄명월은 그가 직접 선택하고 가르친 후계자이기에 많은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그들에게 더 많은 경험을 쌓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해외 프로젝트는 엄명월이 심혈을 기울여 시작한 것이다.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양반이 버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중요한 프로젝트를 엄창민에게 넘겨줄 생각 따위는 전혀 없다.엄명월은 엄준에게 다가가 애교 섞인 말투로 일을 열었다.“아버지, 저는 연애에 관심이 없어요. 그냥 아버지 곁에서 그룹이 더 성장할 수 있게 힘쓰고 싶어요. 해외 프로젝트는 제가 처리할 수 있어요. 창민 오빠야말로 나이가 적지 않으니 빨리 결혼해야 하지 않겠어요?”엄명월은 교활하게 결혼 얘기를 맞은편에 있는 엄창민에게 돌렸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엄명월은 과일 한 접시를 들고 엄준의 서재로 갔다.엄준은 책상에 앉아 아내의 옛날 사진을 보고 있었다.“아버지, 또 어머니를 생각하시는 거예요?”“너의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어. 그녀도 폐가 좋지 않았단다. 그 시절에는 의료기술이 지금처럼 좋지 않았어. 나는 그때 너의 어머니를 데리고 전국 곳곳의 명의들을 다 찾아다녔지만 방법이 없었어. 나중에 나는 너의 어머니가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서 병원에 부탁해 심장만 뛰게 해달라고 했어. 너의 어머니는 나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도 고통스러웠어. 조유진, 그 아이를 보면 자꾸 너의 어머니가 생각나. 그래서 더 측은한 마음이 드는 것 같아.”엄명월은 그제야 엄준이 조유진을 챙기는 이유를 알았다. 그때 엄명월 눈길이 탁자 위에 놓인 계약서를 향했다.그것은 다름 아닌 공급 협력계약서였다.“아버지, 우리 성행 그룹이 정말로 SY그룹과 같이 일해요? SY그룹에 불평등한 조항이 꽤 있던데 우리가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겠죠?”“이번에 대제주시에 가서 SY그룹그룹을 견학했는데 그들의 경영에는 그룹 문화가 포함되어 있어서 규칙을 비교적 잘 지키고 있었어. SY그룹가 제시한 가격이 상대적으로 적당하기도 하고 그룹 규모도 비교적 크기에 우리가 공급상으로서 SY그룹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을 수 있으면 오랫동안 같이 발전할 수 있어.”“아버지, 아직 계약서 체결 안 하기도 했고 혹시 모르니까 제가 배현수 씨를 한 번 만나고 올까요?”“요즘 해외사업부 일 때문에 바쁘잖아. 괜찮으니까 엄창민 보고 가라고 해. 엄창민은 너의 오빠야, 당연히 더 많은 것들을 책임질 줄 알아야지.” 엄명월은 붉은 입술을 꼭 깨물며 다소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그 모습에 엄준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네가 뭐든 잘 해내는 건 알아. 하지만 너는 너무 급해. 앞만 보고 달리려고 하고 옆을 보지 않아. 하지만 창민이는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는 애라 이런 건 네가 좀 배워야 해. 인제 그만 얘기하고 가서 창민이나 불러
밤이 된 성남은 곳곳이 번화한 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대제주시는 북쪽에, 성남은 남쪽에, 이렇게 남과 북은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조유진은 병실 창가에 서서 창문을 열어 밤바람을 쐬고 있었다.불과 한 달만에 대제주시에서 발생한 일들은 마치 전생처럼 머릿속에 그려졌다.큰 트라우마를 겪고 나면 선택적 기억상실증에 걸린다고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왜 잊히지 않고 오히려 더 또렷이 기억이 나는 걸까?그녀는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천천히 손을 들어 허전한 목을 만졌다.조유진은 원래 이곳에 은반지가 있는 은목걸이를 항상 하고 다녔다. 엄창민이 보온병을 들고 병실에 들어갔을 때 가녀린 그림자가 창가에 넋이 나간 채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는 주먹을 쥔 손을 입 앞에 갖다 대며 가볍게 기침했다. “조유진 씨, 이건 아버지가 보내라고 한 음식이에요. 엄 씨 사택의 주방에서 만들었는데 입맛에 맞는지 한 번 드셔보세요.”조유진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다.“고마워요. 괜히 저 때문에 늦은 시간에 여기까지 오게 했네요. 저 대신 어르신에게도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저에게 베풀어준 은혜는 나중에... 나중이라는 시간이 주어지면 꼭 최선을 다해 갚도록 할게요.” “메이오 클리닉은 의료기술이 아주 잘 되어 있으니 유진 씨에게도 분명 나중이 있을 겁니다.”그는 조유진에게 한 마디 위로를 건넸다. 조유진은 풍성한 음식들을 보고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띠며 인사를 전했다.“다들 고마워요. 덕분에 저에게도 나중이 있다는 것을 기대하게 되었어요”점점 빨개지는 그녀의 눈시울을 보고 있자니 엄창민은 갑자기 궁금한 것이 생겼다. 그녀가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기에 가녀린 아가씨가 바다에 뛰어들기까지 했는지 말이다. 하지만 엄창민은 참하고 됨됨이가 있는 사람이라 사적인 일을 절대 쉽게 묻지 않는다. “엄 어르신에게서 들었는데 유진 씨가 예전에 SY그룹에서 일했다면서요? 혹시 SY 그룹에 대해 기억나는 게 있을까요?”그 말에 그녀의 동공이 끊임없이 흔들렸고
...다음 날 이른 아침.엄준은 도 집사를 데리고 조유진을 보러 왔다.“이분은 도 집사예요. 엄 씨 사택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으니까 무슨 일이 있으면 도 집사를 찾으세요.”“도 집사 아저씨, 안녕하세요.”도 집사는 병상의 조유진을 보고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감탄했다.“어르신, 이 아가씨는 그때 당시의 사모님과 정말 비슷하네요.”그러자 엄준이 웃으며 대답했다.“내 말이 맞지? 유진 씨는 나와 인연이 깊다니까. 도 집사, 내가 사라고 한 새 휴대전화는?”도 집사는 새 휴대폰를 조유진에게 건네주며 말했다.“아가씨, 이건 어르신이 유진 씨를 위해 사라고 한 새 휴대전화입니다. 안에 SIM 카드도 다 넣어 놨어요.”조유진은 감히 손을 내밀지 못했다.“어르신, 저는...”“받아요, 그저 새 핸드폰일 뿐이에요. 병원에 혼자 있으니, 우리가 이렇게 왔다 갔다 하기도 불편하고. 핸드폰이 있으면 우리도 유진 씨와 연락하기 편해서 그래요.”조유진은 이미 충분히 신세를 지고 있는 상황에 더 이상 그들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아 건네는 휴대폰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엄 어르신, 고마워요.”“근데 아가씨는 왜 아직도 어르신이라고 부르나요. 어제 어르신이 수양딸로 삼기로 했잖아요.”엄준은 기대에 가득 찬 표정으로 조유진을 바라보았다.조유진은 도저히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한참을 머뭇거린 후에야 겨우 한마디 했다.“아버지.”순간 엄준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만개했다.하지만 그녀의 병을 생각하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유진 씨, 미국에 가는 비자는 제가 사람을 보내서 신청하게 했는데 발급기관에서 신분을 증명할 만한 서류가 필요하다고 하네요. 혹시 신분증 같은 건 있나요?”“아니요, 바다에 뛰어들 때는 아무것도 안 가지고 있었어요.”엄준과 도 집사는 서로 얼굴을 한 번 마주 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눈앞에 있는 젊은 아가씨가 죽을 결심으로 바다에 뛰어들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했다. 엄준이 입을 열었다.“사실 다른 서류라면 돈 좀 들
“뭐라고? 아버지가 조유진에게 엄환희의 신분으로 비자를 발급하라 했다고? 조유진이 뭔데! 그 여자는 아버지가 길 가다 주운 고양이잖아!”이 일을 알게 된 엄명월은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다.그 해에 그녀가 엄준을 따라 복지원을 나올 때도 엄준이 그녀의 이름을 지어주었다.엄명월.명월은 휘영청 밝은 달을 뜻한다. 그리고 달이 많은 별들을 품고 있다는 뜻도 있었다.당시 그녀는 이 이름을 매우 좋아했다.엄준의 수양딸이 된 후, 더 이상 복지관에서 괴롭힘을 당하지 않아도 되고 유통기한이 지난 빵을 먹지 않아도 되었다. 엄명월이 된 순간부터 그녀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하지만 이 이름이 아무리 많은 별을 품고 있다고 해도 절대 엄환희라는 이름과는 비교할 수 없다.엄환희는 엄준의 친딸이다.‘환’자를 붙인 것은 아버지가 딸에게 바라는 것이 바로 딸 인생의 평안과 기쁨이고 항상 웃고 행복하길 바라는 진심 어린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엄명월은 전화기 너머의 비서에게 말했다.“조유진이 대체 어디서 온 거예요? 아버지 말로는 예전에 SY그룹에서 일했다고 했는데 설마 SY그룹에서 보낸 스파이는 아니겠죠? 가서 뒷조사 좀 해주세요. 만약 진짜로 상대방이 보낸 비즈니스 스파이라면 그 여자에게 매운맛을 톡톡히 보여줘야죠.”조유진에게 어떤 목적이 있든 엄명월은 그녀가 모든 것을 다 차지하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일주일 후, 미국으로 가는 비자가 발급되었다.엄준은 서류봉투를 조유진에게 건네며 입을 열었다.“여기에 미국으로 가는 신분증과 비자 서류들이 들어 있어요.”조유진은 그 묵직한 서류봉투를 받으며 저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쥐었다.지금, 이 순간의 감정은 ‘감격’이라는 두 글자 외에 도저히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조유진의 눈시울은 순식간에 뜨거워졌고 쉰 목소리로 흐느끼며 말했다.“엄 어르신, 어르신은 제 은인이에요. 저의 친아버지도 이렇게까지 저를 따뜻하게 대한 적이 없어요.”그녀는 난생처음으로 부성애를 느꼈다. 우습게도 혈연관계가
“어르신, 저 꼭 살아서 돌아올게요. 걱정하지 마세요.”엄준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그녀는 꼭 살아야 했다. 엄준이 병실을 막 나올 때 갑자기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엄창민이 건 전화다. “아버지, SY그룹에서 저희 회사에 왔는데 배현수 대표가 직접 왔어요. 지금 우리 건물 1번 회의실에서 계약서를 체결하기를 기다리고 있어요.”“알았어, 금방 갈게.”...성행 그룹의 회의실.배현수는 창가에 서 있었고 떡 벌어진 어깨는 남다른 분위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곧바로 엄준과 엄창민 모두 회의실에 도착했다.“배 대표님, 처음 뵙겠습니다. 대표님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엄준이 앞으로 걸어가며 배현수와 악수를 했다.모든 협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한 시간 후, 성행 그룹과 SY그룹은 공급 협력계약서를 성공적으로 체결했다.이번에 배현수는 성남에 올 때 서정호 비서만 대동하고 왔다. 엄준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배 대표가 계약서를 체결하기 위해 성남까지 오실 줄은 몰랐어요.”“이번에 성남에 온 이유는 사업 때문만이 아니에요. 굳이 숨길 필요도 없으니 드리는 말씀이지만 저는 성남에 온 김에 성행 그룹과 계약서까지 체결하는 거예요. 저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 있어요. 그래서 엄 어르신의 도움이 필요해요.”“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배 대표도 어려운 일을 이 노인네가 할 수 있을까요?”엄준은 배현수에 대해 예전부터 많은 얘기를 들었다. SY그룹, 이 회사는 배현수가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공부를 하면서 설립한 회사로서 이제 막 창립 6주년이다.하지만 그사이 창업자가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쓰고 3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출소 후, 그는 딱 3년이라는 시간 안에 SY 그룹을 작은 스타트업 회사에서 막강한 재단을 갖춘 큰 회사로 키워냈다. 그의 과거는 마치 안갯속에 있는 것처럼 위험한 것 같지만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다. 배현수의 일 처리는 한 치의 허점도 없었고 모든 결단이 칼같이 확실하고 정확했다. 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