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진은 자리에 똑바로 서서는 가지 않으려 했다. 강이찬이 그녀의 팔을 겨우 끌어당기며 입을 열었다.“계속 소란을 피울 생각이야?”배현수의 옆을 지나갈 때 강이찬이 그를 보며 사과했다.“내가 돌아가서 잘 교육할게. 유진이 일은 나도 마음이 아파.”그들 남매가 떠난 후, 이미 눈물범벅이 되어 있는 선유가 배현수의 눈에 띄었다.“아빠, 저 나쁜 이모 말이 사실이에요?”“아니야. 저 이모가 엄마를 질투해서 거짓말한 거야.”“그럼, 엄마에게 전화해야겠어요. 엄마 보고 싶어요...”선유는 바로 팔목을 들어 손목에 찬 작은 손목시계로 조유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선유야...”선유가 전화하는 것을 막으려 했지만 전화기 너머로 이미 통화연결음이 들렸다.그리고 조유진의 핸드폰이 배현수의 정장 바지 주머니에서 울리기 시작했다.선유는 자리에 멍하니 선 채 그를 바라봤다. “아빠, 엄마에게 전화 걸었는데 왜 아빠 핸드폰이 울리는 거예요?”배현수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엄마가 정말 죽었어요?”배현수는 휴대전화가 울리도록 내버려둔 채 무릎을 굽혀 선유와 얼굴을 마주했다. 그는 손을 올려 선유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부드럽게 닦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선유야, 저 나쁜 이모 말을 믿을 거야? 아니면 아빠를 믿을 거야?”선유는 눈이 퉁퉁 부은 채 흐느끼며 대답했다.“아빠를 믿어요.” “아마 많은 사람이 저 나쁜 이모처럼 엄마가 죽었다고 할 거야. 하지만 아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아빠 생각에 엄마는 아직 살아있어. 선유야, 아빠 한 번만 믿어줄래? 아빠와 같이 엄마 오기를 기다리자.”선유는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는 아빠를 믿어요. 그런데 엄마는 언제 돌아와요? 아빠가 엄마 찾으러 가면 안 돼요?”배현수는 그녀를 바라보며 몇 초 동안 침묵했다.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배현수는 쉰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약속할게. 반드시 엄마를 찾아오기로.”“정말요? 아빠, 그럼, 우리 깎지 걸어요.” 선유는 울면서
대제주시의 끝 여름은 비바람이 이는 날이 많다. 날 잡아서 산 중턱까지 왔을 때 하늘도 배현수에게 벌을 내리는지 갑자기 심한 폭우가 쏟아졌다. 조유진은 그때 바로 여기서 비를 맞으며 절을 하고 한 걸음씩 계단을 올라가며 그에게 용서를 빌었다.그리고 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배현수는 정말로 그녀를 용서해 주었다.어쩌면 마음을 다해 한 기도가 진짜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간절한 기도는 하늘도 감동해 들어줄 수 있다.배현수의 마음도 한 걸음씩 절을 하며 올라가는 계단에 더 깊어지고 간절해졌다. ... 지리산 사찰안.한 명의 제자가 황급한 걸음으로 뛰어가다가 현공민과 부딪힐 뻔했다.“뭐가 이렇게 급해?”“사부님, 산 아래에 한 사람이 빗속에서 무념무상인 얼굴로 한 층 한층 무릎을 꿇으면서 올라오고 있어요. 열심히 타일렀는데도 전혀 돌아가려 하지 않아요. 혹시라도 저희 사찰 문 앞에서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돼요...”현공민은 눈썹을 한 번 찌푸리더니 입을 열었다.“우산 갖고 와봐, 내가 내려가 볼게.”...노란색 우산이 배현수 머리 위로 가려지며 차가운 비바람을 막았다.현공민은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젊은 친구, 왜 이렇게 비바람을 맞으며 무릎을 꿇고 있어요? 무슨 일이라도 있는지요?”“네, 간절히 바라는 일이 있습니다.”훤칠한 젊은이는 온몸으로 상위자의 기세를 내뿜고 있었고 흐르는 귀티로 봐서는 보통 사람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현공민은 이런 사람이 간절히 바라는 게 있다는 것은 정말로 이루기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현공민은 눈을 똑바로 뜨고 물었다.“생사와 관련된 일일까요?”“그녀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라고 있어요.”그 말에 현공민이 깜짝 놀라 물었다.“그녀가... 죽었나요?”“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젊은 친구, 당신은 혹시 불교를 믿나요?”배현수는 계속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체념하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안 믿어요.”현공민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기복부 첫 장에는 ‘배’자가 가득 쓰여 있었다. 이게 다른 사람이 우연히 쓴 글자라면 뒷장으로 넘겼을 때는 선유라는 두 글자가 기복부 전체를 채웠다.이 세상에 이와 같은 우연은 절대 없을 것이다.현공민도 기복부를 보고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제가 잘못 가져왔네요. 이 기복부는 이미 다 쓰여 있네요. 새것으로 다시 가져오겠습니다.”현공민이 다시 가져가려고 할 때 배현수는 손으로 그것을 꽉 잡으며 물었다.“이 기복부를 쓴 사람이 조유진 씨 맞습니까?”현공민은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이 기복부를 쓴 사람을 아십니까?”“네, 이것은 틀림없이 그녀가 쓴 거예요.”현공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간절히 바라는 게 이 사람과 관련이 있는 건가요?”“맞습니다.”“저도 그 아가씨에 대해 인상이 깊어요. 아가씨가 산에 올라온 날도 오늘처럼 날이 어둑어둑해진 후였어요. 그녀가 세상을 포기한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 제가 몇 마디 타일렀었죠. 그러자 아가씨가 오랫동안 이곳에서 기복부를 쓰더라고요. 혹시 이 기복부에 쓴 ‘배’자가 당신 성씨인가요?”배현수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는 천천히 글자가 쓰인 종이 위에 손을 갖다댔다. 현공민이 낮은 소리로 위로하듯 입을 열었다.“아가씨가 얼굴이 선하니 모든 일도 반드시 잘 풀릴 겁니다. 젊은 친구,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처럼 천천히 기다려 보세요.”배현수는 그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 그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스님의 덕담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현공민은 새 기복부를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조유진의 기복부를 들고 중얼거리던 배현수가 현공민을 보며 입을 열었다.“그녀의 글씨를 좀 더 보게 해주세요.”“그래요... 여기서 보고 계세요. 저는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현공민이 자리를 떠나고 작은 방에 배현수 한 사람만 앉아 있었다.그는 한 페이지 가득 채운 ‘배’라는 글자를 보면 볼수록 가슴이 메여져 참을 수 없었다.그는 손가락으로 장마다 있는 자신의 이름과 선
배현수는 조유진과 닮은 뒷모습 하나에도 가끔 넋을 잃고 있었다....조유진이 떠난 후.산성 별장에서 선유는 항상 별장 입구에서 뚱이를 안은 채 쪼그려 앉아 조유진이 오기만을 기다렸고 그 옆에는 감자가 선유 곁을 지키며 함께 했다. 그 모습에 장 셰프가 선유를 보고 잘 먹는 어린이가 되어야 엄마가 빨리 돌아온다고 말하면 선유는 그 어느 때보다 밥도 잘 먹고 잘 자면서 말을 잘 들었다. 선유는 혹시라도 말을 듣지 않으면 엄마를 다시는 못 볼까 봐 두려웠다.남초윤은 선유를 보러 오면서 장난감을 한 박스 가져왔다.하지만 선유는 남초윤을 볼 때마다 똑같은 질문을 했다.“이모,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어? 이모가 엄마와 제일 친하잖아.” 그럴 때마다 남초윤은 가슴이 아팠다.그녀는 차마 선유에게 엄마가 어쩌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할 수 없었다.넓은 산성 별장 안에 배현수와 선유 두 사람만 있을 때는 아무도 조유진을 언급하지 않았다.선유는 만약 자기가 엄마 얘기를 하면 아빠도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어느 하루는 악몽을 꾸다 깨어난 선유가 아빠 방으로 가려고 서재 앞을 지나갈 때, 우연히 아빠가 서재에서 아직 잠들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그때 배현수는 은반지를 손에 들고 그것만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선유는 그 은반지가 누구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예전에 엄마는 늘 그 은반지를 목걸이로 만들어 목에 걸고 다녔다.선유는 아직 어리지만 아빠가 그 누구보다도 엄마를 더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배현수는 더더욱 그 누구에게도 조유진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물론 입 밖으로 한 마디도 꺼내지 않지만, 이 산성 별장에 있는 모든 것은 조유진과 관련이 있다.조유진이 세 들어 살던 집을 배현수가 샀고 그 안에 그녀가 쓰던 물건들과 삶의 흔적들을 배현수는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다.그는 가끔 저녁 늦게까지 야근하고도 이곳을 지나칠 때면 들어와서 한참이나 멍하니 앉아 있었다.배현수는 소파에 앉아 조유진의 휴대전화를 켰다. 그녀의
폐암?순간 엄준과 한 선생은 깜짝 놀라 서로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한 선생이 먼저 입을 열었다.“검사는 해 봤어요?”조유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그때 제가 흉부에 심각한 외상을 입어 정밀검사는 하지 못하고 흉부 X-ray 사진만 찍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저의 폐 상태가 좋지 않다며 병원에 입원해 정밀검사를 하라고 했는데... 그때 제가 다른 일이 있어서 병원을 더 가지 못했어요.”“그럼 이렇게 해요. 사진 다시 한번 찍고 필요하면 정밀검사까지 해서 지금 상태가 어떤지 확인합시다.”조유진은 아무 대답이 없었지만, 눈빛은 그의 깊은 생각을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엄준은 조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유진 씨, 당신이 어떤 병이든 나는 최선을 다해 도울 거예요. 하지만 당신이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아무도 당신을 도울 수 없어요. 폐암이 아무리 치료할 수 있는 병이라 해도 당신이 죽기를 간절히 바라면 염라대왕이라도 당신을 구할 수는 없어요.”“엄 어르신, 구해줘서 고맙지만 저는 더 이상 세상을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했어요...”“살아있는 게 의미가 있는 거예요. 유진 씨, 당신은 잠시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을 뿐이에요. 유진 씨는 아직 젊기에 무엇이든 해 볼 수 있잖아요. 유진 씨보다 훨씬 더 오래 산 내 말을 한번 믿어봐요. 세상을 살아가는 것보다 더 좋은 게 없다는 거, 그리고 죽음은 비겁한 자들이 하는 선택이라는 것을 알게 될 거예요. 하늘이 우연한 기회로 당신을 구하게 했으면 분명 당신더러 이 세상을 더 살아가라는 의미예요. 유진 씨, 자신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봐요. 방금 유진 씨가 말했던 살아갈 의미? 그건 당신이 살아야만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엄준은 최선을 다해 그녀를 타이르고 있었다.그의 양아들인 엄창민은 창백한 얼굴로 병상에 누워있는 조유진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당신은 아직 너무 젊어요.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쉽게 포기해서
엄준은 지팡이를 움켜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유진 씨, 만약 미국의 메이오 클리닉에서 치료만 가능하면 저는 당장이라도 유진 씨를 그곳에 보내드릴 수 있어요.”“엄 어르신, 저는 어르신과 핏줄로 이어진 친척도 아닌데 왜 이렇게 저에게 잘해주세요? 저는...” 조유진의 눈시울은 벌써 뜨거워졌다.그 모습에 엄준이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괜히 잘해주는 건 아니에요. 물론 제가 남을 돕는 일을 많이 하지만 누구에게나 다 이렇게 하지는 않아요. 저는 유진 씨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왠지 모르게 친근감이 느껴졌어요.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유진 씨는 제가 아는 한 사람과 너무 닮았어요. 물론 그 사람은 이미 하늘나라로 갔지만 저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거든요.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유진 씨 나이가... 저의 잃어버린 딸과 비슷해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측은지심이 들어요.”옆에 있던 한청희가 갑자기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엄 어르신, 어르신은 유진 씨와 이렇게 인연이 깊은 데 수양딸을 한 명 더 두시는 게 어때요? 어차피 어르신의 수양딸과 아들은 어느 곳에나 다 있잖아요.” “안 그래도 그 말을 하려고 했어요. 저에게는 수양딸과 아들이 각각 한 명씩 있어요. 딸이 한 명 더 있으면 저야 당연히 더 좋죠.”그러자 한청희가 조유진을 보며 말했다.“조유진 씨, 엄 어르신을 양아버지로 받아들이시는 게 어때요?”엄준은 따뜻한 눈빛으로 조유진을 바라보았다.“유진 씨, 어떻게 생각해요?”그 말에 조유진은 감정이 북받쳐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엄 어르신, 어르신과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제 평생의 영광이고 복이에요. 어르신은 제 목숨을 구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수양딸까지 말씀하시다니... 이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만약 제가 운이 좋아서 다시 살게 되면 앞으로 어르신이 원하는 일은 그게 무엇이든 절대 마다하지 않고 다 할 수 있습니다.”“그래요. 당연히 살아야죠. 그래야 나도 필요할 때 유진 씨 부를 수 있죠. 유진 씨
엄준은 저녁이 다 되어서야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고 엄 씨 사택에는 이미 음식 냄새가 진동했다.“도 집사, 주방에 무슨 요리를 하라고 시켰기에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나?”엄명월은 그 소리에 얼른 소파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버지, 다녀오셨어요?”그녀는 활짝 웃으며 엄준의 팔짱을 꼈다.“도 집사 아저씨께서 오늘 아버지의 기분이 좋으시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주방에 몇 가지 요리를 더 추가하라고 하셨다면서요?”엄준은 엄명월의 손등을 톡톡 치더니 입을 열었다.“너도 오랜만에 왔구나. 오늘은 창민이도 있으니 너희 둘이 나와 한잔하면 되겠네.”“좋아요! 그런데 아버지, 저 요즘 살이 빠진 것 같지 않아요?”엄준이 앉자마자 엄명월이 그의 앞에서 한 바퀴 돌며 말했다.“그룹 내부 일 처리가 너무 힘들어서 그런 거야? 아니며 좀 쉴래? 해외사업부 일을 창민이에게 맡기고. 놀러 나가서 남자 친구나 좀 찾아서 데려와. 그래... 내 탓이지. 그렇게 많은 일을 맡겼으니 연애할 시간도 없을 거야.”엄창민과 엄명월은 그의 오른팔이나 다름없었다.비록 성행 그룹의 주요 책임자는 엄준이지만 그는 많은 일을 엄창민과 엄명월에게 맡겼고 또 나이가 들면서 게으름도 피우며 살고 싶었다.엄창민과 엄명월은 그가 직접 선택하고 가르친 후계자이기에 많은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그들에게 더 많은 경험을 쌓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해외 프로젝트는 엄명월이 심혈을 기울여 시작한 것이다.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양반이 버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중요한 프로젝트를 엄창민에게 넘겨줄 생각 따위는 전혀 없다.엄명월은 엄준에게 다가가 애교 섞인 말투로 일을 열었다.“아버지, 저는 연애에 관심이 없어요. 그냥 아버지 곁에서 그룹이 더 성장할 수 있게 힘쓰고 싶어요. 해외 프로젝트는 제가 처리할 수 있어요. 창민 오빠야말로 나이가 적지 않으니 빨리 결혼해야 하지 않겠어요?”엄명월은 교활하게 결혼 얘기를 맞은편에 있는 엄창민에게 돌렸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엄명월은 과일 한 접시를 들고 엄준의 서재로 갔다.엄준은 책상에 앉아 아내의 옛날 사진을 보고 있었다.“아버지, 또 어머니를 생각하시는 거예요?”“너의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어. 그녀도 폐가 좋지 않았단다. 그 시절에는 의료기술이 지금처럼 좋지 않았어. 나는 그때 너의 어머니를 데리고 전국 곳곳의 명의들을 다 찾아다녔지만 방법이 없었어. 나중에 나는 너의 어머니가 죽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서 병원에 부탁해 심장만 뛰게 해달라고 했어. 너의 어머니는 나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도 고통스러웠어. 조유진, 그 아이를 보면 자꾸 너의 어머니가 생각나. 그래서 더 측은한 마음이 드는 것 같아.”엄명월은 그제야 엄준이 조유진을 챙기는 이유를 알았다. 그때 엄명월 눈길이 탁자 위에 놓인 계약서를 향했다.그것은 다름 아닌 공급 협력계약서였다.“아버지, 우리 성행 그룹이 정말로 SY그룹과 같이 일해요? SY그룹에 불평등한 조항이 꽤 있던데 우리가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겠죠?”“이번에 대제주시에 가서 SY그룹그룹을 견학했는데 그들의 경영에는 그룹 문화가 포함되어 있어서 규칙을 비교적 잘 지키고 있었어. SY그룹가 제시한 가격이 상대적으로 적당하기도 하고 그룹 규모도 비교적 크기에 우리가 공급상으로서 SY그룹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을 수 있으면 오랫동안 같이 발전할 수 있어.”“아버지, 아직 계약서 체결 안 하기도 했고 혹시 모르니까 제가 배현수 씨를 한 번 만나고 올까요?”“요즘 해외사업부 일 때문에 바쁘잖아. 괜찮으니까 엄창민 보고 가라고 해. 엄창민은 너의 오빠야, 당연히 더 많은 것들을 책임질 줄 알아야지.” 엄명월은 붉은 입술을 꼭 깨물며 다소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그 모습에 엄준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네가 뭐든 잘 해내는 건 알아. 하지만 너는 너무 급해. 앞만 보고 달리려고 하고 옆을 보지 않아. 하지만 창민이는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는 애라 이런 건 네가 좀 배워야 해. 인제 그만 얘기하고 가서 창민이나 불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