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선유도 조유진의 목을 꼭 껴안으며 말했다.“엄마, 왜 그래? 나 보내기 아쉬워서 그래?”“응, 좀.”하지만 참을 수 있었다.어떤 일들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으면 그렇게 슬프지 않다.조유진이 선유를 더욱 꼭 껴안자 옆에 있던 배현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산성 별장에 가기 싫으면 선유가 너의 집에 며칠만 더 머무르라고 해도 돼.”조유진은 선유를 안았던 팔을 내리며 대답했다.“아니야. 어차피 앞으로 만날 기회가 많으니까. 이만 선유를 데려가. 당분간은 혼자 있고 싶어.”만약 선유가 계속 자기 옆에 있으면 조유진의 죄책감은 한층 더 깊어질 것이다.예전에 배현수가 한 말이 맞다.상처가 클수록 나중에 다시 기억했을 때 마음이 더 아플 것이다. 조유진은 선유가 계속 자신을 그리워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차라리 선유가 자신을 깨끗이 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어린 선유는 고사리 같은 손을 뻗어 조유진의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 “엄마, 혼자 잘 지내야 해. 외할머니는 저기 하늘나라로 가셨지만 엄마에게 아직 나와 아빠가 있잖아.”“그래, 엄마 선유 생각하며 잘 지내고 있을게.”이때, 요양원 원장이 조유진 앞으로 가까이 다가오더니 안정희의 유품을 전달하며 말했다.“이것은 어머니의 유품입니다. 제가 어제 요양원에 있는 직원에게 정리해 달라고 했는데... 빠뜨린 물건이 없는지 한 번 봐주세요.”조유진은 한 번 훑어보았고 중요한 물건은 다 있는 듯했다.사실 안정희에게 귀중품이라고 할만한 게 딱히 없다.“원장님 감사합니다.”...두 사람은 주차장에서 각각 차를 타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배현수는 어린 선유의 등을 토닥이고 나서 자기 차를 향해 걸어갔다.조유진은 자꾸 고개를 돌려 그들을 돌아보았고 눈시울은 이미 축축이 젖어 있었다. 차에 탄 후 남초윤이 운전했고 조유진은 뒷좌석에 혼자 앉아 요양원 원장에게서 건네받은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안정희가 생전에 남긴 유서가 있었다.설마 엄마가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알고 있었을까?
지난번에 여기에 왔었던 때가 벌써 6년 전이다.당시 배현수는 피고인석에 있었고 조유진은 증인석에 서 있었다.이번에도 그녀는 증인석에 서 있었지만 피고인석에는 배현수가 아니라 조범과 조영훈이 서 있었다.“유진아, 제발 바보짓 좀 하지 마. 배현수는 너를 속이는 거야.”“누나, 제발 나 좀 도와줘. 우리야말로 가족이잖아. 배현수 따위가 뭐라고!”조범과 조영훈은 그녀가 감싸주기를 바라며 애원하고 있었다.이들처럼 너무 많은 악행을 저지른 사람은 절대 뉘우치는 일이 없기에 조유진은 그들을 상대하지 않았다.판사가 판사봉을 두드렸다. “증인 조유진, 2017년 6월 6일 밤 10시, 당신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날 밤, 차로 유성진을 치어 숨지게 한 가해자가 배현수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죠?”조유진은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흰색 휴대전화를 꺼내며 입을 열었다.“2017년 6월 6일 밤 10시, 나와 배현수는 아신 에스테이트에서 셋집을 얻어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날 그곳에서 생일을 축하하고 있었고 저녁에 저는 영상을 녹화해 소셜 계정 스토리에 업로딩 했지만 전체공유를 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그 영상은 여전히 그 계정에 저장되어 있어 지금 바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조유진은 소셜 계정을 열었고 그 스토리를 클릭해 법정 안에 있는 사람들 앞에 공개했다.영상 속 조유진은 생일 모자를 쓰고 케이크 앞에 앉아 소원을 빌고 있었다.배현수는 그녀의 옆에 앉아 그윽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만약 이것도 증거로 채택되지 않으면, 아신 에스테이트 8동 1단지 902호의 집주인이자 실제 소유주인 도성주 씨를 찾아가 물어보시면 됩니다. 그날 밤, 도성주 씨가 월세를 받으러 우리 집에 왔기에 저는 배현수와 함께 도성주 씨를 만났습니다. 또한, 도성주 씨는 제 생일인 것을 알고 저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말도 해주었습니다.”배현수도 이미 조유진이 말한 증인을 찾아 놓았다.사실 그때에도 배현수가 증거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증인과 증거 모두 가지고 있
쾅!“조용히 하세요!” 조범이 억울한 얼굴을 하며 입을 열었다.“판사님, 저는 진짜로 이 칼자국 흉터가 있는 남자를 모릅니다. 저 사람은 무조건 배현수가 일부러 저를 골탕 먹이기 위해 데려온 사람입니다. 저들은 이미 계획을 짜고 왔습니다.”칼자국 흉터가 있는 남자는 은행 송금 기록지를 꺼내 들며 말했다.“이것은 3년 전, 조범이 배현수를 죽이라고 했을 때 받은 보수입니다. 송금인은 조범 본인이 아니지만 조범 명의로 등록된 회사에서 보낸 것이고 저에게 급여 명목으로 송금했습니다. 저같이 중학교도 졸업하지 않고 전과도 있는 건달이 어찌 한 회사에 입사해서 한 달에 4천만 원씩 버는 업무를 할 수 있겠습니까?”칼자국 흉터가 있는 그 남자는 은행 명세서를 증거로 제출했다. 조범은 죄질이 악랄하고 이런저런 사건에 너무 많이 연루된 데다 신분이 특수하고 죄를 인정하지 않아, 당분간 재판 결과를 선고할 수 없다.쾅!“오늘 1심 재판은 여기까지입니다. 제출한 모든 증거는 최대한 빨리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2심 재판 시간은 법원의 통보를 기다리세요.”곧 법정 안에 있는 직원이 조범을 데려갔다.조범은 조유진 옆을 지나가며 그녀를 무섭게 노려보았다.“조유진, 잊지 마. 너는 성이 조씨야. 지금까지 조씨 집안에서 너를 키웠어. 그런데 감히 친아버지를 팔아먹어? 배신자! 너는 지옥에 가서 두 번 다시 환생을 못할 거야!”이 한마디의 저주는 악랄하기 그지없었다.하지만 조유진은 신경 쓰지 않다.6년 전, 법정에서 가짜 증언을 할 때 그녀는 이미 지옥에 있다고 생각했다.오늘 다시 법정에 서서 정확한 진술을 함으로써 그녀는 드디어 자신을 옭매어 있던 죄책감에서 벗어났다. 만약 환생이 있다면 그때는 사람이 아니라 한 줌의 모래로 태어나 바람 따라 자유롭게 이 세상을 만끽하고 싶다. 1심이 끝난 후, 조유진이 법원에서 나오자 많은 기자들이 순식간에 우르르 몰려왔다.“조유진 씨, 부잣집 딸로서 6년 전에 아버지를 도와 거짓 증언을 하고 6년 후에 진술을 번복하
“배 대표님, 조유진 씨가 아직도 원망스럽습니까? 대답해 주세요.”배현수는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나는 6년 동안 그녀를 미워했지만 이제는 나 자신을 놓아주고 싶어요.”배현수의 눈빛은 깊은 바다처럼 쓸쓸하고 고독해 보였다. ...충남 법원을 떠난 후.조유진은 뒷좌석에 타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내 입을 열었다.“서 비서님, 버스정류장까지만 데려다주세요.”“유진 씨, 저를 난처하게 하지 마세요. 배 대표가 오늘 꼭 유진 씨를 안전하게 집까지 데려다주라고 얘기하셨어요. 1심 재판이 이제 막 끝나 충남이든 대제주시든 아직 이 일 때문에 온 세상이 너무 시끄러워요. 유진 씨도 당분간은 기자들 눈에 띄지 않도록 외출을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조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해 주셔서 고마워요.”서정호는 백미러로 조유진을 힐끗 보더니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유진 씨, 이런 말씀 드리는 게 맞을지 모르겠는데... 유진 씨와 배 대표는 당사자이고 저는 외부인입니다. 당사자가 아니어서 제가 왈가왈부 할 수는 없지만 오래 살다 보니 경험이 많이 쌓였어요. 가끔 어떤 일들은 너무 집착하다 보면 나와 주위 사람을 다치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많은 걸 내려놓으려고 해요. 물론 어떤 일들은 당장에는 이해하기 어렵고 해결하지도 못하지만 시간이 약이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니까 저도 모르게 다 내려놓게 되었어요..”“서 비서님, 얘기해주셔서 고마워요. 하지만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처럼 다시 그때로 되돌릴 수는 없는 것 같아요...”조유진은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화해하고 싶어도, 시간이 가장 좋은 치료 약이라고 해도 그녀에게는 더 이상 시간이 없다.갑자기 가슴을 세게 한 대 맞은 듯한 통증에 조유진은 가슴을 움켜쥐었고 얼굴은 핏기없이 하얗게 질렸다.“유진 씨, 어디 불편하세요?”그녀는 일부러 거짓말을 했다.“조금 멀미를 하나 봐요.”“그럼 창문을 열 테니 바람을 좀 쐬세요. 그래도 힘들면 차를 세울게요.”“네
한편, 배현수는 기자들을 떨쳐내고 육지율의 차에 올라탔다.대제주로 향하는 길.육지율은 감탄하며 말했다.“진짜 속이 다 시원하네! 마음속의 억울함을 다 씻어낸 기분이 어때? 오늘 밤 술 한잔 하면서 축하라도 해야지 않아?”배현수가 한때는 꿈에서라도 오점을 씻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바라는 바를 이뤘음에도 그다지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그냥 그래.”오히려 기분이 잡쳤다.그때 육지율의 휴대폰이 울렸다. 남초윤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육지율은 바로 스피커 모드로 돌려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내일 유진이랑 서해로 놀러 가기로 약속했어요. 내일 저녁에는 돌아오기 어려울 것 같아요. 엄마에게 알려주세요. 그리고 다음 주 토요일에 본가로 가서 식사하려고요.”“유진이랑 서해에 놀러 간다고요?”“네, 왜요? 같이 가고 싶어요?”육지율은 배현수를 힐끗 쳐다보았다.“나야 상관없지만... 배 대표님이 가실지 모르겠네요.”“대표님? 설마요. 지금 유진이와 사이가 서먹서먹한데 배 대표님이 오면 유진이가 맘 편히 놀지 못할 것 같은데요. 요즘 기분이 별로거든요. 거기다 대표님이 차갑고 무뚝뚝한 표정이면 분위기만 망치고...”배현수는 그들의 통화를 고스란히 듣고 있었다.그 순간, 갑자기 배현수가 끼어들어 말했다.“저는 안 갈게요. 다들 재미있게 놀아요.”그도 조유진이 자신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걸 알고 있었다.남초윤이 전화 건너편에서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아... 하하, 대표님도 계셨네요.”스피커 모드라고 귀띔이라도 해주지, 육지율 이 나쁜놈! 배현수를 무뚝뚝한 표정이라고 험담했으니... 마음에 담아 두지는 않겠지? 남초윤은 부랴부랴 전화를 끊었다.육지율이 물었다.“진짜로 안 가려고?”“가려면 너나 가,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고.”배현수는 한껏 쌀쌀맞게 말했고 육지율이 받아쳤다.“남자는 나뿐인데 여자 두 명이나 데리고 가라고? 호텔에 가면 우리 셋이 나쁜 짓이라도 하는 줄 알겠어.”배현수는 차에 걸터앉은 채로 눈을 감았다.“네
그럼, 지금은?“선유야.” “응?”조선유는 먹고 있는 물만두를 쳐다보며 머리를 갸유뚱했다. 사실 속으로는 자신도 모르게 걱정이 앞섰다.“아빠가 엄마와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물론이죠! 자식이라면 누구나 부모님과 같이 있고 싶어 하죠. 아빠, 왜 그렇게 당연한 말만 해요?”조선유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투덜댔지만, 배현수의 안색은 점차 어두워졌다.“그렇지만, 네 엄마가 아빠랑 같이 있고 싶어 하는지 잘 모르겠네.”조선유는 반짝이는 눈망울로 응원했다.“아빠, 그럼, 직접 물어보세요! 물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엄마 마음을 알아요?”배현수의 미간이 움찔하더니 일어서며 말했다.“먼저 밥 먹고 있어, 아빠는 올라가서 처리할 일들이 있어. 선유가 말한 건 아빠가 고민 좀 해볼게!”배현수는 서재로 와서 책상의 서랍을 열었다. 안에는 검은색 벨벳으로 된 작은 박스가 있었다.박스를 열어보니 안에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있었다. 핑크 다이아몬드였다.반짝거리는 다이아몬드는 눈부시게 영롱했고 아름다웠다.조유진의 손에 끼워주면 더 이쁠 텐데...이제 와 보니 조유진은 그에게 모든 걸 다 줬는데, 오히려 배현수가 그녀에게 턱없이 부족했다.그녀가 원한다면... 남은 생은 조유진을 위해 살아가겠노라 다짐했다....그날 밤, 조유진도 잠에 들지 못했다.불면증으로 시달린 지 며칠째, 그저 창가에 앉아 해가 지고 달이 뜨는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런 날들은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웠다. 그날 오후, 남초윤이 찾아왔다.남초윤은 안색이 좋지 않은 조유진을 걱정하며 말했다.“유진아, 너 요즘 밥 제대로 안 먹고 있지? 안색이 너무 안 좋아, 얼굴도 반쪽이 됐네.”“응, 입맛이 없어서 그래. 오늘 저녁에 서해로 가게 되면 맛있는 고깃집을 알아봐 줘.”“그래, 네가 위도 안 좋은데 고기 먹을 수 있겠어?”조유진은 웃으며 말했다.“고기는 당연히 먹어야지, 술도 먹을 수 있는걸? 걱정하지 마.”서해로 가는 동안 남초윤은 얘기가 끊이지 않게 화제를 내놓았다. 우울
그녀들은 저녁 6시가 되어서야 서해에 도착했다.노을로 물든 수평선은 마치 오렌지를 머금은 바다를 방불케 했다.출렁이는 파도가 초석에 부딪히고 갈매기가 모래밭과 바다 위에서 맴돌고 있다.조유진은 신발을 벗고 치맛자락을 들어 올리며 모래밭을 지나 옅은 바닷가 쪽으로 향했다.차가운 바닷물이 다가와 그녀의 발과 종아리를 감싸 안았다. 남초윤은 재미있어하는 조유진에게 핸드폰을 꺼내 들며 말했다.“이쁘지? 우리 사진 한 장 남기자.”“그래.”휴대폰의 카메라 기능을 켠 남초윤은 조유진의 몸을 감싸고 머리를 맞대고 카메라를 보면서 웃었다.“찰칵.”그렇게 둘은 우정 사진을 찍었다.조유진은 맨발로 모래밭을 거닐면서 산호와 떠다니는 신기한 조개들을 줍고 있었다. 그녀의 딸, 선유에게 가져다주면 좋아할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웃음이 났다. 한참이나 바닷가에서 놀던 그녀들은 이내 시내의 고깃집으로 향했다. 이쪽은 바다를 끼고 있다 보니 고깃집에서도 신선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었다. 남초윤은 엄청나게 많은 메뉴를 주문하고 맥주도 함께 주문했다.하지만 조유진은 알코올 알레르기 때문에 주스를 주문했다.남초윤이 맥주병을 따는 순간 조유진은 갑자기 컵을 들이 밀며 말했다.“나도 마실래.”“너 알코올 알레르기 때문에 안 되잖아.”“내가 항알레르기제 챙겨왔어. 맥주 한두 잔 정도는 괜찮아. 네가 마시니까, 나도 마시고 싶잖아.”남초윤이 피식하고 웃었다.“딱 두 잔이야, 그냥 분위기만 내라고!”“짠!”컵에서 맥주 거품이 넘쳐 나올 정도로 술잔을 부딪쳤다.조유진은 잔 속의 맥주를 꿀꺽꿀꺽 한 모금에 모두 마셨다.“참! 빨리 마시지 말라니까...”그녀는 말하기 바쁘게 이미 잔을 비웠다.“초윤아, 최근 몇 년 동안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 이 한잔은 너를 위해. 정말 너무 공교롭게 너라는 좋은 친구를 곁에 둘 수 있어서 참 행운이야. 그동안 항상 옆에서 지켜주고 응원해 줘서 너무 고마워.”“갑자기 왜 이런 말들이야, 내가 이런 낯간지러운 말 안 들어준다고 그러
때문에 그녀는 일출이 전혀 반갑지 않았다.그런 힘든 시간 속에서 조유진은 수많은 생을 마감하려는 시도했다.조유진은 남초윤을 호텔까지 부축하면서 반사적으로 한마디 했다.“초윤아, 이제는 좀 신중해져 봐. 이혼이란 단어를 입에 달고 다니지 말고. 네가 이혼하고 싶지 않아 한다는 걸 난 다 알아. 자꾸 그런 얘기를 꺼내면 지율 씨가 진짜로 오해할 수도 있잖아.”“음... 이혼이라. 이혼하면 얼마나 홀가분할까.”“그리고 마음에 없는 소리 좀 그만해. 지율 씨도 그런 얘기 자꾸 듣다 보면 상처받는다고.”“상처를 받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 유진아, 너는 무슨 유언처럼 말을 남기냐. 이젠 그 얘기는 그만, 쉿...”조유진은 그녀를 이끌고 호텔 방으로 갔다.남초윤은 푹신한 침대 위에 털썩 쓰러지다시피 누우면서 이불을 끌어안았다.조유진이 옆에서 허리 숙여 신발을 벗기자 남초윤은 가벼워진 발을 보고는 이불속에 파묻혀 웃었다.“히히, 그래도 조유진 네가 최고야! 유진아, 나 화장도 지워줄래? 사랑해...”조유진은 가방에서 클렌징 워터와 화장 솜을 찾아 남초윤의 화장을 지워 주었다. 그리고 티슈로 얼굴을 깨끗하게 닦아 주었다.예약한 더블룸 덕분에 초윤은 누워서 자고 있었고 유진도 왼쪽에 누워 있었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그녀는 천천히 허리를 감싸고 있던 초윤의 팔에서 벗어나 침대에서 내려왔다.이 오션뷰가 보이는 호텔 방은 끝자락에 위치한 데다 바닥까지 내려온 창문 덕분에 서해가 한눈에 들어왔다. 서해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바닷가 주변의 도로와 가파른 낭떠러지가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낭떠러지 위의 커다란 초원에는 여러 가지 알록달록한 꽃들이 피어 있었다.조유진은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호텔을 나섰다....조유진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초윤의 휴대폰이 울렸지만 그녀는 깊은 잠에 빠진 나머지 처음에는 받지 못했다.전화벨 소리가 끊임없이 울리자 초윤은 미간을 찌푸리며 흐리멍덩한 채로 전화를 받아서 들었다.“여보세요? 누구야,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