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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화

작가: 남희은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3-12-23 19:00:00
조범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충남 법원에 도착했다.

사무실에 도착한 뒤 보이는 조유진의 모습에 조범은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유진도 눈앞에 나타난 조범의 모습에 이미 예상했다는 듯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현재 충남시는 조범의 담당하에 충남시의 모든 사람이 조씨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으니 법원장이 조유진의 등장을 조범에게 알렸다는 것도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유진아, 지금 이게 무슨 짓이니? 왜 여기까지 와서 헛소리하고 그래? 충남에 돌아왔으면 집으로 올 것이지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빨리 집에 가자.”

말을 이어가며 조범이 조유진을 잡아당기려 손을 뻗었다.

그러나 조유진은 결코 순순히 따라주지 않았다.

“당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당신이 가장 잘 알겠죠. 내가 지금 여기에서 하는 말이 헛소리인지 아닌지는 당신이 가장 잘 알지 않겠어요?”

이번만큼 조유진은 결코 소란을 피우려 그저 해보는 소리가 아니었다. 방금 그녀는 이미 이 모든 일을 각종 언론사들에게 털어놓았었다.

곧이어 조범의 이름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것이고 만약 정말 이 일이 모두 폭로된다면 조범의 시장 자리도 곧 위태로워지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조씨 가문 전체가 함께 도마 위에 오를 것이고 조유진 역시 이 사건의 ‘범인’ 중의 한 명으로서 책임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조범은 법원장의 눈치를 슬쩍 살피고는 입을 열었다.

“먼저 나가보세요. 얘가 제 딸인데 그냥 소란 피우러 왔나 봐요. 업무를 방해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자 법원장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됐습니다. 시장님, 부녀 사이에 화는 내지 마시고 잘 얘기해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외부인이 자리를 뜨자 사무실 안에는 조유진과 조범, 두 사람만이 남겨졌다.

그러자 조범은 부드러운 어투로 조유진을 달래기 시작했다.

“유진아, 너 왜 이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해? 이 일은 이제 6년이나 지났어. 인제 와서 소란 피우면 뭐하니? 배현수는 이미 3년 동안 감옥에 있었고 네가 지금 그를 위해 진술을 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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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조유진은 조범의 말을 믿지 않았다.“조 시장님, 시장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정말 못 하는 말이 없네요.”“정말이야! 난 널 속이지 않아! 배현수는 단 한 번도 너를 사랑한 적이 없어. 배현수는 네가 자기 아버지를 죽인 원수의 딸이라고 생각하는데 배현수가 정말 너를 사랑했을 거라고 생각해?”순간 조유진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배현수의 아버지 육성준이 그해 나와 함께 창업하다가 나중에 운이 나빠 그렇게 죽어버릴 줄 누가 알았겠어. 육씨 집안의 사람들은 모두 내가 범인이라고 의심하고 있어. 유진아, 내가 아무리 못돼도 설마 내 친구까지 죽여버리겠어?”조유진은 그 어떤 감정도 담지 않은 채 무뚝뚝한 얼굴로 조범을 응시했다.“당신이 정말 그런 짓을 저지를 사람인지 아닌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너... 너 이놈 자식, 소란 피우지 말고 당장 나와 집에 가. 그 배현수 아니, 육현수는 우리 집안 원수야. 앞으로 멀리하도록 해! 너만 괜찮다면 선유도 데리고 충남으로 돌아와. 요 몇 년 동안 너희 모녀 밖에서 고생 많이 했을 텐데 조씨 집안에 돌아오면 그래도 조금 편하게 살 수 있을 거야.”다른 수법이 먹히지 않자 조범은 감정 패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유진은 이미 조범의 가스라이팅에 습관이 되었는지라 조범의 카드는 조유진에게 먹히지 않았다.이들은 모두 인자하고 정의로워 보이는 조범의 가면이었다. 아무리 변명을 늘어놓아도 조범의 목적은 결국 시장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눈앞의 중년남성은 그녀의 친아버지 이다.비록 지금까지 조유진에게 사랑을 준 적이 거의 없었지만 막상 자신의 손으로 직접 친아버지를 망치려니 조유진 역시 마음이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하지만 더는 조범이 계속하여 악행을 저지르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소용없어요. 제가 당신을 따라 집에 간다고 해도 이제 곧 사직당하고 조사를 받게 될 거예요.”조유진의 말에 조범이 흠칫 놀라며 되물었다.“무슨 짓을 한 거야?”조유진은 그저 담담하게 미소를 지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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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159화

    저녁 8시.배현수는 사무실에 앉아 줄곧 떠나지 않았다.그때 핸드폰이 울리고 다름 아닌 산성 별장에서 걸려온 전화였다.“아빠, 야근하세요? 왜 아직도 집에 안 오세요?”서랍 안에 들어있던 작은 그림책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배현수의 싸늘한 눈빛이 순식간에 사르르 부드럽게 녹아내렸다.“응. 오늘은 좀 늦을 것 같아. 저녁은 혼자 먹어.”“전 이미 저녁 먹었어요. 오늘 장 셰프님께서 제가 좋아하는 반찬 잔뜩 해주셨어요. 심지어 튀김도 해주셨다니까요!”“선유야.”배현수의 낮은 목소리가 선유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울렸다.“아빠, 왜요?”“너 전에 네 이름이 선유인 이유가 엄마가 나를 무척 그리워해서라고 했었나?”“맞아요! 엄마가 저한테 아빠를 엄청나게 사랑하신다고 하셨어요. 아빠가 곁에 계시지 않는 그 몇 년 동안 저보다도 아빠가 더 그리웠다고 하셨는걸요.”침묵이 몇 초간 이어지더니 배현수가 담담하게 답했다.“응. 알겠어.”선유와의 전화가 끊긴 뒤 배현수가 누군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육지율은 배현수의 전화를 받은 뒤 놀랍지도 않다는 듯 전화가 통하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이 늦은 시간에 설마 같이 조유진을 데리러 충남에 가자고 하는 건 아니겠지?”“난 그저 선유가 속상한 게 싫을 뿐이야.”“하, 배현수 넌 진짜... 아까 남초윤이 미친 듯이 선유한테 전화를 걸어서 선유 더러 너한테 조유진을 구해달라고 빌게 하려는 걸 겨우 막았더니 이젠 네가... 넌 정말 그냥 조유진한테 완전히 빠져버렸구나.”“15분 줄게. 그룹 건물 밑에 나 데리러 와.”“이런 젠장...”이 늦은 밤에 배현수와 함께 사람 데리러 충남 법원에 가야 한다니.전화를 끊은 육지율이 옷방으로 가 옷을 갈아입었다.남초윤은 방금 샤워를 마치고 나와 육지율이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보자 싸늘하게 물었다.“이 야밤에 그렇게 꾸미고 어딜 나간대? 여자 꼬시러 가요?”“내가 여자 꼬시러 나갈 새가 어디 있어요? 배현수도 정말 미쳤지. 이 야밤에 나더러 자기와 함께 충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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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게요. 유진이가 구속당할 필요도 없고 감옥에 갈 필요도 없다면 현수 씨는 왜...”배현수가 작게 헛기침을 하며 무뚝뚝한 얼굴로 해명했다.“선유가 갑자기 울며 오늘 밤 조유진이 보고 싶다고, 못 보면 절대 잠을 자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데 무슨 수가 있겠어.”그러자 육지율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조유진을 못 봐서 못 잔다는 사람이 정말 선유인 거야 아니면 너인 거야?”배현수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운전이나 해. 쓸데없이 말만 많아서는.”남초윤은 뒷좌석에 기대앉아 배현수를 관찰하기 시작했다.배현수, 생각보다 그렇게 차가운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적어도 조유진한테만큼은 아직 감정이 남아있는 듯했다.그때 육지율이 입을 열었다.“근데... 그러고 보니 조유진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모험했네. 조범이 어떤 짓을 할지 무섭지도 않나? 조범이 충남시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패권을 차지했었는데 이번에 직무가 정지당하고 조사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동안 충남시에서 쌓아온 두터운 인맥을 보면 얼마 안 지나 바로 풀려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도 그저 조사만 받을 뿐이겠지. 내 보기엔 이번 일로 조범 절대 안 무너져.”“조범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유진이가 앞으로 위험한 거 아니야? 유진이 친아빠, 그 인간은 원한이 있으면 무조건 갚는 인간이야. 절대 착한 인종이 아니라고!”그때 조수석에 가만히 앉아있던 배현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내가 절대 그놈에게 다시 일어날 기회를 주지 않을 거야.”지난달 인천 중구 월미도에 간 이유도 바로 그해 사건의 증인인 여정민을 데려오기 위함이었다.여정민은 전에 성빈 그룹에서 청소부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그는 자신의 두 눈으로 사무실에서 육성준이 조범과 말다툼을 하는 과정에 갑자기 심장병이 발작하며 약을 가지려 하자 조범이 약병을 발로 차버린 것을 똑똑히 보았었다.이는 엄연한 고의적 살인이었다.만일 살인죄가 성립된다면 사형이거나 무기징역은 확정된 셈이다.그때 육지율이 무언가 생각난 듯 입을 뗐다. “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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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161화

    조유진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너무 오래 앉아있었던 탓인지 일어서자마자 다리가 저려 말썽이었다.다리가 풀린 조유진을 배현수가 다급히 부축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등을 돌리더니 허리를 굽혔다.“이리와. 내가 업어줄게.”조유진은 계단 위에 선 채 몇 초간 망설였다.배현수도 조유진의 마음을 알아챈 것인지 그녀를 흘끗 바라보며 재촉했다.“빨리 선유 보고 싶지 않아? 선유 지금 울면서 보채고 있어.”이미 마음속으로 이별의 준비를 끝낸 탓인지 배현수를 다시 마주하게 된 조유진은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고 한 번 더 만나게 되었으니 이득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조유진이 배현수의 등에 올라탔다.이는 배현수가 처음으로 그녀를 업어주는 것이 아니었다.조유진은 배현수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왜 충남으로 온 거예요?”“그럼 넌?”“전 속죄하러 왔죠.”“난 이제 결백한데 넌 이제 결백한 사람이 아니야.”억울함을 전부 씻어냈으니 응당 기뻐해도 모자랄 판이지만 이상하게도 배현수는 생각했던 것만큼 마음이 가볍지 않았다.조유진이 입술을 달싹이며 가볍게 웃어 보였다.“전 항상 진흙탕 속에서 뒹굴며 살아왔어요. 결백 따위는 저에게 있어 중요하지 않아요.”결백이라, 곧 생을 마감하게 될 사람에게 있어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조유진은 단 한 번도 배현수의 용서를 구걸하기 위해 이 일을 벌이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살아 있는 동안 배현수에게 빚진 것을 모두 갚아주고 싶었을 뿐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충남에서 대제주시로 돌아가는 길.네 사람은 모두 말이 없었다.돌아가는 길에도 육지율이 운전을 도맡았다.하지만 조수석에 탄 사람은 남초윤이었고 배현수와 조유진이 뒷좌석에 앉았다.6년 전, 배현수가 감옥에 들어가면서부터 그는 줄곧 충남시를 혐오해왔었다.3년 전, 출소하던 날.배현수는 다시는 이 거지 같은 곳에 발을 딛지 않으리라고 결심했었다.하지만 조유진과 재회하고 난 뒤의 두 달 동안 배현수는 무려 두 번이나 조유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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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162화

    알프라졸람.조유진은 다급히 약병을 서랍장 밑부분의 구석에 치워두고는 서랍장 문을 닫아버렸다....약 10분 정도 지나고 배현수가 내용물이 가득 찬 큰 주머니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주머니 속에서 생리대 하나를 집어 들어 조유진에게 건넸다.“일단 먼저 화장실로 가서 써.”“고마워요.”조유진이 바지와 생리대를 갈고 화장실에서 나오자 작은 주방에 꾸겨져 있는 큰 그림자 하나가 눈에 띄었다.배현수가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무언가를 끓이고 있었다.가까이 보니 배현수는 생리대를 사 온 것뿐만 아니라 꿀과 생강도 사 온 것이었다.다 끓인 뒤, 잘 우려진 생강차를 그릇에 담아 조유진에게 건넸다.조유진은 자신의 앞에 놓인 따뜻한 차를 바라보자니 괜히 가슴이 쓰라렸다.“제가 현수 씨 결백을 돌려드리는 건 응당 해야 할 일이었어요. 비록 당시 저도 조범한테 협박 당한 거지만 제가 당신을 지목하는 바람에 현수 씨가 감옥에서 3년 동안 고생하게 한 것도 맞아요. 그러니까 제가 조범을 적발했다고 하여도 갑자기 잘해줄 필요는 없어요.”만약 조금만, 조금만 더 일찍 잘해주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지만 조유진은 이제 배현수의 사랑을 감당할 수 없었고 감당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배현수는 그저 찻물을 다시금 조유진의 눈앞에 밀어주며 담담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한 그릇의 생강차일 뿐이야. 잘해주고 못 해주고 할 것도 없어. 얼른 따뜻할 때 마셔.”조유진도 더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그릇에 담겨있는 따뜻한 차를 작게 들이켰다.따뜻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위를 적시니 속이 한결 편해지는 느낌이었다.현재 조유진은 너무나 피곤하여 배현수와 밀당 할 기운이 없었다.지금, 이 순간 조유진은 그저 바깥에서 휘몰아치는 피바람을 피해 침대에 누워 길게 한잠 푹 자고 싶었다.“저 이제 졸리니까 어서 돌아가세요. 선유가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조유진이 몸을 일으켜 침실로 향하려 하자 그 순간 두 팔이 그녀를 품에 가둬버렸다.배현수가 조유진의 뒤에서 그녀를 꼭 끌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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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성일의 압도적인 기운은 전화 너머에서도 남초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묵직한 압박감은 느껴졌다. 그때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는지, 어떻게 육씨 집안에 시집갔는지 스스로도 의아했다. 만약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차라리 구걸을 하더라도 절대 육씨 집안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남초윤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할아버지, 부탁드려요. 저희가 약속했던 건 두 달 전이었잖아요. 아직 두 달이 채 안 지났고, 제가 지금 아기를 가졌다고 해도 확인이 안 될 수도 있어요.” 그 말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기에 육성일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전화를 겨우 넘겼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이번엔 ‘개자식’ 육지율이었다. “...” 할아버지와 손자는 통화 시간까지 맞춘 것처럼 기가 막히게 연달아 전화를 걸어온다. 그녀는 냉랭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왜요?” 육지율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폭탄이라도 먹었어요?” 육지율이 자신의 책을 내리게 만들고, 지난달과 이번 달 원고료도 다 날려버린 상황에서 그녀가 전화를 받아준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아직 유지 중이었고 필요한 것도 있으니 남초윤은 결국 목소리를 가다듬고 좀 더 부드럽게 말했다. “지율 오빠, 무슨 일이에요?” “... 뭐라고 불렀어요?” “지~율~오~빠~” 그녀는 유설영의 말투를 흉내 내며, 아니, 오히려 더 능숙하게 말했다. 육지율은 순간 닭살이 돋았다. “제발 평소처럼 말해요. 저녁에 내 친구가 귀국하는데 같이 식사해요. 6시에 잡지사로 데리러 갈게요.” 남초윤은 단번에 거절했다. “난 안 갈래요.” “저녁에 뭐 다른 약속 있어요?” 남초윤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결혼한 지 3년 됐지만 당신은 나한테 친구 한 명도 소개해 준 적 없잖아요.” 그리고 이제 곧 이혼할 텐데 친구를 만날 필요는 더 없었다.이혼하고 나서 친구들이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6화

    조유진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학교에서 누가 너 괴롭히진 않았어?” 배선유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응, 나 괴롭히는 사람 없어. 할아버지가 우리 학교에 엄청난 돈을 기부하셔서 선생님들도 항상 나한테 잘해주시고 많이 관심 해주셨어. 그래서 나도 함부로 장난칠 수가 없어. 혹시 선생님이 할아버지한테 이르실까 봐.” 배현수는 이 말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배선유는 작은 악동처럼 말이 많았고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아이였다. 배현수의 말에도 자주 대꾸를 하니, 만약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면 벌써부터 떠벌렸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남을 괴롭히는 쪽에 더 가까웠다. 성남에서 엄준은 배선유를 엄청나게 아끼며 키웠고, 그래서인지 아이는 주눅이 들지 않고 활발하게 자랐다.조유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다행이네. 우리 선유가 공부를 게을리할 걱정은 없겠어.” 배현수는 딸을 겁주듯 말했다. “너 공부 안 하고 일찍 연애라도 시작하면, 널 대제주에 데려와서 24시간 동안 지켜볼 거야.” 배선유는 입술을 내밀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이건 너무 심해요! 나 혹시 쓰레기통에서 주워 온 거 아니에요?” 배현수는 코웃음을 치며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말했다. “공부 안 하면 좋은 날은 없을 거야.” 잠시 후, 학교 종이 울릴 시간이 가까워졌다. 배선유는 전화를 끊으려다가 친구가 그린 결혼사진 두 장을 영상 속으로 건네받았다. “선유야! 너랑 지우의 결혼사진 내가 그려놨어! 한 번 봐봐!” 배선유가 물었다. “한 장에 얼마야?” “너니까 공짜로 해줄게! 대신 다음번엔 나랑 결혼해 줄 수 있어?” “생각해볼게!” “...” 이 속도로라면 그들 부부는 도대체 몇 명의 사위를 맞이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한편, 스타라이트 매거진에서.남초윤이 사이트 편집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그녀의 책은 예상대로 플랫폼에서 삭제되었고 이달 원고료는 한 푼도 들어오지 않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5화

    [합법적 부부] 함께 올라온 사진엔 결혼반지를 낀 두 손이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이 게시글이 올라가자마자 마치 깊은 바다에 떨어진 폭탄처럼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어 반응했다. 육지율: [8년의 여정 끝에 드디어 자랑할 수 있네!] 송하진: [어! 전 두 사람 목숨 구해준 은인이에요. 제가 아니었으면 두 사람이 어떻게 혼인신고까지 했겠어요? 당장 절 주빈으로 식사 대접해요!] 남초윤: [아아아아! 유진이를 결혼이라는 무덤 속으로 끌어들이다니! 대표님 너무하세요!] 엄창민: [내 여동생한테 잘해요. 혹시라도 괴롭히면 내 주먹이 용서 못 해요!] 엄명월: [형부! 이렇게 좋은 일에 저희한테 뭐라도 사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강이찬: [축하해, 결국 원하는 대로 됐네.] 심미경: [백년해로하세요.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서정호: [대표님, 일 다 끝냈으면 빨리 돌아오세요. 의사 선생님이 여기서 엄청 화내고 있어요. 저 더는 못 버틸 것 같아요!] 학교 가기 싫어: [와! 아빠랑 엄마가 드디어 결혼했네요! 헤헷, 아빠, 나도 오늘 결혼했어요!] 배현수는 배선유의 댓글을 보고 순간 검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조유진이 운전하며 그의 미세한 변화를 눈치채고 물었다. “왜 그래요?” “선유가 결혼했다는데.” “뭐라고요?” 조유진은 깜짝 놀라 차를 도로 옆에 세우고 급히 배선유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저쪽에서 배선유는 학교에 있었는데 마침 쉬는 시간이었다. 외국어 학교라 분위기가 자유로워 아이들은 평소에도 부모님과 연락을 하기 위해 휴대폰을 가지고 다녔다. 배선유는 전화를 받자마자 얼굴을 카메라 앞으로 들이밀었다. “엄마, 아빠! 나 사진 보고 싶어!” 조유진은 그녀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나서 물었다. “선유야, 아까 결혼했다고 했잖아. 누구랑 결혼한 거야?” “우리 반 한지우랑! 엄마, 나 오늘 엄청 많은 축의금을 받았어! 내가 다 적어 놨어!”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4화

    조유진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갈게요.” 그가 환자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이번 한 번은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 다음 날 이른 아침. 서정호가 산성 별장에서 두 벌의 정장과 결혼 서류를 준비해왔다. 조유진은 오랜만에 풀 메이크업을 하고 머리도 고데기로 말았다. 그녀는 하얀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사진에 잘 나올 수 있도록 최대한 신경 썼다. 그녀는 한동안 이렇게까지 꾸미지 않았는데 하이힐을 신고 배현수 앞에 서니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조금 어색해졌다. 그래서 물었다. “나 어때요?” “아름다워. 넌 언제나 아름다워.” 배현수는 전혀 망설임 없이 그녀를 칭찬했다. 조유진은 웃음을 참으며 옆에 있던 넥타이를 집어 들고 배현수에게 매어주었다. 배현수는 그녀의 손길에 고개를 숙이며 협조했다. 조유진은 평소와 다르게 더 복잡하고 정중한 ‘엘드리지 매듭’으로 넥타이를 맸는데 배현수는 평소에 간단한 윈저 매듭만 했었다. “이 매듭은 좀 생소하네.” 조유진은 넥타이를 다 매고 나서 그의 셔츠와 정장 재킷의 깃을 정리해 주었다. “이게 엘드리지 매듭이라고 해요. 중요한 자리에서 어울리는 방식이죠. 어때요, 괜찮아요?” “멋져. 하지만 여보, 우리 서둘러야 해. 조금 있으면 의사가 올 거야.” 웃으며 농담하듯 이야기하던 배현수는 조유진의 외투를 챙겨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고, 그녀를 한 손으로 감싸 병실을 몰래 빠져나갔다. 두 사람은 마치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와 차에 올랐다. ... 그들이 빠져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사가 병실에 회진을 왔다.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그곳에는 ‘무관한 사람’만 남아 있었다. 의사는 엄숙한 표정으로 서정호를 보며 물었다. “환자는 어디 갔죠? 튜브까지 다 뽑다니, 누가 뽑았습니까?” 서정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환자 본인이 뽑았습니다.” “도대체 어디 간 겁니까? 팔을 정말 망가지게 할 작정인가요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3화

    배현수의 가슴이 떨렸다. 그는 조유진과 이마를 맞대며 낮게 속삭였다. “그때 난 네 옆에 있진 않았지만 네 뒤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 그런데 왜 울었어?” “현수 씨 생각이 났어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펐거든요. 내가 이렇게 좋은 남자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아쉽고 후회스러웠죠. 그래서 울었어요.” 지금 이렇게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은 느낌이었다. 조유진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이번 눈물은 슬픔이나 후회 때문이 아니었다. 감동과 감사함 때문이었다. 운명이 그들을 온갖 고난 속에서도 끝끝내 묶어 놓았고, 그들 사이에선 이제 더 이상 헤어질 수 없는 깊은 연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배현수는 긴 손가락을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천천히 끼워 넣으며 손을 꼭 맞잡았다. 순간 그들의 손바닥에서 따뜻함이 퍼져나갔다. 그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진아, 넌 한 번도 날 잃은 적 없어. 우리가 몇 번을 떨어져도, 얼마나 오랫동안 떨어져 있더라도 난 결국 널 찾아내서 꼭 안고 말해줄 거야. 사랑한다고. 오직 너만 사랑한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조유진은 배현수의 유일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조유진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현수 씨, 우리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까요?” “그럼.” 그의 대답은 8년 전과 똑같았다. 짧지만 확고했으며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조유진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손목에 걸린 달콤한 연녹색 비취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상처가 나으면 우리 같이 아주머니를 위한 좋은 묘지를 고르러 가요. 그분을 위한 의관묘라도 만들어 드리는 게 어때요?” “아직도 ‘아주머니’라고 불러?” 조유진은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며 말투를 바꿨다. 배현수는 그녀의 팔찌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풍수 좋은 곳을 따로 고를 필요는 없어. 어머니께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2화

    육지율은 그 필명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기억해 냈다. “이 자식! 기억났어! 이 녀석이 책에서 날 모욕하지 않았나? 내 명성을 망가뜨렸잖아?” 남초윤은 급하게 말했다. “잘못 본 거 아니에요? 비엘 작가가 주인공을 모욕할 리가 없어요! 그러면 밥숟가락 들고 욕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어요?” “나를 ‘수’로 묘사한 게 모욕이 아니고 뭐예요? 왜 항상 배현수가 공이냐고?” 남초윤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그 부분을 신경 쓰고 있었던 거였다.남초윤은 그가 진짜 작가를 고소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래서 변명하듯 말했다. “다음번엔 지율 씨가 공이고, 배 대표님이 수가 될 수도 있잖아요. 원래 BL 소설에서는 공수 구분이 모호해요. 겉보기에 수 같아도 사실은 공일 수도 있다고요!” 조유진은 살짝 의문을 제기했다. “난 현수 씨가 수 같지는 않았는데. 만약 현수 씨가 진짜 수라면 캐릭터 붕괴지. 차라리 육 변호사님이 수인 게 더 어울려. 자유롭고, 매력적이고, 다정하잖아.”“?”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육지율은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며 조유진에게 따졌다. “아니, 조유진. 내가 약해 보이는 수 같은 느낌을 준다고?” “...” 배현수는 차갑게 말했다. “유진이가 쓴 것도 아닌데 왜 화내? 그럴 시간 있으면 작가나 고소해.” 남초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그냥 재미로 쓴 거지 무슨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작가를 고소하면 너무 쪼잔해 보일 거예요!” 하지만 육지율은 이성을 잃고 이를 악물었다. “쪼잔해 보이든 말든, 그 책을 하차할 거예요!” 자신이 소설 속에서 수 역할로 묘사되었고, 그것도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있다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조유진은 객관적으로 말했다. “사실 책 내용은 나쁘지 않아요. 꽤 재미있고 독자도 많아요.” “독자가 몇 명인데?”“몇만 명 정도?” “뭐?”‘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날 수로 상상했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1화

    병실에서 조유진은 그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앉아 있다가 잠들었다. 잠에 들어서도 손가락이 배현수의 손에 살짝 얽혀 있었는데 다정하고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이 사진은 완전히 남자 친구 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입원 생활이 지루하다고 하다니.육지율이 댓글을 남겼다. “뭐야, 입원했어? 혹시 가정 폭력이라도 당한 거야?” 댓글을 남기고 나서 육지율은 차에 시동을 걸며 남초윤에게 말했다. “과일 바구니 좀 사서 병문안이나 가요. 친구가 입원했어요.” “친구? 설마 배 대표님이세요? 어디 아파요?” 육지율은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진짜 아플 수도 있고 그냥 꾀병일 수도 있고.” 혹시 모른다. 꾀병일지도....병원에서는 조금 전 장은숙이 산성 별장에서 저녁 식사를 가져왔다. 수술 후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밤은 죽 같은 유동식만 먹어야 했다. 배현수는 오른손을 쓸 수 없었기에 조유진이 죽 그릇을 들고 숟가락으로 그에게 먹여주고 있었다. 첫 숟가락을 그의 입 앞에 가져가자 배현수는 뜨겁다고 투덜댔다. 조유진이 후후 불어 온도를 맞춘 후 말했다. “이제 적당히 식었어요.” 배현수는 그제야 죽을 한 입 삼켰다. 그 순간 병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장난스러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며칠 못 본 사이에 아기로 됐네? 밥도 혼자 못 먹고, 조유진이 널 너무 오냐오냐한 거 아냐?” 조유진이 놀라서 뒤돌아보니, 육지율과 남초윤이 병실에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설명했다.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입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며칠 동안 오른손은 쓰지 말라고 하셨어요. 상처가 더 심해질 수 있거든요.” 그러자 육지율은 다짜고짜 그의 오른쪽 어깨를 툭 쳤다. “진짜야?” 배현수는 고통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미친놈아!” 조유진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변호사님, 진짜로 다쳤다니까요! 어깨에 구멍이 났다고요, 함부로 건드리지 마세요!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0화

    그녀를 겨우 한 번 데리러 온 김에 출퇴근길의 불편함을 느끼고는 아예 차를 사서 해결하려고 하다니, 정말 육지율 다운 방식이었다.이 4S 매장에서 파는 차들은 모두 포르쉐였고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가장 저렴한 모델도 수천억 원대였다. 남초윤은 이미 남씨 집안이 육지율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었기에, 그가 차를 선물해 주겠다고 해도 받을 수 없었다.남초윤은 차분히 말했다. “앞으로는 출퇴근 길에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 굳이 차를 선물할 필요는 없어요.”육지율은 순간 멈칫했다가 살짝 비웃으며 말했다. “차 한 대 선물한다고 귀찮다는 딱지가 붙어요? 이런 확산적 사고방식은 참 대단하네.”“....”정말 그런 게 아니란 말인가?평소에도 성격이 불 같았던 육지율은 차를 주겠다고 하면서도 그녀를 달래는 상황이 우스웠는지 어이없어 웃었다. 둘 중 누가 더 성격이 나쁜지 모를 일이었다.영업 직원은 남초윤을 육지율이 외부 애인으로 오해했고, 이 큰 거래가 깨질까 봐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가씨, 변호사님께서 차를 사주시는 건 출퇴근 시간을 줄여서 그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게 해주려는 마음이 아닐까요?”남초윤은 더 이상 그의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미 갚을 수 없는 빚이 너무 많았고 계속해서 더 쓴다면 두 아이를 낳아야 겨우 그 빚을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나 육지율은 그 여느 때처럼 행동했다. 그는 VIP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빨리 골라요. 차 안 사면 집에 못 돌아가요.”남초윤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여자 영업 직원이 다가와 다양한 모델을 소개할 때, 그저 듣기만 했다. 그 직원은 미소를 띠며 말도 아주 달콤하게 했다. “변호사님은 저희 매장의 단골이세요. 그런데 여자를 데리고 온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변호사님이 정말로 많이 아끼시는 것 같아요. 비싼 차를 고르시면 아마 더 기뻐하실 거예요.”역시, 판매왕이었다.감정적 가치를 제공하는 법을 너무나 잘 아는 직원이었다. 하지만 남초윤은 그저 외부의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59화

    남초윤은 결혼 상태를 한 번도 업데이트한 적이 없었다. 동료들 눈에는 여전히 미혼으로 보였다.처음 그녀와 육지율의 스캔들이 터졌을 때 온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사실 모두 육지율의 매력적인 외모 때문이었다. 아무도 남초윤처럼 작고 평범한 존재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육지율이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들의 침대 사진이 언론이나 남재원에게 유출되지 않은 것도 기적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육지율이라는 유명한 바람둥이가 ‘함정'에 빠져 순진한 여자와 관계를 맺은 후, 마지못해 결혼했다는 소문만 믿고 있었다.육지율이 연예계 인물이 아닌 만큼 동료들 중에서도 아무도 그 사건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육지율이 ‘좋은 집안의 아들’ 이라는 사실만 기억하고 그의 결혼 상대가 누군지에는 무관심했다. 그녀는 어디에도 크게 드러나지 않았고 언론에서도 그의 곁에 서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남초윤은 그렇게 세상 사람들의 눈에 숨겨져 있었다.동료들은 그저 그녀가 조금 집안 배경이 있는 부유한 여자인 줄로만 알았고 육지율의 아내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육지율의 아내라면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그들과 같이 일하며 고생할 일은 없을 테니까. 설령 과거에 파파라치 일을 했더라도 그렇게 높은 곳에 시집갔다면 육씨 집안이 그녀를 계속 그 일을 하도록 놔두지 않았을 거라고 여겼다.비록 세상은 모두 직업의 평등을 외치고 있지만 상류 사회에는 여전히 그들만의 규칙이 있었다. 체면과 명예가 그들의 신분과 존엄을 상징했다. 파파라치라는 직업은 육씨 집안에게 있어 절대 자랑스러울 수 없는 일이었으니, 육지율과 강란희가 그녀에게 좀 더 체면 있고 유망한 직업들을 제안했지만 남초윤은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렇게 시간을 보낸 끝에 동료들은 하나둘씩 퇴근하고 남초윤만 남았다. 한 시간이 흐른 뒤 남초윤은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저녁 7시가 되었다. 그녀는 통화 기록을 훑어보고 다시 한 번 메시지를 확인했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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