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조금만 더 빨리 이를 알았다면, 폐암도 진단받지 않았다면, 우울증도 재발하지 않았다면... 조유진은 반드시 진작에 안정희와 선유를 데리고 대제주시를 떠나, 충남시를 떠나, 모든 것들을 버려두고 떠나버렸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조유진이 갈라진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엄마, 전 못 가요. 저 지금은 반드시 시내에 있어야 해요. 법원과 관련 부서에서 언제든지 나를 심문하려고 할 거예요.”“유진아, 너 왜... 그렇게 바보 같니? 배현수가 뭐라고 걔를 위해 증언을 번복한다고 너까지 끌어들여. 이럴 줄 알았다면 배현수를 멀리하라고 했을 텐데. 배현수가 육성준의 아들일 줄 누가 알았겠어... 유진아, 미안해. 다 엄마 탓이야. 다 엄마 때문에 일어난 일이야.”“왜 그래요, 엄마. 조범은 그해 엄마로 날 협박하는 게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써서라도 저더러 배현수를 지목하게 했을거예요. 그러니 모두 어떻게든 일어나게 될 일들이었어요.”전화 건너편의 안정희가 입을 틀어막고 작은 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했다.“넌 왜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해주는 거니? 넌 언제쯤... 언제쯤 너 자신을 먼저 챙길 거야? 난 차라리 네가 이기적이었으면 좋겠어. 너 저번에 나 보러 왔을 때 맡겨둔 은행카드도 배현수를 위해 사건을 뒤엎고 돌아오지 않을 계획이었던 거지? 난 왜 이제야 발견한 거지? 글쎄 요즘 따라 이상하게 눈꺼풀이 자꾸 뛰면서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다 하더니..”“엄마, 속상해하지 마세요. 저 아직 멀쩡하잖아요. 게다가 배현수도 저에게 복수한다고 말한 적 없어요. 그 짓은 모두 조범이 한 거고 배현수는 그 정도로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에요.”“유진아, 엄마 말 들어. 배현수에게서 멀리 떨어져. 배현수는 사랑이나 원망 감정이 극단적이라 쉽게 잘못된 길에 들어설 수 있어. 언제 갑자기...”“네. 알겠어요, 엄마. 앞으로는 배현수와 엮이지 않을게요.”조유진도 더는 배현수와 엮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어떤 일들은 결과가 있을 수 없는 운명이
“아니, 오빠! 조씨 집안 그 누구와도 알고 지내면 안 돼. 그 집안은 더럽기 짝이 없어.”강이진의 말투에는 혐오가 가득했다.그녀는 조씨 가문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그 집안이 미웠다.조유진이 나타나면 현수 오빠는 바로 마음이 약해진다. 심지어 친오빠인 강이찬조차 그녀를 감싸고 있다. 도대체 조유진 이 여자는 뭐가 그리 잘 났단 말인가? 강이찬은 여동생의 행동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바로 휴대전화를 가로채며 말했다.“강이진, 내 일에 상관하지마! 그리고 경고하는데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현수 오빠가 말하길 너의 이 고약한 성격을 고치지 않으면 출근하지 말래.”“뭐라고? 그럴 리가! 현수 오빠가 어떻게 나를 쫓아낼 수 있어? 오빠, 설마 오빠가 현수 오빠에게 시킨 거 아니야? 나 쫓아내라고?”“너의 현수 오빠가 나에게 직접 한 말이야. 너의 이 고약한 성질머리를 고치지 못하면 SY도 더 이상 너를 받아드릴 수 없다고 했어.”강이진은 입술이 하얗게 될 때까지 꼭 깨물었다.그런 그녀는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난 듯 손뼉을 치더니 입을 열었다.“알겠어. 지난번 지리산에서 내가 조유진을 괴롭힌 것 때문에 현수 오빠가 나를 혼내주려 거야. 조유진 이 여자가 화근이야, 화근!”“네 마음대로 생각해. 하지만 나도 너의 현수 오빠 의견과 같아. 내 생각에도 너의 이 고약한 성격으로 SY그룹에 머무르기 어려워. 적어도 지금 현재는 그래.”“오빠!”강이진이 큰 소리로 강이찬을 불렀고 그녀가 화를 내며 더 쏘아붙이기 전에 강이찬은 휴대전화를 손에 쥔 채 차 키를 들고 집을 나섰다.강이진은 이를 악물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그래! 하나둘 다 조유진 편이다 이거지?’ 강이진은 배현수가 자신을 여자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설사 배현수가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배현수의 엄마에게만 잘 보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배현수의 엄마가 자신을 좋아하고 자신의 편에 서면 효자인 배현수는 무조건 엄마 말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예
“나쁜 여자? 어머님, 누구 말씀하시는 거예요?”예지은은 멀지 않은 곳의 안정희를 보고 매우 흥분했다. “바로 저 여자야! 저 여자와 저 여자의 남편이 성준 그룹을 망하게 했어. 저 여자는 조범의 아내야. 나는 저 여자에게 확실히 묻고 싶은 게 있어!”조범의 아내?그렇다면 설마... 저 사람이 조유진 엄마?강이진의 눈빛이 반짝이더니 예지은을 보며 바로 입을 열었다.“어머님, 저와 같이 가서 물어봐요.”안정희가 휠체어에 앉아 혼자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예지은이 그녀의 눈에 띄었다.안정희는 눈빛이 살짝 흔들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예지은 씨... 역시 당신이었군요. 안 그래도 당신을 찾으러 가야 하나 망설이고 있었는데... 당신은...” “안정희! 빨리 증언하러 가! 그들에게 조범이 성준 그룹을 망하게 했다고 사실대로 말하라고!”예지은은 흥분하며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안정희는 휠체어의 브레이크를 하지 않아 예지은의 손에 잡혀 휠체어에 앉은 채 앞뒤로 휘청였다. “지은 씨, 흥분하지 말고 내 말 좀 들어봐요...”“네가 성준 사업을 망하게 했어! 빨리 자수하러 가라고!”안정희는 예지은의 팔을 뿌리치고 그녀를 진정시킨 후 설명하려 했다. “당신과 조유진, 정말 모녀답네요... 모두 다 화근이에요! 현수 오빠의 아버지까지 죽이고!”강이진은 예지은을 부축하면서 안정희의 휠체어를 발로 걷어찼다.순간 휠체어는 가파른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지며 순식간에 부서졌다.휠체어에 앉아 있던 안정희도 계단에서 몇 바퀴 구르더니 부서진 휠체어 옆에 쓰러졌다.순간 예지은과 강이진은 어리둥절해 서로를 바라봤다.계단 아래에는 부서진 휠체어가 옆으로 쓰러져 있었고 안정희의 머리 아래로 시뻘건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마도... 죽은 것 같다.강이진은 입술을 덜덜 떨었다. “어... 어머님. 저 여자 설마 죽은 건 아니겠죠?”예지은은 얼굴이 창백해졌고 문뜩 겁이 나기 시작했다.“내가... 민 게 아니야. 나는 그저... 증언해 달라고만 말하려고 했어.
강이진은 도망치듯 차 안으로 들어가 급히 시동을 걸었고 요양원 근처를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액셀을 힘껏 밟았다. 끼익!한참을 달리던 차가 귀에 거슬리는 브레이크 소리를 내며 아무도 없는 외진 곳에 멈춰 섰다.급브레이크 때문에 강이진의 얼굴이 핸들 속으로 파묻혔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두 손으로 핸들을 꽉 잡고 있는 그녀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예지은이 그 여자를 밀어버렸어. 내가 아니야! 나는 아무것도 몰라! 예지은이 말을 한들 정신병 환자의 말을 누가 믿겠어? ’게다가 정신병 환자의 자백은 법정에서 증언으로 채택될 수 없다.‘내가 도대체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거지? 전혀 두려워할 게 없는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강이진은 고개를 들어 백미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휴지 한 장을 꺼내더니 얼굴의 식은땀을 천천히 닦아냈다.겁에 질렸던 눈빛이 순간 음흉하고 계산적으로 변했다.강이진이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한,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조유진, 조유진! 이번에야말로 너와 배현수는 정말 끝이야!’하늘이 이렇게 그녀를 도울 줄은 아무도 몰랐다.예지은의 손을 빌려 조유진의 어머니를 없앨 기회를 주다니!이제 예지은의 약점도 강이진의 손에 있기에 만약 예지은이 자신과 배현수의 사이를 반대하기라도 하면 강이진은 바로...강이진은 입술을 꼭 깨물더니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강이진은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 것이다.그녀는 안승호에게 전화를 걸었고, 통화음이 몇 번 울리더니 이내 전화가 연결되었다.“여보세요? 안승호, 술 마시러 나와.”“대낮에 무슨 술이야?”강이진은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 “너 원래 대낮에 방탕하게 노는 거 좋아하잖아. 성라 술집에서 만나. 기다릴게.”전화를 끊은 강이진은 팩트 케이스를 열어 화장을 고친 후 립스틱을 발랐다.얼굴은 평소와 같이 침착하고, 조금 전의 당황스러움은 전혀 보이지 았않다.블랙박스의 영상도 깨끗이 지웠다.그녀는 조유진
얼마 지나지 않아 법의관이 현장에 도착했다.“당신이 고인의 유가족입니까?”조유진은 점점 차갑게 굳어가는 그녀의 몸을 꼭 껴안은 채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고인?“우리 엄마 안 죽었어요. 그냥 잠이 든 거예요. 의사 선생님. 살려주세요... 저희 엄마 예전에도 의식을 잃은 적이 있고요. 몇 년 동안 혼수상태이시긴 했지만 다시 깨어났어요. 저희 엄마 곧 일어나실 거예요.”이런 상황을 법의관은 예전부터 많이 봐왔기에 한 번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죄송해요. 저는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아니라 시신을 부검하는 법의관이에요. 죽은 사람 이름이 안정희, 맞습니까?”조유진은 안정희를 꼭 껴안았고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녀는 그저 안정희가 살아있고 그래서 의사를 보이러 가야 한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의사를 보이지 않는다면 집에라도 데려갈 것이다.그녀는 안정희를 안아 세우고 싶었지만 그녀 혼자서는 도저히 힘에 부쳤다.“이보세요. 당신의 어머님이 자연사하신 게 아니기에 저희는 사인을 확인해야 합니다. 고인을 놓아주세요.”조유진은 핏기없는 얼굴로 안정희를 끌어안은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법의관은 할 수 없이 옆에 모자를 쓴 한 중년 남자에게 손짓했다.그러자 모자를 쓴 중년 남자는 장갑을 끼고 앞으로 나와 조유진과 안정희를 억지로 끌어당겨 떼어놨다.조유진은 옆으로 끌려가 바닥에 엎드려 있었고 두 손에는 시뻘건 피가 흥건히 묻어 있었다.분명 아침까지 안정희와 통화를 했는데 왜 갑자기 여기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오랜 기간 열심히 정성을 다하여 돌봤고 마침내 다시 깨어났는데 어떻게 또 다시 긴 잠에 빠질 수 있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만약 조유진이 벌을 받아야 하는 거라면 그녀는 이미 최선을 다해 죗값을 치르고 있었고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칠 수 있다.하지만 왜... 왜 하늘은 그녀의 제일 소중한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일까...조범은 그녀에게 부성애를 느끼게 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죄송합니다. 저희 어머니가 정신적으로 좀 문제가 있으셔서 약간 상황파악을 잘 못하십니다.”그러나 조 팀장은 이대로 넘어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방금 요양원 직원에게 물어보니 어머니가 전에 고인과 불화가 있었고 심지어 때리기까지 했다는 게 사실입니까?”배현수는 부인하지 않았다.“사실 저희 어머니가 가끔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사람을 잘 못 알아보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요양원의 여러 환자와 크고 작은 마찰을 빚은 적이 많아요.”배현수는 흠 잡을 데 없이 대답했다.조 팀장은 그 말을 듣고 한 번 피식 웃더니 날카로운 눈빛으로 배현수의 뒤에 있는 예지은을 바라봤다. 조 팀장의 눈빛에 배현수의 뒤에 있던 예지은이 온몸을 덜덜 떨며 말했다.“나는 저 여자를 밀지 않았어... 내가 아니야... 저 여자는... 저 여자는 혼자 굴러떨어진 거야... 나는 정말 저 여자를 밀지 않았어...”“저 사람이 구르는 것을 직접 봤습니까?”조 팀장이 예지은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갑작스럽게 물었다.이 행동에 예지은은 화들짝 놀라 아무 말도 못 한 채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그때 조 팀장이 옆에 있는 팀원들을 향해 말했다.“이 요양원에 죽은 사람과 불화가 있는 사람이 있는지, 아니면 원한을 가진 사람이 있는지 한 번 알아보세요.”배현수의 얼굴은 여전히 덤덤했고 예지은은 배현수의 뒤에서 그의 옷을 잡아당겼다. 그는 예지은의 불안한 손을 꼭 잡으며 무엇인가 알고 있는 듯했다.조 팀장의 뒤에 모자를 쓰고 있던 두 젊은이는 볼펜과 노트를 들고 주위 사람에게 물어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때 조유진이 갑자기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두 눈에는 눈물 한 방울 고이지 않았다.그녀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조사할 필요 없어요. 우리 엄마는 이 요양원에서 3년 동안 모든 사람과 잘 지내셨어요. 원수를 질만 한 사람도 누구와 싸운 적도 없어요.”“조유진 씨, 어머님의 죽음은...”조유진의 말에 조 팀장이 무언가 말을 하려 했지만 끝까지 내뱉지는 못
조유진은 명함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고맙습니다. 조 팀장님.”옆에 있던 원장님도 한마디 보탰다.“이효준 씨, 운구차를 한 대를 더 불러 유진 씨를 집까지 데려다주세요.”조유진과 몇 명의 간병인은 곧 바로 안정희의 시체를 안으로 옮겼다.배현수의 옆을 지나면서도 조유진은 그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고 바로 스쳐 지나가려 했다.그때, 배현수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조유진은 피식 웃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배 대표님. 제 몸에 피가 묻어 있어서 대표님 손을 더럽힐 거예요.”배현수와 조유진 사이에는 마치 그들을 두 개의 세계로 갈라놓은 듯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었다.그 장벽은 투명하여 만질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으나 너무 견고하여 쉽게 무너뜨릴 수 없다. 조유진은 배현수의 손을 뿌리치며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갔고 한 번도 고개를 뒤로 돌리지 않았다.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배현수는 저도 모르게 마음이 시리고 아팠으 찰나의 순간에 마음이 쿵 내려앉으며 온 세상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안정희의 시체가 방으로 옮겨졌다.방에 들어온 조유진은 따뜻한 물에 깨끗한 수건을 씻은 후 안정희의 몸을 구석구석 천천히 닦았다.그녀는 또 옷장에서 부용화 꽃이 수 놓인 한복을 발견했다.이것은 조유진이 안정희의 생일에 준 선물이다. 안정희는 이 한복을 그 무엇보다도 제일 좋아했다. 안정희는 살아있었을 때도 이 옷을 입기 아까워했다. 그녀는 항상 우리 유진이가 결혼할 때 입을 거라고 말하곤 했었다.하지만 오늘은 그녀가 마지막으로 이 한복을 입는 날이다.그리고 조유진이 결혼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조유진은 안정희에게 한복을 갈아입혔고 머리를 단정히 빗겨주었다.모든 정리가 끝났지만 조유진은 서둘러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그녀는 침대 옆에 앉아 담담한 얼굴로 안정희를 바라보며 말했다.“엄마, 집에는 안 모시고 갈게요. 제가 사는 곳도 세 맡고 사는 곳이라 거기도 우리 집이 아니에요. 우리 집은 진작부터 없었어요. 엄마 혼자 저 하늘에서 외롭지 않도록
“유진아... 많이 슬픈 거 알아. 그러니까 울고 싶으면 얼마든지 울어.”남초윤은 지나치게 평온한 조유진의 얼굴을 보니 덜컥 겁이 났다.그녀의 눈에서 생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외로움과 좌절로 시들어 있다.사람은 죽기 전에 몸에서 쇠퇴한 기운을 내뿜는다고 했다. 지금 조유진의 온몸을 감싸고 있는 것 또한 무서운 죽음인 것 같았다.남초윤은 그녀를 도와 문을 열었고 조유진은 유골함을 안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그녀는 조심스럽게 유골함을 탁자 위에 올려놓더니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남초윤에게 물었다. “초윤아, 마땅한 묫자리 좀 알아봐 줄래? 내일 아침 일찍 유골함을 묻으려 해.”이 말을 하는 조유진은 매우 냉정했고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한 마디 한 마디 또박또박 내뱉으며 내일 일에 대해 조리 있게 설명했다. 남초윤은 그런 조유진의 모습에 잠시 멍해졌지만 이내 대답했다.“응. 알았어. 바로 확인해 볼게.”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남초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친구에게 부탁해서 남산 묫자리 좀 알아봐 달라고 했어. 그곳이 풍수지리도 좋고 여기와의 거리도 그리 멀지 않아. 어때?”“좋아. 나도 남산 묫자리가 좋다고 들었어.”남초윤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고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조유진이 무서울 정도로 냉정하다고 생각했다. 남초윤은 조유진을 와락 껴안으며 외쳤다.“유진아! 그냥 울어.”조유진은 가족이 별로 없다. 정확히 말해 이 세상에서 안정희와 어린 선유 두 사람밖에 없다.조범은 개돼지만도 못한 인간이라 그저 명목상의 아버지에 불과했다.이제 안정희가 조유진 곁을 떠났으니 목숨 반을 잃은은 것과 다름없다.그녀가 지금 이렇게 침착한 이유는 진짜 큰일이 날까 봐 걱정되어서다.“유진아. 네가 매우 힘들다는 거 아니까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돼. 어머니는 떠나셨지만 너에게는 선유가 있잖아. 그리고 나도 있고.”조유진은 생기가 없는 눈으로 입을 열었다.“아, 맞아. 선유가 있었지... 선유는 이미 현수 씨에게 보냈으니 현수 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