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진은 도망치듯 차 안으로 들어가 급히 시동을 걸었고 요양원 근처를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액셀을 힘껏 밟았다. 끼익!한참을 달리던 차가 귀에 거슬리는 브레이크 소리를 내며 아무도 없는 외진 곳에 멈춰 섰다.급브레이크 때문에 강이진의 얼굴이 핸들 속으로 파묻혔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두 손으로 핸들을 꽉 잡고 있는 그녀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예지은이 그 여자를 밀어버렸어. 내가 아니야! 나는 아무것도 몰라! 예지은이 말을 한들 정신병 환자의 말을 누가 믿겠어? ’게다가 정신병 환자의 자백은 법정에서 증언으로 채택될 수 없다.‘내가 도대체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거지? 전혀 두려워할 게 없는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강이진은 고개를 들어 백미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휴지 한 장을 꺼내더니 얼굴의 식은땀을 천천히 닦아냈다.겁에 질렸던 눈빛이 순간 음흉하고 계산적으로 변했다.강이진이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한,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조유진, 조유진! 이번에야말로 너와 배현수는 정말 끝이야!’하늘이 이렇게 그녀를 도울 줄은 아무도 몰랐다.예지은의 손을 빌려 조유진의 어머니를 없앨 기회를 주다니!이제 예지은의 약점도 강이진의 손에 있기에 만약 예지은이 자신과 배현수의 사이를 반대하기라도 하면 강이진은 바로...강이진은 입술을 꼭 깨물더니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강이진은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 것이다.그녀는 안승호에게 전화를 걸었고, 통화음이 몇 번 울리더니 이내 전화가 연결되었다.“여보세요? 안승호, 술 마시러 나와.”“대낮에 무슨 술이야?”강이진은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 “너 원래 대낮에 방탕하게 노는 거 좋아하잖아. 성라 술집에서 만나. 기다릴게.”전화를 끊은 강이진은 팩트 케이스를 열어 화장을 고친 후 립스틱을 발랐다.얼굴은 평소와 같이 침착하고, 조금 전의 당황스러움은 전혀 보이지 았않다.블랙박스의 영상도 깨끗이 지웠다.그녀는 조유진
얼마 지나지 않아 법의관이 현장에 도착했다.“당신이 고인의 유가족입니까?”조유진은 점점 차갑게 굳어가는 그녀의 몸을 꼭 껴안은 채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고인?“우리 엄마 안 죽었어요. 그냥 잠이 든 거예요. 의사 선생님. 살려주세요... 저희 엄마 예전에도 의식을 잃은 적이 있고요. 몇 년 동안 혼수상태이시긴 했지만 다시 깨어났어요. 저희 엄마 곧 일어나실 거예요.”이런 상황을 법의관은 예전부터 많이 봐왔기에 한 번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죄송해요. 저는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아니라 시신을 부검하는 법의관이에요. 죽은 사람 이름이 안정희, 맞습니까?”조유진은 안정희를 꼭 껴안았고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녀는 그저 안정희가 살아있고 그래서 의사를 보이러 가야 한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의사를 보이지 않는다면 집에라도 데려갈 것이다.그녀는 안정희를 안아 세우고 싶었지만 그녀 혼자서는 도저히 힘에 부쳤다.“이보세요. 당신의 어머님이 자연사하신 게 아니기에 저희는 사인을 확인해야 합니다. 고인을 놓아주세요.”조유진은 핏기없는 얼굴로 안정희를 끌어안은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법의관은 할 수 없이 옆에 모자를 쓴 한 중년 남자에게 손짓했다.그러자 모자를 쓴 중년 남자는 장갑을 끼고 앞으로 나와 조유진과 안정희를 억지로 끌어당겨 떼어놨다.조유진은 옆으로 끌려가 바닥에 엎드려 있었고 두 손에는 시뻘건 피가 흥건히 묻어 있었다.분명 아침까지 안정희와 통화를 했는데 왜 갑자기 여기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오랜 기간 열심히 정성을 다하여 돌봤고 마침내 다시 깨어났는데 어떻게 또 다시 긴 잠에 빠질 수 있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만약 조유진이 벌을 받아야 하는 거라면 그녀는 이미 최선을 다해 죗값을 치르고 있었고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칠 수 있다.하지만 왜... 왜 하늘은 그녀의 제일 소중한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일까...조범은 그녀에게 부성애를 느끼게 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죄송합니다. 저희 어머니가 정신적으로 좀 문제가 있으셔서 약간 상황파악을 잘 못하십니다.”그러나 조 팀장은 이대로 넘어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방금 요양원 직원에게 물어보니 어머니가 전에 고인과 불화가 있었고 심지어 때리기까지 했다는 게 사실입니까?”배현수는 부인하지 않았다.“사실 저희 어머니가 가끔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사람을 잘 못 알아보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요양원의 여러 환자와 크고 작은 마찰을 빚은 적이 많아요.”배현수는 흠 잡을 데 없이 대답했다.조 팀장은 그 말을 듣고 한 번 피식 웃더니 날카로운 눈빛으로 배현수의 뒤에 있는 예지은을 바라봤다. 조 팀장의 눈빛에 배현수의 뒤에 있던 예지은이 온몸을 덜덜 떨며 말했다.“나는 저 여자를 밀지 않았어... 내가 아니야... 저 여자는... 저 여자는 혼자 굴러떨어진 거야... 나는 정말 저 여자를 밀지 않았어...”“저 사람이 구르는 것을 직접 봤습니까?”조 팀장이 예지은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갑작스럽게 물었다.이 행동에 예지은은 화들짝 놀라 아무 말도 못 한 채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그때 조 팀장이 옆에 있는 팀원들을 향해 말했다.“이 요양원에 죽은 사람과 불화가 있는 사람이 있는지, 아니면 원한을 가진 사람이 있는지 한 번 알아보세요.”배현수의 얼굴은 여전히 덤덤했고 예지은은 배현수의 뒤에서 그의 옷을 잡아당겼다. 그는 예지은의 불안한 손을 꼭 잡으며 무엇인가 알고 있는 듯했다.조 팀장의 뒤에 모자를 쓰고 있던 두 젊은이는 볼펜과 노트를 들고 주위 사람에게 물어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때 조유진이 갑자기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두 눈에는 눈물 한 방울 고이지 않았다.그녀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조사할 필요 없어요. 우리 엄마는 이 요양원에서 3년 동안 모든 사람과 잘 지내셨어요. 원수를 질만 한 사람도 누구와 싸운 적도 없어요.”“조유진 씨, 어머님의 죽음은...”조유진의 말에 조 팀장이 무언가 말을 하려 했지만 끝까지 내뱉지는 못
조유진은 명함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고맙습니다. 조 팀장님.”옆에 있던 원장님도 한마디 보탰다.“이효준 씨, 운구차를 한 대를 더 불러 유진 씨를 집까지 데려다주세요.”조유진과 몇 명의 간병인은 곧 바로 안정희의 시체를 안으로 옮겼다.배현수의 옆을 지나면서도 조유진은 그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고 바로 스쳐 지나가려 했다.그때, 배현수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조유진은 피식 웃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배 대표님. 제 몸에 피가 묻어 있어서 대표님 손을 더럽힐 거예요.”배현수와 조유진 사이에는 마치 그들을 두 개의 세계로 갈라놓은 듯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었다.그 장벽은 투명하여 만질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으나 너무 견고하여 쉽게 무너뜨릴 수 없다. 조유진은 배현수의 손을 뿌리치며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갔고 한 번도 고개를 뒤로 돌리지 않았다.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배현수는 저도 모르게 마음이 시리고 아팠으 찰나의 순간에 마음이 쿵 내려앉으며 온 세상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안정희의 시체가 방으로 옮겨졌다.방에 들어온 조유진은 따뜻한 물에 깨끗한 수건을 씻은 후 안정희의 몸을 구석구석 천천히 닦았다.그녀는 또 옷장에서 부용화 꽃이 수 놓인 한복을 발견했다.이것은 조유진이 안정희의 생일에 준 선물이다. 안정희는 이 한복을 그 무엇보다도 제일 좋아했다. 안정희는 살아있었을 때도 이 옷을 입기 아까워했다. 그녀는 항상 우리 유진이가 결혼할 때 입을 거라고 말하곤 했었다.하지만 오늘은 그녀가 마지막으로 이 한복을 입는 날이다.그리고 조유진이 결혼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조유진은 안정희에게 한복을 갈아입혔고 머리를 단정히 빗겨주었다.모든 정리가 끝났지만 조유진은 서둘러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그녀는 침대 옆에 앉아 담담한 얼굴로 안정희를 바라보며 말했다.“엄마, 집에는 안 모시고 갈게요. 제가 사는 곳도 세 맡고 사는 곳이라 거기도 우리 집이 아니에요. 우리 집은 진작부터 없었어요. 엄마 혼자 저 하늘에서 외롭지 않도록
“유진아... 많이 슬픈 거 알아. 그러니까 울고 싶으면 얼마든지 울어.”남초윤은 지나치게 평온한 조유진의 얼굴을 보니 덜컥 겁이 났다.그녀의 눈에서 생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외로움과 좌절로 시들어 있다.사람은 죽기 전에 몸에서 쇠퇴한 기운을 내뿜는다고 했다. 지금 조유진의 온몸을 감싸고 있는 것 또한 무서운 죽음인 것 같았다.남초윤은 그녀를 도와 문을 열었고 조유진은 유골함을 안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그녀는 조심스럽게 유골함을 탁자 위에 올려놓더니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남초윤에게 물었다. “초윤아, 마땅한 묫자리 좀 알아봐 줄래? 내일 아침 일찍 유골함을 묻으려 해.”이 말을 하는 조유진은 매우 냉정했고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한 마디 한 마디 또박또박 내뱉으며 내일 일에 대해 조리 있게 설명했다. 남초윤은 그런 조유진의 모습에 잠시 멍해졌지만 이내 대답했다.“응. 알았어. 바로 확인해 볼게.”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남초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친구에게 부탁해서 남산 묫자리 좀 알아봐 달라고 했어. 그곳이 풍수지리도 좋고 여기와의 거리도 그리 멀지 않아. 어때?”“좋아. 나도 남산 묫자리가 좋다고 들었어.”남초윤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고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조유진이 무서울 정도로 냉정하다고 생각했다. 남초윤은 조유진을 와락 껴안으며 외쳤다.“유진아! 그냥 울어.”조유진은 가족이 별로 없다. 정확히 말해 이 세상에서 안정희와 어린 선유 두 사람밖에 없다.조범은 개돼지만도 못한 인간이라 그저 명목상의 아버지에 불과했다.이제 안정희가 조유진 곁을 떠났으니 목숨 반을 잃은은 것과 다름없다.그녀가 지금 이렇게 침착한 이유는 진짜 큰일이 날까 봐 걱정되어서다.“유진아. 네가 매우 힘들다는 거 아니까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돼. 어머니는 떠나셨지만 너에게는 선유가 있잖아. 그리고 나도 있고.”조유진은 생기가 없는 눈으로 입을 열었다.“아, 맞아. 선유가 있었지... 선유는 이미 현수 씨에게 보냈으니 현수 씨가
그날 밤, 남초윤은 떠나려 하지 않았고, 그녀는 조유진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밤새 함께 있었다.조유진의 핸드폰은 계속 울렸지만 그녀는 받을 마음이 전혀 없었고 모두 남초윤이 대신 받았다.전화를 건 사람 중에는 신준우와 강이찬도 있었다. 남초윤은 그들과 전화 통화를 한 후 조유진을 보며 말했다.“신준우와 강이찬이 계속 오겠다는 걸 오지 말라고 했어.”조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지금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아.”그녀는 지금 혼자 안정희를 지키며 하룻밤을 조용히 지내고 싶어 했다.“내일 아침 일찍, 남산 산소에 어머니 유골함 묻으실 때 조문하러 오라고 했어. 요양원에서도 방금 전화가 왔는데 원장님께서 내일 산소에 몇 명 데리고 와서 인사를 하시겠대. 그리고 어머니의 유품도 가지고 오 실거래.”조유진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응. 고마워.”“유진아. 오늘 아무것도 안 먹었지? 죽이라도 좀 먹어. 내가 지금 전복죽을 배달시킬 테니 조금만 먹어.”조유진도 더 이상 남초윤의 성의를 거절하기 어려워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대답했다.“알았어.”남초윤은 어떤 느낌인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조유진은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 같았다....요양원의 416병동.예지은은 침대 옆에 오랫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고, 한참 후에야 드디어 정신을 차린 듯했다.배현수가 병실 문을 닫고 나서 예지은 가까이로 걸어와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물었다.“어머니. 어머니가 그런 거예요?”“흑흑...”예지은은 입을 꾹 닫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얘기해봐요, 어머니인지 아닌지. 겁먹지 마시고요. 어머니라고 해도 고의로 그런 거 아니잖아요. 그저 사고였어요, 그렇죠?”예지은은 배현수를 한참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결국 세 글자를 내뱉었다.“미안해...”그 말에 배현수는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듯 멍해졌다.병실 안의 분위기는 쥐 죽은 듯 고요했다.그의 까만 눈동자에 담겼던 마지막 희망이 순식간에 사라진 듯했다.정말로
“오빠, 왜 그래?”강이찬은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더니 물었다.“늦은 시간까지 어디에 가 있었어? 왜 이제야 돌아와?”“나... 친구랑 술을 몇 잔 마셨어. 술 마시는 게 죄는 아니지?”그녀는 일부러 태연한 척하며 거실로 걸어 들어가 손에 든 가방을 소파에 툭 하고 던졌다.그 모습에 강이찬이 몇 마디 했다.“이진아, 너 젊은 여자가 온종일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신다는 게 말이 돼? 그리고 지금 벌써 10시야. 그러다가 혼자 밖에서 무슨 건달이라도 만나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하려고 그래.” 그러자 강이진은 강이찬 옆으로 달려가 그의 팔을 껴안으며 애교를 부렸다.강이찬은 그녀와 농담할 마음이 전혀 없어 팔을 빼며 말했다.“조유진의 어머니에게 일이 좀 생겼어. 내일 아침 일찍 조문하러 가야 하니 너는 집에서 얌전하게 있어.”강이진은 흠칫 놀란 척하며 물었다.“조유진의 어머니? 무... 무슨 일이 생겼는데?”“사고가 있었던 것 같아. 자세한 건 나도 잘 몰라. 내일 아침 일찍 가서 물어봐야 해.”“응. 알겠어. 오빠, 나 지금 좀 술기운이 있어 그런지 피곤해서 먼저 올라가 쉴게.”강이찬은 약간 의아했다. 조유진이라는 말에 강이진이 또 자기를 못 가게 막으며 시비를 걸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의외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이제야 드디어 조유진에 대해 이해를 한 걸까? 강이찬은 별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 동생 강이진은 성격이 제멋대로여서 그렇지 뼛속까지 나쁜 애는 아니라고 생각했다....조유진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현관 문을 연 남초윤은 그 자리에 굳어졌다.“선유야, 네가 웬일이야?”“아빠가 데리고 왔어. 아빠는 아래층에 있어. 나보고 엄마 옆에 있으래.”“그...래.”선유는 들어오자마자 조유진을 향해 뛰어가 그녀의 목을 덥석 끌어 안았다.무릎을 꿇고 있던 조유진은 온몸이 굳어진 듯했다.“선유야, 여기는 어떻게...”“엄마, 너무 슬퍼하지 마. 할머
그날 밤, 조유진은 반쯤 혼이 나간 상태로 오랫동안 영정사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어린 선유 역시 그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선유는 매우 졸린 듯했지만 눈을 부릅뜨며 참고 있었다.잠이 들면 어머니가 당장이라도 외할머니를 따라 하늘나라로 가버릴 것 같았다....일 층, 검은색 마이바흐 차 안.차 안에 앉아 있는 배현수는 차 안 서랍에 있던 오래된 휴대전화를 꺼냈다.이 폰은 커플 휴대전화기이다.검은색이 배현수 것이고 흰색은 조유진의 것이다.두 개의 휴대전화 번호도 일련번호이다.이 휴대전화 번호는 3년 동안 사용하지 않았지만 감옥에서 나온 후, 배현수는 저도 모르게 전화 요금을 내고 번호를 남겼다.그는 심지어 자신이 이렇게 한 이유도 몰랐다. 머리로는 이런 행동이 헛된 것임을 알고 있지만 마음은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조유진에게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을 거라고 그녀에 대한 감정은 자유자재로 컨트롤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녀에게 복수하든, 아니면 깔끔하게 모든 것을 놓아주든 모두 자신이 결정하면 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죽도록 미워하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조유진이라는 존재는 이미 자신의 피와 살이 되어 마음속 깊이 박혀 있다는 것을 알았다.조유진을 잊는다는 것은 피와 살이 떨어지는 아픔이었고 뼈를 부러뜨려도 근육이 남아 있는 것과 같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배현수는 서랍에서 꺼낸 휴대전화를 켰다.화면이 밝아졌고 휴대전화 배경화면은 조용히 잠든 조유진의 얼굴이었다.음성 메시지 함의 첫 번째 음성을 클릭하는 순간 조유진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밤 일찍 돌아오면 안 돼? 제육볶음 해줘!”“남자친구님. 나 맵고 뜨거운 마라탕이 먹고 싶어.”“현수 오빠, 현수 오빠, 이번 주에 인형 뽑으러 가자! 오빠가 잘하잖아. 나 한 무더기 뽑아줘!”“배현수... 보고 싶어... 어디야? 빨리 데리러 와. 나 모기에게 물려 죽을 것 같아...”“나 장학금 받았어. 배현수, 당신 여자친구 대단하지? 오늘 저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