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유진은 명함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고맙습니다. 조 팀장님.”옆에 있던 원장님도 한마디 보탰다.“이효준 씨, 운구차를 한 대를 더 불러 유진 씨를 집까지 데려다주세요.”조유진과 몇 명의 간병인은 곧 바로 안정희의 시체를 안으로 옮겼다.배현수의 옆을 지나면서도 조유진은 그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고 바로 스쳐 지나가려 했다.그때, 배현수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조유진은 피식 웃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배 대표님. 제 몸에 피가 묻어 있어서 대표님 손을 더럽힐 거예요.”배현수와 조유진 사이에는 마치 그들을 두 개의 세계로 갈라놓은 듯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었다.그 장벽은 투명하여 만질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으나 너무 견고하여 쉽게 무너뜨릴 수 없다. 조유진은 배현수의 손을 뿌리치며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갔고 한 번도 고개를 뒤로 돌리지 않았다.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배현수는 저도 모르게 마음이 시리고 아팠으 찰나의 순간에 마음이 쿵 내려앉으며 온 세상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안정희의 시체가 방으로 옮겨졌다.방에 들어온 조유진은 따뜻한 물에 깨끗한 수건을 씻은 후 안정희의 몸을 구석구석 천천히 닦았다.그녀는 또 옷장에서 부용화 꽃이 수 놓인 한복을 발견했다.이것은 조유진이 안정희의 생일에 준 선물이다. 안정희는 이 한복을 그 무엇보다도 제일 좋아했다. 안정희는 살아있었을 때도 이 옷을 입기 아까워했다. 그녀는 항상 우리 유진이가 결혼할 때 입을 거라고 말하곤 했었다.하지만 오늘은 그녀가 마지막으로 이 한복을 입는 날이다.그리고 조유진이 결혼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조유진은 안정희에게 한복을 갈아입혔고 머리를 단정히 빗겨주었다.모든 정리가 끝났지만 조유진은 서둘러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그녀는 침대 옆에 앉아 담담한 얼굴로 안정희를 바라보며 말했다.“엄마, 집에는 안 모시고 갈게요. 제가 사는 곳도 세 맡고 사는 곳이라 거기도 우리 집이 아니에요. 우리 집은 진작부터 없었어요. 엄마 혼자 저 하늘에서 외롭지 않도록
“유진아... 많이 슬픈 거 알아. 그러니까 울고 싶으면 얼마든지 울어.”남초윤은 지나치게 평온한 조유진의 얼굴을 보니 덜컥 겁이 났다.그녀의 눈에서 생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외로움과 좌절로 시들어 있다.사람은 죽기 전에 몸에서 쇠퇴한 기운을 내뿜는다고 했다. 지금 조유진의 온몸을 감싸고 있는 것 또한 무서운 죽음인 것 같았다.남초윤은 그녀를 도와 문을 열었고 조유진은 유골함을 안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그녀는 조심스럽게 유골함을 탁자 위에 올려놓더니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남초윤에게 물었다. “초윤아, 마땅한 묫자리 좀 알아봐 줄래? 내일 아침 일찍 유골함을 묻으려 해.”이 말을 하는 조유진은 매우 냉정했고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한 마디 한 마디 또박또박 내뱉으며 내일 일에 대해 조리 있게 설명했다. 남초윤은 그런 조유진의 모습에 잠시 멍해졌지만 이내 대답했다.“응. 알았어. 바로 확인해 볼게.”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남초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친구에게 부탁해서 남산 묫자리 좀 알아봐 달라고 했어. 그곳이 풍수지리도 좋고 여기와의 거리도 그리 멀지 않아. 어때?”“좋아. 나도 남산 묫자리가 좋다고 들었어.”남초윤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고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조유진이 무서울 정도로 냉정하다고 생각했다. 남초윤은 조유진을 와락 껴안으며 외쳤다.“유진아! 그냥 울어.”조유진은 가족이 별로 없다. 정확히 말해 이 세상에서 안정희와 어린 선유 두 사람밖에 없다.조범은 개돼지만도 못한 인간이라 그저 명목상의 아버지에 불과했다.이제 안정희가 조유진 곁을 떠났으니 목숨 반을 잃은은 것과 다름없다.그녀가 지금 이렇게 침착한 이유는 진짜 큰일이 날까 봐 걱정되어서다.“유진아. 네가 매우 힘들다는 거 아니까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돼. 어머니는 떠나셨지만 너에게는 선유가 있잖아. 그리고 나도 있고.”조유진은 생기가 없는 눈으로 입을 열었다.“아, 맞아. 선유가 있었지... 선유는 이미 현수 씨에게 보냈으니 현수 씨가
그날 밤, 남초윤은 떠나려 하지 않았고, 그녀는 조유진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밤새 함께 있었다.조유진의 핸드폰은 계속 울렸지만 그녀는 받을 마음이 전혀 없었고 모두 남초윤이 대신 받았다.전화를 건 사람 중에는 신준우와 강이찬도 있었다. 남초윤은 그들과 전화 통화를 한 후 조유진을 보며 말했다.“신준우와 강이찬이 계속 오겠다는 걸 오지 말라고 했어.”조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지금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아.”그녀는 지금 혼자 안정희를 지키며 하룻밤을 조용히 지내고 싶어 했다.“내일 아침 일찍, 남산 산소에 어머니 유골함 묻으실 때 조문하러 오라고 했어. 요양원에서도 방금 전화가 왔는데 원장님께서 내일 산소에 몇 명 데리고 와서 인사를 하시겠대. 그리고 어머니의 유품도 가지고 오 실거래.”조유진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응. 고마워.”“유진아. 오늘 아무것도 안 먹었지? 죽이라도 좀 먹어. 내가 지금 전복죽을 배달시킬 테니 조금만 먹어.”조유진도 더 이상 남초윤의 성의를 거절하기 어려워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대답했다.“알았어.”남초윤은 어떤 느낌인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조유진은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 같았다....요양원의 416병동.예지은은 침대 옆에 오랫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고, 한참 후에야 드디어 정신을 차린 듯했다.배현수가 병실 문을 닫고 나서 예지은 가까이로 걸어와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물었다.“어머니. 어머니가 그런 거예요?”“흑흑...”예지은은 입을 꾹 닫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얘기해봐요, 어머니인지 아닌지. 겁먹지 마시고요. 어머니라고 해도 고의로 그런 거 아니잖아요. 그저 사고였어요, 그렇죠?”예지은은 배현수를 한참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결국 세 글자를 내뱉었다.“미안해...”그 말에 배현수는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듯 멍해졌다.병실 안의 분위기는 쥐 죽은 듯 고요했다.그의 까만 눈동자에 담겼던 마지막 희망이 순식간에 사라진 듯했다.정말로
“오빠, 왜 그래?”강이찬은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더니 물었다.“늦은 시간까지 어디에 가 있었어? 왜 이제야 돌아와?”“나... 친구랑 술을 몇 잔 마셨어. 술 마시는 게 죄는 아니지?”그녀는 일부러 태연한 척하며 거실로 걸어 들어가 손에 든 가방을 소파에 툭 하고 던졌다.그 모습에 강이찬이 몇 마디 했다.“이진아, 너 젊은 여자가 온종일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신다는 게 말이 돼? 그리고 지금 벌써 10시야. 그러다가 혼자 밖에서 무슨 건달이라도 만나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하려고 그래.” 그러자 강이진은 강이찬 옆으로 달려가 그의 팔을 껴안으며 애교를 부렸다.강이찬은 그녀와 농담할 마음이 전혀 없어 팔을 빼며 말했다.“조유진의 어머니에게 일이 좀 생겼어. 내일 아침 일찍 조문하러 가야 하니 너는 집에서 얌전하게 있어.”강이진은 흠칫 놀란 척하며 물었다.“조유진의 어머니? 무... 무슨 일이 생겼는데?”“사고가 있었던 것 같아. 자세한 건 나도 잘 몰라. 내일 아침 일찍 가서 물어봐야 해.”“응. 알겠어. 오빠, 나 지금 좀 술기운이 있어 그런지 피곤해서 먼저 올라가 쉴게.”강이찬은 약간 의아했다. 조유진이라는 말에 강이진이 또 자기를 못 가게 막으며 시비를 걸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의외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이제야 드디어 조유진에 대해 이해를 한 걸까? 강이찬은 별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 동생 강이진은 성격이 제멋대로여서 그렇지 뼛속까지 나쁜 애는 아니라고 생각했다....조유진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현관 문을 연 남초윤은 그 자리에 굳어졌다.“선유야, 네가 웬일이야?”“아빠가 데리고 왔어. 아빠는 아래층에 있어. 나보고 엄마 옆에 있으래.”“그...래.”선유는 들어오자마자 조유진을 향해 뛰어가 그녀의 목을 덥석 끌어 안았다.무릎을 꿇고 있던 조유진은 온몸이 굳어진 듯했다.“선유야, 여기는 어떻게...”“엄마, 너무 슬퍼하지 마. 할머
그날 밤, 조유진은 반쯤 혼이 나간 상태로 오랫동안 영정사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어린 선유 역시 그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선유는 매우 졸린 듯했지만 눈을 부릅뜨며 참고 있었다.잠이 들면 어머니가 당장이라도 외할머니를 따라 하늘나라로 가버릴 것 같았다....일 층, 검은색 마이바흐 차 안.차 안에 앉아 있는 배현수는 차 안 서랍에 있던 오래된 휴대전화를 꺼냈다.이 폰은 커플 휴대전화기이다.검은색이 배현수 것이고 흰색은 조유진의 것이다.두 개의 휴대전화 번호도 일련번호이다.이 휴대전화 번호는 3년 동안 사용하지 않았지만 감옥에서 나온 후, 배현수는 저도 모르게 전화 요금을 내고 번호를 남겼다.그는 심지어 자신이 이렇게 한 이유도 몰랐다. 머리로는 이런 행동이 헛된 것임을 알고 있지만 마음은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조유진에게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을 거라고 그녀에 대한 감정은 자유자재로 컨트롤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녀에게 복수하든, 아니면 깔끔하게 모든 것을 놓아주든 모두 자신이 결정하면 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죽도록 미워하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조유진이라는 존재는 이미 자신의 피와 살이 되어 마음속 깊이 박혀 있다는 것을 알았다.조유진을 잊는다는 것은 피와 살이 떨어지는 아픔이었고 뼈를 부러뜨려도 근육이 남아 있는 것과 같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배현수는 서랍에서 꺼낸 휴대전화를 켰다.화면이 밝아졌고 휴대전화 배경화면은 조용히 잠든 조유진의 얼굴이었다.음성 메시지 함의 첫 번째 음성을 클릭하는 순간 조유진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밤 일찍 돌아오면 안 돼? 제육볶음 해줘!”“남자친구님. 나 맵고 뜨거운 마라탕이 먹고 싶어.”“현수 오빠, 현수 오빠, 이번 주에 인형 뽑으러 가자! 오빠가 잘하잖아. 나 한 무더기 뽑아줘!”“배현수... 보고 싶어... 어디야? 빨리 데리러 와. 나 모기에게 물려 죽을 것 같아...”“나 장학금 받았어. 배현수, 당신 여자친구 대단하지? 오늘 저녁은
조유진은 유골함을 무덤 안으로 살며시 넣었다.“엄마, 편히 가세요.”옆에 있던 사람이 조유진을 바라보며 물었다.“같이 넣을 물건이 더 있나요? 없으면 이제 흙을 다시 덮겠습니다.”조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덮어 주세요.” 무덤 흙을 덮기 전에 그 사람은 외부 덮개를 먼저 덮은 후 단단히 봉했다.조유진은 검은 옷을 입고 묘비 앞에서 천천히 허리를 굽히며 절을 했다.이어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씩 앞으로 나와 절을 하기 시작했다.배현수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담담하게 이 모든 것을 보고 있었고 어린 선유도 옆으로 고개를 돌려 아빠를 바라보았다.어린 선유의 눈에 아빠 혼자 먼 곳에 서 있는 게 무척이나 외로워 보였다.선유는 바로 달려가 배현수의 손을 잡았다.“아빠. 아빠도 우리와 같이 외할머니 배웅하러 가요. 외할머니도 나에게 이렇게 멋진 아빠가 있는 줄 모를 거예요!”선유는 아직 어려서 어른들의 상황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서 스스럼없이 배현수를 끌고 사람들이 많은 방향으로 걸었다.배현수는 선유의 팔에 이끌려 마지못해 앞으로 걸어갔다.사실 그는 여기에 나타날 자격이 없었고 안정희에게 조문할 자격은 더더욱 없었다.그러나 조유진은 배현수를 내쫓지 않았고 그가 나타난 것에 대해 상당히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치 배현수라는 사람이 아예 없는 것처럼 평화로웠다.배현수 차례가 되어 그도 묘비 앞에서 절을 했다.하관식이 끝난 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주차장을 향해 걸어갔다.남산 추모공원은 면적이 넓어 주차장이 산 밑에 따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산소까지 거리가 좀 멀다.신준우는 조유진 옆으로 다가가 말했다.“유진 씨, 좀 이따 내가 유진 씨와 선유를 집까지 모셔다드릴게요.”그 말에 조유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때 선유가 먼저 이미 입을 열었다.“아저씨, 괜찮아요, 우리 아빠가 저와 엄마를 집에 데려다줄 거예요.”“아빠?”신준우는 잠시 멍해졌다.선유의 생부, 이미... 병으로 사망하지 않았어?선유는 배현수
어린 선유도 조유진의 목을 꼭 껴안으며 말했다.“엄마, 왜 그래? 나 보내기 아쉬워서 그래?”“응, 좀.”하지만 참을 수 있었다.어떤 일들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으면 그렇게 슬프지 않다.조유진이 선유를 더욱 꼭 껴안자 옆에 있던 배현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산성 별장에 가기 싫으면 선유가 너의 집에 며칠만 더 머무르라고 해도 돼.”조유진은 선유를 안았던 팔을 내리며 대답했다.“아니야. 어차피 앞으로 만날 기회가 많으니까. 이만 선유를 데려가. 당분간은 혼자 있고 싶어.”만약 선유가 계속 자기 옆에 있으면 조유진의 죄책감은 한층 더 깊어질 것이다.예전에 배현수가 한 말이 맞다.상처가 클수록 나중에 다시 기억했을 때 마음이 더 아플 것이다. 조유진은 선유가 계속 자신을 그리워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차라리 선유가 자신을 깨끗이 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어린 선유는 고사리 같은 손을 뻗어 조유진의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 “엄마, 혼자 잘 지내야 해. 외할머니는 저기 하늘나라로 가셨지만 엄마에게 아직 나와 아빠가 있잖아.”“그래, 엄마 선유 생각하며 잘 지내고 있을게.”이때, 요양원 원장이 조유진 앞으로 가까이 다가오더니 안정희의 유품을 전달하며 말했다.“이것은 어머니의 유품입니다. 제가 어제 요양원에 있는 직원에게 정리해 달라고 했는데... 빠뜨린 물건이 없는지 한 번 봐주세요.”조유진은 한 번 훑어보았고 중요한 물건은 다 있는 듯했다.사실 안정희에게 귀중품이라고 할만한 게 딱히 없다.“원장님 감사합니다.”...두 사람은 주차장에서 각각 차를 타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배현수는 어린 선유의 등을 토닥이고 나서 자기 차를 향해 걸어갔다.조유진은 자꾸 고개를 돌려 그들을 돌아보았고 눈시울은 이미 축축이 젖어 있었다. 차에 탄 후 남초윤이 운전했고 조유진은 뒷좌석에 혼자 앉아 요양원 원장에게서 건네받은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안정희가 생전에 남긴 유서가 있었다.설마 엄마가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알고 있었을까?
지난번에 여기에 왔었던 때가 벌써 6년 전이다.당시 배현수는 피고인석에 있었고 조유진은 증인석에 서 있었다.이번에도 그녀는 증인석에 서 있었지만 피고인석에는 배현수가 아니라 조범과 조영훈이 서 있었다.“유진아, 제발 바보짓 좀 하지 마. 배현수는 너를 속이는 거야.”“누나, 제발 나 좀 도와줘. 우리야말로 가족이잖아. 배현수 따위가 뭐라고!”조범과 조영훈은 그녀가 감싸주기를 바라며 애원하고 있었다.이들처럼 너무 많은 악행을 저지른 사람은 절대 뉘우치는 일이 없기에 조유진은 그들을 상대하지 않았다.판사가 판사봉을 두드렸다. “증인 조유진, 2017년 6월 6일 밤 10시, 당신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날 밤, 차로 유성진을 치어 숨지게 한 가해자가 배현수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죠?”조유진은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흰색 휴대전화를 꺼내며 입을 열었다.“2017년 6월 6일 밤 10시, 나와 배현수는 아신 에스테이트에서 셋집을 얻어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날 그곳에서 생일을 축하하고 있었고 저녁에 저는 영상을 녹화해 소셜 계정 스토리에 업로딩 했지만 전체공유를 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그 영상은 여전히 그 계정에 저장되어 있어 지금 바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조유진은 소셜 계정을 열었고 그 스토리를 클릭해 법정 안에 있는 사람들 앞에 공개했다.영상 속 조유진은 생일 모자를 쓰고 케이크 앞에 앉아 소원을 빌고 있었다.배현수는 그녀의 옆에 앉아 그윽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만약 이것도 증거로 채택되지 않으면, 아신 에스테이트 8동 1단지 902호의 집주인이자 실제 소유주인 도성주 씨를 찾아가 물어보시면 됩니다. 그날 밤, 도성주 씨가 월세를 받으러 우리 집에 왔기에 저는 배현수와 함께 도성주 씨를 만났습니다. 또한, 도성주 씨는 제 생일인 것을 알고 저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말도 해주었습니다.”배현수도 이미 조유진이 말한 증인을 찾아 놓았다.사실 그때에도 배현수가 증거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증인과 증거 모두 가지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