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술집에 조유진을 데리러 간 것은 그저 조선유의 엄마여서기 때문이었다.배현수에게 조유진은 그저 조선유의 엄마라는 것 외에 다른 의미는 없었다.그저 그런 존재였다....조선유를 산성 별장으로 보내고 나서, 집에서 술을 엄청 많이 마시고 3일 내내 잤다.월요일 SY 판매팀에 출근했을 때 반가운 손님을 만났다.“엄 어르신?”엄준은 조유진을 아주 많이 반가워했다.“유진 씨, 또 만나게 될 줄 몰랐네요. 그런데... 왜 전보다 안색이 안 좋아 보여요? 요즘 일이 많이 힘든가요?”엄준은 관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조유진은 애써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그러게요. 엄 어르신, 오늘 건물 보러 오셨어요?”“아, 저번에 구매한 저택 보러 왔어요. 오늘 시간 되시면 혹시 함께 보러 갈 수 있을까요?”“그럼요.”조유진은 엄준과 함께 환우 그룹 아파트로 향했다.“제 기억으론 6동 13층이었던 것 같은데, 맞으시죠?”엄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아요.”조유진은 엄준과 함께 6동으로 들어갔다.엄준은 지난번 계약과 관련된 일이 떠올라 슬쩍 말을 꺼냈다.“지난번에는 미안해요. 유진 씨와 계약하려다 시간이 촉박해서 그냥 다른 분이랑 계약해버렸어요. 나중에야 유진 씨 업적이 빼앗겼다는 걸 알았어요.”“괜찮아요, 어르신. 누구와 계약을 맺든 다 저희 회사 고객님인걸요.”엄준은 자애로운 눈빛으로 조유진을 쳐다보았다.조유진은 얼굴에 뭐가 묻었는 줄 알고 물었다.“어르신, 왜 그러세요?”“처음 봤을 때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었어요. 마치 딸을 보는 것 같았어요. 유진 씨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죠?”“올해 24살입니다. 어르신 따님은 몇 살이세요?”엄준의 표정은 갑자기 슬퍼졌다.“딸이 태어났을 때 누군가 안고 가서 아직 찾지 못했어요. 올해로 24살이 되었을 거예요.”“죄송해요, 어르신.”“괜찮아요. 몰라서 물어본 건데요 뭐. 회사업무 때문인 것도 있고 운이 좋으면 딸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번에 대제주시에 온
SY 판매팀으로 돌아간 조유진은 컴퓨터를 열어 문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사직서」계속 써 내려가려고 했을 때 옆에 있던 동료가 흥분하면서 말했다.“방금 단톡방에서 이번 주에 지리산에서 워크숍 한대요! 지리산 호수공원 캠핑장 정말 가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가볼 수 있게 되었네요!”“저번 회사창립 기념일에 워크숍에 대해 언급하지 않길래 저는 올해 워크숍이 없을 줄 알았어요.”“유진 씨는 참 운도 좋아.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워크숍도 가보고.”조유진은 작성하려던 사직서를 꺼버리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북한산 캠핑장 재밌어요?”“그럼요. 거기 호수도 엄청 넓고 바다같이 맑아서 사진 찍으면 예쁘게 나올 거예요.”‘바다같이...’조유진은 끌리기 시작했다.지금까지 살면서 바닷가도 가보지 못한 촌놈이었다.예전에는 나이가 어려서이기도 했고 조씨 가문에서 잘해주지 못한 것도 있었다.나중에는 배현수와 헤어지고 조선유도 생기면서 생활의 무게로 더욱이 여행을 갈 기회가 없었다.죽기 전에 바다 같은 호수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워크숍이 끝나고 사직서를 내려고 다짐했다.조유진이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핸드폰이 울렸다.발신자는 신준우였다.핸드폰을 들고 사무실 밖에 있는 복도에 가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선생님, 무슨 일이 있으세요?”신준우가 대제주시를 떠난 이후 처음 하는 통화였다.“아무 일도 아니에요.”그냥 조유진이 보고 싶어서 전화했을 뿐이었다.신준우는 쑥스러움이 많은 성격이라 보고 싶었다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조유진이 물었다.“서울병원에서 습관은 되세요?”“방금 왔을 때는 습관이 안 되었었는데 한 달이 지나니까 많이 적응되었어요. 참, 유진 씨는요? 잘 지냈어요?”“저는 그대로죠. 뭐.”전화기 너머의 신준우는 몇 초간 망설이더니 그래도 그녀에게 미리 알려주리라 다짐했다.“깜짝 놀래주려고 했는데 유진 씨 목소리를 들으니까 더는 숨기지 못하겠네요.”“뭔데요?”“그게... 저희 부모
조선유가 산성 별장의 전화로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최소 한 시간 동안 통화하면서 아빠가 주말에 만나는 것을 동의했다고 말했다.통화를 마치고, 결국 미련이 남는지 창문을 닫았다.조선유가 곁을 떠난 일주일간, 그리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별거 없는 인생이었지만 주말에 딸을 만나는 것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동기가 될 수 있었다....곧 관광버스가 지리산 근처에 도착하고, 옆에 있던 동료가 그녀를 깨웠다.“유진 씨, 그만 자요. 지리산 다 왔어요. 이제 내려야 해요.”조유진은 눈을 뜨자마자 차창 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푸르른 호수를 마주하게 되었다.그전까지만 해도 동료가 지리산 호수가 바다 못지않게 아름답다는 말에 반신반의했지만 직접 보니 정말 바다와도 같았다.차에서 내리자 시원하고 산듯한 호수 바람이 불어왔다.교외는 시내보다 시원했고 더욱이 오늘은 햇빛도 강렬하지 않아 날씨가 아주 적당했다.지리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점심이라 각 팀은 호숫가에서 바비큐 구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조유진은 산에 가서 땔감을 찾아와야 했다.땔감을 한 웅큼 안고 돌아가려다 배현수 일행과 마주하게 되었다.육지율과 강이찬, 강이진도 함께 있었다.강이진은 조유진을 보자마자 화가 치밀어 올라 일부러 시비를 걸었다.“유진 씨, 땔감이 다 젖었는데 불이 붙겠어요?”조유진은 텅 빈 그녀의 두 손을 보더니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말랐든 젖었든 일단 줍긴 했잖아요. 빈손인 강이진 씨보단 낫죠.”“너...”강이진은 지난번 일로 조유진을 더 증오하게 되었다.“퍽!”강이진은 조유진이 품에 안고 있던 땔감을 손으로 툭 내리쳤다.며칠 전 배현수가 조선유만 받아들이고 조유진에게는 자식 덕에 팔자 고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배현수 앞에서 이런 짓을 할 수 있었다.조유진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조유진이 그래도 아이 엄마인데 이 정도로 냉철한 걸 보면 조유진을 미워하는 것이 틀림없어.’조유진을 괴롭히는 것이 배현수 대신 복수하
조유진은 눈썹을 움찔하더니 강이찬의 손에서 약 봉투를 낚아채고 주머니에 다시 넣었다.“비타민이에요. 어디 아픈 데 없어요.”강이찬은 바보가 아니었다.“유진 씨, 제가 비타민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를 줄 알아요?”“믿고 싶은 대로 믿어도 좋아요.”조유진은 땔감을 안고 뒤돌아 캠핑장으로 돌아갔다.더는 배현수 일행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오랫동안 이 약을 먹지 않았지만, 어제저녁 조선유가 주말에 만나자는 말에 요 며칠 약을 먹으면서 컨디션을 조절하려고 했다.안 좋은 얼굴로 조선유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죽기 전에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주고 싶었다....캠팽장에서 사람들은 바비큐를 굽고 있었다.판매팀과 멀지 않은 곳에 앉아있던 강이찬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조유진을 바라보았다.핸드폰을 꺼내 인터넷에 아까 약 봉투에 쓰여있던 약 이름을 검색하기 시작했다.‘우울증 치료제라니.’순간 멈칫하더니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강이진이 그의 어깨를 툭 쳤다.“오빠, 바비큐 먹어. 핸드폰으로 뭘 보고 있는데 그렇게 멍때리고 있어?”강이진이 보려고 하자 바로 화면을 잠그고 핸드폰을 거뒀다.“아무것도 아니야. 가자, 바비큐 먹으러.”고위층은 파라솔 아래에 모여있었다.다른 팀원들은 고위층에게 권하려고 이미 구워놓은 바비큐를 들고 왔다.그중에는 남자직원도 있었고 여직원도 있었다.극히 정상적인 일이었지만 여자직원이 바비큐를 들고 오자 강이진은 불쾌했는지 바비큐를 먹으면서 비아냥거렸다.“무슨 사심이 있어서 자꾸 여기를 와?”바비큐를 들고 오던 여직원은 강이진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강이찬의 여동생인 줄도 모르고 그녀의 말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하지만 고위층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어쩔 수 없이 웃으면서 반격했다.“이봐요. 그쪽도 저희가 구워놓은 바비큐를 드시고 있잖아요? 다른 사람이 구운 것을 먹기 싫으면 직접 구우시던가요.”강이찬의 손에서 곱게 자란 강이진은 이런 말을 듣고 차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그깟 바비큐 안 먹어! 누가 먹고 싶댔어?
“그래요.”카톡을 추가한 강이찬이 백만 원을 계좌 이체해주자 여직원은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 말했다.“사장님, 제 치마 백만 원 안 해요. 너무 많이 보내주셨어요.”“괜찮아요. 제 마음이에요. 얼른 식사하러 가보세요.”여직원은 기쁜 마음에 제자리로 돌아갔다.옆에 있던 육지율이 캔맥주를 따서 한 모금 마시더니 말했다.“이찬아, 너 너무 순진한 거 아니야? 바로 계좌 이체해도 되는데 친구추가는 왜 했어.”강이찬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여직원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저 좋은 사람으로 남는 것이 익숙해서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한 것이다.“괜찮아. 친구 추가해도 문자 안 보내면 되지.”여태 한마디도 하지 않던 배현수가 갑자기 강이찬에게 말했다.“이진이 성격 좀 고쳐야겠어. 고치지 못하겠으면 우리 회사 떠나라고 해.”말투는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지만, 위엄과 포스가 넘쳐났다.“알았어. 내가 말해볼게.”배현수는 이런 일로 농담할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바로 받아들이게 되었다.그리고 강이찬도 여동생이 SY그룹에 남아있기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강이진이 SY그룹에 남아있는 이상 배현수만 만나면 사심이 드러나기 일쑤였고 도가 지나치면 잘못된 길에 들어설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제일 걱정되는 것은 강이진이 아니라 조유진이었다.배현수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결국 참기로 했다.그가 더는 조유진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 신경 쓰고 싶지 않다고 말했기 때문이다.배현수가 조유진의 우울증을 모르고 있는 것은 조유진이 알게 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저 말을 아끼기로 했다....저녁이 되자 호수는 더욱 아름다워졌다.붉은 노을이 길게 드리워져 호수 면을 붉게 물들였다.조유진은 사람들 무리에서 벗어나 홀로 사람 없는 곳으로 걸어갔다.핸드폰을 꺼내 호수경치를 찍기 시작했다.호수의 끝이 바로 지리산이었고 산속에는 절이 있었다.오기 전에 미리 검색해보았더니 정취암에서 소원을 빌면 많이들 이루어진
산속은 시내보다 날이 더 빨리 어두워졌다.조유진이 산꼭대기에 있는 정취암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이미 7시가 되었다.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조유진은 부처님 앞에서 두 손 모아 합장을 하고서 염원을 담아 소원을 빌었다.조선유가 무탈하게 행복하게 자라기를 바랐고 또 배현수가 지난날의 원한을 잊고 새로운 시작을 했으면 좋겠다고 빌었다.세 번째 소원으로는 안정희가 건강하게 말년을 보내다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딱 이 세 가지 소원만 빌었다.딸과 배현수, 그리고 엄마를 위해 기도했지만... 자신은 까맣게 잊었다.그렇게 무릎 꿇고 한참 동안 기도했다.이때 법의를 입은 한 스님이 걸어오더니 말했다.“오랫동안 여기 계신 것 같은데 무슨 고민이 있으신지요? 저희가 오늘 이곳에서 만난 것도 인연인데 부적을 하나 추첨할 기회를 드리지요.”조유진은 사실 이런 것을 별로 믿지 않았지만 죽게 된 마당에 혹시라도 부처님이 불쌍하게 여겨 소원을 이뤄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여러 장 뒤집혀 있는 부적 중에서 한 장을 뽑아보더니 애써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스님, 제가 운이 안 좋아서 별로 좋지 않은 부적을 뽑았나 봅니다.”스님은 부적을 확인하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말했다.“나쁜 부적을 뽑았다고 해서 운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쥐구멍에도 해 뜰 날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 보이는 것이 마음속에 응어리가 있군요. 가끔은 내려놓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미련을 많이 가질수록 욕심이 생기게 되고 따라서 불행해질 수도 있습니다.”“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스님.”“앞으로 인생에서 갈 길도 먼데 마음을 내려놓으십시오. 욕심을 버리면 마음속 응어리도 없어질 것입니다. 바라는 것이 많으면 오히려 많이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무소유이기 때문에 욕심을 버려주세요.”조유진은 스님 따라서 중얼거렸다.“욕심을 버리면 마음속 응어리도 없어지니라...”“맞습니다.”조유진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그런데 스님, 저는
한밤중, 산속은 습한 데다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조유진은 두 시간 가까이 호숫가에 앉아있었다.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자기도 모르게 일어나 서서히 호수 안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수심이 점점 깊어지고, 종아리까지 잠기던 물이 무릎까지 잠기게 되고...조선유가 호수 중심에서 웃으면서 엄마를 부르는 것만 같았다.너무 보고 싶어서 가까이 가서 안아주고 싶었다.그렇게 점점 더 수심이 깊은 곳으로 빠져들면서 허벅지까지 잠기게 되었다.이때 갑자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조유진!”조유진은 순간 정신을 차리더니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바라보았다.한 사람이 어둠 속에서 보슬보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숨이 목젖까지 차올라 헐떡이면서 어딘가 조급해 보였다.조유진은 그 사람이 누군지 잘 보이지 않았다.그 남자가 입고 있던 검은 셔츠는 어둠과 함께 점점 빗물에 적셔졌다.성큼성큼 다가가기까지 조유진은 호수 안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가까이 다가와서야 누군지 똑똑히 알아볼 수가 있었다.눈이 마주치고,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서로 바라만 볼 뿐이었다.배현수는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왜 혼자 여기 있어?”“혼자 돌아다니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몰랐어요. 관광버스가 이미 떠난 줄도 몰랐어요.”“그럼 왜 호수에 빠진 건데?”“더워서요. 제가 더위를 못 견디는 거 아시잖아요.”조유진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듯이 아주 평온하게 대답했다.배현수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내고 싶어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그렇게 한참 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배현수은 눈시울이 살짝 붉어지더니 조유진의 손을 꽉 잡고 호수 밖으로 걸어 나갔다.두 사람은 온몸이 흠뻑 젖었다.배현수는 그녀를 바라보며 한마디 한마디 내뱉었다.“매주 선유를 만나게 해주겠다고 약속할게.”마지막 양보와 타협에 조유진은 동공이 흔들렸다.이때,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배현수의 차가 산 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배현수는 방 카드를 들고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고 조유진이 그 뒤를 따랐다.방에 도착해서야 야릿한 분위기의 인테리어라는 것을 확인했다.조유진은 물침대를 보더니 말했다.“저는 소파에서 잘게요.”침대를 양보하기로 했다.아무 말도 하지 않던 배현수는 흠뻑 젖은 그녀의 옷을 보더니 말했다.“먼저 따뜻한 물로 샤워해.”작은 모텔이라 시설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조유진은 어지러운 느낌에 후딱 샤워를 마치고 옷을 입고 샤워실에서 나오려던 순간, 가슴이 아파 나면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콜록콜록...”결국, 피를 토해내고 말았다.조유진은 세면대에 묻은 피를 보더니 동공이 확장되었다.고개 들어 거울을 보았을 때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마치 죽은 사람처럼 보였다.배현수는 심각한 기침 소리에 샤워실 문을 두드렸다.“일회용 수건은 밖에 있어.”“네. 알았어요.”조유진은 얼른 물을 틀어 세면대에 묻은 피를 씻어내렸다.얼굴이 뜨거워지는 느낌에 몇 번이고 냉수 마찰해서야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그렇게 어질어질한 상태로 욕실을 벗어나자 배현수가 마른 수건을 건넸다.“머리부터 말려.”방금 샤워해서 머리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수건을 받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그의 손가락을 터치하게 되었다.배현수는 이상하리만큼 유난히 차가운 그녀의 손 온도에 미간을 찌푸렸다.“어디 아파?”“아니요...”말이 끝나기 바쁘게 따뜻하고 건조한 손으로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니 심각하게 뜨거웠다.“열이 나?”조유진도 이마를 짚어보더니 맥없는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아요. 비 맞아서 감기 걸렸나 봐요. 한잠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예요.”배현수가 말했다.“얼른 머리부터 말려.”그녀가 욕실에서 드라이기를 꺼내왔을 때 배현수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그렇게 5분이 지나고, 체온계와 해열제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배현수는 체온계를 건네면서 말했다.“체온 재봐.”퉁명스러운 한마디는 명령 식으로 들렸다.하지만 조유진은 그런 그에게 놀라고 말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