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준은 문 앞에서 지키고 있다가 벨이 울리자마자 문을 열었다. 얼마나 빠른지 여형민이 깜짝 놀랄 정도였다. “혼자야? 유진 씨는?” 여형민이 목을 빼들고 방안을 들여다봤다. 거실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심유진이 보였다. “유진 씨가 있는데 난 왜 불러?””일단 들어와.” 허태준은 별다른 해석 없이 서재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왔다. 그 사이에 심유진이 여형민에게 낮은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 “지금 취하셨어요. 저를 대표님이 좋아하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어요. 이젠 저랑 결혼까지 하시겠대요.” 여형민은 자초지종을 아는 사람이었다. 심유진의 설명을 들으니 허태준이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예상이 갔다. 허태준이 서재에서 나오자 두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거실에 앉아있었다. 허태준이 종이와 펜을 여형민에게 건네며 말했다. “내일 혼인신고를 하러 갈 거라는 보증서를 써, 이 일이 성사되지 않으면 앞으로 내 마음대로 할 거라는 말도 보태고.” 심유진이 더는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뭘 마음대로 해요, 혹시 위법행위면 어떡하려고.” “그럼 어떻게 고칠까?” 허태준은 심유진의 의견을 묻는 것 같았지만 그 차가운 눈빛에서 그가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게 보였다. 심유진은 더 이상 반항할 수가 없었다. 여형민이 심유진의 팔을 잡았다가 그 시선에 손을 옷자락으로 가져갔다. “잠시만 기다려봐, 유진 씨랑 얘기 좀 할게.” 의외로 허태준이 시원하게 대답했다. “그래, 가봐.” 여형민과 심유진은 베란다로 나갔다. 심유진은 아직도 이 급전개에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할 얘기가 뭐예요?” 여형민은 베란다의 문을 굳게 닫았다. 혹시 허태준의 귀에 이 대화가 들어갈까 걱정하는 것 같았다. “사실대로 얘기할게요. 허태준 씨는 술버릇이 되게 고약한 사람이에요 취하기만 하면 엄청 귀찮게 군다고요. 평소에도 강압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인데 술이 들어가면 훨씬 어린애처럼 고집을 부려요. 자신이 갖고 싶어 하
여형민의 말은 심유진을 설득하기에 충분했다. “알겠어요, 서명할게요.” 여형민은 2분도 안 지나서 보증서를 써왔고 심유진도 빠르게 서명했다. 계획대로 여형민이 보증서를 주머니에 넣으려 하면서 말했다. “그럼 이건 내가 보관하고 있을게?” “줘.” 허태준이 그런 여형민을 막았다. “그래, 줄게 줄게. 고작 종이 한 장인데 뭘 그렇게까지 해.” 허태준은 보증서를 손에 꼭 쥔 채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가봐.” “이제 필요 없어졌다 이거지?” 여형민이 눈을 살짝 흘기며 밖으로 나갔다. 그는 문밖에 서서 몰래 심유진에게 손가락으로 ok를 그려 보였다. “머리는 아직도 아파요?” 심유진이 허태준에게 물었다. 사실 물을 필요도 없었다. 방금 전의 모습으로 이미 아무 일도 없다는 게 증명된 거나 다름없으니까. 하지만 허태준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소파에 드러누워 인상을 찌푸렸다. “아파.” 심유진은 조금 짜증이 나면서도 웃겼다. 취한 허태준은 평소의 모습과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그 모습이 또 밉지만은 않았다. “늦었으니까 그만 씻고 자요.” “안 갈 거야.” 허태준이 그녀를 째려봤다. “나 씻을 때 도망가려고 그러는 거지?” 심유진은 정곡을 찔린 느낌이었다. “아니에요.” 심유진이 웃으면서 급히 해석했다. “지금 온몸에 술냄새가 풍겨요. 불편할 거 아니에요. 그리고 보증서도 썼는데 제가 어딜 도망가요.” 허태준은 한참을 빤히 쳐다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씻고 올게.” 욕실로 가는 허태준의 발걸음이 불안해 보였다. 휘청거리는 모습에 심유진은 급히 가서 부축했다. 분명 아까 여형민에게 문을 열어줄 때는 멀쩡해 보였는데 말이다. 심유진은 욕실까지 허태준을 부축하고 금방 자리를 떴다. 하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아 또 한마디 보탰다.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저 불러요. 문밖에 있을게요.” “그래.” 욕실의 문이 닫히자마자 방금 취기가 가득했던 허태준은 사라지고 평소의 차가운
”좋다.” 허태준이 낮게 말했다. 심유진은 순간 마음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눈물이 고여 앞이 흐려졌다. 왜 허태준의 마음속에 있는 여인이 자신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을 느끼게 될 줄 몰랐다. 아마 그 여자라면 집안의 압박하에 이루어진 인연일지라도 그를 버리고 떠나지 않을 것 같았다. “자요.” 심유진이 허태준의 등을 토닥거리며 말했다. “제가 옆에 있을게요.” 허태준은 금방 잠이 들었다. 심유진은 그의 긴 속눈썹을 세어 보기도 하고 또 참지 못하고 그의 얼굴을 매만지기도 했다. 피부가 부드러웠다. 나중에 꼭 피부관리 비결을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한 시였다. 그녀는 놀라서 얼른 침대에서 내려오려 했다. 하지만 허태준이 그녀를 꽉 껴안고 있어서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혹시 그가 깨진 않을까 싶어 차마 크게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때 허태준이 살짝 눈을 떴다. 그녀가 시야 안에 있는 것을 보고 그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얼굴을 파묻었다. “진짜 옆에 있네.” 잠결에 웅얼거리며 말했지만 심유진은 그 말을 똑똑히 들었다. 금방 다시 잠든 허태준을 보며 심유진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그 품을 벗어나는 걸 포기했다. 심유진은 아침에 허태준 때문에 강제로 기상했다. 허태준은 이불을 개고 그녀를 품에 안더니 어딘가로 걸어갔다. 심유진은 잠결에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있었다. 허태준이 문을 열자 찬 공기가 확 느껴졌다. 심유진은 몸이 덜덜 떨리며 재채기가 나왔다. 그제야 정신이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심유진이 똑바로 상황을 인지했을 때 허태준은 이미 그녀를 안고 심유진 집의 대문 앞에 서있는 상태였다. 허태준이 심유진의 손을 잡고 엄지를 지문인식구역에 가져다 댔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자 심유진은 필사적으로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괜찮아요, 저 혼자 걸어갈게요.” “가만히 있어.” 허태준이 차갑게 말했다. 심유진은 더 이상 움직일 엄두를 못 냈다. 허태준은 그대로 심유진을 품에 안은채 침실로
결국 또 원점으로 돌아왔다. 심유진은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근데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시잖아요. 왜 저랑 결혼을 하시겠다는 건데요?” 가짜 여자친구 역할을 하는 것까지는 이해한다고 쳐도 가짜 결혼은 말이 안 됐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허태준이 시선을 먼 곳으로 돌렸다. 슬프고 우울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 그 표정이 굉장히 심유진을 가슴 아프게 만들었다. 그녀는 뭐라고 위로를 건네고 싶었지만 합당한 말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이 보증서를 보는 순간 그쪽이랑 결혼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집에서는 계속 결혼하라고 재촉하고 당신은 내가 유일하게 싫어하지 않는 여자니까.” 허태준이 심유진의 손을 잡았다. “이렇게 스킨십을 해도 불편하지 않아.” 심유진이 그 손을 뿌리쳤다. “대표님, 이렇게 충동적으로 결정하지 마세요. 혹시 이후에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어떡해요.” “그럴 일은 없어. 하지만...” 허태준이 웃으면서 보증서를 주머니에 넣었다. “나도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 당신이 싫다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근데 보증서는 영원히 유효하니까 혹시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지 찾아와.” 심유진은 이렇게 빨리 그를 설득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안 했다. 그녀의 기억속에 그는 늘 강압적인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당장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에 빠져 심유진도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혼인신고를 하러 가자는 요청을 거절당했지만 허태준은 여전히 매너 있게 심유진을 호텔까지 데려다주고 회사로 출근했다. 여형민은 사무실에서 온 오전 기다리다가 그를 보자마자 재촉했다. “빨리 혼인신고서 좀 보여줘 봐.” “없어.” 허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 “뭐가 없다는 거야? 혼인신고를 안 한 거야 아니면 가져오지 않은 거야?” “안 했어.” 허태준이 외투를 벗어 의자에 걸쳐놓고 자리에 앉
반백살이 넘는 남자는 여전히 차가웠다. 그녀를 향한 불만스러운 눈빛 또한 변함이 없다. “심유진.”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그사람의 목소리를 들었을때 심유진은 조건반사적으로 떨었다. ——그는 줄곧 그녀를 상대하기를 싫어했다. 매번 그녀를 부를때마다 비평하고 책망할 뿐이었다. “심아저씨.” 그녀는 정신을 가다듬고 그를 일반손님처럼 맞이했다.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신건가요?” “먼저 들어와.” 심훈은 이말을 남기고 돌아서서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녀가 따라올것을 짐작이라도 하듯이.심유진은 따라들어갔다.다른것보다 진짜로 고소라도 한다면? 하지만 그녀는 잘못 짚었다. “니 엄마가 아프다.” 심훈은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했다. 이 얘기를 들어도 심유진의 감정에는 기복이 전혀 없었다. “심아저씨와 다른분들의 관심덕분에 금방 회복하실거예요.” 그녀는 제일 표준적인 미소를 머금으면서 겉치레로 얘기했다. “암이다.” 심훈의 안색이 더 어두워졌다. “자궁암, 발견했을 때 이미 말기란다.”심유진은 멍해졌다. 두손을 저도 모르게 움켜쥐었다. “너한테 줄곧 못되게 군것을 안다. 니가 우리를 미워하는것도.” 심훈은 냉정하게 얘기했다. 말투에는 한치의 후회도 없는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니 엄마다, 십개월동안 힘들게 임신해서 낳고 너를 키웠다. 니가 엄마를 보러 갔으면 좋겠다.” 그는 ‘가스라이팅’ 을 잘했다, 하지만 심유진은 심씨일가를 줄곧 조심스럽게 했다. 특히 얼마전 심연희가 새해에 집에 오는것을 언급했는데 그때는 사영은의 병세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다. 사영은이 일부러 심연희한테 얘기하지 말라고 한건지 아니면 심훈이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아프다고 했는데 증거 있어요?” 심유진이 물었다. “증거 없이는 못믿겠어요.” 심훈의 눈빛이 돌연 싸늘하게 변했다. 그리고는 코웃음을 쳤다. “심유진, 넌 참 양심이 없구나!” 그는 손에 들고있
심유진은 심훈에게 그녀를 납치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녀는 심훈과 억지로 밀어붙이는것은 현명한 짓이 아니라는것을 알고 있었다. 경호원들이 움직이기전에 타협을 선택했다. "따라서 돌아갈수 있어요." 그녀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전에 총지배인님한테 청가를 맡아야 해요. 손안에 업무를 다른 사람한테 넘겨야 합니다." "잔머리 굴리지 마." 심훈은 경고했다. "저녁 8시 비행기를 예약했다. 6시전까지는 여기에서 널 만나야겠다. 아니면 니 총지배인을 만날테니." 심유진은 잔머리를 굴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그녀가 일하는 곳을 알고 있었고 현재 그녀의 거처도 알고 있었다. 그녀를 잡는것은 쥐새끼 잡기보다도 쉬웠다. 그녀는...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심훈은 줄곧 그녀를 골칫덩어리로 생각했을 것이다.그녀가 심씨집안에 있었을때부터 그는 그녀를 공기취급을 하였다. 필요가 없을때면 눈길 한번 주기를 꺼려했다.하지만 지금 그는 직접 그녀를 찾으러 오고 참을성 있게 많은 얘기를 했다. 심유진은 그가 진짜로 사영은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한다는것을 믿을수가 없었다. 그들의 부부감정은 남들이 보기에처럼 그렇게 좋은편은 아니었다. 심훈은 성인군자의 모습을 하였지만 실제 사적으로는 그의 회사와 계약한 연예인들과 입에 담지 못할 일을 하였다. 그녀가 이 일을 알게 된 이유는 사영은이 주기적으로 아무 이유없이 한바탕 난리를 치면서 그녀를 가둬놓고 죽도록 패면서 "천한 년이 내남편을 꼬시려고 하다니!" 하고 욕을 했기 때문이다. 심훈이 이렇게 절박하게 그녀를 경주로 데려가려고 하는데에는 꼭 다른 목적이 있을것이다. 무엇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심하는것이 좋을것이다.심훈의 타산은 그녀보다 더 치밀했다."핸드폰을 내놓아라." 그는 심유진한테 손을 내밀었다. "맡겨놓은 셈 치자, 니가 달아날가봐 그러는거다." 심유진은 원래 나가자마자 여형민을 찾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계획이 심훈덕분에 완
심유진은 지금까지 크면서 심훈과 같은 차에 처음 타본다.어릴적 매일아침 창가에 엎드려 심훈이 심연희를 학교에 데려다 주는것을 부럽게 쳐다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녀의 제일 큰 바램은 심훈의 차에 탈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바램은 너무 늦게 이루어졌다. 지금 그녀의 심경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지금 그녀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괴로웠다. 심훈은 그녀와 말을 하지 않기 위해 눈을 감고 자는척을 했다. 앞에 두명의 경호원도 그녀랑 얘기할리 없었다. 심유진은 차창밖을 바라보며 멍을 때렸다. 도로를 달리는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르기를바랬다. **심훈은 퍼스트 클래스 티켓을 끊었다. 심유진도 그 덕을 봤다.그녀는 생각했다. 이번 여행중 유일한 위안이라고. 하지만 비행기 안에서의 그녀의 조심스러움과 당혹함은 심훈의 여러번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중간 열을 건너 심훈이 경호원과 얘기하는 소리가 들리는것 같았다. “누가 잡종 아니랄가봐. 꼬라지 하고는.” 경호원은 얘기했다. “연희아가씨와 비교할 거리가 안됩니다.” 심훈은 얘기했다. “당연한 소리를. 감히 우리 연희를 따라올자가 있는가?” **두시간의 비행은 금방 끝났다.오랜만에 돌아온건지 지금의 경주는 떠날때와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심유진은 두눈을 휘둥그레 떴다. 하지만 여전히 변화가 없는 곳도 있었다. 예를 들면 심씨저택과 심씨네 하녀들이그녀를 대하는 태도 등 말이다. 그녀는 심훈을 따라 걸어 들어갔다. 하인들은 심훈을 대할때 온얼굴에 미소를 띄고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를 굽신거렸지만 그녀를 보자마자 차가운 얼굴로 맞이했다. 가끔 “심유진아가씨” 라는 소리도 들렸지만 대부분은 아예 그녀를 보는척도 안했다. 심유진은 낙심할것도 없었다. 저들이 굽신거리는것이 오히려 꿍꿍이가 있을지 의심해볼 여지가 있을것이다. 심훈은 사영은이 항암치료를 받기 싫어 강제출원하여 집에 돌아왔다고 한다.
심유진은 사영은이 또 무슨 잔머리를 굴리는건지 알수가 없었다. 아무리 아파서 심훈이랑 각방을 쓴다 해도 2층에도 충분한 방들이 있기 때문에 한층 더 위인 3층에 옮겨갈 필요가 없었다. 심유진은 불안한 마음을 안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3층으로 올라갔다. 복도를 따라 거의 끝까지 가니 덜 닫힌 문이 보였다. 문틈사이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아빠가 언니를 데려온다 했으니 걱정 마세요.”“네 언니가 고집이 세잖니...네 아빠가 나선다 해도 설득하기는 어려울거야...”“엄마가 이렇게나 아픈데...언니는 꼭 돌아올거예요!” “에휴...연희야...엄마는 후회 된단다...네 언니랑 일찍이 화해를 했더라면...이제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만약에, 만약에...” “엄마,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의사 선생님 말씀을 잘 들으면 이깟 병은 완치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컨트롤은 할수 있다고 했어요! 언니도 그렇게 쪼잔한 사람이 아니라서 엄마가 예전에 했던 잘못을 용서할 거예요!” 심유진은 벽에 기대어 반나절을 들었다. 한숨이 놓이는 동시에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사영은의 병은 심훈이 지어낸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것을 생각하니 심유진은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유진아가씨, 왜 안들어가세요?” 하인은 과일을 들고 올라오는데 그녀가 문어구에서 넋을 잃고 서있는것을 보니 이상하게 느껴졌다. 심유진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멋쩍게 웃었다. “지금 들어갈려구요.” 하인은 자연스럽게 손에 들고 있던 접시를 그녀에게 건넸다. “그럼 이걸 들고 들어가세요. 주인님이 저한테 부인과 연희아가씨한테 주라고 시켰습니다.” 이때 방문은 안에서 세게 열렸다. 심연희는 화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홍아줌마, 아빠가 아줌마한테 과일을 가져다 주라고 시킨 거지 언니한테 시킨게 아니예요! 하기 싫으면 지금 당장 사직하고 나가세요!” 홍아줌마는 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