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무현님이 여러분들을 위해 준비한 아침 식사입니다. 입에 맞을지 모르겠네요.”이은서는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들고 들어왔다. 중식도 있고 한식도 있고 양식도 있었다.그러자 공혜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누구세요?”“저 사람 이름은 이은서예요. 1호 별장의 특별 집사입니다.”우예원이 말했다.공혜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시 물었다.”리버타운에 집사가 있어?”아파트 개발업체는 SJ 그룹의 계열사이다. 임시 대표인 공혜리는 집사가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전 실장님이 1호 별장을 위해 특별히 집사를 두었어요. 제 본업은 부동산 판매고 집사는 제 부업입니다.”이은서가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러자 공혜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그렇군요.”전우식은 눈치가 참 빨랐다. 대표인 공혜리에게 이런 방식으로 인상을 남겼으니 앞으로 승진도 빠를 것 같았다.“앞으로 술이 이렇게 많으면 안 될 것 같아. 너무 힘들어.”공혜리가 이마를 짚고 한숨을 쉬었다.하지연과 우혜원은 상태가 괜찮았다. 두 사람은 술이 약해서 빠르게 취하고 자고 일어나니 아무 문제가 없었다.주방에서 우유를 데우고 있는 정은선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집이 시끌벅적하니 정말 좋네요. 앞으로 매일 이랬으면 얼마나 좋을까요!”“뭐가 좋아요? 예쁜 아가씨가 이렇게 많으면 우리 딸에게 불리하잖아요.”우현민은 생각이 많았다. 그러자 정은선은 갑자기 표정이 굳어졌다.“그렇네요! 그럼 다... 우리 딸의 경쟁자이네요. 게다가 아주 강한 경쟁자들.”“아침 일찍 음식을 사 오느라고 수고했어요. 아직 밥 안 드셨죠? 같이 먹어요.”염무현이 이은서에게 말했다. 이은서는 완곡하게 거절하려 했는데 우예원이 그녀를 잡아당기며 앉혔다.식탁 위에는 웃음소리와 대화 소리로 가득했다.비록 염무현은 무뚝뚝한척했지만, 미녀 사이에 둘러싸여 마치 꽃밭에 있는 것 같았다.공혜리는 쭈뼛거리며 일부러 염무현과 멀리 떨어져 앉았다. 원래 성격대로면 바로 그의 옆 좌석에 앉았을 것이다.염무현은
“무슨 뜻이죠?”양희지는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는 남도훈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말했다.“뻔뻔한 사기군 주제에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해요?”그러자 남도훈이 말했다.“욕심부리지 않았다면 속았겠어요? 내가 당신 목에 칼을 들이대고 돈을 투자하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잖아요. 당신도 바라는 게 있기 때문에 한 거겠죠. 그럼 위험을 감수할 각오는 있어야죠! 당신은 나의 수익을 노리는데 나는 왜 당신의 원금을 노리지 못해요? 이건 당연한 일 아닌가요?”양희지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이런 쓸데없는 소리를 하기 위해 나를 부른 거라면 이만 가볼게요.”그리고 그녀는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어딜 가요! 한 발짝 더 가면 당신 집에서 사람을 찾아 양준우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게 한 사실을 밝힐 거예요.”남도훈은 화를 내지 않고 덤덤하게 웃으며 말했다.“당신, 그리고 당신 부모님, 세 사람 모두 죗값을 물어야 할 거예요. 그리고 양준우는 폭행에 도주까지 죄를 함께 물면 10년 정도 되겠죠. 아이고, 인생 망했네. 당시 사고가 났을 때 이런 법조문도 자세히 검토해 보셨겠죠. 제가 헛소리를 하는 게 아닌 거 젤 잘 아실 텐데.”양희지는 남도훈의 말을 듣자 화가 잔뜩 부풀어 올랐다. 그녀는 다시 숨을 고르고 담담한척하며 말을 이어갔다.“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요.”“계속 연기하세요. 참. 하하!”남도훈은 그녀를 비웃으며 말했다.“희지 씨가 언제 제일 비겁한 줄 아세요? 가식적일 때! 속으로는 무서워 벌벌 떨면서도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은 척. 당신 같은 여자를 많이 봤으니깐 내 앞에서 시치미 떼지 마요. 내가 그때 술 좀 마셨다고 기억이 나지 않는 건 아니에요. 술병으로 내 머리를 친 자식은 염무현이 아니라 네 잘난 동생 양준우잖아요”양희지는 어떻게 말을 이어 갈지 몰라 다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남도훈을 쳐다보며 말했다.“뭐 하자는 거예요?”“아주 간단해요. 양해서에 사인만 하면 돼요. 돈을 뜯어낸 것이 내 본의가 아니고 내 모든 행위를
남도훈이 말을 이어갔다.“게다가 붙잡히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배신했잖아. 심지어 염무현의 삼촌한테 합의를 원한다면 나한테 4억 원을 배상해줘야 한다고 거짓말까지 하고. 사실 내가 요구한 건 2억뿐인데 돈도 그쪽에서 준비해서 너희 집은 일전 한 푼 보태주지 않았거든?”양희지가 두 눈을 부릅떴다.“그게 무슨 헛소리야? 배상금을 모으느라 신혼집마저 팔았는데!”“당신이 팔았어? 그리고 나한테 직접 돈을 준 것도 아니잖아.”남도훈이 되받아쳤다.“과연 누가 더 잘 알까?”양희지가 눈살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말이지?”“아무리 부모님이 파놓은 함정이라고 해도 친딸로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말이 돼?”남도훈이 비아냥거렸다.양희지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순간 무언가를 떠올린 듯싶었다.당시 부모님은 남도훈이 돈을 요구하면서 4억을 줘야만 합의한다고 했다.결국 그녀는 신혼집을 팔기로 결심했고, 부모님과 남동생이 극구 반대했지만 워낙 태도가 강경한지라 도무지 설득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셋은 마지못해 찬성했다.나중에 집을 팔고 돈을 받은 다음 양희지는 제일 먼저 남도훈부터 찾아가려고 했다.그러나 부모님이 여자가 이런 일에 혼자 나서면 무시당하기 딱 좋다며 설득하더니 자진해서 대신 처리해주겠다고 나섰다.두 사람이 집에 돌아왔을 때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합의서까지 챙겨왔으니 그녀는 당연히 돈을 줬다고 생각했다.그제야 부모님의 농락에 놀아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남도훈은 애초에 2억만 요구했고, 심지어 돈도 전부 우현민이 마련했다.4억은 고작 미끼에 불과했고, 우현민은 물론 그녀마저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다.순간, 양희지의 머릿속에 어젯밤 맞았던 따귀가 떠올랐다. 사실 1분 전까지만 해도 우예원을 향한 원망이 가득했지만 이제는 도무지 미워할 수가 없었다.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면 만약 본인이 당사자라고 했을 때 절대로 따귀 한 방으로 용서할 리가 없었다.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이 갑자기 돈이 생겼다고 했던 일이 떠올랐고, 출처가 바로 복권을 샀
“내 말은 어쨌거나 우리 양 대표가 똑똑한 사람이니까 올바른 선택을 할 거라고 믿기에 바쁜 와중에도 꼭 만나고 싶었던 뜻이라고.”남도훈의 얼굴에는 승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만만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그는 미리 준비한 합의서를 꺼냈고, 그제야 양희지는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이 지경이 된 이상 마치 도마 위의 생선 마냥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이런 식으로 법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로 생각해?”양희지는 합의서 내용을 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왜냐하면 확인해봤자 무용지물이었고, 어차피 사인해야 하는 운명인지라 굳이 본다고 해도 괜스레 마음만 심란했다.결국 마지못해 서명하면서 말을 이어갔다.“이런 얕은수는 절대 먹히지 않을 거야. 두고 봐!”비록 그녀는 협박받아서 어쩔 수 없이 타협했지만 다른 사람은 아직 모르는 일이다.누군가 합의에 동의하지 않는 한 남도훈의 음모는 실패하기 마련이다.“입만 살아서 말이야, 멋대로 생각해. 그동안의 친분을 봐서라도 못 들은 척해줄 테니까.”남도훈이 일부러 배려하는 척 말하자 양희지는 화가 발끈 났다.“원한을 품는 건 미숙한 사람이나 하는 짓이야. 특히 사업가에게는 이익이 가장 중요하거든. 우리가 다시 만나서 담소를 나누며 술자리도 가지고 더욱 깊이 있는 교류와 협력을 논하는 날이 곧 올 거라고 믿어.”“꿈 깨.”양희지는 펜을 내동댕이치고 돌아서서 자리를 떠났다.남도훈은 어깨를 으쓱했다. 양희지가 밖으로 나가자 느긋하게 합의서 뭉치를 꺼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꿈 같은 소리하네. 곧 현실로 만들어주지.”구치소 밖, 양희지는 차에 올라타고 기사에게 출발하라고 했다.현재 그녀의 마음은 심란 그 자체였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초에 남도훈의 면회를 거절하고 김준휘에게 부탁해서 완전히 입막음했을 것이다.하지만 이미 쏟아진 물이라 되돌이킬 수는 없었다.그리고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일은 그동안 자랑스럽게 여겼던 모든 업적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전부 염무현과 연루
이에 비해 동창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동창 중에서 과연 자신보다 더 잘 나가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비록 모두의 선망과 아부의 대상이 되긴 하겠지만, 이런 무의미한 인사치레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아마도 시간이 애매할 것 같아. 요즘 바쁜 시기라...”양희지가 단호하게 거절하자 박동하는 다급히 말했다.“왜? 설마 우리 양 대표가 눈이 너무 높아서 가난한 동창들을 무시하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너무 실망이야. 걱정하지 마, 그냥 한자리에 모여서 밥이나 먹자는 건데, 절대로 다른 의도는 없어. 이게 대체 얼마 만이야? 보고 싶은 사람 혹은 잊지 못한 추억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양희지의 눈썹이 까딱했다.“염무현도 온대?”“그건 우리 양 대표한테 달렸지. 염무현도 부를 거야? 말 거야?”박동하는 워낙 눈치 빠른 편이라 상황을 파악하기 전에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자칫 말실수라도 한다면 만회할 방법이 없으니까.“염무현을 부를 수만 있다면 나도 갈게.”양희지가 제안했다.사실 그녀의 생각은 사뭇 단순했다. 과거를 회상하는 핑계로 염무현과 허심탄회하게 터놓고 그동안 맺힌 앙금을 최대한 풀어버릴 작정이다.만약 가능만 하다면 재혼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하지만 양희지는 본인의 제안이 마침 박동하의 음모를 이루게 하는 꼴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그가 동창회를 만든 가장 큰 목적이 바로 염무현에게 망신을 주어 부동산과 쇼핑몰에서 당했던 모욕을 똑같이 돌려주기 위함이었다.사실 양희지가 염무현의 출현을 꺼릴까 봐 의도를 파악하는 차원에서 미리 연락했다.만약 본인의 추측이 맞는다면 양희지를 초대할 생각이 없었다.왜냐하면 그의 타깃은 오로지 염무현이기 때문이다.“알겠어! 양 대표, 걱정하지 마. 염무현도 무조건 부를게.”박동하는 재빨리 대답했다.“시간과 장소가 정해지면 카카오톡으로 보낼게.”전화를 끊자 양희지는 기분이 한결 나아진 듯했다.“공혜리, 넌 고작 후발 주자에 불과할 뿐이야. 기껏해야 애인이겠지.”그녀는 자
고진성은 미리 준비라도 마친 듯 잽싸게 사진 한 장을 보냈다.바로 양희지가 서명한 합의서인데 염무현은 그녀의 사인을 단번에 알아보았다.이내 인상을 펴고 엘리베이터를 올라타더니 꼭대기 층으로 향했다.똑똑!서류를 확인하던 공혜리는 고개를 들었다.“들어오세요.”문이 열리고 염무현의 모습이 나타나자 공혜리는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볼이 점점 빨개지기 시작했다.분명 어젯밤 일이 머릿속에 떠오른 게 확실했다.만약 무현 님이 다시 언급한다면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한단 말이지?“어젯밤...”“네?”공혜리가 저도 모르게 새된 비명을 질렀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더니!“왜요?”염무현이 앞으로 다가가 걱정스럽게 물었다.“어디 아파요? 제가 봐줄까요?”“아니요! 말씀하세요.”공혜리가 고개를 푹 숙였다.염무현은 별생각 없이 말을 이어갔다.“어젯밤 바에서 김준휘 옆에 있는 사람 봤어요?”공혜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의혹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마스터님 말씀인가요?”“아니, 다른 사람. 비열하게 생긴 남자 있잖아요.”염무현이 정정하자 공혜리가 눈살을 찌푸렸다.“얼핏 본 것 같기도 하고… 어디서 만난 적이 있는 듯한데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예전에 서경철 옆에 있던 사람이에요.”염무현이 힌트를 줬다.공혜리는 정신이 번쩍 드는 듯 말했다.“아, 서경철의 군사네요! 허씨 가문이 망한 이후로 유일하게 모습을 감췄는데, 미꾸라지처럼 수사망을 쏙 빠져나갔군요.”“그날 밤에 천하 그룹 건물에 같이 있었어요.”염무현이 말했다.공혜리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대답했다.“놓쳐서 너무 아쉽군요.”“물론 내가 일부러 봐주긴 했지만...”이내 의외의 답변이 들려왔다.순간 넋을 잃은 공혜리는 곧바로 포인트를 캐치했다.“서경철의 군사가 김준휘 주변에 당당하게 모습을 보였다는 건 두 집안이 오래전부터 남몰래 공모해 왔다는 사실을 증명하죠. 이에 배후의 세력은 바로 김씨 가문이며, 또한 저희 집안을 타깃으로 삼았다는 것을 유추해 낼 수 있는데..
공혜리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네! 참, 여지윤 씨가 차를 마시자고 했거든요? 무현 님은...”염무현이 미소를 살짝 지었다.“가요, 공 대표에 대한 인상이 꽤 좋은 것 같은데.”“하지만 무슨 목적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공혜리는 확신이 없는 듯 말했다.어제 법정에서도 여지윤의 태도가 과하게 친절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괜스레 다른 꿍꿍이를 꾸미는 건 아닌지 싶었다.“손윗사람이라고 여기고 편하게 대해요.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염무현의 말에 공혜리는 한결 안심되었다. 손윗사람이 확실하군.여지윤이 나이 차이를 운운하며 이모라는 호칭을 고집하는데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알고 보니 무현 님의 지인이라니!공혜리의 휴대폰이 울리고, 이내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대표님께서 무현 님도 같이 오라고...”“그래요.”염무현이 어깨를 으쓱했다.사모님의 부탁을 어찌 거절하겠는가?더욱이 미덥지 못한 사부님을 둔 바람에 빚을 대신 갚아주는 제자 신세가 되었으니 누굴 탓하리!한편, 남호 근처의 한 호텔.남도훈은 로브를 입고 통유리창 앞에 서서 건너편 리버타운을 바라보았다.1호 별장을 향한 그의 시선은 원망과 증오로 가득했고, 고즈넉한 노을과 비교하면 너무 대조적이었다.“개자식이 제 주제도 모르고 감히 이렇게 좋은 동네에 살아?”등 뒤의 킹사이즈 침대는 엉망진창이었고, 홀딱 벗은 알몸의 여인 두 명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주변 상황을 유추해보면 한 바탕 격정적인 순간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남도훈이 문득 고개를 돌렸다.“행동은 개시했나요?”검은색 슈트 차림에 선글라스까지 쓴 사각턱 남자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요원들은 전부 출동 완료했어요. 1팀은 대학교 입구, 2팀은 슈퍼 근처, 3팀은 혜리 그룹 건물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도훈 씨,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블루 울프 용병단은 전부 프로급이라 고작 일반인 3명 따위를 납치하는 건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예요.”말을 이어가는 중년 남자의 얼굴에 저도 모르게 자신
“우리 저녁에 뭐 먹지? 둘 다 현지인이니까 맛집 추천 좀 해줘. 난 그냥 따라갈게.”여지윤과 공혜리는 소파에 딱 붙어 앉아 있었다. 두 여자는 반나절 만에 벌써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엄연히 말하면 나이를 초월한 그런 우정이었다.여지윤이 정확하게 몇 살인지는 옥의 신을 제외하고 아무도 몰랐다.관리를 잘하는 여자일수록 나이가 미스테리인 건 사실이다.어차피 공개해봤자 믿을 사람이 없으며, 두 여자가 자매라고 해도 감쪽같이 속을 것이다.공혜리가 스카이 레스토랑에 가자고 제안하려던 찰나 염무현의 휴대폰이 대뜸 울렸다.물론 낯선 번호라서 금세 끊었지만 곧이어 상대방한테서 또다시 연락이 왔다.염무현은 이번에도 미련 없이 끊었다.벨 소리가 세 번째로 울렸을 때 화면에 우예원의 번호가 떴다.“여보세요? 예원아...”전화를 받자마자 염무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왜냐하면 스피커 너머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어딘가 익숙했기 때문이다.“염무현 이 개자식아, 내가 누군지 알지? 그리고 왜 이 여자의 휴대폰으로 연락했는지도 짐작이 갈 텐데?”남도훈이 의기양양한 말투로 말했다.“내 번호로 연락했더니 안 받아서 어쩔 수가 없었거든.”“어쩌라고?”염무현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되물었고,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남도훈이 코웃음을 쳤다.“내 손에 지금 총 3명이 있는데 누군지 추측해 봐. 서쪽 외곽에 있는 폐공장이야. 너 혼자 와, 딱 30분 줄게. 1분이 오버될 때마다 팔 혹은 다리를 하나씩 잘라버리고, 사지가 없으면 목을 벨 거야.”이내 말을 마치고 나서 상대방은 전화를 뚝 끊었다.“무슨 일이죠?”공혜리가 서둘러 물었다.염무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사모님 모시고 식사하러 가요.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이만 가볼게요.”“그럼 조심하고 문제 생기면 연락해요.”서둘러 나서서 대답하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외출하는 남편을 걱정하는 와이프를 연상케 했다.염무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여지윤에게 미안하다는 눈빛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