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성은 미리 준비라도 마친 듯 잽싸게 사진 한 장을 보냈다.바로 양희지가 서명한 합의서인데 염무현은 그녀의 사인을 단번에 알아보았다.이내 인상을 펴고 엘리베이터를 올라타더니 꼭대기 층으로 향했다.똑똑!서류를 확인하던 공혜리는 고개를 들었다.“들어오세요.”문이 열리고 염무현의 모습이 나타나자 공혜리는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볼이 점점 빨개지기 시작했다.분명 어젯밤 일이 머릿속에 떠오른 게 확실했다.만약 무현 님이 다시 언급한다면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한단 말이지?“어젯밤...”“네?”공혜리가 저도 모르게 새된 비명을 질렀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더니!“왜요?”염무현이 앞으로 다가가 걱정스럽게 물었다.“어디 아파요? 제가 봐줄까요?”“아니요! 말씀하세요.”공혜리가 고개를 푹 숙였다.염무현은 별생각 없이 말을 이어갔다.“어젯밤 바에서 김준휘 옆에 있는 사람 봤어요?”공혜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의혹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마스터님 말씀인가요?”“아니, 다른 사람. 비열하게 생긴 남자 있잖아요.”염무현이 정정하자 공혜리가 눈살을 찌푸렸다.“얼핏 본 것 같기도 하고… 어디서 만난 적이 있는 듯한데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예전에 서경철 옆에 있던 사람이에요.”염무현이 힌트를 줬다.공혜리는 정신이 번쩍 드는 듯 말했다.“아, 서경철의 군사네요! 허씨 가문이 망한 이후로 유일하게 모습을 감췄는데, 미꾸라지처럼 수사망을 쏙 빠져나갔군요.”“그날 밤에 천하 그룹 건물에 같이 있었어요.”염무현이 말했다.공혜리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대답했다.“놓쳐서 너무 아쉽군요.”“물론 내가 일부러 봐주긴 했지만...”이내 의외의 답변이 들려왔다.순간 넋을 잃은 공혜리는 곧바로 포인트를 캐치했다.“서경철의 군사가 김준휘 주변에 당당하게 모습을 보였다는 건 두 집안이 오래전부터 남몰래 공모해 왔다는 사실을 증명하죠. 이에 배후의 세력은 바로 김씨 가문이며, 또한 저희 집안을 타깃으로 삼았다는 것을 유추해 낼 수 있는데..
공혜리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네! 참, 여지윤 씨가 차를 마시자고 했거든요? 무현 님은...”염무현이 미소를 살짝 지었다.“가요, 공 대표에 대한 인상이 꽤 좋은 것 같은데.”“하지만 무슨 목적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공혜리는 확신이 없는 듯 말했다.어제 법정에서도 여지윤의 태도가 과하게 친절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괜스레 다른 꿍꿍이를 꾸미는 건 아닌지 싶었다.“손윗사람이라고 여기고 편하게 대해요.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염무현의 말에 공혜리는 한결 안심되었다. 손윗사람이 확실하군.여지윤이 나이 차이를 운운하며 이모라는 호칭을 고집하는데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알고 보니 무현 님의 지인이라니!공혜리의 휴대폰이 울리고, 이내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대표님께서 무현 님도 같이 오라고...”“그래요.”염무현이 어깨를 으쓱했다.사모님의 부탁을 어찌 거절하겠는가?더욱이 미덥지 못한 사부님을 둔 바람에 빚을 대신 갚아주는 제자 신세가 되었으니 누굴 탓하리!한편, 남호 근처의 한 호텔.남도훈은 로브를 입고 통유리창 앞에 서서 건너편 리버타운을 바라보았다.1호 별장을 향한 그의 시선은 원망과 증오로 가득했고, 고즈넉한 노을과 비교하면 너무 대조적이었다.“개자식이 제 주제도 모르고 감히 이렇게 좋은 동네에 살아?”등 뒤의 킹사이즈 침대는 엉망진창이었고, 홀딱 벗은 알몸의 여인 두 명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주변 상황을 유추해보면 한 바탕 격정적인 순간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남도훈이 문득 고개를 돌렸다.“행동은 개시했나요?”검은색 슈트 차림에 선글라스까지 쓴 사각턱 남자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요원들은 전부 출동 완료했어요. 1팀은 대학교 입구, 2팀은 슈퍼 근처, 3팀은 혜리 그룹 건물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도훈 씨,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블루 울프 용병단은 전부 프로급이라 고작 일반인 3명 따위를 납치하는 건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예요.”말을 이어가는 중년 남자의 얼굴에 저도 모르게 자신
“우리 저녁에 뭐 먹지? 둘 다 현지인이니까 맛집 추천 좀 해줘. 난 그냥 따라갈게.”여지윤과 공혜리는 소파에 딱 붙어 앉아 있었다. 두 여자는 반나절 만에 벌써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엄연히 말하면 나이를 초월한 그런 우정이었다.여지윤이 정확하게 몇 살인지는 옥의 신을 제외하고 아무도 몰랐다.관리를 잘하는 여자일수록 나이가 미스테리인 건 사실이다.어차피 공개해봤자 믿을 사람이 없으며, 두 여자가 자매라고 해도 감쪽같이 속을 것이다.공혜리가 스카이 레스토랑에 가자고 제안하려던 찰나 염무현의 휴대폰이 대뜸 울렸다.물론 낯선 번호라서 금세 끊었지만 곧이어 상대방한테서 또다시 연락이 왔다.염무현은 이번에도 미련 없이 끊었다.벨 소리가 세 번째로 울렸을 때 화면에 우예원의 번호가 떴다.“여보세요? 예원아...”전화를 받자마자 염무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왜냐하면 스피커 너머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어딘가 익숙했기 때문이다.“염무현 이 개자식아, 내가 누군지 알지? 그리고 왜 이 여자의 휴대폰으로 연락했는지도 짐작이 갈 텐데?”남도훈이 의기양양한 말투로 말했다.“내 번호로 연락했더니 안 받아서 어쩔 수가 없었거든.”“어쩌라고?”염무현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되물었고,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남도훈이 코웃음을 쳤다.“내 손에 지금 총 3명이 있는데 누군지 추측해 봐. 서쪽 외곽에 있는 폐공장이야. 너 혼자 와, 딱 30분 줄게. 1분이 오버될 때마다 팔 혹은 다리를 하나씩 잘라버리고, 사지가 없으면 목을 벨 거야.”이내 말을 마치고 나서 상대방은 전화를 뚝 끊었다.“무슨 일이죠?”공혜리가 서둘러 물었다.염무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사모님 모시고 식사하러 가요.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이만 가볼게요.”“그럼 조심하고 문제 생기면 연락해요.”서둘러 나서서 대답하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외출하는 남편을 걱정하는 와이프를 연상케 했다.염무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여지윤에게 미안하다는 눈빛을
“법이 뭐 대수라고? 당신들처럼 하루 살기 바쁜 미천한 시민이야말로 법을 무서워하겠지만 돈과 명예를 지닌 사람은 되레 혜택을 받는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남도훈은 안하무인이 따로 없었다.“그리고 납치한 이유에 대해서는 금방 알게 될 거야.”말을 마친 그는 오민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오민수는 무전기를 꺼내서 말했다.“함정을 설치하고 목표물이 나타나는 즉시 체포해.”어쨌거나 직접 쟁취한 기회인 만큼 용병단의 위용을 과시하고 용국에서의 인지도를 높여야 하지 않겠는가?남도훈의 계획에 따라 인질로 염무현을 협박하면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에 굳이 부질없는 짓을 할 필요가 없었다.밖에는 악명이 자자한 용병들이 재빨리 어둠 속에서 자취를 감췄다.“예원아,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우현민이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다들 나쁜 사람이에요. 목표는 무현 오빠죠.”우현민은 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오로지 염무현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출동하다니? 분명 위험한 상황에 부닥칠 게 뻔했다.10분 뒤, 문밖에서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됐어요!”오민수가 기쁜 얼굴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제가 한 말 아직 기억하죠? 이름도 모르는 애송이를 붙잡는 건 식은 죽 먹기라고 했잖아요. 부하들이 소리소문없이 임무를 무사히 완수했어요! 도훈 씨, 이제야 저 좀 믿을 것 같나요? 우린 도훈 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능력이 훨씬 더 뛰어나거든요. 인질 납치는 사실상 무용지물이죠.”곧이어 방문이 열렸다.끼익-!이내 소나무처럼 꼿꼿한 모습이 입구에 나타났다.“너...!”남도훈이 깜짝 놀랐다.한편, 오민수의 표정은 더욱 가관이다. 희색이 만연한 얼굴은 금세 경악으로 가득했다.“말도 안 돼.”그는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말했다.“부하들이 밖에 빈틈없는 경계망을 쳤을 텐데? 봉쇄선을 몰래 뚫은 사람은 여태껏 아무도 없었어. 절대 불가능한 일이야!”상대방은 다름 아닌 염무현이며, 손을 번쩍 드는 순간 군용 이어폰 십여
“아저씨, 아줌마, 예원아! 여기까지 왔는데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잖아요.”염무현이 안심하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여러분을 꼭 무사히 집까지 데려다줄게요.”“하지만 상대방은 인원수도 많고 총도 지니고 있잖아.”우현민은 떠날 생각이 없는 듯한 염무현을 보자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넌 아직 나이도 어리고 앞으로 갈 길이 멀어. 절대로 우리를 살려주려고 목숨을 버리지 마.”우예원도 큰 소리로 말했다.“오빠, 얼른 가! 아빠 말이 맞아, 우린 신경 안 써도 돼. 그동안 내가 미안했어. 날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해줬는데 어떻게 보답해 줘야 할지도 모르겠어. 빨리 도망치라니까? 이 한목숨 바쳐 오빠의 안전을 바꿀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어.”짝! 짝!남도훈이 대뜸 손뼉을 치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감동해서 눈물이 날 것 같군. 고작 범죄자 주제에 인복이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네? 다들 눈이 멀었나? 어쨌거나 하나뿐인 목숨인데, 이렇게 귀한 걸 어찌 안중에도 없는 거지? 염무현, 세 식구가 널 위해 기꺼이 희생한다잖아, 정녕 죽게 놔둘 거야? 네가 도망치는 즉시 이 사람들을 죽여버릴 테니까 두고 봐.”염무현이 싸늘한 눈빛으로 남도훈을 힐긋 쳐다보았다.“여기까지 찾아온 이상 쉽게 도망가지는 않을 거야.”“그렇다면 정말 다행이고.”남도훈은 목적을 달성한 듯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즉, 이번 내기에서는 그가 이겼다는 것을 증명했다.구치소에 갇혀 있는 동안 남도훈은 염무현을 줄곧 연구했고, 유난히 정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채고는 우예원 일가족을 납치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인질을 확보한 이상 실력이 아무리 강해도 옴짝달싹 못하기 마련이다.남도훈은 분노에 찬 얼굴로 이를 바득바득 가는 오민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부하들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체면까지 구겨졌으니 오민수는 도무지 화를 참을 수 없었다.그러나 우선 임무부터 완수해야 한다는 생각에 치밀어 오르는 울화통을 꾹꾹 눌러 담고 허리춤에서
“만약 셋 셀 동안까지도 꿈쩍 안 하면 이 사람들의 머리를 쏴버릴 테니까 두고 봐.”“셋!”남도훈이 염무현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게다가 압력을 가하기 위해 권총을 꺼내더니 우예원의 이마를 겨누었다.아니나 다를까 그의 예상대로 염무현은 군도를 들어 심장에 갖다 댔다.“하하하, 그것도 나쁘지 않지. 목을 베면 집안에 피투성이가 되니까 차라리 심장을 찌르는 게 더 나을 거야.”남도훈의 표정이 점점 흉악하게 변했고, 목적을 이룬 듯 의기양양했다.“무현아, 안 돼!”우현민이 큰 소리로 외쳤다.우예원과 정은선 모녀는 가슴이 아픈 나머지 동시에 눈물을 흘렸다.남도훈이 둘이라고 하는 찰나 염무현이 먼저 말했다.“내가 할게. 하나!”남도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너 바보 아니야? 둘 하기도 전에 하나부터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렇게 죽고 싶어 안달...”털썩!이때, 말이 끝나기도 전에 권총을 들고 우현민의 머리를 겨누던 용병이 멍한 얼굴로 바닥에 픽 쓰러졌다.곧이어 다른 사람도 그대로 꼬꾸라졌다.심상치 않은 상황을 눈치챈 오민수는 무의식중으로 방아쇠를 당기려고 했지만 갑자기 손이 뻣뻣하게 굳으며 눈앞이 빙글빙글 돌더니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남도훈도 당최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 듯 중얼거렸다.“뭐지...?”곧이어 우예원 일가족도 고개를 축 늘어뜨렸다.결국 염무현을 제외하고 모두가 혼수상태에 빠졌다.“감히 내 앞에서 잔머리를 굴려? 애송이 같으니라고.”염무현은 손에 든 군도를 던지고 길막하는 오민수를 걷어차더니 우씨 일가족을 향해 다가갔다.누가 신의는 사람만 구한다고 했나? 독약도 그에게 껌에 불과했다.염무현은 안에 들어가자마자 무색무취의 독 연기를 살포했고, 방 전체에 금세 빠르게 퍼져 나갔다.우예원 일가족만 없었더라면 단지 기절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놈들을 죽이고도 남았을 것이다.이내 세 사람을 묶은 밧줄을 풀어주고 우선 우예원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무현 님.”고진성은 바짝 긴장하더니 염무현
“4년 전의 일은 네가 알고 있는 그대로야. 뭐... 할 말이 따로 없는데?”눈길을 피하는 모습은 무언가를 숨기는 게 확실했다.푹!염무현은 손에 든 군도로 대뜸 남도훈의 허벅지를 찔렀고, 칼날이 그대로 의자를 관통했다.“악!”남도훈이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염무현은 싸늘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난 워낙 인내심이 부족해서 잔꾀를 부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너한테 좋은 점이 하나도 없거든?”남도훈은 더는 잔머리를 굴리지 않고 술술 털어놓았다.“알았어, 다 얘기해줄게!”그러고는 미주알고주알 낱낱이 말했다.염무현은 들으면 들을수록 눈살이 점점 찌푸려졌다.양씨 가문이 몰래 이렇게나 많은 나쁜 짓을 했으리라 생각지도 못했다.그동안 성추행당한 사람이 신부인 양희지인 줄 알고 양준우를 대신하여 죄를 뒤집어쓰기로 하지 않았는가?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당사자가 따로 있었고, 바로 양준우가 신부 들러리로 부른 여자친구였다.다시 말해서 피해자는 양희지가 아니었다.즉 모든 건 양씨 일가족의 자작극에 불과했다.양준우는 소송에 휘말려 처벌받을까 봐 두려웠고, 양희지는 거짓말로 신혼 남편을 속여 대신 죗값을 치르게 했다.심지어 더한 짓도 마다하지 않았다.염무현이 4년 동안 억울하게 옥살이를 마치고 출소하는 첫날 양희지에게 파혼당했다.이유는 고작 범죄자의 신분으로 억대 몸값을 지닌 미녀 대표인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또한 양가네 나머지 세 식구는 그에게 감지덕지하기는커녕 죄수라는 둥, 딸아이의 발목을 4년이나 붙잡은 탓에 재벌 집에 시집가지 못했다는 둥 소리를 달고 살면서 눈엣가시로 여겼다.게다가 본인이 마련한 신혼집마저 팔아서 뻔뻔스럽게 돈을 가로채지 않았는가?그리고 남도훈과 손을 잡고 우현민의 돈을 갈취했고, 결국 사채에 손을 댄 일가족은 꼬박 4년 동안 힘든 나날을 보냈다.지금껏 저질렀던 악행을 돌이켜보면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헛소리가 아니라는 걸 증명할 수 있어?”염무현이 미간을 찌푸린 채 두 눈에 살기가 일렁거렸
염무현이 떠난 뒤, 뭔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그녀는 여지윤을 데리고 외식하면서도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렸다.잠시 후 김범식이 한 무리의 부하를 이끌고 밀리네어로 위풍당당하게 찾아갔다.“내가 아는 건 다 실토했으니까 제발 살려줘.”남도훈은 불쌍한 표정으로 애원했다.“앞으로 다시는 잔머리 굴리지 않겠다고 맹세할게. 그래도 걱정이 된다면 당장 출국해서 평생 해외에 있을 테니까!”염무현은 눈길조차 안 주고 뒤돌아서 걸어 나갔다.“무현 님.”고진성이 곧바로 그를 맞이했다.염무현의 표정은 감정이란 찾아보기 힘들었다.“이 사람들은 어떻게 처리할 건가요?”고진성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말했다.“오민수가 이끄는 블랙 울프 용병단은 해외에서 수차례 살인 사건을 저질러 인터폴에서 이미 지명수배를 내렸죠. 용국에서 체포된 이상 살아서 떠날 생각은 버려야 하지 않겠어요?”정의의 심판을 받는 것이야말로 그들의 앞에 놓인 유일한 길이었다.“남도훈이 용병을 고용하여 용국 내에서 납치를 감행하고 살인을 계획한 것도 중범죄에 속하기에 이번에는 끝장났다고 보면 돼요.”염무현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부탁할게요. 지난번처럼 외부에 나랑 관련이 있다고 말하지 마세요.”고진성은 서둘러 대답했다.“무현 님,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평생 잊지 않을게요.”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공로가 다시 한번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마냥 그에게 찾아왔다.이제 한 도시의 총사령관으로 승진하는 건 떼놓은 당상이다.그동안 질투에 눈이 멀어 뒤에서 몰래 수작을 부리고 고자질하는 놈들에게 보란 듯이 증명해서 입을 싹 닫게 할 것이다.염무현은 우예원 일가족이 탄 차에 가서 한 명씩 침을 놓아주었다.곧이어 세 식구는 천천히 눈을 떴다.“무현 오빠!”우예원이 차에서 뛰어내려 염무현의 품에 안겨 눈물을 펑펑 흘렸다.“괜찮아? 깜짝 놀랐어.”“응, 멀쩡한데?”염무현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어 그녀의 부드러운 생머리를 쓰다듬으며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그리고 세 사람이 지나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