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겠어?”태로운은 계속해서 비서한테 화풀이했다.기승호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네!”“빨리빨리 안 움직여? 너 때문에 다들 커피도 못 마시게 생겼잖아. 얼른 휴대폰 어플로 주문해.”태로운은 씩씩거리며 뒤돌아서 떠났다.기승호는 마치 억울한 며느리처럼 마지못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태로운의 성격을 봐서는 오늘 커피값은 청구하기는커녕 자신이 내야 할 듯싶었다.이 많은 사람이 한 잔씩 시켜도 메뉴마저 다양한지라 몇십만 원은 쉽게 깨지지 않겠는가?애간장이 타들어 가는 기승호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휴대폰으로 주문했다.그리고 결제하기 직전 갑자기 잔머리가 발동해 일부러 하나를 빼고 다시 장바구니에 담았다.곧이어 배달 기사가 몇십 잔의 커피를 들고 헐레벌떡 도착했다.“여러분, 커피 마셔요. 여러 가지 메뉴가 있으니까 먹고 싶은 거로 골라요.”사람들도 사양하지 않고 하나둘씩 찾아가더니 금세 두 잔만 남았다.기승호는 남은 음료수 중에서 한 잔은 자기 자리에 놓았고, 나머지 한 잔을 들고 싱글벙글 웃으며 우예원을 향해 다가갔다.“예원 씨 맞지? 자네 이력서를 봤는데 말이야, 인턴에서 정직원이 된 케이스더라고. 애 많이 썼을 텐데, 열심히 노력하는 타입인 것 같군. 이거 마셔. 복숭아 티 크림 라떼야, 여자들의 입맛에 딱이라고 들었어. 한 입 맛 보면 온종일 기분이 좋을 거라 일할 때도 의욕이 넘칠 거야.”물론 그는 미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더욱 음흉한 목적이 있었다.그건 바로 편을 나눠 염무현을 고립시키는 것이다.우예원이 커피를 받아들이는 순간 태로운 진영에 합류하는 것을 뜻하므로 염무현은 외톨이 신세가 될 게 뻔했다.다들 커피 한 잔씩 있는데 염무현만 없다니,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찌 모르겠는가?아까 괜히 말대꾸해서 상사에게 한 소리 듣고도 돈까지 날렸으니 본때를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그는 우예원처럼 똑똑한 여자라면 올바른 선택을 하리라 굳게 믿었다.“미안한데 저 커피 안 마셔요.”우예원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딱 잘
기승호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염무현과 우예원은 굳이 톤을 낮추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도 똑똑히 들었다.이렇게 대놓고 무시하다니? 한판 뜨자는 건가? 정말 해도 해도 너무했다.우예원이 커피를 거절해서 체면이 구긴 건 사실이지만, 창피할 정도는 아니었다.여자인 점을 고려하여 친하지 않은 사람이 건네준 음료수를 사양하는 건 자신을 보호할 줄 아는 처신으로 간주하여 예의가 없기는커녕 오히려 칭찬받아 마땅했다.그러나 눈 깜짝할 사이에 커피를 좋아한다고 할 줄이야!심지어 같은 카페에 동일한 메뉴이지 않은가? 일부러 그를 골탕 먹이려고 작정한 듯싶었다.기승호는 자리로 돌아가 씩씩거리며 커피를 휴지통에 버리며 불쾌함을 내비치려고 일부러 큰 소리를 냈다.그러나 염무현과 우예원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본인이 화가 나면 났지, 그게 남이랑 무슨 상관이람?“젠장!”기승호는 도무지 분노를 가라앉힐 방법이 없어 곧장 태로운을 찾아가 고자질했다.“감히 꼼수를 부려? 하지만 우리 예상을 빗나가서 그렇지 뭐 그리 대수라고.”태로운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어차피 망신당한 사람은 본인이 아니라 당연히 마음에 담아두지도 않았다.무려 부대표라는 사람이 체통 없이 고작 일개 직원을 찾아가 귀찮게 굴겠냐는 말이다.체면이 깎이게 어찌 그런 짓을 하겠는가?“그러나 이대로 넘어가는 순간 우리가 만만하다고 생각할 텐데 나중에 점점 더 관리하기 힘들지도 몰라요.”기승호가 부루퉁한 얼굴로 반박하자 태로운이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었다.“영업팀에서는 우리가 왕이야. 고작 직원 두 명이 무슨 반란을 일으킨다고? 별 보잘것없는 사람을 혼내려다가 일을 키워서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터지면 우리의 목적을 이루는 데 영향 줄 수도 있으니 득보다 실이 많지 않겠어? 만약 도무지 화가 안 풀린다면 일이나 왕창 몰아주고 소처럼 부려 먹어. 별것도 아닌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해?”기승호는 그제야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어요.”오후가 되자 업무 환경을 어느 정도 파악한 그는 금세 보복
거절은 꿈도 꾸지 않은 게 좋아질 테니까.“날 이미 조사했으니 굳이 출퇴근 안 하고 아무 때나 자리를 비우거나 회사를 떠나도 된다는 건 알고 있겠지?”염무현은 기승호가 보복하려고 일부러 트집 잡는 의도를 단번에 눈치채고는 순순히 봐줄 생각이 없었다.“그러니까 미안한데 그쪽이 시킨 일은 못 해.”“무슨 헛소리야? 직원이 출퇴근 안 해도 된다는 소리는 태어나서 처음 들어. 거짓말도 그럴싸하게 해야지.”기승호는 화가 난 듯 두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지금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었다고 무시하는 건가?그가 직장에서 온갖 고초를 겪을 때 대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학생 주제에!“서류 뭉치를 내려놓는 순간 난 바로 퇴근할 거야. 어디 사실인지 아닌지 직접 확인해 보던가.”염무현이 되받아치자 기승호는 분노가 끓어올랐다.“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여 봐! 무단결근으로 처리할 테니까. 상사 말을 귓등으로 듣는 무례한 직원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로 잘리고 싶어?”“실장님한테 그럴 권리는 없을 텐데?”이때, 하지연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오피스 룩 차림의 그녀는 글래머한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냈고,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어 프로패셔널한 느낌을 물씬 풍겼다.검은색 스타킹을 신은 늘씬한 두 다리, 그리고 아찔한 하이힐이 움직일 때마다 또각거리는 소리를 냈다.“당신은 또 누구지?”기승호가 두 눈을 부릅떴다.하지연이 자기소개했다.“인사팀 팀장 하지연, 하 팀장이라고 부르시면 돼요.”뭐?기승호의 화가 금세 누그러졌다.이렇게 젊고 예쁜 여자가 기껏해야 입사한 지 1~2년 정도 돼 보이는데 벌써 한 부서의 팀장 자리까지 꿰차다니?그는 제멋대로 하지연이 공 대표의 지인 혹은 절친 아니면 동창이라고 추측했다.어쨌거나 제일 친한 사이라서 인사팀이라는 중요한 부서를 맡겼을 테니까.“하 팀장님이요? 이런 실례를...”기승호는 황급히 미소를 쥐어 짜냈다.반면, 하지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출퇴근이 필요 없는 건 무현 씨의 특권이죠. 실장님뿐만 아니라 부대표님마저 간
공혜리는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그러나 태로운의 말이 사실이라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그동안 공규석이 맹독에 중독되어 비상시기에 임명받아 SJ그룹을 인수 받는 바람에 정작 혜리 그룹은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또한, 영업팀은 도명철 같은 바람둥이의 관리하에 실적이 눈에 띄게 하락했다.나중에 팀 전체를 빼앗겼으니 판매 데이터가 끔찍한 건 필연적인 결과였다.전반적으로 볼 때 SJ그룹은 흑자인지라 그녀도 혜리 그룹의 위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사실 염무현만 아니었다면 회사에 나오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물론 이는 모두에게 비밀이며, 티를 내도 안 되었다. 아니면 직원들이 불안해할지도 모른다.“부대표님의 걱정도 이해는 갑니다. 제 개인적인 부주의로 인해 회사가 이 지경이 된 건 사실이죠. 여러분이 지켜보는 앞에서 깊이 뉘우치도록 할게요.”공혜리는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본인이 저지른 일은 흔쾌히 인정하는 편이다.“하지만 다들 걱정하지 마세요. 회사에서 신제품 개발을 착수하고 있는데 이미 인체 실험 단계까지 진입한지라 출시할 날이 머지않았어요. 그때가 되면 없어서 못 살 테니까 판매 부진을 만회할 거예요.”공혜리는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비서한테 석연고 샘플을 몇 개 가져다 달라고 했다.“여러분, 이게 바로 샘플입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연고는 흉터 제거, 미백 그리고 피부 보습까지 3가지 효능을 가질뿐더러 여러 실험 수치도 표준치를 훨씬 능가하여 타 브랜드 제품은 비교조차 안 되죠. 즉, 회사의 미래와 전망은 아주 밝을 테니까 다들 안심하세요. 여러분들이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 향후의 발전에 대해 걱정이 될 수는 있지만, 대표라는 자리를 걸고 절대로 실망시켜 드리지 않으리라 약속할게요.”우예원이 석연고를 집어 들어 뚜껑을 여는 순간 상큼한 향이 사방으로 퍼지면서 단번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냄새만 하더라도 화학성 향료와 비교할 바가 안 되었다.이때, 염무현이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이 냄새는 옥연고의 미완성 버전이지
공혜리가 웃으면서 말했다.“역시나 프로답게 많은 걸 고민한 흔적이 느껴지네요. 부대표님께서 말한 사항들은 저희도 똑같이 걱정했는지라 각종 특허를 이미 신청 중이에요. 제품이 출시하기 전에 승인받을 거예요.”태로운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다시 물었다.“특허는 혜리 그룹 소유인가요? 아니면 다른 협력사가 있나요?”그는 또 다른 프로페셔널한 질문을 던졌다.“협력사가 있어요. 특허는 상대방의 소유이고, 저희가 사용권을 확보하는 거죠. 즉, 쌍방이 공유한다고 보면 돼요.”공혜리가 대답했다.태로운은 여전히 눈살을 찌푸린 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그렇다면 조제법을 알아내서 저희가 보관하는 게 더 안전할 것 같은데...”“꼭 그럴 필요까지 있어요?”이번에는 공혜리도 얼굴을 찡그렸다.태로운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당연하죠.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잖아요. 만약 협력사에서 특허를 가지고 문제를 일으켜 우리의 목을 조르면 어떡하죠? 그리고 상대방이 특허를 담보로 대출받거나 사채를 쓸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해요. 모두 존재 가능한 리스크이지만 우리에겐 치명적이라 일단 일이 터지는 순간 결코 통제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를 거예요. 물론 비슷한 사례도 있었고, 한 기업을 골머리 앓게 하는 건 물론이고 나중에는 폭삭 망할지도 몰라요.”다른 사람들도 이에 동조하며 관련 사례를 일일이 언급했다.공혜리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양희지가 한때 납품 지연할 뻔한 적이 있지 않은가? 이는 사업을 하면서 절대로 금기시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무현 님만 아니었다면 그녀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줄 생각이 아예 없었다.태로운의 말을 듣고 보니 뭔가 조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윤정 씨, 지금 협력사한테 연락해서 우리가 조제법을 보관하겠다고 해. 만약 싫다고 하면 합작 방식을 변경하는 것도 고려하겠다고 전해.”공혜리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허윤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통화하러 밖으로 나갔다.잠시 후 다시 돌아온 그녀의 표정에서 협상 과정이 그
“하지만 너무 쉽게 동의하면 우리를 만만하게 보고 앞으로 점점 더 심해질지도 몰라요.”조윤미의 우려도 나름대로 이해는 갔다.협력 관계에서 한쪽이 압도적으로 우세를 차지하면 상대적으로 약한 측은 동네북이 될 가능성이 컸고, 매사에 끌려다닐 게 뻔했다.“동의 안 하면 어떡할 건데?”양희지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중요한 시기에 접어든 만큼 무엇보다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해. 고작 이런 사소한 문제로 갈등이 생겨서 신제품 출시에 영향을 미치면 더 손해이지 않아? 이번에는 내가 개인적으로 공혜리의 체면을 살려준 셈 치고, 다음에 또 비슷한 일이 생기면 절대로 들어주지 않을 거야.”조윤미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네, 저희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좀 더 강인한 모습을 보여줘야 해요.”...리버타운 아파트 입구.우예원과 같이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온 염무현은 대문 앞에 주차된 클리넌을 발견하고 발걸음을 옮겼다.차 문이 열리자 베이지색 트렌치코트에 하이힐을 신은 공혜리가 내렸고, 늘씬한 몸매가 더욱 부각되었다.제 자리에 우뚝 멈춰선 우예원의 얼굴에 위기감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여긴 왜 왔죠?”염무현이 물었다.공혜리는 차에서 예쁘게 포장된 선물 상자를 꺼내더니 환하게 웃었다.“무현 님이 캔버스로 된 가방에 침을 넣고 다니는 걸 몇 번 봤는데... 어제 쇼핑하면서 왠지 잘 어울릴 것 같은 가방을 찾아서 실례를 무릅쓰고 선물로 드리려고 찾아왔어요.”정성껏 포장한 선물 상자와 유난히 눈에 띄는 황금색 마크만 보더라도 결코 싼 물건이 아니라는 걸 보아낼 수 있었다.“명절도 아니고, 갑자기 웬 선물이죠?”염무현이 웃으며 물었다.공혜리의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더니 표정도 점점 어색하게 변했다.“선물도 명분이 있어야 하는 건가요? 전 단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혹시 제가 너무 뜬금없었나요? 아니면 마음에 안 드시나요?”지금의 그녀는 커리어 우먼으로서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은 눈을 씻고도 찾아보기 힘들었고,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주려고
어쨌거나 우예원은 혜리 그룹의 직원이지 않은가?대표로서 직원과 같은 자리에 앉아 식사하는 건 어색하기 마련이다.“그럼 어쩔 수 없네요. 나중에 시간 날 때 공 회장 한 번 모시고 차 한잔하시죠.”염무현이 웃으며 말했다.공혜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네! 꼭이요.”이내 도망치듯 차에 올라탔고, 차마 우예원을 쳐다보지도 못했다.차가 출발하자 우예원이 재빨리 다가왔다.“대표님이 뭘 선물했는데? 꽤 비싸 보이네?”“가방이야. 사실 나한테 비싼 건 중요하지 않아. 쓸 수 있으면 되거든.”염무현이 무심하게 웃었다.현재 그의 신분과 지위에서 한마디만 하면 전 세계 명품 브랜드에서 앞다투어 매장 물건을 공짜로 보내줄 것이다.게다가 전부 가죽 장인이 한땀 한땀 만든 물건이기도 했다.우예원은 입을 삐죽였다. 사실 그녀도 염무현이 낡은 가방을 쓰는 게 눈에 거슬려서 새로 사서 주고 싶었다.어제 쇼핑할 때 일부러 남자 가방 코너를 훑어보기도 하지 않았는가?하지만 고서은이 같이 있는 탓에 티를 낼 수 없어서 나중에 시간 날 때 혼자 돌아보기로 했다.그런데 공혜리가 먼저 선수 칠 줄이야!우예원은 화가 살짝 났다.일찌감치 무현 오빠랑 화해했더라면 공혜리보다 먼저 선물할 기회가 있었을 텐데.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때는 이미 늦었다.“오빠, 대표님이랑 친해?”우예원이 묻자 염무혐이 어깨를 으쓱했다.“그럭저럭? 너도 만난 적이 있잖아. 사실 공 대표 아버지랑 좀 더 친하긴 하지만.”“그래?”우예원은 서운한 기색이 역력했다.공혜리가 선뜻 나서서 염무현의 편을 들어주던 모습만 떠올리면 알 수 없는 위기감에 잠식당할 듯싶었다.그나마 한집에 같이 사는 덕분에 더욱 유리한 조건에 처해서 천만다행이었다.저녁을 먹고 나서 염무현은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이내 낡은 가방을 꺼내 침 케이스와 은행카드를 새 가방에 넣었다.그는 공혜리의 안목에 혀를 내둘렀다.이 가방은 전혀 튀지 않으면서도 차분하고 절제된 멋이 있어 그의 이미지에 찰떡이었다.즉, 공혜리가 꽤
쪽지에서 첫째 사모님은 백초당에 계신다고 했다.감옥에서 나오고 나서 염무현은 벌써 세 번째로 이 이름을 들어본다.첫 번째는 여정연이 가짜 인삼을 사면서 상기 당했을 때이고, 두 번째는 바로 오늘 공혜리가 백초당에서 태로운 팀을 스카우트해 왔다고 했다.보아하니 백초당이라는 곳이 꽤 유명한 듯싶었다....YH그룹 최첨단 연구실.무균 방호복 차림의 직원이 금고에서 조제법이 적힌 서류를 꺼내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소독 게이트를 지나 밖으로 나왔다.“작은 회장님, 이게 석연고의 조제법이에요. 한 번 확인해 보세요.”양희지는 무표정한 얼굴로 한 번 보라는 제스처를 취했다.조제법을 줄 수 있지만, 그래도 심기 불편한 티는 내야 하지 않겠는가?아니면 상대방이 만만하게 보고 나중에 점점 더 기고만장하여 꿍꿍이를 꾸미기 마련일 테니까.공혜리는 곧장 받아들이며 말했다.“괜찮아요, 전 양 대표님을 믿어요.”양희지는 속으로 정말 믿는다는 사람이 조제법을 내놓으라고 직접 찾아오기까지 하냐고 투덜거렸다.‘이제 와서 입에 발린 말로 아첨하면 고마워할 줄 알아?’“저희는 그럼 방해되지 않게 이만 가볼게요. 특허가 승인 나면 이른 시일 내로 알려주세요. 이에 상응한 신제품 출시 계획도 자세하게 짜야 하거든요.”공혜리가 말하자 양희지는 고개를 끄덕였다.“네.”태로운은 공혜리를 따라 연구실을 나섰고, 차에 타자마자 연신 감탄했다.“석연고 같은 대단한 제품을 고작 지방에 있는 작은 기업에서 개발해 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서해시에 숨은 강자들이 많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네요. 혜리 그룹처럼 막강한 대기업도 있고, 연구 개발에 특출난 중소기업도 있다니! 정말 다시 보게 되었어요.”공혜리도 석연고의 연구 데이터를 처음 봤을 때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양희지 회사의 실력만 놓고 보면 이런 최첨단 연구를 완성한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되었다.이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행운과 다름없었다.YH그룹뿐만 아니라 혜리 그룹에도 횡재였다.다만 YH그룹의 실력이 조금만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