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점장도 맞장구를 쳤다.“구매할 능력이 안 된다고 그냥 인정하세요. 부끄러운 일도 아닌데. 여기서 연기하면서 시간 낭비하는 게 재밌으세요?”바로 이때, 온몸에 명품 브랜드 옷을 입은 뚱보가 걸어들어왔다.“자기야, 왜 이렇게 오래 걸려?”이세라는 갑자기 연약한 척하면서 뚱보에게 다가가 그의 팔짱을 끼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두 거지 같은 사람을 만났는데 너무 재수 없어. 거지가 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어보았다는 걸 떠올릴 때마다 속이 불편해.”“불편하면 안 사면 되지. 내가 돈이 모자란 것도 아닌데 맘에 드는 옷 한 벌쯤이야 충분히 찾아서 살 수 있어.”뚱보가 거만하게 말했다.고객을 잃을 것 같아 보이자 여점장은 순간 당황해하며 황급히 손가락으로 우예원을 가리키며 호통쳤다.“얼른 안 벗고 뭐 하는 거예요? 오늘 이 아가씨가 구매하지 않으면 두 사람 책임져야 해요. 도망갈 생각하지 마요. 좋은 마음에 당신들의 허망한 허영심을 만족시켜 주기 위해 입어보라고 한 건데 지금 이렇게 나한테 보답하는 거예요? 양심도 없어요?”뚱보는 우예원을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았다.‘너무 이쁘잖아.’그녀와 비겼을 때 옆에 있는 이세라는 금세 속물 얼굴이 되었다.이를 본 이세라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불쾌하다는 듯 뚱보의 허리를 꼬집었다.고통을 느낀 뚱보는 그제야 아쉬워하며 눈길을 돌렸다.그러나 갑자기 염무현을 발견하고 놀라 하며 소리 질렀다.“염무현? 네가 왜 여기 있어?”뚱보는 다름 아닌 전에 리버타운 부동산에서 만났던 박동하였다.“자기야, 저 사람 알아?”이세라는 일부러 놀란 척하면서 말했다.“이럴 수가. 자기 같은 상류사회 사람들도 거지를 알아? 너무 놀라운데.”“그럴 리가. 내 대학 동기인데 지금 어디 사는지 알아?”박동하가 내숭을 떨며 물었다.이세라는 호기심 어린 말투로 말했다.“거지 같은 사람들이 어디 살겠어. 다리 밑? 아니면 공원? 그렇지 않으면 어디 빈민가에서 살겠지.”“
우예원은 원래 옷을 벗어 이세라에게 양보해 주려고 했다.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너무 지나친 요구를 제기하자 순간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이 옷 안 가질게요.”염무현은 우예원의 가녀린 손을 잡고 정색하며 말했다.“저 옷은 그럴 가치가 되지 못하니까요.”옷은 죄가 없지만 옷을 판매하는 사람이 파렴치하게 구는 걸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살 능력이 안 되면 안 된다고 말하면 되지. 그런 변명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박동하가 비꼬면서 말했다.“아가씨 지금 이 녀석한테 사기당한 거예요. 이 녀석이 아가씨한테 리버타운에서 산다고 부자인 척했죠? 그런데 그 집 다 가짜예요. 이 녀석 신분도 만만치 않아요. 금방 출소한 위험 분자라니까요.”“제가 좋은 마음에 알려주는데 이 녀석의 감언이설에 넘어가서는 안 돼요. 그렇지 않으면 재산도 결백도 다 잃게 된다니까요. 우리 이렇게 하는 게 어때요? 저 녀석의 추악한 진면모를 까발리기 위해 이 옷은 제가 사줄게요.”이세라는 그 말을 듣자마자 불쾌해했다.“자기야...”“닥쳐. 오늘 옷을 여덟 벌이나 샀는데 아직도 만족하지 않는 거야?”박동하는 그녀를 향해 눈을 부라리면서 다시 한번 더 입을 놀리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눈빛으로 경고했다.이세라는 원래부터 스폰서 박동하에게 의지하면서 생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는 처지여서 당당해지기는커녕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아가씨, 카카오톡 계정이라도 알려주세요. 제가 염무현 스캔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알려줄게요. 그러면 염무현이 얼마나 쓰레기인지 알게 될 거예요. 기분 나쁘다면 제가 밥이라도 살게요. 위층에 디저트 가게가 새로 생겼는데 꽤 괜찮다고 하더라고요.”박동하는 염무현을 망신당하게 만드는 동시에 그의 여자까지 뺏을 생각이었다.“단것을 먹으면 나쁜 기억도 금세 잊혀진다고 하잖아요. 아가씨도 그럴 거예요.”대학교에 다닐 때, 박동하는 지금과 똑같은 일을 한 적이 있다.염무현의 전 여자 친구를 얻은 후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쾌락과 성취감을 느꼈었다. 지금
염무현은 슈프림 블랙 카드를 꺼냈다.밀리언 쇼핑몰은 진경태의 산업인데 슈프림 블랙 카드는 진씨 가문과 공씨 가문이 함께 만든 것이다. 무릇 두 가문 산업이라면 전부 무료로 소비할 수 있는 카드이다.그러나 전에 산 옷들은 전부 염무현이 자신의 카드로 결제한 것이지 이 카드는 사용하지 않았다.남의 손을 빌리면서 효도하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게다가 큰돈도 아니어서 두 가문의 돈을 쓸 필요가 없었다. 또 이런 일로 그들에게 빚을 지는 게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어디서 본적도 없는 카드를 들고 허세예요.”여점장은 비아냥거리면서 말했다.“밀리언 쇼핑몰 모든 VIP 카드를 제가 다 알고 있는데 이렇게 생긴 카드는 처음이에요. 설마 헤어샵에서 가진 세일 카드 아니에요?”박동하는 콧방귀를 뀌고 말했다.“그럼 이런 녀석에게 세일 카드를 주는 헤어샵도 참 값이 떨어지네.”이 가게는 쇼핑몰에 입점한 브랜드일 뿐 밀리언 쇼핑몰 직영 가게가 아니었다.여점장도 금방 다른 곳에서 데려온 직원이었기에 이 카드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그런데 모른다고 해도 긁어만 보면 무슨 카드인지 즉시 알게 될 것이다.반면 경호팀 팀장은 카드를 보자마자 눈에 띄게 긴장해 했다.스카이 레스토랑 일 이후로 공혜리는 모든 소속 산업 직원들에게 슈프림 블랙 카드에 관해 자세히 설명해 줬었다.관리층에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카드 식별 방법을 장악해야 했다.만약 장악하지 못한다면 경하게 강직 처분 혹은 연봉 감소 처분을 받게 되고 엄하게는 해고당할 수도 있다.두 손으로 공손히 카드를 받아 든 경호팀 팀장의 표정이 방금전보다 더 엄숙해졌다.몇 차례의 식별 과정을 거친 후 카드가 진짜라는 게 확인되었다.혹시나 하는 마음에 팀장이 물었다.“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염무현입니다.”염무현은 태연자약하게 답했다.팀장은 이내 열정적으로 그를 대했다,“염무현 씨군요. 알아보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이 슈프림 블랙 카드는 밀리언 쇼핑몰에서 원하시는 대로 마음껏 소비하실
여점장은 순간 멍해졌다.경호팀 팀장은 염무현이 화내는 걸 보고 일이 커졌음을 감지했다.슈프림 블랙 카드를 가진 VIP 고객의 일은 자신 같은 일개 경호팀 팀장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방법을 생각해 이 일을 해결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쇼핑몰 직원 전체가 봉변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당시 스카이 레스토랑 매니저 엄현철이 카드를 못 알아보고 가짜 카드라 여기며 염무현을 모욕했었는데 결국 사지가 부러진 채 서해시에서 쫓겨나고 영원히 돌아올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한다.“염무현 씨, 오늘 마침 고 사장님께서 계시는데 불러올까요?”경호팀 팀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염무현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되물었다.“어느 고 사장님을 말하는 거죠? 고서은 씨를 말하는 건가요?”그가 아는 사람들 중에 고씨 성을 가진 사람은 고진성과 고서은 두 오누이일 뿐이다. 또 밀리언 쇼핑몰이 진경태 산업이었기에 고서은이라고 추측했다.“네, 맞습니다. 바로 고서은 사모님이십니다.”팀장은 염무현이 고서은 이름을 아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이 아는 사이라고 생각하며 저도 모르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불러와요. 마침 만나서 할 얘기도 있어서요.”염무현이 말했다.고서은을 위해 치료해 준 지 벌써 두 주일이나 되었다. 자신의 의술에 대해 자신이 있긴 하지만 때로는 재진찰이 필요할 때도 있었다.팀장은 황급히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지금 당장 부르러 가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여점장이 끊임없이 그에게 구원의 눈길을 보냈는데 그는 본 척도 하지 않고 뒤돌아 고서은을 찾으러 갔다.여점장은 어쩔 수 없이 박동하에게 도움을 청했다.어쨌든 박동하와 이세라 두 사람 때문에 염무현을 건드리게 되었으니 박동하가 마땅히 그녀를 위해 몇 마디 좋은 말이라도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녀는 박동하가 염무현의 동창이니 어떻게 해서든 말하면 일이 잘 해결될 것이라고 은근히 기대했다.그런데 박동하는 그녀를 무시한 채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태도를
“또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는 거야! 나처럼 대단한 사람이 어찌 이런 자식을 낳았지? 지금 당장 회사로 돌아오지 못해? 할 말 있어.”휴대폰 너머로 중년 남성의 우렁찬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박동하는 억울한 얼굴로 말했다.“아빠, 오늘 주말이에요.”“이제 우리도 도씨 가문이라는 큰 배에 탑승하고 금원 그룹과 협력관계를 맺는 중요한 순간에 접어들었는데 주말이 웬 말이냐? 그게 사업보다 더 중요해? 너 지금 나이가 몇인 줄 알아? 우선순위도 구분 못 하고 말이야! 주말 하루 안 쉰다고 죽는 건 아니잖아?”결국 박동하는 마지못해 대답했다.“알았어요. 금방 갈게요.”그리고 위층을 흘긋 바라보며 속으로 몰래 생각했다.‘염무현 두고 봐! 언젠간 널 완전히 짓밟아 다시는 일어설 수 없게 할 테니까. 이번에는 운이 좋은 줄 알아. 하느님은 항상 네 편이라는 착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야.’그가 떠나자마자 고서은이 임원들의 안내를 받아 부랴부랴 달려왔다.그동안 몸이 안 좋은 그녀는 남편인 진경태의 사업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나중에 완치되고 나서 허구한 날 집에만 있는 게 지루하기도 했고, 이러다 정말 사회 경력이 단절될까 봐 걱정했다. 때마침 아직 임신하기 전이라 진경태에게 일하고 싶다고 했다.애처가로 소문이 자자한 진경태는 통 크게 밀리언 쇼핑몰을 고서은의 명의로 바꾸어주었다.즉, 회장이자 총지배인 자리에 그녀를 앉혔다.오늘은 고서은이 출근한 지 3일째 되는 날이기에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정시에 출근했다.그러나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직원이 찾아와서 슈프림 블랙 카드를 소지한 염씨 성을 가진 고객이 한 브랜드 매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했다.슈프림 블랙 카드? 염씨라니?이에 고서은은 속이 바질바질 타들어 갔다.염씨는 워낙 흔한 성이 아니라 그녀와 오빠를 살려준 생명의 은인 무현 님이 확실했다.‘이런!’고서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회의실을 박차고 나갔다.다른 사람도 이를 보자 급히 따라나섰다. 사실 진경태의 아내 분을 지켜주는 게 그들의
여점장은 어리둥절했다.사실 그녀는 연고지 덕분에 이곳에서 점장을 하게 되었다.그녀가 전근 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미 많은 사람의 비난을 받고 있었다.다들 능력이 부족하다는 둥, 성격과 인품이 문제 있다는 둥 하면서 매장을 운영하기에 부적합하다고 했다.결국에는 그녀의 불륜남이 나서서 모두의 주장을 묵살하고 상사 앞에서 자신만만하게 맹세하는 바람에 마침내 뜻을 이루게 된 것이다.그런데 지금 사고를 치다니!자신이 저지른 일 때문에 브랜드 자체가 퇴출당할 위기에 놓였다.이렇게 큰 실수를 저질렀으니 본인만 망하는 게 아니라 뒤를 봐주던 불륜남도 덩달아 큰코다칠 게 뻔했다.그녀의 머릿속에는 이미 자신을 손가락질하며 거친 욕설은 물론 심지어 주먹과 발길질마저 마다하지 않는 불륜남의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아마 맞아 죽어도 모르겠지?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안 갔다. 무려 한 쇼핑몰의 오너라는 분이 왜 평범하기 그지없는 젊은이에게 이처럼 공손한 태도로 대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쿵! 덜컹!얼마 지나지 않아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자랑하던 매장이 산산조각이 나고 엉망진창이 되었다.고서은은 줄곧 전전긍긍하며 몰래 염무현의 표정 변화를 관찰했지만 아무것도 보아내지 못했다.이에 그녀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동안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면에서 남편과 오빠가 단연 1순위라고 여겼으나 눈앞의 무현 님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소꿉장난에 불과했다.미세한 표정을 통해 그의 속마음을 알아내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두 손 두 발을 든 고서은은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무현 님과 벌어진 사이를 회복하여 오늘 일어난 일을 무사히 넘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무현 님, 아니면 제가 예원 씨를 데리고 쇼핑하는 건 어때요? 매장 위치도 익숙하고 여자의 취향도 잘 아는 지라 정확한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거예요.”고서은이 먼저 나서서 우예원의 팔짱을 끼더니 다정한 포즈로 염무현에게 제안했다.역시 초대 어둠의 세계에서 왕이라 불리는 자인 진경태의 아내이자 수비대
사람을 대하는 데 아직 서툰 우예원은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는지라 순간 얼굴이 빨개지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서은 언니야말로 미인이세요. 저는 비교 대상조차 안 되는걸요.”“예원 양은 아직 젊잖아.”고서은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꽃다운 나이에 외모도 얼마나 청순하고 예쁜지, 아주 부러워 죽겠다니까? 여자의 가장 큰 재산이 바로 젊음이야. 언니는 이미 나이가 들어서 파릇파릇한 젊은이는 따라가지도 못해.”우예원의 얼굴이 점점 달아올랐다.“너무 겸손하시네요. 미인은 세월도 비껴간다는데, 게다가 언니도 나이가 많지 않잖아요.”“예원 양은 어쩌면 말도 이렇게 예쁘게 하지? 아주 마음에 쏙 드네! 동생이랑 딱 어울리는 옷으로 골라줄 테니까 이따가 나만 믿어.”고서은이 동행한 이후로 매장 직원들은 유난히 친절하게 대했다.그녀의 조언에 따라 우예원은 마음에 드는 옷을 빠르게 골랐고,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대폭 축소했다.또한, 같이 다니는 내내 고서은은 두 사람의 관계를 염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워낙 눈치 빠른 탓에 우예원이 염무현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단번에 간파했고, 어렸을 때는 동경일지언정 성인이 된 지금은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 게 분명했다.‘혜리야, 너한테 아주 강력한 라이벌이 생겼는걸?’한편, 저 멀리 떨어진 고씨 저택.“에취!”베란다에서 책을 읽던 공혜리는 불길한 예감이라도 들었는지 대뜸 재채기했다.이내 백옥처럼 하얗고 가냘픈 손으로 코를 만지작거리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누가 내 나쁜 말이라도 하나?”이때, 공규석이 거실에서 걸어오더니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혜리야, 주말인데 어디 놀러 가지? 여자애가 집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어떡해?”노파심에 걱정하는 아버지의 어조에는 안쓰러움이 묻어 있었고, 염무현을 찾아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밖에 놀 것도 없어요, 뭐.”공혜리가 고개도 들지 않고 말하자 공규석은 속이 바질바질 타들어 갔다. 어리석은 딸아이 같으니라고, 외모만 멀쩡하면 뭐 하나? 지능은 물론 눈
월요일.SJ 그룹 로고가 새겨진 차량이 공항에서 일제히 떠나 혜리 그룹으로 향했다.가운데 있는 차량의 뒷좌석에 한 젊은 남자가 기고만장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3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는 두 눈에 자신감이 흘러넘쳤고, 창밖에 시선을 돌리는 찰나 눈빛이 경멸이 가득했다.“부대표님, 승진 축하합니다.”조수석에 있던 사람이 몸을 돌려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아첨하기 바빴다.“혜리 그룹의 영업팀을 손에 넣었을뿐더러 부대표 자리까지 꿰차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젊은 남자의 이름은 태로운이며, 예전에는 1등 뷰티 기업 백초당의 팀장으로 판매업의 귀재로 불렸다.게다가 그는 아주 드물게 응용화학과 출신이었다.또한, 박사 학위도 가졌는지라 전공과 영업 면에서 모두 특출난 재능을 지닌 인재에 속했다.차량 행렬을 이룬 사람들은 전부 그가 직접 키운 팀이며, 그동안 라이벌을 휩쓸어 업계 내에서 기적을 창조했다.공혜리는 태로운의 팀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후한 연봉과 조건을 제시했을뿐더러 부대표 직함까지 선뜻 내주면서 꽤 많은 투자를 했다.“그게 뭐 어때서?”태로운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비서가 계속해서 알랑거렸다.“부대표님의 능력으로는 응당 누려야 할 권리이죠. 혜리 그룹이 업계 10위권 기업이라고는 하지만 서해시 같은 작은 도시가 어찌 대도시랑 비교가 되겠어요? 귀하신 몸으로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오셨는데 자비를 베푼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체면을 세워준 셈이니 그쪽에서 얼마나 좋아하겠어요?”태로운의 입꼬리가 점점 더 높이 올라갔다.“상대방이 성의를 보여준 건 사실이야. 물론 내가 이직하기로 마음먹은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해.”“그나저나 공 대표의 미모가 예술이던데 부대표님이랑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선남선녀의 만남은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고 할 수 있죠.”비서의 얼굴에 곧바로 음흉한 미소가 떠올랐다.“부대표님, 혹시 이번에 일과 사랑을 모두 쟁취할 생각인가요?”“안 될 건 없지.”태로운이 비열하게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