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현민이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수업하는 건 일이지 쇼핑하는 거랑은 다르잖아.”“나도 힘들어서 쉬어야겠어. 우리 둘은 상관하지 말고 다 돌고 우리 둘 찾으러 오면 돼.”정은선도 우현민 곁에 앉으면서 말했다.사실 두 사람은 힘들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돈을 절약하고 싶은 이유도 있었지만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우예원과 염무현에게 단둘이 지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다.요 며칠, 두 사람은 염무현이 이혼한 것이 옳은 선택이라고 몇 번이고 말했었다.우현민은 염무현이 자신의 친아들이 되는 모습을 꿈에서도 그렸다. 염무현이 두 사람의 노후 생활을 책임지겠다고는 했으나 어쨌든 피가 섞이지 않은 관계였다.그러나 마침 염무현이 다시 싱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딸인 우예원과도 오해를 풀고 예전처럼 다정하게 지냈다. 두 사람 다 결혼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천생연분과 마찬가지였다.염무현이 우씨 집안 사위가 된다면 우현민은 자다가도 좋아 웃으며 깨어날 것이다.그래서 그는 항상 딸과 염무현이 단독으로 지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려고 애를 썼다.함께 쇼핑하다 보면 애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알겠어요.”우예원은 사실 더 돌고 싶었다. 세상에 쇼핑을 싫어하는 여자애가 존재하지 않다시피 그녀도 마찬가지였다.게다가 방금전 두 사람 옷을 사주면서 자신의 옷은 사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쇼핑을 끝내기는 너무 아쉬웠다.“무현아, 예원이를 잘 부탁해.”우현민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염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 돌볼게요.”“당연히 널 믿지. 얼른 가 봐.”우현민은 끝내 참지 못하고 얼굴에 화색을 띠었다.둘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우현민은 참지 못하고 정은선에게 말했다.“여보, 두 사람 잘 어울리지 않아요? 뭔가 딸을 시집보내는 느낌이 드는 것 같은데...”“그러니까요, 나도 그 생각이라니까요. 예원이가 나이만 어리지 않았더라면 그때 무현이가 양희지랑 결혼할 일도 없
“죄송합니다, 고객님.”여점장이 황급히 설명했다.“방금전 가지겠다고 하셨는데 결제하지 않고 그냥 가시기에 안 가지시려는 줄 알았어요.”목소리의 주인공은 섹시한 옷차림에 짙은 화장을 한 기생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여자였다.성형을 너무 많이 해서 턱이 삼각형처럼 각이 날 정도로 뾰족했다.그녀는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화장실 한 번 갔다 왔을 뿐인데 내가 언제 안 가지겠다고 했어요?”여점장은 웃으면서 사과했다.“제 탓입니다. 화 푸세요. 금방 벗으라고 할게요.”사실 여점장은 염무현과 우예원이 옷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아직 이 가게의 옷을 구매할 만한 소비 수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염무현과 우예원이 너무 평범하게 입은 탓에 잘 생기고 이쁘고 기품이 좋다고 해도 외모는 외모일 뿐, 소비 능력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염무현이 ‘옷도 이쁜데 이 옷을 입은 네가 더 이뻐’와 같은 칭찬하는 말을 대범하게 내뱉은 후에야 두 사람에 관한 인상을 바꾸었던 것이다.그녀는 돈 없는 사람들이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아무리 좋아하는 물건일지라도 본의 아니게 흠을 잡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구매할 능력이 되지 않지만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변명거리를 찾는 것과 같다.사실 염무현은 이미 카드를 꺼내 들고 결제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우예원만 좋다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줄 수 있었다.마침 옷을 사려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여점장이 거절할 리가 없었다. 구매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꼭 구매할 거라는 보장은 없으니까.두 고객 사이에서 그녀는 망설임 없이 전자를 선택했다.“얼른 벗어요!”여점장은 명령조로 짜증스럽게 말했다.천만 원 하는 옷을 구매하겠다는 손님이 있는데 눈앞에 있는 두 남녀의 미움을 산들 어찌하겠는가.“저희가 안 가지겠다고 한 적이 있나요?”염무현이 불쾌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여점장이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가진 것도 없으면서 잘난 체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그까짓 체면을 지키겠다고 신용카드를
여점장도 맞장구를 쳤다.“구매할 능력이 안 된다고 그냥 인정하세요. 부끄러운 일도 아닌데. 여기서 연기하면서 시간 낭비하는 게 재밌으세요?”바로 이때, 온몸에 명품 브랜드 옷을 입은 뚱보가 걸어들어왔다.“자기야, 왜 이렇게 오래 걸려?”이세라는 갑자기 연약한 척하면서 뚱보에게 다가가 그의 팔짱을 끼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두 거지 같은 사람을 만났는데 너무 재수 없어. 거지가 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어보았다는 걸 떠올릴 때마다 속이 불편해.”“불편하면 안 사면 되지. 내가 돈이 모자란 것도 아닌데 맘에 드는 옷 한 벌쯤이야 충분히 찾아서 살 수 있어.”뚱보가 거만하게 말했다.고객을 잃을 것 같아 보이자 여점장은 순간 당황해하며 황급히 손가락으로 우예원을 가리키며 호통쳤다.“얼른 안 벗고 뭐 하는 거예요? 오늘 이 아가씨가 구매하지 않으면 두 사람 책임져야 해요. 도망갈 생각하지 마요. 좋은 마음에 당신들의 허망한 허영심을 만족시켜 주기 위해 입어보라고 한 건데 지금 이렇게 나한테 보답하는 거예요? 양심도 없어요?”뚱보는 우예원을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았다.‘너무 이쁘잖아.’그녀와 비겼을 때 옆에 있는 이세라는 금세 속물 얼굴이 되었다.이를 본 이세라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불쾌하다는 듯 뚱보의 허리를 꼬집었다.고통을 느낀 뚱보는 그제야 아쉬워하며 눈길을 돌렸다.그러나 갑자기 염무현을 발견하고 놀라 하며 소리 질렀다.“염무현? 네가 왜 여기 있어?”뚱보는 다름 아닌 전에 리버타운 부동산에서 만났던 박동하였다.“자기야, 저 사람 알아?”이세라는 일부러 놀란 척하면서 말했다.“이럴 수가. 자기 같은 상류사회 사람들도 거지를 알아? 너무 놀라운데.”“그럴 리가. 내 대학 동기인데 지금 어디 사는지 알아?”박동하가 내숭을 떨며 물었다.이세라는 호기심 어린 말투로 말했다.“거지 같은 사람들이 어디 살겠어. 다리 밑? 아니면 공원? 그렇지 않으면 어디 빈민가에서 살겠지.”“
우예원은 원래 옷을 벗어 이세라에게 양보해 주려고 했다.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너무 지나친 요구를 제기하자 순간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이 옷 안 가질게요.”염무현은 우예원의 가녀린 손을 잡고 정색하며 말했다.“저 옷은 그럴 가치가 되지 못하니까요.”옷은 죄가 없지만 옷을 판매하는 사람이 파렴치하게 구는 걸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살 능력이 안 되면 안 된다고 말하면 되지. 그런 변명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박동하가 비꼬면서 말했다.“아가씨 지금 이 녀석한테 사기당한 거예요. 이 녀석이 아가씨한테 리버타운에서 산다고 부자인 척했죠? 그런데 그 집 다 가짜예요. 이 녀석 신분도 만만치 않아요. 금방 출소한 위험 분자라니까요.”“제가 좋은 마음에 알려주는데 이 녀석의 감언이설에 넘어가서는 안 돼요. 그렇지 않으면 재산도 결백도 다 잃게 된다니까요. 우리 이렇게 하는 게 어때요? 저 녀석의 추악한 진면모를 까발리기 위해 이 옷은 제가 사줄게요.”이세라는 그 말을 듣자마자 불쾌해했다.“자기야...”“닥쳐. 오늘 옷을 여덟 벌이나 샀는데 아직도 만족하지 않는 거야?”박동하는 그녀를 향해 눈을 부라리면서 다시 한번 더 입을 놀리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눈빛으로 경고했다.이세라는 원래부터 스폰서 박동하에게 의지하면서 생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는 처지여서 당당해지기는커녕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아가씨, 카카오톡 계정이라도 알려주세요. 제가 염무현 스캔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알려줄게요. 그러면 염무현이 얼마나 쓰레기인지 알게 될 거예요. 기분 나쁘다면 제가 밥이라도 살게요. 위층에 디저트 가게가 새로 생겼는데 꽤 괜찮다고 하더라고요.”박동하는 염무현을 망신당하게 만드는 동시에 그의 여자까지 뺏을 생각이었다.“단것을 먹으면 나쁜 기억도 금세 잊혀진다고 하잖아요. 아가씨도 그럴 거예요.”대학교에 다닐 때, 박동하는 지금과 똑같은 일을 한 적이 있다.염무현의 전 여자 친구를 얻은 후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쾌락과 성취감을 느꼈었다. 지금
염무현은 슈프림 블랙 카드를 꺼냈다.밀리언 쇼핑몰은 진경태의 산업인데 슈프림 블랙 카드는 진씨 가문과 공씨 가문이 함께 만든 것이다. 무릇 두 가문 산업이라면 전부 무료로 소비할 수 있는 카드이다.그러나 전에 산 옷들은 전부 염무현이 자신의 카드로 결제한 것이지 이 카드는 사용하지 않았다.남의 손을 빌리면서 효도하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게다가 큰돈도 아니어서 두 가문의 돈을 쓸 필요가 없었다. 또 이런 일로 그들에게 빚을 지는 게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어디서 본적도 없는 카드를 들고 허세예요.”여점장은 비아냥거리면서 말했다.“밀리언 쇼핑몰 모든 VIP 카드를 제가 다 알고 있는데 이렇게 생긴 카드는 처음이에요. 설마 헤어샵에서 가진 세일 카드 아니에요?”박동하는 콧방귀를 뀌고 말했다.“그럼 이런 녀석에게 세일 카드를 주는 헤어샵도 참 값이 떨어지네.”이 가게는 쇼핑몰에 입점한 브랜드일 뿐 밀리언 쇼핑몰 직영 가게가 아니었다.여점장도 금방 다른 곳에서 데려온 직원이었기에 이 카드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그런데 모른다고 해도 긁어만 보면 무슨 카드인지 즉시 알게 될 것이다.반면 경호팀 팀장은 카드를 보자마자 눈에 띄게 긴장해 했다.스카이 레스토랑 일 이후로 공혜리는 모든 소속 산업 직원들에게 슈프림 블랙 카드에 관해 자세히 설명해 줬었다.관리층에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카드 식별 방법을 장악해야 했다.만약 장악하지 못한다면 경하게 강직 처분 혹은 연봉 감소 처분을 받게 되고 엄하게는 해고당할 수도 있다.두 손으로 공손히 카드를 받아 든 경호팀 팀장의 표정이 방금전보다 더 엄숙해졌다.몇 차례의 식별 과정을 거친 후 카드가 진짜라는 게 확인되었다.혹시나 하는 마음에 팀장이 물었다.“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염무현입니다.”염무현은 태연자약하게 답했다.팀장은 이내 열정적으로 그를 대했다,“염무현 씨군요. 알아보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이 슈프림 블랙 카드는 밀리언 쇼핑몰에서 원하시는 대로 마음껏 소비하실
여점장은 순간 멍해졌다.경호팀 팀장은 염무현이 화내는 걸 보고 일이 커졌음을 감지했다.슈프림 블랙 카드를 가진 VIP 고객의 일은 자신 같은 일개 경호팀 팀장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방법을 생각해 이 일을 해결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쇼핑몰 직원 전체가 봉변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당시 스카이 레스토랑 매니저 엄현철이 카드를 못 알아보고 가짜 카드라 여기며 염무현을 모욕했었는데 결국 사지가 부러진 채 서해시에서 쫓겨나고 영원히 돌아올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한다.“염무현 씨, 오늘 마침 고 사장님께서 계시는데 불러올까요?”경호팀 팀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염무현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되물었다.“어느 고 사장님을 말하는 거죠? 고서은 씨를 말하는 건가요?”그가 아는 사람들 중에 고씨 성을 가진 사람은 고진성과 고서은 두 오누이일 뿐이다. 또 밀리언 쇼핑몰이 진경태 산업이었기에 고서은이라고 추측했다.“네, 맞습니다. 바로 고서은 사모님이십니다.”팀장은 염무현이 고서은 이름을 아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이 아는 사이라고 생각하며 저도 모르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불러와요. 마침 만나서 할 얘기도 있어서요.”염무현이 말했다.고서은을 위해 치료해 준 지 벌써 두 주일이나 되었다. 자신의 의술에 대해 자신이 있긴 하지만 때로는 재진찰이 필요할 때도 있었다.팀장은 황급히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지금 당장 부르러 가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여점장이 끊임없이 그에게 구원의 눈길을 보냈는데 그는 본 척도 하지 않고 뒤돌아 고서은을 찾으러 갔다.여점장은 어쩔 수 없이 박동하에게 도움을 청했다.어쨌든 박동하와 이세라 두 사람 때문에 염무현을 건드리게 되었으니 박동하가 마땅히 그녀를 위해 몇 마디 좋은 말이라도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녀는 박동하가 염무현의 동창이니 어떻게 해서든 말하면 일이 잘 해결될 것이라고 은근히 기대했다.그런데 박동하는 그녀를 무시한 채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태도를
“또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는 거야! 나처럼 대단한 사람이 어찌 이런 자식을 낳았지? 지금 당장 회사로 돌아오지 못해? 할 말 있어.”휴대폰 너머로 중년 남성의 우렁찬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박동하는 억울한 얼굴로 말했다.“아빠, 오늘 주말이에요.”“이제 우리도 도씨 가문이라는 큰 배에 탑승하고 금원 그룹과 협력관계를 맺는 중요한 순간에 접어들었는데 주말이 웬 말이냐? 그게 사업보다 더 중요해? 너 지금 나이가 몇인 줄 알아? 우선순위도 구분 못 하고 말이야! 주말 하루 안 쉰다고 죽는 건 아니잖아?”결국 박동하는 마지못해 대답했다.“알았어요. 금방 갈게요.”그리고 위층을 흘긋 바라보며 속으로 몰래 생각했다.‘염무현 두고 봐! 언젠간 널 완전히 짓밟아 다시는 일어설 수 없게 할 테니까. 이번에는 운이 좋은 줄 알아. 하느님은 항상 네 편이라는 착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야.’그가 떠나자마자 고서은이 임원들의 안내를 받아 부랴부랴 달려왔다.그동안 몸이 안 좋은 그녀는 남편인 진경태의 사업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나중에 완치되고 나서 허구한 날 집에만 있는 게 지루하기도 했고, 이러다 정말 사회 경력이 단절될까 봐 걱정했다. 때마침 아직 임신하기 전이라 진경태에게 일하고 싶다고 했다.애처가로 소문이 자자한 진경태는 통 크게 밀리언 쇼핑몰을 고서은의 명의로 바꾸어주었다.즉, 회장이자 총지배인 자리에 그녀를 앉혔다.오늘은 고서은이 출근한 지 3일째 되는 날이기에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정시에 출근했다.그러나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직원이 찾아와서 슈프림 블랙 카드를 소지한 염씨 성을 가진 고객이 한 브랜드 매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했다.슈프림 블랙 카드? 염씨라니?이에 고서은은 속이 바질바질 타들어 갔다.염씨는 워낙 흔한 성이 아니라 그녀와 오빠를 살려준 생명의 은인 무현 님이 확실했다.‘이런!’고서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회의실을 박차고 나갔다.다른 사람도 이를 보자 급히 따라나섰다. 사실 진경태의 아내 분을 지켜주는 게 그들의
여점장은 어리둥절했다.사실 그녀는 연고지 덕분에 이곳에서 점장을 하게 되었다.그녀가 전근 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미 많은 사람의 비난을 받고 있었다.다들 능력이 부족하다는 둥, 성격과 인품이 문제 있다는 둥 하면서 매장을 운영하기에 부적합하다고 했다.결국에는 그녀의 불륜남이 나서서 모두의 주장을 묵살하고 상사 앞에서 자신만만하게 맹세하는 바람에 마침내 뜻을 이루게 된 것이다.그런데 지금 사고를 치다니!자신이 저지른 일 때문에 브랜드 자체가 퇴출당할 위기에 놓였다.이렇게 큰 실수를 저질렀으니 본인만 망하는 게 아니라 뒤를 봐주던 불륜남도 덩달아 큰코다칠 게 뻔했다.그녀의 머릿속에는 이미 자신을 손가락질하며 거친 욕설은 물론 심지어 주먹과 발길질마저 마다하지 않는 불륜남의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아마 맞아 죽어도 모르겠지?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안 갔다. 무려 한 쇼핑몰의 오너라는 분이 왜 평범하기 그지없는 젊은이에게 이처럼 공손한 태도로 대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쿵! 덜컹!얼마 지나지 않아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자랑하던 매장이 산산조각이 나고 엉망진창이 되었다.고서은은 줄곧 전전긍긍하며 몰래 염무현의 표정 변화를 관찰했지만 아무것도 보아내지 못했다.이에 그녀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동안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면에서 남편과 오빠가 단연 1순위라고 여겼으나 눈앞의 무현 님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소꿉장난에 불과했다.미세한 표정을 통해 그의 속마음을 알아내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두 손 두 발을 든 고서은은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무현 님과 벌어진 사이를 회복하여 오늘 일어난 일을 무사히 넘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무현 님, 아니면 제가 예원 씨를 데리고 쇼핑하는 건 어때요? 매장 위치도 익숙하고 여자의 취향도 잘 아는 지라 정확한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거예요.”고서은이 먼저 나서서 우예원의 팔짱을 끼더니 다정한 포즈로 염무현에게 제안했다.역시 초대 어둠의 세계에서 왕이라 불리는 자인 진경태의 아내이자 수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