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중요한 건 신진대사가 촉진될 때마다 건강한 세포의 희생을 대가로 한다는 겁니다.”옆에 있던 유재영이 말을 보태었다.“간단하게 설명해 드리자면 한정된 생명력을 대가로 잠자고 있던 활력까지 깨워 소모하면서 상태가 호전되는 가상을 만들어낸다는 겁니다. 이 말인즉슨 인위적으로 환자가 나아진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거죠.”“만약 건강하고 튼튼한 체질을 가진 사람이 이 약을 먹는다면 확실히 좋은 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건강한 사람이 약을 먹을 리는 없잖습니까.”“그런데 일반인 혹은 환자분이 이 약을 복용한다면 엄중한 후유증을 앓을 수 있습니다. 생명력이 점차 고갈되고 바이러스에 쉽게 감염되며 나중엔 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사망할 수 있습니다.”이승휘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맞장구를 쳤다.“맞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하고자 하는 말은 거핵완은 암 치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환자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두 사람은 ZW그룹의 체면을 너무 깎아내리지는 않았다. 적어도 사람 목숨을 해치면서까지 돈을 벌어들이려고 한다고 콕 집어 말하지는 않았다.충격받은 사람들은 입을 쩍 벌렸다. 현장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만큼 고요해졌다.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다들 비웃으며 믿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이승휘는 국내 의학계에서 명망 높은 전문가였고 유재영은 우리병원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국내에서 인정받는 거물인 두 사람이 함께 진실을 폭로하는데 어떻게 믿지 않을 수 있는가?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던 관중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쉼 없이 댓글을 달았다.바로 이때 회의실 문이 열리면서 명품 브랜드 정장을 입고 불쾌한 표정을 한 사람들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앞장선 사람은 다름 아닌 남기태였다.“남 대표님, 거핵완 일로 오신 겁니까?”“남 대표님, 두 전문가의 평가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오랫동안 특효약이라는 이름으로 홍보하고 판매한 거핵완이 유명무실하다고 증명되었는데 어떻게 설명하실 건가요?”남기태는 기자들의
남기태의 질문을 들은 이승휘는 눈살을 찌푸리고 정색하며 말했다.“당연히 증거가 있으니까 말하는 거죠...”“증거는 개뿔! 다 조작해 낸 거잖아요.”남기태는 예의 없이 이승휘의 말을 끊어버렸다.이승휘는 서류를 보여주면서 말했다.“이게 바로 증거입니다. 중앙연구소에서 받은 아주 진실된 증거라고요...”남기태는 또 그의 말을 끊었다.“중앙연구소는 당연히 믿음직하죠. 그런데 당신 손에 있는 서류가 조작된 것인지 아닌지는 확신하지 못하죠. 요즘 데이터를 조작하는 일이 아주 흔하잖아요. 게다가 우리 회사에서 약을 개발해 낸 지 석 달도 되지 않는데 벌써 증거를 찾아냈다고요?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다 바보로 알고 입을 함부로 놀리는 거예요?”“사리사욕을 위해 양심도 없이 악의적으로 헛된 소문을 퍼뜨리려 하다니! 대체 진실된 증거가 무엇인지 내가 똑똑히 보여줄게요.”남기태는 말하고는 손뼉을 세 번 쳤다.짝짝짝!회의실 문이 열리더니 한 무리 사람들이 몰려들었다.“우린 환자 가족으로서 거핵완이 환자 고통을 줄이고 병을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증명할 수 있습니다.”“제 아내도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었는데 거핵완을 한 달 동안 복용한 후 걸어 다니면서 운동할 수도 있고 밥도 전과 달리 제대로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요. 이게 제일 좋은 증거란 말이에요!”“거핵완은 우리 환자들의 마지막 희망이란 말이에요. 거핵완을 모욕한다는 건 우리 몇백만 환자들이 살아가는 권리를 박탈하는 것과 같아요. 저희는 절대 이런 행위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ZW그룹과 같이 좋은 회사를 모함하려 하다니. 많은 환자들의 살아가는 희망을 대가로 이익을 얻으려 하는 당신들이야말로 진정으로 나쁜 사람들이에요.”그들은 ZW그룹과 거핵완의 편을 들면서 기자들 앞에 몰려서서 아우성을 쳤다.이외에도 이승휘와 유재영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데이터 증거가 무슨 소용인가?환자와 환자 가족들이야말로 제일 유력한 증거이다.태세가 전환되면서 남기태가 우세를 점하게 되었다.그는 득의양양하게
“의사로서 문제가 있는 부분을 짚어낼 의무가 있습니다.”남기태는 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쏘아붙이기 시작했다.“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유 교수님께서 서양 의학의 옹호자로서 여러 번 공개적인 장소에서 국내 의학과 한약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비웃지 않으셨나요? 제일 중요한 건 유 교수님 연구 방향은 신경과와 독물학이시잖아요. 종양내과랑 아무런 연관도 없으시잖아요. 아닌가요?”남기태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그럼 대체 무슨 자격으로 거핵완을 비평하시는 거죠? 자신이 무능하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국내 의학 성과를 질투하시는 거잖아요. 자신이 얻을 수 없는 건 어떻게 해서든 망가뜨리려는 속셈이신가요?”“서양 의학 의사들의 속셈이 다 보이네요. 서양 의학이 언젠가는 도태될 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실업하기 싫어서 일부러 국내 의학 발전을 막으시려는 거잖아요.”이 말은 서양 의학과 국내 의학 사이의 모순을 불러일으키는 데 충분했다.“실업하지 않기 위해 국내 의학 발전을 가로막으려 하다니, 너무 뻔뻔한 거 아닌가요?”몇 마디 말로만 음모론까지 빚어내 사람들의 주목을 이끄는 남기태는 확실히 비열한 수단에 능했다.“특효약을 개발해 내지 못하는 서양 의학계에서 자신들의 무능함이 밝혀지는 걸 막기 위해 국내 의학 연구 성과를 망가뜨리려는 거란 말이죠? 확실히 그러면 지금 상태를 계속 유지해 나갈 수 있겠네요. 피땀을 흘려가며 연구하는 것보다 훨씬 쉽겠네요.”“서양 의학이 오랫동안 국내 의학보다 앞장서 간 상황이 바뀌는 걸 원치 않는 거잖아요. 너무 파렴치하네요.”“전문가는 개뿔! 다 거짓말쟁이네!”이승휘의 얼굴빛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그는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전혀 생각도 못 했다. 현재 상황을 되바꾸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다.기자들도 점점 남기태를 지지하는 태도를 선보이기 시작했다.일이 계속 이 상태로 커지게 내버려두면 비밀 폭로는커녕 ZW그룹을 홍보해 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돈을 투자하며 홍보하는 것보다 훨씬 수지가 맞았다.때가 되면 사람들
“어머, 국내 의학계 태두 황운석 어르신이잖아.”“저분 십여 년 전부터 유명세를 탄 국내 의학계 활화석이랑 마찬가지야. 후에 나이가 들어 은퇴하게 되었을 때 엄청 많은 환자들이 안타까워했다니까.”“ZW그룹에서 황운석 어르신까지 모셔 온 걸 보아서는 거핵완에 문제가 없는 게 분명해.”“서양 의학계 의사들이 나쁜 속셈을 품고 일부러 오명을 씌우려고 한 게 사실이네. 정말 사람들이 못돼먹었네. 국내 의학계 사람들을 좀 따라 배워요. 국내 의학 의사들은 눈을 감고도 병을 진단해 낼 수 있는데 서양 의학 의사들은 설비가 없으면 아무것도 진단해 내지 못하잖아요.”황운석은 80세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정정했다.얼굴에 붉은 윤기를 띤 그는 씩씩한 걸음으로 걸어 들어왔다.“어르신, 이렇게 멀리까지 오시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남기태는 황급히 무대에서 내려와 황운석을 부축했다.“괜찮네. 내가 걷지도 못할 정도로 늙은 건 아니네.”황운석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죄송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국내 의학 발전을 위해 나서는 건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들었어요? 이것이야말로 의사로서 갖추어야 할 품격이에요. 돈 받고 뻔뻔하게 남을 해치려는 자들과 다르다니까요.”“역시 국내 의학계 태두야, 차이가 너무 크잖아.”“황운석 어르신 앞에서 또 어떤 뻔뻔한 얘기를 꺼낼지 두고 보자고.”이승휘와 유재영은 부득불 일어나 무대 위에 올라온 황운석을 향해 공손하게 인사했다.“어르신.”두 사람은 서양 의학 출신이지만 황운석에 관해서 들어본 적은 있었기에 후배로서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다.“흥.”황운석은 콧방귀를 끼고는 두 사람에게 눈길을 주지도 않았다. 그들을 의학계 치욕으로 여기는 듯했다.난처해진 두 사람은 얼굴이 빨개졌다.“재영아, 오늘 일은 망친 것 같구나.”이승휘가 안타까워하며 말했다.쉽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변고가 생길 줄은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두 사람은 초등학생 마냥 남기태와 정면으로 맞서 싸울
“저는 국내 의학 발전을 위해 기여하는 ZW그룹과 백성들의 건강을 위해 제약 사업에 정성을 몰 붓는 남 대표님을 굳게 믿고 지지합니다.”너무도 무게가 있는 말이었다.이는 거핵완뿐만 아니라 ZW그룹과 남기태를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했다.남기태는 이내 겸손한 태도로 말했다.“과찬이십니다, 어르신. 어르신께서 이렇게까지 응원해 주시는데 사회 전체가 우리 ZW그룹을 오해하고 비난한다 하더라도 저희는 끝까지 곤란을 무릅쓰고 국내 의학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남 대표님은 마음씨가 너무 착한 게 문제예요. 대중들도 누가 좋은 사람이고 누가 나쁜 사람인지 구분할 줄 아는 만큼 남 대표님과 달리 나쁜 심보를 품은 사람들은 절대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겁니다.”황운석이 진지하게 말했다.바로 이때, 기자 한 명이 큰소리로 외쳤단.“맞습니다. 더는 의심할 것도 없이 남 대표님이야말로 진정으로 환자분을 관심하는 사람입니다.”나머지 사람들도 맞장구를 쳤다.남기태는 감동받은 척 연기하며 연신 감사하다고 말했다.“사회에 보답하고 환자분과 환자 가족분들의 응원과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품질을 보장하는 전제하에서 오늘부터 거핵완 한정 판매를 취소하고 또 다른 약국에서도 살 수 있게끔 거핵완 생산량을 늘리도록 하겠습니다.”“앞으로 여러분들은 일반 약국에서도 암 환자분들의 치료를 돕는 저렴한 거핵완을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현장은 환호성으로 가득했고 대부분 사람들이 다 기쁨 속에 도취되어 있었다.“남 대표님 만세. 책임감 있는 사업가란 이런 분을 말하는 거예요. 다른 제약회사들도 좀 따라 배워요. 백성들을 일 순위에 놓고 관심해 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뭐가 있겠어요.”“오늘부터 아이돌들도 다 필요 없어요. 남기태 대표님 팬으로만 살아갈 거예요!”“ZW그룹과 남 대표님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건 국내 의학 발전을 지지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용국 국민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요.”이승휘는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마지막 희망까지 다 소멸되었다.라
“재영아, 지금 뭐 하는 거야?”이승휘가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황운석은 ZW그룹을 지지해 주기 위해 찾아온 것인데, 그가 거핵완을 먹든 안 먹든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지?’유재영은 그의 말에 답하지 않고 계속 황운석을 향해 물었다.“국내 의학계 태두이신 분이 설마 자신이 암 말기라는 걸 모르고 계시는 건 아니죠?”“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암 말기라니? 헛소리 그만해.”유재영은 당황한 듯한 황운석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림프암 진단받으신 지 삼사 년은 되신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치료가 잘 진행되었는데 나중에는 치료가 그다지 순조롭지 않으셨죠? 암은 당신이 재벌이든 국내 의학계 태두이든 신경 쓰지 않아요. 방금까지 거핵완 효능에 관해 허풍을 떠시더니 왜 어르신은 거핵완을 복용하는 대신 항암치료를 선택하신 거죠? 현장에서 가발이라도 벗고 얘기하시지 그래요.”황운석은 눈이 휘둥그레졌다.“가발이라니. 입 함부로 놀리지 마!”“현장에 클렌징 오일 가져오신 분 있나요? 어르신 얼굴에 화색에 도는 게 메이크업 덕분이란 걸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나요? 메이크업 꽤 두껍게 하신 것 같은데, 프로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찾으셨죠? 메이크업 실력이 확실히 뛰어나네요. 원래 안색도 다 커버하고 흔히 발견하지 못하는 목과 볼까지 다 커버해 줬네요.”남기태는 더는 참지 못하고 눈을 부릅뜨고 유재영을 비난했다.“유 교수님, 대체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 이런 비열한 수단으로 사람들의 다른 곳으로 전이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우린 더는 속지 않아요. 여러분, 절대 거짓말에 또다시 속아 넘어가서는...”유재영은 그의 말을 끊고 자신의 말을 계속 이어갔다.“가발을 벗을 담도 없고 메이크업을 지울 담도 없는 걸 보아서는 의료기록을 공개할 담도 없으신 것 같은데, 제 말이 맞나요?”황운석이 황급히 답했다.“그건 내 프라이버시야!”유재영은 책상을 치며 일어나 말했다.“당신이 무대 위에 올라와 거핵완을 지지한다고 발언한 순간부터 그건 프라이버시가 아니에요! 오늘 우
“어르신, ZW그룹에서 자신들을 지지한다고 발언하면 얼마 주겠다고 하던가요? 항암치료를 하는 데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양심까지 팔아가면서 그 돈을 벌어야 했나요?”이승휘는 피식 웃더니 비꼬는 듯이 말했다.현장 분위기도 금세 바뀌었다.황운석은 눈을 부릅뜨고 고집부렸다.“내가 어떻게 치료하든 다 내 자유야. 너희가 무슨 자격으로 이래라저래라야!”남기태도 황급히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어르신이 거핵완을 복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거핵완에 문제가 있다는 건 아니잖아요.”“이것 보세요. 자꾸 화제를 바꾸려고 하잖아요. 아까 어르신께서 편작의전록을 언급하셨는데, 이 의전록은 후세 사람들이 위작한 거예요. 기록된 처방도 다 가짜란 말이죠. 겉으로는 병을 치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람 목숨을 업신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요.”유재영은 미리 예상이라도 한 듯 웃으면서 말했다.“서양 의학 출신 주제에 무슨 자격으로 국내 의학 전적을 평가하려고 해.”황운석이 반박했다.유재영은 하나도 당황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국내 의학 북태두이신 윤창석 어르신께서 이미 오래전에 편작의전록에 관해 평가하셨습니다. 어르신도 윤창석 어르신과 같은 국내 의학계 태두로서 알고 계시지 않나요?”“말도 안 되는 소릴. 윤창석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황운석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그는 유재영 손에 증거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서양 의학 출신인 데다가 고작 지방 병원 원장 주제에 설마 윤창석을 증인으로 내세우겠어. 윤창석은 너 유재영이 누군지도 모를걸?’염무현은 인파 속에 서서 유재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마침 제가 윤창석 어르신을 알고 있습니다. 황운석 어르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인정하세요. 저도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요.”유재영은 자신 있게 폰을 꺼내 들고 말했다.“지금 날 겁 주는 거야?”황운석은 당연하게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유재영은 한숨을 내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어르신을 생각
방금전까지만 해도 태두라고 거만하고 자신 있는 태도를 선보이던 황운석은 현재 땀범벅이 된 채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스크린에 있는 비범한 기품을 지닌 윤창석과 비겼을 때 거의 하늘과 땅 차이었다. 윤창석 앞에서 선 황운석은 시골 노인네에 불과했다.“여러분, 제가 이미 2년 전에 편작의전록이 조작된 것이라고 밝혔었습니다. 원본도 소각해 버렸는지라 시중에 더는 나타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생각도 못 했네요.”유재영은 일부러 카메라를 황운석을 향해 돌렸다.황운석은 머리를 숙였다가 이내 다시 쳐들고 윤창석을 향해 눈짓했다.그는 간절하게 윤창석이 자비를 베풀어주길 바랐다.그러나 윤창석은 꿈쩍도 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저도 거핵완에 관해 알고 있는데 유명무실하다고 평가하는 것조차 아까울 정도입니다. 돈을 얻기 위해 사람 생명까지 해치려 한다는 평가가 더 알맞을 것 같네요. 암 환자를 위한 약이라고 하던데, 대체 누가 생각해 낸 거죠? 게다가 값도 어마어마하게 비싸고, 사기랑 다를 바가 없잖아요. 인간으로서 양심조차 버린 것 같군요. 이 약을 전면 조사하고 ZW그룹의 법적 책임을 추궁하라고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이미 신고해 두었어요.”결말은 이미 정해졌다.말솜씨가 뛰어난 남기태도 더는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황운석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그는 윤창석이 왜 저토록 매정하게 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같은 국내 의학계 태두로서 절친한 친구 사이는 아니더라도 자주 만났었고 세미나도 함께 갔었는데 이 정도 일은 도와주는 게 정상이었다.그러나 황운석은 모를 것이다, 자신과 염무현 사이에서 윤창석이 망설임 없이 후자를 택했다는 것을.“전에 편작의전록이 조작된 것이라고 가장 먼저 자네한테 알리지 않았나? 벌써 잊은 건가?”윤창석은 눈살을 찌푸리고 마지막까지 황운석의 체면을 지켜주지 않았다.“아무리 잊었다 하더라도 대체 왜 한치의 양심도 없는 제약회사 편을 들어주는 거지?”서로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라 한들 어쩌겠는가?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