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욱 씨도 네 놈이 저주를 퍼부어서 죽은 거나 다름없어!”여정연은 행여나 자신의 슬퍼하는 연기가 제대로 먹히지 않을까 봐 조마조마했다. 전에는 연기에 대한 악플을 들어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었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중요한 타이밍이기에 이 슬픔이 연기라는 걸 절대 들켜서는 안 된다.만약 그녀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기라도 한다면 모든 게 다 수포가 될 것 아닌가!그래서 그녀는 도명철이 염무현을 향해 분노를 터트리는 걸 보면서 이때다 싶어 같이 소리를 질렀다.고진성은 아무리 설명해도 믿지 않으려는 여정연과 도명철 때문에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어느새 몰려든 병원 관계자들도 전부 유가족 편에 서는 바람에 어찌할 수가 없었다.바로 그때 복도 끝에서 누군가가 걸어왔다.“아니, 유 원장님, 이 교수님,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수술을 집도한 두 명의 의사는 깜짝 놀라 서둘러 두 사람을 모셨다.그들이 이토록 놀란 이유는 바로 상대가 우리병원 원장인 유동석과 이승휘 교수였기 때문이다.지난번 이승휘는 염무현의 신통한 의술을 직접 목격한 후 종종 우리병원에 들러 제자들과 염무현의 의술을 연구했다.오늘도 역시 연구 목적으로 왔다가 거물급 인사가 응급실에 실려 왔다는 소식에 황급히 달려온 것이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다가 해당 상황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신의님!”이승휘는 예상치도 못한 염무현의 등장에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여기까지 어쩐 일이세요.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염무현이 막 대답하려는 찰나 고진성이 빠르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이런!”상황을 전해 들은 이승휘는 호통을 쳤다.“감히 어디라고 신의님 앞을 가로막아! 얼른 길을 내어드리지 못해?”그러자 유동석도 옆에서 거들었다.“얼른 신의님을 수술실로 안내해 드려!”두 사람의 말에 병원 관계자들이 서서히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여정연만이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잠깐만요! 이 사람 사기꾼이라고요. 의사 면허도 없을걸요?”이 병원에서 제일 발언권 있는 두 사람의 말이면 보호
여정연은 오늘 임기욱을 살리는 건 못 막아도 그를 구할 골든 타임을 놓치도록 최대한 시간을 끌려고 했다.임기욱은 오늘 죽어야 한다!철썩!염무현의 따귀에 여정연은 입가에 피를 흘리며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당장 비켜!”염무현이 호통 치자 여정연은 겁에 질려 얼굴이 창백해지며 땅바닥에 웅크린 채 꼼짝하지 못했다.염라대왕은 여자에게 손을 대지 않지만, 무지막지한 여자는 봐주지 않았다.다른 사람들도 놀라서 쥐 죽은 듯이 있었다.염무현이 수술실로 들어가자 이승휘와 유재영도 급히 따라 들어가며 문을 닫았다.두 대의 심박수 모니터가 모두 가로선을 나타냈다.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임기욱과 도우순은 눈을 꼭 감은 채, 얼굴은 종잇장처럼 새하얗게 질린 모습을 보아 이미 죽은 게 분명했다.염무현은 출근 중에 금침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기에 병원에서 침 두 세트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다.그러고는 놀란 이승휘와 유재영을 뒤로하고 절묘한 침술을 선보였다.염무현이 두 손으로 동시에 침을 놓자, 침 하나하나 오차 없이 정확하게 혈 자리에 꽂혔다.“세상에, 오랫동안 사라졌던 마손 취혼침을 실제로 보다니, 너무 놀랍네요.”요즘 고대 의전과 문헌을 보며 견문을 넓히던 유재영이 감탄하기 바쁘게 또 탄성을 질렀다.“이건... 구전 역천침! 마찬가지로 사라졌던 의술입니다! 역시 염무현 씨가 괜히 자신 있었던 게 아니었네요. 선배님, 저 이제 완전히 염무현 씨를 존경하게 되었어요.”이승휘도 마찬가지였다.“난 진작에 두손 두발 다 들었어.”마손 취혼침, 구전 역천침으로 기사회생을 이루어냈다!삐-임기욱의 심장 박동이 돌아오고 빠르게 정상 심박수로 올라가는 걸 모니터로 볼 수 있었다.이승휘와 유재영은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장면을 본 순간 감탄을 금치 못했다.임기욱의 상처는 놀라운 속도로 출혈을 멈추었고, 서서히 아물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내상도 호전되고 있는 듯하였다. 몇 분 후, 임기욱의 안색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조금
염무현이 임기욱을 깔보는 게 아니라 두 배로 낸다는 건, 그의 전 재산을 지급해야 함을 의미했다. 예전에 누군가 염무현을 찾아와 치료받은 후 잔머리를 굴려 암암리에 자신의 재산을 빼돌렸다. 그리고는 재산 절반으로 진료비를 낸 적이 있는데, 그자는 3일도 안 되어 파산하고 거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장에 요절했다. 염무현은 본인이 나설 필요도 없이 그저 자신의 다른 환자에게 말했을 뿐인데, ‘정직’한 환자들이 힘을 합쳐 그자를 혼내 주었다. 그 이후로는 사람들이 진료비로 잔머리를 굴리는 건 둘째 치고, 이런 쪽으로 잔머리를 굴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하여 염무현은 임기욱이 너무 흥분하여 농담한 거라 여기고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술실 밖에서 사람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방 안의 소리를 엿듣다 깜짝 놀랐다. “저... 임 이사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요? 사망 선고하지 않았어요? 이럴 수가!” “아니, 그럴 리 없어요. 환청이 들린 거 아니에요?” 말로만 추측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도명철은 바로 수술실 문을 열었다. “진짠지 가짠지 문을 열어보면 알겠죠!” 덜컹-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면서 충격적인 장면이 나타났다. 모두가 임기욱이 염무현을 향해 계속해서 감사 인사를 건네는 것을 두 눈 똑똑히 보았다. “세상에! 정말 다시 살아난 겁니까?” “말도 안 돼!” 가장 먼저 소리친 사람은 바로 아까 그 두 명의 응급실 의사였다. 그들은 임기욱의 심장 박동이 멈춰서 이미 죽었다고 확신했다. “환자 상처를 보세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피가 철철 흘러서 꿰맬 시간조차 없었는데 어떻게 벌써 거의 다 아물었죠?” “저 잘못 본 거 아니죠?” 유재영은 정색하여 말했다. “제대로 본 것 맞습니다. 염무현 씨가 환자분을 살리는 것을 선배님과 제가 두 눈 똑똑히 보았습니다.” 임기욱도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 염무현 님이 저를 살려주신 생명의 은인입니다.” 임기욱이 직접 나서서 얘기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지
주위 사람들은 임기욱의 말을 듣고 어렴풋이 내막을 알 것 같았다.여정연은 자신이 한 짓들이 드러나자 금세 표정이 바뀌면서 무지막지한 여자처럼 고래고래 소리쳤다.“임기욱, 당신 거들먹거리지 마. 당신 돈 내가 진작에 다 빼돌렸어. 어디 한 대 더 때려보시지? 난 당신한테 한 푼도 안 줄 거야. 당신이 아무리 화내봤자 별 수 있어?”임기욱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가슴이 들썩일 정도로 씩씩거렸다.“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내가 당장이라도 널 죽이면 어떡하려고, 무섭지도 않아?”“참나, 무섭기는 무슨. 지금 돈이 다 나한테 있는데, 어디 내 손가락 하나라도 건드려 봐.”여정연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돈 받고 싶으면 나한테 빌어. 무릎 꿇고 빌면 몇 푼이라도 쥐여줄지 누가 알아?”‘까짓거 이판사판이야, 어디 한번 해 보자고!’임기욱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어이없어서 웃음이 났다.“넌 내가 단지 보안 목적으로 암호화된 칩을 쓴 거 같아? 저 칩으로 빼돌린 돈은 다 흔적이 남아. 네가 아무리 최첨단수법으로 돈을 세탁해도 소용없어. 내가 은행에 전화 한 통만 걸면 은행 수사팀에서 눈 깜빡할 사이에 그 돈 다 찾아내.”여정연은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두 눈을 부릅떴다.계략과 수단으로 여정연은 절대 임기욱을 이길 수 없었다. 그런데도 여정연은 자신이 똑똑하다고 믿으며, 상대의 약점을 잡은 줄 알고 그걸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협상 카드로 쓰려 했다.임기욱은 더 이상 여정연을 보고 싶지 않아 고진성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대인님, 이 여자는 납치범과 결탁하여 살인과 약탈에, 저희 화하 상업 그룹 거액의 자금까지 훔쳤습니다. 이건 모두 증거가 명백한 사실입니다.”고진성은 재차 확인하듯 임기욱에게 되물었다.“임 이사님, 그 말씀은...”임기욱은 정색하며 말했다.“법대로 처벌하시죠, 선처는 없습니다.”고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법이 여정연을 살려주어도 임기욱은 절대 봐주지 않을 거라는 걸 고진성은 속으로 잘 알고
도명철은 어안이 벙벙하여 엉겁결에 말했다. “얼마면 됩니까? 당신이 부르는 대로 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이 말에 유재영과 이승휘는 콧방귀를 뀌었다. 목숨을 걸고 돈을 벌 수는 있다지만, 돈으로 목숨을 구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 돈이 부족하지 않은데요.”염무현은 도명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단번에 거절했다. “조금 전 어떤 분이 자기 아버지는 건드리지도 말라고 해서 구하지 않은 겁니다.” 도명철은 다급한 마음에 소리쳤다. “염무현 씨, 억지 부리지 마요! 아까는 당신이 정말 사람을 살릴 줄 몰랐으니까 그랬던 겁니다. 모르고 한 말 갖고 왜 그래요? 어떻게 뻔히 살릴 수 있으면서 죽어 가는 사람을 그냥 둡니까, 사람 목숨이 장난이에요?” 염무현은 해명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래도 수술대를 쓱 보고는 말했다. “시간이 너무 오래 지체돼서 이미 목숨을 잃으셨습니다. 더 이상 살릴 수 없어요.” “그럼 왜 서두르지 않았어요!” 도명철은 자신이 어떻게든 막으려고 훼방 놓았던 것은 깨끗이 잊고 생떼를 부렸다. 이런 막무가내 억지에 염무현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임기욱마저도 눈살을 찌푸렸다. ‘저 녀석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염무현에게 싹싹 빌어도 모자랄 판에, 마치 염무현이 살려줘야 할 의무라도 있는 것처럼 굴면 누가 기분이 좋겠나.아무리 의사가 너그러운 마음을 지니고 있다지만, 그렇다고 머리 꼭대기에서 사람을 이래라저래라 부려 먹어선 안 되는 것이다. 환자 가족이라면 아무리 급해도 의사를 충분히 존중하면서 정중하게 부탁하는 최소한의 예의를 잊어서는 안되었다.하물며 염무현은 도명철 같은 인간에겐 전혀 자비를 베풀 마음이 없었다. 임기욱은 속으로 코웃음 쳤다. ‘뛰어난 의술을 가진 무현 님이 아니라 나라도 널 무시할 거다.’염무현도 인내심이 바닥났는지 냉랭하게 말했다. “살리든 말든 그건 제 일이고 제가 결정합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원래도 살릴 수 없거니와, 설령 살릴 수
몇백만, 몇천만 달러? 심지어 좀 더 비싸더라도 임기욱은 진료비를 낼 자신이 있었다. 이승휘와 유재영에게서 들은 바에 의하면 염무현이 아무런 기계도 쓰지 않고 자신을 십여 분 만에 살렸다고 했다. ‘침구 세트 두 개만 썼는데 치료비가 비싸면 얼마나 비싸겠어.’이승휘는 미간을 찌푸렸다. “전 재산의 절반이라고 합니다.” “얼마라고요?” 임기욱은 이승휘가 농담하는 줄 알고 두 눈을 번쩍 떴고, 이승휘는 진지하게 말했다. “그게 염무현 씨가 정한 규칙이랍니다. 그분에게 치료받은 사람은 모두 전 재산의 절반을 진료비로 내야 한답니다.” “병을 못 고쳐도 돈을 줘야 합니까?” 임기욱의 질문에 이승휘와 유재영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이승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임기욱 씨가 말씀하시는 상황은 있을 수 없습니다.” ‘염라대왕에게 병을 보이는데 치료할 수 없는 병이 있을까.’치료받은 환자마다 싱글벙글 웃으며 돈을 지급하고는 잔뜩 들떠서 떠났다.임기욱은 연신 눈살을 찌푸리며 두 눈에 복잡한 기색이 스쳤다.‘전 재산의 절반이라니, 말도 안 돼! 그저 보통 부자였다면 원래도 얼마 없는 돈을 주면 그만이겠지만, 나는 슈퍼 갑부라서 재산이 엄청나다고!’이런 식이면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손해보는 게 아닌가? 이건 공평하지 않았다. 돈 많은 사람들을 바보로 알고 기만하는 건가? 가난한 집의 돈만 돈이고, 부잣집의 돈은 뭐 하늘에서 떨어지나!다들 이런 불공평한 규칙을 따른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분명 염무현이 사기 치는 게 틀림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염무현 본인이 직접 정확한 금액을 말하지 않았고, 임기욱도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았기에 신뢰적인 부분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임기욱은 이런 생각들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딴생각을 굴리기 시작했다.한편 수술실 안, 두 의사는 도명철이 보는 앞에서 도우순을 살리려고 온 힘을 다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하며 안간힘을 다 써보았지만, 도우순은 이미 완전히 숨을 거둔 상태라 전부 무
“그 얘기 들었어요? 도 매니저님 그만둔대요.”“뭐라고요? 도 매니저님 어제까지도 출근했잖아요. 어제 누구랑 다투고 급히 떠나던데, 왜 갑자기 그만둔대요?”“도 매니저님 염무현 씨와 다퉜잖아요. 세상에, 설마 염무현이란 사람 진짜 숨겨둔 힘이라도 있는 것 아니에요, 도 매니저님도 상대할 수 없을 만큼?”사무실에서 직원들은 쑥덕쑥덕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아까 총무 부서 직원한테서 들었는데, 우서준 씨 아침 일찍 와서 사직서 내고 인사부에서 결정이 나기도 전에 갔대요.”“다른 회사로 옮긴 게 아니면 겁에 질려서 일분일초도 못 버티는 것 말고는 별다른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요.”“염무현이라는 사람, 뒷배가 그렇게 대단해요?”우예원도 의아했다. 과거 우서준은 염무현에게 시비를 걸었던 탓에 총무 부서로 쫓겨나서 에어컨이나 관리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도명철 차례인가?우서준은 보통 사원이라 그럴 수 있다지만 도명철은 영업팀 매니저였고, 게다가 도씨 가문은 혜리 그룹에도 지분이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 다 쫓겨나도 그는 아닐 줄 알았다.하지연이 하이힐을 신고 또각또각 걸어왔다.“여러분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영업팀 매니저였던 도명철 씨가 집안 사정으로 일을 그만두게 되었어요. 영업팀의 프로젝트는 잠시 두 팀장님이 책임지도록 하고, 회사에서 이른 시일 내에 새 매니저님을 보낼 테니까 그전까지 모두 하던 일 그대로 하시면 돼요.”아니나 다를까 도명철은 정말로 회사를 그만뒀다.“하 팀장님, 도 매니저님 집에 무슨 일 생겼대요?”누군가 이렇게 물었다.사실 직원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무슨 재밌는 일이 있는지 기대하고 있었다. 집안 사정이라니, 대충 들어도 아무렇게나 둘러댄 핑계가 분명했다.“이건 도명철 씨 개인 사정이라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하지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하지만 여러분들이 이리저리 추측하면서 제대로 일하지 않을까 봐 그냥 알려드릴게요. 어젯밤, 도명철 씨 아버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셔서 일 처리를 마저 하려고 그만둔 겁니다.”그랬구나!
우예원은 그래도 예의상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거의 다 쌌어요. 늦어도 내일이면 나갈 겁니다. 집 안도 다 깨끗이 청소했고, 가구나 가전제품도 망가진 게 없어요.”“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는 내가 직접 봐야 알죠.”집주인은 능청스레 한 바퀴 돌아봤지만 확실히 트집 잡을 곳이 없었다.우예원은 집안 물건을 소중히 여겨 종래로 망가트린 적이 없었기에 아주 떳떳하게 말했다.“보시다시피 아무 문제 없으니까 이제 보증금 돌려주셔야죠?”“무슨 소리지?”집주인이 표정을 굳히며 콧방귀를 뀌었다.“아가씨가 계약을 어긴 것도 위약금 안 받았는데, 뻔뻔하게 나한테 보증금을 요구해요?”“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우예원은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카톡으로 연락할 땐 이런 말 없었잖아요. 아저씨가 된다고 해서 저도 짐 정리한 건데.”집주인은 음침하게 웃었다.“생각이 바뀌었어요. 말로만 한 약속은 법적 효력이 없지. 세입자가 계약을 어길 시, 집주인은 보증금을 가져갈 권리가 있어요. 그게 이 바닥 규정인 거 모르나?”집주인은 우예원과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우예원의 룸메이트가 일찍 여기서 나갔고 우예원 혼자 이 집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몹쓸 꿍꿍이가 생겼다.갓 대학을 졸업해서 사회 경험도 없고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여자애 하나쯤 다루기 쉽지 않겠나!“아니, 어떻게 한 입으로 두말하세요!”우예원은 속이 탔다. 40만 원이 큰돈은 아니지만 사회 초년생인 우예원에겐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이를 보자 집주인의 두 눈이 음침하게 번뜩이며 더러운 눈빛으로 우예원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나도 알지, 요즘 대학생들 살기 어려운 거!”그는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나랑 한번 하면 보증금 돌려줄지 생각해 볼게, 어때요?”“무슨 말씀 하시는 건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네요.”우예원은 깜짝 놀라 두 손으로 옷깃을 막으며 뒤로 몇 발짝 물러났다.집주인은 더욱더 거침없이 다가가며 음탕한 미소를 지었다.“한 번이면 돼요. 몇 분 안 돼서 40만 원 받는데, 회사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