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것은 바로 진도하가 가장 능통한 것이었다. 눈을 감고 미궁에 들어온 뒤부터 일어난 모든 일을 떠올려 보자 이 미궁에서 사용한 팔괘진을 대략적으로 구분해 냈다.진도하에게 팔괘진은 아주 익숙했기 때문에 진형을 뚫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다만 미궁 속에서는 진형을 전체적으로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진형을 깨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이때 진도하는 문득 왼쪽과 바로 앞의 두 길에서 피가 마르고 남은 흔적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분명히 과거에 미궁에 들어왔다가 이 두 길에서 죽은 사람들이 남긴 피의 흔적이었다.즉, 핏자국이 없는 길이 바로 정확한 길이었다.이렇게 생각하고 핏자국이 없는 다른 길로 향하려던 진도하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곧 그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그는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한 길로 갈 뻔했다.이 미궁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이전에 사람들이 갔던 길이 비록 막힌 길이었더라도 이번에는 정확한 길이 될 수 있고, 이전에 정확한 길이었던 길이 지금은 막힌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한빛궁의 제자들은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몰랐고, 그중 몇몇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왜 갑자기 앞으로 가지 않는 거예요?”“글쎄요. 뭘 발견한 것 같아요.”이때 진도하는 자신의 감정을 진정시켰다.제자리에 서서 잠시 생각한 후 그는 자신의 옷에서 천 조각을 찢은 다음 눈을 가렸다. 이 순간 눈앞의 모든 것이 보이지 않았다.이 장면을 보고 한빛궁의 제자들은 의아해하며 물었다.“뭐 하는 거지? 왜 눈을 가리고 있는 걸까?”“글쎄, 직감을 따라 가려고 하는 건가?”누군가는 엉뚱한 추측을 했다.사실 그 말이 맞았다.진도하는 팔괘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직감을 따라 가려고 했던 것이다.게다가 그는 지금 매우 자신감이 넘쳤고, 길어야 10여 분이면 이 미궁을 완전히 빠져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가 그렇게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미궁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이 미궁이 움직인다는 것은 진형을 이루고 있다는
진도하는 이렇게 눈을 가린 채 세 개의 갈림길을 연달아 지나갔다. 갈림길 하나하나 지날 때마다 전혀 주저하지 않고 걸었다. 그 모습을 보고 한빛궁의 제자들은 충격에 빠졌다.“뭐야... 목숨 걸고 하는 건가?”“눈 가리고 미궁에 도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정말 간이 배 밖으로 나오기라도 한 거야?”한빛궁의 제자들은 잔뜩 놀란 얼굴로 계속해서 감탄하며 미궁 속에 있는 진도하를 의아한 눈길로 바라봤다.묵묵히 진도하를 바라보는 현지수의 눈빛에도 놀라움이 묻어있었다.현지수는 한빛궁의 대선배로서, 평소에도 어르신들로부터 이 세 가지 테스트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었다. 하지만 진도하처럼 미궁을 헤쳐 나간 사람이 있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진도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한가롭게 정원을 걸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자기 집 앞마당을 누비는 것 같았다.현지수도 한빛궁의 제자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진도하의 속도대로 간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성공하겠는걸?’하긴, 잠깐 사이에 진도하는 이미 절반 이상의 거리를 지나왔다. 그리고 미궁을 헤쳐가는 내내 위험에 부닥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두 갈래의 갈림길은 물론이고, 세 갈래, 네 갈래, 심지어 다섯 갈래로 나뉜 갈림길에서도 진도하는 전혀 주저하지 않고 지나갔다.위로 가든, 아래로 가든, 진도하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성큼성큼 걸어갔다. 심지어 강을 마주했을 때는 곧장 강으로 뛰어들어 강물을 타고 내려갔다.뭍에 오른 뒤 진도하는 눈을 가라고 있던 헝겊을 벗었다. 이때 세 개의 통로가 눈에 들어왔다.눈앞에 펼쳐진 세 개 통로를 보면서 진도하는 이것이 바로 한빛 미궁의 입구인 것을 알아차렸다. 이곳은 팔관문의 생문이며, 속칭 길문이라고도 했다.마지막 한 번의 선택이 남았다. 이번에도 정확한 선택을 한다면 한빛 미궁을 성공적으로 통과하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진도하는 망설임 없이 첫 번째 문 앞으로 걸어갔다.생문 앞에 도착했을 때 이미 어떤 문이 진짜 생문인지 알아차렸던 진도하는 고민하지 않고 걸
현지수의 얼굴에도 걱정이 가득했다. 그녀는 진도하가 실패할까 봐 걱정했다. 진도하의 실패뿐만 아니라 사부님의 수명도 걱정하고 있었다.‘만약 진도하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사부님은 누가 구할까?’그 때문에 아마 현지수야말로 그 자리에서 진도하를 가장 걱정하는 사람일 것이다.게다가, 한빛궁 조상 대대로 물려져 온 미션을 완수해야 하는 숙명 때문만 아니었다면, 현지수도 진도하에게 구사일생에 가까운 이 세 가지 테스트를 모두 끝내라고 설득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한빛궁의 규칙을 준수해야 했다. 무릇 한 개 테스트를 통과하면 한빛궁의 사람들은 모두 나서서 어떻게든 모든 테스트를 완료하도록 설득했다.스승님이 그녀에게 한빛궁의 비밀을 말해주기 전까지는 현지수도 이해하지 못했다...그래서 그녀는 진도하에게 이 세 가지 테스트를 끝내라고 끈질기게 설득했고, 진도하의 실력이라면 반드시 이 세 가지 테스트를 끝낼 수 있다고 믿었다.현지수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진도하는 이미 환상 세계 통로 안에 있었다. 현지수가 손을 흔들자, 통로 안의 화면이 나타났고 진도하가 어둠 속에 있는 것이 보였다.하지만 모든 사람이 통로 안의 상황을 똑똑히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대선배님, 저희는 안 보입니다.”당돌한 제자 한 명이 대선배인 현지수에게 물었다.현지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나도 어쩔 수 없어, 환상 세계는 원래 이런 곳이야. 지금 네가 볼 수 있다 해도, 진도하가 환상 세계에 들어간 후면 다시 아무것도 볼 수 없을 거야.”현지수의 설명을 들은 사매들은 조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과 달리 환상 세계에 있는 진도하는 모든 것이 똑똑히 보았다.이 환상은 세계는 크지 않았다. 고작 10㎡ 정도 되는 작은 방이었다. 방안은 휑했고 아무것도 없었는데, 방 한가운데에 둥근 단상 하나가 놓여 있었다.진도하는 방안을 한 번 훑어보니, 이 둥근 당상이 이 테스트를 완료하는 중요한 열쇠인 것 같았다. 진도하는 이 단상 위에 올라섰다.단상 위에 서
화면이 바뀌었고 진도하는 어느새 포대기 속의 아이가 되어있었다.흰옷을 입은 여인이 포대기 속의 아이가 된 진도하를 안고 말했다.“아들아, 모든 것을 잊고, 모든 원한을 잊어라. 엄마 아빠는 네가 우리를 위해 복수하지 않아도 돼, 우리는 단지 네가 평범하고, 건강하게 살기를 바란다.”이 말에 진도하는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친엄마가 양부모에게 자신을 맡길 때 했던 말일 텐데, 그때는 너무 어려서 기억하지 못했다. 지금, 진도하는 환상 세계에 처해 있으므로, 환상 세계가 진도하의 무의식까지 파고들어 머릿속을 읽고 재현해 냈다.진도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친어머니의 모습을 보려고 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얼굴을 들 수 없었고, 어머니의 모습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진도하의 머릿속에 친부모님의 모습이 남아있지 않은 탓에 환상 세계도 그 얼굴을 복원해 낼 수 없었던 모양이다.바로 그 순간, 화면이 다시 바뀌었다.진도하는 해저감옥에 살면서 비인간적인 고통에 시달리다 죽을 뻔했는데, 미스터리 스승이 나타나 그를 구해줬다.그때, 진도하는 미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는데, 지금 다시 보니, 그 미스터리 스승은 예전부터 자신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가 괴로워하고 있을 때 그 미스터리 스승이 옆에서 그를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오랜 세월 동안 진도하는 많은 일을 겪었기에, 미스터리 스승의 눈빛이 낯선 사람을 보는 눈빛이 아니라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다. 화면이 나타나자, 진도하는 당시 자신을 가르쳤던 미스터리 스승이 자신을 알고 있거나 자기 부모를 알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여기까지 생각한 그는 한가해지면 반드시 해저 감옥에 한 번 더 다녀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바로 이때 진도하는 새로운 문제를 깨달았다.이 환상 세계가 매번 바뀌는 것은 자신이 환상 세계인 것을 인식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환상 세계인 것을 스스로 깨닫기만 하면 그 안에 또 다른 환상 세계가 나타나 그를 몰입하게 만들었다. 환상 세계로 빠져들지 않으면 화면은 바로
나중에 되어서야 그는 양부모가 그 음식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정 형편상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양부모는 그 음식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고 진도하를 위해 남겨줬던 것이었다.진도하는 어린 시절의 일들이 다시 반복되자 이것이 환상 세계인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몰입했다. 어렸을 때 양부모가 자신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하는지 보고 싶었다.사실 진도하는 줄곧 자기 양부모에게 친자식이든 아니든, 자신이 친부모를 찾고 있든 아니든 간에, 그의 마음속에서는 두 분이야말로 진정한 부모님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진도하는 양부모님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적셨다.환상 세계 밖에 있는 한빛궁의 제자들은 환상 세계를 볼 수 없지만 진도하가 어두운 방에 앉아 표정이 끊임없이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진도하의 눈시울이 붉어지자, 한빛궁의 제자들이 걱정스럽게 소리쳤다.“설... 설마 환상 세계에 몰입한 건 아니겠죠?”“그렇게 되면 위험할 텐데...”“환상 세계에서는 반드시 정신을 차려야 해, 절대 무너져서는 안 돼.”한빛궁의 제자들은 안절부절못했다.진도하가 몰입한 것을 눈치챈 현지수도 잠시 마음이 심란해졌다. 이대로라면 너무 위험했다. 그녀는 진도하에게 주의를 주고 싶었지만 어떻게 상기시켜야 할지 몰라 두 손을 꼭 잡고 발만 동동 구르며 진도하의 표정 하나하나를 응시했다.반대편에서 이주안도 심상치 않은 진도하의 표정 변화를 보고 진도하에게 들리든 안 들리든 상관하지 않고, 정기까지 불러일으키며 필사적으로 소리쳤다.“도하 형님, 정신 차려요. 그건 환상 세계입니다! 환상!”그러나 환상 세계에 있는 진도하에겐 이주안의 외침이 닿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환상에 잠겨 있었고 이런 느낌이 너무 좋았다.어렸을 때, 진도하는 매일 집에 가서 부모님을 모시고 밥을 먹고 TV를 보면서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꼈다. 이제 다 컸으니 부모님 모시고 영화를 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밥 한 끼 먹은 적도 몇 번 없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진도하
바로 그때, 흰옷을 입은 여인이 갑자기 몸을 돌려 비수로 진도하를 찔렀다.진도하는 비수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의 모든 관심은 온통 흰 옷을 입은 여자의 얼굴에 쏠려 있었다. 그는 어머니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 싶었지만, 점점 더 흐릿하게만 보여 도무지 똑똑히 볼 수가 없었다.다음 순간, 진도하는 욱신욱신 쑤셔오는 고통에 고개를 숙이고 보니 그제야 몸에 꽂힌 비수를 발견했다.그러자 여자는 고개를 젖히고 큰 소리로 웃었다.환상 세계 밖에서 현지수를 포함한 한빛궁의 제자들은 환상 세계에 앉아 있는 진도하가 끙끙거리다가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흠칫했다.“설마 다치진 않았겠지?”한빛궁의 어린 제자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제가 봤을 때 한 방 맞은 것 같은 반응이었는데...”또 다른 제자가 대답했다. 현지수는 걱정스러운 듯 진도하를 한 번 보고, 속으로 속으로 중얼거렸다.“마지막 관문이니, 꼭 좀 버텨주세요.”진도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의 의식은 아직 환상 세계에 잠겨 있었다. 그는 몸에 박힌 비수를 부여잡고 넋을 잃은 표정으로 흰옷 차림의 여인을 바라보며 말했다.“당신은... 내 친엄마가 아니었어.”실망이 말투에 배어 있었다.흰옷 차림의 여인은 진도하의 말을 못 들은 듯 여전히 넋을 잃고 웃고 있었다.진도하는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허허...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차례죠.”진도하의 눈빛이 맑은 것으로 보아 아직 환상 세계에 빠지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진도하는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이 환상 세계인 것을 시종일관 알고 있었다. 그가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친어머니의 모습을 똑똑히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면 앞으로 친어머니를 찾기가 더욱 쉬워질 것이다. 그러나 환상 세계 속에서 친어머니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진도하는 더 이상 몰입한 척하지 않았다.다음 순간, 환상 세계는 다시 한번 바뀌었다. 이번에는 진도하의 앞에 나타난 강유진이 진도하를 꼭 껴안고 걱정스럽게 물었다.“어떻게 된 거예요?
여기까지 생각하자 진도하는 ‘쏴”하고 눈을 번쩍 떴다.등 뒤는 식은땀으로 가득 찼다.그는 문득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만약 이 환상 세계가 사람을 알게 모르게 환상 세계로 빠지게 만든다면, 자신이 환상 세계의 통로에 발을 디딘 순간 이미 환상 세계 속으로 빠져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방석 위에 앉았을 때 환상 세계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여기까지 생각되자 진도하는 환상 세계 속에서 의식을 되찾았다.다음 순간, 그의 의식은 처음으로 돌아갔다.그는 방석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깜깜한 환상 세계 속으로 돌아갔다.진도하가 자신이 환상 세계 속에 있는지, 현실에 있는지 의심하고 있을 때 문득 앞에 문이 나타났다.그는 이 문을 본 적이 있었는데 바로 통과를 의미하는 문이다. 이 문을 나서기만 하면 진도하는 환상 세계를 벗어나 테스트를 마친 셈이 된다.이윽고 진도하는 망설임 없이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그러나 그가 문에 발을 디딘 순간, 갑자기 살기를 느꼈다.쏴아!머리가 갑자기 매우 맑아졌다.그는 급히 발을 회수했다.“아니야, 들어갈 수 없어. 나는 아직 환상 세계 속에 있어.”진도하는 청명한 눈빛으로 말했다.왜냐하면 무심코 고개를 숙였을 때 자신의 몸에 두 개의 상처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다시 말해서, 그는 자신의 의식을 되찾은 것이 아니라, 환상 세계의 화면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식은땀이 점점 더 많이 흐르기 시작했다.‘이 문으로 나간다면, 정말 이주안은 물론 한빛궁의 수많은 여제자를 볼 수 있을 텐데.’다만, 이것은 진도하가 그 후로 완전히 환상 세계 속에 빠져 다시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그 안에 살 것임을 의미하기도 한다.진도하는 마음을 추스른 후 스스로를 진정시키려 애썼다.그는 환상 세계 속에 들어갔던 순간들을 차근차근 회상하며 어떻게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는지, 어떻게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환상 세계의 화면이 계속 바뀌게 두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더군다나 이 환상 세계 속에
진도하의 울부짖음 소리가 너무 큰 탓에 땅이 흔들렸다.이 순간, 그의 체내의 기운도 몸에서 분출되었다.바로 그때 진도하는 환상 세계가 조금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매우 약한 흔들림이었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문득 진도하는 깨달았다. 이 꿈은 생각했던 것만큼 견고하지 않다는 것을. 자기의 의식이 이 환상 세계를 뚫는다면 그는 반드시 테스트를 통과할 것이다.‘그래, 어떤 변화에도 불구하고 내 의식으로 이 환상 세계를 공격하면 되는 거야.’곧 그는 이 환상 세계의 약점을 발견했다.‘내가 정기로 이 환상 세계를 공격하면 아주 경미한 반응만 보일 뿐이야. 그렇다고 감지력으로 공격하면 환상 세계는 진동하기는 하지만 효과가 크지 못해. 오직 정신력으로 이 환상 세계를 공격할 때 반응이 가장 커!’그는 환상 세계의 약점이 정신력이라는 것을 알아냈다.자신의 정신력이 충분히 강하다면 이 환상 세계는 조만간 깨질 것이고, 그때가 되면 의식은 반드시 본래의 몸으로 돌아올 것이다.다행히도 진도하는 매우 강한 정신력을 갖고 있어 계속 환상 세계를 공격할 수 있었다.한빛궁의 사람들은 진도하가 볼 수 있는 화면을 볼 수 없었고, 그가 무엇을 마주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저 얼굴 표정의 변화, 그리고 정서와 신체 사이의 변화만 볼 수 있을 뿐.“도대체 뭘 겪고 계시는 걸까? 왜 고통스러워 보였다가 즐거워 보였다가 하지?”“글쎄. 하지만 내 생각에 환상 세계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빠져들게 하는 것 같아. 예를 들어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술을 보여주는 거지, 평생 먹어도 다 마실 수 없는 정도의 양으로 말이야. 만약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가지려고 해도 다 가질 수 없는 정도의 돈을 보여주고.”누군가가 말했다.이 말에 일부 사람들은 더욱 궁금해했다.“그럼 진도하 씨처럼 심마와 미궁을 통과한 수련자들은 도대체 뭘 좋아할까?”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침묵했다. 다들 진도하가 본 것이 뭔지 추측하고 있는 것이다.현지수조차 참지 못하고 추측
“선우 씨가요? 내 이름을 걸고 말이에요?”진도하는 주선우를 흘겨보았다.주선우가 두 눈을 반짝이며 열정 가득한 모습을 보니 이 일에 꽤나 열을 올리고 있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맞아요. 형님은 형님 할 일을 계속하면 되고 상고성의 일은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주선우가 말했다.“어쨌든 이곳은 항상 형님이 말하는 대로 될 거예요.”진도하는 그 말에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무엇보다도 그는 문득 자신의 조상, 진씨 가문의 창시자를 떠올렸다.스승님이 말하길 진씨 가문의 창시자는 원래 세계의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문파를 세웠고 그들이 이 세계에 도착했을 때 머무를 곳과 수련 자원을 마련해 놓았다고 했다.지금 비록 자신이 조상처럼 높은 경지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이 작은 상고성에서라면 문파를 세우고 보호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그러면 이주안, 현지수, 강고수 같은 사람들이 이 세계로 오게 될 경우 바로 상고성으로 올 수 있을 것이다.이런 생각이 들자 진도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 일은 조금 더 생각해보도록 하죠.”그러자 주선우는 안절부절못한 듯 서둘러 말했다.“형님, 생각할 것도 없어요! 지금 형님의 대부경 5단계 실력으로 문파를 세우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더구나 이미 대부경 7단계 두 명을 넘어섰잖아요!”“하지만 수련 자원과 공법은 어디서 구할 수 있죠?”진도하가 물었다.문파를 세운다고 해도 중요한 건 공법과 자원이다. 이런 것들이 없다면 문파는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그러자 주선우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말했다.“그건 다 준비돼 있잖아요.”그러고는 고문파의 대문을 향해 입술을 쓱 내밀었다.진도하는 그제야 주선우의 뜻을 알아차렸다.그는 고문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침 단전이 파괴된 고문파 사람들은 자신들의 짐을 챙겨 들고 차례차례 걸어나오고 있었다.주선우는 그들을 향해 외쳤다.“짐만 챙겨 나가. 공법과 자원은 모두 두고 가야 해. 알았어? 만약 몰래 가지고 나가는 걸 나한테 들키면 그땐
그 말을 들은 열몇 명의 수련자들은 더욱 두려워졌다.이때 문 밖에서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자 수련자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문 쪽을 바라보았다.곧 그들 앞에 나타난 사람들은 다름 아닌 같은 문파의 동료들이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놀란 표정이 가득했다.“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일흔 명이 넘는 동료들이 입가에 피를 흘리고 창백한 얼굴로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었다.“너희 단전이 파괴된 거야?”금세 누군가가 상황을 깨닫고는 두려움에 떨며 물었다.하지만 그 수련자들은 아무 말 없이 진도하와 은소혜를 비켜 지나 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이 광경을 목격한 나머지 수련자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비록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들은 동료들의 단전이 파괴된 것이 바로 진도하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진도하는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10!”“9!”“8!”세 개의 숫자가 떨어지자마자 그중 한 명이 기운을 모아 자신의 단전을 가격했다.첫 번째로 나선 사람이 나오자 두 번째, 세 번째로 자진해서 단전을 파괴하는 이들이 연달아 나왔다.결국 열몇 명 모두 단전을 스스로 파괴했다.그제야 진도하는 만족한 듯 몸을 돌려 문을 나섰고 은소혜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은 독고 청의와 주선우가 기다리고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독고 청의가 물었다.“다 해결된 거죠?”“네, 해결됐어요.”진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주선우가 물었다.“그럼 저들을 그냥 이렇게 놔둬도 되는 거예요?”진도하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그냥 두죠.”비록 그들이 고천혁과 함께 악행을 저질렀지만 이제 그들은 단전이 파괴된 폐인이 되었으니 굳이 끝까지 몰아붙일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때로는 살아 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울 때도 있으니까.주선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갑자기 흥분한 듯 진도하에게 말했다.“형님! 고천혁도 죽고 고문파도 거의 전멸했으니 이제 상고성에는 더 이상 문파가 없어졌어요.”“네?”진
그 한 마디가 마치 천둥소리처럼 크게 울려 퍼졌다.은소혜는 귀를 문지르며 속으로 생각했다.‘도하의 실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구나.’문 앞에 있던 독고 청의와 주선우를 비롯한 다른 수련자들도 본능적으로 귀를 막았다.진도하의 목소리는 고문파의 본거지에 울려 퍼졌고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들었을 것이다.아니나 다를까 1분도 지나지 않아 십여 명의 수련자들이 장검을 들고 진도하 앞에 분노에 찬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다.그들 중 선두에 선 마흔 즈음의 중년 남자가 화난 표정으로 진도하를 노려보며 말했다.“우리 고문파 앞에서 감히 고함을 치다니, 너 죽고 싶어?”그러자 진도하는 무표정하게 대답했다.“고천혁은 이미 죽었어. 너희도 단전을 스스로 파괴하면 목숨만은 살려줄게.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야.”그 중년 남자는 갑자기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너희 둘 미쳤어? 여기가 어딘 줄이나 알아? 감히 여기서 그런 허튼 소리를 하다니,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났구나!”단전을 자진 파괴한 고문파 수련자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에 그는 고천혁이 죽었다는 사실도, 다른 수련자들이 이미 단전을 스스로 파괴했다는 사실도 전혀 몰랐다.그는 진도하를 분노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바로 칼을 뽑을 듯한 기세였다.진도하는 화를 내지 않았고 그저 웃으며 중년 남자에게 물었다.“너희 고문파 사람들은 모두 여기에 있어?”그와 동시에 진도하는 자신의 감지력을 넓혀 주변을 탐지했다.중년 남자는 대답 대신 화를 내며 소리쳤다.“어서 나가! 안 그러면 우리 세 개 주성의 수장님이 돌아오시면 넌 반드시 죽을 거야!”그는 진도하와 은소혜가 풍기는 강력한 기운을 느끼고 자신이 그들을 상대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그러나 평소 상고성에서 악명을 떨치며 권력을 휘두르던 그는 이들을 딱히 신경 쓰지 않고 세 개 주성의 수장을 언급하며 그들을 위협하고 쫓아내려고 했다.이때 은소혜가 칼을 들고 중년 남자 옆으로 성큼 다가가며 말했다.“네가 말하는 ‘세 개 주성의 수장’이 고
그때 백발의 노인이 말했다.“길을 안내해드릴까요?”“좋습니다!”진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고천혁을 제거한 이상 고문파의 나머지 사람들도 빨리 처리해야 했다. 그들을 놓쳐서 도망가게 한다면 더 큰 골칫거리가 될 것이 분명했다.이런 생각이 들자 진도하는 말했다.“어르신, 젊은 분 한 분만 보내주세요. 어르신께서 굳이 함께 가실 필요는 없습니다.”백발의 노인은 진도하의 뜻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철수야, 네가 발도 빠르고 민첩하니 진 대사님을 안내해드려라.”“알겠습니다!”철수는 사람들 속에서 뛰어나와 신나게 말했다.“진 대사님, 저를 따라오시죠!”“가요!”진도하는 고개를 끄덕이고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철수의 팔을 가볍게 잡았다.“철수 씨는 방향만 알려주면 돼요.”“알겠습니다!”철수는 곧장 대답했다.“이 길 끝까지 가서 왼쪽으로 꺾으면 됩니다!”철수가 방향을 알려주자 진도하는 환허보를 발휘해 고문파 본거지로 빠르게 향했다. 가는 동안 철수는 입을 틀어막고 있었고 언제든지 토할 것처럼 보였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은소혜와 독고 청의 일행도 그 뒤를 따랐다.얼마 지나지 않아 단전을 자진 파괴한 고문파 수련자들이 진도하의 눈에 들어왔다.그들도 진도하를 보자마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우린 이미 단전을 끊었는데 왜 또 우리를 죽이려는 거야?”그들은 진도하를 두려워하며 물었다.그러자 진도하는 냉담하게 대답했다.“걱정하지 마. 나는 약속은 꼭 지켜.”“그런데 왜...”그들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진도하를 바라보았다.그러나 진도하는 대답하지 않고 철수에게 다시 방향을 물었다. 철수가 또 다른 방향을 가리키자 진도하는 곧바로 그 자리를 떠났다.단전이 파괴된 고문파의 수련자들은 진도하가 사라지자 그제야 긴장을 풀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그들은 서로 눈을 마주쳤고 얼굴에는 씁쓸한 표정만 남아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상고성에서 위세를 떨치던 수련자들이 이제는 단전이 파괴된 폐인이 되었으니 당연히 감
그 수련자는 눈빛이 흔들리며 혼란스러워졌다.진도하는 분노에 차 소리쳤다.“설마 나를 직접 나서게 만들 생각이야?”고문파의 수련자들이 자진하여 단전을 끊고 있을 때 진도하는 자신의 감지력을 모두 풀어놓았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거짓으로 단전을 끊는 척할까 염려했기 때문이다.지금 진도하 앞에 있는 이 수련자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그는 자신의 단전을 때리는 시늉만 했을 뿐 실제로는 기운을 모으지 않았고 피를 뱉는 척까지 했다. 그의 단전은 멀쩡했다.그 수련자는 복잡한 눈빛으로 진도하를 바라보더니 침을 몇 번 삼키며 눈을 감았다. 이어서 그는 제대로 자신의 단전을 향해 손바닥을 내리쳤다.퍽.이번엔 진짜로 선홍빛의 피가 튀어나왔다.그제야 진도하는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꺼져!”그 수련자는 단전이 파괴된 고통을 억지로 참고 비틀거리면서 자리를 떠났다.곧 고문파의 수련자들은 모두 단전을 스스로 끊고 떠났다. 그제야 진도하는 용음검을 거두었다.그는 뒤돌아 은소혜와 그녀 뒤에 있는 수련자들을 보며 물었다.“우리는 사상자가 있어?”“사상자는 없지만 부상자는 몇 명 있어.”은소혜가 대답했다.조금 전 그들이 고문파의 수련자들과 싸울 때 은소혜는 계속해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고 위험한 상황이 생길 때마다 바로 달려갔기 때문에 다행히 죽은 사람은 없고 몇 명의 부상자만 나왔을 뿐이었다.“그래도 부상 당한 사람들은 이미 치료를 받았어. 지금 다들 몸 상태가 좀 허약할 뿐이지 큰 문제는 없어.”은소혜가 덧붙였다.그러자 진도하는 안도하며 품에서 약병을 꺼냈다.“이 약들은 내가 직접 만든 거예요. 수련에 큰 도움이 될 테니 모두 한 알씩 가져가요.”이들은 진도하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그를 도왔기에 진도하는 그들에게 깊은 감사를 느끼고 있었다. 그는 수련자들에게 보답하고 싶어 이 약을 내놓은 것이었다.진도하는 약병을 가장 가까이 있던 수련자에게 건네주었고 그 수련자는 약을 하나 꺼낸 다음 옆 사람에게 다시 약병을 넘겼다.바로 그
진도하는 말을 마치자마자 다시 한번 용음검을 뽑아들고 고문파의 수련자들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검 끝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살기가 고문파의 수련자들을 압도했고 이에 모두가 침묵 속에 휩싸였다.‘어떻게 해야 하지?’아무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그들이 망설이는 사이 은소혜와 독고 청의를 비롯한 다른 수련자들이 모두 다가와 고문파 수련자들을 포위했다.그들의 숫자는 고문파보다 적었지만 그들의 전의와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그들은 무기를 움켜쥔 채로 고문파의 수련자들을 차가운 눈빛으로 응시했으나 말은 하지 않았다. 그들의 의도는 명확했다. 시간이 다 되면 진도하와 함께 일제히 달려들겠다는 것이다.“남은 시간은 50초.”진도하의 냉혹한 목소리가 울렸다.고문파의 수련자들은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 누구도 진도하의 검을 견딜 자신이 없었고 죽고 싶지도 않았다.“내가 단전을 끊으면 정말로 날 살려줄 거야?”갑자기 누군가가 물었다.진도하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대부경 1단계의 수련자였다.진도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스스로 단전을 끊는 자는 살려 보낼 거야.”“그 말 꼭 지켜.”그 남자는 그렇게 말한 뒤 손에 기운을 모아 자신의 단전을 향해 내리쳤다.퍽.남자는 입에서 피를 뿜어내며 단전의 파괴로 인한 고통을 억지로 참아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진도하를 바라보며 말했다.“이제 난 가도 되는 거지?”“가.”진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첫 번째로 단전을 끊은 자는 몸을 돌려 휘청거리며 멀리 걸어갔다. 10미터쯤 걸어간 뒤 누구도 그를 쫓지 않자 그는 단전을 움켜쥐고 빠르게 거리 끝으로 도망쳤다.이 광경을 본 고문파의 다른 수련자들은 진도하가 정말로 그 남자를 놓아주었다는 사실에 더욱 망설이기 시작했다.진도하는 다시 한번 말했다.“남은 시간은 이제 30초.”이 말을 듣자 고문파의 수련자들은 모두 당황했다.퍽.또 한 명의 수련자가 기운을 모아 자신의 단전을 내리쳤다.“푸우...”그는 피를 뱉어내고 몸을 돌려 떠나갔다.진도하는
진도하의 영적 기운이 섞인 외침은 천지를 진동시키는 것 같았다.은소혜와 다른 일행들, 그리고 고문파의 수련자들까지도 순간 멈칫하며 진도하를 바라보았다.진도하가 어깨에 메고 있는 고천혁을 보자 은소혜 일행은 놀라움과 기쁨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진도하가 또다시 대부경 7단계의 수련자를 처치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진도하는 대부경 7단계가 아니었지만 그 이상의 실력을 보였다.반면 고문파의 수련자들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당황스러워했다.“우리 문주님이 죽었어?”“어떻게 문주님이 저놈을 이기지 못할 수 있어?”고문파의 수련자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고천혁이 다른 수련자들과 겨루는 모습을 여러 번 봐왔고 고천혁이 대부경 7단계의 수련자 앞에서조차도 주눅 들지 않는 모습을 목격했었기 때문이다.상대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고천혁이 옥판을 꺼내 들면 그 즉시 상대는 가루가 되어 사라지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고천혁이 실패했다니.그들은 마음이 혼란과 두려움으로 가득 찼고 더 싸워야 할지 망설이기 시작했다.진도하는 고천혁의 시체를 땅에 던지고 고문파 수련자들을 향해 냉정하게 말했다.“고문파의 수련자들, 잘 들어라! 고천혁은 죽었어! 너희가 자진해서 단전을 끊는다면 목숨만은 살려줄게! 그렇지 않으면 너희를 맞이할 건 죽음뿐이니까 각오해!”진도하의 말이 떨어지자 고문파의 수련자들은 모두 침묵에 잠겼다.그들의 얼굴에는 망설임이 드러났다. 단전을 자진해서 끊어야 할지, 아니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지 갈등에 빠진 것이다.그때 누군가 외쳤다.“우리를 속이려 해도 소용없어! 단전을 끊으면 결국 죽을 운명 아니야?”진도하는 그 말을 한 이를 바라보았다.“음? 대부경 4단계군.”그 대부경 4단계의 남자는 고문파의 다른 수련자들을 향해 돌아서더니 외쳤다.“모두 속지 마요! 죽을 각오로 싸우면 어쩌면 살 수 있는 길이 있을지도 몰라요! 단전을 끊는다는 건 우리 목숨을 칼 위에 올려놓는 거나 다름없어요. 저놈들이 우리를 살려줄지 죽일지는
쿵.거대한 굉음이 울렸지만 이번에는 피가 튀지 않았다.고천혁은 순간 멍해졌다.그는 속으로 생각했다.‘설마 진도하 몸에 또 무슨 비장의 무기가 있단 말이야?’그는 재빨리 진도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그리고 그 순간 진도하가 크게 외쳤다.“아아아!”이 외침은 매우 고통스럽게 들렸고 천지를 뒤흔들 듯했다. 고천혁은 그 외침에 영혼마저 뽑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다음 순간 한 줄기 빛이 진도하의 어깨뼈에서 튀어나왔다.퍽.그 빛줄기는 바로 고천혁의 가슴 앞에 닿았다.크게 놀란 고천혁은 생각했다.‘이건 또 뭐야?’그는 서둘러 옥판을 조종해 방어하려 했다.그리고 그제야 공격해 온 것이 뼈 한 조각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곧바로 그 뼈 조각이 옥판과 충돌했다.쾅.두 물체가 부딪히며 엄청난 에너지가 폭발했다.끼익.옥판은 깨졌고 수많은 조각으로 부서져 주변으로 흩어졌다.“젠장!”고천혁은 차가운 숨을 내뱉었다.옥판을 소유한 이후 그는 거의 무적이었는데 귀일경 이하에서는 그와 맞설 자가 없었다.옥판 덕분에 그는 상고성과 다른 두 주성의 문파를 멸망시키고 3대 주성의 수장이 될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 그의 비장의 무기가 산산조각이 났다니?고천혁은 얼어붙은 채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의 어두운 눈빛 속에 갑작스럽게 빛이 스쳤다.‘뭐지?’뼈 조각은 옥판을 부순 후 고천혁을 향해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눈 깜짝할 사이였다.“오지 마!”고천혁의 얼굴은 공포로 일그러졌다. 그는 급히 몸을 뒤로 뺐지만 그의 속도는 뼈의 속도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쉭.뼈 조각은 고천혁의 호신 영기에 부딪혔다.쾅.고천혁의 호신 영기는 산산조각이 났다.“뭐야?”고천혁의 눈이 커졌다.뼈 조각은 여전히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고천혁의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고천혁은 움직임을 멈췄고 얼굴에 당혹감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가슴에는 축구공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그는 그 자세를 유지한 채 3초간 서 있다가 결국 땅
고천혁은 말을 마치자마자 손에 들고 있던 옥판을 던졌다.옥판은 빠르게 회전하며 진도하와 고천혁 사이에 자리 잡았다.하지만 진도하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차피 스승님이 준 비취색 목걸이가 있으니 이 목걸이는 귀일경의 전력을 막아낼 수 있었다.그러니 옥판의 힘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것이 진도하가 가진 자신감이었다.진도하는 마음을 굳혔다. 만약 옥판의 공격을 막지 못한다면 바로 스승님이 준 비취색 목걸이를 꺼낼 생각이었다.하지만 그 순간 옥판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슝.옥판에서 수많은 빛줄기가 쏟아져 나왔고 곧이어 검기와 영기가 진도하를 완전히 뒤덮었다.진도하는 반응할 틈도 없이 공격을 당했다.따다다다.그 빛줄기들이 빗방울처럼 진도하의 몸을 강타했고 그의 몸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고천혁은 잔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건 네가 자초한 일이야!”옥판은 여전히 회전 중이었고 진도하의 호신 영기는 이미 산산조각이 났다. 그의 몸에는 상처가 끊임없이 늘어났다.진도하는 저항하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상처가 늘어날 뿐만 아니라 죽음의 기운이 그의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진도하는 자신의 수명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음을 느꼈다. 피가 다 흘러나가기도 전에 그의 수명은 모두 사라질 듯했다.“아아아!”진도하는 크게 소리치며 억지로 체내의 영기를 끌어모았다.다시 한번 호신 영기를 형성했지만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고민했다.그러나 죽음의 기운에 압도당해 비취색 목걸이조차 꺼낼 수 없었다.이것이 옥판의 무서움인가? 고천혁이 3대 주성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건가?수많은 수련자들이 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그 순간 호신 영기는 다시 산산조각이 났다.끝없이 쏟아지는 빛줄기들이 진도하를 향해 끊임없이 날아왔다.푹. 푹. 푹.진도하의 몸은 점점 더 많은 상처로 가득 찼고 그의 영기도 계속 소모되었다.결국 진도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