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서, 당신과 함께 돌아갈 테니 지금 당장 철수하세요.”낙청연이 서늘한 음성으로 말했다.침서는 곧바로 손을 들었고 여국 대군은 전진을 멈췄다.침서는 낙청연을 향해 손을 뻗었다.“진짜 나와 함께 돌아가겠느냐?”낙청연은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단호히 손을 내밀었다.침서는 의기양양하게 입꼬리를 당겼다. 그는 다소 흥분한 듯 보였다. 침서는 낙청연을 자신의 말에 앉히고는 선뜻 몸을 돌렸다.여국 대군은 결국 철수했다.소소는 그 장면을 보고 중얼거렸다.“여국이 물러났습니다. 왕비 마마께서 이 전쟁을 멈춘 겁니다...”부진환은 주먹을 꽉 움켜쥐며 흐릿한 시야 속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초조함을 안고 몸을 일으키려 했는데 결국 피를 토하며 정신을 잃었다.“왕야!”-흥분한 침서는 말을 채찍질하며 빠르게 달렸다.낙청연의 귓가에는 거친 바람 소리와 침서의 환희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낙요야, 이건 네가 처음으로 나와 말을 타고 싶어 한 것이다.”낙청연은 서늘한 눈빛으로 덤덤히 말했다.“천천히 가는 게 좋겠습니다. 귀가 아픕니다.”침서는 속도를 늦췄다.낙청연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이곳에 오기 전 사상환을 먹었고 침서에게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아직 여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전 당분간 몸조리를 해야 합니다.”침서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대답했다.“그래. 네가 원하는 만큼 쉬자꾸나. 나와 함께 내가 검을 만들던 곳으로 가겠느냐?”낙청연은 덤덤히 그러자고 대답했다.낙청연의 냉담한 반응에도 침서는 뛸 듯이 기뻐했다.여국 대군은 여국 국경으로 후퇴했고 낙청연은 다시 한번 산에 올랐다.산에 오를 때는 말을 탈 수 없었고, 낙청연은 몸이 너무 허약해 산에 오를 수 없었다. 그래서 침서는 기꺼이 그녀를 업고 산에 올랐다.산기슭에서부터 산꼭대기까지 침서는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낙청연은 침서가 그녀를 가두었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왔다.산속은 아직 추웠고 낙청연은 기침하면서 옷을 여몄다.“춥습니다.”침서는 황
침서는 살짝 흠칫하더니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낙청연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정말입니까? 아까워서 죽일 수 있겠습니까?”침서는 쭈그리고 앉아 그녀에게 차를 한 잔 따라주었다.“내가 아끼는 건 낙요 너뿐이다.”“네 몸이 조금 나아진다면 낙정을 죽이러 가겠다.”“이 산에 널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시선을 내려뜨린 낙청연의 눈동자에 차가운 빛이 감돌았다. 낙청연은 유유히 말했다.“제가 도망칠까 봐 두려운 건 아니고요?”“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먼저 당신과 함께 떠나겠다고 했으니 다시 돌아갈 일은 없습니다.”서릉을 떠나는 그 순간, 낙청연은 천궐국과 더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몇 번이고 죽었으니 이제 포기할 때도 됐다.낙청연은 마지막 시간을 사부님이 끝내지 못한 일을 끝내는 데 쓸 생각이었다.“그러면 약재를 구해오마.”지금 이 순간, 침서는 너무 다정해서 마치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그러나 낙청연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침서가 미치광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바로 변덕스러운 그의 성미 때문이었다.낙청연은 눈을 감았다. 피곤한 그녀는 그냥 이대로 잠이 들어 다시는 깨고 싶지 않았다.침서는 방에서 나갔고 문을 닫은 뒤 떠났다.그는 아주 빠른 속도로 약재를 구했고 땀을 뻘뻘 흘리며 산을 올랐다. 문을 열었을 때 창백한 얼굴의 낙청연은 여전히 의자에 기대어 있었다.침서는 그제야 불안하던 마음이 사그라들었다.곧이어 그는 마당에서 약을 달였다.도중에 잠에서 깬 낙청연은 눈을 실처럼 가늘게 떴다. 그녀는 평온하면서도 냉담한 표정으로 바삐 움직이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문득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침서 오라버니, 사부님은 제게 취분산(聚焚山)에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직 강대한 혼령들을 조종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일곱 살짜리 소녀는 내키지 않는 듯이 취분산의 비석 밖에 서 있었다.소년은 소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무서워하지 말거라. 내가 널 보호해 줄 것이다. 사부님이
그 순간, 갑자기 그 기억이 떠올렸다.마치 낙청연에게 침서의 일시적인 선의에 다른 목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일깨워 주는 듯했다.침서는 어릴 적부터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악랄한 사내였다.연민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낙요야. 자, 마시거라.”갑자기 침서의 목소리가 들렸고 낙청연은 정신을 차렸다.약그릇을 건네받은 낙청연은 그것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뜨겁습니다.”“그러면 내가 불어주마.”낙청연이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아니요.”침서는 약 두 병을 꺼내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이 약은 너의 내상을 치료하는 약이다. 잠시 뒤에 같이 먹거라.”말을 마친 뒤 침서는 또 떠났다. 그는 방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그녀를 위해 이불을 펴고 음식과 옷을 마련했다.낙청연은 움직이고 싶지 않아 줄곧 의자에 누워있었다.약을 마신 뒤 낙청연은 다시 잠이 쏟아졌다.침서는 방 안의 불더미에 장작을 더한 뒤 자리를 떴다.그에게 낙정을 죽이라고 했으니 결과를 가져와야 했다.-서릉.부진환은 다친 채로 침상 위에 누워있었고 소소는 송우를 거의 둘러업다시피 해서 데려왔다.바닥에 발이 닿는 순간에도 송우는 어안이 벙벙했다.그는 다급히 부진환의 맥을 짚고 상처를 검사했다.그는 깜짝 놀라 말했다.“몸에 왜 이렇게 상처가 많은 것이오?”“송 의원, 지금 왕야를 구할 수 있는 건 당신뿐입니다. 제발 왕야의 목숨을 구해주세요!”소소는 애간장이 탔다.송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최선을 다하겠소.”“얼른 물건을 좀 준비해 주시오.”소소는 황급히 대답했다.물건이 도착하자 송우는 손을 씻고 바늘을 불길에 달군 뒤 바늘로 상처를 꿰매기 시작했다.소소는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 바늘은 상처의 깊은 곳부터 꿰매었는데 갑자기 피가 솟구치며 피투성이가 되어 소소는 머리털이 쭈뼛 섰다.송우는 바짝 긴장했다. 부진환의 몸에는 골정이 남긴 수많은 구멍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꿰맨 적이 없었다.원래는 저절로 나아야 했지만 무엇으로 만든 골정인지 상처가
소소는 그 말에 깜짝 놀라더니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한빙영지가 어디 있습니까? 제가 찾겠습니다!”소소가 말하면서 문을 나서려고 할 때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제게 한빙영지가 있습니다.”다음 순간, 송천초가 부랴부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천초냐?”송우는 깜짝 놀랐다.송천초는 다급히 한빙영지를 송우에게 건넸다.“아버지, 얼른 사람을 구하세요.”송우는 눈을 반짝이더니 이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소소는 감격한 듯 말했다.“송 낭자, 정말 감사하오!”송천초는 숨을 고르면서 물었다.“청연은요? 어디 있습니까?”초경이 산에서 그녀를 마중했기에 이렇게 빨리 서릉으로 올 수 있었다.만약 초경이 없었다면 아마 이틀 더 걸렸을 것이다.소소는 그 말에 난색을 드러내며 송천초를 밖으로 데려갔다.그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왕비 마마는 침서와 함께 떠났소.”“여국으로 갔소.”그 말에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뭐라고요? 여국에 갔다고요?”“왜입니까?”소소는 당시 상황을 송천초에게 얘기했다.아주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소소는 왜 왕비가 침서를 따라갔는지 알지 못했다.송천초는 그 말을 들은 뒤 안색이 어두워졌다.청연이 떠났다니, 앞으로 그녀와 또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잠시 뒤, 송우가 방에서 나왔다. 잔뜩 굳어져 있던 그의 표정이 살짝 풀려 있었다.“송 의원, 왕야는...”송우는 미소를 지었다.“목숨은 건졌소.”“침서의 검이 급소를 찌르지는 않았는데 하필 그 검의 살기가 매우 강해 당분간 좀 쉬어야 할 것이오.”소소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송 의원!”송우도 지쳐 송천초를 데리고 떠났다.거처로 돌아온 뒤 송우는 휴식했고 송천초는 텅 빈 마음으로 홀로 처마 밑에 앉았다. 그녀는 많은 시간을 쏟아부어 약재를 구했고, 많은 산과 하천을 넘으면서 어렵사리 진소한의 기만이 가져다준 슬픔을 잊었다.그런데 돌아와서 낙청연이 여국으로 돌아갔다는 말을 들으니 또다시 기분이 가라앉았다.마음
초경은 아주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침서가 산에서 내려온 지 사흘째였다.낙정을 죽이러 갔다고는 하지만 낙청연은 그가 진짜 낙정을 죽일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낙청연은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낙청연은 방 안에서 3일 동안 지내면서 외출하지 않았다. 그저 방문을 열어두고 의자에 누운 채로 문밖의 풍경을 바라볼 뿐이었다.며칠 동안 약을 마시니 조금 힘이 나는 것 같았다.그날 밤, 낙청연은 몸을 일으켜 마당에서 조금 움직였고 나침반으로 수련도 했다.그런데 갚자기 숲속에서 발소리가 들렸다.하지만 침서의 발소리가 아니었다.낙청연은 숲을 빤히 바라보았다.그러다 갑자기 남색 옷을 입은 여인이 험악한 얼굴로 기세등등하게 걸어왔다.그녀를 보는 순간 낙청연은 깜짝 놀랐다.고묘묘(高渺渺)!그녀가 오다니.고묘묘는 마당에 있는 낙청연을 훑어보았다. 낙청연은 흰색 옷에 검은 망토를 두르고 있었고 창백한 얼굴은 달빛을 받아 투명해 보여 죽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침서가 선호하는 용모였다.“당신이 침서가 천궐국에서 납치한 그 섭정왕비오?”낙청연은 덤덤히 대답했다.“이미 휴서를 받았으니 섭정왕비가 아니오.”“당신이 섭정왕비든 아니든 침서와 함께한다면 난 당신을 죽일 것이오!”고묘묘는 눈빛을 섬뜩하게 빛냈다. 그녀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채찍을 꺼냈고 채찍이 지면을 때리는 매서운 소리가 들렸다.낙청연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차갑게 말했다.“그에게 불만이 있으면 그를 찾아가야 하는 것 아니오?”고묘묘는 낙청연과 쓸데없는 얘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낙청연을 향해 힘껏 채찍을 휘둘렀다.낙청연은 다급히 몸을 피했고 마당에 있던 나무 탁자와 나무 의자는 채찍 때문에 두 쪽으로 갈라졌다.낙청연은 곧바로 죽림 쪽으로 달렸다.고묘묘가 휘두른 채찍이 대나무에 막힌 틈을 타 낙청연은 울창한 숲속으로 뛰었다.고묘묘는 채찍을 아주 잘 썼다.힘을 많이 쓸 때는 사람의 팔을 자를 수 있을 정도였다.고묘묘는 재빨리 낙청연을 뒤쫓으며 위협했다.“순순히 죽임을 당
낙청연이 부적을 찢자 철추가 낙청연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채찍이 날아오는 순간, 낙청연이 손을 뻗어 채찍을 잡았다.그리고 강하게 잡아당기니 오히려 고묘묘가 끌려왔다.고묘묘는 깜짝 놀라며 날아왔는데 낙청연은 그 틈을 타서 고묘묘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고묘묘는 멀리 날아가 나무에 세게 부딪힌 뒤 바닥에 쓰러져 입에서 피를 토했다.“당신! 당신은 대체 누구지?”고묘묘는 놀란 표정으로 창백한 얼굴에 허약해 보이는 낙청연을 바라보았다.그녀는 낙청연이 영혼을 조종해 빙의하게 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빙의된 사람이 힘이나 정신력이 강하지 않다면 언제든 집어삼켜질 수 있었다.그것도 떠도는 외로운 영혼이라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날 수 없기에 더더욱 육신을 갈망한다.그러니 허약해 보이는 낙청연이 영혼을 조종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낙청연은 영혼을 조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힘을 쓸 수 있었다.“낙청연이오.”낙청연이 덤덤히 대답했다.온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차가운 어조였다.낙청연의 온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고묘묘는 어쩐지 섬뜩해졌다.바로 그때, 낙청연은 가슴께가 아팠고 목구멍에서 피비린내가 났다.그녀는 손을 들어 가슴께를 누르면서 피비린내를 참았다.비록 철추의 힘을 빌렸지만 그녀의 몸으로는 철추의 존재를 버틸 수 없었다.고묘묘는 그 장면에 흠칫하더니 이내 다시 달려들었다. 그녀는 기회를 틈타 기습하려 했고 낙청연을 향해 채찍을 휘둘렀다.낙청연은 곧바로 뒤로 물러서면서 거리를 벌렸지만 결국 늦었다. 고묘묘의 채찍은 일반 채찍보다 더 길었다.낙청연은 채찍 끝머리에 목이 감겼다.목이 졸리니 숨이 막혔다. 낙청연은 순식간에 멀리 날아가서 나무에 부딪힐 뻔했다.바로 그때, 누군가 나타나 나무에 부딪히려는 낙청연을 안았다.침서의 눈동자에 살기가 일었다. 그는 낙청연을 바닥에 내려놓은 뒤 순식간에 고묘묘의 앞으로 다가갔다.그는 고묘묘가 들고 있던 채찍을 그녀의 목에 한 바퀴 감은 뒤 나뭇가지 위를 뛰어넘었다.
낙청연은 침서의 이런 어조와 언사를 들어본 적이 없다.그는 진심으로 고묘묘를 싫어하는 듯했다.하지만 고묘묘는 어릴 때부터 그를 좋아했다. 아마 성정이 비슷해서일지도 몰랐다. 침서처럼 무자비한 사람은 고묘묘에게 아주 매력적이었다.고묘묘는 화를 내며 떠났고 떠나기 전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낙청연을 째려보았다.그녀의 눈동자에는 질투가 가득했다.사실 고묘묘는 뚱뚱하지 않고 오히려 몸매가 풍만했다. 사내들이 좋아하고 여인들이 질투하는 몸매였다.그러나 침서는 그녀를 뚱뚱하다고 욕했다.낙청연은 자신이 살이 빠지지 않았더라면 침서가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거로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당장은 살이 찔 방법이 없었다.위험한 상황이 지나가자 철추는 다시 옥패로 돌아갔다.그러나 철추가 떠나는 순간, 낙청연은 몸에 힘이 빠져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기에 서둘러 나무를 잡았다.앞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면 철추가 빙의하게 할 수 없었다. 몸의 소모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침서는 다급히 그녀를 부축했다.“괜찮느냐?”낙청연은 덤덤히 그를 밀어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은 그 미치광이 여인과 제법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침서는 눈썹을 치켜올렸다.“그렇느냐? 난 네가 나랑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낙청연은 대꾸하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그들은 걸음을 옮겨 죽림 뒤에 있는 방으로 돌아갔고 낙청연은 또다시 의자에 누웠다.침서는 뒤이어 따라 들어왔다. 그는 천으로 된 주머니를 들고 있었는데 밑에서 피가 새고 있었다.동그란 형태의 그것이 무엇인지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았다.침서는 주머니를 내려놓은 뒤 그것을 열었다.피투성이가 된 낙정의 머리통이었다.낙청연은 흠칫했다.침서가 정말로 낙정을 죽이다니.어쩐지 피투성이인 그 모습을 보니 속이 불편했다.“가져가세요.”침서는 머리를 들고 나갔고 어딘가에 버렸다.곧이어 그는 깨끗하게 씻은 뒤 다시 방으로 돌아와 불을 지폈고 낙청연의 약을 달였다.“며칠 뒤 산을 내려가자꾸나. 고묘묘는
천궐국.며칠째 병상에 누워있던 부진환은 정신을 차린 뒤 곧바로 경도로 향했다. 다른 이들은 말리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아무도 그를 막지 못했다.부진환은 재빨리 경도로 돌아갔고 곧바로 보고하러 갔다.서릉의 위협이 일단락되자 조정 사람들은 다들 기뻐했다.“이번에 대국사가 맞췄군. 섭정왕이 나서니 전쟁이 해결되었소.”낙정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그제야 조금 달라졌다.“이번에 섭정왕이 또 공을 세웠소. 폐하께서 그에게 어떤 상을 내릴지 궁금하군.”...어서방.부운주는 서릉의 전쟁이 끝났다는 것에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분노했다. 그는 호된 목소리로 따지듯 물었다.“짐이 전해 듣기론 전장에 낙청연이 나타났다면서? 그게 정말이오?”음산한 목소리에서 억눌린 분노가 느껴졌다.부진환은 입을 열지 않았고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부운주는 뒷짐을 진 채로 그에게 다가갔다.“우선 낙청연이 가짜로 죽게 한 뒤에 그녀를 몰래 서릉의 국경으로 데려가 전쟁을 멈추는 대가로 그녀를 내준 것이오?”부진환은 여전히 대꾸하지 않았다.부운주는 이미 답을 확인했다. 그는 화가 나서 부진환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고 그 주먹에 부진환은 바닥으로 고꾸라졌다.자리에서 일어난 부진환은 입가의 피를 닦았다.“그러고도 당신이 남자오? 당신은 전쟁의 신이라고 불리지 않소? 왜 여인으로 전쟁을 평정하려고 한 것이오? 정말 무능하군!”“천궐국의 체면이 당신 때문에 말이 아니오!”“게다가 모두를 속이고 낙청연이 죽었다고 생각하게 만들다니! 짐을 속인 죄를 어떻게 갚을 생각이오?”부진환은 평온한 얼굴로 덤덤히 말했다.“섭정왕의 자리에서 물러나겠습니다. 국경은 안정되었고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들도 안전합니다. 폐하 또한 자리를 굳혔으니 이제 신이 보좌할 이유는 없습니다.”그 말에 부운주는 깜짝 놀랐다. 그는 부진환이 자리에서 물러날 줄은 몰랐다.“뭐라?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잘 생각해 봤소?”“네.”부운주는 부진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나 평온한 얼굴의 부진환이 무슨 생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