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는 분명 아버지와 오라버니들에게 사랑받는 존재였던 온사, 하지만 아버지가 동생을 데려온 뒤로 모두의 사랑을 빼앗겼다. 새 여동생에게 뺏긴 사랑을 되찾고자 했지만 오라버니들은 그녀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할 뿐. 큰오라버니는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게 했고, 둘째 오라버니는 두 손 두 발을 잘랐고, 셋째 오라버니는 모진 고문을 했으며, 막내 오라버니는 체면을 구기고 악명을 떨치게 했다. 심지어 아버지마저 그녀를 쫓아내고, 결국 온사는 아버지와 오라버니들의 손에 죽게 된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포기하기로 하고 집을 나와 연을 끊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오라버니들이 후회하고 그녀에게 무릎 꿇고 빌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온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미타불, 온씨 가문? 온사? 사람을 잘못 보셨군요.”
Lihat lebih banyak그녀는 짐짓 모르는 척하며 무심한듯 물었다.“여기 동그라미를 친 약재가 있는데 이건 무슨 의미인가요?”임자부가 말했다.“별거 아니고요. 이것들은 아직 구하지 못한 약재들입니다. 사실 다른 약재들은 그나마 구하기 쉬운데 이 서홍화는 어디 가서 구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더군요.”서홍화 얘기를 꺼내는 임자부의 표정이 제법 무거웠다.온사는 요동치는 감정을 감추려 시선을 내렸다.서홍화를 그녀는 갖고 있었다.그녀는 겉으로는 담담한 표정으로 임자부에게 물었다.“서홍화는 뭐에 쓰이는 약재인가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서요.”그러자 임자부의 눈빛에 실망이 스쳤다.그는 이내 표정을 수습하고 온사에게 말했다.“사실 저희도 서홍화는 직접 본 적이 없습니다. 소인은 조상님들이 물려주신 고대 서적에서 발견했지요. 비록 어디에서 자라는지는 적혀 있지 않지만 그것의 효능에 대해서는 아주 상세하게 쓰여 있었습니다. 심신 안정에 탁월한 효능이 있는 약재이지요. 그리고 제가 처방에 쓴 다른 약재와 결합하면 신기한 효능을 낼 수 있고 왕야의 병을 완치할 수 있습니다.”그 말을 들은 온사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고대 서적에서 본 거였구나. 서홍화의 진짜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겠네.’그렇다면 서홍화의 향이 어떤지 아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임자부에게 들킬 염려도 없었다.하지만 괜히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서홍화가 섭정왕 전하의 병을 완치할 수 있다고?’그렇다는 건 그것이 섭정왕에게는 아주 중요한 물건이라는 의미였다.만약 구하지 못한다면 그는 평생 고통받아야 하는 걸까?온사의 머릿속에 고통스러워하는 북진연의 얼굴이 떠올랐다.그녀는 처방전을 손에 꽉 쥐고 서홍화의 이름을 힘주어 빤히 바라보았다.저도 모르게 죄책감이 들었다.백년 자령지와 회춘초도 선물했지만 아무도 보지 못하고 고대 서적에나 나온 약재를 선물한다면 분명 누군가의 의심을 살 것이다.어디서 났냐고 물어본다면 뭐라고 대답할까?온사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안 돼, 그건 절대 선물할 수
“전하께 너무 감사하네요. 여러분도 이 많은 걸 찾아오느라 고생하셨어요.”북진연은 그녀가 정원에 심은 약초들을 보고 그녀를 위해 뒷산까지 약초밭으로 개간해 주었다.그리고 약재 씨앗을 찾아봐 주겠다고 하더니 그 약속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존귀하신 섭정왕 전하께서 한낱 승려와의 약속을 기억하고 실행에 옮겼다고 생각하니 온사는 그의 마음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비록 북진연에게 회춘초를 선물한 행위가 자신의 정체를 탄로나게 할 위험도 있지만 별채 정원에 가득 채워진 씨앗과 묘목들을 보자 그녀는 갑자기 괜히 후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섭정왕은 한 번도 그녀에게 과분한 요구나 선 넘는 행위를 한 적 없었다.솔직히 온사의 주변에서 그녀를 이렇게까지 도와준 사람은 섭정왕이 유일했다.이런 생각을 하니 온사는 초조함이 순식간에 사라졌다.“성녀 전하!”임자부는 잔뜩 들뜬 얼굴로 온사에게 달려오더니 말했다.“전하께서 의술을 공부하고 계신다는 얘기 들었습니다. 소인의 처방 한번 봐주시겠어요? 아주 신묘하지 않나요?”임자부는 종이 한 장을 온사에게 건넸다.고요가 미처 그를 말릴 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온사는 흠칫하더니 이내 침착하게 임자부의 손에서 처방을 받아 위에 쓰인 약재들을 꼼꼼히 읽어보았다.“임 의원의 의술은 참으로 절묘하군요. 심신 안정에 좋은 약재를 아주 잘 배합했어요.”“당연하죠! 저 임자부는 이 나라의 의성입니다. 심신미약 정도야 저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죠!”임자부는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치며 말했다.의성이라는 말에 온사는 놀란 눈으로 임자부를 바라봤다.“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그 유명한 의성이 당신이었나요?”“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표정은 좀 과장된 것이긴 합니다만.”임자부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하마터면 저승길 갈 뻔한 녀석을 구해준 적은 있죠. 그 일로 소문이 그렇게 나서 그렇지 죽은 자는 못 살린답니다.”그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죽은 사람 살리는 건 신선이나 가능한 거죠. 제가 무슨 수로 그런 능력을 가졌겠습
“회춘초요?”임자부는 고개를 번쩍 들고 온사를 바라보며 환호를 질렀다.“되죠! 당연히 도움되죠!”그는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지난번에 성녀 전하께서 왕야께 백년 자령지를 선물하셨지요. 이제 왕야의 치료에 필요한 희귀 약재가 두 가지 남았는데 그 중 하나가 회춘초입니다!”‘이런 우연이?’온사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녀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임자부는 계속해서 물었다.“그런데 갑자기 그 얘기는 왜요? 혹시 성녀 전하께서 회춘초를 갖고 계신가요?”온사가 말했다.“제게 회춘초가 하나 있기는 합니다. 지난번에 섭정왕께서 저를 금주까지 호송해 주시고 수차례 위험으로부터 저를 지켜주셨기에 감사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그녀는 나무 상자를 임자부에게 건넸다.임자부는 급급히 상자를 열고 내용물을 확인했다. 아니나다를까, 회춘초가 안에 들어 있었다.딱 봐도 백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귀한 약재였다!임자부는 환호를 질렀다.“잘됐어요. 너무 잘됐습니다! 왕야의 처방전에 꼭 필요한 희귀 약재를 또 하나 구했네요! 성녀 전하께서 회춘초를 갖고 계실 줄은 알았습니다. 고요, 내가 뭐랬나? 내 말 맞았지?”온사는 순간 흠칫하며 임자부에게 물었다.“임 의원께서는 내가 회춘초를 갖고 있다고 어떻게 확신하셨나요?”임자부는 기쁨에 들떠 온사의 표정이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그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당연히 지난번에 갖고 오신 백년 자령지 때문이죠. 제가 이 코가 아주 개코거든요. 약재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아요. 지난번 백년 자령지를 보고 회춘초의 냄새를 맡았습니다. 진하고 오래 감도는 향은 백년 회춘초가 틀림없다고 생각했죠!”임자부는 고개를 번쩍 들고는 의기양양하게 자랑하듯 말했다.하지만 정작 온사는 가슴이 철렁했다.강한 불안감이 그녀를 엄습했다.고마워서 선물한 약재가 단서를 남길 줄은 꿈에도 몰랐던 일이었다.옥패 공간에서 회춘초는 백년 자령지의 옆에서 자라고 있었다.옥패 공간 내부에 영기가 감돌고 있어서 희귀 약재들은 환경을
그녀가 제대로 본 게 맞다면 안에 든 것은 백년 영지였다.온사는 웃으며 말했다.“사부께서 저에게 잘해주셔서 저도 좋은 것을 선물하고 싶었답니다.”그녀는 자신의 걱정을 막수에게 전했다.“영지가 어떤 효능을 가졌는지는 사부님도 잘 아시잖아요. 저는 줄곧 사부의 병이 걱정이었답니다. 그래서 이걸 선물하는 거예요. 괜찮다고만 넘기지 마시고 신경 써서 치료했으면 해요.”막수가 만약에 적극적으로 치료했었다면 이 정도 잔병은 진작에 나았을 것이다.온사는 선물의 귀중한 정도보다 제자로서의 걱정과 관심을 전하고 싶었다.잠시 침묵하던 막수는 병치료를 미루고 있었던 까닭에 대해 입을 열었다.“네 어미가 그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 후에 난 한동안 상심에 빠져 있었단다. 그러다가 심병까지 얻게 되었지. 치료를 안 했던 건 치료하고 싶지 않아서였어.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나를 관심하고 걱정해 주는 제자도 있으니 제대로 치료를 해보마.”말을 마친 막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녀가 이렇게 환한 미소를 지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온사는 적잖이 놀랐다.사부와 어머니 사이의 관계는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었던 것 같았다.그리고 사부가 어머니의 죽음에 비통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온사는 예전에 독점욕을 느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사부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녀를 자신의 아이처럼 아끼고 사랑해 주고 있었다.“사부님, 사부님께서 어머니의 죽음에서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걸 어머니가 아신다면 분명 속상해하실 거예요.”“그러니 치료 잘해요. 앞으로 제가 오래오래 사부님 곁에 있을게요.”그 말을 들은 막수는 드디어 결심을 내렸다.“그래, 그래야지.”사부의 방에서 나온 온사는 북진연에게 줄 선물을 들고 처음으로 섭정왕부로 향했다.출발하기 전, 그녀는 먼저 서신을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잠시 후, 섭정왕부의 하인이 마차를 끌고 수월관으로 왔다.마을 주민의 차를 얻어타고 가려던 온사는 주저없이 마차에 올랐다.두 시진 후, 마
온모에게 충분한 양의 수면제를 먹이고 그녀의 눈코입을 모두 봉인한 온사는 팔다리까지 꽁꽁 묶어서 자신의 옥패 공간에 던져넣었다.비록 자신만의 신성한 공간에 온모를 들여놓는 게 껄끄럽긴 하지만 김사도가 찾을 수 없는 곳은 여기뿐이었다.온사는 온모를 공간의 작은 오두막에 두었다.앞으로는 매일 끄집어내서 물과 음식을 주고 다시 던져넣기로 했다.모든 준비를 마친 후, 온사는 공간 안의 약재를 놓아둔 곳을 찾았다.이곳에 보관했던 약재들은 이미 구조 물자와 함께 금주에 기부했다.금주에 비가 내리긴 했지만 자연 재앙이 가져온 후유증은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약재들은 모두 흔히 쓰이면서도 효과가 좋은 것들이니 금주의 백성들에게 주기에 안성맞춤이었다.뒤돌아선 온사는 넓게 펼쳐진 자신의 보물창고, 약초밭을 바라보았다.희귀 약초를 땄던 곳에 영기가 깃든 냇물을 부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다시 자라났다.그녀는 두 개의 선물을 준비할 생각이었다.하나는 사부에게, 또 하나는 북진연에게 줄 것이다.추월에게도 뭐 하나 주고 싶었지만 약재들이 그녀에게는 큰 쓸모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그래서 온사는 추월의 선물은 따로 준비하기로 했다.그녀는 약재 백과서를 들고 느긋하게 약초 밭을 누비며 정성 들여 고른 끝에 드디어 마음에 드는 두 가지를 선택했다.하나는 백년 영지였다.온사는 심혈을 보강해 주고 심열을 내리는 약효가 있는 그것을 막수에게 선물할 생각이었다. 의술을 배운 후에야 그녀는 사부가 심장이 약간 안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정작 의사인 막수 본인은 크게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는데 온사는 제자로서 당연히 스승을 챙기고 싶었다.비록 큰 병은 아니지만 나중에 사부가 연세가 들면 이런 작은 질병도 큰 위협이 될 수 있었다.온사가 백년 영지를 선택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다른 하나는 심신의 안정과 원기 보양에 좋은 회춘초로 골랐다.비록 섭정왕이 원기 보양까지는 필요 없더라도 심신의 안정을 지켜주는 약효가 있으니 회춘초가 가장 적당했다.
온사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제가 워낙 먼 길을 떠났었잖아요. 그러니 당연히 걱정이 되셨겠죠. 사저도 나중에 멀리 나가시면 사부께서 걱정하실 거예요.”하지만 막수는 말없이 앞으로 걷기만 했다.‘아니야, 넌 달라.’무고를 대하는 마음과 무우를 대하는 마음은 달랐다.란자군이 세상을 떠난 후, 감정이란 것을 느껴본 게 정말 오랜만이었다.보신탕의 양이 많았기에 막수는 먼저 온사를 챙긴 후에 나머지를 다른 사태들에게까지 나눠주었다.온사는 보신탕을 들고 생글생글 웃으며 감사인사를 전했다.“감사합니다, 사부! 정말 맛있네요.”“맛있으면 됐어. 전에 네 어미한테도 자주 만들어 줬는데, 매번 내가 만든 국이 제일 맛있다고 하더라.”온사의 어머니를 떠올리자 막수의 얼굴에는 이내 부드러운 미소가 지어졌다.하지만 눈빛에는 슬픔이 가득했다.그 모습에 온사는 고개를 떨구고 입을 다물었다.“아, 내가 또 속상한 얘기를 꺼냈구나.”분위기가 이상해짐을 느낀 막수가 말했다.란자군의 사망은 그녀에게 큰 고통과 슬픔을 주었지만 그건 온사도 마찬가지였다.막수는 손을 뻗어 온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착하지. 이번에 금주행에서 있었던 일들을 말해보거라. 나도 금주는 한 번도 못 가봤구나.”“좋습니다.“막수가 계속 슬퍼하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었기에 온사는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그리고 얘기를 들은 막수 사태는 화들짝 놀랐다. 그녀는 그제야 아끼는 제자가 갑자기 금주로 불려가서 기우 대전을 주관한 이유가 배후에 누군가의 음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게다가 가는 길에 수많은 암살자와 곤충과 독을 쓰는 이국인 놈을 만날 줄이야!“김사도라고 했지? 내 기억해 두겠어. 감히 우리 수월관을 찾아오면 내 가만두지 않아!”막수는 분노에 책상을 쳤다.당장이라도 진국공에게 달려가서 딸 교육 좀 잘 시키라고 윽박지르고 싶었다.언제는 온사를 악랄하고 속좁은 애라고 욕하더니 가장 비열하고 악한 인간은 따로 있었다.온모는 그야말로 사람 같지도 않은 인간이었
“비 온다!”“정말 비네?”“드디어 재앙이 끝이 났어!”“아버지, 어머니! 보고 계신가요? 재앙이 끝났어요!”금주성 안팎의 백성들은 미친 사람처럼 밖으로 달려나왔다.그들은 빗속에서 환호하며 무려 세 달 만에 찾아온 큰비를 두 손 들고 환영했다.“성녀 전하 덕분이야!”“맞아! 복명 성녀님의 기도에 하늘도 감명하여 비를 내려주신 게 분명해!”“복명 성녀는 보살님이야!”“폐하께서 친히 책봉한 성녀 전하시잖나. 나라를 위해, 백성을 위해 기도하는 분이야! 우리 모두의 성녀님이라고!”금주성의 모두가 빗속에서 온사의 이름을 외쳤다.대명 왕조의 유일 성녀, 복명 성녀.그녀의 이름은 훗날 역사에도 이렇게 불렸다.7일 후, 온사 일행은 드디어 경성으로 돌아왔다.“이건 어떻게 할 거요?”성으로 들어가기 전, 북진연은 기절한 온모를 가리키며 온사에게 물었다.온사는 잠깐 고민하다가 그에게 말했다.“저한테 맡겨주시지요.”“사태 혼자 괜찮겠소? 김사도가 무조건 다시 찾아올 텐데?”경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김사도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미 중상을 입은 상태였기에 남은 암살자들 모두 숨어버린 것 같았다.“괜찮아요. 추월이 있으니깐요. 어차피 그 놈은 추월의 상대가 못 돼요.”온사는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곤충이나 독을 사용하는 놈이긴 하나, 제가 아는 분께서 놈보다 훨씬 독에 대해 뛰어나시거든요. 그리고 경성에도 돌아왔으니 이제 안전해요.”김사도가 감히 다시 찾아온다면 이번에는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전생에 그녀에게 온갖 고통을 주었던 사내였기에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온사는 아직 사람을 죽여본 적 없었다.그녀의 눈빛에 순간 살기가 스쳐 지나갔다.김사도만 죽으면 그녀는 바로 온모를 죽일 생각이었다.완벽한 살인 계획을 세운 온사는 다시 마차에 올라탄 후, 추월에게 먼저 온모를 데려가라고 지시했다.그녀와 북진연은 입궁하여 황제에게 인사를 올리고 한바탕 치하와 포상을 받은 뒤에 마차를 타고 수월관으로 돌아갔다.
주변은 곧이어 조용해졌다.높은 제천대에 선 온사는 밑에서 그런 얘기가 오가는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하늘에 제를 올렸으니 이제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할 시간이었다.온사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곧이어 그녀의 예쁜 입에서 청아한 기도문이 흘러나와 백성의 귓가를 간지럽혔다.그들은 진지한 얼굴로 그녀의 기도를 듣고 있었다.“대명왕조의 백성 무우, 폐하의 은혜를 입어 복명이라는 호를 받게 되었는 바 있습니다. 금주의 만민을 대신하여 감히 토지의 신과 오곡의 신, 자비로운 하나님께 기도를 올립니다. 부디 단비를 내려주시어 백성들의 고통을 멈춰주시고 이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여 생의 희망을 안겨주시옵소서.”한마디 한미다 마다 그녀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곧이어 제천대 아래에서 북소리가 울리며, 제복을 입은 남녀가 제천대를 둘러싸고 기우제를 위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심금을 울리는 북소리와 성스러운 춤, 그리고 고결한 성녀와 간절한 소망을 가진 백성들이 이 순간 함께 어우러져 가슴 뛰는 장면을 연출했다.온사의 기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한번 해서 비가 내리지 않자 그녀는 다시 기도문을 읊기 시작했다.“대명왕조의 백성 무우, 폐하의 은혜를 입어 복명이라는 호를 받게 되었는 바 있습니다. 금주의 만민을 대신하여 감히 토지의 신과 오곡의 신, 자비로운 하나님께 기도를 올립니다. 부디 단비를 내려주시어 백성들의 고통을 멈춰주시고 이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생의 희망을 안겨주시옵소서…!”두번째에도 실패하자 다시 세번째, 세번째도 묵묵부답이자 네번째, 그렇게 온사는 제천대에 서서 같은 기도문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시간이 흐르며 그녀의 목소리도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그녀와 북소리는 멈추지 않았고 제사의 춤도 계속되었다.제천대 아래의 백성들은 고개를 들고 그들의 성녀를 우러러보았다.성녀의 기도문이 반복되지만 여전히 하늘은 아무런 반응이 없자, 누군가가 갑자기 큰소리로 입을 열었다.“부디 단비를 내려주시어 백성들의 고통을 멈춰주시고 이들의
옷을 갈아입은 온사는 흰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고 시종들의 안내를 받으며 밖으로 나갔다.고요는 아직도 멍하니 있는 왕수안의 어깨를 툭 쳤다.“왕 현령, 성녀 전하는 이미 멀리 갔는데 멍하니 서서 뭐 하시오? 빨리 따라가지 않고?”그제야 정신을 차린 왕수안이 다급히 달려가며 온사를 불렀다.“같이 가요, 성녀님! 제가 길을 안내하겠습니다!”“빨리 가자! 늦으면 자리가 없을지도 몰라!”“간다, 가! 좀만 기다려!”“뭐야? 오늘 무슨 날이야?”“자네들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는 것이야?!”금주성 성문 밖, 무수히 많은 백성들이 몰려들어오고 있었다.세 달째 가뭄에 고통받고 있는 그들은 거의 희망을 포기한 상태였다. 그런데 금주성 현령이 폐하께서 친히 책봉한 성녀님을 모시고 기우제를 지낸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고, 무려 하룻밤 사이에 그 소식은 금주성 밖까지 퍼졌다.수많은 백성들은 기우 대전에 참석해 복명 성녀의 얼굴을 보려고 모여들었는데, 점점 더 많은 백성들이 금주성 안에 집결되자 성내의 호위가 부족할 정도였다.북진연은 어쩔 수 없이 반 이상의 흑기군을 파견하여 성내 호위를 도와주게 했다.잠시 후, 기우 대전을 진행할 제천대 주변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자칫 잘못하면 심각한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제천대가 무너질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관원들은 민심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을 못 오게 막을 수가 없었다.그들은 제발 아무 일 없이 기우제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기를 기도했다.비가 바로 내리지 않더라도 순조롭게 끝나 성녀만 안전하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사람들의 목서리 또한 점점 커지고 있었다.모든 호위와 흑기군들이 바쁘게 돌아치고 있을 때, 멀리서 기다렸던 소리가 들려왔다.“성녀 전하 납시오!”왕수안은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를 크게 질렀다.온사는 마차에 앉아 수치심을 느꼈다.‘왕 현령은 언제 목청이 저렇게 좋아진 거지?’성녀가 왔다는
“우쭈쭈.”“먹어, 언니, 왜 안 먹어?”어두컴컴한 밀실에서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온사가 숨죽인 채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그녀의 몸에 있는 쇠사슬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그녀의 목과 사지를 묶어 빠져나갈 수 없게 했다.그녀의 앞에는 노란색 옷를 입고 있는 소녀가 개 먹이를 들고 개를 놀리는 것처럼 그녀를 놀리고 있었다.웃을 때 보조개가 예쁘게 생기는 이 소녀는 그녀의 여동생 온모였다.온모는 뒤에 있던 시녀에게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이거 봐, 우리 언니 진짜 쓸데없다니까? 개로도 못 쓰겠어. 이 몸이 직접 먹여주는데도 감히 안 받아먹잖아.”시녀는 곧장 앞으로 가 바닥에 있던 사람을 걷어찼다.차인 사람이 힘겨운 소리를 내자, 그제야 시녀는 온모를 달랬다.“아가씨, 그러지 마세요. 이 개가 아직도 자기가 국공부 정실 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온모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온사가 정실 딸은 무슨, 아버지랑 오라버니들도 다 모르는 사람이라는데, 개로 써주는 것도 얘한텐 영광이지.”“불쌍한게 눈치도 없어.”온모는 차가운 말 한마디를 던지고 온사의 손을 있는 힘껏 짓이겼다.너무 세게 밟은 탓에 손가락뼈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고, 온사는 고통스러운 듯 흐느꼈다.“온사, 내가 마지막 기회 한 번 더 줄게, 그 옥패 내놔.”“흐…… 흐흐……”이미 정신이 조금 희미해진 온사는 이 말을 듣고 나서야 힘겹게 반응했다.그녀는 힘없는 웃음을 내뱉고 말했다.“온모, 너 헛된 희망 가지지 마……”옥패는 어머니가 그녀에게 물려준 유일한 물건이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는 절대 온모에게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멍청한 것, 네가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온모는 눈에서 불을 뿜을 것처럼 화를 냈다.마침 이때, 밖에 있던 누군가에 의해 밀실의 문이 열리고, 실루엣 몇 개가 밀실로 들어왔다.온모는 그들을 돌아보고 급히 개 사료를 시녀의 품에 숨기며, 마치 마술이라도 부린 듯 순식간에 순수하고 귀여운 얼굴로 바뀌더니 기뻐하며 그들에게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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